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th오마이스타

 영화<사도>의 이준익 감독이 10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광고 기획자, 영화수입자, 그리고 영화제작자와 연출자. 이준익 감독이 충무로와 연을 맺은지도 근 30년이다. <오마이뉴스> 창간 17주년을 맞이해 영화계 인사 중 그를 만났다.ⓒ 이정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그림자에서 영화계 역시 자유롭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이 정부는 문화 분야에 억압적이었다. 실체의 9부 능선까지 접근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그 민낯이다. 많은 문화예술인이 공통적으로 고통을 호소하며 이 정부의 원칙 없음과 문화예술에 있어서 무지에 가까운 태도를 지적한다.

여기에 대해 이준익 감독은 오히려 긍정론을 펼쳤다. 그 자신도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었고, 여러 동료 영화인들이 차별 당하는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 온 그는 "이 정부의 차별적 태도와 블랙리스트는 곧 또 한 번의 급성장을 예고하는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약 30년 동안 <메멘토> <헤드윅> 등 외화 수입자로, <간첩 리철진> <아나키스트> 등의 제작자로, 익히 알려진 흥행 영화 감독으로 존재한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한국영화산업의 산증인 중 한 명이니까.  

특별한 개구멍

충무로 역 인근 이준익 감독의 사무실을 찾은 지난 21일 오전, 이제 갓 <박열>의 촬영을 끝낸 그는 편집 작업을 앞두고 상기된 모습이었다. 천만 영화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등 그를 수식하는 흥행작이 여럿 있지만, 최근 선보인 <동주>와 준비 중인 <박열>은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해 개봉한 80억 원 이상의 영화 10편 중 8편이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그 평균수익률이 53.9%에 달했지만, 50억 원 미만 작품의 평균수익률은 마이너스였다(영화진흥위원회 '2016 한국영화산업 결산' 기준).

돈이 돈을 버는 구조, 즉 양극화 현상이 영화 분야에도 고착화 되는 와중에 <동주>는 단 5억 원의 예산을 들여 흥행에 성공했고, <박열> 역시 26억 원 규모의 저예산이다. 관록의 상업영화 감독이 이런 길을 택한다는 건 일단 영화계에 여러 자극으로 작용할 만하다.

 영화 <동주> 촬영 현장. 송몽규 역의 박정민과 윤동주 역의 배우 강하늘, 그리고 이준익 감독의 모습(왼쪽부터).

영화 <동주> 촬영 현장. 송몽규 역의 박정민과 윤동주 역의 배우 강하늘, 그리고 이준익 감독의 모습(왼쪽부터).ⓒ 메가박스플러스엠


- 대규모 예산 일색의 한국영화산업 흐름에서 그 행보가 남다르다. 양극화에 대응하는 일종의 실험의 장 같다.
"지극히 의도한 선택이지. 상업 영화권에서 30년 활동했는데 작금의 영화 시장 변화에서 일종의 대안적 시도가 <동주>다. 제작비 상승과 멀티플렉스 극장 중심의 시스템이 영화라는 매체의 대중성을 더 강화해서 콘텐츠 산업을 확대시키고, 그 파생산업을 성장시키는 순기능이 있긴 하지만, 그만큼 상업영화 자체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게 만들었다. 순기능엔 항상 역기능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 장벽에 일종의 개구멍을 하나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었다(웃음). 그런 노력이 없으면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 자체에 옹색해지거든.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화는 곧 자본과의 협상이자 약속의 이행이다. 엄밀히 말하면 <동주>는 주류 자본인 메가박스가 있었기에 독립영화가 아닌 저예산 상업영화다. 표현양식 면에선 흑백이라 상업영화에 반하는 측면이 있긴 하지. 과거에 존재했던 여러 영화 제작 방식과 획일화 된 현대 상업영화 제작 방식 사이에서 이처럼 독립영화는 아니면서, 상업영화엔 포함시키는 그런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박열>도 그 연장선이다.  

"그렇게 시도하려 했으나 계획과 다르게 오차가 생겨 제작비가 좀 증가했다. 26억 원이 들어갔는데 기본적으로 컬러영화에, 배경이 100프로 도쿄여야 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도 있어야 했고(웃음). 합천 쪽에 근대 현대를 아우를 수 있는 세트가 있어서 그걸 활용했다."

- 영화의 다양성 면에서 과거와 비교해 보자면 어떤가. 또 대규모 자본에 대한 부담 등으로 새로운 도전이 좀 위축돼 있진 않은지.
"결과적으론 더 다양해진 거다. 과거엔 1년에 개봉되는 영화가 300에서 400편, 극장 수가 1000개 미만이었다면 지금은 거의 3000개 정도다. 개봉 영화도 1000편을 넘었고. 같이 상승 비례한 거지. 근데 시장점유의 양극화는 그때에 비해 훨씬 커졌다. 자본주의에선 일견 필연적인 면이다. 양극화라는 게 누군가 의지를 갖고 만든 게 아니라 시장 자체가 갖고 있는 성질이 그걸 조장할 수밖에 없다. 자연발생적이지.

근데 지금 지적하는 문제는 2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더 나아진 게 있다면, 그때는 한국영화자체의 위기론이었지만 이젠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 50프로를 이미 확보한 상황에서 한국영화끼리 양극화를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엔 할리우드와 홍콩영화가 시장의 80프로를 차지했다. 할리우드나 외국영화에 비했을 때 시장주도성은 어느 정도 앞선 상태에서 그 안에서 발견되는 문제를 삼고 있다. 예전보단 좋아진 면이 있다."

 영화 <동주> 촬영 현장.

영화 <동주> 촬영 현장.ⓒ 순천시제공


- 이런 양극화로 신인감독이 급하게 데뷔한다거나 중견 감독이 너무 빨리 시장에서 사라지는 현상도 있다. 자본의 통제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이유다.

"분명 한국영화 감독들의 조로현상이 있다. 미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리들리 스콧, 유럽엔 최근의 켄 로치 등을 보면 노장 감독들이 여전히 건재하다. 한국영화는 과거 일제강점기 때 영향을 받았다. 일본은 또 미국과 유럽에서 답습한 거고. 서로를 답습하는 과정이 1990년대 초까지 왔고, 그때까지 영화는 산업이 아니었다. 문화였지. 산업이라는 건 소위 수치로 계량화가 가능하고 예측 가능할 때 성립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1990년 중반 이후 나타난 감독은 앞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할 거다. 산업화 이전에 영화를 생산하던 인력은 수명이 단축됐지. 강제규, 강우석,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등 이 중견들은 길이 열려있다. 훨씬 더 다양한 영화가 나올 거라 기대하고 있지(웃음)."

정치권력의 발목잡기

 영화<사도>의 이준익 감독이 10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터뷰 중 이준익 감독은 "지금의 10대, 20대가 20년 뒤에는 훌륭한 콘텐츠 생산 주체가 돼 있을 것"이라며 "지금부터라도 콘텐츠 지원 정책의 방향이 바로 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민


다양성을 얘기하는 대목에서 이준익 감독은 10여 년 전 국내영화계에 뜨겁게 불었던 스크린쿼터 폐지 반대운동을 언급했다. 요약하자면 당시 시장경쟁력과 자생력이 떨어지던 때 무분별한 개방으로 한국영화가 고사상태에 빠질 뻔했던 위기를 연대의 힘으로 국면전환시켰다는 자평이었다. 프랑스나 독일, 일본 등이 그 문제에 소극적이었고, 현재 그들의 자국 영화 점유율이 30프로가 채 안 된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여기서 핵심은 스크린쿼터 찬반 여부가 아닌 '저항정신'이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인들의 강력한 저항 에너지가 곧 창작에 대한 의지로 전환됐다"고 강조했다.

- 현장에서 정말 그런 창작자들의 창작력이 불타고 있는가.
"물론! 한국영화의 자생력을 지속시키는 가장 큰 힘이 창작력인데 이건 영화계뿐만 아니라 게임이든 온라인 비즈니스 등 다양한 콘텐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자본의 방향성, 그러니까 대기업이나 정부의 지원 방향이 창작자들의 에너지를 수용하는 쪽으로 나가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다. 그 지원 결과가 지금의 한국영화 시장이기도 하다. 대기업이나 정부 모태펀드가 끊임없이 지원했기에 싹이 튼 거지.

이젠 예측과 계획이 필요하다. 지금 현상을 보면 미국 할리우드가 한국의 창작력을 흡수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밀정> <곡성> 등이 그 예다. 한국영화는 우리나라 시장에 국한한 게 아닌 세계시장에 이미 편입된 거다. 천만 영화가 10편 넘게 나온 거 차제를 문제 삼을 순 없다. 그 순기능을 존중하되 거기서 발생하는 역기능을 어떻게 막고, 대안적 사고를 할 것인가가 문제다."

- 그 대안적 사고라는 건?
"독립영화 지원 정책이라든가 저예산영화 배급 환경 조성이라든가 여러 갈래가 있지. 다수의 창작자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이 기존 주류의 것뿐만 아니라 또 다른 프로젝트를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고, 시장 역시 그걸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기성 감독인) 난 유리한 위치에 있긴 했다. 그래서 <사도> 같이 기존 방식의 영화를 하면서 그 대척점에 있는 <동주> 같은 영화를 한 거다. <동주>로 성과를 냄으로써 가능성을 열어보자! <박열>은 2차 시도고."

- 앞서 나온 지원의 방향성 이야기다. 정부 주도의 문화 정책의 중요성을 언급한 만큼 그 방향성 역시 중요한데 근 9년은 방향 자체에 의문이 크지 않나. 
"그렇지. 나름 잘 나가다가 거꾸로 간 지난 9년이었다고 생각한다. 정치권력이 우선하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북한 같은 몇몇 공산국가 체제 국가가 여기에 해당하지. 중진국은 경제권력이 우선하는 나라고, 선진국은 문화권력이 우선하는 나라다. 한국은 1980년대까지가 정치권력의 시대였다면 90년대 들어선 대기업을 위시한 경제권력의 시대, 2000년에 와선 문화권력으로 전환되는 시점이었다. 그러다 2010년에 와서 다시 경제권력으로 회귀하는 조짐이 있다가 최근엔 정치권력으로 역행하게 된 거다.

문화적 성숙도와 창작자의 의지가 증가하는 와중에 경제, 정치권력이 문화성장의 발목을 잡는 기간이라 본다. 역기능인데 여기엔 또 순기능도 있다! 뭐냐고? 지난 4년 간 문화콘텐츠 생산자들 의지를 더욱 불태우게 했다는 것! (웃음) 모든 진화는 작용과 반작용 사이 진폭만큼 이뤄지거든. 최근까지 등장한 사회비판 영화뿐만 아니라 집회 문화, 그리고 뉴스가 예능보다 주목받는 현상을 보자. 이게 모두 놀라운 사회 성숙도의 증가로 작용했는데 문화 가치가 미래 성장의 동력임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영화<사도>의 이준익 감독이 10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문화의 중요성. 이준익 감독은 "결국 우리는 강력한 콘텐츠 생산 국가를 희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강력한 문화중심주의자로 명명하고 싶을 정도다. 이를 인지한 듯 그는 "그런 희망조차 없다면 앞으로 우린 뭐 먹고 살 건데?"라며 반문했다. "이것을 위해 옳은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그가 덧붙였다.

"구체적인 방법은 생산자들의 몫이다. 정책이 방법까지 만들 순 없잖나. 전략과 전술 개념인데 전략이 정책이라면, 전술은 콘텐츠 생산자들이 구사해야지. 어떻게 전략가가 전술까지 짜. 그건 자질이 없는 거다. 방법은 방향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다. 좋은 방향이 그래서 절실하다."

숨은 부역자들

- 질문을 좁혀보자. 블랙리스트의 전말이 드러나고 있다. 정부 주도로 누군가를 대거 배제하려는 리스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는지.
"이 역시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헌법에 위배되는 아주 부당한 짓이다. 동시에 모든 예술가는 부조리를 가장 최전선에서 느낀다. 과거 유럽이 근대를 맞이하게 된 것도 억압과 부조리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시민정신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모든 억압은 변화의 시작점이다. 지금 겪고 있는 정치적 분란, 지원 차별, 블랙리스트 현상은 또 한 번의 급성장을 예고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 창작 의지와는 별개로 물리적으로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문화예술인이 많다. 당장 제작사나 극장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고.
"그렇다. 그 분들에겐 더욱 폭력적인 정부다. 정치권력이 우선인 정책이면 국민이나 당사자들은 억압의 대상이 된다. 그만큼 권력에 불만이 커지고, 반작용이 클 수밖에. 이 과정에서 블랙리스트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거 아닌가. 전 국민이 알게 됐다. 만약 다들 정치논리에 순응하며, 이 정권에 부역만 했다면 블랙리스트가 까발려지진 않았겠지. 그 안에서 사다리 타려는 인간들만 있었겠지."

- 감독님도 블랙리스트인데 피해를 입은 건 없나?
"정부 돈을 지원받는 것에 장애가 있을 뿐이지 사실 체감한 건 없다. 그 블랙리스트는 내 영화 생산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내가 정부지원을 한 번도 신청해 본 적이 없거든. 정부를 별로 신임하지 않는다(웃음)."

- 이런 상황에서 영화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이미 잘해오고 있는 거 같다. 각 단체에서 성명서를 여러 차례 냈고, 그래서 문제가 더욱 공론화 됐다고 본다. 앞으로 재현되지 않길 바란다. 다들 숨어 있기만 하고 기생하려 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졌겠지. 이슈화가 됐고, 책임자가 처벌을 받으려고 하는 상황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 우리(시민)들이 있다."

17주년 맞이한 <오마이뉴스>에 바란다
"지금 국내에서 벌어지는 현상이 주변국과 지구 반대편 나라에까지 어떤 역학 관계가 있는지 많이 서술됐으면 좋겠다. 사드 문제, 위안부 문제, 김정남 피살 사건이 됐든 이게 국내사건 기사로 머물기보단 국제 상관성으로 풀어본다면 훨씬 현재를 다양한 결로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또 언어적인 면에서 확장이 필요해 보인다. 최소한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까진 번역이 되면 어떨까. 한국에서 나오는 모든 <오마이뉴스> 기사를 누군가 계속 번역해 올리기만 해도 전 세계에서 볼 수 있다. 그게 온라인 장점 아닌가. 우리가 <알자지라>를 인용하듯 <오마이뉴스>도 전 세계 매체에 인용되기 쉬울 것이다. 이렇게 형식적 확대를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다 보면 내용의 방향성도 정해질 것이다.

<오마이스타>는 비주류의 발견에 힘을 썼으면 좋겠다. 기존 연예 뉴스는 스타 따라잡기다. 그게 포털사이트 진입을 가장 손쉽게 하기에 그렇다. 기존 매체들이 스타덤을 쫓는다면 <오마이스타>는 팬덤을 쫓길 바란다. 물론 스타를 쫓는 팬덤도 있지만 비스타의 팬덤을 주목해봤으면 한다. 이제 막 생성되는 팬덤들은 그 수는 적을지언정 에너지 총합은 웬만한 스타의 팬덤에 맞먹을 것이다. 꾸준히 집중한다면 일종의 스타권력을 해체하는 힘이 될 것이다. 좋은 의미로의 해체다. <오마이뉴스> 정체성이 바로 그런 권력의 해체를 통해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널리 알리려 한 데 있지 않은가. 스타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체가 되었으면 한다. 제호 자체가 그걸 증명하지 않나. 우리의(our) 스타가 아닌 나의(my) 스타니까."


"몰래한 혼인신고에 대리만족" 연기의 맛 알아버린 미술학도

[오마이픽업] <불어라 미풍아> 장세현, 8년간 한 계단씩 오르다

주연으로 전면에 선 배우들 모두 주말극이 처음이었다. 걱정이 많았고, 일종의 모험이었으나 MBC 드라마 <불어라 미풍아> 속 이들은 주어진 역할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의 보상일까. 종영을 앞두고 평균 시청률 20%를 상회하며 경쟁작과 함께 제법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손호준과 임지영이 각각 장고-미풍 커플로 분하며 각종 사건에 얽히는 동안 꾸준하게 시청자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 커플이 있었으니 바로 장세현의 이장수와 황보라의 조희라 커플이다. 이들은 일명 고구마 전개라며 드라마의 주요 사건이 막힐 때도, 급박한 전환점을 맞을 때도 꾸준히 사랑했고, 시원한 모습을 유지했다. 시청자들이 그만큼 감정 이입하기 좋은 캐릭터였다. 이 두 사람 중 장세현을 21일 서울 충무로 인근에서 만날 수 있었다.연습량이 곧 분량 종영까지 2화가 남은 가운데 <불어라 미풍아>는 지난 20일 마지막 촬영을 끝냈다.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 것 같았는데 막상 마치니 공허하더라"며 장세현이 이른 종영 소감부터 전했다."드라마 내용 자체가 이산가족상봉이잖아요. 지난 7개월간 매주 두 번씩은 다들 만났는데 이제 못 본다고 생각하니까 되게 마음이 이상하더라고요.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한 선생님들, 또 파트너로 함께 했던 보라 누나에게도 참 감사해요. 대본 리딩이 있는 날이면 저희끼리 따로 모여 연습하곤 했거든요. 분량이 적으면 적은 대로 연습량을 늘려서 이것저것 시도하려 했어요."극 중 이장수는 달래 할머니(김영옥 분)와 유대 관계가 깊고, 정이 많은 인물로 묘사된다. 막내아들로서 엄마 황금실(금보라 분)과 장남 이장고(손호준 분)에겐 더없이 소중한 존재였을 터. 장세현은 "실제 집에선 장남이지만 애교가 많은 편이라 스스로 장수와 비슷한 면이 많다고 생각했다"며 "시청자분들이 이입하기 가장 쉬운 캐릭터라고 봤고, 그렇게 준비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런 정이 많은 면은 저랑 비슷한데 또 어떤 면에선 완전 다르기도 해요. 사랑에 빠져 몰래 혼인신고하기가 사실 쉽지 않잖아요. 그런 면을 연기할 땐 나름대로 대리만족을 느꼈다랄까(웃음). 집에서 부모님이 제가 출연한 걸 종종 보셨는데 '장수가 그냥 네 모습인데?' 이런 반응이었어요. 굉장히 모범적 인물이면서 또 백수기도 한데, 적극적인 면도 있는 인물이에요. 제겐 색다른 경험이었죠."주말극이 처음인 만큼 세세하게 준비한 흔적이 보인다. 짝꿍인 황보라와 이런저런 호흡을 미리 맞춰보는 과정에서 지금의 커플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극 중 애착이 가는 장면으로 장세현은 "혼인신고 사실 때문에 놀이터에서 장고 형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는데 그게 계속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 역시 기존 설정에 아이디어를 보태 코믹하게 재탄생한 경우였다.다재다능함 시청자들에게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장세현은 영화 <바람>과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로 데뷔해 벌써 8년 차 경력이 쌓였다. 올해로 서른하나, 데뷔 이후 여러 작품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고루 경험했다. 대학에서 전공은 산업디자인으로 이 또한 이색 이력이다. 연기에 전념하기 위해 입대 전 학교를 나왔고, 말 그대로 한 계단씩 올라오고 있는 전형적인 노력파다. 한 달에 평균 4, 5번의 오디션을 다니며 선택과 배제의 과정을 겪었고, 그로 인해 나름 굳은살 역시 튼실하게 배어있다."디자인도 연기도 모두 제 꿈이었어요. 학교는 나왔지만 그렇다고 그림을 포기한 건 아닙니다. 꾸준히 그리고 있어요. 오디션 볼 때도 이걸 장점으로 사용할 수도 있어요. 캐릭터 분석표를 드릴 때 제가 상상한 캐릭터를 직접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드린 경우도 있었죠. <화랑> 땐 주령구(주사위의 일종)라고 대본에 나온 소품을 직접 만들어 가기도 했고요(웃음).어렸을 때부터 반에서 그림 하면 제가 손꼽히는 편이었어요. 특별활동 부서도 만화부에 들 정도로 좋아했죠. 예술고등학교에 떨어진 이후 제대로 준비하고 싶어서 부모님과 상의했고, 흔쾌히 지원해주셨어요. 사실 집안 환경이 그리 풍족하지 않았는데 믿고 맡겨주신 거죠. 그러다 대학교에서 갑자기 연기한다고 하니 어떻겠어요? 그런데도 '후회하지 않을 거냐'라고 물어보시곤 그 이후로 쭉 믿어주셨어요. 다른 친구들은 이 이야기에 되게 놀라거든요. 제가 생각해도 감사한 일입니다.오디션은 일단 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제겐 소중하죠. 그런 점에서 회사에 참 감사합니다. 저만 잘하면 돼요! (웃음) 너무 떨어져서 오히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붙으면 같이 즐거워해 주고 떨어지면 슬퍼해 줄 분이 곁에 있다는 자체가 큰 힘이에요."그림이란 게 흰 도화지에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표현하는 행동이라면 연기 역시 장세현에겐 빈 도화지에 몸으로 생각과 감정을 그리는 일이었다. "어떤 도구가 아닌 온몸을 쓸 수 있다는 게 더 크게 다가왔다"며 그가 전환의 계기를 설명했다.시작은 할 수 있어도 버티기 어려운 게 이쪽 업계의 생리다. 재능 있고 젊은 자원이 끊임없이 등장하지만, 작품 자체는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스물여섯에 뒤늦게 입대하면서도 그는 군악대, 군 행사 진행 등을 거치며 끼를 숨기지 않았고,느리지만 길게 이런 이유로 장세현은 급히 부상한 스타보단 "과정을 거쳐 하나씩 배워가는 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 "역할을 떠나 일단 연기할 수 있는 자체가 감사하다"며 "조급증은 이미 버렸고, 주어진 기회를 좀 더 많이 살리는 게 내 숙제"라고 답했다."빠르게 주목받고 인지도가 올라갈수록 그 반대의 경우도 더 빨리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스타 분들이 어깨에 진 짐이 그만큼 무겁겠죠? 전 비행기보단 계단으로 올라가고 싶어요! (웃음) 친한 친구와 꿈에 관해 얘기할 때 서로 이루면 꼭 방송국에서 만나자고 했거든요. 그 친구는 아나운서 지망생이었고, 마침 지난해에 KBS에 합격해서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어요. 저도 마침 KBS 드라마를 했고요. 아, 우리가 좀 느리긴 해도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구나! 생각이 들어 뿌듯했습니다."밝은 어투로 말했지만, 장세현의 이 말엔 그가 지금까지 해온 고민의 시간이 담겨있었다. 오디션을 보든 섭외가 오든 장세현은 "열린 자세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역적> 아기장수 이로운, 8살 '언어천재'의 배꼽 잡는 연기관

[inter:view] 이로운에게 연기란? "코딱지 먹는 건 어린이의 상징, 연기할 때 피가 상승"

김밥이 교도소에 잡혀간 이유는? 들깨가 고소해서. 슬픈 사람을 뭐라고 하게요? 흑인. 소가 계단을 오르면? 소오름~. 왕이 궁에 가기 싫을 때 하는 말은? 궁시렁~ 궁시렁~. 딸기가 회사에서 잘렸을 때 하는 말은? 딸기시럽. 피카츄가 길에 떨어진 담배를 주우면서 하는 말은? 이건 힌트를 줄게요. 피카츄 성대모사 일단 해보세요. 피까~ 오! 맞아요! 그거예요!드라마 촬영 현장이 어땠냐는 질문에 길동이는 대뜸 아재개그부터 들어보란다. 자기가 요즘 아재개그를 좀 많이 안다고. 그 통에 내가 던진 질문을 나도 잊었다. 길동이의 개그는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너 대단하구나, 근데 피카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여기 상암동에도 포켓몬 많은 거 아니? 이 말에 길동은 눈이 튀어나올 만큼 동그래져서 물었다. 많아요? 진짜 많아요?아기장수 길동이가 찾아왔다.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를 찾은 이로운(8) 군은 방영 중인 MBC 드라마 <역적>에서 홍길동 아역을 맡아 어른 못지않은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그를 꼭 인터뷰하고 싶었다. 딱 2년 전, 한 아역배우와 인터뷰를 했는데 어른에게선 얻을 수 없는 가르침(?)을 얻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로운도 그랬다. 어른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순수한 발상과 티 없는 마음. 배꼽 잡고 쓰러진 로운이와의 인터뷰를 전한다.말을 왜 이렇게 잘 해요? <역적>에서 아기장수 길동이 '힘 천재'였다면, 실제 만나본 이로운은 '언어 천재'였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그 또래가 가질 법한 언어구사력이 아니었다. 물론 어린이 특유의 알아들을 수 없는 화법에, 떠오르는 대로 마구 말했지만 표현이나 단어선택이 수준급이었다. 18층 인터뷰 장소 통유리 밖 풍경을 보고 자기는 "고소공포증"이 있다며 엄살을 떠는가하면, 함께 연기한 아역 형들은 어땠냐고 묻자 "베테랑"이라고 답했다. 방학해서 좋냐고 묻자, 방학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느냐고 되묻는다. 재치가 보통이 아니었다.사투리는 안 힘들었어? "네, 연기 선생님이 전라도 군산이 고향이라서요, 배웠어요." 계속 코 흘리고 있던데 그거 로운이 진짜 코 같더라, 맞지? "네, 그리고 저 코딱지 먹는 신도 진짜예요. 코딱지를 먹는 건 어린이의 상징이에요, 어른이 일하듯이 어린이는 코딱지를 파서 먹어요." '상징'이란 단어는 또 어디서 배웠는지... 장난기 머금은 표정으로 짐짓 진지한 척 '어린이의 상징'을 설명하는 그 모습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코 파는 신이 들어간 이유에 대해 로운이의 설득력 있는 해석이 놀라웠다. 연기 속에서 정말 화났던 신을 물었다. 로운이는 "어머니가 맞을 때랑 절구 찰 때"라고 했다. 어머니가 맞아서 쓰러졌을 때 "진짜로 가족을 생각하고 엄마를 생각했더니 너무 화가 났다"고 한다. 그때 연기를 다시 보여달라고 청하자 주저 없이 일어서서 연기했다. 돌을 든 손모양을 하고 눈을 부리부리 뜬 로운이는 1분가량 그 신을 연기했다. 인터뷰에 함께 온 친형에겐 악역 나으리 역을, 연기 선생님에겐 아버지 아모개 역을 해달라고 직접 부탁했다. 여간 똘똘한 게 아니었다. 까르르 웃으며 인터뷰 하다가도 연기에 들어가자 표정이 바뀌고 다른 사람이 됐다.화내는 연기를 할 때 주로 떠올리는 건 형이라고 한다. 이날 함께 온 한 살 위의 형 이건화 역시 아역배우다.힘들지 않았어요? 가장 힘들었던 촬영을 물었다. 로운이는 다 즐거웠지만 "육체"가 힘든 것이 가장 힘들었다면서 호랑이 숲 장면을 말했다. 살코기를 들고 가는 장면을 찍을 때 엄청 무거웠지만 몇 시간을 들고 촬영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인터뷰에 동행한 연기 선생님은 고깃덩어리(돼지목살)의 무게가 4kg 정도였고, 어른이 들기에도 무거웠다고 증언(?)했다. 로운이는 "그걸 찍고 나서 거의 쓰러졌지만 '밥이나 먹고 가자' 싶어서 밥을 많이 먹고 촬영장을 떠났다"고 야무지게 회상했다.12월 말부터 1월까지 근래 가장 추울 때 촬영이 이뤄졌다. 로운이는 안동, 문경새재, 마산 등 약 12곳을 돌며 <역적> 자기 분량을 소화해냈다. 그날 그림일기로 이렇게 썼다고 한다. "휴일 없는 하루. 어떨 때는 동상. 쥐남. 머리통 아픔. 눈물. 슬픔. 추워서 슬픔." 무언가를 말할 때 랩하듯 나열식으로 말하는 로운이의 화법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언어의 마술사 같았다. <역적> 본방사수를 하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어른 홍길동 역을 맡은 윤균상 형에 대해서도 물었다. 로운이는 균상 형이 사람들과 "케미가 좋다"며 "익숙해지는 능력이 빠르다"고 했다. 익숙함이란 친화력을 말하는 듯했다. 아버지 역을 맡은 김상중을 "아모개 선배님"이라고 현장에서 불렀는데, 처음에는 무서웠다고 한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무엇이든 괜찮은 것인데, 중간에 익숙해져서 괜찮아졌다"며 세상 다 산 도인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박나래와 함께 찍은 나무토막 신을 떠올리며, 원래는 대본에 "쪼그만 게!"만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현장에서 대사를 더 넣어주셔서 "이 코딱지 만한 게!"를 붙이게 됐다고 한다. 박나래 누나는 (수염을 붙여서) 진짜 남자인 줄 알았다고.연기하는 거 좋아요? 연기할 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로운이는 또 래퍼로 빙의해 대답했다.몰입의 순간 느끼는 감정을 설명하는 듯했다. 연기할 때 집중이 잘 되느냐는 추가 질문에는 다음처럼 답했다. 맞는 해석일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연기하고 있단 의식을 하면 집중이 깨지지만 그런 생각을 끄고 길동이가 되면 집중하게 된다는 의미 같았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싶은 생각이 안 들었냐는 질문도 던졌다. 로운이는 너무 당연한 것을 묻는 거 아니냐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그런데 저는 육체일 뿐이에요. 제 피가 다 하는 거예요." 이 또한 해석을 해보자면, 본능적으로 하는 거니 아쉬워도 할 수 없다는 뭐 그런 이야기 같았다. 옆에 있는 연년생 형 건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열었다. 로운이에게 무슨 과목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배시시 웃으며 "그거 왜 말해줘야 해요?"라며 장난을 걸어왔다. 인터뷰에 함께 온 할머니는 산만한 아이에게 주의를 주며 "너 수학 좋아하잖아" 말했고, 형은 "너 체육 좋아하잖아" 하고 거들었다. 하지만 로운이는 마치 그런 대답이 형식적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곰곰 생각하더니, 그냥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로운이의 말을 또 마음대로 해석해보자면, 미용실에 가서 보게 되는 잡지에 연기자에 관한 내용이 나오면 그것을 읽고 싶고 자꾸 보게 되는데 그런 과목(공부)이 가장 좋다는 말 같았다. 수학, 체육보다 더 좋은 건 '연기'인가 보다.숙제는 다이어트, 학교생활은 즐거울 뿐, 랩은 즉석랩 텔레비전에 자신이 나오면 어떤 기분일까? 무언가 멋진 대답을 기대하고 물었지만 로운이는 차가운 미소로 짧게 대답했다. "제가 너무 살 찐 것 같아요." 길동이 이미지를 벗고 현대극을 하려면 살을 빼야한단다. 알고 보니 할머니가 다이어트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로운이는 또다시 힙합 말투로 할머니의 실태(?)를 고했다. "과자 하나 만져도 살 빼. 종이 하나 만져도 살 빼. 치약 하나 만져도 살 빼." 로운이는 말을 재미있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학교생활은 할 만하냐는 질문에도 느낀 그대로 답했다. 이 빠진 미소를 짓는 로운이에게 이는 누가 빼줬냐, 아프지 않았느냐 시시콜콜한 질문을 이어갔고 로운이는 씩 웃으며 말했다. 자기가 뽑았다고. 흔들다가 그냥 퍽! 뽑았다고. 보통 털털한 성격이 아니었다. <역적> 아기장수 캐릭터 그대로였다. 로운이와 형은 요즘 랩놀이에 푹 빠졌다. 집에서 즉석랩을 하거나, 말 거꾸로 하기, 상황극을 하며 논단다. 맛보기로 들은 '몽둥이' 랩이 하도 재미있어서 더 요청했더니 로운이는 즉석랩을 만들어 들려줬다. 인터뷰 장소에 있는 포도주스, 핸드폰, 컴퓨터, 신발, 카메라 등 보이는 것 모두 주제가 됐다. 물론 진짜 래퍼처럼 라임 맞춘 랩은 아니지만 즉석에서 주어진 단어에 대해 바로바로 말을 쏟아내는 순발력이 대단했다. 아무 단어나 달라고 했다. '컴퓨터'를 던져주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속사포로 응답했다.이날 로운이는 10가지가 넘는 랩과 3가지가 넘는 연기를 보여줬다. 덕분에 배를 잡고 웃느라 시간이 다 갔고, 준비한 질문의 반도 묻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인터뷰보다 풍부한 소통이었다. 여덟살 로운이만이 줄 수 있는 진실한 무엇이 있었다. 꾸미지 않았고, 느낀 그대로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힘'이 얼마나 센지를 새삼 느낀, 배꼽 빠진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연기할 때 기분을 말하던 로운이의 모습이 긴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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