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늪', 팔세토 창법, 밀리언셀러, 명창 가문.

가수 조관우를 설명하는 단어들이다. 지난 1994년 데뷔한 조관우는 '늪'으로 큰 인기를 얻었고 이후 '님은 먼곳에', '꽃밭에서' 등 히트곡을 선보이며 꾸준히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하지만 그를 설명하는 중요한 수식어가 더 있다.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는' 조관우. 그는 성수대교 붕괴 아픔을 노래한 '실락원',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헌정 곡 '그가 그립다', 세월호 참사를 애통해하는 추모곡 '풍등'을 발표하며 동시대의 슬픔에 마음을 더해왔다. 추모공연 무대에도 꾸준히 섰다.

그는 지금 새 앨범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다. 올해 발매될 이 앨범은 무려 14년 만에 선보이는 정규앨범이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역삼동 그의 소속사 녹음실에서 조관우를 만났다. 인터뷰를 요청할 때 이미 "앨범에 관한 질문보단 세월호와 시대에 관한 질문이 더 많을 것"이라고 예고했고, 그는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했다. 세월호 3주기를 열흘 앞둔 날이었다. TV에는 3년 만에 녹슨 몸체를 드러낸 세월호 뉴스가 이어졌고, 조관우는 담담하고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놨다. 인터뷰하면서 그가 새 앨범에도 세월호 헌정 곡을 넣을 계획이었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조관우 지난 7일 오후 서울 역삼동 제이컴 사무실에서 조관우와 인터뷰를 나눴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역삼동 제이컴 사무실에서 가수 조관우와 인터뷰를 나눴다.ⓒ 제이컴 엔터테인먼트


- 준비하고 있는 앨범에 대해 궁금하다.
"지금 작업 마무리 단계이고 14곡 정도 실릴 것 같다. 젊은 작곡가들과 많이 작업했다. 옛날엔 저에게 맞춘 노래를 달라고 했지만 이젠 젊은 작곡가들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곡을 써달라고 말한다. 앨범 전체에서 젊은 분위기가 날 것이다."

- 인터뷰 전 소속사 대표님께 듣기로, 조관우씨 의지로 'Pray for You'라는 제목의 세월호 헌정 곡을 준비했지만, 앨범에 담을지 고민 중이라고 하더라.
"세월호를 다시 한번 기억하는 노래 'Pray for You(프레이 포 유)'를 완성했는데, 앨범이 하반기쯤 발표될 예정이라 (시기상 추억팔이나 상업적으로 비칠)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서 수록 여부를 고민 중이다. 조심스럽지만 제 입장은, 내년이 되고 내후년이 되고 10년이 흘러도 이 사건에 대해서 기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 노래를 통해서 기억되든 어떤 식이든.

산 사람은 살자, 잊을 건 잊자고 하는데 절대 산 사람이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기억 속에서 그 일을 지워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원히 기억돼야 한다. 뒤로 숨는 어른들의 비겁함도 기억돼야 한다. 책임도 못 지는 이런 불행이 다시 없었으면 하는 거다. 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지느냐가 중요한 문제인데 그것이 안 됐으니 지금 시대의 가수로서 그것이 오래 기억되도록 알리고 싶다. 'Pray for You'는 우리 기억 속에서 그들을 지우지 말자는 취지의 노래고, 슬픔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그 친구들이 하늘에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은 곡이다." (그는 녹음실에서 'Pray for You'를 들려줬는데, 따뜻하고 아름다운 느낌의 곡이었다. 미발표로 남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세월호 추모 노래를 계속 해왔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해에 '풍등'을 발표했고, 12월 31일에 광화문 광장에서 노래했다. 그날 가을옷을 입고 나갔는데 영하 10도가 넘는 날씨에 호흡이 안 되더라. 아이들이 추운 곳에 갇혀 있는 것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유가족이 안 되어보면, 당사자가 아니면,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 같다. 이번 음반에서 슬픈 감정을 끌어올리는 노래들을 부를 때 세월호가 계속 떠올랐다. 앨범에 실릴 'Beautiful(뷰티풀)'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작사가는 어떤 의도로 썼는지 모르겠지만, 이 노래를 부를 때 갇혀 있던 아이들이 떠올랐고 내게는 이 노래가 더 세월호 추모곡처럼 여겨진다. (그는 'Beautiful'도 들려줬다)

조관우 지난 7일 오후 서울 역삼동 제이컴 사무실에서 조관우와 인터뷰를 나눴다.

조관우는 세월호 추모공연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무대 위에서 그리고 무대 아래에서 유가족을 위로했다.ⓒ 제이컴 엔터테인먼트


- 지난달 16일 대전 예술의전당에서 세월호 참사 3주기 추모공연 <기억> 무대에 섰다. 공연은 어땠나.
"저도 울고 유가족도 울었다. 흐느끼지 않고 우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노래하는데 턱밑으로 눈물이 그냥 흐르더라. 유가족분이 앞에 다 앉아 계시고, 제가 '풍등'을 부르는데 저를 한 분도 보시지 않더라.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 숙이고 우셨는데 제가 부르면서도 아픈데 아래서 얼마나 아플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흐르더라.

이날 유가족합창단도 노래했는데 모든 관객이 기립했다. 그때 가슴이 너무 뭉클했다. 무대 뒤 유가족분들 계신 대기실로 갔는데, '조관우씨가 왔다'며 가족들이 너무 해맑게 웃으시며 반가워하셨다. 사진도 찍자 하시고 웃으시면서 대해주시는데 그게 더 슬프게 느껴지더라. 12월 31일 노래할 때도 난로 옆의 자리를 비켜주시던 생각이 났다."

조관우 가수 조관우가 지난달 16일 대전 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3주기 추모공연 <기억>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가수 조관우가 지난달 16일 대전 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3주기 추모공연 <기억>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 제이컴엔터테인먼트


조관우, 노무현 대통령 추모제 공연 19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년 추모 서울문화제'에서 가수 조관우가 공연을 하고 있다.

지난 2013년 5월 19일, '노무현 대통령 서거 4주년 추모 서울문화제'에서 공연한 조관우.ⓒ 권우성


-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공연도 계속했다.
"정치적 색깔은 전혀 없다. 그저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한다. 권좌에 계시면서도 자신이 높은 자리에 있다고 표시낸 분이 아니다. 아픈 사람들 위해서 소리 내주셨고, 굉장히 정의로웠던 분이다. 솔직하신 것 같고. 노 대통령이 군대 고참을 발견하고 '형님'하시며 다가가더라. 권좌를 떠나 형님한테 형님이라 부르고, 고개 숙여서 먼저 인사하실 줄 알던 분이다.

묘 만들어졌을 때도 스스로 간 적이 있는데, 저는 민간인인데도 노사모 분들께서 띠를 풀어주시면서 들어가게 해주시더라. 그때 정치인들과 함께 국화도 헌화했던 기억이 난다. 추모 공연했을 때, 리허설이 끝나고 공연 전에 권양숙 여사님이 사가로 직접 초대해주셔서 가기도 했다. 여사님이 노 대통령께서 앉으셨던 자리에 대통령께서 직접 재배한 쌀을 두셨더라.

저는 정치색을 띠고 싶지도 않고, 그냥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한다. 옆집 사는 형님 같다. 내게 노 대통령 헌정 곡인 '그가 그립다'란 곡이 왔을 때도 저는 두려울 게 없었다. 사랑 앞에 두려운 게 어디 있겠나. 블랙리스트니 뭐니, 그런 게 뭐가 있겠나. 하고 싶어서 한 것일 뿐이다."

- 곧 대선이다. 마음속에 품은 대통령상은 어떤 모습인가.
"정의롭고 솔직하고, 고개 숙일 줄 아는 그런 분. 쥐어짜지 않는 울음을 우는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눈물도 진실 돼야 하잖나. 저도 억지로 울어도 봤고, 세월호 추모공연에서 진짜 눈물도 흘려봐서 안다. 그리고 귀를 여는 사람,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노무현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 자서전에도 나오지만 자기가 잘 몰라서 못 했던 것들에 대한 사과도 쓰시잖아. 그런 대통령을 기다린다."


배우 정소민, 영화 촬영장에서 굳이 일기를 쓰는 이유

[inter:view] <아빠는 딸>에서 엿보인 승부사 기질... 꿈을 쫓아온 결과는?

의외의 악바리. 조금이나마 정소민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 사이에서 나오는 평가의 일부다. 마냥 맑아 보이고, 대화 중에 생각을 거듭할 정도로 진지하기도 한 그에게서 근성을 엿보기란 어렵다. 다만 그가 쌓아온 필모그래피, 그리고 선택들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최근 개봉한 <아빠는 딸>에서 정소민은 실제 나이보다 10살 어린 고교생 원도연, 20살 많은 아빠 원상태를 연기했다. 사고로 두 사람의 영혼이 뒤바뀌는 일종의 '바디체인지' 설정으로 서로에 대해 소원했고, 벽을 쌓아온 부녀가 점차 마음을 돌려 이해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일본소설 <아빠와 딸의 7일간>을 원작으로 했다.'아재'로 거듭나기 대본이 너무 재밌다가도 막상 첫 촬영이 다가오면서 막막하게 느껴졌을 정도로 중년 아저씨 역할은 정소민에게 큰 부담이었다. 촬영장에서 면밀히 윤제문의 말투나 걸음걸이 등을 관찰했지만,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감정은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실제 아재들과 깊이 얘기해보기로 했고, 연출을 맡은 김형협 감독 등과 많은 대화를 하며 캐릭터를 잡아갔다."2년 전이라 정확히 어떤 대화를 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촬영 내내 얘기하며 찍었다. 시나리오에서 바뀐 부분도 많다. 하다 보니 또 다른 감정이 생겨 이런저런 제안을 했는데 받아주셨다. 예능에서도 얘기했지만 실제로 아빠가 즐겨 입는 파자마 등을 가져와 현장에서 입기도 했다. 감독님이 여러 영화도 추천해주셨는데 <하프 웨이>라는 일본영화가 가장 기억난다. 학교 안 정서를 위한 거였는데 알고 보니 무 각본이더라. 어쩐지 캐릭터들이 다들 너무 살아있다 싶었다.아무리 아빠를 이해한다 해도 그건 딸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이잖나. 스스로 상태로서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 내면이 무겁게 다가왔다. 가장이자 만년 과장으로 굉장히 책임이 크게 느껴졌다. 너무 외로울 것 같고, 허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회사에선 자기보다 어린 상사에게 구박받고, 집에선 딸에게 무시 받고 참 삶이 지치겠다 싶었다. 그 감정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상태와 도연을 오고 가야 했던 정소민은 평소 작품에 들어가기 전 진행하는 일기 쓰기를 시도했다. "실제 나와 다른 점을 파악하려 일기를 써보긴 하는데 이번 캐릭터가 나와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캐릭터였다"고 그가 고백했다. "같은 사람이고 한국 국적인 걸 빼고 나와 모든 게 달랐다"며 정소민은 "앞으로도 이런 캐릭터는 만나기 힘들 것 같다. 때로는 너무 생각하지 않고 소꿉놀이하듯 접근할 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도전의 이유 2년 전 <아빠는 딸> 촬영 당시 정소민은 <마음의 소리> 속 애봉이 캐릭터로 사랑받고 있었다. 둘 다 코미디 장르다. 과거 여러 인터뷰에서 "코미디 연기가 가장 어렵고 부담스럽다"고 말한 바 있는데 굳이 최근작을 연달아 코미디로 택했다. 이 지점에서 정소민의 승부사 기질이 빛난다. "어떤 전투적 느낌에서의 승부가 아니라 좀 더 멀리 보려고 하는 차원이었다"고 그가 설명을 이었다."조금 더 잘하는 걸 어릴 때 계속하다 보면 나중엔 더 도전하기 힘들 것 같았다. 겁이 더 날 수도 있고. 그래서 지금 좀 어렵고 결과가 뒤떨어질지언정 여러 시도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때 그 시기에 평소 안 해봤던 걸 시도했다. 잘 못 하는 것에 부딪힌 건데, 수월함을 떠나서 하다 보니 그런 캐릭터를 이어서 하게 됐다. 그 시작이 <디데이>다. 의사도 의사였지만 내겐 털털한 캐릭터의 첫 시작이었다.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 어려웠던 게 코미디였다. 코미디 연기를 잘하시는 선배들을 보면 타이밍을 가지고 노는 모습이 참 존경스럽더라. 막상 내가 했을 땐 자유롭게 가지고 놀 근육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미 시나리오가 재밌게 나왔으니 거기에 충실 하자였다." 이 모든 말의 전제는 기회였다. 정소민은 "일단 내게 기회가 있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다"며 "뭔가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매번 감사한 마음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진짜 근성 좀 더 이야기를 과거로 돌렸다. 고등학생 때 무용을 따로 배웠을 정도로 이미 연기와 예술 쪽에 꽂혀 있었다. 엄격한 아버지가 심하게 반대를 해서 "성적은 유지하면서 무용도 하겠다"고 다짐할 정도였다. 실제로 정소민은 약속을 지켰고, 뒤이어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고 싶다고 말하며 한 번 더 부녀 사이에 냉기류가 흐르기도 했다. "왜 그렇게 반대하셨을까" 당시를 회상하면서도 정소민은 "지금은 누구보다도 제 활동에 관심이 많다"며 웃어 보였다. "엄마는 뭘 하든 응원하는 쪽이었는데 아빠는 제가 평범하게 공부하길 바랐다. 크게 사고 친 적도 없었고, 사실 좀 귀찮아하는 성격이라 꾸미는 것도 잘 못 하긴 했지만 (웃음) 그렇게 반대하셨다. 집안에 예술계통 일을 하는 분이 없어서 먼 세계로 느끼신 것 같다. 연기하겠다고 말했을 땐 확신에 차 있었다. 처음엔 무용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접했는데 너무 매력 있더라. 입시 준비하는 친구들이 열정에 차서 하는 모습에 매료됐다.그때 한창 꿈을 많이 꿨다. 겁도 없었다. 무용이나 연기를 한다면서도 나중에 먹고 살 걱정은 안 한 걸 보면(웃음). 하고 싶은 걸 쫓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연기과 입시에 떨어졌으면 무용과를 지원하려 했다. 다른 학교는 아예 시험을 안 볼 생각이었다."그렇게 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했다. "아직 연기 외엔 직업을 바꿔야 할 정도로 매력적인 일을 만나지 못했다"며 정소민은 선택에 후회나 아쉬움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아빠는 딸> 홍보와 함께 정소민은 현재 KBS 2TV 주말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로 한창 달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도 아버지 이야기다. 극 중 인턴사원 변미영 역을 맡은 정소민은 "청춘들이 좀 더 당당해졌으면 좋겠다"며 응원의 마음도 보탰다. "작품을 통해 저 역시 조금씩 생각이 넓어지고 쌓이는 것 같다. 굳이 벗어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캐릭터에서 배워서 좋은 변화가 생길 때가 있다. <아빠는 딸> 아니었으면 내가 언제 가장으로서의 마음을 알 수 있었을까. 그래서 지금 하는 작품이 내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너네 너무 좋다, 정체가 뭐니?" 외국인도 열광한 보컬그룹 어썸

[inter:view] 클래식계의 아이돌 '어썸', 가지 않은 길을 가다

클래식은 대중음악과 어우러질 수 있을까? 성악가는 성악 너머의 장르를 소화할 수 있을까? 그룹 AWESOME(어썸)은 이런 질문들을 던지고, 또 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성악을 전공한 세 멤버 한기주, 유채훈, 길병민이 뭉쳐 경계를 허문 음악세계를 개척하고 있다.클래식부터 팝까지 다양한 장르를, 성악 발성을 기반으로 한 유연한 창법으로 부르는 글로벌그룹 어썸. 이들의 정체성은 그러니까, 클래식을 베이스캠프로 하여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보컬리스트 그룹이다. 부드러운 음색의 리더 한기주(바리톤), 폭넓은 장르를 아우르는 메인 보컬 유채훈(테너), 유수의 국제 성악 콩쿠르 우승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은 길병민(베이스). 이들은 듣는 이에게 신선함으로 다가갈 크로스오버 위주의 음악을 선보인다.어썸은 올해 하반기 정규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며, 선공개 형식으로 '일몬도(IL MONDO)'를 지난 7일 전세계 발매했다. 한국에선 지난달 31일 먼저 선보였다. 향후 유럽, 미주, 아시아 등 해외 진출을 계획 중인데 그 일환으로 '클래식에 미치다'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의 한 코너로써 유럽 순회 리얼리티 LAC 프로젝트(Learn To Awesome Classic)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들의 해외 버스킹 라이브 영상은 평균 조회수 1만3000회를 기록하며 주목 받았고, 영상을 본 해외 음반사와 에이전시 등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영화 <어바웃타임> OST로 잘 알려진 Jimmy Fontana의 '일몬도'를 어썸만의 색깔로 리메이크 했다. 이 곡의 가사가 담고 있는 '희망'은 어썸이 음악으로써 전하고픈 메시지다. 싱글 앨범 <일몬도>를 발표한 어썸을 지난 6일 오전 서울 상암 오마이뉴스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성악'이란 말에 처음엔 내심 거리감이 느껴졌지만, 실제로 만나본 이들은 시종일관 유쾌했다. 새로운 '길'을 내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는 길 - 팀명 '어썸'은 무슨 의미인지.길병민 "'훌륭한'이란 단어 'AWESOME'처럼, 저희가 새로운 음악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더욱 의미있는 도전을 하고 훌륭하게 거듭나고 싶다는 의미로 지었다." - '일몬도'를 발표한 후 주변 반응이 어땠나. 한기주 "새로워 했다. 클래식 하는 사람들도 이런 발성을 할 수 있구나 하며,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말하셨다."길병민 "노래 좋다, 너는 어디 나오느냐 하셨다. 주변엔 정통 클래식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노래를 듣고) 확실히 다르다며 좋다고 한다. 제가 베이스다 보니 보통은 우렁차고 힘차게 불르는데, '일몬도'에서는 시끄럽지 않으면서 호소력 있는 목소리를 냈다. 1절은 부드럽게, 2절은 웅장하게 부르는 식으로 변화를 줬다."- 성악을 하다가 창법에 변화를 주는 게 힘들지 않았나.유채훈 "힘들다. 연습을 많이 했다. 목이 완전히 쉰 적이 있을 만큼 어려움이 있었는데, 제일 힘들었던 건 '내가 하는 게 지금 맞는 건가' 긴가민가 한 거였다. 우리도 하나씩 시도해보고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부르면서 '내가 이런 소리를 낼 수 있구나' 하고 발견하는 게 좋았다. 어떻게 해도 성악가 느낌이 묻어나는데 더 노력해서 '이걸 정말 성악전공자들이 부른 거야?' 하고 놀랄 정도로 그 음악에 딱 맞는 창법으로 매번 변신하고 싶다. 클래식이란 뿌리를 잃지 않으면서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음악을 할 것이다."- 정통 클래식계에선 크로스오버를 부정적 시각으로 볼 수도 있겠다.길병민 "정통은 정통답게, 타 장르는 또 거기에 맞게 하려 한다. 대중음악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주변의 염려도 있었는데 장르를 넘나드는 과정을 통해 양쪽 모두에 기여하고 싶다. 스스로 변화해가며, 이게 정말 내 목소리인가 싶기도 하다. 해나갈수록 점점 설득력이 생기고 있음을 느낀다." 유채훈 "부정적으로 보시는 분들도 있다. 클래식이 비주류가 안 되게끔 더 지켜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시는데, 막상 결과물을 들으시고는 좋게 평가하시더라. 결국은 우리가 하기 나름이고, 그래서 잘 해야 한다." - 앨범작업에 전문가가 많이 참여했다고 들었다.한기주 "아델, 브루노 마스, 샘 스미스의 정규앨범을 마스터링한 엔지니어 탐코인(Tom Coyne) 선생님과 함께 작업했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유채훈 "자랑 같지만 탐코인 선생님이 '목소리가 좋다'는 피드백을 보내왔다. 탐코인 외에도 음악계의 손꼽히는 분들이 많이 참여해주셨는데 베이스 신현권 선생님께서는 저희에게'13년 동안 내가 작업한 가수들 중에서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속시원하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때 기분이 정말 좋았다." - 좀 더 대중적으로 성악을 하고 싶단 생각은 언제부터 했나. 한기주 "대학생 때였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른데 너무 똑같이 만들어내는 대학의 교육법에 불만이 많았다. 그러다 우연히 뮤지컬 <미스사이공>을 보고 정신적 충격과 함께 내가 저걸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채훈 "원래 저는 클래식이 아니라 가요를 했다. 록 밴드를 하다가 갑자기 성악을 접하다 보니 성악의 성향이 답답하게 여겨졌다. 그래서 반항을 좀 했다. 연습할 땐 그대로 하다가 무대에 서면 성악이 아닌 것처럼 불러서 교수님을 놀라게 했다."길병민 "전 원래 어릴 때부터 장래희망이 '음악이 있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성악만 추구한 적은 없고 음악이라는 포괄적인 꿈을 갖고 있었다. 중학교 때 변성기를 거치며 성악에 대한 가능성이 사라져버렸는데, 뜻대로 안 되는 목소리를 10년 갈고 닦은 결과 지금처럼 거듭날 수 있었다. 그것이 내게 가슴 뛰는 부분이 되었다. 내가 도저히 못할 것 같은 것, 모르는 부분마저도 잠재력과 신체의 무한함, 계발로서 무한한 가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 그런 기대가 있는데, 어썸으로서 하는 지금 도전도 그런 것의 하나다."'희망'의 메시지 전하는 것, 어썸의 목표 - '클래식에 미치다' 해외 버스킹은 어땠나. 길병민 "클래식 본고장 사람들이 과연 우리 노래를 좋아해주실지 궁금했고 두려웠다. 그런데 저희가 퍼포먼스를 할 때 열렬히 환호해주셔서 감동받았다." 한기주 "과연 동양인이 클래식한 노래를 그들의 언어로 불렀을 때 어떤 반응일까 염려했는데, '잘한다, 더해봐'하는 표정으로 따뜻한 눈빛을 보내주셨다. 앙코르 외침도 진짜 더 듣고 싶어서 요청하는 진심이 느껴졌다. 촬영이 많아서 여행을 즐길 수 없었고 춥고 힘들었지만, 정말 행복했다."유채훈 "외국사람들은 좋은 건 좋다고 강렬하게 표현하고, 반면 들어보고 마음에 안 들면 바로 가버린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따라 불러주셨다. 한 이태리 남성은 '너네 너무 좋다, 정체가 대체 뭐냐'하고 적극적으로 물어보시더라."-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싶은지.한기주 "오늘 '희망'이란 단어를 많이 사용했는데, 이런 것처럼 메시지 있는 음악을 하고 싶다. 그런 음악이 사람들의 마음에도 오래 남는 것 같다. 전하고 싶은 큰 메시지는 희망과 힐링, 유쾌함 등이다. 저희의 경쾌하고 밝은 이미지를 보여드리고 싶다. 사랑에도 여러 가지 사랑이 있듯이 폭 넓은 사랑에 대해 노래하고 싶다." 유채훈 "가수, 연주자라고 하면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데, 저희 어썸은 마치 동네 형 같이 친근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우리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만들어가고 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도 전하고 싶다."길병민 "저의 삶의 모토기도 하고, 어썸을 통해 보여드리고 싶은 모습이기도 한데 '누구나 끊임없이 성장할 수 있다, 거듭날 수 있다'는 확신을 드리고 싶다. 제가 성악을 그런 마음으로 했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가능성이 있단 걸 말하고 싶다. 단순히 타고나서,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지만 하면 할수록 가능성을 발견해가고 키워가는 것이 정말 소중한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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