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프레스콜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프레스콜이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네 번째로 돌아온 이 작품은,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청년 윤동주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고뇌와 아픔을 전한다. 오는 4월 2일까지. 박영수·온주완·김도빈·조풍래·김용한·하선진·송문선 등.

▲ 부끄러움의 시인, 윤동주 윤동주는 부끄러워했다. 시를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펜을 놓지 못했다. 아니, 놓지 않았다. ⓒ 곽우신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시대죠."

우리말로 수업을 하던 외솔 최현배 선생이 결국 끌려갔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어렵던 일제 치하 그 시절, 자신의 벗들인 강처중과 송몽규는 '총 대신 연필로' 거칠게 저항하며 싸우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그러지 못했다.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윤동주는, 그것이 참 부끄러웠다.

"이런 시국에, 선생님이 잡혀가고, 동료가 전쟁터로 끌려 나가는 이런 시국에, 한가로이 책에 기대는 제 모습이 창피하기만 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제 자신이 한심하기만 합니다."

이화여자전문학교에 다니던 이선화는 그런 윤동주에게 답을 한다. 시를 쓰라고, 시인임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이런 시대에도, 시가 필요하다고. 그 시가 우리를 이 시대와 함께하도록 묶어주는 밧줄이기에.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프레스콜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프레스콜이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네 번째로 돌아온 이 작품은,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청년 윤동주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고뇌와 아픔을 전한다. 오는 4월 2일까지. 박영수·온주완·김도빈·조풍래·김용한·하선진·송문선 등.

▲ 윤동주와 이선화 극 중 이선화는 가상인물이다. 이화여전에 다니는 그는, 윤동주의 시를 읽으며 위로 받는 그 시대의 청춘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응원에 힘입어 윤동주는 '시인' 윤동주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남은 그의 시들이 오늘의 우리에게도 위로를 준다. ⓒ 곽우신


"시를 써야죠. 우리말로 된 아름다운 시."

"이 시대에 시라뇨. 아우성보다도 못한 시. 강아지의 신음보다도 더 조악한 시. 시라는 말, 우스워요. 아니, 어쩌면 난 세상을 향해 욕을 하고 싶은지도 몰라요. 거친 말들을 한바탕 쏟아낼 용기가 없어서, 아름다운 말들 속에 숨어있는지도 모르죠."

"우린, 주문이 필요했는지도 몰라요. 이 시대에 우리를 붙잡아 줄 든든한 밧줄 같은, 시. 제겐 그게 동주씨의 시였어요. 시는 창피한 게 아니에요. 동주씨가 시인임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부끄러움의 시인 윤동주는 그렇게 탄생했다. 창씨개명을 하고, 일본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그는 손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재일조선인 학생들과 함께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다가, 그 아침을 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지만…. 눈을 감기 직전, 그가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을 환상 속 동지들이 되물었다. 시가 무슨 소용이냐고, 시를 뭐 하러 쓰느냐고. 윤동주는 거칠게 대답한다. 시를 쓰겠다고, 자신은 시인이라며. 그 와중에 자신에게 용기를 줬던 이선화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그때 윤동주의 마음속에 들렸던 것은, 이선화와 함께 언젠가 올 세상을 그리며 불렀던 노래가 아니었을까.

"시, 밤마다 몇 번이고 읽었던 시. 메마른 이 세상 단비 같았던, 너의 시에 얼마나 고마웠는지. 시, 밤새워 몇 번이고 고쳐 쓴 시. 뉘우침 없는 세상에 실망하며 쓴 시. 바위 같은 고통, 지울 수 없어. 지우지 못해. 매일 시와 함께 시를 얘기하며, 숨 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나, 먼 훗날 자유로운 날이 온다면, 너와 함께 웃으며 숨 쉬며 살아가리. 그렇게 그 세상에 살고 싶다. 너와 시와 함께." -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No.06 '얼마나 좋을까' 중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때, 윤동주가 돌아왔다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프레스콜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프레스콜이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네 번째로 돌아온 이 작품은,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청년 윤동주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고뇌와 아픔을 전한다. 오는 4월 2일까지. 박영수·온주완·김도빈·조풍래·김용한·하선진·송문선 등.

▲ 듣고 싶다, 네 시! 북간도로 떠나는 강처중. 거칠게 투쟁하던 그는 결국 일제의 탄압에 몸을 피한다. 그런 처중 앞에서 부끄러워하던 윤동주. 하지만 처중은 가는 길에 외친다. 네 시를 듣고 싶다고. 윤동주는 그렇게, 시인이 된다. ⓒ 곽우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세상, 윤동주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가 돌아왔다. 작년 삼연에 이어 벌써 네 번째이다(관련 기사: 달을 쏜다 나도, 스물아홉 윤동주처럼). 지난 21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네 번째 개막을 맞은 <윤동주, 달을 쏘다>는 오는 4월 2일, 언제나 서울예술단의 작품이 그렇듯 짧은 만남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윤동주, 달을 쏘다>는 장점이 많은 작품이다. 감정의 파고를 증폭시키는 절절한 음율, 여기에 서정적인 가사들이 잘 붙었다. 군데군데 서울예술단의 주특기인 군무도 도드라진다. '우리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투박하지 않게, 오히려 세련되게 시공간적 배경과 메시지를 버무렸다. 윤동주의 시를 가사로 삼아 노래하는 대신, 노래와 시를 분리시켜 배우의 감정에 따라 낭송하도록 한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십자가'나 '별 헤는 밤'을 읊는 부분은, 뮤지컬도 노래가 아닌 대사로 감동을 줄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 극을 이끌어가는 박영수 배우의 역량도 빼놓을 수 없었다. 프레스콜 현장에서 스스로 인생 캐릭터로 꼽을 정도로, 박영수 배우와 극 중 인물 윤동주는 이제 분리하기 어렵게 됐다. 공연을 거듭할수록 더 탄탄해지는, 그의 말마따나 더 강하게 활시위를 겨누는 시인이 되고 있다. 시대에 대해 고뇌하고, 벗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갈등하고, 그 와중에 시를 놓지 않기 위해 절규하는 청춘을 특유의 넘버 소화력과 연기로 표현한다.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프레스콜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프레스콜이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네 번째로 돌아온 이 작품은,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청년 윤동주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고뇌와 아픔을 전한다. 오는 4월 2일까지. 박영수·온주완·김도빈·조풍래·김용한·하선진·송문선 등.

▲ '슈또풍' 삼총사 서울예술단을 대표하는 세 얼굴. 박영수(윤동주), 김도빈(송몽규), 조풍래(강처중) 배우의 케미스트리는 특별하다. 박영수 배우와 조풍래 배우는 서예단을 나왔지만, 이번 시즌에도 객원으로 함께 했다. 한 무대에서 이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오래도록 보고 싶다. 아마 다음 시즌에도 함께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 곽우신


팬들 사이에서 흔히 '슈또풍'으로 불리는 박영수(윤동주)-김도빈(송몽규)-조풍래(강처중) 삼총사의 케미스트리는 아마 국내 공연계에서 대체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서울예술단에서 함께 해온 이들 중 예술단에서 나온 배우도 있고, 여전히 활동하는 배우도 있으나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고 호흡을 맞추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다.

고민하는 청춘 그리고 어두운 시대에 분투했던 이들의 저항정신을 그렸다는 점에서 시국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많다. "교정의 지성은 아직 눈으로 덮여 있고"에서 소방 호스로 물을 틀어 학생들을 탄압하는 어느 대학교가, "교과서의 지식은 아직 어둠에 묻혀 있네"에서 국정교과서 논란을 떠올린다면 과한 해석일까. "너는 아느냐, 조선에는 언젠가부터 봄이 사라졌다는 것을"이라고 노래('사라진 봄')하는 <윤동주, 달을 쏘다>는 극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감동이 본래 크다. 계절적으로 그리고 시대적으로 새 봄을 맞이한 지금 여기의 대한민국과 맥락적으로 결합하며 그 감동은 배가된다.

<윤동주, 달을 쏘다>는 이처럼 당시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아픔에 대처하기 위해 윤동주가 선택했던 방법을 옹호하고 있다. 이 부끄러움의 시인에게 더는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위로한다.

시를 쓴다는 것의 의미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프레스콜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프레스콜이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네 번째로 돌아온 이 작품은,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청년 윤동주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고뇌와 아픔을 전한다. 오는 4월 2일까지. 박영수·온주완·김도빈·조풍래·김용한·하선진·송문선 등.

▲ 시를 쓴다는 것 당장의 투쟁이 급한 시국에, 시를 쓴다는 게 참 별 것도 아닌 일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청춘의 아픔이 묻어났던 그 시들은, 당시 청년들의 가슴을 위무했다. 문화는, 문화로써, 문화의 방법으로 저항한다. ⓒ 곽우신


"묻는 사람 하나 없어도, 자꾸 되풀이되는 말. 아픔을 배우고, 청춘을 바치고, 써내려간 시는 나에게 너에게 무엇인가. 시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No.11 '시를 쓴다는 것' 중에서

재일조선인 학생들끼리의 논쟁에서, 극 중 윤동주는 우리말로 된 문예지를 만들자고 한다. 문예지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모으고, 공감대를 넓히고, 그렇게 싸우기 위한 기반을 건설하고자 한다. 다른 학생들은 반발한다. 일제의 패망이 가시권에 들어섰고, 지금도 수많은 동포들이 전쟁터로 끌려가 목숨을 잃고 있는데 한가하게 문예지나 만들어서 무엇하느냐고. 그러나 시를 쓴다는 것의 의미를 자문하던 윤동주는, 그 의미를 찾았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시는 밧줄이다. 서로와 서로를 연대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밧줄.

'지금 당장'을 바꾸기 위한 수단을 논하며 문화를 등한시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회를 바꾸는 문화의 힘을 이야기하면서, 굳이 기동전이냐 진지전이냐의 전략적 논쟁은 필요 없다. 급진이냐 온건이냐의 지리한 구분도 관계없다. 사회의 변혁을 이끄는 데 문화는 언제나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문화는 힘이 세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이 다 중요하듯이, 문화 역시 이 사회에 다종다양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영역이다. 문화의 진보 없이는 시대의 변화를 담보할 수 없다는 걸 역사가 증명한다.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프레스콜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프레스콜이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네 번째로 돌아온 이 작품은,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청년 윤동주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고뇌와 아픔을 전한다. 오는 4월 2일까지. 박영수·온주완·김도빈·조풍래·김용한·하선진·송문선 등.

▲ 총 대신 연필로 송몽규나 강처중의 투쟁도 일제에 맞서는 방법 중 하나였고, 윤동주의 저항 역시 또 다른 종류의 투쟁이었다. 어떤 투쟁이 더 낫고, 더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이 모든 것이, 각자에게 최선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 곽우신


동서고금을 통틀어,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이 문화를 조종하려고 한 건 그 때문이었다. 권력을 위한 도구로 문화를 종속시키고, 어떤 인물, 어떤 세력, 어떤 이데올로기를 찬양하도록 종용했다. 일제가 우리말과 우리 문화를 억압하고, 일본식 문화를 한반도에 심으려고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게 권력에 입맛에 따라서 문화는 검열을 당했고, 피폐해졌다. 유럽의 파시즘 정권도, 우리나라의 독재 정권도 마찬가지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특정 영화를 빌미로 기업에 외압을 행사하고, 때로는 직접 <환생경제> 같은 치졸하고도 악질적인 작품을 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억압에 맞서 분연히 일어서는 것 역시 문화이다. 문화를 아무리 권력이 순치하려고 해도, 그 안에 내재된 저항 정신을 쉬이 빼앗을 수 없다. 촛불의 바다가 광장에서 일렁일 때, 그 자리엔 언제나 문화가 함께 했다. 광화문 블랙텐트가 그러했고,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 배우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시가 낭송되고, 노래가 울려 퍼지고, 공연이 올라왔다.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이 그곳에서 촛불을 들고, 저 빛의 파도 중 하나가 되어 함께 물결쳤다. 시대처럼 올 아침이 눈앞에 보이는 듯한 이 신새벽을 맞이할 수 있었던 건, 이 광장에 문화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프레스콜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프레스콜이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네 번째로 돌아온 이 작품은,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청년 윤동주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고뇌와 아픔을 전한다. 오는 4월 2일까지. 박영수·온주완·김도빈·조풍래·김용한·하선진·송문선 등.

▲ 창씨개명 그리고 일본으로 일본으로 가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창씨개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윤동주와 송몽규는 창씨개명을 해야 하는 자신들의 처지가 부끄럽다. 하지만 벗들은 오히려 그들을 위로한다. 이름을 바꿔도, 윤동주는 윤동주다. 그 안의 영혼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윤동주는 히라누마 도쥬가 아니라 윤동주로 남아 시를 쓴다. ⓒ 곽우신


그러니, 시를 쓴다는 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시를 쓰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윤동주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시를 남겼다.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시대임에도, 그는 열심히 시를 남긴다. 이 시들을 언젠가 자유롭게 노래할 날이 오리라 믿었기에. 지금 쓰는 시가 그 날을 앞당기는 밀알이 되리라 기대했기에. 윤동주 탄생 100주년인 지금, 여전히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시대, 윤동주의 시를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건넨 거친 농담을 어떻게든 웃어 넘기려했던 젊은 날을, 한 줄 시로 담으려던 청년들의 잉크가 물들인 푸른 손을 누가 기억할까." -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No.09 '누가 기억할까' 중에서

저 능선이 어스름하게 밝아온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려 하는 이 시점에, 아직 날이 바뀐 줄 모르고 여전히 하늘에 걸려 있는 허연 달이 있다. 차가운 빛을 잃었지만 미련 때문에 여전히 저 위에서 버티고 있는 달. 어두운 밤 동안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음에도 여전히 반성할 줄 모르는 저 새벽달. 광장에 태극기를 들고, 마이크 앞에서 온갖 흰소리를 쏟아내는 그들을 향해, 우리가 활을 겨눌 차례다.

"좀 더 탄탄한 갈대로 화살을 삼아서, 무사의 마음으로. 무사의 마음으로 달을 쏜다. 통쾌하다. 부서지는 저 달빛이. 우습구나 쪼개지는 저 그림자." -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 No.21 '달을 쏘다' 중에서



<윤동주, 달을 쏘다>의 포스터 지난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한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포스터. 오는 4월 2일까지 공연된다.

▲ <윤동주, 달을 쏘다>의 포스터 서울예술단의 대표 레퍼토리 공연, 창작가무극 <윤동주, 달을 쏘다>의 프레스콜이 지난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다. 윤동주 시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올해 네 번째로 돌아온 이 작품은, 시를 쓰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청년 윤동주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의 고뇌와 아픔을 전한다. 오는 4월 2일까지. 박영수·온주완·김도빈·조풍래·김용한·하선진·송문선 등. ⓒ 서울예술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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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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