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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프레스콜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프레스콜이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네 번째로 돌아온 이 작품은,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청년 윤동주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고뇌와 아픔을 전한다. 오는 4월 2일까지. 박영수·온주완·김도빈·조풍래·김용한·하선진·송문선 등.

▲ 부끄러움의 시인, 윤동주윤동주는 부끄러워했다. 시를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펜을 놓지 못했다. 아니, 놓지 않았다.ⓒ 곽우신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시대죠."

우리말로 수업을 하던 외솔 최현배 선생이 결국 끌려갔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어렵던 일제 치하 그 시절, 자신의 벗들인 강처중과 송몽규는 '총 대신 연필로' 거칠게 저항하며 싸우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윤동주는, 그것이 참 부끄러웠다.

"이런 시국에, 선생님이 잡혀가고, 동료가 전쟁터로 끌려 나가는 이런 시국에, 한가로이 책에 기대는 제 모습이 창피하기만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제 자신이 한심하기만 합니다."

이화여자전문학교에 다니던 이선화는 그런 윤동주에게 답을 한다. 시를 쓰라고, 시인임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이런 시대에도, 시가 필요하다고. 그 시가 우리를 이 시대와 함께하도록 묶어주는 밧줄이기에.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프레스콜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프레스콜이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네 번째로 돌아온 이 작품은,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청년 윤동주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고뇌와 아픔을 전한다. 오는 4월 2일까지. 박영수·온주완·김도빈·조풍래·김용한·하선진·송문선 등.

▲ 윤동주와 이선화극 중 이선화는 가상인물이다. 이화여전에 다니는 그는,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위로 받는 그 시대의 청춘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응원에 힘입어 윤동주는 '시인' 윤동주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남은 그의 시들이 오늘의 우리에게도 위로를 준다.ⓒ 곽우신


"시를 써야죠. 우리말로 된 아름다운 시."

"이 시대에 시라뇨. 아우성보다도 못한 시. 강아지의 신음보다도 더 조악한 시. 시라는 말, 우스워요. 아니, 어쩌면 난 세상을 향해 욕을 하고 싶은지도 몰라요. 거친 말들을 한바탕 쏟아낼 용기가 없어서, 아름다운 말들 속에 숨어있는지도 모르죠."

"우린, 주문이 필요했는지도 몰라요. 이 시대에 우리를 붙잡아 줄 든든한 밧줄 같은, 시. 제겐 그게 동주씨의 시였어요. 시는 창피한 게 아니에요. 동주씨가 시인임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부끄러움의 시인 윤동주는 그렇게 탄생했다.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그는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재일조선인 학생들과 함께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다가, 그 아침을 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눈을 감기 직전, 그가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을 환상 속 동지들이 되물었다. 시가 무슨 소용이냐고, 시를 뭐 하러 쓰느냐고. 윤동주는 거칠게 대답한다. 시를 쓰겠다고, 자신은 시인이라며. 그 와중에 자신에게 용기를 줬던 이선화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그때 윤동주의 마음속에 들렸던 것은, 이선화와 함께 언젠가 올 세상을 그리며 불렀던 노래가 아니었을까.

"시, 밤마다 몇 번이고 읽었던 시. 메마른 이 세상 단비 같았던, 너의 시에 얼마나 고마웠는지. 시, 밤새워 몇 번이고 고쳐 쓴 시. 뉘우침 없는 세상에 실망하며 쓴 시. 바위 같은 고통, 지울 수 없어. 지우지 못해. 매일 시와 함께 시를 얘기하며, 숨 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나, 먼 훗날 자유로운 날이 온다면, 너와 함께 웃으며 숨 쉬며 살아가리. 그렇게 그 세상에 살고 싶다. 너와 시와 함께." -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No.06 '얼마나 좋을까' 중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때, 윤동주가 돌아왔다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프레스콜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프레스콜이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네 번째로 돌아온 이 작품은,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청년 윤동주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고뇌와 아픔을 전한다. 오는 4월 2일까지. 박영수·온주완·김도빈·조풍래·김용한·하선진·송문선 등.

▲ 듣고 싶다, 네 시!북간도로 떠나는 강처중. 거칠게 투쟁하던 그는 결국 일제의 탄압에 몸을 피한다. 그런 처중 앞에서 부끄러워하던 윤동주. 하지만 처중은 가는 길에 외친다. 네 시를 듣고 싶다고. 윤동주는 그렇게, 시인이 된다.ⓒ 곽우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세상,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가 돌아왔다. 작년 삼연에 이어 벌써 네 번째이다(관련 기사: 달을 쏜다 나도, 스물아홉 윤동주처럼). 지난 21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네 번째 개막을 맞은 <윤동주, 달을 쏘다>는 오는 4월 2일, 언제나 서울예술단의 작품이 그렇듯 짧은 만남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윤동주, 달을 쏘다>는 장점이 많은 작품이다. 감정의 파고를 증폭시키는 절절한 음율, 여기에 서정적인 가사들이 잘 붙었다. 군데군데 서울예술단의 주특기인 군무도 도드라진다. '우리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투박하지 않게, 오히려 세련되게 시공간적 배경과 메시지를 버무렸다. 윤동주의 시를 가사로 삼아 노래하는 대신, 노래와 시를 분리시켜 배우의 감정에 따라 낭송하도록 한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십자가'나 '별 헤는 밤'을 읊는 부분은, 뮤지컬도 노래가 아닌 대사로 감동을 줄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 극을 이끌어가는 박영수 배우의 역량도 빼놓을 수 없었다. 프레스콜 현장에서 스스로 인생 캐릭터로 꼽을 정도로, 박영수 배우와 극 중 인물 윤동주는 이제 분리하기 어렵게 됐다. 공연을 거듭할수록 더 탄탄해지는, 그의 말마따나 더 강하게 활시위를 겨누는 시인이 되고 있다. 시대에 대해 고뇌하고, 벗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갈등하고, 그 와중에 시를 놓지 않기 위해 절규하는 청춘을 특유의 넘버 소화력과 연기로 표현한다.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프레스콜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프레스콜이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네 번째로 돌아온 이 작품은,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청년 윤동주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고뇌와 아픔을 전한다. 오는 4월 2일까지. 박영수·온주완·김도빈·조풍래·김용한·하선진·송문선 등.

▲ '슈또풍' 삼총사서울예술단을 대표하는 세 얼굴. 박영수(윤동주), 김도빈(송몽규), 조풍래(강처중) 배우의 케미스트리는 특별하다. 박영수 배우와 조풍래 배우는 서예단을 나왔지만, 이번 시즌에도 객원으로 함께 했다. 한 무대에서 이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 아마 다음 시즌에도 함께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곽우신


팬들 사이에서 흔히 '슈또풍'으로 불리는 박영수(윤동주)-김도빈(송몽규)-조풍래(강처중) 삼총사의 케미스트리는 아마 국내 공연계에서 대체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서울예술단에서 함께 해온 이들 중 예술단에서 나온 배우도 있고, 여전히 활동하는 배우도 있으나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호흡을 맞추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고민하는 청춘 그리고 어두운 시대에 분투했던 이들의 저항정신을 그렸다는 점에서 시국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많다. "교정의 지성은 아직 눈으로 덮여 있고"에서 소방 호스로 물을 틀어 학생들을 탄압하는 어느 대학교가, "교과서의 지식은 아직 어둠에 묻혀 있네"에서 국정교과서 논란을 떠올린다면 과한 해석일까. "너는 아느냐, 조선에는 언젠가부터 봄이 사라졌다는 것을"이라고 노래('사라진 봄')하는 <윤동주, 달을 쏘다>는 극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감동이 본래 크다. 계절적으로 그리고 시대적으로 새 봄을 맞이한 지금 여기의 대한민국과 맥락적으로 결합하며 그 감동은 배가된다.

<윤동주, 달을 쏘다>는 이처럼 당시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아픔에 대처하기 위해 윤동주가 선택했던 방법을 옹호하고 있다. 이 부끄러움의 시인에게 더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위로한다.

시를 쓴다는 것의 의미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프레스콜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프레스콜이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네 번째로 돌아온 이 작품은,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청년 윤동주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고뇌와 아픔을 전한다. 오는 4월 2일까지. 박영수·온주완·김도빈·조풍래·김용한·하선진·송문선 등.

▲ 시를 쓴다는 것당장의 투쟁이 급한 시국에, 시를 쓴다는 게 참 별 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청춘의 아픔이 묻어났던 그 시들은, 당시 청년들의 가슴을 위무했다. 문화는, 문화로써, 문화의 방법으로 저항한다.ⓒ 곽우신


"묻는 사람 하나 없어도, 자꾸 되풀이되는 말. 아픔을 배우고, 청춘을 바치고, 써내려간 시는 나에게 너에게 무엇인가. 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No.11 '시를 쓴다는 것' 중에서

재일조선인 학생들끼리의 논쟁에서, 극 중 윤동주는 우리말로 된 문예지를 만들자고 한다. 문예지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모으고, 공감대를 넓히고, 그렇게 싸우기 위한 기반을 건설하고자 한다. 다른 학생들은 반발한다. 일제의 패망이 가시권에 들어섰고, 지금도 수많은 동포들이 전쟁터로 끌려가 목숨을 잃고 있는데 한가하게 문예지나 만들어서 무엇하느냐고. 그러나 시를 쓴다는 것의 의미를 자문하던 윤동주는, 그 의미를 찾았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시는 밧줄이다. 서로와 서로를 연대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밧줄.

'지금 당장'을 바꾸기 위한 수단을 논하며 문화를 등한시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를 바꾸는 문화의 힘을 이야기하면서, 굳이 기동전이냐 진지전이냐의 전략적 논쟁은 필요 없다. 급진이냐 온건이냐의 지리한 구분도 관계없다. 사회의 변혁을 이끄는 데 문화는 언제나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문화는 힘이 세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다 중요하듯이, 문화 역시 이 사회에 다종다양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영역이다. 문화의 진보 없이는 시대의 변화를 담보할 수 없다는 걸 역사가 증명한다.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프레스콜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프레스콜이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네 번째로 돌아온 이 작품은,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청년 윤동주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고뇌와 아픔을 전한다. 오는 4월 2일까지. 박영수·온주완·김도빈·조풍래·김용한·하선진·송문선 등.

▲ 총 대신 연필로송몽규나 강처중의 투쟁도 일제에 맞서는 방법 중 하나였고, 윤동주의 저항 역시 또 다른 종류의 투쟁이었다. 어떤 투쟁이 더 낫고, 더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이 모든 것이, 각자에게 최선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곽우신


동서고금을 통틀어,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이 문화를 조종하려고 한 건 그 때문이었다. 권력을 위한 도구로 문화를 종속시키고, 어떤 인물, 어떤 세력, 어떤 이데올로기를 찬양하도록 종용했다. 일제가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억압하고, 일본식 문화를 한반도에 심으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게 권력에 입맛에 따라서 문화는 검열을 당했고, 피폐해졌다. 유럽의 파시즘 정권도, 우리나라의 독재 정권도 마찬가지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특정 영화를 빌미로 기업에 외압을 행사하고, 때로는 직접 <환생경제> 같은 치졸하고도 악질적인 작품을 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억압에 맞서 분연히 일어서는 것 역시 문화이다. 문화를 아무리 권력이 순치하려고 해도, 그 안에 내재된 저항 정신을 쉬이 빼앗을 수 없다. 촛불의 바다가 광장에서 일렁일 때, 그 자리엔 언제나 문화가 함께 했다. 광화문 블랙텐트가 그러했고,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 배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시가 낭송되고, 노래가 울려 퍼지고, 공연이 올라왔다.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그곳에서 촛불을 들고, 저 빛의 파도 중 하나가 되어 함께 물결쳤다. 시대처럼 올 아침이 눈앞에 보이는 듯한 이 신새벽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건, 이 광장에 문화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프레스콜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프레스콜이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네 번째로 돌아온 이 작품은,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청년 윤동주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고뇌와 아픔을 전한다. 오는 4월 2일까지. 박영수·온주완·김도빈·조풍래·김용한·하선진·송문선 등.

▲ 창씨개명 그리고 일본으로일본으로 가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창씨개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창씨개명을 해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가 부끄럽다. 하지만 벗들은 오히려 그들을 위로한다. 이름을 바꿔도, 윤동주는 윤동주다. 그 안의 영혼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윤동주는 히라누마 도쥬가 아니라 윤동주로 남아 시를 쓴다.ⓒ 곽우신


그러니, 시를 쓴다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시를 쓰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윤동주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시를 남겼다.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시대임에도, 그는 열심히 시를 남긴다. 이 시들을 언젠가 자유롭게 노래할 날이 오리라 믿었기에. 지금 쓰는 시가 그 날을 앞당기는 밀알이 되리라 기대했기에. 윤동주 탄생 100주년인 지금, 여전히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시대, 윤동주의 시를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건넨 거친 농담을 어떻게든 웃어 넘기려했던 젊은 날을, 한 줄 시로 담으려던 청년들의 잉크가 물들인 푸른 손을 누가 기억할까." -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No.09 '누가 기억할까' 중에서

저 능선이 어스름하게 밝아온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려 하는 이 시점에, 아직 날이 바뀐 줄 모르고 여전히 하늘에 걸려 있는 허연 달이 있다. 차가운 빛을 잃었지만 미련 때문에 여전히 저 위에서 버티고 있는 달. 어두운 밤 동안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음에도 여전히 반성할 줄 모르는 저 새벽달. 광장에 태극기를 들고, 마이크 앞에서 온갖 흰소리를 쏟아내는 그들을 향해, 우리가 활을 겨눌 차례다.

"좀 더 탄탄한 갈대로 화살을 삼아서, 무사의 마음으로. 무사의 마음으로 달을 쏜다. 통쾌하다. 부서지는 저 달빛이. 우습구나 쪼개지는 저 그림자." -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No.21 '달을 쏘다' 중에서



<윤동주, 달을 쏘다>의 포스터 지난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포스터. 오는 4월 2일까지 공연된다.

▲ <윤동주, 달을 쏘다>의 포스터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프레스콜이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네 번째로 돌아온 이 작품은,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청년 윤동주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고뇌와 아픔을 전한다. 오는 4월 2일까지. 박영수·온주완·김도빈·조풍래·김용한·하선진·송문선 등.ⓒ 서울예술단



주인공도 안 정해졌는데, 내일까지 뮤지컬을 만들라고?

[안 뻔한 티켓북] 인생을 닮은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어드벤처 전문극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오늘도 하릴없이 연습실에 모여 각자 음역에 맞는 소리를 내며 발성 연습을 하는 배우들. 갑자기 연출에게 전화가 한 통 온다. 공연장이 비었단다. 급하게 작품을 올려달란다. 일이다! 어? 그런데 보통 급한 게 아니다. 작품이 올라가야 하는 건 바로 내일. '수주'를 위해 대충 있는 말 없는 말 지어내며 따내기는 했는데,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작품의 제목, 장르, 주인공, 모든 것이 미정인 상태. 배우들은 관객에게 급하게 SOS를 친다. 내일을 위해 '말하는 대로'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상황. <비너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이웃집 호로로> <구리스 대구신화> 등 관객이 던지는 아무 말들이 즉석에서 선택된다."오늘 오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지금 보신 것처럼 우리 공연은 여러분이 말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매일매일 이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뮤지컬. 오늘 오신 여러분 큰일입니다. 지금 여기 우리도 오늘 공연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알 수가 없어. 매일매일 이 자리에서 곤란해지는 뮤지컬." -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No.01 '프롤로그' 중에서가면 갈수록 산을 향해 가는 '혼파망(혼돈·파괴·망각)'의 작품. 과연 이들은 무사히 공연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인가. 즉흥 뮤지컬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아래 <오첨뮤>)은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관객들과 함께 맨땅에 헤딩하며 극을 써나간다.국내에 시도된 적 없는, 새로운 뮤지컬 "멋진 아리아, 웅장한 합창, 화려한 안무, 기가 막힌 조명, 어쩐지 겁나 비쌀 것 같은 드레스, 어쩐지 움직일 것 같은 무대, 하나도 없을 수도 있지만…." -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No.01 'Prologue' 중에서"없을 수도 있지만"이 아니라 그냥 없다. 지난 4월 14일 개막하여 약 한 달간의 공연을 성황리에 마무리하고 오는 14일 종연하는 <오첨뮤>에는 이처럼 없는 것이 많다.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관이라는 소극장 자체가 외적으로 뭘 많이 집어넣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무대 위에 놓여 있는 건 몇 가지 구조물과 덩그러니 놓인 칠판이 다다.하지만 그 비어있는 부분들을 다른 재미로 꽉꽉 채웠다. 예컨대 극 중 극과 극의 경계를 허물며 평소 다른 작품에서는 접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상황들이 그렇다. 극 중에 디렉션이 이상하면 "연출 뭐하는 거야!" "이럴 때 연출이 필요한 거야!"라고 소리치고,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극이 빠지고 있으면 배우들끼리도 "캐릭터 잘못 잡은 것 같은데?" "너무 편하게 가려는 경향이 있다, 너?" "야, 이래도 되는 거야?" 등의 이야기가 오고 간다.연극 <쉬어 매드니스> 정도를 제외하면, 국내에는 관객의 참여를 통해 극의 서사에 변화를 주는 작품이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나마 <쉬어 매드니스>도 다양한 엔딩 버전에 맞춘 매뉴얼이 존재하지만, <오첨뮤>는 정말로 밑도 끝도 없다. 즉석에서 관객들이 던져준 요소들로 극을 만들어야 하기에 자리에 앉은 사람의 입장에서 이보다 흥미진진할 수가 없다.다른 극에서 애드리브는 전체 서사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에서 드물게 나타나지만, 이 극은 애초에 정해진 대사가 없으므로 배우의 순발력과 재치에 많은 것을 의존해야 한다. 그때그때 카카오톡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상황과 주요 대사들을 전해줘야 하는 연출 속 연출도 바쁘기는 매한가지이다. 러닝타임도 제각각이다. 기준은 90분이지만, 100분이 되기도 하고 110분이 되기도 한다. 프레스콜 때도 60분 안에 끝내겠다고 했지만, 결국 90분이 되어버렸다. 결국, 이 작품을 온전히 끌고 가는 데는 배우들과 연출 간의 신뢰와 팀 내 케미스트리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박정표·홍우진, 이영미, 김슬기, 이정수, 정다희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다. 어떤 극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도 기대 이상을 해냈던 박정표, '홍우진의 재발견'이라고 할 만큼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홍우진은 두말할 것 없다. 관록과 경험을 허투루 먹는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한 이영미, 끊임없이 '아재 개그'를 날리며 핍박받는 역을 자처하는 김슬기, 뛰어난 말솜씨로 황당한 상황에서도 박수를 유도해내는 이정수, '2년 안에 뜬다'고 누군가 왜 장담했는지 알 수 있는 정다희까지…. 어떻게 이 라인업을 구성했는지 의문일 정도. "정통 브로드웨이 뮤지컬 문법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며 뻔뻔하게 너스레를 떠는 민준호·김태형 연출도 마찬가지이다.물론 기본적인 것들은 몇 가지 정해져 있다. 대체로 소재가 무엇이든 <오첨뮤>에는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꿈과 그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제시되고, 그 꿈을 이루어주겠다는 조력자가 등장한다. 조력자의 등장에 꿈의 실현이 가까워지는 듯하지만, 이를 방해하는 반동 인물이 등장하여 위기를 맞는다. 결국, 주인공은 장애물과 난관을 극복하고 이 갈등을 해결하는 구조이다. 이 과정에서 1번부터 5번까지 배우가 그 자리에서 상황에 맞춰 정하는 넘버들이 있다. 이외에도 주인공이 자기소개하는 '아이 엠 송(I am Song)', 러브라인을 위한 '러브 송(Love Song)', 극을 환기하는 '쇼 스토퍼(Show Stopper)', 전 캐스트가 나와 분위기를 고조하는 '프로덕션 송(Production Song)'까지 갖췄다. 뮤지컬 넘버 하나하나 다 훌륭하지만, 뮤지컬 <스팸어랏>의 '대체 내 배역 왜 이래'에 비견할 이영미 혹은 정다희 배우의 쇼 스토퍼 재치는 발군이다.애니메이션 <요리왕 비룡(신 중화일미)>의 '면' 에피소드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면 요리라는 기본은 정해져 있지만, 면발의 소재, 국물의 맛은 고정이 아니다. 수많은 종류의 소재와 배경이 만나 무궁무진한 베리에이션이 가능해진다. 또한, 그 과정에서 최소한의 지켜야 할 것들은 지켜야 한다. 프레스콜 현장에서 한 공연평론가가 주인공의 단점으로 '정신병'을 던졌으나, 제작진은 이를 받지 않았다. 공연평론가는 "못 받은 게 아니냐"고 질문했지만, '못'이 아니라 '안'이라고 김태형 연출은 못을 박았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있거나, 약자 비하로 이어질 수 있는 희화화는 철저하게 배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빛난다. 즉흥극 특성상 모든 회차의 공연이 완벽하게 PC(정치적 올바름) 하지는 않지만, 실수가 나오면 바로 SNS 등을 통해 사과하며 관객을 안고 가는 모습을 보여줬다.관객의 인생에 던지는 위로 매일매일 '첫공'이자 '막공'인 <오첨뮤>. 언제 봐도 새로운 이 작품은, 그저 '재미'만 있는 작품은 아니다. 매번 다른 주인공이, 다른 이야기 속에서, 다른 결말을 맞이하지만, 극을 관통하는 굵직한 울림이 있다. 그것은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인생을 향한 위로와 치유이다. 그것도 웃음이라는 방법을 통해서."어차피 내 인생에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잖아. 그저 순간 선택 마음 가는 대로, 오늘 누구를 만나 어떤 얘기를 할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잖아.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쌓여 있던 얘기. 이제는 당당하게 펼칠 거야. 내가 겁내지 않겠어. 내 힘으로 만들 거야. 나는 이겨낼 거야. 나에게 던져진 이 상황들을. 버텨내 살아갈 거야. 우리가 모두 인생의 이야기를 스스로 써내려갈 수 있어. 우리가 모두 인생의 결정을 순간의 진심으로 정할 수 있어. 내 삶에서 오늘 처음 만나는 내 이야기." -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No.07 'Production no.01' 중에서우리의 인생도 일종의 극이다. 주인공은 '나'이지만, 드라마나 영화처럼 멋들어진 배경이나 비범한 능력은 없다. 다른 작품처럼 영웅적인 주인공이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니다. 우리는 대체로 이 황당하고 어이없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좌충우돌로 구르고 충돌하고 실수한다. 대부분 작품은 그것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화려하고 멋진 마무리를 가지지만, 우리의 이 선택이 어떤 엔딩으로 귀결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것들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정해진 것들이다. 다만, 내 손으로 정해서 바꿀 수 있는 어떤 것들이 있을 뿐이고, 우리는 그 가운데 선택할 따름이다. 이 작품이 어디로 갈지 모르는 채, 주요 변곡점에서 관객이 선택하듯이.관객 각자의 인생처럼, 단 한 번으로 끝나는 <오첨뮤> 매번의 회차들. 공연 중간에 참사가 일어나고, 관객을 오히려 썰렁하게 만드는 애드리브가 튀어나와도 다시 할 기회는 없다. 배우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십분 이해가 된다. 우리 인생도 재연은 없다.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오늘 회차 다음에 내일의 회차가 있다거나, 재연이 있고 삼연이 있어서 같은 트랙을 더 잘 달릴 기회가 주어지는 게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이 작품이 빛나고 우리의 인생도 빛난다. "시작할 땐 죽이 될지 밥이 될지 몰라. 우리들도 관객도 엄청 불안했지. 오늘 만든 이 얘긴 다시 못 봐. 오늘 만든 이야기 잘 간직해. 우리도 꼭 기억할게요. 오늘 오신 여러분의 인생 어쩌면, 오늘 만든 이야기처럼 알 수 없어도. 어떻게든 흘러와 이 자리에서 모여, 바로바로 여기서 함께 만들어내지. 좀 이상하면 어때. 좀 황당하면 어때. 좋잖아. 다신 오지 않을 우리 인생처럼. 또 언젠가 만나게 되면 들려줘. 당신 이야기를 보여주세요. 오늘 공연보다 더 찬란히 빛나게 될, 오직 한 번 펼쳐질 우리 인생. 오직 한 번 펼쳐질 우리 인생." -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 No.12 'Epilogue' 중에서이상하고, 황당하고, 어설픈 우리들의 이야기가 모인다. 각자의 것을 조금씩 꺼내놓아 이 자리에 풀어낸다. 그 부족하고 어설픈 부분들이 모여서 가장 독특하고 고유한, 그래 아름다운 단 한 번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오첨뮤>는 비로소 여기에서 그 의미와 재미의 정점을 찍는다. 오늘 공연이 끝나고 나면 돌아오지 않기에 더 소중히 각자가 간직해야 할 것들. 거창한 무대도, 화려한 의상도 없지만 오래도록 기억되는 이야기들. 마치 나처럼, 우리처럼, 우리의 인생처럼.이런 작품을 만들어준 모든 스태프, 이 극을 이끌어가면서 많은 어려움을 견뎌냈을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날그날의 편차가 있고, 완벽하지 않은 극이지만, 그렇기에 더 충분히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 우리 모두가 오늘이 처음 아닌가. 아무도 2017년 5월 10일을 살아보지 않았고, 2017년 5월 11일이라는 내일을 맞이할 우리도 다 처음이다. 오늘 처음 만드는 인생이기에, 모두가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충분히 멋지고 아름다울 수 있다. <오늘 처음 만드는 뮤지컬>처럼. <오첨뮤>를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이유이다.

'자연인 박근혜'가 갈 길, 이 뮤지컬이 보여주다

[안 뻔한 티켓북] "정의는 갖는 자의 것"... 사필귀정의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드몬드 단테스는 전도가 유망한 선원이었다. 그의 앞날은 보장되어 있었다. 모렐 선주로부터 차기 선장감으로 신임 받고 있었고, 연인 메르세데스와의 사랑도 두터웠다. 그러나 친구에게 사적인 편지를 전달해달라는 나폴레옹의 부탁을 받고 나서 무언가 꼬이기 시작했다. 모렐 선주로부터 선단을 탈취하고 싶은 당글라스, 메르세데스를 짝사랑하여 빼앗고 싶은 몬데고. 두 사람은 나폴레옹의 편지를 빌미로 단테스를 몰래 고발한다.그저 '사적인' 편지를 배달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던 단테스. 검사장 빌포트는 끌려온 단테스를 심문하지만, 그의 순수함을 믿고 풀어주려 한다. 하지만 편지의 수신인이 한때 황제파였던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대로 놓아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아버지와 이 사건을 연관시킬 끈을 끊어버리기 위해, 빌포트는 단테스가 억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샤또 디프 감옥으로 보내버린다."우리는 친구야, 원하는 것도 같지. 뜻을 함께해, 어떻게든 죄를 씌워야지. 우리가 살려면 어쩔 수가 없는 일. 협상을 하자. 조작 하자, 사실을 남몰래. 죄를 뒤집어씌우고 없애 버려. 우리끼리만 뜻을 함께 해. 항상 역사는 승리한 자들만의 작품이니까. 살짝 거짓 보태고, 멍청한 녀석들을 우리에게 믿게 해. 어서 사인을 해야겠어. 공식적인 것이 진실이지. 우리가 정의. 우리가 진실. 우리의 비밀." -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제1막, No.04 '역사는 승리자의 작품(A Story Told)' 중에서정치적, 경제적, 사적 이해관계가 얽힌 이들이 의기투합했다. 그렇게 누명을 쓴 단테스가 갇히고, 그들은 각자가 원했던 걸 손에 넣는다. 법도, 원칙도, 정의도 사라진 것만 같은, 부정의가 판치는 세상. 그대로 이들의 승리가 확실시되는 듯했다. 14년이 지날 때까지는….꾸준하게 사랑받는 작품 알렉상드르 뒤마의 원작 소설을 기반으로 한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지난 2월, 서울 공연이 끝난 이후 지방 순회공연에 돌입했다. 제주와 전주, 천안을 거쳐 26일 울산 공연을 마친 <몬테크리스토>는 오는 6월까지 창원·수원·광주·이천·부산·인천·안산·대구·대전 일정이 남아 있다.2010년 초연 이후 벌써 네 번째 시즌을 맞은 <몬테크리스토>는 EMK뮤지컬컴퍼니를 대표하는 레퍼토리가 됐다. 고전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데다가 시즌이 계속되다 보니, 극 중에는 지금의 관점에서 봤을 때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 시퀀스들이 있다. (예를 들면, 단테스가 파리아 신부 덕분에 너무 '쉽게' 세상에 복수할 수 있는 모든 기반을 마련한다든가) 주변부 캐릭터의 단발성 소비(특히 루이자와 발렌타인)도 심한 편이다. 하지만 '완벽한' 작품이 아님에도 매번 <몬테크리스토>가 '평타 이상'의 성과를 거두는 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많은 국내 팬을 보유한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적 작업은 이 작품에서도 훌륭한 성취를 보인다. 화려한 의상과 군무도 쇼 비즈니스라는 장르에 충실하다. 서사가 특별히 복잡하거나 어렵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유치하거나 가볍지도 않다. 원작에 비해 권선징악이 뚜렷하고, 뒷끝이 씁쓸하지 않도록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점 역시 관객이 무대에 쉽게 다가올 수 있도록 돕는다. 역시 대극장 뮤지컬의 교범처럼 되어가고 있는 작품임엔 틀림없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탄탄하고 안정적인 캐스팅이 돋보인다. '새신랑'이 되어 모든 연극·뮤지컬 팬을 대동단결케 한 류정한, 지금까지 모든 <몬테크리스토> 시즌에 참여한 '지옥송' 장인 엄기준, <복면가왕> 이후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카이, 전작 <키다리 아저씨>에서 인생 연기를 보여준 신성록이 주연 에드몬드 단테스(몬테크리스토 백작) 역에 쿼드러플 캐스팅됐다.단테스의 연인이자, 그가 회심할 수 있도록 돕는 메르세데스 역에는 처연한 눈빛 하나만으로도 무대 위에 자기만의 공간을 만드는 조정은(관련 기사: 아들 몰라보고 죽일 뻔한 남자, 그를 붙잡은 유일한 여자), 필모그래피를 쌓아갈수록 빛을 더해가는 린아가 나섰다. 역시 <몬테크리스토> 전 시즌에 참여 중인 '잘생긴' 최민철은 반동 인물 몬데고를 맡아 훌륭한 무게감을 보여준다. 알버트를 맡은 빅스의 정택운(레오)은, 전작 <마타하리>에 이어 작은 비중임에도 성실한 연기와 노래를 선보인다. 앞으로의 뮤지컬 무대가 기대될 정도로.무엇보다 이 작품을 주목해야 할 이유는 따로 있다. 부패한 권력자들의 결탁에 맞서 정의를 실현하는, 이른바 복수의 카타르시스. 간명한 스토리에 담긴 이 '사필귀정'의 시원한 메시지야말로 <몬테크리스토>의 매력이다.지옥의 문 앞에서 "웃기는 세상, 사악한 자들이 판치는 곳. 내게 소중한 것 빼앗아간 그 순간마저 짓밟은. 비열한 것들, 너희도 금방 겪게 해주지. 벼랑 끝까지 너희를 몰아 넣고, 죄악의 대가 치러야겠지. 기대해도 좋을 걸 나의 심판을. 혹시 믿었나, 영원한 행복을. 설마 믿었나, 완벽한 인생. 선물할게, 끔찍한 지옥. 너희들에게. 분노한 신의 뜻을 대신하겠어. 신의 뜻으로 아멘." -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제1막, No.12 '너희에게 선사하는 지옥(Hello to Your Doorstep)' 중에서에드몬드 단테스는 샤또 디프에서 탈옥을 시도하던 파리아 신부를 만난다. 뱃일 말고는 특별히 아는 게 없었던 단테스는, 파리아 신부를 통해 여러 종류의 지식과 검술뿐만 아니라 통찰력도 전수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자신이 왜 이 감옥에 갇힐 수밖에 없었는지, 누가 자신을 모함하여 이 구렁텅이로 처넣었는지.사고로 인해 결국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 파리아 신부. 그의 목숨을 빚으로 삼아, 단테스는 무사히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파리아 신부가 남겨준 지도를 통해 숨겨진 막대한 보물도 손에 얻는다. 단테스는 자신의 이름을 몬테크리스토로 바꾸고, 파리아 신부로부터 배운 지식과 예법, 그리고 막대한 부를 활용해 백작 행세를 시작한다. 그 사이 자신의 친부는 사망했고, 자신을 아껴준 모렐 선주는 파산했고, 자신이 사랑했던 메르세데스는 한때 친구라고 생각했었던 배신자 몬데고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을 모함했던 이들이 어떻게 떵떵거리며 살고 있는지 알게 된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화려한 복수를 계획한다. 자신이 지옥에 갈지언정, 그들 모두 역시 함께 지옥으로 떨어트릴 것을 맹세하며. 뮤지컬 <몬테크리스토>의 캐치프레이즈는 "정의는 갖는 자의 것, 사랑은 주는 자의 것"이다. 정의는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할 대상이다. 내 손에 쥐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통해 정의는 실현된다. 그러니 '갖는 자의 것'이다. 에드몬드 단테스가 바로 정의를 가지려는 자이다. 몬데고와 당글라스, 빌포트 등 힘을 가진 자들이, 자신들이 정의라며 더럽혔던 그 가치를 단테스는 탈환하려 한다. <몬테크리스토>의 재미 중 하나가 바로 이 복수의 과정에서 나오는 카타르시스이다.그러나 <몬테크리스토>는 사적 복수를 통한 자력 구제가 정답이라고 이야기하는 작품이 아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된 에드몬드 단테스가, 끝까지 복수심에 미쳐 날뛰었다면 정의는 실현되지 않았을 것이다. 복수하겠다며 자신에게 결투를 신청한 몬데고의 아들 알버트, 단테스가 그를 총으로 쐈다면 어땠을까? 알버트의 약혼녀이자 빌포트의 딸인 발렌타인은 알버트를 살려달라며 간청한다. 만약 단테스가 발렌타인까지 연좌제로 묶어 죗값을 치르도록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이 작품의 끝은 전혀 다른 결말을 초래했을 것이다. 복수에 취해 지옥의 문 앞까지 걸어가던 그를 붙잡은 건 메르세데스였다. 욕망에 취한 이들은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에드몬드 단테스라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메르세데스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14년의 풍파가 그의 외모를 변하게 하였지만, 거친 수염과 화려한 옷으로 치장하고 있지만, 단테스를 사랑하는 메르세데스는, 자신이 기억하는 그 눈빛 속 영혼의 소유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단테스와의 사랑을 맹세했던 반지가 반짝이고 있으니까.단테스가 정의를 상징한다면, 메르세데스는 사랑을 상징한다. 정의가 내 손으로 쟁취해야 할 대상이라면, 사랑은 내 손에서 떠나보내 상대의 손에 쥐어줘야 할 것이다. 한 번도 몬데고에게는 준 적이 없었던 사랑을, 메르세데스는 단테스에게 준다. 이 사랑은 온전히 메르세데스의 것이며, 그 사랑은 단테스에게 전달됨으로써 완성된다. 메르세데스로부터 사랑을 받은 단테스는 지옥의 문턱에서 발길을 돌린다. 그리고 메르세데스와 진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한다. 정의와 사랑을 동시에 손에 쥔 채로."놀라운 일 많았고, 수많은 삶 살아도 느껴본 적 없었지. 경이로운 순간, 이렇게 뒤늦게야 나 용서를 배우네. 날 버티게 한 분노, 물거품처럼 사라졌어. 모두 끝났어. 다시 돌아갈 수 있어, 그 시절로. 그 동안의 고통은 끝나고, 희망만 남아." - 뮤지컬 <몬테크리스토>, 제2막, No.20 '과거의 나 자신(The Man I Used to Be)' 중에서정당한 복수에 반기를 드는 이들에게 근대 국가의 '법치'는 사적 복수를 금지하고, 공적 복수로 정의의 실현을 일원화한다. 억울하고 부당한 일이 있을 때, 법과 제도는 힘없는 자들을 대신해 힘 있는 자들을 심판한다. 그것이 '공권력'이다. 법에 대한 불신이 팽배할 때, 사람들은 제도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한다. 복수가 복수를 낳고, 피가 피를 부르는 세상은, 법치가 정의 구현과 국민의 법 감정 해소에 실패했을 때 도래한다.에드몬드 단테스가 살았던 세계는 그 공권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던 곳이었다. 혁명과 반혁명이 교차하는 혼란기,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사람들은 외곽으로 밀려나며 애꿎은 피해를 본다. 정의를 실현해야 할 권력이 오히려 몇몇 권력자의 손아귀에서 잘못 운용되었다. 때때로 우리도 그런 세상을 본다. 법은 이 사회의 기득권을 위해서만 존재할 것 같고, 저들만의 카르텔이 평생 지속하리라는 착각.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고, 결국 내 살길만 내가 잘 보전하면 될 것 같다는 오해. 지금 여기의 대한민국. 아버지로부터 딸까지 이어져 영원히 역사에 존속할 것만 같았던 독재의 신화가 부서졌다. 청기와집 아래에서 결탁하여 정치적·경제적·사적 이득을 취하던, 영원히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던 이들이 법의 심판대에 섰다. 우리는 공정하고 올바른 법적 절차를 통해 저 위에 군림하던 자를 고꾸라트렸다.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제도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구해냈다. 정의를 우리 손에 쥐었다. 이제는 서로 사랑하며 새 시작을 준비할 때이다. 자연인 박근혜씨는 내일(30일), 구속영장 심사를 위해 검찰에 출석한다.물론, 이 정당한 분노, 정의로운 복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복수를 복수로 갚고야 말겠다고 이를 갈고 있는 이들이 태극기를 들고 여기저기에서 설치고 있다. 그 세력을 이용해 자신의 정치적 이들을 취하려는 권력자들도 있다. 그들에게 이 작품의 마지막을 상기시키고 싶다. 에드몬드 단테스는 복수하겠다며 칼을 뽑아 달려드는 몬데고에게 마지막 기회를 줬다. 그 기회를 몬데고는 걷어찼고, 그 결과는, 추락 그리고 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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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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