오마이스타

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오늘 처음 만드는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지난 4월 21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열린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의 프레스콜 공연 이미지.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관객참여형 '즉흥' 뮤지컬로, 공연 초반 관객의 의견을 바탕으로 장르와 주인공, 주요 이야기를 정하는 작품이다. 오는 14일까지. 민준호·김태형, 박정표·홍우진, 이영미, 김슬기, 이정수, 정다희 등.

▲ 환불은 안 됩니다이미 공연은 시작했고, 인터미션도 없고, 환불은 안 된다. 당신이 결제한 카드값은 다음 달에 청구서로 날아온다. 그러니 어떻게든, 극을 완성해야만 하는 의무가 관객에게 주어진다.ⓒ 곽우신


어드벤처 전문극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오늘도 하릴없이 연습실에 모여 각자 음역에 맞는 소리를 내며 발성 연습을 하는 배우들. 갑자기 연출에게 전화가 한 통 온다. 공연장이 비었단다. 급하게 작품을 올려달란다. 일이다! 어? 그런데 보통 급한 게 아니다. 작품이 올라가야 하는 건 바로 내일. '수주'를 위해 대충 있는 말 없는 말 지어내며 따내기는 했는데,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

작품의 제목, 장르, 주인공, 모든 것이 미정인 상태. 배우들은 관객에게 급하게 SOS를 친다. 내일을 위해 '말하는 대로'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상황.  <비너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이웃집 호로로> <구리스 대구신화> 등 관객이 던지는 아무 말들이 즉석에서 선택된다.

"오늘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지금 보신 것처럼 우리 공연은 여러분이 말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매일매일 이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뮤지컬. 오늘 오신 여러분 큰일입니다. 지금 여기 우리도 오늘 공연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알 수가 없어. 매일매일 이 자리에서 곤란해지는 뮤지컬." -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No.01 '프롤로그' 중에서

가면 갈수록 산을 향해 가는 '혼파망(혼돈·파괴·망각)'의 작품. 과연 이들은 무사히 공연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인가.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아래 <오첨뮤>)은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관객들과 함께 맨땅에 헤딩하며 극을 써나간다.

국내에 시도된 적 없는, 새로운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지난 4월 21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열린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의 프레스콜 공연 이미지.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관객참여형 '즉흥' 뮤지컬로, 공연 초반 관객의 의견을 바탕으로 장르와 주인공, 주요 이야기를 정하는 작품이다. 오는 14일까지. 민준호·김태형, 박정표·홍우진, 이영미, 김슬기, 이정수, 정다희 등.

▲ 배우들의 개인기짜여진 대본이 딱히 없다보니, 대부분의 대사를 배우들이 즉흥으로 창작하고 던져야 한다. 미리 합을 맞춰놓은 것도 아니니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는 상황. 서로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곽우신


"멋진 아리아, 웅장한 합창, 화려한 안무, 기가 막힌 조명, 어쩐지 겁나 비쌀 것 같은 드레스, 어쩐지 움직일 것 같은 무대, 하나도 없을 수도 있지만…." -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No.01 'Prologue' 중에서

"없을 수도 있지만"이 아니라 그냥 없다. 지난 4월 14일 개막하여 약 한 달간의 공연을 성황리에 마무리하고 오는 14일 종연하는 <오첨뮤>에는 이처럼 없는 것이 많다.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이라는 소극장 자체가 외적으로 뭘 많이 집어넣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무대 위에 놓여 있는 건 몇 가지 구조물과 덩그러니 놓인 칠판이 다다.

하지만 그 비어있는 부분들을 다른 재미로 꽉꽉 채웠다. 예컨대 극 중 극과 극의 경계를 허물며 평소 다른 작품에서는 접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상황들이 그렇다. 극 중에 디렉션이 이상하면 "연출 뭐하는 거야!" "이럴 때 연출이 필요한 거야!"라고 소리치고,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극이 빠지고 있으면 배우들끼리도 "캐릭터 잘못 잡은 것 같은데?" "너무 편하게 가려는 경향이 있다, 너?" "야, 이래도 되는 거야?" 등의 이야기가 오고 간다.

연극 <쉬어 매드니스> 정도를 제외하면, 국내에는 관객의 참여를 통해 극의 서사에 변화를 주는 작품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나마 <쉬어 매드니스>도 다양한 엔딩 버전에 맞춘 매뉴얼이 존재하지만, <오첨뮤>는 정말로 밑도 끝도 없다. 즉석에서 관객들이 던져준 요소들로 극을 만들어야 하기에 자리에 앉은 사람의 입장에서 이보다 흥미진진할 수가 없다.

다른 극에서 애드리브는 전체 서사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드물게 나타나지만, 이 극은 애초에 정해진 대사가 없으므로 배우의 순발력과 재치에 많은 것을 의존해야 한다. 그때그때 카카오톡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상황과 주요 대사들을 전해줘야 하는 연출 속 연출도 바쁘기는 매한가지이다. 러닝타임도 제각각이다. 기준은 90분이지만, 100분이 되기도 하고 110분이 되기도 한다. 프레스콜 때도 60분 안에 끝내겠다고 했지만, 결국 90분이 되어버렸다.

오늘 처음 만드는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지난 4월 21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열린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의 프레스콜 공연 이미지.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관객참여형 '즉흥' 뮤지컬로, 공연 초반 관객의 의견을 바탕으로 장르와 주인공, 주요 이야기를 정하는 작품이다. 오는 14일까지. 민준호·김태형, 박정표·홍우진, 이영미, 김슬기, 이정수, 정다희 등.

▲ 뇌섹남 연출, 하지만...카이스트에 한예종 출신 뇌섹남. 하지만 카이스트에서 즉흥극을 배우지는 않았을 터. 이영미 배우는 '쇼 스토퍼' 넘버에서 연출이자 남편인 김태형에게 원망을 털어놓고, 정다희 배우 역시 '낚였다'며 분해한다. 넘버 가사도 그때그때 다르기에 매번 새로운 재미가 있다.ⓒ 곽우신


결국, 이 작품을 온전히 끌고 가는 데는 배우들과 연출 간의 신뢰와 팀 내 케미스트리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박정표·홍우진, 이영미, 김슬기, 이정수, 정다희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다. 어떤 극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도 기대 이상을 해냈던 박정표, '홍우진의 재발견'이라고 할 만큼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홍우진은 두말할 것 없다. 관록과 경험을 허투루 먹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한 이영미, 끊임없이 '아재 개그'를 날리며 핍박받는 역을 자처하는 김슬기, 뛰어난 말솜씨로 황당한 상황에서도 박수를 유도해내는 이정수, '2년 안에 뜬다'고 누군가 왜 장담했는지 알 수 있는 정다희까지…. 어떻게 이 라인업을 구성했는지 의문일 정도. "정통 브로드웨이 뮤지컬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며 뻔뻔하게 너스레를 떠는 민준호·김태형 연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기본적인 것들은 몇 가지 정해져 있다. 대체로 소재가 무엇이든 <오첨뮤>에는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꿈과 그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제시되고, 그 꿈을 이루어주겠다는 조력자가 등장한다. 조력자의 등장에 꿈의 실현이 가까워지는 듯하지만, 이를 방해하는 반동 인물이 등장하여 위기를 맞는다. 결국, 주인공은 장애물과 난관을 극복하고 이 갈등을 해결하는 구조이다.

오늘 처음 만드는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지난 4월 21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열린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의 프레스콜 공연 이미지.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관객참여형 '즉흥' 뮤지컬로, 공연 초반 관객의 의견을 바탕으로 장르와 주인공, 주요 이야기를 정하는 작품이다. 오는 14일까지. 민준호·김태형, 박정표·홍우진, 이영미, 김슬기, 이정수, 정다희 등.

▲ '쇼 스토퍼' 이영미정통 브로드웨이 뮤지컬 문법에 따라서, 화려한 쇼 스토퍼가 등장하는 <오첨뮤>. 쇼 스토퍼는 이영미 혹은 정다희 배우가 맡아서 소화하며, 두 배우 모두 가창력과 재기가 독보적이다.ⓒ 곽우신


이 과정에서 1번부터 5번까지 배우가 그 자리에서 상황에 맞춰 정하는 넘버들이 있다. 이외에도 주인공이 자기소개하는 '아이 엠 송(I am Song)', 러브라인을 위한 '러브 송(Love Song)', 극을 환기하는 '쇼 스토퍼(Show Stopper)', 전 캐스트가 나와 분위기를 고조하는 '프로덕션 송(Production Song)'까지 갖췄다. 뮤지컬 넘버 하나하나 다 훌륭하지만, 뮤지컬 <스팸어랏>의 '대체 내 배역 왜 이래'에 비견할 이영미 혹은 정다희 배우의 쇼 스토퍼 재치는 발군이다.

애니메이션 <요리왕 비룡(신 중화일미)>의 '면' 에피소드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면 요리라는 기본은 정해져 있지만, 면발의 소재, 국물의 맛은 고정이 아니다. 수많은 종류의 소재와 배경이 만나 무궁무진한 베리에이션이 가능해진다. 또한, 그 과정에서 최소한의 지켜야 할 것들은 지켜야 한다. 프레스콜 현장에서 한 공연평론가가 주인공의 단점으로 '정신병'을 던졌으나, 제작진은 이를 받지 않았다. 공연평론가는 "못 받은 게 아니냐"고 질문했지만, '못'이 아니라 '안'이라고 김태형 연출은 못을 박았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거나, 약자 비하로 이어질 수 있는 희화화는 철저하게 배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빛난다. 즉흥극 특성상 모든 회차의 공연이 완벽하게 PC(정치적 올바름) 하지는 않지만, 실수가 나오면 바로 SNS 등을 통해 사과하며 관객을 안고 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관객의 인생에 던지는 위로

오늘 처음 만드는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지난 4월 21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열린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의 프레스콜 공연 이미지.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관객참여형 '즉흥' 뮤지컬로, 공연 초반 관객의 의견을 바탕으로 장르와 주인공, 주요 이야기를 정하는 작품이다. 오는 14일까지. 민준호·김태형, 박정표·홍우진, 이영미, 김슬기, 이정수, 정다희 등.

ⓒ 곽우신


오늘 처음 만드는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지난 4월 21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열린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의 프레스콜 공연 이미지.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관객참여형 '즉흥' 뮤지컬로, 공연 초반 관객의 의견을 바탕으로 장르와 주인공, 주요 이야기를 정하는 작품이다. 오는 14일까지. 민준호·김태형, 박정표·홍우진, 이영미, 김슬기, 이정수, 정다희 등.

▲ 주인공의 고난프레스콜 공연에서 주인공 홍우진은 150세 기관차 토마스를 연기한다. 토마스는 레일을 벗어나 달리는 게 꿈이다. 이런 황당한 설정에서도 홍우진의 연기력은 빛났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연기천재'라고 불리는 게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의 재발견이라고 할 만한 작품이 이 <오첨뮤>이다.ⓒ 곽우신


매일매일 '첫공'이자 '막공'인 <오첨뮤>. 언제 봐도 새로운 이 작품은, 그저 '재미'만 있는 작품은 아니다. 매번 다른 주인공이, 다른 이야기 속에서, 다른 결말을 맞이하지만, 극을 관통하는 굵직한 울림이 있다. 그것은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인생을 향한 위로와 치유이다. 그것도 웃음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어차피 내 인생에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잖아. 그저 순간 선택 마음 가는 대로, 오늘 누구를 만나 어떤 얘기를 할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잖아.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쌓여 있던 얘기. 이제는 당당하게 펼칠 거야. 내가 겁내지 않겠어. 내 힘으로 만들 거야. 나는 이겨낼 거야. 나에게 던져진 이 상황들을. 버텨내 살아갈 거야. 우리가 모두 인생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내려갈 수 있어. 우리가 모두 인생의 결정을 순간의 진심으로 정할 수 있어. 내 삶에서 오늘 처음 만나는 내 이야기." -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No.07 'Production no.01' 중에서

우리의 인생도 일종의 극이다. 주인공은 '나'이지만, 드라마나 영화처럼 멋들어진 배경이나 비범한 능력은 없다. 다른 작품처럼 영웅적인 주인공이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우리는 대체로 이 황당하고 어이없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좌충우돌로 구르고 충돌하고 실수한다. 대부분 작품은 그것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화려하고 멋진 마무리를 가지지만, 우리의 이 선택이 어떤 엔딩으로 귀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것들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정해진 것들이다. 다만, 내 손으로 정해서 바꿀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있을 뿐이고, 우리는 그 가운데 선택할 따름이다. 이 작품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채, 주요 변곡점에서 관객이 선택하듯이.

관객 각자의 인생처럼, 단 한 번으로 끝나는 <오첨뮤> 매번의 회차들. 공연 중간에 참사가 일어나고, 관객을 오히려 썰렁하게 만드는 애드리브가 튀어나와도 다시 할 기회는 없다. 배우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십분 이해가 된다. 우리 인생도 재연은 없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오늘 회차 다음에 내일의 회차가 있다거나, 재연이 있고 삼연이 있어서 같은 트랙을 더 잘 달릴 기회가 주어지는 게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이 작품이 빛나고 우리의 인생도 빛난다.

오늘 처음 만드는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지난 4월 21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열린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의 프레스콜 공연 이미지.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관객참여형 '즉흥' 뮤지컬로, 공연 초반 관객의 의견을 바탕으로 장르와 주인공, 주요 이야기를 정하는 작품이다. 오는 14일까지. 민준호·김태형, 박정표·홍우진, 이영미, 김슬기, 이정수, 정다희 등.

▲ 사람 낚는 어부와 물고기들연출도 배우도, 이렇게 어려울 줄 모르고 무작정 달려 들어 시작했다고 한다. 연습 과정에서 그리고 공연을 풀어가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프레스콜과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그들은 솔직하게 토로했다. 출연하는 사람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줄 수밖에 없는 형식의 작품이지만, 그만큼 위로 받고 웃으며 돌아가는 관객이 있다. 박수 받아 마땅하다.ⓒ 곽우신


"시작할 땐 죽이 될지 밥이 될지 몰라. 우리들도 관객도 엄청 불안했지. 오늘 만든 이 얘긴 다시 못 봐. 오늘 만든 이야기 잘 간직해. 우리도 꼭 기억할게요. 오늘 오신 여러분의 인생 어쩌면, 오늘 만든 이야기처럼 알 수 없어도. 어떻게든 흘러와 이 자리에서 모여, 바로바로 여기서 함께 만들어내지. 좀 이상하면 어때. 좀 황당하면 어때. 좋잖아. 다신 오지 않을 우리 인생처럼. 또 언젠가 만나게 되면 들려줘. 당신 이야기를 보여주세요. 오늘 공연보다 더 찬란히 빛나게 될, 오직 한 번 펼쳐질 우리 인생. 오직 한 번 펼쳐질 우리 인생." -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No.12 'Epilogue' 중에서

이상하고, 황당하고, 어설픈 우리들의 이야기가 모인다. 각자의 것을 조금씩 꺼내놓아 이 자리에 풀어낸다. 그 부족하고 어설픈 부분들이 모여서 가장 독특하고 고유한, 그래 아름다운 단 한 번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오첨뮤>는 비로소 여기에서 그 의미와 재미의 정점을 찍는다. 오늘 공연이 끝나고 나면 돌아오지 않기에 더 소중히 각자가 간직해야 할 것들. 거창한 무대도, 화려한 의상도 없지만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야기들. 마치 나처럼, 우리처럼, 우리의 인생처럼.

이런 작품을 만들어준 모든 스태프, 이 극을 이끌어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견뎌냈을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날그날의 편차가 있고, 완벽하지 않은 극이지만, 그렇기에 더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 우리 모두가 오늘이 처음 아닌가. 아무도 2017년 5월 10일을 살아보지 않았고, 2017년 5월 11일이라는 내일을 맞이할 우리도 다 처음이다. 오늘 처음 만드는 인생이기에, 모두가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충분히 멋지고 아름다울 수 있다.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처럼. <오첨뮤>를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이유이다.

오늘 처음 만드는 포스터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의 공연 포스터. 지난 4월 14일 개막하여 오는 14일 성황리에 폐막한다.

▲ 오늘 처음 만드는 포스터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의 공연 포스터. 지난 4월 14일 개막하여 오는 14일 성황리에 폐막한다. 남은 자리가 별로 없다. 아이엠컬처의 재연 의지는 있지만, 정작 고난의 행군을 지속한 배우들은 재연 의지가 희박하다. 지금 보지 않으면 영영 '못사'로 남을지 모른다!ⓒ (주)스토리피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시대, 윤동주가 남긴 한마디

[안 뻔한 티켓북]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 기념해 돌아온 <윤동주, 달을 쏘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시대죠."우리말로 수업을 하던 외솔 최현배 선생이 결국 끌려갔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어렵던 일제 치하 그 시절, 자신의 벗들인 강처중과 송몽규는 '총 대신 연필로' 거칠게 저항하며 싸우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윤동주는, 그것이 참 부끄러웠다. "이런 시국에, 선생님이 잡혀가고, 동료가 전쟁터로 끌려 나가는 이런 시국에, 한가로이 책에 기대는 제 모습이 창피하기만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제 자신이 한심하기만 합니다."이화여자전문학교에 다니던 이선화는 그런 윤동주에게 답을 한다. 시를 쓰라고, 시인임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이런 시대에도, 시가 필요하다고. 그 시가 우리를 이 시대와 함께하도록 묶어주는 밧줄이기에. "시를 써야죠. 우리말로 된 아름다운 시.""이 시대에 시라뇨. 아우성보다도 못한 시. 강아지의 신음보다도 더 조악한 시. 시라는 말, 우스워요. 아니, 어쩌면 난 세상을 향해 욕을 하고 싶은지도 몰라요. 거친 말들을 한바탕 쏟아낼 용기가 없어서, 아름다운 말들 속에 숨어있는지도 모르죠.""우린, 주문이 필요했는지도 몰라요. 이 시대에 우리를 붙잡아 줄 든든한 밧줄 같은, 시. 제겐 그게 동주씨의 시였어요. 시는 창피한 게 아니에요. 동주씨가 시인임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부끄러움의 시인 윤동주는 그렇게 탄생했다.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그는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재일조선인 학생들과 함께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다가, 그 아침을 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눈을 감기 직전, 그가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을 환상 속 동지들이 되물었다. 시가 무슨 소용이냐고, 시를 뭐 하러 쓰느냐고. 윤동주는 거칠게 대답한다. 시를 쓰겠다고, 자신은 시인이라며. 그 와중에 자신에게 용기를 줬던 이선화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그때 윤동주의 마음속에 들렸던 것은, 이선화와 함께 언젠가 올 세상을 그리며 불렀던 노래가 아니었을까."시, 밤마다 몇 번이고 읽었던 시. 메마른 이 세상 단비 같았던, 너의 시에 얼마나 고마웠는지. 시, 밤새워 몇 번이고 고쳐 쓴 시. 뉘우침 없는 세상에 실망하며 쓴 시. 바위 같은 고통, 지울 수 없어. 지우지 못해. 매일 시와 함께 시를 얘기하며, 숨 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나, 먼 훗날 자유로운 날이 온다면, 너와 함께 웃으며 숨 쉬며 살아가리. 그렇게 그 세상에 살고 싶다. 너와 시와 함께." -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No.06 '얼마나 좋을까' 중에서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때, 윤동주가 돌아왔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세상,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가 돌아왔다. 작년 삼연에 이어 벌써 네 번째이다(관련 기사: 달을 쏜다 나도, 스물아홉 윤동주처럼). 지난 21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네 번째 개막을 맞은 <윤동주, 달을 쏘다>는 오는 4월 2일, 언제나 서울예술단의 작품이 그렇듯 짧은 만남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윤동주, 달을 쏘다>는 장점이 많은 작품이다. 감정의 파고를 증폭시키는 절절한 음율, 여기에 서정적인 가사들이 잘 붙었다. 군데군데 서울예술단의 주특기인 군무도 도드라진다. '우리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투박하지 않게, 오히려 세련되게 시공간적 배경과 메시지를 버무렸다. 윤동주의 시를 가사로 삼아 노래하는 대신, 노래와 시를 분리시켜 배우의 감정에 따라 낭송하도록 한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십자가'나 '별 헤는 밤'을 읊는 부분은, 뮤지컬도 노래가 아닌 대사로 감동을 줄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이 극을 이끌어가는 박영수 배우의 역량도 빼놓을 수 없었다. 프레스콜 현장에서 스스로 인생 캐릭터로 꼽을 정도로, 박영수 배우와 극 중 인물 윤동주는 이제 분리하기 어렵게 됐다. 공연을 거듭할수록 더 탄탄해지는, 그의 말마따나 더 강하게 활시위를 겨누는 시인이 되고 있다. 시대에 대해 고뇌하고, 벗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갈등하고, 그 와중에 시를 놓지 않기 위해 절규하는 청춘을 특유의 넘버 소화력과 연기로 표현한다. 팬들 사이에서 흔히 '슈또풍'으로 불리는 박영수(윤동주)-김도빈(송몽규)-조풍래(강처중) 삼총사의 케미스트리는 아마 국내 공연계에서 대체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서울예술단에서 함께 해온 이들 중 예술단에서 나온 배우도 있고, 여전히 활동하는 배우도 있으나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호흡을 맞추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고민하는 청춘 그리고 어두운 시대에 분투했던 이들의 저항정신을 그렸다는 점에서 시국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많다. "교정의 지성은 아직 눈으로 덮여 있고"에서 소방 호스로 물을 틀어 학생들을 탄압하는 어느 대학교가, "교과서의 지식은 아직 어둠에 묻혀 있네"에서 국정교과서 논란을 떠올린다면 과한 해석일까. "너는 아느냐, 조선에는 언젠가부터 봄이 사라졌다는 것을"이라고 노래('사라진 봄')하는 <윤동주, 달을 쏘다>는 극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감동이 본래 크다. 계절적으로 그리고 시대적으로 새 봄을 맞이한 지금 여기의 대한민국과 맥락적으로 결합하며 그 감동은 배가된다.<윤동주, 달을 쏘다>는 이처럼 당시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아픔에 대처하기 위해 윤동주가 선택했던 방법을 옹호하고 있다. 이 부끄러움의 시인에게 더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위로한다.시를 쓴다는 것의 의미 "묻는 사람 하나 없어도, 자꾸 되풀이되는 말. 아픔을 배우고, 청춘을 바치고, 써내려간 시는 나에게 너에게 무엇인가. 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No.11 '시를 쓴다는 것' 중에서재일조선인 학생들끼리의 논쟁에서, 극 중 윤동주는 우리말로 된 문예지를 만들자고 한다. 문예지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모으고, 공감대를 넓히고, 그렇게 싸우기 위한 기반을 건설하고자 한다. 다른 학생들은 반발한다. 일제의 패망이 가시권에 들어섰고, 지금도 수많은 동포들이 전쟁터로 끌려가 목숨을 잃고 있는데 한가하게 문예지나 만들어서 무엇하느냐고. 그러나 시를 쓴다는 것의 의미를 자문하던 윤동주는, 그 의미를 찾았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시는 밧줄이다. 서로와 서로를 연대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밧줄.'지금 당장'을 바꾸기 위한 수단을 논하며 문화를 등한시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를 바꾸는 문화의 힘을 이야기하면서, 굳이 기동전이냐 진지전이냐의 전략적 논쟁은 필요 없다. 급진이냐 온건이냐의 지리한 구분도 관계없다. 사회의 변혁을 이끄는 데 문화는 언제나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문화는 힘이 세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다 중요하듯이, 문화 역시 이 사회에 다종다양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영역이다. 문화의 진보 없이는 시대의 변화를 담보할 수 없다는 걸 역사가 증명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이 문화를 조종하려고 한 건 그 때문이었다. 권력을 위한 도구로 문화를 종속시키고, 어떤 인물, 어떤 세력, 어떤 이데올로기를 찬양하도록 종용했다. 일제가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억압하고, 일본식 문화를 한반도에 심으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게 권력에 입맛에 따라서 문화는 검열을 당했고, 피폐해졌다. 유럽의 파시즘 정권도, 우리나라의 독재 정권도 마찬가지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특정 영화를 빌미로 기업에 외압을 행사하고, 때로는 직접 <환생경제> 같은 치졸하고도 악질적인 작품을 올리기도 한다.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억압에 맞서 분연히 일어서는 것 역시 문화이다. 문화를 아무리 권력이 순치하려고 해도, 그 안에 내재된 저항 정신을 쉬이 빼앗을 수 없다. 촛불의 바다가 광장에서 일렁일 때, 그 자리엔 언제나 문화가 함께 했다. 광화문 블랙텐트가 그러했고,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 배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시가 낭송되고, 노래가 울려 퍼지고, 공연이 올라왔다.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그곳에서 촛불을 들고, 저 빛의 파도 중 하나가 되어 함께 물결쳤다. 시대처럼 올 아침이 눈앞에 보이는 듯한 이 신새벽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건, 이 광장에 문화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를 쓴다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시를 쓰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윤동주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시를 남겼다.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시대임에도, 그는 열심히 시를 남긴다. 이 시들을 언젠가 자유롭게 노래할 날이 오리라 믿었기에. 지금 쓰는 시가 그 날을 앞당기는 밀알이 되리라 기대했기에. 윤동주 탄생 100주년인 지금, 여전히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시대, 윤동주의 시를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세상이 우리에게 건넨 거친 농담을 어떻게든 웃어 넘기려했던 젊은 날을, 한 줄 시로 담으려던 청년들의 잉크가 물들인 푸른 손을 누가 기억할까." -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No.09 '누가 기억할까' 중에서저 능선이 어스름하게 밝아온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려 하는 이 시점에, 아직 날이 바뀐 줄 모르고 여전히 하늘에 걸려 있는 허연 달이 있다. 차가운 빛을 잃었지만 미련 때문에 여전히 저 위에서 버티고 있는 달. 어두운 밤 동안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음에도 여전히 반성할 줄 모르는 저 새벽달. 광장에 태극기를 들고, 마이크 앞에서 온갖 흰소리를 쏟아내는 그들을 향해, 우리가 활을 겨눌 차례다."좀 더 탄탄한 갈대로 화살을 삼아서, 무사의 마음으로. 무사의 마음으로 달을 쏜다. 통쾌하다. 부서지는 저 달빛이. 우습구나 쪼개지는 저 그림자." -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No.21 '달을 쏘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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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