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th오마이스타

 KBS 2TV 드라마 <맨몸의 소방관>에서 한진아 역의 배우 정인선이 25일 오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연으로서는 가장 호흡이 긴 작품을 맡았다. 배우 정인선은 KBS 4부작 드라마 <맨몸의 소방관> 한진아 역할로 나와 연기했다.ⓒ 이정민


'엔딩 여자애' 봉준호 감독의 2003년 <살인의 추억> 속 배우 정인선이 맡은 단역은 '엔딩 여자애'다. 이름도 없다. 송강호를 쳐다보며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평범하게 생겼다"고 말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여자아이. 무척 짧은 시간이지만 대중들의 뇌리에는 깊이 남았다. 배우 정인선이 스크린을 통해 처음으로 대중들의 눈에 들어온 순간이었다.

하지만 정인선의 공식적인 데뷔작은 1996년 드라마 <당신>으로 그보다 더 이르다. 정인선은 이후 <매직키드 마수리>나 영화 <안녕! 유에프오>에서 단역을 맡고는 작품 활동을 쉰다. "'아역'이라는 타이틀에 회의가 들었다"고. 대학교에 입학한 후 다시 활동을 시작한 정인선은 어느덧 햇수로는 21년차인 배우가 됐다. KBS 4부작 <맨몸의 소방관>을 끝낸 지난 25일 배우 정인선을 서울 서교동에서 만났다.

찰나의 시간, 영원한 기억

 KBS 2TV 드라마 <맨몸의 소방관>에서 한진아 역의 배우 정인선이 25일 오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주연'에 대한 부담감은 없을까. 정인선의 대답은 "전혀"였다.ⓒ 이정민


인지도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무릇 배우 스스로나 대중들이 기대하는 역할이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아역에서 성인 배우로 올라서며 본인이 주연인 드라마나 영화를 찍는 것 같은. 아마 배우 본인도 (그 누구보다 훨씬 더) 연기를 쉬는 동안 역할에 대한 고민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다시 현장에서 뛰게 되면 그 이전보다는 더 빨리 뛰고 싶고 더 많이 뛰고 싶다고 말이다.

하지만 정인선은 별로 그런 마음이 없어보였다. 2014년에 그가 선택한 <한공주>라는 작품은 평단과 대중의 호평을 고루 받긴 했지만, 그 호평 이전에는 그저 작은 독립영화에 불과했다. 그는 <한공주>에서는 이 영화로 단숨에 주목을 받은 천우희의 친구 역할로, 영화 <경주>에서는 <살인의 추억>에 이어 또 다시 이름 없는 '젊은 안내원'이라는 역할로 등장한다. 그 선택은 브라운관에서도 이어졌다. 1부작인 <드라마스페셜>이나 1회 만에 죽어 사라진 해란(JTBC <마녀보감>) 같은 역할들. 이번에도 정인선은 4부작 KBS <맨몸의 소방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짧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는 웃었다.

"오히려 긴 호흡에 대한 부담감이 4부작이라서 더했던 거죠. 4부작인데도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 보다 긴 호흡이라서 걱정했거든요. 보시는 분들이 '얘 너무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면 어떡하지? 라고. 알고 보니 제가 짧게 치고 빠지는 경우가 많았더라고요. 저는 언제나 크든 작든 비중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게 <살인의 추억>도 마지막 장면에서 짧게 나왔는데 기억을 해주셨잖아요? <경주>에서도 정말 조금 나오는데 무턱대고 '<경주> 너무 잘 봤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그걸 잘 보셨다고요?'라고 되물어요. (웃음) 정말 눈 감았다 뜨면 사라질 역할이거든요? 조금 나오고 금방 지나쳐요. 그 과정을 지나치며 이제 길고 짧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저도 모르게 체감한 것 같아요."

 KBS 2TV 드라마 <맨몸의 소방관>에서 한진아 역의 배우 정인선이 25일 오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역 시절에는 연기를 한다는 게 당연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책임감이 들고, 그 책임감을 느낄 때 좋아요."ⓒ 이정민


쉬었던 만큼 더 비중 높은 배역을 혹은 많은 일을 하고 싶진 않을까.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저는 아마 늙을 때까지도 그런 소리를 듣겠죠. 그런데 그건 제가 쉴 때부터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부분이에요. 연기를 쉬면서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했고 그래서 오히려 조바심이나 조급한 것도 없어요. 어떻게 보면 전 1996년도에 연기를 처음 시작했고 지금은 2017년이니까 '오래 했구나' 혹은 '연기하는 일 안 질려?'라고 물어보는데 제 실감으로는 아직 20년이 채 되지 않았고 아직 낯설고 어려워요."

삶과 함께 성장하는 연기

정인선은 SBS <엽기적인 그녀> 공개 오디션에도 도전한 바 있다. 당시 오디션을 도전하면서 찍었던 네이버 V LIVE에서 그는 시종일관 밝게 웃으며 예능감을 뽐내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정인선은 특유의 저음으로 대화를 진지하게 끌어갔다. "V LIVE에서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르다"고 말을 건네니 웃다가 고개를 겨우 들고 "이제 제 작품을 보시는 건 안 부끄럽거든요? 그런데 V LIVE는 너무 부끄러워요. 어색한 게 싫으니까 뭔가 더 채우려고 하나봐요"라고 한다.

 KBS 2TV 드라마 <맨몸의 소방관>에서 한진아 역의 배우 정인선이 25일 오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한진아'라는 역할에 반전적인 면모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겉은 차갑지만 속은 따뜻한 또 여리여리하지만 강단이 있는.ⓒ 이정민


이런 모습은 정인선이 분했던 KBS <맨몸의 소방관> 속 한진아의 모습과 또 다르다. 차가운 상속녀 이미지의 미대생 한진아를 만들기 위해 정인선은 많은 고민을 했단다. 무엇보다 처음 인물을 보자마자 차갑고 도도한 이미지가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독님이 원하는 그림은 그런 것이었어요. 셔츠를 윗 단추까지 모두 틀어막은 어떻게 보면 <아가씨>의 히데코(김민희) 같이 갇힌 새장 속에서 살아온 이미지였으면 좋겠다고. 바지보다는 치마를 입었으면 좋겠고, 치마도 짧지 않았으면 좋겠고. 저도 그렇게 이미지를 구축해나가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현장에 있는 스태프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느낌이에요. 이들의 도움을 통해 진아가 완성된 것 같고, <맨몸의 소방관>이 완성된 것 같아 애틋하고 고마워요. '아 내가 그래서 이 작업을 좋아하지. 다 같이 뭉쳐서 종합예술을 만드는 거니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촬영장의 협업이 좋아 남몰래 일을 하는 스태프들 뒷모습을 꼭 촬영해 스마트폰 속에 담아둔다는 정인선. "다 자기 것을 열심히 하고 계시는 게 그렇게 멋있고 여기서 내가 뭔가 하나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좋더라고요." 그는 "의심의 여지없이"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역 시절 무슨 생각으로 제가 이 일이 천직이라고 말을 하고 다녔는지는 모르겠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제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드리고 싶고. 최대한 얇고 길게 가고 싶다는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덜 하겠다는 게 아니라 얇고 길게. 계속 삶을 열심히 살아나가면서 연기도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죠."

 KBS 2TV 드라마 <맨몸의 소방관>에서 한진아 역의 배우 정인선이 25일 오전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숫자에 연연하던 '모범생' 지창욱 그는 배우가 됐고,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inter:view] 영화 <조작된 도시>로 첫 주연... "결과 집착 벗어나 즐거움 느끼길"

데뷔 3년 만에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2009) 주연, <웃어라 동해야>(2010)의 주연…. 혹자는 지창욱을 두고 승승장구라 표현했다. 하지만 과연 지창욱이 꽃길만 걸었다고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 그는 데뷔 10년 차가 돼서야 상업영화의 첫 주연을 맡았다. 바로 직전까지 준비하던 영화는 제작이 무산됐다.드라마에서 익숙할지언정 여전히 지창욱은 우리에게 미지의 영역이다. 익숙함 속 낯섦이라 할까. 게임에 빠진 청년 백수의 고군분투를 담은 <조작된 도시>는 스크린을 통해 그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척도가 될 예정이다. 지난 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어떤 모험 이번 작품에서 그가 맡은 권유는 어쩌면 가장 지창욱을 닮았을지도 모른다. 그가 게임광에 대책 없는 성격이라는 게 아니다. 위기에 대처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이 말이다. 주변에서 백수라 무시할지언정, 권유는 게임 세상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위기에 빠진 타인을 외면하지 않는다. 살인사건을 조작하고 돈 없고 힘없는 이들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권력자들을 혼자가 아닌 동료들과 함께 대적한다."인물이 처한 상황에 집중했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얼마나 화나고 억울하고, 또 무서울까. 온갖 감정을 투영하려 했다. 다만 권유를 비롯해 함께 뭉친 청년들을 사회의 비주류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다.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그리 말하긴 했지만, 어느 순간 비주류는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어찌 보면 참 평범한 인물인데 이들을 비주류로 보는 잣대는 아닌 거 같다.연기하면서 좀 먹먹함이 있었다. 게임에선 그리 리더십 있는 사람이 현실에선 힘이 없다. 그런데 위기의 상황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그 부분에 박수 쳐주고 싶었다. 진짜 저였다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마음으로만 응원하지 않았을까. 근데 권유는 목숨 걸고 (누명을 벗기 위해) 뛰어들었다. 참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이렇게 지창욱은 <조작된 도시>에 몸과 마음을 던졌다. 이게 혹시 그간 마음에 품고 있던 영화에 대한 갈망 때문은 아닐까. 독립영화 <슬리핑 뷰티>(2007)로 데뷔한 이후 유독 영화와 연이 닿지 않았던 그다. 3년 전까지 강우석 감독의 <두 포졸>을 준비하다 결국 제작이 무산되는 과정도 겪었다. 청춘스타지만 영화로 검증이 되지 않았으니 당연히 이번 작품 캐스팅 과정에서도 순탄치 않았을 터. 지창욱은 "그런 주변의 우려를 잘 알고 있지만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며 말을 이었다."첫 주연이니 모험 아니냐는 말도 다 들었다. 근데 그렇기에 더 재밌지 않을까? 모험인 건 맞다. 그래서 더 최선을 다하려 했다. 상업영화인 만큼 흥행이 물론 중요하지만, 설령 실패하더라도 난 이 영화가 부끄럽지 않다. 힘들수록 감독님과 동료 배우들에게 믿음을 주려 했다. 소문 때문에 좌절한다거나 오버하지 않으려 했다.영화라는 장르에 대한 갈망은 분명 있었지. <두 포졸> 무산으로 아쉽기도 했다. 영화를 굳이 피한 게 아니라 어쨌든 연이 안 됐던 거다. TV 드라마는 시청률 등이 약간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척도인데 영화나 무대 공연은 관객 수라는 가시적인 면이 있잖나. 그에 대한 낯섦도 있고 불안함도 있긴 했다. 여전히 이번 작품도 그렇고 전 배우는 중이다. 다만 드라마든 뮤지컬이든 영화든 연기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는 거 같다." 꽃길과 흙길분명 지창욱도 인기와 눈에 보이는 결과에 집착할 때가 있었다. 이에 관해 물으니 "연말 시상식에서 상 받을 걸 상상했고, 내 출연료가 얼마 정도 더 높아졌으면 좋겠다는 걸 목표로 삼을 때가 있었다"며 보다 솔직히 그가 고백했다. 그저 앞만 보고 내달렸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누군가는 지창욱에게 '탄탄대로를 걷는 스타'라고 부르기도 했고, 고생 없이 승승장구한 연예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평에 그리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며 "막말로 군대 다녀와서 잘 안 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겠지만, 굳이 누가 더 힘들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싶진 않다"고 답했다.잠시 그의 데뷔 직전을 들어보자. 알려진 대로 그는 우등생에 속했다. 꽤 우수한 성적으로 중·고등학교 생활을 하다, 문득 배우라는 업을 품고 방향을 바꾼다. 불과 입시 몇 개월 전 이야기다. 약 4개월 정도 연기 입시를 준비했고, 운 좋게 그는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들어가게 된다."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계기가 없었던 거 같다. 내가 왜 그랬을까? (웃음)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어느 순간 등수를 매기더라. 선생님이 몇 명을 호명해서 일으켜 세운 뒤 아이들에게 박수를 치게 했다. '난 왜 박수 못 받지?' 이런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하려 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숫자에 연연하는 건 여전했고, 대학 입학이 목표가 되더라. 모의고사를 보면 점수에 맞는 학교와 학과가 쭉 나오잖나. 나도 그냥 '음, 이런 과를 전공해볼까?' 생각하는데 순간 '대학에 가서도 맨날 이런 (등수에 연연하는) 생활을 해야 하나?'하는 의문이 들었다.스트레스받으며 살 거 같았다. 뭔가 재밌게 할 수 있는 걸 생각했고, 그래서 택한 게 연기였다. 아무것도 몰랐다. 연기가 그렇게 힘든 줄(웃음). 영화든 드라마든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기에 쉽게 생각한 거지. 운 좋게 대학엔 갔지만, 방황을 좀 했다. 얼마나 내가 연기를 못하는지 혼도 많이 났고."이 정도면 포기할만하다. 준비가 덜 됐다고 스스로 느꼈고, 강한 열정을 지닌 동기들에 비해 자신이 초라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창욱은 포기 대신 버티기로 했다. '대체 왜?'라고 물으니 웃으며 그가 답했다. "엄마랑 많이 싸우면서 택한 길이었는데 포기해버리면 내가 너무 한심할 거 같았다"고.행복에 대한 질문 이제 그는 "연기가 즐겁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진로에 대한 중요한 분기점을 지났고, 그는 잘 버텨냈다. 조바심을 갖고, 인기를 좇던 때도 그는 애써 부정하지 않았다. "평생 연기하며 살면 좋겠지만, 또 인생은 아무도 모르지 않나?"라며 기자에게 묻기도 했다. 지창욱은 행복을 고민하고 있었다. "연예인 친구보단 일반인 친구가 많은데 종종 꿈을 묻는다. '너의 삶은 어때?' 혹은 '요즘 회사는 어때?' 등. 정말 많이 다른 삶이란 걸 느낀다. 회사에 다닌 것도 아닌 나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좀 행복하게 살자는 쪽으로 나도 방향을 잡았다. 어릴 땐 꿈과 욕심으로 거침없이 달렸다면 사람 지창욱으로서의 삶도 중요하지 않을까. 결국, 난 배우이기 전에 누군가의 아들이고, 친구이고, 남편이 될 것이다. 그래서 요즘에 여유롭게 친구들과 뭐하며 지낼까 생각하는 게 행복하다(웃음).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작품에만 몰두할 때도 행복하다.입대 전에 한 작품을 더 하고 싶다. 고민 중인데 도전을 위한 도전은 인위적인 거 같고, 내 흐름에 맞게 즐길 수 있는 걸 해 보고 싶다. 군대 자체는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경력 단절은 아닐 거다. 돌아보면 내가 가족과 연휴나 연말을 같이 지낸 기억이 많지 않다. 친구들과 생일 파티 이런 것도 많이 못 해봤다. 여유 없이 살았던 거 같다. 군대를 다녀오면 지금과는 또 다른 게 있지 않을까."이른 시일 안에 그는 작품을 선택할 것이고, 당당히 입대할 것이다. 억지스럽지 않게 마음을 두드리는 캐릭터가 그에게 입혀지길 기원해본다. "진한 멜로도 좋다"며 그가 눈빛을 밝혔다. 참 다행인 건 지창욱은 우리에게 내보일 게 매우 많다는 사실. 여전히 그는 호기심 갖고 우리가 지켜봐야 할 미지의 영역이다.

"태권도 포기하고, 매일 연기연습"... 신인 양세종의 치열함 엿보기

[inter:view] 무서운 신인, 한석규 그리고 이영애의 남자가 되다

"안.녕.하.세.요. 양.세.종.입.니.다."지난달 24일 열린 <사임당-빛의 일기> 제작발표회. 그는 한 글자씩 또박또박 자기소개를 했다. 질문을 받으면 다시 한 글자씩 또박또박 답했다. 아차 싶었다. 곧 그와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인터뷰 내내 저리 말하면 어쩌나.그래도 만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필모그래피라고는 고작 두 편. 하지만 그 안에서 한석규, 이영애 같은 까마득한 대배우들과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연기한 '무서운 신예'가 아니던가. 설 연휴가 막 끝난 지난달 31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배우 양세종을 만났다. 마음의 준비가 무색하게, 그는 잘 웃고, 잘 이야기했다."실수할까 봐 그랬어요. 앞에서 플래시가 파바박 터지니까 긴장되기도 하고... 익숙해져야 하는데. 하하하."첫 오디션서 덜컥 합격, '이영애의 남자' 되다 - <사임당> 제작발표회 전에, 작가님과 감독님의 간담회가 있었다. 그때 작가님이 리딩을 시키니 대본 쥔 손을 벌벌 떨면서도 연기는 멀쩡하게 하는 모습을 보고 캐스팅했다고 하시더라. "<낭만닥터 김사부> 오디션보다 더 떨었다. 첫 오디션이었으니까. 오디션을 네 번쯤 봤는데, 작가님들 앞에서 연기할 때가 제일 떨리더라. 분위기가..." - <사임당>에서 과거에서 어린 이겸으로만 등장할 줄 알았다. 근데 현대에서는 송승헌 없이 성인 역이더라. 예상보다 분량이 많아서 놀랐다. "처음부터 1인 2역이었던 건 아니다. 송승헌 선배님 아역 오디션을 봤고, 감독님께서 바로 '너 어린 이겸이다. 해라' 하셨다. 그러시고는 그날 '현대 파트에 한상현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 역할 분석하고 준비해서 다시 보자' 하시더라. 그래서 어린 이겸 붙은 상태로 오디션을 다시 봤지. 근데 잘 못했다. 감독님이 '이틀 더 줄 테니 다시 보자' 하시며 기회를 더 주셨고, 그 이틀 동안 한 시간만 자면서 죽자 살자 준비해 갔다. 그렇게 두 번의 오디션을 더 봤고, 합격할 수 있었다." - 신인에게 기회를 여러 번 주신 셈이다. 감독님은 양세종의 뭘 보신 걸까? "모르겠다. 사실 감독님이 내게는 칭찬을 잘 안 해주셔서. (웃음) <낭만닥터> 끝난 후에 감독님 말씀을 기사로 접했는데, 세종이는 처음부터 잘했다 하셨다더라. 기분이 정말 너무 좋았다." - 한석규나 이영애,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배우들 아닌가. 둘 다 다작 배우도 아니라 연기 생활을 더 오래한 배우들도 한 번 만나기 어려운 선배들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데뷔하자마자 연달아 함께 연기하게 됐다. 가까이서 본 한석규와 이영애는 어떤 선배였나. "'인범아 너는 짧게 가지 말고 멀리 가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두 배 세 배 표현해도 될 것 같다'... 한석규 선배님이 해주신 조언들이다. 밥도 많이 정말 사주셨다. 치대기도 많이 치댔는데, 만날 '선배님 사랑합니다' 하고 앵겼다. 그럴 때마다 허허허 웃으시며 토닥토닥 해주셨다. 너무 행복했다. 이영애 선배님은 아무래도 여자 선배님이라 그렇게까진 못했다. 게다가 그땐 첫 작품이라 선배님께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부담감이 너무 컸다. 이런저런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내 곁에 이영애 선배님이 계시다는 게 새삼 너무 놀라운 거다. 같이 있는 게 너무 행복하고 영광스럽고... 의지를 많이 했다."태권 소년, 배우를 꿈꾸다 -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원래 연기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었다. 고2 때 학교에서 단체로 연극 <스노우드롭>을 보러 갔는데, 그게 생에 첫 연극이었다. 보는데 뭔가 간질간질하고, 내가 혼자 실룩실룩 웃고, 울먹울먹하고 있더라. 그런 내 모습이 너무 낯설고 창피해서 주위를 둘러봤는데, 친구들도 다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웃음) 그때 느낌이 확 왔다. '나도 저 무대 위 배우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고3 때 연기로 진로를 정했다."- 부모님이 황당해하시지는 않았나. 수능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연기라니. 나라도 반대했을 것 같은데."19살 때 처음 연기한다고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딱 한 번, 한마디 하셨다. '할 거면 이 악물고 해라.' 물론 다른 친척들은 다 뜯어말렸다. 하던 운동이나 하라고."- 운동했었는지는 몰랐다."엇. 그러고 보니 처음 이야기한다! 고등학교 때 태권도 시범단을 했었는데, 삼성 재단에서 장학금도 받고 그랬다. 체대 갈 아이가 갑자기 관두고 연기하겠다니 삼촌, 이모, 할머니 다들 난리가 났지. 갑자기 무슨 연기를 하겠다는 거냐, 운동이나 해라, 삼촌 공장 가서 일이나 배워라... 근데 연극의 파장이 너무 컸다. 다 흘려들었지 뭐. 하하."- 그럼 연기 입시 준비는 늦게 준비한 셈인데,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에 붙었다. 재능이 있었나 보다."내가 인복이 좀 있다. 처음 연기 수업받으러 가는데, 한 친구가 연기를 너무 잘하더라. 그날 처음 본 친구인데, 끝나자마자 다짜고짜 물어봤다. 연기 연습 어떻게 하냐고. 그 친구 말이, 자기는 방 안에 스탠드 하나 켜고 감정의 흐름대로 움직인다더라. 연기학원 끝나고 집에 가면 11시쯤 되는데, 그 시간에는 큰 소리 내며 연습할 수 없으니까. 그날 집에 가서 바로 시작했다.그때 살던 집이 오래된 기와집이었는데, 육각 모양 거울 기둥이 있었다. 그 위로 천장 한 부분이 유리로 뻥 뚫려있었고. 스탠드를 찾다가 그냥 그릇 하나 놓고 양초를 켰는데, 촛불이 육각 거울에 반사되면서 되게 멋있었다. 분위기도 너무 좋았다.존경하는 스승님이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좋은 스승과 연습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열정이 있으면 된다고 하셨는데, 육각 거울과 촛불 덕에 최상의 환경을 갖게 된 거다. 좋은 스승은 그 친구였고, 열정만 있으면 되는 거였지. 그때부터 매일 새벽 5시 6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했다. 결국 재수해서 한예종에 갔고, 그 친구는 고3 때 한예종에 붙어 내 선배가 됐다. (웃음)."양세종의 '김사부'들 - 그 친구를 양세종 인생의 '김사부'라고 볼 수 있겠다. <낭만닥터>에서 김사부는, 제자들이 흔들리고 갈등할 때마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지 않나. 그런 김사부도 계시나. "두 분의 김사부가 계신다. 우선 고등학교 때 학생주임이셨던 안주혁 선생님. 나를 많이 믿어주셨고,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고민이 있는 것 같으면 '산 좀 올라갔다 오자' 하시면서 같이 걸어주셨던 게 기억난다. 계속 걸으면서 선생님이랑 노래도 부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면 마음이 정화되곤 했다. (학생 주임 선생님이랑 친하기 쉽지 않은데, 혼날 일이 많은 말썽쟁이였나보다 묻자, '절대 아니'라고 손사레를 치며 웃었다.) 다른 한 분은 재수할 때 연기학원 원장님, 오승우 선생님이다. 아르바이트하면서 학원비를 충당했는데, 학원비가 비싸다 보니 그래도 어려웠거든. 6개월 치 정도 밀렸었다. 하루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는데 선생님이 밖에서 바람을 쐬고 계셨다. 학원비 이야기하려고 옆에 쭈뼛쭈뼛 다가갔다. '선생님...'하고 불렀는데, 어깨를 두들겨 주시면서 '세종아, 연기 이외의 것들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 나는 너 대학만 가면 돼. 수강료 신경 쓰지 마. 마음껏 다녀'. 그땐 정말…."양세종은 잠시 말을 멈추고 눈물을 글썽였다. 흔들리는 목소리로 "혼란스럽고 힘들었던 시기, 두 분 덕분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면서.그는 그렇게 들어간 한예종에서도 좋은 스승들과 친구들을 만났다며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예종 실기 면접 때 따끔한 일침으로 그의 정신 상태를 일깨워주셨던 교수님, 중학교 때 알바하던 책방 사장님. 그는 자신에게 크고 작은 가르침을 준 이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늘 스승 복이 있었다"며 감사함을 표현했다.<사임당> 위해 논어까지, 그가 연기하는 방법 좋은 스승들 덕분일까? 꿈을 찾은 뒤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재수하긴 했지만, 한예종에 붙었고, 처음 본 오디션에서 '이영애의 남자'가 됐다. 그리고 사실상 데뷔작인 <낭만닥터 김사부>가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거둔 덕에, 시청자들에게 단박에 얼굴을 알릴 수 있었다. 운도 따랐겠지만, 흔한 연기력 논란 하나 없이 이렇게 큰 작품에 연달아 출연한 신인이 또 있을까 싶다. 그는 자기만의 준비 방법을 털어놨다.핸드폰은 무음으로 해두고 알람 용도로만 썼다. 촬영장-회사-나만의 공간에서 연습-잠 2~3시간, 다시 촬영장-회사-나만의 공간에서 연습. 이렇게, 자기만의 사이클을 만들어 두고는 철저하게 반복했다고. <낭만닥터> 때는 아예 단기로 방을 구해 모든 외적인 것들과 스스로 차단하기까지 했단다.- 뭔가 하면 순간적으로 완전 몰입하는 스타일인가보다. <사임당>은 첫 작품이라 더했을 것 같기도 하다."상상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 캐릭터에 접근할 때 직접 경험하는 걸 좋아한다. <사임당> 준비하면서는 박물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한상현이라는 인물이 논어, 중용, 동양 미술 이런 데 박식한 인물인데, 직접 보고 느끼지 않으면 연기하는 데 불편할 것 같더라. 그래서 논어도 계속 보고, 국립중앙박물관 가서 그림도 계속 봤다. 한자도 모르면 아무래도 낭독하는데 어색할 거 아닌가. 그래서 대본에 있는 한자 뜻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바로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연습했다. 한상현이 있을 법한 곳에서, 그가 했을 만한 행동을 하면 무의식적으로 그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앞으로 양세종이 어떤 캐릭터를 맡으면, 이번엔 어디까지 준비했을까 궁금해질 것 같다. 변호사 역이라도 맡으면 정말 사시라도 볼 태세다."하하하 사시까진 아니라도 그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이유가 있나. 첫 작품이라서 택한 몰입 방법이라면,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다 보면 점점 편해지지 않을까?"이렇게 해야 스스로 확신이 생기고 떳떳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노하우가 생기면 편하게 연기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지금은 아니다. 사실 바꾸고 싶지 않기도 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에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다. 근데 (소속사) 대표님은 주위 사람 좀 힘들게 하지 말라고…. (웃음)"- 처음 찍은 작품은 <사임당>이지만, 사전제작인 데다 방영이 밀린 탓에 <낭만닥터 김사부>가 데뷔작이 됐다. 게다가 <낭만닥터>가 끝나자마자 <사임당>이 방영되게 됐는데, 이제 와 첫 연기를 다시 보는 마음이 어떤가. '더 잘할 수 있었는데'하는 아쉬움이나, 걱정은 없는지. "'오늘에 최선을 다하자'는 내 신념과 가치관에 더 확신을 갖게 된 것 같다. 이런 상황이 오리라고 아무도 몰랐지 않나. 지금의 내가 다시 한상현과 어린 이겸을 연기한다면,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쉬운 장면들도 있지만, 스스로 그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는 확신이 있다. 그만큼 열심히 했으니까. 언젠가 '그때 더 열심히 할걸'하는 후회를 하지 않도록, 스스로 떳떳할 수 있도록, 늘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과거를 곱씹지도, 먼 미래에 대해 미리 생각하지도 않는다."오늘을 치열하게 사는 이유 -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해도,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바람은 있지 않을까?"요즘 지나가다 보면 사람들이 '어? 도인범!' 하고 불러주시는데, 굉장히 기분이 좋다. 도인범이라는 캐릭터를 사람들 기억에 남도록 잘 연기했다는 칭찬처럼 들리거든. 그래서 앞으로도 양세종이라는 인물보다, 캐릭터로 불리는 배우가 되고 싶다. 하나 더 바라는 게 있다면, 한석규 선배님 말씀처럼 길게 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그건 내 선택이 아니잖나. 오래, 멀리 갈 수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주어진 일들을 잘해내는, 믿음을 주는 배우가 먼저 되려고 한다."인터뷰는 이렇게 끝났다. 그에게는 마지막 <낭만닥터 김사부> 인터뷰였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너무 즐거웠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흔한 인사치레일지라도, 그 말이 고마웠다. 이미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마친 뒤라 지치고 지겹지는 않았을지 걱정했다고 답하자, 돌아온 말이 압권이다."사람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제가 기자님 오늘 뵙는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어요."아니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며 웃자,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은 늘 그렇게 생각하며 산다고 말했다. 그래서 모든 순간이 색다르고 재미있다고. 자신이 궁금해 찾아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 감사하다고. 그가 왜 그렇게 매 순간 치열하게 사는지, 조금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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