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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래, 가족>에서 수경 역의 배우 이요원이 8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그래, 가족>에서 수경 역의 배우 이요원이 8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솔직히, 마냥 편한 이미지는 아니다. <황금의 제국> 최서윤부터 <욱씨남정기> 욱다정, <불야성> 서이경까지. 냉정한 말투와 표정으로 불같은 야망을 감추고 있던, 그의 지난 캐릭터들 때문일까?

최근 영화 <그래, 가족> 개봉을 앞두고 만난 이요원은 "애교 있는 성격은 아니"라고 인정했다. 누군가에게 치대고 장난치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누군가 애교 부르거나 치대는 것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어색하다고. 성격상 누군가에게 피해 주는 일도, 부탁하는 일도 잘 못 한다. 남에게 신세를 지면, 꼭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솔직하고 당당한, 남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은, 작품 안에서나, 밖에서나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작품 속에서는 '걸크러시'라 불리며 찬사받았지만, 밖에서는 '까칠하다' '어렵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 정도.

직접 만난 이요원은 솔직하고 쿨했지만, 이야기할 것과 안 할 것에 대해 나름의 기준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이야기할 것에 대한 질문에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답했고, 안 할 것에 대한 질문에는 빙긋이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주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화는 그가 출연한 영화 <그래,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걸크러시' 이요원의 가족 영화

 영화 <그래, 가족>에서 수경 역의 배우 이요원이 8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직접 만난 이요원은 솔직하고 쿨했지만, 이야기할 것과 안 할 것에 대해 나름의 기준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이정민


- 영화 <그래, 가족>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들었다.
"펑펑 울었다. 대본도 봤고, 리딩도 했고, 촬영하면서 모니터도 하지 않나. 다 아는 내용이라 슬프더라도 눈물 좀 글썽거리겠지 했다. 근데 하이라이트 장면에서는 펑펑 울게 되더라. 그렇게까지 눈물이 날 줄 몰랐다."

- 그간 TV 드라마에서 차갑고 냉철한 역할을 많이 맡아왔지 않나. 가족 영화를 택한 게 조금 의외였다.
"따뜻하고 소소한, 잔잔한 영화를 좋아한다. 보고 나서 마음이 편해지는 영화. 잔인하고 가슴 졸이는 영화는 잘 못 본다. 호러물은 보고 나서도 찝찝하고 가위눌린다. 겁이 많은 편은 아닌데, 보고 나서 너무 힘들더라. 굳이 극장에서 돈 내고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은 기분이랄까. 가슴이 따뜻하고 편안해지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연기는 이상하게 반대 작품을 많이 했던 것 같다."

- <그래, 가족> 수경도, 언뜻 기존에 TV 드라마에서 연기해왔던, 까칠한 이미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족 영화'이기 때문에, 그 안에 따뜻함도 물론 있었지만.
"<그래, 가족>은 <욱씨남정기>를 찍고 있을 때 제안받았다. 언뜻 전문직 여성이고, 욱하고. 똑같은 거 연달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가족 영화지 않나. 짜증 내고 막말하는 것도 마냥 편할 수 있는 가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들이고. 그래서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 안에 자연히 인간적인 면이 보여질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너무 오랜만의 영화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없는 게 아니라면 하고 싶었다."

- '걸크러시' 열풍 이전부터, 계속 '걸크러시'한 역할들을 맡아왔던 것 같다.
"내게 그런 캐릭터들만 들어오는진 모르겠는데, 요즘 여주 캐릭터가 대부분 걸크러시한 것 같다. 수동적이고 마냥 청순가련한 캐릭터는 없는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한 '센' 역할은, <황금의 제국>이었는데, 첫 재벌 연기였다. 그전까지는 늘 가난하고, 힘들고, 그랬거든. 스스로 잘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한 번도 안 해본 장르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작가님과 정말 많이 이야기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 잘 못 하는 부분. 그에 맞춰 작가님이 잘 써주셨다."

- 어떤 연기가 제일 어려웠나. 
"소리 지르는 연기? 카리스마라고 하면, 1차원적으로 소리 지르고, 목소리 높이고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난 소리 잘 못 지르거든. 발성이 뛰어나지도 않고. <욱씨>에서도 코믹 연기가 자신이 없어서 미팅할 때 많이 이야기했다."

- <욱씨남정기>에서 충분히 코믹했다. 세일러문 분장까지 하지 않았나.
"나는 진지하게 한 거다. 세일러문도, 그 복장을 하고 직접적으로 코믹하게 하는 게 아니라, 내 나름대로는 진짜 진지하게 한 거다. 세일러문 복장으로 진지하니까, 그게 더 코믹해 보이더라."

데뷔 20년차... "아직 부족하다"

 영화 <그래, 가족>에서 수경 역의 배우 이요원이 8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금은 '걸크러시'의 대표 주자가 된 이요원이지만, <황금의 제국> 이전까지는 청순가련한 이미지의 대명사였다.ⓒ 이정민


<황금의 제국> 이전, 청순가련한 이미지의 이요원이 이토록 '걸크러시'하고,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잘할 거라고 그 누가 생각했을까? 하지만 이요원은 "자신없었다"던 엄살과 달리, 첫 변신부터 '걸크러시'를 자신의 대표 이미지로 만들었다. 잡지 모델로 데뷔, 1998년 영화 <남자의 향기>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해 어느덧 데뷔 20년차. 여러 작품에서 저도 모르게 쌓여 온 내공 덕분이다.

- 10대에 데뷔해서, 어느덧 데뷔 20년을 맞았다.
"내가 이렇게 오래 연기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어릴 때는 20년을 연기했으면 엄청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나이 들수록, 연기할수록 어렵다. 생각도 많아지고. 어릴 때는 자신감과 열정이 컸는데, 지금은 생각이 많아서 더 어렵고 힘든 것 같다. 신인 때는 어리니까 조금만 해도 '잘한다'는 칭찬도 들었고, 그땐 그런 칭찬에 '나 진짜 잘하나?'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지금은 누가 잘한다 해도 잘 안 들린다."

- 이제는 현장에 선배보다 후배들이 더 많지 않나. 선배 이요원은 어떤 선배인가.
"나도 예전 선배님들처럼, '괜찮아' '잘하고 있어' 이렇게 되더라. (웃음) 사실 특별히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나이 차도 그리 많이 나지 않고, 내가 '선생님'은 아니니까. 스스로도 많이 부족한 배우라고 생각하고. 지나보니 따뜻한 격려 한마디. 그게 큰 힘이 됐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그런 한마디를 해주려고 한다."

- 그래도 20년 동안 한길을 걸었으면, 객관적인 평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배우 이요원의 지난 20년을 스스로 돌아봤을 때, 뭘 잘하고, 뭘 못하는 배우인 것 같나.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는지. 
"이전에는 청순한 역할을 주로해서, 세고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잘 못 했다. 예전에 주변분들이 생활 연기를 잘한다고, 생활 연기 해보라고 해주셨는데, 희한하게 그런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스스로 괴롭히고 채찍질하는 캐릭터들을 해온 것 같다. 그러면서 내 단점, 부족한 점들을 하나하나 알게 됐다. 그러면서 조금씩 나만의 길, 나만의 캐릭터들을 만들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앞으로는 말랑말랑하고 현실적인, 내 나이 또래의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범죄 영화나 범죄 오락물도 해보고 싶고. 지금까지 굳어있고 센 캐릭터들을 많이 했었지만, '악역'이라 할만한 캐릭터들은 아니었으니까, 마냥 나쁜 악역도 연기해보고 싶다."

4년 만의 영화, 편안했다

 영화 <그래, 가족>에서 수경 역의 배우 이요원이 8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데뷔해 어느덧 데뷔 20년 차를 맞은 배우 이요원. 감수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배우가 된 걸 후회해 본 적 없다고 말했다.ⓒ 이정민


- 4년 만에 찍은 영화였다. 오랜만에 간 영화 현장은 어떻던가.
"전 작품들은 다 선배님들이었다. 내용도 어렵고 해서 현장 분위기에 익숙해질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그래, 가족>은 아담하고, 내용도 소소한 가족 영화라 편안했다."

- 함께 연기한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특히 막냇동생 오낙 역의 정준원 군과의 분량이 많았다. 데뷔 이래 아역과 이렇게 길게 호흡하는 건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영화에서 네 형제가 같이 야식 먹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닮아 보이더라. 각자 누군가와 닮아있더라. 촬영할 때는 많이 친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콘셉트가 남같이 살던 형제·자매들의 이야기지 않나. 처음에 어색하고 각자 따로 노는 연기가 자연스럽고 좋았다. 나중에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서로 가까워지면서 점점 닮아가더라. 지금 같이 영화 홍보를 하면서 되게 친해졌는데, 좀 있으면 헤어지겠지. (웃음)

준원 군은 처음 미팅할 때부터, 애늙은이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어른스럽더라. 감독님이 실제 그 친구를 보고 대본을 쓰셨다더니, 정말 낙이에 딱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히 아역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NG 한 번을 내지 않더라. 호흡도 너무 잘 맞았다. 솔직히 나는 어릴 때부터 연기하는 거는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기 인생이 없지 않나.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를 때부터 직업을 갖는 거고. 근데 준원 군은 자기 적성을 일찍 찾은 것 같더라. 본인도 재밌다고 하고, 너무 잘한다."

- 그러고 보면 이요원도 어릴 때부터 배우 일을 시작했다. 배우가 되고 싶었나.
"우리 때는 패션 잡지가 많았다. 키가 크니까 잡지 모델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일 못 한다고 잘리기도 많이 잘렸다. 사진 찍을 때마다 포즈를 바꿔야 한다는데, 안 해봤으니 너무 어렵더라고. 모델은 못하겠지 싶었다. 근데 자꾸 잘리는 것도 싫고, 나 때문에 피해주는 것도 싫어서 계속 혼자 연습했다. 그러면서 일이 점점 늘어나고, 표지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TV까지 출연하게 됐다."

- 배우가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니었던 셈인데, 배우가 된 걸 후회한 적은 없는지. 
"(후회한 적은) 없다. 난 별로 꿈이 없었다. 뭐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면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정도였고, 엄마는 약사가 되길 바라셨지. (웃음) 하지만 이 직업을 통해 여러 직업을 경험할 수 있지 않나. 많은 사랑도 받고. 그만큼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사랑과 관심 

 영화 <그래, 가족>에서 수경 역의 배우 이요원이 8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요원은 '엄마' 이요원, '아내' 이요원에 대한 질문에는 빙긋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이정민


- 어떤 부분을 감수해야 했나.
"어딜 가도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거? 컴플레인도 잘 못 하고. (웃음)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나. 똑같은 장면을 봐도 해석하는 게 다르고. 난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다니기는 하지만 조심은 해야하니까."

- 그러고 보면, 비공개 결혼을 가장 먼저 했다. 요즘은 그게 대세이지만, 당시만 해도 '연예인의 사생활'이라는 개념도 보편화되지 않았고, 비공개 결혼도 흔하지 않은 일이라 비난도 많이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욕 많이 먹었다. 사실 그때 난 그냥 단순했다. (남편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로 인해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는 것 때문에 받아야 했던 시선도 싫었다. 근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더라."

여기까지였다. <그래, 가족>은 가족 영화다. 자연히 배우 이요원의 가족 이야기로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요원은 바람 잘 날 없는 형제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을 연기하며 "동생과 나, 둘 뿐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거나, 어릴 때 여동생과 옷 때문에 티격태격하던 에피소드를 전하며 "어릴 때는 (동생이) 나를 싫어했겠지만, 지금은 좋아할 거다" 등의 이야기는 솔직하고 털털하게 털어놨다. 하지만 '엄마' 이요원, '아내' 이요원에 대한 질문에는 빙긋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불편하지는 않았다. 어린 나이에, 당시로써는 흔치 않았던 비공개 결혼을 택했던 이유와, "폐 끼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던 그녀의 말로 미루어보아, 연예인이라는 자기의 직업 때문에 불편을 겪어야 할 가족들을 위한, 그녀 나름의 배려로 보였다.

 영화 <그래, 가족>에서 수경 역의 배우 이요원이 8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20년처럼, 앞으로도 변치 않고 '이요원다움'을 유지하기를 응원한다ⓒ 이정민


직접 만난 이요원은 분명 친근하고 친숙한 이미지의 스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예상처럼 무례하거나 막무가내도 아니었다. 다만 무뚝뚝하고 시니컬한 말투, 제 생각을 밀어붙이는 뚝심 혹은 고집 탓에 '살면서 오해 많이 받겠구나' 싶었다.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직업을 가진 만큼, 조금만 더 대중친화적으로 행동해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하지만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랴. 모든 배우가 살갑고 다정다감할 필요는 없으니까.

당시엔 흔치 않아 비난 받았던 '비공개 결혼식'이, 이제는 결혼 당사자의 선택으로 존중받는 것처럼, 지금은 호불호가 갈릴 그녀의 '뻣뻣', 혹은 '까칠'한 성격도, 언젠가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역적> 아기장수 이로운, 8살 '언어천재'의 배꼽 잡는 연기관

[inter:view] 이로운에게 연기란? "코딱지 먹는 건 어린이의 상징, 연기할 때 피가 상승"

김밥이 교도소에 잡혀간 이유는? 들깨가 고소해서. 슬픈 사람을 뭐라고 하게요? 흑인. 소가 계단을 오르면? 소오름~. 왕이 궁에 가기 싫을 때 하는 말은? 궁시렁~ 궁시렁~. 딸기가 회사에서 잘렸을 때 하는 말은? 딸기시럽. 피카츄가 길에 떨어진 담배를 주우면서 하는 말은? 이건 힌트를 줄게요. 피카츄 성대모사 일단 해보세요. 피까~ 오! 맞아요! 그거예요!드라마 촬영 현장이 어땠냐는 질문에 길동이는 대뜸 아재개그부터 들어보란다. 자기가 요즘 아재개그를 좀 많이 안다고. 그 통에 내가 던진 질문을 나도 잊었다. 길동이의 개그는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너 대단하구나, 근데 피카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여기 상암동에도 포켓몬 많은 거 아니? 이 말에 길동은 눈이 튀어나올 만큼 동그래져서 물었다. 많아요? 진짜 많아요?아기장수 길동이가 찾아왔다.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를 찾은 이로운(8) 군은 방영 중인 MBC 드라마 <역적>에서 홍길동 아역을 맡아 어른 못지않은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그를 꼭 인터뷰하고 싶었다. 딱 2년 전, 한 아역배우와 인터뷰를 했는데 어른에게선 얻을 수 없는 가르침(?)을 얻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로운도 그랬다. 어른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순수한 발상과 티 없는 마음. 배꼽 잡고 쓰러진 로운이와의 인터뷰를 전한다.말을 왜 이렇게 잘 해요? <역적>에서 아기장수 길동이 '힘 천재'였다면, 실제 만나본 이로운은 '언어 천재'였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그 또래가 가질 법한 언어구사력이 아니었다. 물론 어린이 특유의 알아들을 수 없는 화법에, 떠오르는 대로 마구 말했지만 표현이나 단어선택이 수준급이었다. 18층 인터뷰 장소 통유리 밖 풍경을 보고 자기는 "고소공포증"이 있다며 엄살을 떠는가하면, 함께 연기한 아역 형들은 어땠냐고 묻자 "베테랑"이라고 답했다. 방학해서 좋냐고 묻자, 방학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느냐고 되묻는다. 재치가 보통이 아니었다.사투리는 안 힘들었어? "네, 연기 선생님이 전라도 군산이 고향이라서요, 배웠어요." 계속 코 흘리고 있던데 그거 로운이 진짜 코 같더라, 맞지? "네, 그리고 저 코딱지 먹는 신도 진짜예요. 코딱지를 먹는 건 어린이의 상징이에요, 어른이 일하듯이 어린이는 코딱지를 파서 먹어요." '상징'이란 단어는 또 어디서 배웠는지... 장난기 머금은 표정으로 짐짓 진지한 척 '어린이의 상징'을 설명하는 그 모습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코 파는 신이 들어간 이유에 대해 로운이의 설득력 있는 해석이 놀라웠다. 연기 속에서 정말 화났던 신을 물었다. 로운이는 "어머니가 맞을 때랑 절구 찰 때"라고 했다. 어머니가 맞아서 쓰러졌을 때 "진짜로 가족을 생각하고 엄마를 생각했더니 너무 화가 났다"고 한다. 그때 연기를 다시 보여달라고 청하자 주저 없이 일어서서 연기했다. 돌을 든 손모양을 하고 눈을 부리부리 뜬 로운이는 1분가량 그 신을 연기했다. 인터뷰에 함께 온 친형에겐 악역 나으리 역을, 연기 선생님에겐 아버지 아모개 역을 해달라고 직접 부탁했다. 여간 똘똘한 게 아니었다. 까르르 웃으며 인터뷰 하다가도 연기에 들어가자 표정이 바뀌고 다른 사람이 됐다.화내는 연기를 할 때 주로 떠올리는 건 형이라고 한다. 이날 함께 온 한 살 위의 형 이건화 역시 아역배우다.힘들지 않았어요? 가장 힘들었던 촬영을 물었다. 로운이는 다 즐거웠지만 "육체"가 힘든 것이 가장 힘들었다면서 호랑이 숲 장면을 말했다. 살코기를 들고 가는 장면을 찍을 때 엄청 무거웠지만 몇 시간을 들고 촬영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인터뷰에 동행한 연기 선생님은 고깃덩어리(돼지목살)의 무게가 4kg 정도였고, 어른이 들기에도 무거웠다고 증언(?)했다. 로운이는 "그걸 찍고 나서 거의 쓰러졌지만 '밥이나 먹고 가자' 싶어서 밥을 많이 먹고 촬영장을 떠났다"고 야무지게 회상했다.12월 말부터 1월까지 근래 가장 추울 때 촬영이 이뤄졌다. 로운이는 안동, 문경새재, 마산 등 약 12곳을 돌며 <역적> 자기 분량을 소화해냈다. 그날 그림일기로 이렇게 썼다고 한다. "휴일 없는 하루. 어떨 때는 동상. 쥐남. 머리통 아픔. 눈물. 슬픔. 추워서 슬픔." 무언가를 말할 때 랩하듯 나열식으로 말하는 로운이의 화법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언어의 마술사 같았다. <역적> 본방사수를 하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어른 홍길동 역을 맡은 윤균상 형에 대해서도 물었다. 로운이는 균상 형이 사람들과 "케미가 좋다"며 "익숙해지는 능력이 빠르다"고 했다. 익숙함이란 친화력을 말하는 듯했다. 아버지 역을 맡은 김상중을 "아모개 선배님"이라고 현장에서 불렀는데, 처음에는 무서웠다고 한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무엇이든 괜찮은 것인데, 중간에 익숙해져서 괜찮아졌다"며 세상 다 산 도인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박나래와 함께 찍은 나무토막 신을 떠올리며, 원래는 대본에 "쪼그만 게!"만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현장에서 대사를 더 넣어주셔서 "이 코딱지 만한 게!"를 붙이게 됐다고 한다. 박나래 누나는 (수염을 붙여서) 진짜 남자인 줄 알았다고.연기하는 거 좋아요? 연기할 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로운이는 또 래퍼로 빙의해 대답했다.몰입의 순간 느끼는 감정을 설명하는 듯했다. 연기할 때 집중이 잘 되느냐는 추가 질문에는 다음처럼 답했다. 맞는 해석일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연기하고 있단 의식을 하면 집중이 깨지지만 그런 생각을 끄고 길동이가 되면 집중하게 된다는 의미 같았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싶은 생각이 안 들었냐는 질문도 던졌다. 로운이는 너무 당연한 것을 묻는 거 아니냐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그런데 저는 육체일 뿐이에요. 제 피가 다 하는 거예요." 이 또한 해석을 해보자면, 본능적으로 하는 거니 아쉬워도 할 수 없다는 뭐 그런 이야기 같았다. 옆에 있는 연년생 형 건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열었다. 로운이에게 무슨 과목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배시시 웃으며 "그거 왜 말해줘야 해요?"라며 장난을 걸어왔다. 인터뷰에 함께 온 할머니는 산만한 아이에게 주의를 주며 "너 수학 좋아하잖아" 말했고, 형은 "너 체육 좋아하잖아" 하고 거들었다. 하지만 로운이는 마치 그런 대답이 형식적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곰곰 생각하더니, 그냥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로운이의 말을 또 마음대로 해석해보자면, 미용실에 가서 보게 되는 잡지에 연기자에 관한 내용이 나오면 그것을 읽고 싶고 자꾸 보게 되는데 그런 과목(공부)이 가장 좋다는 말 같았다. 수학, 체육보다 더 좋은 건 '연기'인가 보다.숙제는 다이어트, 학교생활은 즐거울 뿐, 랩은 즉석랩 텔레비전에 자신이 나오면 어떤 기분일까? 무언가 멋진 대답을 기대하고 물었지만 로운이는 차가운 미소로 짧게 대답했다. "제가 너무 살 찐 것 같아요." 길동이 이미지를 벗고 현대극을 하려면 살을 빼야한단다. 알고 보니 할머니가 다이어트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로운이는 또다시 힙합 말투로 할머니의 실태(?)를 고했다. "과자 하나 만져도 살 빼. 종이 하나 만져도 살 빼. 치약 하나 만져도 살 빼." 로운이는 말을 재미있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학교생활은 할 만하냐는 질문에도 느낀 그대로 답했다. 이 빠진 미소를 짓는 로운이에게 이는 누가 빼줬냐, 아프지 않았느냐 시시콜콜한 질문을 이어갔고 로운이는 씩 웃으며 말했다. 자기가 뽑았다고. 흔들다가 그냥 퍽! 뽑았다고. 보통 털털한 성격이 아니었다. <역적> 아기장수 캐릭터 그대로였다. 로운이와 형은 요즘 랩놀이에 푹 빠졌다. 집에서 즉석랩을 하거나, 말 거꾸로 하기, 상황극을 하며 논단다. 맛보기로 들은 '몽둥이' 랩이 하도 재미있어서 더 요청했더니 로운이는 즉석랩을 만들어 들려줬다. 인터뷰 장소에 있는 포도주스, 핸드폰, 컴퓨터, 신발, 카메라 등 보이는 것 모두 주제가 됐다. 물론 진짜 래퍼처럼 라임 맞춘 랩은 아니지만 즉석에서 주어진 단어에 대해 바로바로 말을 쏟아내는 순발력이 대단했다. 아무 단어나 달라고 했다. '컴퓨터'를 던져주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속사포로 응답했다.이날 로운이는 10가지가 넘는 랩과 3가지가 넘는 연기를 보여줬다. 덕분에 배를 잡고 웃느라 시간이 다 갔고, 준비한 질문의 반도 묻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인터뷰보다 풍부한 소통이었다. 여덟살 로운이만이 줄 수 있는 진실한 무엇이 있었다. 꾸미지 않았고, 느낀 그대로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힘'이 얼마나 센지를 새삼 느낀, 배꼽 빠진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연기할 때 기분을 말하던 로운이의 모습이 긴 여운을 남겼다.

고시원 전전하던 배우, '악질형사'가 되다

[오마이픽업] <재심> 한재영의 간절함... "나 스스로에게 독하게 굴었다"

모든 일의 시작은 그에게 잘못 걸리면서부터다.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경찰 앞에서 증언까지 했지만, 오히려 형사들은 그를 의심하고 겁박했다. 여기에 검찰과 법원의 안일함까지 보태져 결국 그 소년은 인생의 황금기를 고스란히 교도소에서 보내야 했다. 영화 <재심>의 일부 줄거리이자, 실제로 벌어진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전말이다."악하게 표현하려고 안 했다. 근데 또 악하지 않게 하면 오히려 더 악하게 보일 거 같더라. 백철기라는 사람도 그렇게 막 때리고 잡아넣고 싶어 혈안이 됐다기보단 상부의 눈치도 있고, 관계된 이들도 많아서 그랬을 거로 생각했다. 영화에서 표현되진 않았지만 일말의 양심의 가책은 있지 않았을까. 집에 가면 아내도 있고, 잔소리도 듣고 그런 가장이었을 거다."그 악질 형사 백철기 역을 맡은 배우 한재영의 변이다. 연기 경력만 벌써 15년이 넘어가는 그가 해석한 인물은 평범한 나머지 너무 삶의 논리에 충실해 버린 사내였다. 그간 다수의 영화에서 건달, 경찰을 반복해서 맡아온 그였기에 내심 수긍이 간다. 기능적으로 소모되고 마는 캐릭터가 아니라 이야기에서 살아 있는 캐릭터가 한재영의 재현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지난 14일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기로 했다.악역의 정점 인상만 놓고 보면 움찔하는 게 사실이다. 큰 덩치에 입 주위를 둘러싼 수염이 전형적인 '범죄형 얼굴'이다. "얼굴이 너무 밋밋해 기르기 시작했다"며 그가 너털웃음을 짓는다. 같은 소속사 배우인 황정민이 '좀 깎으라'고 장난 섞인 핀잔을 준다지만 그의 의지는 꿋꿋해 보였다."건달 역도, 경찰역도 그간 꽤 했다(웃음). 관객분들이 어찌 볼지 모르겠지만 <재심>에서 백철기는 마냥 윽박지르는 형사와는 다르게 표현하려 했다. 식상해 보이기 싫었고, 그저 그의 입장에선 정당하게 하는 일이라는 인식을 주고 싶었다. 전부터 그 생각을 했다. 이런 악역을 맡으면 정말 일상생활인 것처럼 해야겠다고. <살인의 추억> 속 송강호 선배같이 말이다. 실제 사건을 일부러 공부하진 않았다. 정보를 보게 되면 연기도 그쪽으로 쏠릴까 봐 내 상상력에 맡겼다. 아, <그것이 알고 싶다>는 봤다. 대충 어떤 느낌일지 감은 오더라."전라남도 영광 출신인 그는 표준어로 제시된 대사를 노련하게 사투리로 다 바꿔 연기했다. 전작 <친구2>에선 계부로 등장했기에 혹시 물으니, 청소년기를 또 부산에서 보냈단다. 호남과 영남 사투리를 함께 탑재한 '드문' 배우였다. 그는 <재심> 시나리오를 읽고 정말 출연하고 싶어 제작사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꼭 하고 싶다는 의지를 강하게 밝힐 정도로 욕심을 냈다. "아무래도 조연 캐릭터 중에선 가장 매력 있는 역이었고, 백철기를 통해 악역의 정점을 찍고 싶었다"고 그가 고백했다. 그만큼 애착이 갔던 작품인 건 분명하다.당근과 채찍 오랜 경력의 배우들이 저마다 연기가 꿈이라고 고백하곤 했다. 한재영은 보다 더 담담했다. "고등학교 때 자습하기 싫어하는 모습에 선생님이 연기는 어떠냐고 권유해 접하게 됐다"고 시작점을 그가 설명했다. 그렇다고 절실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2002년 뮤지컬 <55 사이즈> 이후 대학로 극단 신화에 몸담았고, 외길을 걸었다. 불과 3년 전까지 고시원에서 살 정도로 생활이 풍족하진 않았지만, 버티고 또 실력을 닦으며 지금에 이르렀다."어릴 땐 중상위권 정도 성적이었는데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공부가 재미가 없었다. 집안 환경도 그리 좋진 않았지. 그렇다고 사고를 치진 않았고, 그저 꿈이 없었을 따름이다. 그러다 문학 선생님의 친구가 연기학원을 하신다고 들어 연기를 시작했는데 잘 맞더라. 주위에서도 곧잘 한다는 말을 해주니까 신도 났고. 극단도 교수님 권유로 들어간 거다.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서 고시원, 극단 사무실 생활을 전전했다.서른여섯 때였나. 10년 넘게 연기했는데 앞이 안 보여서 포기하려고도 했다. 근데 이렇게 인터뷰를 하고 있을 줄 알았을까. 연극을 하면서 나름 강하게 배웠다. 맞기도 많이 맞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 많이 지적받았다. 나 스스로 그래서 좀 엄격한 편이다. 제대로 연기에 대해 생각한 게 <강남1970> 때다. 내 이름을 걸고 연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지. 그럴수록 연기는 더 어려워지더라. 이번에 <재심>도 60점 정도밖에 못 주겠더라. 그분이 오려다 말았어! (웃음)"홀로 점검하는 습관이 들어있기에 한재영은 당근보다는 채찍을 더 많이 적용한다. 연극 무대를 서는 후배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뭔가 건드려서 더 잘 될 거 같으면 당근보다는 채찍을 더 쓰는 편"이라며 "그런 말을 하는 게 쉽진 않지만, 더 도움이 될 거라는 확신에서 꺼낸다"고 말했다."2008년까지인가. 영화를 몇 편하긴 했지만 주로 연극만 팠다. 영화에 좋은 역할로 논의가 되다가 꼭 최종에서 미끄러지더라. 그땐 내가 아무런 줄도 없고, 믿는 구석이 없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근데 돌아보면 내 실력이 부족했던 거다. 내공 부족이지. 그걸 서른 초반에 느꼈다. 물론 잘 되기 위해선 실력도 중요하고 운도 따라줘야 한다. 그땐 내가 그냥 너무 닫혀 있던 건 아니었을까 돌아보긴 한다.여전히 초야에 묻힌 고수가 많다. 그분들도 좀 마음을 열고 나왔으면 한다. 영화계도 너무 젊은 친구들 위주로만 쓰지 말고 고수를 찾으러 돌아다녔으면 좋겠다. 냉정한 기준으로 잘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이들을 찾아야지."연기의 짜릿함 무대와 영화로 그는 "이미 짜릿함을 맛봤기에 다른 길로 돌아가긴 힘들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게 그가 연기하는 솔직한 이유일 것이다. 연극 <서쪽나라에서 온 플레이보이> 등 몇 가지 작품을 언급하며 한재영은 "어떤 계기 없이 그냥 작품이 쭉 받아들여지고 캐릭터가 잡힐 때가 있다"며 "영화에서도 그런 순간을 맞는 게 꿈"이라 밝혔다.그렇다고 애써 무리하진 않는다. 스스로 최고 경지의 연기라고 생각하는 게 '평범함의 연기'니까. "무대에서든 화면에서든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한재영은 속마음을 꺼냈다."달리 말하면 평범하게 보이는 연기다. 그게 제일 힘들다. <재심>도 평범한 시민처럼 보이려 했는데 그게 좀 부족했던 거 같다. 평범함의 연기 그게 내 목표다. 천천히 해나가야지. 뭔가 이루고픈 욕심이야 있지만, 사람은 다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매 작품 내 인생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해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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