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사람이 이토록 편안할 수 있을까. 가수 최백호는 자신의 노래와 꼭 닮아있었다. 욕심 없는 목소리와 말투는 그가 불러온 노래들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를 풍겼다. 삶과 음악에 대한 생각들에선 깊은 울림이 느껴졌다. 지난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의 음악창작공간 뮤지스땅스에서 최백호를 만났다.

40년, 특별한 '의미' 없다... 실패해도 계속 해왔을 뿐

최백호, 가수 인생 40년 맞은 뮤지스탕스 대장 가수 최백호가 22일 오전 서울 마포대로에 위치한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탕스 내 작업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백호는 올해로 가수 인생 40주년을 맞았으며 현재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탕스 대장을 맡고 있다.

최백호는 올해로 가수 인생 40주년을 맞았다. ⓒ 이정민


데뷔 40주년. 최백호는 이를 기념하는 앨범 <불혹>을 오는 3월 발표한다. 4년 만의 신곡 '바다 끝'을 지난 23일 선공개하기도 했다. 3월 11일~12일에는 LG아트센터에서 40주년 기념 콘서트 <불혹>을 연다. 나로썬 40년이란 세월의 더께를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그 시간이 전혀 가늠되지 않노라고 고백하자 그가 답했다.

"저도 감이 안 잡혀요. 특별하진 않아요. 감회를 묻는 질문에 뭐라고 할 말은 없고, '벌써 40년이 됐네' 싶은 거죠. 40년이 됐다니까 콘서트도 하고 앨범도 내보자 해서 하는 거고요. 어떤 후배는 '형, 40년 했으면 쉬어야지' 하며 푹 쉬라고 하는데 그 이야기도 맞는 것 같고요."

최백호는 40주년에 '의미'는 없다고 했다.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함은 이렇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태도에서 비롯된 듯했다. 40년 가수인생도 이렇게 흘러왔다. 대인관계가 넓은 편이 아니라서 홍보를 적극적으로 해온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매니저 없이 가수생활을 해왔다. 그래도 이렇게 오래 노래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면 큰 욕심 없이 꾸준히 걸어왔기 때문이다.

"20장이 넘는 앨범을 냈는데 성공한 앨범은 4~5장 밖에 없어요. 실패한 앨범의 노래도 열심히 만들고 부른 것들이에요. 운이 좋아서 '낭만에 대하여'가 성공을 했는데 그보다 실패의 경험이 훨씬 많아요."

최백호를 모르는 사람도, 그의 대표곡 '낭만에 대하여'를 모르는 사람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의 가수 인생에 '성공'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낭만에 대하여'도 조용히 묻힌 곡이었는데 우연히 김수현 작가가 차에서 라디오로 듣고 반해서 자신의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1996)에 삽입한 것이 국민적 사랑을 받게 됐다. '낭만에 대하여'는 최백호가 실패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앨범을 내고 가수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였다. 시처럼 서정적인 가사와 탱고 리듬이 매력적인 이 곡은 최백호 작사·작곡으로, 가사를 쓰는 데 2시간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한 명의 관객 두고 노래했던 첫 무대

최백호, 가수 인생 40년 맞은 뮤지스탕스 대장  가수 최백호가 22일 오전 서울 마포대로에 위치한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탕스 내 작업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백호는 올해로 가수 인생 40주년을 맞았으며 현재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탕스 대장을 맡고 있다.

가수 최백호가 22일 오전 서울 마포대로에 위치한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탕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했다. ⓒ 이정민


최백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부산 영도 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5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최백호가 처음 노래를 부른 계기도 생계를 위해서였다. 그림을 잘 그렸던 그는 미대에 진학하려고 재수를 했는데 그 즈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만두게 됐다. 그 후 친구들과 노래를 했고, 지금까지 음악을 이어오고 있다. 처음 무대에 섰을 때를 기억하는지 물었다.

"23살 때쯤이었어요. 부산 서면의 생맥주 라이브클럽이었는데 친구의 매형이 운영하는 곳이었어요. 거기서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는데, 텅 비어 있고 친구 하나가 앉아 있었어요. 그렇게 한 명의 관객 앞에서 노래하고 있는데 (밖에서 듣고) 사람들이 점점 들어왔어요."

그때의 기분을 물었다.

"삶 자체가 절박했으니까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기분을 느낄 새도 없었고 정신없이 노래했어요. 무대를 일주일 정도 했을 때 대형 라이브클럽에 스카우트가 됐고 그곳에서 하수영씨를 만났어요. 그분이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로 떠서 서울서 활동하면서 저를 서라벌레코드에 소개해줬어요. '부산에 친구 하나가 있는데 한번 만나보라' 말해줘서 오디션을 보게 됐고, 5년 전속계약을 하고 1977년에 자작곡을 담은 첫 앨범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내게 됐어요."

후배가수와 협업, 굳어지는 것 가장 두렵다



최백호, 가수 인생 40년 맞은 뮤지스탕스 대장  가수 최백호가 22일 오전 서울 마포대로에 위치한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탕스 내 작업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백호는 올해로 가수 인생 40주년을 맞았으며 현재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탕스 대장을 맡고 있다.

가수 최백호는 현재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탕스의 대장을 맡고 있다. ⓒ 이정민


최백호 하면 '낭만에 대하여',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입영 전야', '영일만 친구' 등 예전 히트곡들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다. 하지만 '부산에 가면'처럼 최근 히트곡을 떠올리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지난 2013년에 발표한 '부산에 가면'은 에코브릿지가 작사·작곡한 노래로 최백호가 보컬을 맡았다. 입소문을 타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부산에 가면'은 에코브릿지가 만든 노래인데 보컬을 맡아달라고 연락이 왔을 때 '내 노래다' 싶었어요. 부산에는 23살까지 살았는데 개성 있는 도시죠."

그의 모든 노래가 그렇지만 '부산에 가면'은 연령층을 뛰어넘는 감성을 품고 있다. 최백호는 이번 신곡 '바다 끝'도 에코브릿지와 함께 작업했다. 40주년 기념 앨범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에코브릿지에게 연락했다. 곧 발표할 새 앨범의 수록곡의 반은 최백호가, 반은 에코브릿지가 만들었다. 젊은 음악인과의 협업이 어땠느냐고 묻자 "음악적으로 부딪혀서 다투기도 했지만 서로 도움을 나눴다"고 했다.

아이유와 함께 부른 '아이야 나랑 걷자'도 그가 가진 '전세대적' 감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이유의 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배경을 묻자 "곡을 쓴 박주원씨가 아이유와 함께 부를 사람을 찾아 내게 연락을 해왔다"고 말했다.

"'아이야 나랑 걷자'는 박자가 굉장히 까다로워 어려운 곡이에요. 아이유는 척척 잘해내더라고요. 저는 그런 음악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고생을 했죠."

젊은 감성의 곡들을 제 옷처럼 소화하는 비결이 궁금해 물었다.

"평범하긴 싫다는 생각을 늘 해요. '튀겠다'는 말이 아니고, 새로운 면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스타일이에요. 가만히 앉아서 편안하게 쉬지를 못해요. 제가 지금까지 해온 음악을 보면, 한 장르를 해온 게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했어요. 쓴 가사에 어울리는 장르를 찾는데 그게 록이든 트로트든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굳어지고 고정되면 퇴보해요. 그게 가장 두려워요. 모든 문화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요. 젊은 음악가들은 노래를 만드는 방법, 부르는 방법 등이 우리와 완전히 다르니까 함께 하면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스스로 굳어지지 않게 할 수 있어요."

요즘 음악, 가사 아쉬워

최백호, 가수 인생 40년 맞은 뮤지스탕스 대장 가수 최백호가 22일 오전 서울 마포대로에 위치한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탕스 내 작업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피아노 연주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최백호는 올해로 가수 인생 40주년을 맞았으며 현재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탕스 대장을 맡고 있다.

최백호의 피아노 선율은 서정적이었다. ⓒ 이정민


40년이란 긴 역사를 지나며 음악을 해온 그에게 요즘 음악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가사가 아쉽다"며 소신껏 대답을 이어갔다. 

"저희 세대는 가사에 정확한 주제가 있었어요. '고래사냥', '아침이슬'처럼 노래 제목만으로 전달되는 메시지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이 좀 아쉬워요. 김광석의 노래만 봐도 가사가 큰 부분이죠.

저희 세대는 보통 가사를 먼저 만들고 멜로디를 붙였는데, 요즘 세대는 멜로디를 먼저 만들고 거기 가사를 끼워 넣으니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가사가 완벽하지 않아요. 미사여구가 많고요. 이번 앨범 작업에서도 이런 부분에서 부딪혔고요. 요즘 음악계에 표절 논란이 잦은 것도 멜로디를 먼저 만들어서 그런 측면이 있죠. 멜로디는 뇌 속에 저장되어 있어서 나도 모르게 남한테 들은 게 나오니까 의도치 않게 비슷하게 나올 수가 있어요. 하지만 가사를 먼저 쓰면 곡의 개성이 강해져서 듣는 입장에서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이 덜 하죠."

그는 "정말 좋은 노래는 던져놔도 알려진다"고 말했다. 몇 십 년 뒤에 알려지더라도 틀림 없이 알려진다고 했다. 특히 "만드는 사람이 볼 수 없던 것을 대중이 발견할 때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젊은 음악가들에게 '쉬운 노래'를 만드는 걸 권하기도 했다. 멜로디가 쉬운 것을 만들고 부르는 것이 오래 남는 노래의 비결이다. "패티김 선생의 전성기 노래들을 보면 아주 단순해서 누구나 따라부를 수 있다"며 "요즘 음악은 너무 어렵고 전문화된 경향이 있는데 '특수층 가요'가 아닌 말그대로 '대중가요'가 오래 남는다"고 덧붙였다.

만화 보는 대통령 나왔으면... 리더의 조건은 '창의력'

최백호, 가수 인생 40년 맞은 뮤지스탕스 대장 가수 최백호가 22일 오전 서울 마포대로에 위치한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탕스 내 작업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백호는 올해로 가수 인생 40주년을 맞았으며 현재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탕스 대장을 맡고 있다.

최백호는 음악뿐 아니라 사회에 대한 생각도 말했다. ⓒ 이정민


인터뷰를 나눈 장소인 뮤지스땅스에 대해 잠깐 이야기 나눴다. 이 곳은 신인 음악인 육성을 위한 공간이다. 현재 ㈔한국음악발전소 소장인 최백호는 투명한 운영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예술지원사업을 제안 받았다. 그렇게 맡게 된 것이 이곳 '뮤지스땅스'다. 뮤직과 레지스탕스를 합쳐서 그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뮤지스땅스의 서가엔 만화책이 많았다. 최백호가 수집한 것들이다. 화가이기도 한 그는 오는 3월에 뮤지스땅스에서 개인전도 연다. 뜬금없지만 그에게 '원하는 대통령상'을 물었을 때도 최백호는 "만화책 읽는 대통령"이라는 함축적인 답변을 꺼내놓았다.

"지금까지 대통령은 공부 잘하는 사람이 돼 왔어요. 하지만 공부를 잘한다고 창의력이 뛰어난 건 아니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기억력이 좋은 거고요. 다음 대통령은 창의력이 좋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어려운 단어만 쓰는 게 아니고 정말 힘든 사람을 위해서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 감성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일례로 만화에는 무궁무진한 창의가 들어있어요. 우리는 만화를 불태우고, 만화를 못 보게 한 민족인데 '꿈'과 '순수'가 가득 들어있는 만화를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교육제도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덧붙였다.

"특히 교육제도를 빨리 바꿔야 한다고 봐요. 초등학교 때부터 수능을 염두에 둔 교육을 하는데 결국 그건 창의보단 암기식 교육인 거잖아요. 아이들한테 음악과 시를 많이 접하게 하고 더 많이 뛰어놀게 해야 해요. 인간의 본능은 뛰어놀고 노래 부르는 거예요."

아흔 넘어서도 앨범내고 음악하고파

끝으로 음악적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물었다. 그는 "계획이나 방향은 딱히 없다"며 "항상 내 음악은 변화하고 있다"고 답했다. 젊은 음악가들과도 꾸준히 작업할 생각이다. 세워놓은 기준 같은 건 딱히 없지만 그래도 분명한 한 가지는 있다고 했다.

"내 아이들, 내 자손들이 들었을 때 창피한 노래는 하지 말자는 최소한의 기준은 있어요. 노래는 남는 것인데, '우리 할아버지 이상한 노래 불렀다'는 소리는 안 듣고 싶어요."

가수는 앨범이 중요하고, 새 노래가 계속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 최백호. 끝까지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는 "아흔이 넘어서도 앨범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최백호, 가수 인생 40년 맞은 뮤지스탕스 대장 가수 최백호가 22일 오전 서울 마포대로에 위치한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탕스 내 작업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백호는 올해로 가수 인생 40주년을 맞았으며 현재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탕스 대장을 맡고 있다.

최백호는 오는 3월에 데뷔 40주년 기념 앨범 <불혹>을 발매한다. 에코브릿지와 함께 작업했으며, 지난 23일 선공개 형식으로 '바다 끝'을 발표했다. 수록곡 중 '풍경'은 주현미와 함께 불렀다. ⓒ 이정민


최백호, 가수 인생 40년 맞은 뮤지스탕스 대장  가수 최백호가 22일 오전 서울 마포대로에 위치한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탕스 내 작업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백호는 올해로 가수 인생 40주년을 맞았으며 현재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탕스 대장을 맡고 있다.

뮤지스땅스 입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최백호. 그가 건넨 명함에는 뮤지스땅스 '대장 최백호'라고 적혀있었다. 최백호는 뮤지스땅스 소장이다. ⓒ 이정민


최백호, 가수 인생 40년 맞은 뮤지스탕스 대장 가수 최백호가 22일 오전 서울 마포대로에 위치한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탕스 내 작업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백호는 올해로 가수 인생 40주년을 맞았으며 현재 한국음악발전소 뮤지스탕스 대장을 맡고 있다.

최백호는 오래도록 노래하길 꿈꾼다. ⓒ 이정민



최백호 인터뷰 불혹 바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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