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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수목미니시리즈 <미씽나인>에서 서준오 역의 배우 정경호가 13일 오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긍정적이라고 해야 할까, 속없다 해야 할까. 정경호는 "데뷔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인생캐릭터'를 만나진 못한 것 같은데, 초조하진 않나"라는 조금은 아플 질문에 허허 웃었다.ⓒ 이정민


"데뷔한 지 15년 됐는데, 지금도 작품 할 때마다 '재발견'이라는 소리를 해주세요. 이렇게 오랜 기간 계속 '재발견' 소리를 듣는 것도 어려운 일이잖아요. (웃음) 제게는 이보다 큰 칭찬은 없는 것 같아요."

이 남자. 긍정적이라고 해야 할까, 속없다 해야 할까. "데뷔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인생캐릭터'를 만나진 못한 것 같은데, 초조하진 않나"라는 조금은 아플 질문에 허허 웃으며 나온 답이다. 자신은 "(아직 '인생캐'를 만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장점이라 생각한다"면서. 13일 서울 강남구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배우 정경호(33)는 진지함 속에 가벼움을, 가벼움 속에 묵직함을 담고 있었다.

혹평 쏟아진 <미씽나인>... 정경호는 빛났다 

 MBC수목미니시리즈 <미씽나인>에서 서준오 역의 배우 정경호가 13일 오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호평 받으며 시작한 <미씽나인>은 후반부, 길을 잃은 스토리와 답답한 전개로 점점 민심을 잃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정경호라는 배우의 매력은 빛이 났다.ⓒ 이정민


<미씽나인>의 시작은 호평일색이었다. 해외 공연을 위해 스타들을 싣고 중국으로 향하던 전세기가 추락했고, 사고에서 살아남은 9명은 무인도에 떨어졌다. <미씽나인>의 초반 장르는 분명 어드벤처물이었다. 지금까지 TV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소재와 장르라 신선했다. 게다가 초반부 사건 진상 규명보다 그저 모든 것을 덮으려는 정부의 모습은 세월호를 연상시키며 큰 호응을 받았다. 첫 회 시청률은 6.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에 그쳤지만, 극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명품 드라마'의 탄생을 기대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어드벤처물에서 범죄스릴러물로 바뀌었고, 호평이 혹평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경호에게도 고백했지만, <미씽나인> 후반부 전개는 보기 힘들 정도로 답답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드라마를 놓지 않았던 이유는, 스토리의 빈 곳을 채워나간 배우들의 호연에 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었던 것은 철부지와 리더 사이를 오가며 성장해 나가는 정경호(서준오 역). 그로서는 15년째 듣는 말이라 지겹겠지만, 다시 한 번 '정경호의 재발견'이라 할 만했다.

'배우 정경호'는 호평을 받았지만, 드라마에는 혹평이 쏟아졌다. 주연배우로서 아쉬울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이보다 잘 맞는 팀은 또 없을 것"이라면서 <미씽나인>으로 얻은 것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분위기가 너무 즐거웠어요. 김상호 선배님이 잘 이끌어주셨고, 감독님도 유쾌하셨죠. 배우들도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너무 대단한 사람들이라 다들 어떻게든 한 마디씩 보태려고. 하하하. 집중이 안 됐어요. (웃음)"

굉장히 피곤했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그의 말투와 표정에는 팀원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있었다. 후반부 개연성 잃은 전개에 대해 "태호가 벌여놓은 악행이 많아 모든 것들을 빠르게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지만, "현장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시청률이 떨어져도 우리는 우리 이야기들을 해야 하지 않나. 시청률에 연연하기보다, 서로 '으쌰으쌰' 하면서 즐겁게 촬영했다"고 말했다.

"드라마를 마치면서, 다 아쉬웠어요. (배우들과) 헤어지는 것도 아쉽고, 또 이런 기회가 내게 올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만약 이런 기회가 다시 온다면, 결과를 알더라도 또 택할 것 같아요. 그게 <미씽나인>에 참여한 모든 배우들의 마음일 거예요."

오정세와 찰떡 케미... "거울 보고 연기하는 기분"

 MBC수목미니시리즈 <미씽나인>에서 서준오 역의 배우 정경호가 13일 오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경호가 <미씽나인>을 택한 이유는, 독특한 소재 때문이었다. 새로운 장르, 새로운 상황, 새로운 인물을 연기할 때 가장 즐겁다고.ⓒ 이정민


무겁고 진지한 극 안에서, 예상치 못한 코믹함으로 극에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는 것은 정경호와 오정세의 몫이었다. 둘의 호흡이 어찌나 찰떡같았는지, 오정세는 최근 인터뷰에서 "(정경호와 연기하며) 내 자신과 연기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표현했고, 정경호는 "거울 보고 연기하는 것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세 형은 정말 가진 게 많은 사람이에요. 생각지도 못한 말과 행동을 표현하니까, 저도 '아 그럴 수 있겠구나' 싶어 상상력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죠. 더 풍성해지는 느낌? 저는 정해진 대본이 있더라도, 메시지만 그대로 전달이 된다면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도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정세 형도 그랬어요. 열려있는 느낌이었죠."

'거울을 보고 연기하는 것 같았다'는 말은, 두 배우의 작품을 보는 시각과 변주를 주는 방향과 크기가 그만큼 비슷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연출자 공감이 필수적이다. 연출자가 그들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마음껏 연기 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다행히도, 최병길 PD는 두 배우의 의도를 정확히 캐치했고, 톤 조절도 해줬다.

"<미씽나인>을 선택한 이유는 소재가 독특했기 때문이었어요. 비행기가 추락하고, 무인도에서 생존하고... 이렇게 안 해본 것들을 연기하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는 새로운 장르, 새로운 상황, 새로운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군 입대로 2년여간 작품을 쉬는 동안 "연기를 못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더 다양한 상황을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아직 못 해본 역이 너무 많아요. 일단 검사, 의사, 변호사, 선생님 이런 전문직을 연기해본 적이 없어요. <한 번 더 해피엔딩>에서 기자 역을 해보긴 했지만, 전문성을 띤 연기는 아니었어서.(웃음) <롤러코스터>도 그렇고, <무정도시> <맨홀>도 그랬고... 독특한 상황, 센 것들을 연기하는 데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연예인 역할 네 번, "가장 닮은 건 서준오"

 MBC수목미니시리즈 <미씽나인>에서 서준오 역의 배우 정경호가 13일 오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금까지 네 번의 연예인을 연기한 정경호는, 자신과 가장 닮은 캐릭터로 <미씽나인> 서준오를 꼽았다. '무쓸모'인 점이 닮았단다.ⓒ 이정민


늘 새로운 시도를 추구하는 정경호지만, 지금까지 무려 네 번 연예인을 연기했다. 물론 모두 성격과 놓인 상황이 다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최윤은 철부지였고,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유정훈은 장애를 가진 과거의 아이돌, <롤러코스터>의 마준규는 안하무인에 생각 없는 톱스타였다. 그는 네 번의 연예인 연기 중, <미씽나인>의 서준오를 자신과 가장 닮은 캐릭터로 꼽았다.

"물론 다 제가 연기한 거니까, 제 모습이 조금씩은 있죠. 꼽으라면 서준오가 저와 제일 비슷해요. 비슷한 부분은... '무(無)쓸모' 라는 거?(웃음) 애는 순수한데 쓸모가 없잖아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지 묻자)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해서, 어떤 캐릭터에 빙의돼 표현하는 걸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래본 적도 없고요. 제 자신을 좀 더 알고, 제 자신을 좀 더 채워야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그는 이런 마음을 '갈증', '초조함', '불안함' 등으로 표현하기를 꺼렸다. 지향하고 있는 바를 '목표'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포장하지도 않았다. 지난겨울 제주도에서 무인도 분량을 촬영하며 힘들었겠다는 말에는 "추위 말고는 그리 큰 고생은 없었다"고 말했고, 지난 기간 조바심을 느낀 적은 없는지 물었을 때는 "그렇게까지 심각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언뜻 자기 감정 드러내는 걸 부끄러워하는 성격인가 싶었지만, 1시간가량 대화를 이어가다보니 그게 그의 솔직한 마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버지 작품, 너무 하고 출연하고 싶지만..."

 MBC수목미니시리즈 <미씽나인>에서 서준오 역의 배우 정경호가 13일 오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경호는 연기를 하면할수록 "감독의 오케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연기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그래서 언제부턴가 대사를 쉽게 칠 수 없었단다.ⓒ 이정민


정경호는 2003년 KBS 공채탤런트 20기로 데뷔했다. 그는 연기를 시작하던 그때와 지금의 자신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연기를 하면할수록 "감독의 오케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연기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대사를 쉽게쉽게 치지 않았던 것 같다"는 말로 연기에 대한 그의 진지함을 표현했다.

연기를 막 시작하며, 그 나름대로 세운 목표가 있지는 않았는지, 그때 그 기대치에 지금 얼마만큼 도달해 있는지 묻자, "그런 기대치는 없었다"며 "와 난 그런 게 없었구나. 보통 그런 게 있나요?" 라며 뒤늦은 깨달음을 토해냈다. "지금이라도 10년 뒤의 목표를 한 번 세워보라"고 제안하자, "이 일(연기)만 계속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미리부터 구체적 목표를 세우는 스타일은 아니라던 정경호에게도, 오래전부터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아버지 정을영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 그의 아버지는 <목욕탕집 남자들> <내 남자의 여자> <엄마가 뿔났다> 등을 연출한 대표적인 스타 PD이자 명감독다.

같은 분야에 큰 성과를 이룬 아버지가 있다는 건 분명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정경호는 "어릴 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젠 그저 영광"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와는 친구 같은 관계"라는 그는 "늘 문제가 있으면 아버지랑 이야기 많이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 하면 떠오르는, 무뚝뚝하고 어색한 관계도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연기를 하면 할수록, 사랑하고 집중할수록 아버지가 대단하게 느껴진단다. 그래서 감히 아버지에게 조언을 해달라거나, 평가해 달라거나 하는 부탁을 하지 못했다고. 아버지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지 묻자 "전 있어요. 너무 하고 싶은데 안 된대요"라는 속상함이 가득 담긴 답이 돌아왔다.

아들이기 때문인 건지, 배우 정경호가 마음에 안 들어서인 건지 물어보지 그랬느냐고 농담하자, "둘 다인 것 같다"며 웃었다. 아들이라 더 조심스럽긴 하겠지만, 자칫 영영 아버지 작품에 출연할 기회가 없을 수도 있지 않느냐 말하자 "'이번엔 같이 하자'고 하면, 항상 '마지막에'라고 하신다"고 정을영 감독의 반응을 전했다. "마지막 작품은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던 그는, 이내 "마지막 작품이라니, (말만이라도) 너무 슬프다"며 금세 차분해졌다. 

'배우' 정경호, '연예인' 정경호

 MBC수목미니시리즈 <미씽나인>에서 서준오 역의 배우 정경호가 13일 오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고, 알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재발견' 될 수 있겠죠?"ⓒ 이정민


유독 연예인을 많이 연기했던 배우이기에, 연예인 중에서도 연예인 같은 모습이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하지만 그는 "배우가 특별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옆집 아저씨, 오빠, 그런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는 것 아닌가. 추구하는 연기스타일도 편안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배우로, 연예인으로 살다보면 평범함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본인은 "사람들 시선 신경 안 쓰고 편하게 산다"고 했지만, 그게 어디 100% 되겠는가. 공개 연애 중이지만, 당장 데이트를 할 때도 여느 평범한 커플과 같을 순 없을 텐데.

"그건 저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죠. 근데 그게 불편하거나 한 게 아니에요. 제가 감당해야지 어쩌겠어요. (웃음) 물론 조심해야할 건 있겠죠. 길에다 침 뱉고, 담배 피고는 못하죠. 근데 이건 연예인이라서가 아니라 당연히 지켜야 할 일인 거잖아요. 이런저런 불편함, 조심스러움 아예 없진 않죠. 근데 크게 신경 쓰면서 살진 않아요."

정경호는 그 조심스러움의 이유조차 "유명인이라서가 아니라, 이런저런 역할을 표현해야하는데, 나쁜 모습으로 기억되면 안 될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그는 '배우 정경호'로 살아갈 뿐, '연예인 정경호'는 전혀 연연하지 않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배우에게 중요한 건 좋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사람이어야 사람들이 그의 연기도 좋게 볼 테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 나 자신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 제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고, 알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재발견' 될 수 있겠죠? (웃음)"


"지금까지 없던 작품"... 일본 휩쓴 이 영화의 자신감

[inter:view] <행복 목욕탕> 나카노 료타 감독과 배우 스기사키 하나를 만나다

각각 감독과 배우로 일본 영화계의 앞날을 짊어질 두 사람이 한국을 찾았다. 오는 23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행복 목욕탕>의 나카노 료타 감독과 주연배우 스기사키 하나 얘기다.20일 내한해 2박 3일의 일정을 소화 중인 두 사람을 21일 낮, 강남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에서 만났다. "어제 이른 아침 도착해 내일 아침 일찍 출국한다"는 만만찮은 스케줄에도 "맛있는 한국 음식들을 먹을 수 있어 좋았다"는 이들의 표정에는 피곤함보단 기분 좋은 설렘이 엿보였다.영화 <행복 목욕탕>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중년 여성 후타바(미야자와 리에 분)의 이야기다. 남편 가즈히로(오다기리 죠)와 딸 아즈미(스기사키 하나 분), 여기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딸 아유코(이토 아오이 분)와 우연히 만난 히치하이커 타쿠미(마츠자키 토리 분)까지. 영화는 후타바가 이리저리 찢어진 가족을 한데 모으고 새로운 식구를 보듬는 과정을 애정이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세계 어느 나라의 관객이라도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나카노 료타 감독의 말대로, 이 작품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가족의 사랑에 대해 역설한다.기쁨과 슬픔의 공존 "<행복 목욕탕>을 한마디로 소개하면 삶이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엄마의 이야기예요. 이렇게 말하면 흔하디 흔한 가족 드라마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그 안에 숨겨진 비밀들이 있죠. 주인공 후타바는 혈연으로 맺어진 사람만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고 혈연과 무관하게 사랑을 주는 사람입니다. 의무나 책임 때문이 아니라 저절로 우러나는 마음으로 가족들을 대하는 사람이에요. 예전에 비하면 소통하고 유대를 맺기 어려워진 현실 속에서, 이 영화는 타인을 진지하게 배려하고 감싸주는 사랑을 그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카노 료타 감독)극중 후타바의 딸 아즈미로 분한 스기사키 하나는 시나리오 단계부터 캐스팅에 낙점됐다. "이번 작품 전에는 하나와 만난 적도 없었다"는 감독은 "TV를 통해 보고 연기에 대한 감이 좋다고 느꼈다"며 "눈동자에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좋은 배우다. 여러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앞서 <화장실의 피에타>(2015)에서도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캐릭터를 연기한 스기사키 하나는 "두 작품의 캐릭터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다"라고 강조했다. "<행복 목욕탕> 크랭크인 전날 <화장실의 피에타>가 일본에서 개봉했어요. ​그 작품도 제가 마음을 쏟아 의미 깊은 작품이에요. 영화가 개봉하니까 캐릭터에 몰입했던 마음이 되살아나 힘들었는데 잘 추스르고 촬영에 들어갔어요. 소중한 사람이 시한부 인생이란 점에서 ​두 영화 속 제 캐릭터 설정이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저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제가 출연한 작품들의 캐릭터가 놓인 상황이 비슷하더라도 각각의 인물을 들여다보면 누구와도 비슷하지 않은 단 한사람의 인간인 거죠." (스기사키 하나)목욕탕이라는, 아주 특별한 공간극중 가족이 함께하는 공간이자 가족애의 모티프로써 공중목욕탕을 선택한 건 감독 자신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극중 아즈미처럼 자신 또한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손에서 자랐다"는 그는 "어린 시절 집 근처에 대중목욕탕이 있어서 다주 다녔다"며 "그곳은 제게 재미있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소였다"고 회상했다. "목욕탕에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끼리 탕 안에서 말을 주고받고 몸을 같이 데우잖아요. 신기하고 묘한 공간이라고 생각했죠. 살면서 그런 소통의 장이 부족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래된 대중목욕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과거처럼 따뜻한 인간 관계와 유대를 그리고 싶었던 거죠.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목욕탕이 배경인데, 그 장면을 위해서라도 꼭 목욕탕이어야만 했어요." (나카노 료타 감독)그렇게 만들어진 <행복 목욕탕>은 제40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우수 여우 주·조연상을 수상하고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일본 관객의 뜨거웠던 반응에 대해 감독은 "영화 개봉 이후 편지를 굉장히 많이 받았다"며 "관객 각자가 자신의 가족에 관련된 어느 부분에 이 영화를 포개어 바라보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제각각 상황은 다르지만 어떤 부분에서 자신의 가족사를 영화에 링크시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거나 자녀에 대한 사랑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가족에 대한 것일 수도 있죠. 물론 애절하고 고통스러운 사랑도 있지만, 이 영화는 배려하고 감싸주는 따뜻한 사랑 이야기예요. 그래서 관객의 어떤 부분을 어루만질 수 있었고, 예전과 다르게 거리감이 있는 현실 관계 속에서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울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카노 료타 감독)평단과 관객의 고른 만족 영화가 일본 평단과 관객을 골고루 감동하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배우들의 공이 컸다. 감독은 "이번에 함께한 배우들이 다들 믿음이 갔다"며 배우들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더불어 연출자로서 자신의 역할 대해 "배우가 연기를 본인답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촬영 현장이란 게 카메라와 미술 등이 담긴 무대이기도 하지만, 인물 사이의 관계와 사건이 펼쳐지는 공간이기도 해요. 연출자는 그 곳의 분위기를 잘 만들어서 배우들이 가진 것들을 역할에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배우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거죠.""배우 중에서도 오다기리 죠는 좀 특별했어요. 그는 자연스럽고 정형화된 연기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대본이 이러이러 하니까 이렇게 해달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지 않았어요. 그런다한들 어차피 그는 자유롭게 연기할 테니까요. 매일 아침 오늘 촬영분을 어떻게 찍으면 재미있을지 이야기한 뒤에 촬영에 들어갔죠. 영화에서 가즈히로가 집 앞에서 아즈미를 기다리는 장면이 있는데 담배를 피우면서 뜬금없이 기다란 재떨이를 들고 있거든요. 그 장면도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겁니다." 두 사람은 한국 영화에 대해서도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감독은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고 오래전부터 배두나 배우를 좋아했다. 언젠가 같이 작업하고 싶다"며 좋아하는 한국 감독으로는 이창동 감독을 꼽았다. 스기사키 하나는 "한국영화 중 처음 본 게 김기덕 감독의 <사마리아>였다"며 "큰 충격을 받았다. 배우들이 연기하는 게 아니라 영화 속 세상에 실제로 사는 인물들 같았다"고 회상했다.한국 관객을 향한 마지막 인사에서 나카노 료타 감독은 "<행복 목욕탕>에는 지금까지 없던 뜨거운 사랑이 담겨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어 "지금까지 만난 적 없는 작품을 접한다는 생각으로 극장을 찾아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스기사키 하나 또한 진심 어린 표정으로 한국 관객에 대한 감사와 당부의 메시지를 전했다."한국은 제게 많은 자극이 되는 영화가 만들어지는 곳이에요. 이런 나라에 제가 출연한 작품을 선보이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한 분이라도 더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를 본 뒤 좋았다는 마음이 드신다면, 여러분의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권해주시길 바랍니다." (스기사키 하나)

파격노출이든 낙태여성이든... "나는 평생 연기할 거다"

[inter:view] 21년차 배우 류현경의 '평생연기론', 그리고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50편이 넘는 작품에 참여한 이 배우, "주연, 조연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배우로서 캐릭터를 보다 현실의 인물처럼 연기"하는 게 중하다고 말한다. 21년차 연기 경력의 류현경 이야기다.그가 전면에 나선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가 최근 개봉했다. 개봉 즈음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일대일'로 만났다. 때가 되면 제작발표회와 언론 시사, 그리고 으레 몇 명씩 기자들을 묶어 인터뷰 하는 최근의 영화 홍보 흐름에 염증을 느끼던 차에 신선했다. "여러 기자 분들과 한꺼번에 만나면 제가 집중이 안 되어서요"라며 그가 가볍게 웃었다.예술과 상업 사이 이번 영화에서 류현경은 무명작가였으나 죽은 이후 오히려 스타로 급부상한 미술작가 지젤 역을 맡았다. 본명은 오인숙. 일단 이 설정만으로 작품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 일부를 예상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을 땐 스스로 자신이 진짜 예술가라고 생각했던 지젤은 일종의 닫힌 사고방식의 인물이다. 동시에 분위기에 휩쓸려 지젤의 작품을 사려고 하는 미술 관계자들은 미의 기준 없음 내지는 허상의 산물이다. 영화는 지젤과 그런 사람들을 한꺼번에 풍자한다.일종의 블랙코미디다. 한 사람의 생사를 놓고 벌이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하나하나가 비장하지만, 영화는 그걸 유쾌하고 빠른 흐름으로 녹였다. 배우 박정민이 미술관 관장으로 류현경과 호흡을 맞췄다. 류현경은 "감독님은 처음엔 진지하게 가고 싶어 했던 것 같은데 정민씨와 제가 캐스팅되면서 얘길 많이 했다"며 배경을 살짝 전했다. 그렇게 진지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지금의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미술계에 한정했지만 동시에 영화는 예술과 상업 사이에서 저울질 받는 창작자들의 일반론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우선 이걸 류현경에게 적용해 봤다. 배우 김혜수, 강수연의 아역으로 연기를 시작한 류현경은 각종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아우르며 지금에 이르렀다. 지젤에 감정 이입할 여지가 그만큼 컸다. "제가 그림에 대해선 전혀 몰라요. 영화적 표현을 위해 영화에 등장하는 그림을 그린 작가님 작업실에 갔는데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단 걸 느꼈어요. 이 부분이 연기자와 비슷한 것 같아요. 배우 역시 결과물로 보이는 사람이지만 그걸 해내기 전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준비하거든요. 지젤도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저 역시 준비 과정이 좋아야 결과물도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막상 2년 전에 이 영화를 찍을 땐 배우로서 느낀 어떤 갈등보단 살면서 이루고 싶은 것들에 대한 갈등을 더 생각했어요. 비단 예술계만 다룬 게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런 의미에서 언론시사회 때 '(특정 분야 사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아티스트'라며 정민씨가 한 말에 공감해요. 목표를 향해 준비하는 것 자체가 예술이죠."진심의 표현산업의 관점에서 스타 배우는 분명 중요하다. 대중의 관심도와 함께 실력까지 갖추면 금상첨화다. 실제로 많은 연기자는 알게 모르게 작품의 성공에 신경을 쏟는다. 자신의 만족도와 별개로 관객들에게 많이 팔리면, 곧 다음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물리적 지지대가 되기도 하니까. 그런데 이 관점에 류현경은 조심스럽다. 20년이 넘은 경력을 쌓으며 속된 말로 '스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터. 이 우문에 류현경이 웃는다. "만약 됐을 거라면 진작 되지 않았을까"라며 받아쳤다. 현답이다. 이어진 그의 배우론이 더욱 빛난다."민감할 수도 있는 문젠데요. 어쨌든 배우는 진심을 표현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진심과 진실에 가깝게 연기하려 하고 그게 잘 표현되면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실 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를 구분하는 건 좀 의미가 다르죠. (잠시 고민하며) 이걸로 제목 안 뽑을 거죠? (웃음) 꾸준히 일하면 어느 순간 좋은 시기도 만나고 그럴 텐데요. 전 작품을 꾸준히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아직 멀었죠. 작품을 할 때마다 아쉽고, 고민과의 싸움이거든요. 진지하게 (스타성을) 고민할 시간이 없어요! 평생 연기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순간부터 제겐 스타가 되는 것보단 작품에서 잘 쓰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류현경을 수놓는 여러 작품이 있다. 그 안에서 철저히 캐릭터에 다가가고자 한 흔적이 엿보인다. <방자전>(2010)에서의 파격적인 노출, 그 이전 단편 <211>에선 아이를 낙태하는 여성, <시라노: 연애 조작단> <전국노래자랑> 등에서의 코믹한 모습 등은 단지 캐릭터로서만이 아니라 현실 어느 지점에 존재하는 인물로 다가오기도 했다. 게다가 <날강도> <광태의 기초> 등 단편 영화를 연출한 감독으로서 면모도 있다. 이처럼 그의 필모그래피 자체가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상징한다. 그가 앞서 언급한 '평생 연기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신기전>(2008)을 찍을 당시였다."제겐 분기점이 될 작품이죠. TV영화 채널에서 종종 볼 때마다 마음이 뭉클해요. 같이 작품을 만들어갈 때 그 마음들이 보이거든요. 제가 연기적으론 부족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계속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전에도 작품은 계속 했지만 이걸 평생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거든요. 현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았고, 어렸을 땐 학교 수업을 빼먹으니 즐거웠죠.근데 <신기전>을 8개월 간 전국을 돌며 찍었을 때였어요. 제가 정재영 선배를 끌어안고 '오라버니 죽지 마!'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대사를 치는데 정말 이 사람이 죽을 거 같은 거예요. 아, 이런 느낌이구나. 그래서 선배들이 계속 연기하시는 거구나. 그 순간이 되게 감사한 거예요. 그때부터 제가 좀 더 고민하고 생각하면 더 좋은 여기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평생 연기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런 고민도 많이 한 거 같아요. 다양한 작품에서 좋은 배우로 잘 쓰이는 게 진짜 복된 일이라는 걸 깨달았죠. 그때부터 치열하게 열심히 했어요."희망의 연속 그의 대본은 온갖 물음표로 가득하다. '얘가 왜 이런 대사를 칠까? 쟤는 왜 저렇게 걸어오지?' 등의 질문이 적혀있다.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도 마찬가지였다. 캐릭터를 이해하고 다가가기 위한 일종의 그만의 의식이다. "많이 듣는 말은 아니지만" 이란 단서를 달면서 류현경은 연기하며 가장 보람 있는 순간 하나를 언급했다."'현경씨 그 캐릭터, 제 얘기예요. 저랑 너무 똑같은 거 같아요' 이 말에 너무 감사해요. 연기를 계속 하게 하는 힘이 되죠. 많은 분들이 (요즘 한국영화에) 여성 이야기가 없다고들 하시는데 전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힘든 요즘이긴 하지만 분명 새롭고 다양한 작품이 나올 겁니다. 한때 조폭 영화가 한참 나오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 이후엔 다양한 영화들이 나왔죠. 지금이 그런 시기 아닐까요. 남성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영화들이 나올 거라고 봐요. 전 작품으로 얘기할게요(웃음). 다양한 작품을 하는 걸로 보여야죠." 인터뷰 말미 류현경은 가장 그리운 캐릭터로 <전국 노래자랑>의 오미애를 꼽았다. "우리 엄마, 이모, 언니 등 많은 여성에게 위로가 될 캐릭터라고 생각했다"며 "그때 촬영장이었던 미용실을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고 말했다. 한때 가수의 꿈을 키웠던 미용사 오미애는 그렇게 류현경을 통해 독자적인 여성 캐릭터로 등장할 수 있었다.특별한 스타가 되려 하기 보다 류현경은 오히려 평범해지려 한다. 그럴수록 그의 연기는 현실성에 굳게 발을 딛게 된다. 그런 그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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