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스틸러' 배우 조우진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상무 역을,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비서 역을 맡은 배우 조우진.

▲ '신 스틸러' 배우 조우진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상무 역을,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비서 역을 맡은 배우 조우진. ⓒ 권우성


신 스틸러: 장면을 훔치는 사람.

적은 분량에도 주연 배우들을 압도하는,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인 배우를 수식할 때 쓰는 표현이다. 10분 남짓 등장한 영화 <내부자들>에서 "여 썰고~, 여도 썰고~"라는 대사로 강렬한 '조 상무' 연기를 선보이더니, 날카롭고 신경질적인 표정과 눈빛으로 시청자들의 오금까지 저리게 만든 <38사기동대> 안 국장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배우 조우진. 그를 설명할 때 이보다 적합한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아래 <도깨비>) 김 비서도 마찬가지였다. 엄청난 초능력을 지닌 도깨비와 저승사자, 그들의 슬프고 애달픈 사랑 이야기 속에서, 평범한 인간일 뿐인 김 비서의 존재감은 컸다. 그저 덕화(육성재 분)와 유 회장(김성겸 분)을 보필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시청자들은 그에게 계속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회사를 가로채는 건 아닐까, 도깨비 김신(공유 분)을 없애려고 박중헌(김병철 분)과 손을 잡진 않을까.

지난 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만난 그에게, 아무리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네에~" 해도, 완전히 믿을 수 없었다고 고백하자, "김 비서가 그런 반전의 카드로 활용되진 않을 것 같았다"며 웃었다. 

"<도깨비>는 슬픈 운명을 지닌 연인들의 알콩달콩한 사랑 이야기잖아요. 제가 연기했던 역할들이 대부분 '어둠의 자식들'이라 그렇게 추측하셨던 것 아닐까요? (웃음)"

그가 유 회장(김성겸 분) 앞에서 엑소의 '으르렁'과 방탄소년단의 '상남자' 춤을 췄을 때, 비로소 김 비서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있었다.

김 비서에 대한 의심, '으르렁'으로 날렸다

'신 스틸러' 배우 조우진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상무 역을,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비서 역을 맡은 배우 조우진.

▲ '신 스틸러' 배우 조우진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상무 역을,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비서 역을 맡은 배우 조우진. ⓒ 권우성


- 춤을 너무 잘 춰서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그 장면을 보고 나서야 '배신하지 않겠구나' 싶더라. '비서돌'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는데.
"하하하. 너무 쑥스럽다. 편집과 정장 핏의 힘일 뿐이다. 여러 앵글로 촬영했는데, 앵글별로 보면 그저 의욕만 넘치는 '아재'의 몸부림이다. 원래 흥이 좀 있긴 하지만, 춤은 절대 잘 추지 못한다."

- '네에~'라는 김 비서 특유의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뭔가 공적으로 대하는 것 같으면서도, 부드러운. 어떻게 탄생했는지 궁금하다.
"처음 김고은씨와 차 타고 가는 장면에서 했다. 두 가지 버전으로 준비해 갔는데, 하나는 영혼 없이 '네' 하는 거였고, 다른 하나가 방송에 나온 '네에~'다. 감독님도 고은씨도 그게 좋다고 했는데, 이후 대본에도 '네에'라고 적혀 있더라.

사실 김 비서 말투는 한 매니지먼트 회사 대표님의 말투다. 그분 캐릭터가 김 비서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똑부러지면서도 부드러운."

- 전작 <38사기동대> 안 국장 말투도 친한 연출자 말투였다고 들었는데, 평소 주변 사람들의 특징을 잘 캐치하는 스타일인가 보다.
"사람들 관찰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코드와 아우라가 있지 않나. 잘 기억해 뒀다가, 그와 비슷한 인간 군상 역을 맡게 되면 여러 가지 특징을 조합해서 캐릭터를 잡아가는 편이다. 주위에 있는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연기하면, 가상의 캐릭터라도 어디서 본 듯한, 실제 존재하는 인물 같은 친밀함이나 친숙함을 줄 수 있지 않을까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싶은 바람에서 그렇게 한다."

- <내부자들> 전에 연극을 했었다던데, 그때부터 생긴 나름의 연습 방법 같은 건가. 
"사실 연극을 그렇게 오래 하지 않았다. 연극 경험 있었다고 표현하지도 않는다. 학교도 다녔고, 돈도 벌고, 공연하다 또 돈 벌고. 대학로에는 생업에 종사하시면서 무대에 오르는 분들이 많다. 나도 해봤는데, 한 번에 두 가지가 안 되는 스타일이라 잘 안 되더라. 양쪽에 다 민폐를 끼치게 되니까, 하나에 집중했다. 공연할 땐 공연만 하고, 생활비가 떨어지면 경제활동만 했다."

'신 스틸러' 배우 조우진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상무 역을,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비서 역을 맡은 배우 조우진.

▲ '신 스틸러' 배우 조우진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상무 역을,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비서 역을 맡은 배우 조우진. ⓒ 권우성


"긴 무명, 초조하지 않았다면 거짓말"

- 1999년부터 연극을 했다고 들었는데, <내부자들>로 얼굴을 알리기까지 무려 15년이 걸렸다. 초조함 같은 건 없었나.
"초조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보다 더 초조해 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초조함을 떨쳤다. (웃음) 초조함을 티 내면 더 힘들 것 같아서, 굳이 따로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 최면을 건 거지."

- 스스로 최면까지 걸어가며 연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가 뭐였나.
"어릴 때부터 영화를 많이 보러 다녔고, 드라마도 많이 봤다. 요즘은 놀 거리가 많지만, 예전에는 TV 보는 게 다니까. 그게 그렇게 좋았다. 사실 '배우가 돼야지!' 이런 생각을 어릴 때부터 한 건 아니다. 20살쯤, 나란 놈은 어떤 놈인지, 하고 싶은 게 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근데 모르겠더라. 생의 끝자락에서라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다양한 삶을 살아볼 수 있는 배우, 연기가 하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삶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도 매력적이지 않나. 이 직업을 통해 느끼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더라."

- 명확한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일도 쉽지 않은데, 흐릿한 꿈을 향해 긴 시간을 버텼다는 게 놀랍다.
"고등학교 졸업했을 때가 딱 IMF였다. 외국어 전공으로 대학에 합격하기도 했는데, 수강 신청 기간에 그만두기도 했다. 원하는 공부가 아니면 투자하지 말자 싶어서. 원래 생각이 많고, 결정하면 단순하고 빠르게 실천에 옮기는 편이다.

지방에 있다 보니 이쪽 생리나 업계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대구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무작정 올라와서, 여기저기 문도 두들기고, 무작정 극단 워크숍도 가봤다. 연기를 배우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지. 그렇게 연극 무대에 서고, 연기와 생업을 오가다가, 카메라 앞에서 연기가 해보고 싶어서 프로필 사진도 없이 여기저기 다녔다. 대부분 '준비도 없이 이렇게 오면 어쩌냐'고 나무랐지만, 계속 두들기다 보니 들어와보라 해주는 사람도 있고, 음료수 한 잔 주면서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한다'고 팁 주는 분들도 계시더라. 그렇게 맨몸으로 부딪히면서 하나씩 알게 됐다. 그렇게 어떻게 시간이 흐르는지도 모르는 시점이 왔을 때, 처음 최종 오디션까지 보게 됐다. 그게 <내부자들>이었다."

- 처음부터 대박을 터트린 셈이다. 무대 연기와 카메라 앞 연기가 많이 달라서, 연극 무대 베테랑들도 처음에는 많이들 헤맨다고 들었다. 카메라 앞 연기는 어떻던가.
"차가웠다. 관객들은 무대 위에 있는 배우와 호흡하려고 앉아 있지, 평가하려고 앉아 있진 않잖나. 조금 부족하더라도 관객들이 채워주는 부분도 있고. 공감하고 소통하고, 그 주고받음이 공연 예술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카메라는 적나라하게 내 연기를 담아내더라. 처음 모니터를 하는데 낯뜨거워 못 보겠는 거다. 또 최상의 결과물을 빠른 시간 안에 담아내야 하니까, 반응이 즉각 즉각 오더라. TV 드라마는 더했지. 처음에는 분장이고 뭐고 들어가서 앉아 있는 것도 너무 어려웠다."

- 지금은 조금 익숙해졌나.
"처음보다는. 관객이 카메라 앞에 있든 뒤에 있든, 공감을 기대하고 연기한다는 본질은 같다고 생각한다."

은탁이 이모와 도깨비 부하

'신 스틸러' 배우 조우진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상무 역을,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비서 역을 맡은 배우 조우진.

▲ '신 스틸러' 배우 조우진 영화 <내부자들>에서 조상무 역을,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비서 역을 맡은 배우 조우진. ⓒ 권우성


- 연극이든, 영화든, TV 드라마든, 결국은 사람들과의 작업이지 않나. <도깨비>에서 함께한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모두 좋았지만, 특별히 은탁이 이모로 출연하신 엄혜란 선배님과 김신 부하 역의 윤경호씨 이야기를 하고 싶다. 우선 엄혜란 선배님은 대학로에서 처음 뵀다. 연기를 너무 잘하셔서 어깨너머로 동경해오던 분이다. 그분과 취조실에서 마주앉아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너무 신기하더라. 처음으로 함께 셀카를 찍었다. 연기하시는 모습을 정말 넋 놓고 쳐다봤다.

윤경호씨와의 장면은, 정말 그렇게 감동적으로 표현될지 몰랐다.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어요'는 정말 흔하게 쓰는 말 아닌가. 대본 숙지할 때만 해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는데, 그분의 깊은 호흡에서, 커다란 물결이 다가오듯, 감사함을 느끼고 감동하는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거다. 눈을 바라보면서 연기하는데 이런 게 '케미'인 건가 싶고,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어요'라는 대사가 농담처럼 안 나오더라. 그때 대본에 '네에~'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것도 안 나와 짧게 '네'라고 했다."

- <도깨비>에는 '신이 머물다 가는 순간이 있다'는 대사가 있다. 극 중 김 비서도 그렇게 도깨비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고, 도깨비를 대신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조우진씨 인생에도 신이 머물다 간 것 같은 순간이 있었나.
"지금 질문을 받으니 번뜩 생각나는 때가 있다. <내부자들> 최종 오디션 보고 나왔는데, 잘 못 본 것 같았다. 모처럼도 아니고 처음으로 본 최종 오디션인데…. 들어갈 땐 분명 쨍쨍한 하늘이었는데, 나오니 거짓말처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더라. 기분이 너무 별로인 거다. 단지 비가 와서가 아니라. 그때 뒤에서 누가 '학생' 하고 불렀다. 장우산이 하나 남았는데 가져가라고. 왠지 그 말이, 비만 피하라는 느낌이 아니라, 나를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굉장히 위안이 되더라. 물론 그땐 몰랐다. 머물다 '가는' 순간이라는 말처럼, 이런 찰나는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머물다 갔는지도 모르는 것 같고. 그래서 인간이지 않을까?"

- <도깨비> 김 비서를 보며 시청자들이 배신하지 않을까 의심했던 건, 전작에서 보여준 인상 깊은 연기 때문이었다. 얼굴과 이름이 알려질수록, 사람들의 기대도 커질 테고, 역할에 대한 책임감도 높아지게 마련이지 않나. 스스로 세운 목표 같은 게 있나.
"지금까지 해온 대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배워나가고 싶다. 그렇게 나이테가 하나씩 생기는 거 아닐까? 무슨 작품이든, 어떤 장르든, 주어진 대로 하나씩 쌓아가며 정진해나가고 싶다."


조우진 김비서 조상무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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