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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빠는딸>에서 여고생 딸 원도연 역의 배우 정소민이 13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아빠는딸>로 정소민은 상업영화로는 첫 주연 캐릭터에 도전했다. 고교생 원도연, 그리고 사고 이후 영혼이 뒤바뀌어 중년 가장 원상태의 모습을 함께 연기해야 했다. 3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는 내공이 필요한 역할.ⓒ 이정민


의외의 악바리. 조금이나마 정소민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 사이에서 나오는 평가의 일부다. 마냥 맑아 보이고, 대화 중에 생각을 거듭할 정도로 진지하기도 한 그에게서 근성을 엿보기란 어렵다. 다만 그가 쌓아온 필모그래피, 그리고 선택들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최근 개봉한 <아빠는 딸>에서 정소민은 실제 나이보다 10살 어린 고교생 원도연, 20살 많은 아빠 원상태를 연기했다. 사고로 두 사람의 영혼이 뒤바뀌는 일종의 '바디체인지' 설정으로 서로에 대해 소원했고, 벽을 쌓아온 부녀가 점차 마음을 돌려 이해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일본소설 <아빠와 딸의 7일간>을 원작으로 했다.

'아재'로 거듭나기

 영화 <아빠는 딸> 관련 이미지.

영화 <아빠는 딸> 포스터. 해당 이미지 촬영 때 정소민은 적극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메가박스(주)플러스엠

대본이 너무 재밌다가도 막상 첫 촬영이 다가오면서 막막하게 느껴졌을 정도로 중년 아저씨 역할은 정소민에게 큰 부담이었다. 촬영장에서 면밀히 윤제문의 말투나 걸음걸이 등을 관찰했지만,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감정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실제 아재들과 깊이 얘기해보기로 했고, 연출을 맡은 김형협 감독 등과 많은 대화를 하며 캐릭터를 잡아갔다.

"2년 전이라 정확히 어떤 대화를 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촬영 내내 얘기하며 찍었다. 시나리오에서 바뀐 부분도 많다. 하다 보니 또 다른 감정이 생겨 이런저런 제안을 했는데 받아주셨다. 예능에서도 얘기했지만 실제로 아빠가 즐겨 입는 파자마 등을 가져와 현장에서 입기도 했다. 감독님이 여러 영화도 추천해주셨는데 <하프 웨이>라는 일본영화가 가장 기억난다. 학교 안 정서를 위한 거였는데 알고 보니 무 각본이더라. 어쩐지 캐릭터들이 다들 너무 살아있다 싶었다.

아무리 아빠를 이해한다 해도 그건 딸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이잖나. 스스로 상태로서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 내면이 무겁게 다가왔다. 가장이자 만년 과장으로 굉장히 책임이 크게 느껴졌다. 너무 외로울 것 같고, 허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회사에선 자기보다 어린 상사에게 구박받고, 집에선 딸에게 무시 받고 참 삶이 지치겠다 싶었다. 그 감정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상태와 도연을 오고 가야 했던 정소민은 평소 작품에 들어가기 전 진행하는 일기 쓰기를 시도했다. "실제 나와 다른 점을 파악하려 일기를 써보긴 하는데 이번 캐릭터가 나와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캐릭터였다"고 그가 고백했다. "같은 사람이고 한국 국적인 걸 빼고 나와 모든 게 달랐다"며 정소민은 "앞으로도 이런 캐릭터는 만나기 힘들 것 같다. 때로는 너무 생각하지 않고 소꿉놀이하듯 접근할 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도전의 이유

 영화 <아빠는딸>에서 여고생 딸 원도연 역의 배우 정소민이 13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코미디 연기를 연달아 했지만, 정작 정소민은 코미디 연기에서 어려움을 느꼈다. 일종의 도전이었다. 하지만 정면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이정민


2년 전 <아빠는 딸> 촬영 당시 정소민은 <마음의 소리> 속 애봉이 캐릭터로 사랑받고 있었다. 둘 다 코미디 장르다. 과거 여러 인터뷰에서 "코미디 연기가 가장 어렵고 부담스럽다"고 말한 바 있는데 굳이 최근작을 연달아 코미디로 택했다. 이 지점에서 정소민의 승부사 기질이 빛난다. "어떤 전투적 느낌에서의 승부가 아니라 좀 더 멀리 보려고 하는 차원이었다"고 그가 설명을 이었다.

"조금 더 잘하는 걸 어릴 때 계속하다 보면 나중엔 더 도전하기 힘들 것 같았다. 겁이 더 날 수도 있고. 그래서 지금 좀 어렵고 결과가 뒤떨어질지언정 여러 시도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때 그 시기에 평소 안 해봤던 걸 시도했다. 잘 못 하는 것에 부딪힌 건데, 수월함을 떠나서 하다 보니 그런 캐릭터를 이어서 하게 됐다. 그 시작이 <디데이>다. 의사도 의사였지만 내겐 털털한 캐릭터의 첫 시작이었다.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어려웠던 게 코미디였다. 코미디 연기를 잘하시는 선배들을 보면 타이밍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참 존경스럽더라. 막상 내가 했을 땐 자유롭게 가지고 놀 근육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미 시나리오가 재밌게 나왔으니 거기에 충실 하자였다."

이 모든 말의 전제는 기회였다. 정소민은 "일단 내게 기회가 있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다"며 "뭔가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매번 감사한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진짜 근성

 영화 <아빠는딸>에서 여고생 딸 원도연 역의 배우 정소민이 13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배우가 됐다. 정소민은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정민


좀 더 이야기를 과거로 돌렸다. 고등학생 때 무용을 따로 배웠을 정도로 이미 연기와 예술 쪽에 꽂혀 있었다. 엄격한 아버지가 심하게 반대를 해서 "성적은 유지하면서 무용도 하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 실제로 정소민은 약속을 지켰고, 뒤이어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싶다고 말하며 한 번 더 부녀 사이에 냉기류가 흐르기도 했다. "왜 그렇게 반대하셨을까" 당시를 회상하면서도 정소민은 "지금은 누구보다도 제 활동에 관심이 많다"며 웃어 보였다.

"엄마는 뭘 하든 응원하는 쪽이었는데 아빠는 제가 평범하게 공부하길 바랐다. 크게 사고 친 적도 없었고, 사실 좀 귀찮아하는 성격이라 꾸미는 것도 잘 못 하긴 했지만 (웃음) 그렇게 반대하셨다. 집안에 예술계통 일을 하는 분이 없어서 먼 세계로 느끼신 것 같다. 연기하겠다고 말했을 땐 확신에 차 있었다. 처음엔 무용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접했는데 너무 매력 있더라. 입시 준비하는 친구들이 열정에 차서 하는 모습에 매료됐다.

그때 한창 꿈을 많이 꿨다. 겁도 없었다. 무용이나 연기를 한다면서도 나중에 먹고 살 걱정은 안 한 걸 보면(웃음). 하고 싶은 걸 쫓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연기과 입시에 떨어졌으면 무용과를 지원하려 했다. 다른 학교는 아예 시험을 안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했다. "아직 연기 외엔 직업을 바꿔야 할 정도로 매력적인 일을 만나지 못했다"며 정소민은 선택에 후회나 아쉬움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아빠는 딸> 홍보와 함께 정소민은 현재 KBS 2TV 주말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로 한창 달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도 아버지 이야기다. 극 중 인턴사원 변미영 역을 맡은 정소민은 "청춘들이 좀 더 당당해졌으면 좋겠다"며 응원의 마음도 보탰다.

"작품을 통해 저 역시 조금씩 생각이 넓어지고 쌓이는 것 같다. 굳이 벗어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캐릭터에서 배워서 좋은 변화가 생길 때가 있다. <아빠는 딸> 아니었으면 내가 언제 가장으로서의 마음을 알 수 있었을까. 그래서 지금 하는 작품이 내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영화 <아빠는딸>에서 여고생 딸 원도연 역의 배우 정소민이 13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딸의 연기자 생활을 극구 반대했던 정소민의 부친은 이제 엄마보다 더 열렬한 팬이 됐다. "<아빠는 딸> 개봉일과 상영관 현황을 가장 먼저 파악하고 계셨다"며 정소민이 훈훈한 미담을 전했다.ⓒ 이정민


정소민, 이건 몰랐지?
2010년 드라마 <나쁜 남자>로 데뷔하자마자 지금의 이름을 썼기에 본명이 따로 있는 걸 아는 이가 드물다. 본명은 김윤지, 지금의 이름은 작명소에서 받은 자음을 가지고 직접 본인이 지은 예명이다. "일상에서의 나와 일할 때 나를 분리하고픈 생각이었는데 잘한 것 같다"며 그가 이름의 비하인드를 전했다. 한자 이름 '庭沼珉' 역시 본인이 붙인 것.


"연예인따위가..." 전인권이 세월호 악플에 대처하는 법

[inter:view] 단독 콘서트 <새로운 꿈...> 앞둔 전인권, 거침 없이 쏟아내다

'록의 전설' 전인권이 노래와 인생, 시대, 악플, 미술, 꿈 등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오는 5월 6일과 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란 이름의 단독 콘서트를 앞두고 18일 가진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다.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전인권은 어떠한 질문이 와도 계산 없이 대답하는 솔직한 모습을 보였다. 시종일관 솔직했고, 과연 '전인권답다'는 인상을 주었다. 솔로로 활동한 지 올해로 30주년이 됐다고 하니 이번 공연도, 인터뷰도 꽤 의미 있는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촛불집회에서 노래하며 무슨 생각했나 "화창한 봄날 만나 뵙게 돼서 반가워요."전인권은 기자들에게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살갑지 않은데도 인간미가 뚝뚝 떨어지는 독특한 화법이었다. 다른 곳도 많지만 왜 '세종문화회관'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게 됐는지, 그 이유를 묻는 첫 질문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촛불 집회 때 일이 잘 마무리되면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게 돼서 참 좋고, 여러 문제가 많지만, 예술 분야에 눈을 많이 돌려주셨으면 좋겠다." 이 답변 후 그는 잠시 텀을 갖고는 "공연에 많이 오시란 이야기예요"라고 직설적(?) 홍보도 잊지 않았다.전인권은 지난해 세 차례 광장에 올라 촛불을 든 시민들과 마음을 모았다. '걱정 말아요 그대', '행진', '애국가' 등을 불렀고 지난 15일에는 제주도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3주기 무대에서도 노래했다. 자신의 단독 공연을 앞둔 그에게 공연명에 관해 물었다. 전인권은 "작년 11월인가 박원순 시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며 운을 뗐다. 이어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이 문구를 (시청광장 현수막에) 써도 되냐고 물으시기에 된다고 했고, 그 후 2~3개월 붙여놓았더라. 좋은 말인가 보다 해서 콘서트 명으로 했다"고 설명했다.'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란 가사는 전인권이 작사 작곡한 노래 '걱정말아요 그대' 안에 담긴 가사다. 그가 촛불집회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불렀고 시민들을 위로했다. 촛불 앞에서 이 곡을 불렀을 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다 같이 노래했는데 '이 노래가 좋은 노래구나!' 느꼈어요. 다른 공연과는 다르게 아주 큰 감동이 왔어요. 사람들의 마음이 허전하고 비어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굉장히 뭉클했죠. 세월호 유족들이 이야기하고 나서 내가 무대에 올랐는데 마음이 아팠고 어떻게든지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 부모님들은 맥도날드 햄버거만 봐도 억장이 무너지잖아요. 그들은 무얼 봐도 잊힐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용서'라는 마음이 들어가면 그들이 바다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고, 마음이 조금은 편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지난 15일 제주도에서 세월호 추모 공연을 한 전인권은 "거기(제주도)에 (정상적으로) 도착했다면 아이들이 어땠을까 생각했다"며 "제일 안타까운 게…. 살릴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네가 뭔데 용서를 하라 마냐 하느냐'는 악플에는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추가 질문. 전인권은 이렇게 답했다."악플 하면 전인권이에요. 악플 거의 안 보는데, 잘못 걸리면 나한테 죽어요. 연예인 따위가…. 이런 말 하면 저도 대처해요. 대신에 재미있게요."정신 차렸다 고백... "난 세계적 가수가 될 거예요" "이제부터 내 앨범은 다를 거예요. 정신 차리는 데 5년 걸리더라고요. 맞아요, 5년 됐어요. 진실하게 살고, 진실하게 음악을 하고 있어요."전인권은 "예전에는 연습을 며칠하고 며칠 안 하는 식으로 하다말다 해서 발전이 없었다"며 "하지만 근래 3년 동안은 매일 연습해서 발전했고 계속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 오후 8시에 자고 오전 3시에 깨서 계속 연습했는데 지금은 좀 더 일찍 자고 싶어서 오후 6시에 자고 밤 12시나 1시에 깬다"고 덧붙였다."기능적인 것, 실력 이런 건 오늘 연습하면 내일 그대로 나타나요. KBS 가서 <스케치북>이나 <콘서트 7080>에 물어봐요. 내 목소리가 예전보다 파워가 넘친다고 해요. 연습량이 많아지니까 그런 거예요."5년 만에 '정신 차린' 전인권은 세계 진출을 할 것이고, 세계적인 가수가 될 것이란 포부를 밝혔다. 촛불 무대에 서면서 음악적 방향이 변한 게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방향은 하다 보면 생기는 건데 나이 생각 안 하고 세계적인 가수가 되어보자 (결심)했다"며 "나도 세계적인 사람들과 겨뤄 생각이 꿀리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집에 새로운 연습실을 만들었다"고 밝히며 음악 활동에 몰두하는 근황을 살짝 털어놓기도 했다.준비하고 있는 새 앨범을 묻는 말에도 답했다. "사운드적으로 단순해졌다"며 "영화의 스토리처럼 가사도 거기서 거기인데, 리듬과 가사가 일치되고 듣기에 편안한, 실력이 쌓인 음악이 나올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애초 6월 15일 발매로 약속됐는데 일정을 좀 미뤄보려 한다고도 했다."세계진출을 할 거예요, 분명히. 그러고 나서 미술을 할 거예요. 내가 데생으로는 져본 적이 없어요. 내가 왜 평소에 자신감이 있고 내가 왜 희망적일까를 생각해봤는데 그건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는 자신감이었어요. 50평쯤 되는 건물을 마련해 벽화를 그리고 싶어요. 손녀 둘을 위해서요. 옛날에도 벽화를 그린 적이 있어요."들국화 재결합, 그리고 바라는 지도자상 2013년 발표한 앨범 <들국화>는 들국화의 마지막 앨범이 됐다. 멤버 주찬권의 갑작스러운 사망 때문이었다. 그 후 전인권은 2014년 새롭게 전인권밴드를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고, 이날 인터뷰에서 들국화 재결합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확실하게 어떻게 되겠단 건 모르겠어요. 만약에 최성원이 난처한 일에 빠져있고 공연이 도움된다면 들국화로 뭉치지 않더라도 우리 밴드(전인권밴드)와 어울려서 할 수도 있는 거죠. 옛날 한 동지 같으니까요."불화설이 불거진 최성원과 연락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솔직하게 답했다. "주찬권의 죽음 이후에는 최성원과 연락하지 않아요. 싸울 것 같아서."전인권은 자신의 음악의 특징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그는 "'블로윈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처럼 밥 딜런의 가사는 시적이고 교육적"이라며 "나 같은 경우는 대중의 애환을 노래한다. 무대에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중의 애환을 노래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에게, 때가 때인 만큼 '바라는 지도자상'에 관해 물었다. 역시, 주저 없이 내뱉는 말투로 대답했다."나는 깨끗하고 남의 말 많이 안 하는 사람이 좋아요. 그런 지도자를 사람들은 닮아가게 되거든요. 표상이 될 수 있으니까요. 머리 쓰는 사람들은 재미가 없어요. 그냥 깨끗하게 자기 소신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들이 좋아요."허를 찌른 한 마디, 다들 그렇게 살아 30년 동안의 가수생활을 돌아보면서 전인권은 어떤 생각을 할까."내가 정신요양원에서 1년 4개월 17일을 생활했어요. 그때 죽고 싶었는데, 지금 죽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까지 내가 5년 만에 한 번씩 히트곡을 냈는데 그게 부끄럽지 않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 거예요. 근데 죽기가 어렵더라고요."지금까지 히트곡 중 가장 아끼는 한 곡만 뽑아달라는 질문에는 "'그것만이 내 세상', '행진'을 불렀을 때 많은 음악동료가 저렇게 큰 히트곡을 냈는데 앞으로 어떻게 이어갈 것이냐는 걱정을 많이 했다"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 "'사랑한 후에', '돌고 돌고 돌고'가 이어 나와서 큰 히트를 했고 그다음 곡들은 (음악적으로) 안 좋았다"고 설명했다. "그 후에 내놓은 '걱정말아요 그대'가 히트했다"며 말을 끝내는 그에게, 그래서 가장 아끼는 한 곡은 무엇이냐 재차 질문이 던져졌고 그가 답했다."제 노래 중에 '걷고 걷고'를 제가 참 좋아해요. 힘들 때 의지가 됐던 노래예요."그러면서 공연에서 있었던 일화도 더불어 들려줬다."공연장에서 20대 남학생이 벌떡 일어나서 나에게 묻더라고요. '힘든 거 어떻게 이겨낼 수 있어요?' 하고. 그래서 내가 말했어요. '공연장에 있는 이 사람들 다 고생하고 있어요. 감수하고 사세요.' 사람들이 박수를 쳤어요. 힘들어도 감수하고 걷고, 걷고 걷다 보면 이겨낼 수 있다고 했어요."

"노무현은 사랑해서, 세월호는 아파서" 조관우,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는 이유

[inter:view] 조관우에게 물었다... 노무현, 세월호 그리고 대선

'늪', 팔세토 창법, 밀리언셀러, 명창 가문.가수 조관우를 설명하는 단어들이다. 지난 1994년 데뷔한 조관우는 '늪'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이후 '님은 먼곳에', '꽃밭에서' 등 히트곡을 선보이며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하지만 그를 설명하는 중요한 수식어가 더 있다.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는' 조관우. 그는 성수대교 붕괴 아픔을 노래한 '실락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헌정 곡 '그가 그립다', 세월호 참사를 애통해하는 추모곡 '풍등'을 발표하며 동시대의 슬픔에 마음을 더해왔다. 추모공연 무대에도 꾸준히 섰다.그는 지금 새 앨범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올해 발매될 이 앨범은 무려 14년 만에 선보이는 정규앨범이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역삼동 그의 소속사 녹음실에서 조관우를 만났다. 인터뷰를 요청할 때 이미 "앨범에 관한 질문보단 세월호와 시대에 관한 질문이 더 많을 것"이라고 예고했고, 그는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했다. 세월호 3주기를 열흘 앞둔 날이었다. TV에는 3년 만에 녹슨 몸체를 드러낸 세월호 뉴스가 이어졌고, 조관우는 담담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놨다. 인터뷰하면서 그가 새 앨범에도 세월호 헌정 곡을 넣을 계획이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 준비하고 있는 앨범에 대해 궁금하다."지금 작업 마무리 단계이고 14곡 정도 실릴 것 같다. 젊은 작곡가들과 많이 작업했다. 옛날엔 저에게 맞춘 노래를 달라고 했지만 이젠 젊은 작곡가들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곡을 써달라고 말한다. 앨범 전체에서 젊은 분위기가 날 것이다."- 인터뷰 전 소속사 대표님께 듣기로, 조관우씨 의지로 'Pray for You'라는 제목의 세월호 헌정 곡을 준비했지만, 앨범에 담을지 고민 중이라고 하더라."세월호를 다시 한번 기억하는 노래 'Pray for You(프레이 포 유)'를 완성했는데, 앨범이 하반기쯤 발표될 예정이라 (시기상 추억팔이나 상업적으로 비칠)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서 수록 여부를 고민 중이다. 조심스럽지만 제 입장은, 내년이 되고 내후년이 되고 10년이 흘러도 이 사건에 대해서 기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 노래를 통해서 기억되든 어떤 식이든.산 사람은 살자, 잊을 건 잊자고 하는데 절대 산 사람이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기억 속에서 그 일을 지워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원히 기억돼야 한다. 뒤로 숨는 어른들의 비겁함도 기억돼야 한다. 책임도 못 지는 이런 불행이 다시 없었으면 하는 거다. 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지느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그것이 안 됐으니 지금 시대의 가수로서 그것이 오래 기억되도록 알리고 싶다. 'Pray for You'는 우리 기억 속에서 그들을 지우지 말자는 취지의 노래고, 슬픔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그 친구들이 하늘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은 곡이다." (그는 녹음실에서 'Pray for You'를 들려줬는데, 따뜻하고 아름다운 느낌의 곡이었다. 미발표로 남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호 추모 노래를 계속 해왔다."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해에 '풍등'을 발표했고, 12월 31일에 광화문 광장에서 노래했다. 그날 가을옷을 입고 나갔는데 영하 10도가 넘는 날씨에 호흡이 안 되더라. 아이들이 추운 곳에 갇혀 있는 것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유가족이 안 되어보면, 당사자가 아니면,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 같다. 이번 음반에서 슬픈 감정을 끌어올리는 노래들을 부를 때 세월호가 계속 떠올랐다. 앨범에 실릴 'Beautiful(뷰티풀)'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작사가는 어떤 의도로 썼는지 모르겠지만, 이 노래를 부를 때 갇혀 있던 아이들이 떠올랐고 내게는 이 노래가 더 세월호 추모곡처럼 여겨진다. (그는 'Beautiful'도 들려줬다) - 지난달 16일 대전 예술의전당에서 세월호 참사 3주기 추모공연 <기억> 무대에 섰다. 공연은 어땠나."저도 울고 유가족도 울었다. 흐느끼지 않고 우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노래하는데 턱밑으로 눈물이 그냥 흐르더라. 유가족분이 앞에 다 앉아 계시고, 제가 '풍등'을 부르는데 저를 한 분도 보시지 않더라.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 숙이고 우셨는데 제가 부르면서도 아픈데 아래서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흐르더라.이날 유가족합창단도 노래했는데 모든 관객이 기립했다. 그때 가슴이 너무 뭉클했다. 무대 뒤 유가족분들 계신 대기실로 갔는데, '조관우씨가 왔다'며 가족들이 너무 해맑게 웃으시며 반가워하셨다. 사진도 찍자 하시고 웃으시면서 대해주시는데 그게 더 슬프게 느껴지더라. 12월 31일 노래할 때도 난로 옆의 자리를 비켜주시던 생각이 났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공연도 계속했다."정치적 색깔은 전혀 없다. 그저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한다. 권좌에 계시면서도 자신이 높은 자리에 있다고 표시낸 분이 아니다. 아픈 사람들 위해서 소리 내주셨고, 굉장히 정의로웠던 분이다. 솔직하신 것 같고. 노 대통령이 군대 고참을 발견하고 '형님'하시며 다가가더라. 권좌를 떠나 형님한테 형님이라 부르고, 고개 숙여서 먼저 인사하실 줄 알던 분이다.묘 만들어졌을 때도 스스로 간 적이 있는데, 저는 민간인인데도 노사모 분들께서 띠를 풀어주시면서 들어가게 해주시더라. 그때 정치인들과 함께 국화도 헌화했던 기억이 난다. 추모 공연했을 때, 리허설이 끝나고 공연 전에 권양숙 여사님이 사가로 직접 초대해주셔서 가기도 했다. 여사님이 노 대통령께서 앉으셨던 자리에 대통령께서 직접 재배한 쌀을 두셨더라.저는 정치색을 띠고 싶지도 않고, 그냥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한다. 옆집 사는 형님 같다. 내게 노 대통령 헌정 곡인 '그가 그립다'란 곡이 왔을 때도 저는 두려울 게 없었다. 사랑 앞에 두려운 게 어디 있겠나. 블랙리스트니 뭐니, 그런 게 뭐가 있겠나. 하고 싶어서 한 것일 뿐이다."- 곧 대선이다. 마음속에 품은 대통령상은 어떤 모습인가."정의롭고 솔직하고, 고개 숙일 줄 아는 그런 분. 쥐어짜지 않는 울음을 우는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눈물도 진실 돼야 하잖나. 저도 억지로 울어도 봤고, 세월호 추모공연에서 진짜 눈물도 흘려봐서 안다. 그리고 귀를 여는 사람,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자서전에도 나오지만 자기가 잘 몰라서 못 했던 것들에 대한 사과도 쓰시잖아. 그런 대통령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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