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th오마이스타

 KBS 2TV 수목드라마 <화랑>에서 아로 역을 맡은 배우 고아라가 21일 오후 인터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배우 고아라는 <화랑>에서 진골 아버지와 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무시를 당하기도 하지만 씩씩하게 삶을 살아가는 아로 역할을 맡았다.

고아라는 욕심 많은 배우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티스트컴퍼니


고아라는 인터뷰 내내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를 했다. 영화에 대한 질문에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영화 '너무' 하고 싶다"라는 말이 돌아왔고, <화랑>을 통해 퓨전 사극을 해봤으니 정통 사극 속에서 표독스러운 악역을 맡아 연기해보고도 싶다고 말한다. 물론 '달달한' 로맨스도 환영이란다. 최근 <도깨비>를 즐겨봤다며 김은숙 작가와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작품을 많이 하고 싶었다. 작품을 끊이지 않게 다작을 해보고 싶었다"라고 고아라는 말한다. 욕심이 많은 배우라는 인상이 남았다.

하지만 그의 욕심은 바람으로만 남지는 않았다. 근작 <탐정 홍길동>(2016)에서는 적은 분량이었으나 좋은 캐릭터라는 생각에 마다 않고 임했고, 결과적으로 원래 나오기로 했던 신(scene)보다 더 늘어난 분량으로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응답하라 1994>(2013)에서도 고아라는 완벽히 '성나정'으로 분하기 위해 외적·내적으로 열성을 기울였다. 그의 노력이 대중들의 눈에 띄었음은 물론이다.

이번 KBS 월화드라마 <화랑> 종영 인터뷰에서 고아라는 취재진에 신라시대 화랑 제도의 역사적 사실과 드라마 속에 픽션으로 가미된 것들을 분리해 설명을 한참 이어갔다. "물론 <화랑>은 퓨전 사극이라 가볍게 임했지만 표현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역사나 시대적인 배경을 공부하고 들어간다. 그럼 작품에 더 재미가 생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중 손과 상체를 크게 움직여 상황을 묘사하고 말에 강약을 넣어 강조할 부분을 살렸다. 그때마다 회갈색 눈동자가 커졌다. 그의 모습 어딘가에 '아로'도 '나정'도 있었다. 배우 고아라를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KBS 2TV 수목드라마 <화랑>에서 아로 역을 맡은 배우 고아라가 21일 오후 인터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배우 고아라는 <화랑>에서 진골 아버지와 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무시를 당하기도 하지만 씩씩하게 삶을 살아가는 아로 역할을 맡았다.

배우 고아라는 <화랑>에서 (신라시대) 진골 아버지와 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무시를 당하기도 하지만 씩씩하게 삶을 살아가는 아로 역할을 맡았다.ⓒ 아티스트컴퍼니


'사전제작' 또 할거냐고요?

지난 21일 KBS <화랑>이 끝났다. <화랑>은 KBS <구르미 그린 달빛> 계보를 잇는 청춘사극이었고 또 100% 사전제작 드라마로 방송 전부터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하지만 마지막회 시청률이 7.9%일 정도로 성적은 썩 좋지 않았다. 열심히 임한 작품이 이런 결과였을 때 기분이 어떨까.

고아라는 "물론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으면 좋았겠지만 그럼에도 다른 배우들과 재밌게 촬영한 작품이 무사히 끝났다는 데 의미를 둔다"고 했다. 비록 드라마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는 길에서 '아로'(극 중 고아라의 배역)를 반겨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게 그렇게 반갑다고 했다.

"저희 어머니 세대 분들이 되게 좋아하신다. 장보러 가면 '<화랑>에 나오는 여자 아니냐'고 '재밌게 보고 있다'고 손을 꼭 붙잡고. 특히 더 반겨주시고 그게 좋더라. (머리나 복식 등의) 외모가 <화랑>에 나오는 것과는 좀 달라보이니까 꼭 재차 묻고…. 되게 재밌게 봐주시는구나 싶어 기뻤다."

 KBS 2TV 수목드라마 <화랑>에서 아로 역을 맡은 배우 고아라가 21일 오후 인터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배우 고아라는 <화랑>에서 진골 아버지와 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무시를 당하기도 하지만 씩씩하게 삶을 살아가는 아로 역할을 맡았다.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작년에 진짜 더웠지 않나. 더위 조심하라는 문자도 엄청 많이 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렸다. 그럼에도 힘들어 하는 배우 한 명 없이 다들 열심히 임했다."ⓒ 아티스트컴퍼니


그에게 물었다. 최근 경험한 사전제작 제도에 대해 배우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냐고. "사전제작이든 아니든 상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분명 장단점은 있다. 하지만 '사전제작'은 작업을 하는 방식의 차이다. 얼마든지 재밌는 대본과 참여할 만한 작품이 있다면 작업 방식의 차이는 상관 없다." 

이미 촬영을 다 마쳐 놓은 터라 그는 집에서 TV로 <화랑>을 봤다고 한다. 지난 여름 폭염 속에서 배우들과 치열하게 촬영한 장면들에서 그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고.

고민의 시기, 선배들의 조언 받아

고아라는 지난 1월 오랫동안 몸 담았던 소속사 SM을 떠났다. 고아라는 회사에 들어갈 당시 8000:1 경쟁률을 뚫고 발탁돼 오랜 시간을 SM에서 보냈다. 그간 '배우'로서 보다 '아이돌'이나 '연예인'의 이미지가 강했던 고아라는 1월 배우들을 중심으로 매니지먼트를 하는 아티스트 컴퍼니로 소속을 옮겼다. 그는 "고민이 있었던 시기였고 혼자 고민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며 "몇 십 년 넘게 일한 선배들의 조언은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는 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칠 때까지 '고민'이라는 말을 일곱 번도 더 넘게 사용했다.

 KBS 2TV 수목드라마 <화랑>에서 아로 역을 맡은 배우 고아라가 21일 오후 인터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배우 고아라는 <화랑>에서 진골 아버지와 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무시를 당하기도 하지만 씩씩하게 삶을 살아가는 아로 역할을 맡았다.

그는 '고민'이라는 단어를 아주 많이 사용했다. 그가 회사를 옮기며 작품을 선택하며 얼마나 오랜 시간 '고민'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아티스트컴퍼니


고민 끝에 그가 선택한 회사는 정우성·하정우가 있는 '아티스트컴퍼니'. 그는 "회사 전체가 열려있다. 배우 선배들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과도 소통이 잘 된다"라며 회사 자랑을 한다. 회사에 있는 선배들이 본인들의 경험을 통해 작품을 보는 눈이나 연기 모니터링을 봐주시기도 한다.

올해로 28살. 워낙 어렸을 때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그지만 그럼에도 아직 고아라는 젊다. 그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했다. "과거를 생각하기 보다 지금 현재와 앞으로만 생각하고 나아가고 싶다. 앞으로 더 많은 것, 다양한 걸 해보고 싶은 '갈망'이 있다"는 고아라. 치열한 고민 끝에 그가 내릴 결정들을 믿어보고 싶다.

고아라가 추천하는 책은?
고아라는 극 중에서 지소태후 역의 배우 김지수와 개인적인 관심사가 맞았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비록 극 중에서 두 사람은 팽팽하게 맞서는 사이였지만 촬영장에서는 '책'을 통해 가까워졌다고. 하지만 장르는 전혀 달랐다고 한다. 김지수는 추리물을 좋아하는 반면 고아라 본인은 기욤 뮈소 같은 로맨스류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5년에 JTBC <뉴스룸>에 나와 "시집을 내는 것이 꿈"이라고 밝힌 적도 있다. 그에게 좋아하는 시집을 물었더니 류시화 시인이 엮은 잠언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을 언급했다. 고아라는 그 책을 초등학교 5학년 때 읽고 "문화 충격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최근에는 드라마 <도깨비> 속에 나온 사랑 시집도 찾아본다며 웃었다.

 KBS 2TV 수목드라마 <화랑>에서 아로 역을 맡은 배우 고아라가 21일 오후 인터뷰 전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배우 고아라는 <화랑>에서 진골 아버지와 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무시를 당하기도 하지만 씩씩하게 삶을 살아가는 아로 역할을 맡았다.

ⓒ 아티스트컴퍼니



우리가 알던 원더걸스 소희, 우리가 몰랐던 안소희

[inter:view] 영화 <싱글라이더>의 워홀러 지나로 첫 걸음을 떼다

아무래도 배우보단 무대 위에서 "어머나!" 포즈를 취하던 원더걸스 소희의 기억이 강했다. 이처럼 아이돌의 힘은 무섭다. 10대 끝자락에 가수로 데뷔해 정상을 경험했고, 각종 드라마와 영화 <부산행> 등으로 이미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던 그의 입장에선 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제 모습이니까 그렇게 신나게 할 수 있었겠죠?"라며 웃는다.최근 개봉한 영화 <싱글라이더>에서 안소희는 딱 또래의 청년 지나가 됐다. 한국을 뒤로 하고 호주로 날아들어 워킹 홀리데이로 근근이 돈을 모아놓은 인물이다. 잘 나가다 부실채권 판매 문제로 나락으로 떨어진 증권사 팀장 재훈(이병헌 분)과 달리 뿌리도 정착지도 없이 흩날리는 캐릭터.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가수로 연예인으로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지 않은 그가 과연 그 외로움의 정서를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기우였다.긴장의 연속물론 크게 긴장했다. 특별한 사건사고 없이 캐릭터의 감정이 주가 되어 흐르는 구조라 재훈과 지나의 균형감이 중요했다. 낯선 땅에서 각자 홀로 날아온 이방인이 서로를 알아보고 기대는 과정이 핵심인데 상대는 베테랑 이병헌이다. "처음엔 이병헌 선배, 공효진 선배와 함께 한다고 해서 신나고 좋았는데 갈수록 걱정이 커졌다"고 그가 고백했다.그럴수록 안소희는 연출을 맡은 이주영 감독과 사전에 많이 만나려 했다. CF 감독 출신인 이주영 감독은 캐릭터 하나하나를 짚거나 장면 별로 짚으며 도움을 줬다. 여기에 원더걸스 활동으로 미국에 머물렀을 당시 절감했던 외로움의 감성을 지나에 대입했다."타지에서 혼자 있는 외로움은 잘 알아요. 그래서 지나가 짠하게 다가왔고, 그 마음을 생각하며 만들어 갔죠. 여행을 좋아하고, 시간이 되면 여기저기 가려고 했어요. 혼자 다닌 적은 별로 없는데 최근 큰 용기를 내서 화보 촬영 후 베를린에 혼자 5일간 남았어요(웃음). 지나를 연기하며 배낭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더라고요. 해변에서 재훈에게 지나가 처음으로 소리 높여 도와 달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어요. 영화에서 두 사람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이고, 저도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 생각했어요. 사실 쉽게 그 장면을 오케이 받지 못했어요, 몇 번을 더 찍었죠. 이병헌 선배가 '진짜로 내가 뒤돌아 볼 수 있게 외쳐야 한다. 날 돌아보게 해달라'고 격려해 주셨고, 그 말에 힘을 얻어 진심으로 소리쳤죠." 아마도 안소희에겐 이번 작품에서 자신을 한 번 깨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현장에서 살갑게 선배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했고, 연기에 대해서도 주저하다가 여러 번 여쭤봤다"는 말에서 예상할 수 있듯 연기에서도 실제 현장에서도 그는 매번 용기를 장전해야 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싫은 마음"에 조용히 지내는 편이라지만 연기만큼은 "전보다 나아졌다는 말을 듣고 싶다"고 할 정도로 열정이 가득했다.오랜 꿈그 열정의 또 다른 증거 중 하나가 바로 <싱글라이더> 캐스팅 과정에 있다. 캐스팅 단계 직전 시나리오만 나온 상태에서 작품을 접한 후 그는 "만약 제작이 된다면 꼭 알려 달라"고 당부할 정도로 관심을 두고 있었고, 이병헌과 공효진 참여 소식이 들린 후 한 번 더 "꼭 참여하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다행히 이주영 감독과 만남이 성사될 수 있었고, 안소희의 마음을 감독은 읽었다."감독님이 절 캐스팅하기로 한 건 아니었는데 시나리오를 쓸 때 제 이미지를 많이 떠올리며 지나를 썼다고 하셨어요. 되게 놀라고 감사했어요. 만약 이 작품에 참여한다면 진짜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죠."2007년 김민희와 함께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비중 있는 캐릭터를 맡긴 했지만 연기력에서 사실 안소희에 대한 관객의 평은 박했다. 2013년 원더걸스 탈퇴 이후 연기자를 전향한 후에도 비슷한 꼬리표가 붙었다. 이런 평에 "속상한 면도 분명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게 많은 게 사실"이라며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 게 제 입장에선 가장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하나 잘 알려지지 않은 속마음이 있다. 원더걸스 해체 때보다 훨씬 이른 시점부터 안소희는 배우의 길을 품고 있었다. 가수와 연기를 병행하는 이들도 많은데 왜 탈퇴를 했는지 묻자 조심스럽게 속마음을 전했다."그렇죠. 꽤 오래 전부터 한 분야에 집중하고픈 마음이 컸어요. 원더걸스 활동 때는 물론 무대가 재밌었고, 단체 활동이다 보니 거기에 중심을 두는 게 맞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미국에도 간 거고. 귀국한 뒤 다른 멤버들과 공백기를 갖기로 했을 때 '이젠 연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JYP 오디션을 볼 때 춤과 노래만 한 게 아니라 연기도 했잖아요. <뜨거운 것이 좋아>를 했을 때 '나, 연기할래!' 이런 마음이 커졌어요. 시기를 보고 있었는데 때가 온 거죠. 그래서 멤버들과도 상의했고, 이해를 해준 거죠."끝이 아닌 출발그런 의미에서 안소희는 원더걸스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싱글라이더> VIP 시사 때도 멤버들이 함께 와 감상을 나누고 갔다. "제가 많이 알려진 이미지가 원더걸스 때니 그걸 지우고 싶지 않다"며 "다양한 작품을 하면서 거기에 덧칠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고 나름의 계획을 밝혔다."하나씩 자연스럽게 칠해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원더걸스 해체라는 단어 자체로는 뭔가 마무리 하는 느낌인데 그보단 여러 생각이 들어요. 해체 기사가 나온 날 예은 언니에게 연락이 왔는데 언니도 많은 생각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 같아요. 다음이 중요하고, 다음 걸 잘해내야죠." JYP 오디션으로 발탁되기 전까지 그는 방직 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 곁에서 자신이 연습하던 보아나 H.O.T 춤을 선보이고, 드라마 대사를 외워 가족을 놀라게 하는 아이였다. "<명성황후>나 <대장금> 같은 사극을 본 날엔 한복을 입고 집에 있기도 했다"며 그가 멋쩍은 듯 웃어보였다. 마냥 조용해 보이고 얌전해 보이는 그에게 다양한 끼와 재능이 이미 흐르고 있었던 셈이다.밝음과 그늘이 동시에 존재하는 안소희의 면모는 분명 좋은 작품을 통해 승화될 여지가 충분하다. 그런 의미에서 <싱글라이더>는 배우 외길을 걷기로 한 그에게 진짜 출발점으로 남을 것이다.

40년 음악인생 최백호 "창피한 노래는 안 하겠다"

[inter:view] '낭만에 대하여' 최백호가 말하는 음악인생 40년

처음 만나는 사람이 이토록 편안할 수 있을까. 가수 최백호는 자신의 노래와 꼭 닮아있었다. 욕심 없는 목소리와 말투는 그가 불러온 노래들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를 풍겼다. 삶과 음악에 대한 생각들에선 깊은 울림이 느껴졌다. 지난 22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마포대로의 음악창작공간 뮤지스땅스에서 최백호를 만났다.40년, 특별한 '의미' 없다... 실패해도 계속 해왔을 뿐 데뷔 40주년. 최백호는 이를 기념하는 앨범 <불혹>을 오는 3월 발표한다. 4년 만의 신곡 '바다 끝'을 지난 23일 선공개하기도 했다. 3월 11일~12일에는 LG아트센터에서 40주년 기념 콘서트 <불혹>을 연다. 나로썬 40년이란 세월의 더께를 감히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그 시간이 전혀 가늠되지 않노라고 고백하자 그가 답했다. "저도 감이 안 잡혀요. 특별하진 않아요. 감회를 묻는 질문에 뭐라고 할 말은 없고, '벌써 40년이 됐네' 싶은 거죠. 40년이 됐다니까 콘서트도 하고 앨범도 내보자 해서 하는 거고요. 어떤 후배는 '형, 40년 했으면 쉬어야지' 하며 푹 쉬라고 하는데 그 이야기도 맞는 것 같고요."최백호는 40주년에 '의미'는 없다고 했다. 무언가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편안함은 이렇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태도에서 비롯된 듯했다. 40년 가수인생도 이렇게 흘러왔다. 대인관계가 넓은 편이 아니라서 홍보를 적극적으로 해온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매니저 없이 가수생활을 해왔다. 그래도 이렇게 오래 노래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면 큰 욕심 없이 꾸준히 걸어왔기 때문이다."20장이 넘는 앨범을 냈는데 성공한 앨범은 4~5장 밖에 없어요. 실패한 앨범의 노래도 열심히 만들고 부른 것들이에요. 운이 좋아서 '낭만에 대하여'가 성공을 했는데 그보다 실패의 경험이 훨씬 많아요."최백호를 모르는 사람도, 그의 대표곡 '낭만에 대하여'를 모르는 사람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의 가수 인생에 '성공'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낭만에 대하여'도 조용히 묻힌 곡이었는데 우연히 김수현 작가가 차에서 라디오로 듣고 반해서 자신의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1996)에 삽입한 것이 국민적 사랑을 받게 됐다. '낭만에 대하여'는 최백호가 실패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앨범을 내고 가수생활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였다. 시처럼 서정적인 가사와 탱고 리듬이 매력적인 이 곡은 최백호 작사·작곡으로, 가사를 쓰는 데 2시간 남짓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한 명의 관객 두고 노래했던 첫 무대 최백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태어난 지 5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부산 영도 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5개월 만에 돌아가셨다. 최백호가 처음 노래를 부른 계기도 생계를 위해서였다. 그림을 잘 그렸던 그는 미대에 진학하려고 재수를 했는데 그 즈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그만두게 됐다. 그 후 친구들과 노래를 했고, 지금까지 음악을 이어오고 있다. 처음 무대에 섰을 때를 기억하는지 물었다. "23살 때쯤이었어요. 부산 서면의 생맥주 라이브클럽이었는데 친구의 매형이 운영하는 곳이었어요. 거기서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는데, 텅 비어 있고 친구 하나가 앉아 있었어요. 그렇게 한 명의 관객 앞에서 노래하고 있는데 (밖에서 듣고) 사람들이 점점 들어왔어요."그때의 기분을 물었다. "삶 자체가 절박했으니까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기분을 느낄 새도 없었고 정신없이 노래했어요. 무대를 일주일 정도 했을 때 대형 라이브클럽에 스카우트가 됐고 그곳에서 하수영씨를 만났어요. 그분이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로 떠서 서울서 활동하면서 저를 서라벌레코드에 소개해줬어요. '부산에 친구 하나가 있는데 한번 만나보라' 말해줘서 오디션을 보게 됐고, 5년 전속계약을 하고 1977년에 자작곡을 담은 첫 앨범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내게 됐어요."후배가수와 협업, 굳어지는 것 가장 두렵다 최백호 하면 '낭만에 대하여',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입영 전야', '영일만 친구' 등 예전 히트곡들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다. 하지만 '부산에 가면'처럼 최근 히트곡을 떠올리는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지난 2013년에 발표한 '부산에 가면'은 에코브릿지가 작사·작곡한 노래로 최백호가 보컬을 맡았다. 입소문을 타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부산에 가면'은 에코브릿지가 만든 노래인데 보컬을 맡아달라고 연락이 왔을 때 '내 노래다' 싶었어요. 부산에는 23살까지 살았는데 개성 있는 도시죠." 그의 모든 노래가 그렇지만 '부산에 가면'은 연령층을 뛰어넘는 감성을 품고 있다. 최백호는 이번 신곡 '바다 끝'도 에코브릿지와 함께 작업했다. 40주년 기념 앨범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하고 에코브릿지에게 연락했다. 곧 발표할 새 앨범의 수록곡의 반은 최백호가, 반은 에코브릿지가 만들었다. 젊은 음악인과의 협업이 어땠느냐고 묻자 "음악적으로 부딪혀서 다투기도 했지만 서로 도움을 나눴다"고 했다.아이유와 함께 부른 '아이야 나랑 걷자'도 그가 가진 '전세대적' 감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이유의 곡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배경을 묻자 "곡을 쓴 박주원씨가 아이유와 함께 부를 사람을 찾아 내게 연락을 해왔다"고 말했다. "'아이야 나랑 걷자'는 박자가 굉장히 까다로워 어려운 곡이에요. 아이유는 척척 잘해내더라고요. 저는 그런 음악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고생을 했죠." 젊은 감성의 곡들을 제 옷처럼 소화하는 비결이 궁금해 물었다. "평범하긴 싫다는 생각을 늘 해요. '튀겠다'는 말이 아니고, 새로운 면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스타일이에요. 가만히 앉아서 편안하게 쉬지를 못해요. 제가 지금까지 해온 음악을 보면, 한 장르를 해온 게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했어요. 쓴 가사에 어울리는 장르를 찾는데 그게 록이든 트로트든 뭐든 다 할 수 있어요. 굳어지고 고정되면 퇴보해요. 그게 가장 두려워요. 모든 문화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젊은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고요. 젊은 음악가들은 노래를 만드는 방법, 부르는 방법 등이 우리와 완전히 다르니까 함께 하면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고 스스로 굳어지지 않게 할 수 있어요." 요즘 음악, 가사 아쉬워 40년이란 긴 역사를 지나며 음악을 해온 그에게 요즘 음악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그는 "가사가 아쉽다"며 소신껏 대답을 이어갔다. "저희 세대는 가사에 정확한 주제가 있었어요. '고래사냥', '아침이슬'처럼 노래 제목만으로 전달되는 메시지가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이 좀 아쉬워요. 김광석의 노래만 봐도 가사가 큰 부분이죠. 저희 세대는 보통 가사를 먼저 만들고 멜로디를 붙였는데, 요즘 세대는 멜로디를 먼저 만들고 거기 가사를 끼워 넣으니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가사가 완벽하지 않아요. 미사여구가 많고요. 이번 앨범 작업에서도 이런 부분에서 부딪혔고요. 요즘 음악계에 표절 논란이 잦은 것도 멜로디를 먼저 만들어서 그런 측면이 있죠. 멜로디는 뇌 속에 저장되어 있어서 나도 모르게 남한테 들은 게 나오니까 의도치 않게 비슷하게 나올 수가 있어요. 하지만 가사를 먼저 쓰면 곡의 개성이 강해져서 듣는 입장에서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이 덜 하죠."그는 "정말 좋은 노래는 던져놔도 알려진다"고 말했다. 몇 십 년 뒤에 알려지더라도 틀림 없이 알려진다고 했다. 특히 "만드는 사람이 볼 수 없던 것을 대중이 발견할 때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젊은 음악가들에게 '쉬운 노래'를 만드는 걸 권하기도 했다. 멜로디가 쉬운 것을 만들고 부르는 것이 오래 남는 노래의 비결이다. "패티김 선생의 전성기 노래들을 보면 아주 단순해서 누구나 따라부를 수 있다"며 "요즘 음악은 너무 어렵고 전문화된 경향이 있는데 '특수층 가요'가 아닌 말그대로 '대중가요'가 오래 남는다"고 덧붙였다. 만화 보는 대통령 나왔으면... 리더의 조건은 '창의력' 인터뷰를 나눈 장소인 뮤지스땅스에 대해 잠깐 이야기 나눴다. 이 곳은 신인 음악인 육성을 위한 공간이다. 현재 ㈔한국음악발전소 소장인 최백호는 투명한 운영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예술지원사업을 제안 받았다. 그렇게 맡게 된 것이 이곳 '뮤지스땅스'다. 뮤직과 레지스탕스를 합쳐서 그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뮤지스땅스의 서가엔 만화책이 많았다. 최백호가 수집한 것들이다. 화가이기도 한 그는 오는 3월에 뮤지스땅스에서 개인전도 연다. 뜬금없지만 그에게 '원하는 대통령상'을 물었을 때도 최백호는 "만화책 읽는 대통령"이라는 함축적인 답변을 꺼내놓았다. "지금까지 대통령은 공부 잘하는 사람이 돼 왔어요. 하지만 공부를 잘한다고 창의력이 뛰어난 건 아니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기억력이 좋은 거고요. 다음 대통령은 창의력이 좋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어려운 단어만 쓰는 게 아니고 정말 힘든 사람을 위해서 눈물 흘릴 수 있는 사람, 감성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일례로 만화에는 무궁무진한 창의가 들어있어요. 우리는 만화를 불태우고, 만화를 못 보게 한 민족인데 '꿈'과 '순수'가 가득 들어있는 만화를 많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그는 교육제도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덧붙였다."특히 교육제도를 빨리 바꿔야 한다고 봐요. 초등학교 때부터 수능을 염두에 둔 교육을 하는데 결국 그건 창의보단 암기식 교육인 거잖아요. 아이들한테 음악과 시를 많이 접하게 하고 더 많이 뛰어놀게 해야 해요. 인간의 본능은 뛰어놀고 노래 부르는 거예요." 아흔 넘어서도 앨범내고 음악하고파끝으로 음악적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을 물었다. 그는 "계획이나 방향은 딱히 없다"며 "항상 내 음악은 변화하고 있다"고 답했다. 젊은 음악가들과도 꾸준히 작업할 생각이다. 세워놓은 기준 같은 건 딱히 없지만 그래도 분명한 한 가지는 있다고 했다. "내 아이들, 내 자손들이 들었을 때 창피한 노래는 하지 말자는 최소한의 기준은 있어요. 노래는 남는 것인데, '우리 할아버지 이상한 노래 불렀다'는 소리는 안 듣고 싶어요."가수는 앨범이 중요하고, 새 노래가 계속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 최백호. 끝까지 음악을 하고 싶다는 그는 "아흔이 넘어서도 앨범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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