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이로운, 정의로 뭉친 주먹 '아기장수' 홍길동! MBC월화특별기획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 어린시절 역의 배우 이로운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MBC월화특별기획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 어린시절 역의 배우 이로운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했다.ⓒ 이정민


김밥이 교도소에 잡혀간 이유는? 들깨가 고소해서. 슬픈 사람을 뭐라고 하게요? 흑인. 소가 계단을 오르면? 소오름~. 왕이 궁에 가기 싫을 때 하는 말은? 궁시렁~ 궁시렁~. 딸기가 회사에서 잘렸을 때 하는 말은? 딸기시럽. 피카츄가 길에 떨어진 담배를 주우면서 하는 말은? 이건 힌트를 줄게요. 피카츄 성대모사 일단 해보세요. 피까~ 오! 맞아요! 그거예요!

드라마 촬영 현장이 어땠냐는 질문에 길동이는 대뜸 아재개그부터 들어보란다. 자기가 요즘 아재개그를 좀 많이 안다고. 그 통에 내가 던진 질문을 나도 잊었다. 길동이의 개그는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너 대단하구나, 근데 피카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여기 상암동에도 포켓몬 많은 거 아니? 이 말에 길동은 눈이 튀어나올 만큼 동그래져서 물었다. 많아요? 진짜 많아요?

아기장수 길동이가 찾아왔다.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를 찾은 이로운(8) 군은 방영 중인 MBC 드라마 <역적>에서 홍길동 아역을 맡아 어른 못지않은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그를 꼭 인터뷰하고 싶었다. 딱 2년 전, 한 아역배우와 인터뷰를 했는데 어른에게선 얻을 수 없는 가르침(?)을 얻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로운도 그랬다. 어른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순수한 발상과 티 없는 마음. 배꼽 잡고 쓰러진 로운이와의 인터뷰를 전한다.

말을 왜 이렇게 잘 해요?

 MBC월화특별기획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 어린시절 역의 배우 이로운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로운은 연기하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정민


<역적>에서 아기장수 길동이 '힘 천재'였다면, 실제 만나본 이로운은 '언어 천재'였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그 또래가 가질 법한 언어구사력이 아니었다. 물론 어린이 특유의 알아들을 수 없는 화법에, 떠오르는 대로 마구 말했지만 표현이나 단어선택이 수준급이었다. 18층 인터뷰 장소 통유리 밖 풍경을 보고 자기는 "고소공포증"이 있다며 엄살을 떠는가하면, 함께 연기한 아역 형들은 어땠냐고 묻자 "베테랑"이라고 답했다. 방학해서 좋냐고 묻자, 방학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느냐고 되묻는다. 재치가 보통이 아니었다.

사투리는 안 힘들었어? "네, 연기 선생님이 전라도 군산이 고향이라서요, 배웠어요." 계속 코 흘리고 있던데 그거 로운이 진짜 코 같더라, 맞지? "네, 그리고 저 코딱지 먹는 신도 진짜예요. 코딱지를 먹는 건 어린이의 상징이에요, 어른이 일하듯이 어린이는 코딱지를 파서 먹어요." '상징'이란 단어는 또 어디서 배웠는지... 장난기 머금은 표정으로 짐짓 진지한 척 '어린이의 상징'을 설명하는 그 모습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코 파는 신이 들어간 이유에 대해 로운이의 설득력 있는 해석이 놀라웠다.   

연기 속에서 정말 화났던 신을 물었다. 로운이는 "어머니가 맞을 때랑 절구 찰 때"라고 했다. 어머니가 맞아서 쓰러졌을 때 "진짜로 가족을 생각하고 엄마를 생각했더니 너무 화가 났다"고 한다. 그때 연기를 다시 보여달라고 청하자 주저 없이 일어서서 연기했다.

"꺼져. 꺼지라고 혔지. 우리 엄니한테서 꺼지라고!"

돌을 든 손모양을 하고 눈을 부리부리 뜬 로운이는 1분가량 그 신을 연기했다. 인터뷰에 함께 온 친형에겐 악역 나으리 역을, 연기 선생님에겐 아버지 아모개 역을 해달라고 직접 부탁했다. 여간 똘똘한 게 아니었다. 까르르 웃으며 인터뷰 하다가도 연기에 들어가자 표정이 바뀌고 다른 사람이 됐다.

화내는 연기를 할 때 주로 떠올리는 건 형이라고 한다. 이날 함께 온 한 살 위의 형 이건화 역시 아역배우다.

"화내는 거 연기할 때 3분의 2는 형을 생각해요. 형에게 화날 때도 있고 형한테 양보하고 싶을 때도 있고 형을 달래주고 싶을 때도 있고 여러 가지 (감정이) 있어요. 단계가 있어요. 단계 중에 하나를 골라요."

힘들지 않았어요?

 MBC월화특별기획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 어린시절 역의 배우 이로운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로운은 KBS2 드라마 <다 잘 될 거야>에 출연했고, 영화 <아들에게 가는 길>에서 아들 원효 역을 맡아 스크린으로 발을 넓혔다. 이 영화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정민


가장 힘들었던 촬영을 물었다. 로운이는 다 즐거웠지만 "육체"가 힘든 것이 가장 힘들었다면서 호랑이 숲 장면을 말했다. 살코기를 들고 가는 장면을 찍을 때 엄청 무거웠지만 몇 시간을 들고 촬영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인터뷰에 동행한 연기 선생님은 고깃덩어리(돼지목살)의 무게가 4kg 정도였고, 어른이 들기에도 무거웠다고 증언(?)했다. 로운이는 "그걸 찍고 나서 거의 쓰러졌지만 '밥이나 먹고 가자' 싶어서 밥을 많이 먹고 촬영장을 떠났다"고 야무지게 회상했다.

12월 말부터 1월까지 근래 가장 추울 때 촬영이 이뤄졌다. 로운이는 안동, 문경새재, 마산 등 약 12곳을 돌며 <역적> 자기 분량을 소화해냈다. 그날 그림일기로 이렇게 썼다고 한다. "휴일 없는 하루. 어떨 때는 동상. 쥐남. 머리통 아픔. 눈물. 슬픔. 추워서 슬픔." 무언가를 말할 때 랩하듯 나열식으로 말하는 로운이의 화법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언어의 마술사 같았다. <역적> 본방사수를 하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네, 하는데 어제는 1~2초 놓쳤어요. 모르고 리모컨을 머리에 베고 누워서요. 근데 잠시 생각하니 그 부분을 알 수 있었어요. 촬영할 때 7부 대본을 제가 봤어요. 감독님 스타일을 떠올리며 이 장면은 이렇게 했겠다 생각했어요."

어른 홍길동 역을 맡은 윤균상 형에 대해서도 물었다. 로운이는 균상 형이 사람들과 "케미가 좋다"며 "익숙해지는 능력이 빠르다"고 했다. 익숙함이란 친화력을 말하는 듯했다. 아버지 역을 맡은 김상중을 "아모개 선배님"이라고 현장에서 불렀는데, 처음에는 무서웠다고 한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무엇이든 괜찮은 것인데, 중간에 익숙해져서 괜찮아졌다"며 세상 다 산 도인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박나래와 함께 찍은 나무토막 신을 떠올리며, 원래는 대본에 "쪼그만 게!"만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현장에서 대사를 더 넣어주셔서 "이 코딱지 만한 게!"를 붙이게 됐다고 한다. 박나래 누나는 (수염을 붙여서) 진짜 남자인 줄 알았다고.

연기하는 거 좋아요?

이로운, 정의로 뭉친 주먹 '아기장수' 홍길동! MBC월화특별기획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 어린시절 역의 배우 이로운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역적>에서 박나래와 함게 찍은 신을 연기 중인 이로운. 아기장수가 힘을 발휘해 나무토막을 분질르는 중이다.ⓒ 이정민


이로운, 정의로 뭉친 주먹 '아기장수' 홍길동! MBC월화특별기획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 어린시절 역의 배우 이로운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말 나무토막이 있는 것 같았다. 생생한 연기를 펼치는 이로운.ⓒ 이정민


연기할 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로운이는 또 래퍼로 빙의해 대답했다.

"길동이 되면 나는 길동. 이제부터 나는 홍길동. 그러면 피가 잘 통해요. 피가 상승을 해요. 그 때 정신이 좀 나가요. 피가 얼굴로 상승을 하면 정신이 나가져요. 웃는 장면은 그래서 웃은 거예요. 정신 나가면 웃게 돼요."

몰입의 순간 느끼는 감정을 설명하는 듯했다. 연기할 때 집중이 잘 되느냐는 추가 질문에는 다음처럼 답했다.

"머릿속이 하얘요. 생각을 차리면 못해요. 생각을 끄면 다시 잘하고요."

맞는 해석일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연기하고 있단 의식을 하면 집중이 깨지지만 그런 생각을 끄고 길동이가 되면 집중하게 된다는 의미 같았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싶은 생각이 안 들었냐는 질문도 던졌다. 로운이는 너무 당연한 것을 묻는 거 아니냐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그런데 저는 육체일 뿐이에요. 제 피가 다 하는 거예요." 이 또한 해석을 해보자면, 본능적으로 하는 거니 아쉬워도 할 수 없다는 뭐 그런 이야기 같았다.

옆에 있는 연년생 형 건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열었다.

"저는 로운이 칭찬할 게 딱 하나 있는데요. 같이 축구할 때 열번 넣기로 하면 죽도록 차서 열골을 다 넣을 때 까지 해요. 끈기가 좋아요."

이로운, 정의로 뭉친 주먹 '아기장수' 홍길동! MBC월화특별기획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 어린시절 역의 배우 이로운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기장수의 카리스마를 톡톡히 보여준 이로운.ⓒ 이정민


로운이에게 무슨 과목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배시시 웃으며 "그거 왜 말해줘야 해요?"라며 장난을 걸어왔다. 인터뷰에 함께 온 할머니는 산만한 아이에게 주의를 주며 "너 수학 좋아하잖아" 말했고, 형은 "너 체육 좋아하잖아" 하고 거들었다. 하지만 로운이는 마치 그런 대답이 형식적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곰곰 생각하더니, 그냥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만화책은 '쿠키런'을 제일 좋아해요. 좋아하는 과목은... 음... 미용실 가면 책들이 있잖아요. 거기에 사람들의 포즈도 나오고 연기 이야기도 나오는데 뭔 말인지는 하나도 모르겠는데 자꾸 보게 돼요. 어떤 연기분(?)이 있는지 보게 되는데 좋아요."

로운이의 말을 또 마음대로 해석해보자면, 미용실에 가서 보게 되는 잡지에 연기자에 관한 내용이 나오면 그것을 읽고 싶고 자꾸 보게 되는데 그런 과목(공부)이 가장 좋다는 말 같았다. 수학, 체육보다 더 좋은 건 '연기'인가 보다.

숙제는 다이어트, 학교생활은 즐거울 뿐, 랩은 즉석랩

 MBC월화특별기획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 어린시절 역의 배우 이로운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로운의 순수한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이정민


텔레비전에 자신이 나오면 어떤 기분일까? 무언가 멋진 대답을 기대하고 물었지만 로운이는 차가운 미소로 짧게 대답했다. "제가 너무 살 찐 것 같아요." 길동이 이미지를 벗고 현대극을 하려면 살을 빼야한단다. 알고 보니 할머니가 다이어트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로운이는 또다시 힙합 말투로 할머니의 실태(?)를 고했다. "과자 하나 만져도 살 빼. 종이 하나 만져도 살 빼. 치약 하나 만져도 살 빼." 로운이는 말을 재미있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학교생활은 할 만하냐는 질문에도 느낀 그대로 답했다.

"학교는 잘못하면 때리고 회초리 맞는 곳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나 이제 죽었다~ 하고 1학년이 됐는데 아니었어요. 학교는 그냥 즐거울 뿐이에요."

이 빠진 미소를 짓는 로운이에게 이는 누가 빼줬냐, 아프지 않았느냐 시시콜콜한 질문을 이어갔고 로운이는 씩 웃으며 말했다. 자기가 뽑았다고. 흔들다가 그냥 퍽! 뽑았다고. 보통 털털한 성격이 아니었다. <역적> 아기장수 캐릭터 그대로였다.

로운이와 형은 요즘 랩놀이에 푹 빠졌다. 집에서 즉석랩을 하거나, 말 거꾸로 하기, 상황극을 하며 논단다. 맛보기로 들은 '몽둥이' 랩이 하도 재미있어서 더 요청했더니 로운이는 즉석랩을 만들어 들려줬다. 인터뷰 장소에 있는 포도주스, 핸드폰, 컴퓨터, 신발, 카메라 등 보이는 것 모두 주제가 됐다. 물론 진짜 래퍼처럼 라임 맞춘 랩은 아니지만 즉석에서 주어진 단어에 대해 바로바로 말을 쏟아내는 순발력이 대단했다. 아무 단어나 달라고 했다. '컴퓨터'를 던져주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속사포로 응답했다.

"컴퓨터로 하는 건 인터뷰. 인터뷰하면 글 쓰지. 글 쓰는 거 안 되면 녹음기를 틀지. 녹음기를 틀면 배터리가 나가지."

이날 로운이는 10가지가 넘는 랩과 3가지가 넘는 연기를 보여줬다. 덕분에 배를 잡고 웃느라 시간이 다 갔고, 준비한 질문의 반도 묻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인터뷰보다 풍부한 소통이었다. 여덟살 로운이만이 줄 수 있는 진실한 무엇이 있었다. 꾸미지 않았고, 느낀 그대로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힘'이 얼마나 센지를 새삼 느낀, 배꼽 빠진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연기할 때 기분을 말하던 로운이의 모습이 긴 여운을 남겼다.

 MBC월화특별기획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 어린시절 역의 배우 이로운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역적> 방송 이후 CF도 찍었다. 이로운은 학교에서 '길동이'로 불린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게임하는 것인데, 닉네임도 '길동이'로 할 계획이란다.ⓒ 이정민





이준익 감독 "박근혜 정부 4년, 의지가 타오른다"

[창간 17주년 기획 인터뷰] 영화계 양극화, 정치권력의 압력... '블랙리스트' 감독이 말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그림자에서 영화계 역시 자유롭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이 정부는 문화 분야에 억압적이었다. 실체의 9부 능선까지 접근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그 민낯이다. 많은 문화예술인이 공통적으로 고통을 호소하며 이 정부의 원칙 없음과 문화예술에 있어서 무지에 가까운 태도를 지적한다.여기에 대해 이준익 감독은 오히려 긍정론을 펼쳤다. 그 자신도 블랙리스트에 올라있었고, 여러 동료 영화인들이 차별 당하는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 온 그는 "이 정부의 차별적 태도와 블랙리스트는 곧 또 한 번의 급성장을 예고하는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약 30년 동안 <메멘토> <헤드윅> 등 외화 수입자로, <간첩 리철진> <아나키스트> 등의 제작자로, 익히 알려진 흥행 영화 감독으로 존재한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한국영화산업의 산증인 중 한 명이니까. 특별한 개구멍충무로 역 인근 이준익 감독의 사무실을 찾은 지난 21일 오전, 이제 갓 <박열>의 촬영을 끝낸 그는 편집 작업을 앞두고 상기된 모습이었다. 천만 영화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등 그를 수식하는 흥행작이 여럿 있지만, 최근 선보인 <동주>와 준비 중인 <박열>은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해 개봉한 80억 원 이상의 영화 10편 중 8편이 손익분기점을 넘겼고 그 평균수익률이 53.9%에 달했지만, 50억 원 미만 작품의 평균수익률은 마이너스였다(영화진흥위원회 '2016 한국영화산업 결산' 기준).돈이 돈을 버는 구조, 즉 양극화 현상이 영화 분야에도 고착화 되는 와중에 <동주>는 단 5억 원의 예산을 들여 흥행에 성공했고, <박열> 역시 26억 원 규모의 저예산이다. 관록의 상업영화 감독이 이런 길을 택한다는 건 일단 영화계에 여러 자극으로 작용할 만하다. - 대규모 예산 일색의 한국영화산업 흐름에서 그 행보가 남다르다. 양극화에 대응하는 일종의 실험의 장 같다."지극히 의도한 선택이지. 상업 영화권에서 30년 활동했는데 작금의 영화 시장 변화에서 일종의 대안적 시도가 <동주>다. 제작비 상승과 멀티플렉스 극장 중심의 시스템이 영화라는 매체의 대중성을 더 강화해서 콘텐츠 산업을 확대시키고, 그 파생산업을 성장시키는 순기능이 있긴 하지만, 그만큼 상업영화 자체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게 만들었다. 순기능엔 항상 역기능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 장벽에 일종의 개구멍을 하나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었다(웃음). 그런 노력이 없으면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 자체에 옹색해지거든.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화는 곧 자본과의 협상이자 약속의 이행이다. 엄밀히 말하면 <동주>는 주류 자본인 메가박스가 있었기에 독립영화가 아닌 저예산 상업영화다. 표현양식 면에선 흑백이라 상업영화에 반하는 측면이 있긴 하지. 과거에 존재했던 여러 영화 제작 방식과 획일화 된 현대 상업영화 제작 방식 사이에서 이처럼 독립영화는 아니면서, 상업영화엔 포함시키는 그런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열>도 그 연장선이다. "그렇게 시도하려 했으나 계획과 다르게 오차가 생겨 제작비가 좀 증가했다. 26억 원이 들어갔는데 기본적으로 컬러영화에, 배경이 100프로 도쿄여야 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도 있어야 했고(웃음). 합천 쪽에 근대 현대를 아우를 수 있는 세트가 있어서 그걸 활용했다."- 영화의 다양성 면에서 과거와 비교해 보자면 어떤가. 또 대규모 자본에 대한 부담 등으로 새로운 도전이 좀 위축돼 있진 않은지."결과적으론 더 다양해진 거다. 과거엔 1년에 개봉되는 영화가 300에서 400편, 극장 수가 1000개 미만이었다면 지금은 거의 3000개 정도다. 개봉 영화도 1000편을 넘었고. 같이 상승 비례한 거지. 근데 시장점유의 양극화는 그때에 비해 훨씬 커졌다. 자본주의에선 일견 필연적인 면이다. 양극화라는 게 누군가 의지를 갖고 만든 게 아니라 시장 자체가 갖고 있는 성질이 그걸 조장할 수밖에 없다. 자연발생적이지.근데 지금 지적하는 문제는 2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더 나아진 게 있다면, 그때는 한국영화자체의 위기론이었지만 이젠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 50프로를 이미 확보한 상황에서 한국영화끼리 양극화를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거엔 할리우드와 홍콩영화가 시장의 80프로를 차지했다. 할리우드나 외국영화에 비했을 때 시장주도성은 어느 정도 앞선 상태에서 그 안에서 발견되는 문제를 삼고 있다. 예전보단 좋아진 면이 있다." - 이런 양극화로 신인감독이 급하게 데뷔한다거나 중견 감독이 너무 빨리 시장에서 사라지는 현상도 있다. 자본의 통제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이유다."분명 한국영화 감독들의 조로현상이 있다. 미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리들리 스콧, 유럽엔 최근의 켄 로치 등을 보면 노장 감독들이 여전히 건재하다. 한국영화는 과거 일제강점기 때 영향을 받았다. 일본은 또 미국과 유럽에서 답습한 거고. 서로를 답습하는 과정이 1990년대 초까지 왔고, 그때까지 영화는 산업이 아니었다. 문화였지. 산업이라는 건 소위 수치로 계량화가 가능하고 예측 가능할 때 성립한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1990년 중반 이후 나타난 감독은 앞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할 거다. 산업화 이전에 영화를 생산하던 인력은 수명이 단축됐지. 강제규, 강우석,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등 이 중견들은 길이 열려있다. 훨씬 더 다양한 영화가 나올 거라 기대하고 있지(웃음)."정치권력의 발목잡기 다양성을 얘기하는 대목에서 이준익 감독은 10여 년 전 국내영화계에 뜨겁게 불었던 스크린쿼터 폐지 반대운동을 언급했다. 요약하자면 당시 시장경쟁력과 자생력이 떨어지던 때 무분별한 개방으로 한국영화가 고사상태에 빠질 뻔했던 위기를 연대의 힘으로 국면전환시켰다는 자평이었다. 프랑스나 독일, 일본 등이 그 문제에 소극적이었고, 현재 그들의 자국 영화 점유율이 30프로가 채 안 된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여기서 핵심은 스크린쿼터 찬반 여부가 아닌 '저항정신'이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인들의 강력한 저항 에너지가 곧 창작에 대한 의지로 전환됐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정말 그런 창작자들의 창작력이 불타고 있는가."물론! 한국영화의 자생력을 지속시키는 가장 큰 힘이 창작력인데 이건 영화계뿐만 아니라 게임이든 온라인 비즈니스 등 다양한 콘텐츠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자본의 방향성, 그러니까 대기업이나 정부의 지원 방향이 창작자들의 에너지를 수용하는 쪽으로 나가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다. 그 지원 결과가 지금의 한국영화 시장이기도 하다. 대기업이나 정부 모태펀드가 끊임없이 지원했기에 싹이 튼 거지.이젠 예측과 계획이 필요하다. 지금 현상을 보면 미국 할리우드가 한국의 창작력을 흡수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밀정> <곡성> 등이 그 예다. 한국영화는 우리나라 시장에 국한한 게 아닌 세계시장에 이미 편입된 거다. 천만 영화가 10편 넘게 나온 거 차제를 문제 삼을 순 없다. 그 순기능을 존중하되 거기서 발생하는 역기능을 어떻게 막고, 대안적 사고를 할 것인가가 문제다."- 그 대안적 사고라는 건?"독립영화 지원 정책이라든가 저예산영화 배급 환경 조성이라든가 여러 갈래가 있지. 다수의 창작자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이 기존 주류의 것뿐만 아니라 또 다른 프로젝트를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고, 시장 역시 그걸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기성 감독인) 난 유리한 위치에 있긴 했다. 그래서 <사도> 같이 기존 방식의 영화를 하면서 그 대척점에 있는 <동주> 같은 영화를 한 거다. <동주>로 성과를 냄으로써 가능성을 열어보자! <박열>은 2차 시도고."- 앞서 나온 지원의 방향성 이야기다. 정부 주도의 문화 정책의 중요성을 언급한 만큼 그 방향성 역시 중요한데 근 9년은 방향 자체에 의문이 크지 않나. "그렇지. 나름 잘 나가다가 거꾸로 간 지난 9년이었다고 생각한다. 정치권력이 우선하는 나라는 후진국이다. 북한 같은 몇몇 공산국가 체제 국가가 여기에 해당하지. 중진국은 경제권력이 우선하는 나라고, 선진국은 문화권력이 우선하는 나라다. 한국은 1980년대까지가 정치권력의 시대였다면 90년대 들어선 대기업을 위시한 경제권력의 시대, 2000년에 와선 문화권력으로 전환되는 시점이었다. 그러다 2010년에 와서 다시 경제권력으로 회귀하는 조짐이 있다가 최근엔 정치권력으로 역행하게 된 거다.문화적 성숙도와 창작자의 의지가 증가하는 와중에 경제, 정치권력이 문화성장의 발목을 잡는 기간이라 본다. 역기능인데 여기엔 또 순기능도 있다! 뭐냐고? 지난 4년 간 문화콘텐츠 생산자들 의지를 더욱 불태우게 했다는 것! (웃음) 모든 진화는 작용과 반작용 사이 진폭만큼 이뤄지거든. 최근까지 등장한 사회비판 영화뿐만 아니라 집회 문화, 그리고 뉴스가 예능보다 주목받는 현상을 보자. 이게 모두 놀라운 사회 성숙도의 증가로 작용했는데 문화 가치가 미래 성장의 동력임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문화의 중요성. 이준익 감독은 "결국 우리는 강력한 콘텐츠 생산 국가를 희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강력한 문화중심주의자로 명명하고 싶을 정도다. 이를 인지한 듯 그는 "그런 희망조차 없다면 앞으로 우린 뭐 먹고 살 건데?"라며 반문했다. "이것을 위해 옳은 방향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그가 덧붙였다."구체적인 방법은 생산자들의 몫이다. 정책이 방법까지 만들 순 없잖나. 전략과 전술 개념인데 전략이 정책이라면, 전술은 콘텐츠 생산자들이 구사해야지. 어떻게 전략가가 전술까지 짜. 그건 자질이 없는 거다. 방법은 방향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다. 좋은 방향이 그래서 절실하다."숨은 부역자들- 질문을 좁혀보자. 블랙리스트의 전말이 드러나고 있다. 정부 주도로 누군가를 대거 배제하려는 리스트가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는지."이 역시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헌법에 위배되는 아주 부당한 짓이다. 동시에 모든 예술가는 부조리를 가장 최전선에서 느낀다. 과거 유럽이 근대를 맞이하게 된 것도 억압과 부조리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시민정신이 도래했기 때문이다. 모든 억압은 변화의 시작점이다. 지금 겪고 있는 정치적 분란, 지원 차별, 블랙리스트 현상은 또 한 번의 급성장을 예고하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창작 의지와는 별개로 물리적으로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문화예술인이 많다. 당장 제작사나 극장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고."그렇다. 그 분들에겐 더욱 폭력적인 정부다. 정치권력이 우선인 정책이면 국민이나 당사자들은 억압의 대상이 된다. 그만큼 권력에 불만이 커지고, 반작용이 클 수밖에. 이 과정에서 블랙리스트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거 아닌가. 전 국민이 알게 됐다. 만약 다들 정치논리에 순응하며, 이 정권에 부역만 했다면 블랙리스트가 까발려지진 않았겠지. 그 안에서 사다리 타려는 인간들만 있었겠지."- 감독님도 블랙리스트인데 피해를 입은 건 없나?"정부 돈을 지원받는 것에 장애가 있을 뿐이지 사실 체감한 건 없다. 그 블랙리스트는 내 영화 생산 활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내가 정부지원을 한 번도 신청해 본 적이 없거든. 정부를 별로 신임하지 않는다(웃음)."- 이런 상황에서 영화계는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이미 잘해오고 있는 거 같다. 각 단체에서 성명서를 여러 차례 냈고, 그래서 문제가 더욱 공론화 됐다고 본다. 앞으로 재현되지 않길 바란다. 다들 숨어 있기만 하고 기생하려 했다면 문제는 더 심각해졌겠지. 이슈화가 됐고, 책임자가 처벌을 받으려고 하는 상황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 우리(시민)들이 있다."

이요원이 말하는 이요원, 까칠함과 솔직함 사이

[inter:view] 이요원, 사생활과 작품을 대하는 그 만의 기준

솔직히, 마냥 편한 이미지는 아니다. <황금의 제국> 최서윤부터 <욱씨남정기> 욱다정, <불야성> 서이경까지. 냉정한 말투와 표정으로 불같은 야망을 감추고 있던, 그의 지난 캐릭터들 때문일까?최근 영화 <그래, 가족> 개봉을 앞두고 만난 이요원은 "애교 있는 성격은 아니"라고 인정했다. 누군가에게 치대고 장난치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누군가 애교 부르거나 치대는 것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어색하다고. 성격상 누군가에게 피해 주는 일도, 부탁하는 일도 잘 못 한다. 남에게 신세를 지면, 꼭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피곤해지기 때문이다.솔직하고 당당한, 남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은, 작품 안에서나, 밖에서나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작품 속에서는 '걸크러시'라 불리며 찬사받았지만, 밖에서는 '까칠하다' '어렵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 정도.직접 만난 이요원은 솔직하고 쿨했지만, 이야기할 것과 안 할 것에 대해 나름의 기준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이야기할 것에 대한 질문에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답했고, 안 할 것에 대한 질문에는 빙긋이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주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화는 그가 출연한 영화 <그래,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걸크러시' 이요원의 가족 영화 - 영화 <그래, 가족>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들었다."펑펑 울었다. 대본도 봤고, 리딩도 했고, 촬영하면서 모니터도 하지 않나. 다 아는 내용이라 슬프더라도 눈물 좀 글썽거리겠지 했다. 근데 하이라이트 장면에서는 펑펑 울게 되더라. 그렇게까지 눈물이 날 줄 몰랐다."- 그간 TV 드라마에서 차갑고 냉철한 역할을 많이 맡아왔지 않나. 가족 영화를 택한 게 조금 의외였다."따뜻하고 소소한, 잔잔한 영화를 좋아한다. 보고 나서 마음이 편해지는 영화. 잔인하고 가슴 졸이는 영화는 잘 못 본다. 호러물은 보고 나서도 찝찝하고 가위눌린다. 겁이 많은 편은 아닌데, 보고 나서 너무 힘들더라. 굳이 극장에서 돈 내고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은 기분이랄까. 가슴이 따뜻하고 편안해지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연기는 이상하게 반대 작품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 가족> 수경도, 언뜻 기존에 TV 드라마에서 연기해왔던, 까칠한 이미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족 영화'이기 때문에, 그 안에 따뜻함도 물론 있었지만."<그래, 가족>은 <욱씨남정기>를 찍고 있을 때 제안받았다. 언뜻 전문직 여성이고, 욱하고. 똑같은 거 연달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가족 영화지 않나. 짜증 내고 막말하는 것도 마냥 편할 수 있는 가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들이고. 그래서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 안에 자연히 인간적인 면이 보여질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너무 오랜만의 영화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없는 게 아니라면 하고 싶었다."- '걸크러시' 열풍 이전부터, 계속 '걸크러시'한 역할들을 맡아왔던 것 같다."내게 그런 캐릭터들만 들어오는진 모르겠는데, 요즘 여주 캐릭터가 대부분 걸크러시한 것 같다. 수동적이고 마냥 청순가련한 캐릭터는 없는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한 '센' 역할은, <황금의 제국>이었는데, 첫 재벌 연기였다. 그전까지는 늘 가난하고, 힘들고, 그랬거든. 스스로 잘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한 번도 안 해본 장르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작가님과 정말 많이 이야기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 잘 못 하는 부분. 그에 맞춰 작가님이 잘 써주셨다."- 어떤 연기가 제일 어려웠나. "소리 지르는 연기? 카리스마라고 하면, 1차원적으로 소리 지르고, 목소리 높이고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난 소리 잘 못 지르거든. 발성이 뛰어나지도 않고. <욱씨>에서도 코믹 연기가 자신이 없어서 미팅할 때 많이 이야기했다."- <욱씨남정기>에서 충분히 코믹했다. 세일러문 분장까지 하지 않았나."나는 진지하게 한 거다. 세일러문도, 그 복장을 하고 직접적으로 코믹하게 하는 게 아니라, 내 나름대로는 진짜 진지하게 한 거다. 세일러문 복장으로 진지하니까, 그게 더 코믹해 보이더라."데뷔 20년차... "아직 부족하다" <황금의 제국> 이전, 청순가련한 이미지의 이요원이 이토록 '걸크러시'하고,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잘할 거라고 그 누가 생각했을까? 하지만 이요원은 "자신없었다"던 엄살과 달리, 첫 변신부터 '걸크러시'를 자신의 대표 이미지로 만들었다. 잡지 모델로 데뷔, 1998년 영화 <남자의 향기>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해 어느덧 데뷔 20년차. 여러 작품에서 저도 모르게 쌓여 온 내공 덕분이다.- 10대에 데뷔해서, 어느덧 데뷔 20년을 맞았다."내가 이렇게 오래 연기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어릴 때는 20년을 연기했으면 엄청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나이 들수록, 연기할수록 어렵다. 생각도 많아지고. 어릴 때는 자신감과 열정이 컸는데, 지금은 생각이 많아서 더 어렵고 힘든 것 같다. 신인 때는 어리니까 조금만 해도 '잘한다'는 칭찬도 들었고, 그땐 그런 칭찬에 '나 진짜 잘하나?'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지금은 누가 잘한다 해도 잘 안 들린다."- 이제는 현장에 선배보다 후배들이 더 많지 않나. 선배 이요원은 어떤 선배인가."나도 예전 선배님들처럼, '괜찮아' '잘하고 있어' 이렇게 되더라. (웃음) 사실 특별히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나이 차도 그리 많이 나지 않고, 내가 '선생님'은 아니니까. 스스로도 많이 부족한 배우라고 생각하고. 지나보니 따뜻한 격려 한마디. 그게 큰 힘이 됐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그런 한마디를 해주려고 한다."- 그래도 20년 동안 한길을 걸었으면, 객관적인 평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배우 이요원의 지난 20년을 스스로 돌아봤을 때, 뭘 잘하고, 뭘 못하는 배우인 것 같나.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는지. "이전에는 청순한 역할을 주로해서, 세고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잘 못 했다. 예전에 주변분들이 생활 연기를 잘한다고, 생활 연기 해보라고 해주셨는데, 희한하게 그런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스스로 괴롭히고 채찍질하는 캐릭터들을 해온 것 같다. 그러면서 내 단점, 부족한 점들을 하나하나 알게 됐다. 그러면서 조금씩 나만의 길, 나만의 캐릭터들을 만들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앞으로는 말랑말랑하고 현실적인, 내 나이 또래의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범죄 영화나 범죄 오락물도 해보고 싶고. 지금까지 굳어있고 센 캐릭터들을 많이 했었지만, '악역'이라 할만한 캐릭터들은 아니었으니까, 마냥 나쁜 악역도 연기해보고 싶다."4년 만의 영화, 편안했다 - 4년 만에 찍은 영화였다. 오랜만에 간 영화 현장은 어떻던가."전 작품들은 다 선배님들이었다. 내용도 어렵고 해서 현장 분위기에 익숙해질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그래, 가족>은 아담하고, 내용도 소소한 가족 영화라 편안했다."- 함께 연기한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특히 막냇동생 오낙 역의 정준원 군과의 분량이 많았다. 데뷔 이래 아역과 이렇게 길게 호흡하는 건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영화에서 네 형제가 같이 야식 먹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닮아 보이더라. 각자 누군가와 닮아있더라. 촬영할 때는 많이 친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콘셉트가 남같이 살던 형제·자매들의 이야기지 않나. 처음에 어색하고 각자 따로 노는 연기가 자연스럽고 좋았다. 나중에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서로 가까워지면서 점점 닮아가더라. 지금 같이 영화 홍보를 하면서 되게 친해졌는데, 좀 있으면 헤어지겠지. (웃음)준원 군은 처음 미팅할 때부터, 애늙은이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어른스럽더라. 감독님이 실제 그 친구를 보고 대본을 쓰셨다더니, 정말 낙이에 딱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히 아역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NG 한 번을 내지 않더라. 호흡도 너무 잘 맞았다. 솔직히 나는 어릴 때부터 연기하는 거는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기 인생이 없지 않나.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를 때부터 직업을 갖는 거고. 근데 준원 군은 자기 적성을 일찍 찾은 것 같더라. 본인도 재밌다고 하고, 너무 잘한다."- 그러고 보면 이요원도 어릴 때부터 배우 일을 시작했다. 배우가 되고 싶었나."우리 때는 패션 잡지가 많았다. 키가 크니까 잡지 모델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일 못 한다고 잘리기도 많이 잘렸다. 사진 찍을 때마다 포즈를 바꿔야 한다는데, 안 해봤으니 너무 어렵더라고. 모델은 못하겠지 싶었다. 근데 자꾸 잘리는 것도 싫고, 나 때문에 피해주는 것도 싫어서 계속 혼자 연습했다. 그러면서 일이 점점 늘어나고, 표지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TV까지 출연하게 됐다."- 배우가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니었던 셈인데, 배우가 된 걸 후회한 적은 없는지. "(후회한 적은) 없다. 난 별로 꿈이 없었다. 뭐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면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정도였고, 엄마는 약사가 되길 바라셨지. (웃음) 하지만 이 직업을 통해 여러 직업을 경험할 수 있지 않나. 많은 사랑도 받고. 그만큼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사랑과 관심 - 어떤 부분을 감수해야 했나."어딜 가도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거? 컴플레인도 잘 못 하고. (웃음)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나. 똑같은 장면을 봐도 해석하는 게 다르고. 난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다니기는 하지만 조심은 해야하니까."- 그러고 보면, 비공개 결혼을 가장 먼저 했다. 요즘은 그게 대세이지만, 당시만 해도 '연예인의 사생활'이라는 개념도 보편화되지 않았고, 비공개 결혼도 흔하지 않은 일이라 비난도 많이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욕 많이 먹었다. 사실 그때 난 그냥 단순했다. (남편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로 인해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는 것 때문에 받아야 했던 시선도 싫었다. 근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더라."여기까지였다. <그래, 가족>은 가족 영화다. 자연히 배우 이요원의 가족 이야기로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요원은 바람 잘 날 없는 형제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을 연기하며 "동생과 나, 둘 뿐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거나, 어릴 때 여동생과 옷 때문에 티격태격하던 에피소드를 전하며 "어릴 때는 (동생이) 나를 싫어했겠지만, 지금은 좋아할 거다" 등의 이야기는 솔직하고 털털하게 털어놨다. 하지만 '엄마' 이요원, '아내' 이요원에 대한 질문에는 빙긋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불편하지는 않았다. 어린 나이에, 당시로써는 흔치 않았던 비공개 결혼을 택했던 이유와, "폐 끼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던 그녀의 말로 미루어보아, 연예인이라는 자기의 직업 때문에 불편을 겪어야 할 가족들을 위한, 그녀 나름의 배려로 보였다. 직접 만난 이요원은 분명 친근하고 친숙한 이미지의 스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예상처럼 무례하거나 막무가내도 아니었다. 다만 무뚝뚝하고 시니컬한 말투, 제 생각을 밀어붙이는 뚝심 혹은 고집 탓에 '살면서 오해 많이 받겠구나' 싶었다.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직업을 가진 만큼, 조금만 더 대중친화적으로 행동해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하지만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랴. 모든 배우가 살갑고 다정다감할 필요는 없으니까. 당시엔 흔치 않아 비난 받았던 '비공개 결혼식'이, 이제는 결혼 당사자의 선택으로 존중받는 것처럼, 지금은 호불호가 갈릴 그녀의 '뻣뻣', 혹은 '까칠'한 성격도, 언젠가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 inter:view 다른 기사

  • 옆으로 쓸어 넘길 수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