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배우 스기사키 하나(오른쪽)와 나카노 료타 감독(왼쪽).

배우 스기사키 하나(오른쪽)와 나카노 료타 감독(왼쪽).ⓒ 모비


각각 감독과 배우로 일본 영화계의 앞날을 짊어질 두 사람이 한국을 찾았다. 오는 23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행복 목욕탕>의 나카노 료타 감독과 주연배우 스기사키 하나 얘기다.

20일 내한해 2박 3일의 일정을 소화 중인 두 사람을 21일 낮, 강남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만났다. "어제 이른 아침 도착해 내일 아침 일찍 출국한다"는 만만찮은 스케줄에도 "맛있는 한국 음식들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는 이들의 표정에는 피곤함보단 기분 좋은 설렘이 엿보였다.

영화 <행복 목욕탕>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중년 여성 후타바(미야자와 리에 분)의 이야기다. 남편 가즈히로(오다기리 죠)와 딸 아즈미(스기사키 하나 분), 여기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딸 아유코(이토 아오이 분)와 우연히 만난 히치하이커 타쿠미(마츠자키 토리 분)까지. 영화는 후타바가 이리저리 찢어진 가족을 한데 모으고 새로운 식구를 보듬는 과정을 애정이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세계 어느 나라의 관객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나카노 료타 감독의 말대로, 이 작품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가족의 사랑에 대해 역설한다.

기쁨과 슬픔의 공존

 <행복 목욕탕> 나카노 료타 감독.

<행복 목욕탕> 나카노 료타 감독.ⓒ 모비


"<행복 목욕탕>을 한마디로 소개하면 삶이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엄마의 이야기예요. 이렇게 말하면 흔하디 흔한 가족 드라마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그 안에 숨겨진 비밀들이 있죠. 주인공 후타바는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만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고 혈연과 무관하게 사랑을 주는 사람입니다. 의무나 책임 때문이 아니라 저절로 우러나는 마음으로 가족들을 대하는 사람이에요. 예전에 비하면 소통하고 유대를 맺기 어려워진 현실 속에서, 이 영화는 타인을 진지하게 배려하고 감싸주는 사랑을 그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카노 료타 감독)

극중 후타바의 딸 아즈미로 분한 스기사키 하나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캐스팅에 낙점됐다. "이번 작품 전에는 하나와 만난 적도 없었다"는 감독은 "TV를 통해 보고 연기에 대한 감이 좋다고 느꼈다"며 "눈동자에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좋은 배우다. 여러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앞서 <화장실의 피에타>(2015)에서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캐릭터를 연기한 스기사키 하나는 "두 작품의 캐릭터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라고 강조했다.

 배우 스기사키 하나.

배우 스기사키 하나.ⓒ 모비


"<행복 목욕탕> 크랭크인 전날 <화장실의 피에타>가 일본에서 개봉했어요. ​그 작품도 제가 마음을 쏟아 의미 깊은 작품이에요. 영화가 개봉하니까 캐릭터에 몰입했던 마음이 되살아나 힘들었는데 잘 추스르고 촬영에 들어갔어요. 소중한 사람이 시한부 인생이란 점에서 ​두 영화 속 제 캐릭터 설정이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저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제가 출연한 작품들의 캐릭터가 놓인 상황이 비슷하더라도 각각의 인물을 들여다보면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 단 한사람의 인간인 거죠." (스기사키 하나)

목욕탕이라는, 아주 특별한 공간

극중 가족이 함께하는 공간이자 가족애의 모티프로써 공중목욕탕을 선택한 건 감독 자신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극중 아즈미처럼 자신 또한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손에서 자랐다"는 그는 "어린 시절 집 근처에 대중목욕탕이 있어서 다주 다녔다"며 "그곳은 제게 재미있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소였다"고 회상했다.

 나카노 료타 감독.

나카노 료타 감독.ⓒ 모비


"목욕탕에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끼리 탕 안에서 말을 주고받고 몸을 같이 데우잖아요. 신기하고 묘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죠. 살면서 그런 소통의 장이 부족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래된 대중목욕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과거처럼 따뜻한 인간 관계와 유대를 그리고 싶었던 거죠.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목욕탕이 배경인데, 그 장면을 위해서라도 꼭 목욕탕이어야만 했어요." (나카노 료타 감독)

그렇게 만들어진 <행복 목욕탕>은 제40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우수 여우 주·조연상을 수상하고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일본 관객의 뜨거웠던 반응에 대해 감독은 "영화 개봉 이후 편지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며 "관객 각자가 자신의 가족에 관련된 어느 부분에 이 영화를 포개어 바라보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제각각 상황은 다르지만 어떤 부분에서 자신의 가족사를 영화에 링크시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거나 자녀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가족에 대한 것일 수도 있죠. 물론 애절하고 고통스러운 사랑도 있지만, 이 영화는 배려하고 감싸주는 따뜻한 사랑 이야기예요. 그래서 관객의 어떤 부분을 어루만질 수 있었고, 예전과 다르게 거리감이 있는 현실 관계 속에서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울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카노 료타 감독)

평단과 관객의 고른 만족

 배우 스기사키 하나(왼쪽)와 나카노 료타 감독(오른쪽).

배우 스기사키 하나(왼쪽)와 나카노 료타 감독(오른쪽).ⓒ 모비


영화가 일본 평단과 관객을 골고루 감동하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배우들의 공이 컸다. 감독은 "이번에 함께한 배우들이 다들 믿음이 갔다"며 배우들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더불어 연출자로서 자신의 역할 대해 "배우가 연기를 본인답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촬영 현장이란 게 카메라와 미술 등이 담긴 무대이기도 하지만, 인물 사이의 관계와 사건이 펼쳐지는 공간이기도 해요. 연출자는 그 곳의 분위기를 잘 만들어서 배우들이 가진 것들을 역할에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배우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거죠."

"배우 중에서도 오다기리 죠는 좀 특별했어요. 그는 자연스럽고 정형화된 연기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대본이 이러이러 하니까 이렇게 해달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지 않았어요. 그런다한들 어차피 그는 자유롭게 연기할 테니까요. 매일 아침 오늘 촬영분을 어떻게 찍으면 재미있을지 이야기한 뒤에 촬영에 들어갔죠. 영화에서 가즈히로가 집 앞에서 아즈미를 기다리는 장면이 있는데 담배를 피우면서 뜬금없이 기다란 재떨이를 들고 있거든요. 그 장면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배우 스기사키 하나(왼쪽)와 나카노 료타 감독(오른쪽).

배우 스기사키 하나(왼쪽)와 나카노 료타 감독(오른쪽).ⓒ 모비


두 사람은 한국 영화에 대해서도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감독은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고 오래전부터 배두나 배우를 좋아했다. 언젠가 같이 작업하고 싶다"며 좋아하는 한국 감독으로는 이창동 감독을 꼽았다. 스기사키 하나는 "한국영화 중 처음 본 게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였다"며 "큰 충격을 받았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게 아니라 영화 속 세상에 실제로 사는 인물들 같았다"고 회상했다.

한국 관객을 향한 마지막 인사에서 나카노 료타 감독은 "<행복 목욕탕>에는 지금까지 없던 뜨거운 사랑이 담겨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어 "지금까지 만난 적 없는 작품을 접한다는 생각으로 극장을 찾아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스기사키 하나 또한 진심 어린 표정으로 한국 관객에 대한 감사와 당부의 메시지를 전했다.
"한국은 제게 많은 자극이 되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곳이에요. 이런 나라에 제가 출연한 작품을 선보이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한 분이라도 더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를 본 뒤 좋았다는 마음이 드신다면, 여러분의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권해주시길 바랍니다." (스기사키 하나)


덧붙이는 글 <행복 목욕탕> 수상내역
제40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여우조연상 (스기사키 하나)
제40회 일본 아카데미상 우수 여우주연상 (미야자와 리에)

영화는 23일부터 CGV에서 개최되는 JFF 페스티벌에서도 상영된다.

"우리집 연예인은 태양... 나는 나와 싸우고 있다"

[inter:view] 빅뱅 태양에 가려진 배우 동현배의 존재감... 4년차 그를 버티게 하는 힘

6년 전 만남, 으레 신인이라면 나눴을 각오와 목표가 유독 간절하게 들렸었다. 영화 <잠복근무>(2008)의 단역을 거쳐 단편 <변신이야기>(2011)로 작게나마 주연을 맡았던 배우 동현배(34)에 대한 기억이다. 가수이자 친동생인 태양과 경쟁하듯 어릴 땐 노랠 불렀고, 음악이 좋아 고등학생 땐 그룹사운드 일원으로 활동하다 담당 선생님의 권유로 연기에 맛을 들였다.그 후로 동현배는 외길 인생을 걸었다. 지금도 예능 프로나 일부 기사에선 '빅뱅 태양의 형'이라는 수식어가 앞에 붙곤 하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우리 집에서 연예인 역할은 태양이 한다"며 짐짓 웃어 보였다.최근 개봉한 영화 <비정규직 특수요원>으로 동현배는 4년 만에 상업영화에 모습을 드러냈다. 극중 좌충우돌 형사 나정안(한채아 분)의 동료로 등장해 활발한 액션과 동시에 나름 짝사랑 연기도 펼쳤다. 길지 않은 등장이었음에도 동현배의 존재감이 드러나기엔 충분했다. "정말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서 내 역할로 연기하는 거라 잘하고 싶었고, 열심히 준비했다"며 그는 낮은 목소리를 말했지만 그 안에 일종의 독기가 느껴졌다. 영화 출연에 대한 간절함의 화학작용이었을까.치열함 더하기 치열함 지난해 동현배는 연극 무대에 섰고, 몇 편의 단편을 찍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해 액션스쿨에도 꾸준히 다녀 몸을 다져왔다. <비정규직 특수요원> 속 형사 재용(동현배 분)은 어쩌면 그런 그에게 선물 같은 캐릭터였을지도 모른다."연극 무대에 함께 한 친구가 자긴 모든 스트레스를 무대 위에서 다 해소한다더라. 매회 같은 연기를 보이는 게 아니거든. 그게 부럽기도 했고, 그 기분이 궁금하기도 했다. 이번 작품이 그런 면에선 일종의 한을 푸는 작품이었다. 감독님에게 욕을 먹을지언정 치열하게 더 준비해가려 했다. 액션 장면도 사실 촬영 현장에서 30분 정도 연습하고 만들어진 거다. 즉석에서 제안이 왔는데 진짜 감사했지. 안 그래도 속으로 '액션 한번 원 없이 해봤으면' 생각하고 있었던 때였다(웃음).일단 영화는 두 여성(강예원, 한채아)이 주인공이다. 이번 영화를 계기로 보다 다양한 영화가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 <한공주>를 같이 한 천우희씨를 만났었는데 그런 비슷한 얘길 나눴다. 좋은 배우가 정말 많은데 작품이 더 다양해진다면, 내 스스로도 그렇고 관객 분들 입장에서도 더 행복할 것 같다."이번 작품으로 동현배는 가족들을 당당히 시사회에 초대하게 됐다. 그간엔 너무 역할이 작거나 크더라도 단편 영화들이었기에 애써 모시지 못했지만 이번만큼은 당당히 모셨다. "오디션 볼 때보다 가족 앞에서 연기하는 게 더 떨리더라"고 그가 운을 뗐다. 그만큼 오랫동안 묵묵히 지켜봐 온 이들에게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태양의 이야기도 나왔다."우리 집에서 연예인은 단연 태양이다. 연기한답시고 혹여나 내가 부모님 기대에 못 미치는 것 아닌가 한때는 마음이 좀 그랬다. 언제였던가, 어머니랑 술 한 잔을 하는데 '영배(태양의 본명)는 참 연예인 같다'고 하시더라. 그럼 난? 물었는데 '넌 아들 같아' 이러셨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뭔가 복잡했다. 알게 모르게 지난해에 내가 가족들 눈치를 본 거 같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혼자 동 떨어진 느낌이었다. 한동안 대화를 안 하기도 했다. 그렇게 집에서는 수다쟁이인데(웃음).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설날 때 편지를 써서 드렸다. 4장 정도 되더라. 그렇게 쓴 건 처음이었다. 요약하자면 언젠가 인정받을 테니까 연기 계속하겠다는 내용이었다."자신과의 싸움 "고등학생 때 같이 연기 연습하고 준비하던 친구들이 다 그만뒀다"며 담담하게 말을 잇는 그의 모습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따지고 보면 스타 배우든 무명 배우든 관계자들의 선택을 받고, 나아가 대중의 끊임없는 사랑이 필요한 비정규직에 해당한다. 지난해 배우 다니엘 헤니, 수현 등이 소속한 회사와 계약하기 전까지 3년 정도 홀로서기를 시도했던 동현배는 오디션 기회를 얻기 위해 자기 프로필을 들고 여러 영화 제작사를 전전하던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프로필은 한쪽으로 치워지거나 버려지기 일쑤였다."(내 입장에선) 비정규직 이 단어 하나만으로 와 닿긴 한다. 요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절 아는 분도 있고 모르시는 분도 있는데, 배우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가 쉽지 않을 때가 있다. 뭘 했다고 할 게 많지 않으니까. 어떤 분은 예능인으로 보기도 하더라. 그래도 나름 떳떳하게 배우라고 하긴 한다. 모든 배우들이 그런 면에선 떳떳했으면 한다."운명적이라 생각한 배우의 길을 벗어나고 싶었을 땐 없었을까. "왜 없었겠나"라며 그가 답했다. "왜 이 길을 택해서 힘들게 살까. 이게 아니었으면 동생과도 더 재밌게 지냈을 거고, 가족과도 더 잘 지냈을 텐데"라던 동현배는 "배우를 안 하면 뭘 할 수 있을까 다른 직업을 생각해보기도 했다"며 멋쩍은 듯 웃어보였다. 이런 면에선 동생과 나눌 이야기가 많아 보였다."사실 동생과 밥 한 번을 같이 먹기 힘들다. 작년에 한 번 같이 고기를 먹긴 했다. 주로 내가 일 얘길 먼저 하는 편이다. 근데 어머니를 통해 이미 들어서 알고 있더라(웃음). 동생은 내 나이나 방향을 걱정하고, 난 동생의 건강을 염려하곤 한다. 요즘엔 문자에 하트도 보내고 웃음 표시를 보내기도 한다. 영배가 좀 달라졌다(웃음)."무거울 수 있는 질문을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받아낸다. 이것 역시 그가 지난 10년 여를 버텨온 힘일 것이다. 다행인 건 올해 들어 바쁘게 오디션을 보고 있다는 사실. "최근 4편의 영화 오디션을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며 "기회 자체가 소중함을 알기에 더 치열하게 하겠다"고 각오를 다져 보였다.바야흐로 봄이 다가온다. 올해 <비정규직 특수요원> 출연으로 첫 단추를 나름 잘 채운 그의 이후를 응원해본다.

"배우? 특별해선 안된다"... 평범함에서 빛난 정경호

[inter:view] <미씽나인>은 혹평, 연기는 호평... 그는 계속 재발견 돼야 한다

이 남자. 긍정적이라고 해야 할까, 속없다 해야 할까. "데뷔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인생캐릭터'를 만나진 못한 것 같은데, 초조하진 않나"라는 조금은 아플 질문에 허허 웃으며 나온 답이다. 자신은 "(아직 '인생캐'를 만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장점이라 생각한다"면서. 13일 서울 강남구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배우 정경호(33)는 진지함 속에 가벼움을, 가벼움 속에 묵직함을 담고 있었다. 혹평 쏟아진 <미씽나인>... 정경호는 빛났다 <미씽나인>의 시작은 호평일색이었다. 해외 공연을 위해 스타들을 싣고 중국으로 향하던 전세기가 추락했고, 사고에서 살아남은 9명은 무인도에 떨어졌다. <미씽나인>의 초반 장르는 분명 어드벤처물이었다. 지금까지 TV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소재와 장르라 신선했다. 게다가 초반부 사건 진상 규명보다 그저 모든 것을 덮으려는 정부의 모습은 세월호를 연상시키며 큰 호응을 받았다. 첫 회 시청률은 6.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에 그쳤지만, 극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명품 드라마'의 탄생을 기대했다.하지만 드라마는 어드벤처물에서 범죄스릴러물로 바뀌었고, 호평이 혹평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경호에게도 고백했지만, <미씽나인> 후반부 전개는 보기 힘들 정도로 답답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드라마를 놓지 않았던 이유는, 스토리의 빈 곳을 채워나간 배우들의 호연에 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었던 것은 철부지와 리더 사이를 오가며 성장해 나가는 정경호(서준오 역). 그로서는 15년째 듣는 말이라 지겹겠지만, 다시 한 번 '정경호의 재발견'이라 할 만했다. '배우 정경호'는 호평을 받았지만, 드라마에는 혹평이 쏟아졌다. 주연배우로서 아쉬울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이보다 잘 맞는 팀은 또 없을 것"이라면서 <미씽나인>으로 얻은 것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굉장히 피곤했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그의 말투와 표정에는 팀원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있었다. 후반부 개연성 잃은 전개에 대해 "태호가 벌여놓은 악행이 많아 모든 것들을 빠르게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지만, "현장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시청률이 떨어져도 우리는 우리 이야기들을 해야 하지 않나. 시청률에 연연하기보다, 서로 '으쌰으쌰' 하면서 즐겁게 촬영했다"고 말했다. 오정세와 찰떡 케미... "거울 보고 연기하는 기분" 무겁고 진지한 극 안에서, 예상치 못한 코믹함으로 극에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는 것은 정경호와 오정세의 몫이었다. 둘의 호흡이 어찌나 찰떡같았는지, 오정세는 최근 인터뷰에서 "(정경호와 연기하며) 내 자신과 연기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표현했고, 정경호는 "거울 보고 연기하는 것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거울을 보고 연기하는 것 같았다'는 말은, 두 배우의 작품을 보는 시각과 변주를 주는 방향과 크기가 그만큼 비슷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연출자 공감이 필수적이다. 연출자가 그들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마음껏 연기 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다행히도, 최병길 PD는 두 배우의 의도를 정확히 캐치했고, 톤 조절도 해줬다. 그는 새로운 장르, 새로운 상황, 새로운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군 입대로 2년여간 작품을 쉬는 동안 "연기를 못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더 다양한 상황을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연예인 역할 네 번, "가장 닮은 건 서준오" 늘 새로운 시도를 추구하는 정경호지만, 지금까지 무려 네 번 연예인을 연기했다. 물론 모두 성격과 놓인 상황이 다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최윤은 철부지였고,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유정훈은 장애를 가진 과거의 아이돌, <롤러코스터>의 마준규는 안하무인에 생각 없는 톱스타였다. 그는 네 번의 연예인 연기 중, <미씽나인>의 서준오를 자신과 가장 닮은 캐릭터로 꼽았다. 하지만 그는 이런 마음을 '갈증', '초조함', '불안함' 등으로 표현하기를 꺼렸다. 지향하고 있는 바를 '목표'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포장하지도 않았다. 지난겨울 제주도에서 무인도 분량을 촬영하며 힘들었겠다는 말에는 "추위 말고는 그리 큰 고생은 없었다"고 말했고, 지난 기간 조바심을 느낀 적은 없는지 물었을 때는 "그렇게까지 심각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언뜻 자기 감정 드러내는 걸 부끄러워하는 성격인가 싶었지만, 1시간가량 대화를 이어가다보니 그게 그의 솔직한 마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아버지 작품, 너무 하고 출연하고 싶지만..." 정경호는 2003년 KBS 공채탤런트 20기로 데뷔했다. 그는 연기를 시작하던 그때와 지금의 자신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연기를 하면할수록 "감독의 오케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연기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대사를 쉽게쉽게 치지 않았던 것 같다"는 말로 연기에 대한 그의 진지함을 표현했다.연기를 막 시작하며, 그 나름대로 세운 목표가 있지는 않았는지, 그때 그 기대치에 지금 얼마만큼 도달해 있는지 묻자, "그런 기대치는 없었다"며 "와 난 그런 게 없었구나. 보통 그런 게 있나요?" 라며 뒤늦은 깨달음을 토해냈다. "지금이라도 10년 뒤의 목표를 한 번 세워보라"고 제안하자, "이 일(연기)만 계속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미리부터 구체적 목표를 세우는 스타일은 아니라던 정경호에게도, 오래전부터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아버지 정을영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 그의 아버지는 <목욕탕집 남자들> <내 남자의 여자> <엄마가 뿔났다> 등을 연출한 대표적인 스타 PD이자 명감독다. 같은 분야에 큰 성과를 이룬 아버지가 있다는 건 분명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정경호는 "어릴 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젠 그저 영광"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와는 친구 같은 관계"라는 그는 "늘 문제가 있으면 아버지랑 이야기 많이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 하면 떠오르는, 무뚝뚝하고 어색한 관계도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연기를 하면 할수록, 사랑하고 집중할수록 아버지가 대단하게 느껴진단다. 그래서 감히 아버지에게 조언을 해달라거나, 평가해 달라거나 하는 부탁을 하지 못했다고. 아버지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지 묻자 "전 있어요. 너무 하고 싶은데 안 된대요"라는 속상함이 가득 담긴 답이 돌아왔다. 아들이기 때문인 건지, 배우 정경호가 마음에 안 들어서인 건지 물어보지 그랬느냐고 농담하자, "둘 다인 것 같다"며 웃었다. 아들이라 더 조심스럽긴 하겠지만, 자칫 영영 아버지 작품에 출연할 기회가 없을 수도 있지 않느냐 말하자 "'이번엔 같이 하자'고 하면, 항상 '마지막에'라고 하신다"고 정을영 감독의 반응을 전했다. "마지막 작품은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던 그는, 이내 "마지막 작품이라니, (말만이라도) 너무 슬프다"며 금세 차분해졌다. '배우' 정경호, '연예인' 정경호 유독 연예인을 많이 연기했던 배우이기에, 연예인 중에서도 연예인 같은 모습이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하지만 그는 "배우가 특별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옆집 아저씨, 오빠, 그런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는 것 아닌가. 추구하는 연기스타일도 편안함"이라고 말했다.하지만 배우로, 연예인으로 살다보면 평범함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본인은 "사람들 시선 신경 안 쓰고 편하게 산다"고 했지만, 그게 어디 100% 되겠는가. 공개 연애 중이지만, 당장 데이트를 할 때도 여느 평범한 커플과 같을 순 없을 텐데. 정경호는 그 조심스러움의 이유조차 "유명인이라서가 아니라, 이런저런 역할을 표현해야하는데, 나쁜 모습으로 기억되면 안 될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그는 '배우 정경호'로 살아갈 뿐, '연예인 정경호'는 전혀 연연하지 않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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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내가 읽은 이야기' 를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습니다.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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