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배우 전성민, '여자'가 되다 1986년생 배우 전성민. 그녀는 "배우하기 참 좋은 나이"라며 웃었다.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색깔 있는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던 그가 지난 8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미드나잇>의 '여자' 역할로 돌아왔다. 25일,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배우 전성민, '여자'가 되다 1986년생 배우 전성민. 그녀는 "배우하기 참 좋은 나이"라며 웃었다.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색깔 있는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던 그가 지난 8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개막하여 오는 2월 26일에 커튼을 내리는 뮤지컬 <미드나잇>의 '여자' 역할로 돌아왔다. 25일,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곽우신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심약한 아내."

뮤지컬 <미드나잇> 속 여자는 심약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얼마나 심약하냐면 프로그램 북에도 '심약'하다고 적혀있을 정도이다. 18일 관객과의 대화에서도 배우 전성민은 자신이 맡은 여자 역할을 '심약'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정작 이 배우, '심약'이라는 말이 세상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연극과 뮤지컬을 종횡무진으로 오가는 그녀. 2009년 <스프링 어웨이크닝> 이후로 여러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배우이지만, 많은 뮤지컬 팬은 그를 <넥스트 투 노멀>의 나탈리와 <명동 로망스>의 전혜린으로 기억한다. 평범 그 근처 어딘가에 가고 싶어 하면서, 자기만의 인생을 살고자 바라는 학생. 혹은 자기 안의 세상을 그리며 자기만의 글을 쓰고 싶었던 문인. 그랬던 배우가 공포에 시달리는 의존적 인물을 맡았다.

뮤지컬 <미드나잇>은 소비에트 연방의 간부이자 여자의 남편인 '남자', 그의 아내 '여자' 그리고 이 부부를 찾아온 '엔카베데'이자 방문객 '비지터'의 이야기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비밀경찰 '엔카베데'는 반혁명분자를 색출하겠다는 미명하에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잡아 가두고, 고문한 뒤에는 죽였다. 이 안락한 가정만은 숙청의 칼날이 비껴가기를 기다리며 여자는 벌벌 떨고 있다. 1937년 12월 31일 오후 11시 30분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남편이 일터에서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과연 이 부부는 온전하고 행복하게 1938년을 맞이할 수 있을까. 갑작스레 여자의 안에 있던 악마가 깨어나고, 그녀는 극적인 변화를 겪는다.

당당하고 주체적인 인물을 연기하고, 또 본인이 그런 사람이었던 전성민. 그는 왜 이런 작품 속의 이런 역할을 만났을까. 25일 오후 3시 30분,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전성민을 만나 그의 고민을 솔직하게 들어보았다. 맥주 한 잔 나누면서.

배우로서의 양면성 그리고 광기


배우 전성민, '여자'가 되다 1986년생 배우 전성민. 그녀는 "배우하기 참 좋은 나이"라며 웃었다.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색깔 있는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던 그가 지난 8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미드나잇>의 '여자' 역할로 돌아왔다. 25일,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득이 많은 공연 "<미드나잇>은 제게 득이 엄청 많은 공연 같아요. 지금의 역할만 생각했을 때 만족도가 높아요. 그래서 더 잘하고 싶고요. 이 캐릭터가 품은 감정의 폭이 넓으니까, 그걸 표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해요." ⓒ 곽우신


"대표와 처음 미팅을 했을 때 저와 되게 잘 어울린다는 말씀하셨고 그걸 믿었어요. 그 당시에는 작품을 제일 잘 알고 있는 분이셨으니까요. 저를 떠올리신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실제로 대본을 읽었을 때, 뮤지컬임에도 대사가 많다는 매력이 컸어요. 음악적으로 아쉬운 작품들이 꽤 있는데 이건 음악도 좋았고! 비록 라이선스 작품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처음 올리는 작품이기에 어떻게 보면 저에게 도전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죠."

지난 8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개막한 뮤지컬 <미드나잇>은 기괴한 작품이다. 스탈린의 독재와 대숙청 당시의 역사에 빗대어 사회현실을 풍자하는 이 작품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예컨대 갈등을 유발하는 비지터의 정체가 명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비밀경찰이라고는 하지만, 부부의 속마음과 과거까지 모두 알고 있는 그는 권력, 욕망, 타락, 내면의 악마를 상징하기도 한다. 히죽거리며 끊임없이 장난을 치지만, 부부에게 감정 이입된 관객은 마음껏 웃을 수가 없다. 권력을 가진 이의 농담은 쉬이 농담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법이다. 그러던 여자의 안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깨어난다. 비지터와 춤을 추는 와중에.

"비지터와 춤을 추긴 하지만, 춤에 이끌린다기보다는 그 노래 가사에 자극받는 거거든요. '누구나 악마죠, 때로는'처럼. 남편처럼 자신도 엔카베데 본부에 다녀왔다는 걸 여자는 계속 숨겨왔잖아요. 대사에서 '역겹다'고 하지만, 사실 이건 자기 스스로 하는 말이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여자는 의심하죠. 내 안에도 악마적 본성이 있지 않을까. 비지터가 그걸 너무 잘 읽고 얘기해주고 있죠. 그래서 거기에 따라가는 거죠.

이 캐릭터를 만들면서 욕심이 있었다면, 배우로서 제가 가지고 있는 광기를 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다른 작품들을 보면, 여성 캐릭터가 한정적인 경우가 많잖아요. 이거 아니면 저거, 이런 식으로 롤이 딱 정해져 있으니까. 그에 대한 갈증은 항상 있었거든요. 그런데 여자는 이 양면성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니까요. 제 안에도 이런 양면이 다 있다는 걸 배우로서 보여드리고 싶었죠. 미치광이 같은 모습부터 '여리여리'한 모습까지, 소녀 같은 모습부터 강하고 거침없는 여성의 모습까지 다 표현하고 싶었어요."

"스크루볼 코미디는 시대적으로 억눌린 여성상에 대비되는 좀 더 독립적이고, 진보적인 모습을 가진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특징이 있는데, 이 작품의 '여자'가 그런 인물이다. 인물의 잔혹한 면이 반전으로 드러났을 때, 놀랄 수도 있지만, 웃음이 날 수도 있다." - 뮤지컬 <미드나잇> 프로그램 북 'Director's Comment' 중에서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던 여자는, 비지터가 여자의 아버지를 거론하며 도발하자 참지 못하고 그를 공격한다. 남자가 아무 것도 못 하고 벌벌 떨고 있을 때, 비지터를 제압하고 손도끼를 들어 그를 해체하려고 하는 건 여자다. 비지터의 눈을 뽑겠다고 손에 피를 묻히는 것도 그다. 이토록 갑작스러운 반전이 다소 의아하기도 하다. 이 의아함을 풀 열쇳말은 '아버지'이다.

"여자는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겠죠. 황제 치하 시절의 비밀경찰이었으니, 지금으로 치면 안기부 간부 같은 사람이잖아요. 그가 혁명으로 인해서 숙청됐단 말이죠. 한순간에 아빠가 없어졌는데 그게 너무 어린 시절이라 상황을 몰랐던 거죠. 본인 입장에선 굉장히 억울하고, 청천벽력 같은 일이고, 아빠의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었는데 그 치부를 건든 게 비지터잖아요. 힘든 시절을 살아왔던 만큼, 자신에게는 순수하게 남아 있는 좋은 추억을 건드렸을 때 숨겨져 있던 본성이 드러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요.

또, 인간에게는 어떤 일을 당하느냐에 따라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감정이 숨겨져 있잖아요. 비지터가 그 전부터 툭툭 건드리는 그 질문들이 자극적이잖아요. 그 자극이 하나씩 쌓이고 쌓이다가 아버지 얘기에서 탁 터진 거죠."

우리 안의 악마

배우 전성민, '여자'가 되다 1986년생 배우 전성민. 그녀는 "배우하기 참 좋은 나이"라며 웃었다.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색깔 있는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던 그가 지난 8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미드나잇>의 '여자' 역할로 돌아왔다. 25일,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음악과 드라마 배우 전성민에게 <미드나잇>에서 제일 좋은 점을 물었더니 주저없이 '음악'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잘 쓰여진 음악을 보면서, 작곡가의 의도나 연출의 의도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볼 수 있었어요. 대사와 음악을 같이 두고 볼 때의 포인트랄까요. 간주에 이 대사가 왜 있고, 왜 여기서 노래를 해야 하는지, 여기서 어떤 멜로디가 쓰이는지 그 의도가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 곽우신


"1937년 그곳의 겨울은 아마도 혹한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대기의 기운과는 상관없이 온 세상에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았을 테니까요. 마치 2016년의 어느 나라와 같습니다. 우린 100년 동안 무엇이 더 나아졌을까요?" - 뮤지컬 <미드나잇> 프로그램 북 '연출의 말' 중에서

"1937년 마지막의 날을 살았던 어떤 부부의 공포나 2016년의 마지막 날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의 삶에 파고든 공포가 이상스럽게도 어떤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무겁습니다." - 뮤지컬 <미드나잇> 프로그램 북 '작가의 말' 중에서

황제 치하 시절, 백성을 착취해 황제와 귀족의 뱃살만 찌던 제정 러시아는 혁명으로 인해 끝장났다. 하지만 혁명은 또 다른 긴 밤을 불러왔다. 사람을 의심하고, 감시하고, 서로 싸우게 하는 압제는 다른 이름으로 계속됐다. 스탈린이라는 독재자 '각하'에 의해서. 자칫 우리에게 멀고도 어려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멀지 않게 느껴지는 건 그 시대와 이 시대를 포괄하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초반에 연습할 때는 힘들었죠.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이 생소하기도 했고,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얘기하다 보니까 단어를 설명하는 것도 힘들었죠. 그래서 오랜 시간 테이블 리딩을 많이 했어요. 얘기도 서로 많이 하고요. 서서 대본을 놓고 연습한 기간보다 테이블에서 함께 대본 보면서 얘기했던 기간이 더 길 정도였으니까요.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이 작품이 역사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우리는 명확하게 인간에 대해 얘기를 하고 있었고, 선악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배경 설명에 너무 집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식으로 함께 결론을 내렸어요."

<미드나잇> 속 남자나 여자는 명백하게 죄를 지었다. 누군가를 신고하고, 투서하고, 거짓 증언을 해왔다. 그러나 처음부터 악의를 가지고 엔카베데에 협조한 건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를 열심히 정당화하며 양심의 가책을 털려고 한다. 용서받으려고 한다. 이미 정해진 수사 결론이었고, 내가 거부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증언했을 터이다. 어차피 그들은 죽은 목숨이니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 한다. 그런 상황이, 시대가, 사회가 이들을 타락하게 한다. 악마로 만든다. 여자는 처음 남자를 만났을 때 '천사'로 불리던 이이다. 이 여자의 안에는 천사의 씨앗과 악마의 씨앗이 다 있었을 것이다. 무엇이 발아할지 결정하는 건, 그 씨앗이 자랄 사회적 환경이다.

"지금의 시대를 떠올리면서 봤으면 좋겠다고 연출께서 얘기한 것도 있지만, 이 역할에 이름이 없잖아요. 여자고, 남자고, 비지터이죠. 캐릭터의 이름이 만약 전성민이라면, 전성민에 대해서만 표현하면 될 텐데…. 하지만 작가가 이름이 없도록 설정한 건 '내가 네가 될 수 있고, 네가 내가 될 수 있다'는 걸 표현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요. 사회 비판적인 작품이기도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사람이 어떻게 변할 수 있으며, 선한 만큼 또한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질문을 던져주는 거거든요.

관객들이 뭘 중점적으로 가지고 나가시면 좋을까. 저희끼리 얘기했을 때 나온 건 '물음표를 가지고 나가셨으면 좋겠다'였어요. 공연이 올라가고 나서, 제가 마지막 즈음에 도끼를 들었을 때 사람들이 웃거든요. 왜 웃을까. 웃겨서. 왜 웃겨? 어떻게 보면 잔인한 장면인데, '여기서 웃음이 나오는 이유가 뭘까'하고 관객분들 중 몇 분이라도 생각해보신다면 우리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해요. 그것도 또 다른 악의 본성은 아닐까. 아마 우리가 모두 그러지는 않을까."

독일 나치 전범이 그랬고, 친일 부역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대가 틔운 내면의 악에 대해 우리는 '정상 참작'을 받을 수 있을지언정, 100% 용서받을 수는 없다. 마지막, 그 여자의 운명이 그랬듯이. 그러니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 손으로 그런 시대와 맞서 싸우는 것, 그리고 더 나은 시대를 만드는 것 아닐까. 시대의 조류가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쓸고 가버리기 전에.

배우로서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배우 전성민, '여자'가 되다 1986년생 배우 전성민. 그녀는 "배우하기 참 좋은 나이"라며 웃었다.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색깔 있는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던 그가 지난 8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미드나잇>의 '여자' 역할로 돌아왔다. 25일,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계속 연기를 하는 이유 "다양한 일을 해본 건 아닌데, 유일하게 심장이 뛰는 일이라서요. 다른 일의 경우 하면 할수록 긴장감이 점점 줄어들고 익숙해지잖아요. 노련해지기는 하지만. 그런데 이 일은, 무대에 올라섰을 때마다 새로워요.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하는 게, 힘들고 스트레스일 때도 있지만 대체로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저를. 그리고 계속 공부하게 되잖아요. 뭐라도 하나씩 배울 수 있다는 것." ⓒ 곽우신


따른 맥주를 다 비울 때쯤, 조금은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보았다. <미드나잇>은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작품에 참여한 배우 전성민도 사회 참여적인 배우로 꼽히는 이 중 한 명이다. 진보정당의 진성당원으로 함께 하기도 했다. SNS를 통해서도 이슈에 대해 스스럼없이 말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기사가 떴는데, 기사 안에 싹 다 명단이 적혀 있더라고요. '내 이름 있을 텐데'하고 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있더라고요. 정말 아무렇지 않았어요. 이 명단이 100~200명이면, '어, 내 이름이 있어?', '내가 정말 정부에 반하는 무언가를 했나?' 할 텐데…. 거의 만 명 가까이잖아요. 있을 사람들 다 있는데 내 이름 있는 정도야. (웃음) 없으면 이상하다고 생각했죠. (웃음) 이게 작품을 통해서가 아니라, 야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다 명단에 올라왔던 거잖아요."

문화예술계 전반에 가해진 정권의 탄압은 가혹하고 동시에 치졸했다. 야당 후보를 지지했다는 것 때문에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가는 세상이었다. 결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구속되고, 광화문 광장에는 빼앗긴 극장이 다시 세워졌다. 이런 시대에, 배우는 어떻게 이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걸까.

"예술하는 사람들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예술인은 개인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해요. 그게 분명해야지만, 어떤 인물을 연기하는 데도 도움이 많이 된다고 믿어요. 예술인의 가장 기본정신은 '저항정신'이 아닐까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이성복 시인의 <무한화서>에 '신기한 것들에 한눈팔지 말고, 당연한 것들에 질문을 던지세요'라는 말이 있어요. 모든 철학은 '왜?'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하잖아요. 저희가 작품에 임할 때는 항상 '이 캐릭터는 왜 그랬을까' '이 상황은 왜 생긴 걸까'하면서 항상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산단 말이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항상 '왜'라는 질문을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저항정신의 기본이고요. 예술인이라면 더더욱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주의에요. 그래서 이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어요. 그래서 친구들하고는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나는 이런 이유로 정치적인, 사회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고.

제가 데뷔를 하면서부터 그런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거든요. 작품을 하면서, 인간에 대한 생각과 질문을 계속하다 보니까 저항에 대한 그리고 소수자나 약자에 대한 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더라고요. 평생 공주만 연기하고 사는 사람은 없잖아요. 저도 굉장히 평범한 역할부터 시작해서 훨씬 다양한 인간을 연기할 거고, 그러려면 사회적인 사건·사고·이슈, 내동댕이쳐지는 사람들, 국가의 폭력으로 인해 피해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하고 활동도 하고 그랬죠."

말에 대한 고민

배우 전성민, '여자'가 되다 1986년생 배우 전성민. 그녀는 "배우하기 참 좋은 나이"라며 웃었다.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색깔 있는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던 그가 지난 8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미드나잇>의 '여자' 역할로 돌아왔다. 25일,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무대를 오가면서 '역할'에 대한 제한도 있고, '기회' 자체가 적기도 하다. 아직 우리나라의 공연계는 여자 배우보다 남자 배우에게 더 넓고 깊은 무대가 허락되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 꿋꿋하게 연기를 계속해 나가는 이들이 있다. 역할에 갇히지 않고, 기회도 개척하면서. 연극과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는 이 배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 곽우신


배우로서 그리고 자연인으로서 이 시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지내야 하는지 고심한 끝에 그는 적극적으로 나서고 목소리를 내는 길을 택했다. 지난 몇 년 동안, 권력의 폭력에 노출된 이들은 거리로 나서서 촛불을 들었다. 이를 지지하고 연대하는 시민들의 외침도 광장에 모였다. 그 광장에 배우 전성민도 있었다. 분명, 누군가는 불편해할,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제가 노조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걸 보고 나서, 어떤 분이 인터넷에 '극좌', '정치병에 걸린 뮤지컬 배우'라면서 '걔 작품은 정치적인 것 때문에 몰입이 안 돼서 못 보겠다'는 글을 썼어요. 거기에 동감하는 분들 댓글도 여러 개 달렸고요. 그걸 보고 나서 되게 충격적이었어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생각 끝에 결론은, '아, 앞으로 이런 얘기 하면 안 되나'라기 보다는 '열심히 해야겠다', '진짜 연기 잘해야겠다. 잘하면 이런 얘기 안 나오겠지'였어요. 그런 사람들도 제 연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정말 연기를 잘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때부터 책이랑 신문도 엄청 많이 읽었어요. 먼저 발언하거나 나서기보다 내공을 조금 더 쌓자는 생각에서요. 제 개인의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언젠가 배우로서 써먹을 수 있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지금 '시민과 함께하는 뮤지컬 배우들' 참여하고 있는 배우들만 봐도 저와 친한 친구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 친구 중에는 평소에 정치에 관심이 엄청 많지는 않았던 친구들도 있거든요. 그들도 관심을 가질 만큼 심각한 시국이라는 걸 되게 많이 느껴요."

뮤지컬 <미드나잇> 속 아제르바이잔이 그랬듯이, 지금의 우리도 우리가 생각하고, 믿고, 지지하고 혹은 반대하는 것에 대해 쉽게 말하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는 연예인, 배우, 탤런트 등이 그런 말을 하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나선다'고 손가락질하기 바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촛불을 든 배우들이 거리로 나섰다. 미국에는 수많은 연예인이 핑크 모자를 쓴 채 여성주의의 기치를 내걸고 반트럼프 시위에 함께했다. 배우 전성민이 바라는 세상도, 그처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제 복인 것 중의 하나는, 여행을 통해서 혹은 워크숍을 통해서 외국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나 공연계 친구들을 꽤 만들었다는 거예요. 영어는 잘 못 하지만, 어떤 관심사에 대해서 그 친구들과 술을 한잔하면서 얘기를 하면, 그들은 자기 나라에서 돌아가고 있는 사회적인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개인의 정치적 견해를 정말 스스럼없이 얘기하더라고요. 밥 먹으면서 다투기도 하고. 싸움을 통해서 문화예술인으로서 국가로부터 받아야 할 것을 받아내기도 하고요.

이 친구들 덕분에 확신을 하게 됐죠. '내가 틀린 게 아니구나!' 가끔은 '내가 너무 유별난 건 아닌가?' 의심한 적도 있거든요. 한국에서는 그런 말을 하는 건 많이들 부담스러워하고, 꺼리죠. 그런데 사실은 정말 아무렇지 않은, 자연스러운 얘기잖아요."

허위자백을 위해 사실상 고문을 행하고, 증거를 조작하여 간첩을 억지로 만드는 정보기관. 투표에 미리 개입하여 여론을 선동하는 이들. 1937년 저 먼 북방의 이야기가 2017년 대한민국에 그대로 반영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그럴수록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더 외쳐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고민의 대열에 이 배우도 깊이 동참하고 있다. 그 고민이 밑바탕이 되었기에, 전성민이 연기하는 이 기묘한 블랙 코미디 <미드나잇>이 팬들의 마음에 더 와닿고 있는 것은 아닐지.

연극·뮤지컬 배우 전성민과의 자투리 일문일답
무거운 극, 무거운 시대 그리고 고민 많은 배우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본문 안에 녹이기 어려운 질문과 답변이 여럿 있었다.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운 자투리를 일부 모아서 조각보를 짜듯 적어보았다. 트위터를 통해 팬들이 보내준 질문도 상당수 포함됐다. 뮤지컬 배우 박은석 인터뷰에 이어 오랫만에 돌아온 '자투리 일문일답'을 아래에 정리한다.

배우 전성민, '여자'가 되다 1986년생 배우 전성민. 그녀는 "배우하기 참 좋은 나이"라며 웃었다.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색깔 있는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던 그가 지난 8일,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미드나잇>의 '여자' 역할로 돌아왔다. 25일, 서울 상수동의 한 카페에서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대표 '트잉여' 전성민 비록 자물쇠가 잠겨 있기는 하지만, 배우 전성민은 자신의 트위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다. 다른 배우들에게 트위터 활용법을 가르쳐줄 정도로. 공감가는 글에 리트윗도 많이 하지만, 직접 트윗을 올리는 경우도 잦고 팬들의 반응에도 '답멘'을 보내는 편이다. ⓒ 곽우신


- 언젠가 꼭 도전해보고 싶은 역이 있나요?
"연극 <클로저> (설마 앨리스?) 네, 앨리스. (너무 치명적일 것 같은데) (웃음) 몇 년 전부터 어울린다는 얘기 많이 들었어요. 기회가 없었죠. 영화도 너무 좋아하고요."

- 그럼 지금까지 했던 필모그래피 중에서, 꼭 다시 하고 싶은 작품을 꼽아 보자면요?
"연극 <반신>이요. 지금 하면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는 긴장도 많이 했고, 명동예술극장이라는 공연장의 분위기나 만났던 선배들이 너무 낯설어서 더 펼칠 수 있던 걸 못 펼친 것 같아요. 그리고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정말 좋은 작품이라, 제가 생각했을 때 '완벽한 작품'이에요. 어느 하나 빠질 것 없는…. 다시 하실 생각은 있는 것 같은데 올해는 없으니…. 얼른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웃음)."

- SNS 계정 이미지 절대 다수가 고양이입니다. '나만 없고 다 있는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로서의 삶에 대해서 말해주세요.
"기본적으로 행복한데, 가끔 고양이한테 이용당하는 느낌이 들어서…. (웃음) 이름은 누아랑 난이에요. 원래 고양이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집에 누군가 반겨줄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또 고양이가 독립적이잖아요. 전 강아지보다는 고양이가 좋더라고요. 강아지는 외로움을 많이 타고, 의존하지만 고양이는 적당히 '밀당' 잘하잖아요. 그래서 이용당한다는 느낌이 들죠. (웃음) 3년 전에 데려온 까만 누아가 엄마이고, 난이는 아들이에요. 중성화 수술하기 전에 친구 고양이와 교배해서 다섯 마리를 낳았고요. 네 마리는 입양 보내고, 제일 못생긴 애가 남은 거예요."

- 고상호 배우에게 트위터 GIF 응용법을 알려줄 정도로 대표 '트잉여'인데, 트잉여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세요.
"제가 집에 TV가 없어요. TV를 안 보는데…. 원래 SNS를 엄청 열심히 하다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닫았어요. 그래도 인생의 재미는 하나 찾아야 하니까? 트위터 원래 가입은 되어 있었는데 잘 안 하다가 한 번 들어가니까 완전 중독이 된 거예요. '움짤'이런 것도 그렇고, 제가 동물 영상 많이 보는데 여긴 너무 많고…. 저한텐 진짜 유익한 거예요. 시간 때우기도 너무 좋고, 혼자서 심심할 때마다 보고 웃을 수 있는? 재미있는 사람들의 말투나 '드립' 보면 다들 천재 같아요. (웃음) 저도 그 안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웃음) 제 글이나 사진 서치도 합니다. 저 보라고 올린 게 아닌데도 제가 서치해서 마음 누르기도 하고…."

- 최근에 '열일'하는 것 같은데….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스타일인가요? 특별히 상반기 계획하고 있는 게 있다면?
"원래 안 그랬어요. 물 들어올 때 물가에 앉아서 '아, 언제 뛰어드는 게 제일 안전하고 좋을까'하면서 신중하게 생각하는 편인데…. (웃음) 그 전에 작품이 들어왔을 땐, 제가 끌리는 것 위주로 했었거든요. 또 배우한테 제일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여유'라고도 생각했고요. 한 작품을 통해서 가지게 된 마음가짐은, 그 작품이 끝나고 쉬면서 전환을 시켜줘야지 새로운 역할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연달아서는 잘 안 했어요.

그런데 제 의도와 달리 조금 오해하는 분들도 계시고 그래서…. 이번 상반기는 <미드나잇> 끝나면 쉬려고요. 여행 갈 거에요. 다음 작품은 하반기쯤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트위터로 사진 많이 올릴게요!"

- 쉴 때는 주로 뭐하면서 쉬세요? 은근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 같으시던데요.
"진짜 하는 것 없는데…. 예전에는 더블 캐스팅이면, 이틀 쉬는 사이에 1박 2일로 여행도 가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서른 지나고 나니까…. (웃음) 30대가 되니까 약간 두렵더라고요. 지금은 커피 마시고, 신문이랑 책 읽고, 친구들 만나서 데이트하고…. 술 마시고…. 트위터하고…. (웃음) 아, 요리하는 거 좋아해요."

- 트위터에 김치전 해 먹는 거 봤어요. 요리 잘하시나요? 특별히 잘하는 음식이 있다면요.
"다양하게 다 잘하는데? (웃음) 웬만한 건 한 번 맛보면,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하고 해요. (빵 터짐) (검증이 안 되니까…. 믿겠습니다) (웃음) 아, 한식보다는 양식을 조금 더?"

- 자신이 출연했던 필모그래피 말고, 특별히 좋아하는 작품 있나요? 장르와 국적 불문하고요.
"제가 영화 진짜 좋아해요. (인생 영화를 꼽자면?) <친절한 금자씨>. 완전 광팬이에요. 진짜 많이 봤어요. 100번은 안 되지만, 거의 100번 가까이? 박찬욱 감독의 복수 시리즈를 다 좋아하기는 하는데, 이걸 제일 좋아해요. 이번에 <미드나잇> 준비할 때도, 다시 보면서 캐릭터 만들 때 참고했어요."

- 발 사이즈가 궁금하다는 팬이 있습니다. '작고 소중한'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녀서 더 그런 거일 수도 있겠는데요.
"220에서 225요. 220 신을 때도 있고, 225 신을 때도 있는데…. (웃음)"

- 김유영에서 전성민으로 이름 바꾼 지 벌써 꽤 됐어요. 어떤가요? 바꾸고 나니까 훨씬 좋은가요.
"그런 것 같아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전 무신론자거든요. 부모님이 처음에 이름 바꾸자고 했을 때, 되게 싫었거든요. 전 제 이름 좋아하거든요. 별로 흔하지도 않고, 못 이겨서 했는데….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제 성격이랑도 중성적인 이름이 더 잘 맞는 것 같고. 정신적으로도 건강해졌어요. 이름 덕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아닐 수도 있고. (웃음)"

- 그래도 별명은 계속 '융'(유영의 줄임말)이잖아요.
"그러게요. 그래서 전 제 별명 되게 좋아해요. (웃음)"

- 배우로서 혹은 인생의 선배로서 롤모델로 삼고 있는 이가 있나요?
"데뷔 때부터 닮고 싶은 선배, 존경하는 선배 묻는 말이 항상 어려웠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저 사람처럼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선배는 분명 있고, 그래서 그런 분들의 이름을 말했지만요. 인제 와서 생각해보면 '롤모델'이라고까지 정의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저는 저대로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 이어지는 질문입니다. 배우로서의 최종 목표 같은 게 있나요?
"공연만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배우요. (웃음) 너무 솔직하게 답했나요? 좀 멋진 대답을 하고 싶었는데, 죄송합니다. (웃음) 요즘 제 이슈 중 하나에요. 사치를 부릴 생각은 없어요. 그럴 성격도 아니고요. 다만, 공연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제가 정말 사랑하는 일만 하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그런 고민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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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이렇게 볼썽사나운 기자라니... 내공이 대단하십니다

[오마이픽업] <더 킹>의 비리 기자, 17년 차 배우 김민재가 꿈꾸는 진짜 자유

영화 <더 킹>에서 정우성, 배성우 등이 맡은 검사들이 권력의 춤사위를 추며 각종 비위를 저지르는 장면은 충분히 공분을 살 만하다. 여기에 빌붙는 수많은 사람들. 정치인, 재력가 등이 있는데 그 중 언론인의 모습이 유독 얄밉게 들어온다. 권언유착, 즉 진실을 전해야 할 언론이 권력과 손잡았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각종 더러운 일들을 영화가 포착했다.배우 김민재가 맡은 <주안일보>의 백 기자가 바로 그 부정한 언론인의 표상이다. 검사들이 제공하는 각종 향응에 기대고, 이들이 적당히 흘리는 정보를 확대, 과장, 왜곡한다. 심지어 진실을 전하려는 다른 언론인들에 맞서 사실을 호도하기까지 한다. 추악한 언론인의 모습을 17년 차 내공의 배우가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그 어떤 왜곡과 과장이 없이.작품 위해 뛰는 수용성 배우 많이 익숙한 얼굴이다. 영화광이라면 김민재의 특별한 표정을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50편 가까이 되는 필모그래피에서 그는 대부분 형사였으며, 때론 기자나 국정원 직원이었거나, 깡패이기도 했다. <부당거래>에서 "경찰대 출신들이 다 해 쳐드세요!"라고 일갈하는 정의감 넘치는 형사였던 그는 <무뢰한>에선 밑바닥 인생의 한 여성을 따라다니며 지독하게 괴롭히는 사내로 관객의 눈도장을 받았다. 영화에서 입체적으로 등장하든 기능적으로 쓰이든 그는 자신의 몸을 기꺼이 구부렸고, 작품에 맞췄다. 매년 평균 세 편씩 십 수 년 간 꾸준히 출연할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더 킹>을 보자. 이번엔 철저히 기능적으로 쓰였다. 물론 "주변의 기자 분들을 만나거나 자료를 찾기도 했"지만 "이야기가 핵심이니 감독(한재림)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부합하려고 했다"고 그가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한국 언론 환경에 대해 전혀 생각 없이 역할에 임했다고 오해하지는 말자. "뉴스는 자주, 특히 요즘 들어 더 자주 본다"며 "권력과 힘에 대해 소신을 밝히기에 한국은 좋은 환경이 아니지만 희망이 보인다. 이러는 저도 부끄러운 쪽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나름의 자기 성찰과 현실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음을 먼저 전한다."<특종: 량첸 살인기> 때도 기자 역이었는데 한재림 감독님이 제작한 작품이잖나. 그때부터 절 보셨던 거 같다. 현장에서 감독이 제안하는 아이디어를 즉각 수용하는 편이다. 선택은 감독의 몫이니까, 작품의 목표가 있으면 최대한 부합하려 하는 거지. <더 킹>에서도 언론인의 모습 자체보단 주인공에게 이 인물이 어떤 역할을 하는 지에 중점을 뒀다. 방해꾼인지, 협력자인지.사실 <더 킹>을 두고 감독님과 이야기할 땐 제가 아이디어를 낸 부분도 있었다. 근데 촬영을 빨리 들어가야 했기에 시간이 부족했지. 편집된 부분이 좀 있긴 하다. 백 기자가 좌천돼서 연예부로 활동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굳이 전체 영화에선 넣을 필요는 없었던 거 같다. 아쉽진 않다. 영화의 이야기가 잘 전달되는 게 중요하니까. 감독님이 갖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집요함인데 작품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모습은 후배 입장에선 배움이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재림 감독님과 충분한 시간을 갖고 문제를 집요하게 파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웃음)."김민재는 <더 킹>을 두고 "힘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로 정의했다. "정치에 국한한 게 아닌 가족이든 조직이든 힘이란 게 대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며 "눈에 보이는 폭력이든 보이지 않는 폭력이든 사회와 개인을 파괴하는 부류가 있는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진짜를 찾는 과정 대구 지역 극단에서 이희준과 함께 활동하다 서울로 올라왔다. 2000년부터 각종 연극 무대를 경험했고, 8수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출과에 입학했다. 동기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그는 학과 생활 보단 연기를 더욱 파고 또 팠다. 틈틈이 시나리오도 써왔다. 이 모든 게 "내가 왜 연기하고 있지?"라는 자문에서 출발했다. 그렇다. 남이 묻기 전에 그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왜 지금까지 연기하고 있는지 말이다."배우를 할 수밖에 없는 가정환경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배와 폭력에 대한 물음이 있었다. 내가 유별났다고 해야 할까.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자유와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강했다. 세상에 아름다움이라는 게 있을까? 진짜 자유가 있을까? 나름 정의를 내린 건데 내 몸이 뭔가 표현하고 의미를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하더라. 스무 살을 지나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육체가 연기를 좋아한다는 걸 느꼈다. 그게 내 동력이다. 힘들지만 멈추지 않게 하는 것들이다. 그맘때 서울에 올라왔다. 연기를 잘하고 싶어서 서울 시내 유명 연극영화과는 다 돌아다니며 도강도 했고, 잘한다는 사람들 공연은 찾아보고 또 직접 만나서 친해지려 했다. 여러 사람을 많이 불편하게 했던 것 같다. 돈이 없으니 뭔가 부탁을 해야 하잖나. 사람들에게 상처도 많이 받고, 그렇게 20대 전부를 보냈다."타인이 보기엔 좀 유별나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적어도 김민재는 당시 연기 하나는 기막히게 한다는 평을 들으며 무대를 종횡무진 했다.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우연이었다. "<오아시스>를 보고 이창동 감독님이 궁금했고, 경험하고 싶었다"는 이유로 그는 무작정 <밀양> 오디션 장을 찾았다. "나만을 위해 살던 때였다. 진실과 진짜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근데 그 영화에서 주인공을 불편하게 하는 가정, 그 여자를 거리로 내모는 환경을 보면서 내가 그런 부족한 가족의 모습 같더라. 처음엔 그저 연기 잘하는 선배가 나온대서 본 건데 사실 그것도 내 욕심이지 않나. 날 다르게 생각하게 한 작품이었다. 그런 작품을 만든 감독님이 너무 궁금했다. 인터뷰에서 주전자를 들고 현장을 다녀도 좋다고 말했다. 사실 오디션엔 떨어졌었다. 20대가 할 역할도 없었는데 운이 좋게 한 달 뒤 연락이 와서 감사한 마음에 내려갔지. 그 뒤로 감독님이 몇 번을 더 불러주셨다. 인터뷰를 좋게 봐주신 거 같다."소외된 인물에 대한 애정 그때 인연 이후 <밀양> <부당거래> <시> <특수본> <베테랑> <뷰티 인사이드> 등의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 비슷한 역할을 수 없이 하면서도 그의 이미지 소모가 다른 배우들 보다 적은 이유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솔직하며 작품의 의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기 때문 아닐까. 8편의 영화에서 형사로 나온 그다. <부당거래> 때 형사와 <연가시> 때 형사가 또 다르다. 분량이 적어서일까. 그렇다고 인상에 남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앞서 언급한 한 마디의 대사("경찰대 출신들이 다 해 쳐드세요!")가 관객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회자된다는 건 그만큼 강렬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관객은 결국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제시한 상황과 메시지를 깨닫는다. 내 역할은 그걸 잘 경험하시게끔 하는 거다. 종종 작품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배우들이 있다. 저 역시 그런 욕망이 있지만 나름 검열하는 게 있다. 하나의 배에서 함께 타고 갈 수 있게 하자는 거다. 같은 형사지만 영화 제목도, 서로의 욕망도 다르니까 그걸 표현해야지. 근데 이미지가 소비되는 것 같을 때 지치긴 하다. 뭔가 재탕하는 느낌이 들면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작품을 마치고 그는 최근 막노동 일을 잠시 했다. 텃밭에 농사도 지었다. "노동에 대해 좋은 마음을 생각할 수 있을까 해서 젊었을 때 했던 막노동을 해봤는데 내가 너무 안일했다"며 그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하길 잘했다는 생각은 안 들고, 다만 가끔씩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가 던진 말은 "삶에 대해 뭔가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그가 일상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좋은 연기와 관련됐다고 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진실함을 찾는 행위임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김민재는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애써 마음을 포장하지도 않지만 또 허투루 능력 밖의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포털 사이트에 치면 나오는 숱한 동명이인의 유명인들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외형은 참 평범하다. 다만 그의 길은 특별했다.인터뷰 말미 그가 내놓은 궁극적인 연기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소외된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 시스템이나 여러 부분에서 소외된 사람들. 그거 있잖나. 존재하는데 존재하고 있지 않은 삶. 뭔가 철학적인 얘기가 현실적으로 그런 분들이 계신다. 이를 테면 탈영병? 뭔가 조직 내에서 불합리에 맞서 질문하고 싸우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싶다. 특정, 특별한 연기를 하고픈 게 아니라, 그런 이면을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다. 좋은 연기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배우들이 모이는 건 뭔가 알기 위해서 아닐까. 먹고 살기 위한 행동이 나쁜 건 아니지만 (거기에 빠지면) 시야가 좁아지기 쉽다. 시야를 바꿔서 알아가려 노력해야지.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서로 알려고 노력하면 힘든 사람들은 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작가든, 감독이든, 배우든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작업하고 싶다."

"태권도 포기하고, 매일 연기연습"... 신인 양세종의 치열함 엿보기

[inter:view] 무서운 신인, 한석규 그리고 이영애의 남자가 되다

"안.녕.하.세.요. 양.세.종.입.니.다."지난달 24일 열린 <사임당-빛의 일기> 제작발표회. 그는 한 글자씩 또박또박 자기소개를 했다. 질문을 받으면 다시 한 글자씩 또박또박 답했다. 아차 싶었다. 곧 그와 인터뷰를 해야 하는데. 인터뷰 내내 저리 말하면 어쩌나.그래도 만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필모그래피라고는 고작 두 편. 하지만 그 안에서 한석규, 이영애 같은 까마득한 대배우들과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연기한 '무서운 신예'가 아니던가. 설 연휴가 막 끝난 지난달 31일. 마음을 단단히 먹고 배우 양세종을 만났다. 마음의 준비가 무색하게, 그는 잘 웃고, 잘 이야기했다."실수할까 봐 그랬어요. 앞에서 플래시가 파바박 터지니까 긴장되기도 하고... 익숙해져야 하는데. 하하하."첫 오디션서 덜컥 합격, '이영애의 남자' 되다 - <사임당> 제작발표회 전에, 작가님과 감독님의 간담회가 있었다. 그때 작가님이 리딩을 시키니 대본 쥔 손을 벌벌 떨면서도 연기는 멀쩡하게 하는 모습을 보고 캐스팅했다고 하시더라. "<낭만닥터 김사부> 오디션보다 더 떨었다. 첫 오디션이었으니까. 오디션을 네 번쯤 봤는데, 작가님들 앞에서 연기할 때가 제일 떨리더라. 분위기가..." - <사임당>에서 과거에서 어린 이겸으로만 등장할 줄 알았다. 근데 현대에서는 송승헌 없이 성인 역이더라. 예상보다 분량이 많아서 놀랐다. "처음부터 1인 2역이었던 건 아니다. 송승헌 선배님 아역 오디션을 봤고, 감독님께서 바로 '너 어린 이겸이다. 해라' 하셨다. 그러시고는 그날 '현대 파트에 한상현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그 역할 분석하고 준비해서 다시 보자' 하시더라. 그래서 어린 이겸 붙은 상태로 오디션을 다시 봤지. 근데 잘 못했다. 감독님이 '이틀 더 줄 테니 다시 보자' 하시며 기회를 더 주셨고, 그 이틀 동안 한 시간만 자면서 죽자 살자 준비해 갔다. 그렇게 두 번의 오디션을 더 봤고, 합격할 수 있었다." - 신인에게 기회를 여러 번 주신 셈이다. 감독님은 양세종의 뭘 보신 걸까? "모르겠다. 사실 감독님이 내게는 칭찬을 잘 안 해주셔서. (웃음) <낭만닥터> 끝난 후에 감독님 말씀을 기사로 접했는데, 세종이는 처음부터 잘했다 하셨다더라. 기분이 정말 너무 좋았다." - 한석규나 이영애,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배우들 아닌가. 둘 다 다작 배우도 아니라 연기 생활을 더 오래한 배우들도 한 번 만나기 어려운 선배들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데뷔하자마자 연달아 함께 연기하게 됐다. 가까이서 본 한석규와 이영애는 어떤 선배였나. "'인범아 너는 짧게 가지 말고 멀리 가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두 배 세 배 표현해도 될 것 같다'... 한석규 선배님이 해주신 조언들이다. 밥도 많이 정말 사주셨다. 치대기도 많이 치댔는데, 만날 '선배님 사랑합니다' 하고 앵겼다. 그럴 때마다 허허허 웃으시며 토닥토닥 해주셨다. 너무 행복했다. 이영애 선배님은 아무래도 여자 선배님이라 그렇게까진 못했다. 게다가 그땐 첫 작품이라 선배님께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부담감이 너무 컸다. 이런저런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내 곁에 이영애 선배님이 계시다는 게 새삼 너무 놀라운 거다. 같이 있는 게 너무 행복하고 영광스럽고... 의지를 많이 했다."태권 소년, 배우를 꿈꾸다 -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원래 연기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었다. 고2 때 학교에서 단체로 연극 <스노우드롭>을 보러 갔는데, 그게 생에 첫 연극이었다. 보는데 뭔가 간질간질하고, 내가 혼자 실룩실룩 웃고, 울먹울먹하고 있더라. 그런 내 모습이 너무 낯설고 창피해서 주위를 둘러봤는데, 친구들도 다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웃음) 그때 느낌이 확 왔다. '나도 저 무대 위 배우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고3 때 연기로 진로를 정했다."- 부모님이 황당해하시지는 않았나. 수능을 코앞에 두고 갑자기 연기라니. 나라도 반대했을 것 같은데."19살 때 처음 연기한다고 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딱 한 번, 한마디 하셨다. '할 거면 이 악물고 해라.' 물론 다른 친척들은 다 뜯어말렸다. 하던 운동이나 하라고."- 운동했었는지는 몰랐다."엇. 그러고 보니 처음 이야기한다! 고등학교 때 태권도 시범단을 했었는데, 삼성 재단에서 장학금도 받고 그랬다. 체대 갈 아이가 갑자기 관두고 연기하겠다니 삼촌, 이모, 할머니 다들 난리가 났지. 갑자기 무슨 연기를 하겠다는 거냐, 운동이나 해라, 삼촌 공장 가서 일이나 배워라... 근데 연극의 파장이 너무 컸다. 다 흘려들었지 뭐. 하하."- 그럼 연기 입시 준비는 늦게 준비한 셈인데,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에 붙었다. 재능이 있었나 보다."내가 인복이 좀 있다. 처음 연기 수업받으러 가는데, 한 친구가 연기를 너무 잘하더라. 그날 처음 본 친구인데, 끝나자마자 다짜고짜 물어봤다. 연기 연습 어떻게 하냐고. 그 친구 말이, 자기는 방 안에 스탠드 하나 켜고 감정의 흐름대로 움직인다더라. 연기학원 끝나고 집에 가면 11시쯤 되는데, 그 시간에는 큰 소리 내며 연습할 수 없으니까. 그날 집에 가서 바로 시작했다.그때 살던 집이 오래된 기와집이었는데, 육각 모양 거울 기둥이 있었다. 그 위로 천장 한 부분이 유리로 뻥 뚫려있었고. 스탠드를 찾다가 그냥 그릇 하나 놓고 양초를 켰는데, 촛불이 육각 거울에 반사되면서 되게 멋있었다. 분위기도 너무 좋았다.존경하는 스승님이 어떤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려면 좋은 스승과 연습할 수 있는 환경, 그리고 열정이 있으면 된다고 하셨는데, 육각 거울과 촛불 덕에 최상의 환경을 갖게 된 거다. 좋은 스승은 그 친구였고, 열정만 있으면 되는 거였지. 그때부터 매일 새벽 5시 6시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했다. 결국 재수해서 한예종에 갔고, 그 친구는 고3 때 한예종에 붙어 내 선배가 됐다. (웃음)."양세종의 '김사부'들 - 그 친구를 양세종 인생의 '김사부'라고 볼 수 있겠다. <낭만닥터>에서 김사부는, 제자들이 흔들리고 갈등할 때마다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지 않나. 그런 김사부도 계시나. "두 분의 김사부가 계신다. 우선 고등학교 때 학생주임이셨던 안주혁 선생님. 나를 많이 믿어주셨고,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고민이 있는 것 같으면 '산 좀 올라갔다 오자' 하시면서 같이 걸어주셨던 게 기억난다. 계속 걸으면서 선생님이랑 노래도 부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면 마음이 정화되곤 했다. (학생 주임 선생님이랑 친하기 쉽지 않은데, 혼날 일이 많은 말썽쟁이였나보다 묻자, '절대 아니'라고 손사레를 치며 웃었다.) 다른 한 분은 재수할 때 연기학원 원장님, 오승우 선생님이다. 아르바이트하면서 학원비를 충당했는데, 학원비가 비싸다 보니 그래도 어려웠거든. 6개월 치 정도 밀렸었다. 하루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는데 선생님이 밖에서 바람을 쐬고 계셨다. 학원비 이야기하려고 옆에 쭈뼛쭈뼛 다가갔다. '선생님...'하고 불렀는데, 어깨를 두들겨 주시면서 '세종아, 연기 이외의 것들은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 나는 너 대학만 가면 돼. 수강료 신경 쓰지 마. 마음껏 다녀'. 그땐 정말…."양세종은 잠시 말을 멈추고 눈물을 글썽였다. 흔들리는 목소리로 "혼란스럽고 힘들었던 시기, 두 분 덕분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면서.그는 그렇게 들어간 한예종에서도 좋은 스승들과 친구들을 만났다며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한예종 실기 면접 때 따끔한 일침으로 그의 정신 상태를 일깨워주셨던 교수님, 중학교 때 알바하던 책방 사장님. 그는 자신에게 크고 작은 가르침을 준 이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늘 스승 복이 있었다"며 감사함을 표현했다.<사임당> 위해 논어까지, 그가 연기하는 방법 좋은 스승들 덕분일까? 꿈을 찾은 뒤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재수하긴 했지만, 한예종에 붙었고, 처음 본 오디션에서 '이영애의 남자'가 됐다. 그리고 사실상 데뷔작인 <낭만닥터 김사부>가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거둔 덕에, 시청자들에게 단박에 얼굴을 알릴 수 있었다. 운도 따랐겠지만, 흔한 연기력 논란 하나 없이 이렇게 큰 작품에 연달아 출연한 신인이 또 있을까 싶다. 그는 자기만의 준비 방법을 털어놨다.핸드폰은 무음으로 해두고 알람 용도로만 썼다. 촬영장-회사-나만의 공간에서 연습-잠 2~3시간, 다시 촬영장-회사-나만의 공간에서 연습. 이렇게, 자기만의 사이클을 만들어 두고는 철저하게 반복했다고. <낭만닥터> 때는 아예 단기로 방을 구해 모든 외적인 것들과 스스로 차단하기까지 했단다.- 뭔가 하면 순간적으로 완전 몰입하는 스타일인가보다. <사임당>은 첫 작품이라 더했을 것 같기도 하다."상상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 캐릭터에 접근할 때 직접 경험하는 걸 좋아한다. <사임당> 준비하면서는 박물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한상현이라는 인물이 논어, 중용, 동양 미술 이런 데 박식한 인물인데, 직접 보고 느끼지 않으면 연기하는 데 불편할 것 같더라. 그래서 논어도 계속 보고, 국립중앙박물관 가서 그림도 계속 봤다. 한자도 모르면 아무래도 낭독하는데 어색할 거 아닌가. 그래서 대본에 있는 한자 뜻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바로 읽을 수 있을 때까지 연습했다. 한상현이 있을 법한 곳에서, 그가 했을 만한 행동을 하면 무의식적으로 그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앞으로 양세종이 어떤 캐릭터를 맡으면, 이번엔 어디까지 준비했을까 궁금해질 것 같다. 변호사 역이라도 맡으면 정말 사시라도 볼 태세다."하하하 사시까진 아니라도 그만큼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괴롭히는 이유가 있나. 첫 작품이라서 택한 몰입 방법이라면,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다 보면 점점 편해지지 않을까?"이렇게 해야 스스로 확신이 생기고 떳떳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언젠가 노하우가 생기면 편하게 연기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지금은 아니다. 사실 바꾸고 싶지 않기도 하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에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다. 근데 (소속사) 대표님은 주위 사람 좀 힘들게 하지 말라고…. (웃음)"- 처음 찍은 작품은 <사임당>이지만, 사전제작인 데다 방영이 밀린 탓에 <낭만닥터 김사부>가 데뷔작이 됐다. 게다가 <낭만닥터>가 끝나자마자 <사임당>이 방영되게 됐는데, 이제 와 첫 연기를 다시 보는 마음이 어떤가. '더 잘할 수 있었는데'하는 아쉬움이나, 걱정은 없는지. "'오늘에 최선을 다하자'는 내 신념과 가치관에 더 확신을 갖게 된 것 같다. 이런 상황이 오리라고 아무도 몰랐지 않나. 지금의 내가 다시 한상현과 어린 이겸을 연기한다면, 조금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쉬운 장면들도 있지만, 스스로 그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는 확신이 있다. 그만큼 열심히 했으니까. 언젠가 '그때 더 열심히 할걸'하는 후회를 하지 않도록, 스스로 떳떳할 수 있도록, 늘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과거를 곱씹지도, 먼 미래에 대해 미리 생각하지도 않는다."오늘을 치열하게 사는 이유 -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해도,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은지에 대한 바람은 있지 않을까?"요즘 지나가다 보면 사람들이 '어? 도인범!' 하고 불러주시는데, 굉장히 기분이 좋다. 도인범이라는 캐릭터를 사람들 기억에 남도록 잘 연기했다는 칭찬처럼 들리거든. 그래서 앞으로도 양세종이라는 인물보다, 캐릭터로 불리는 배우가 되고 싶다. 하나 더 바라는 게 있다면, 한석규 선배님 말씀처럼 길게 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그건 내 선택이 아니잖나. 오래, 멀리 갈 수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주어진 일들을 잘해내는, 믿음을 주는 배우가 먼저 되려고 한다."인터뷰는 이렇게 끝났다. 그에게는 마지막 <낭만닥터 김사부> 인터뷰였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너무 즐거웠다.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흔한 인사치레일지라도, 그 말이 고마웠다. 이미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마친 뒤라 지치고 지겹지는 않았을지 걱정했다고 답하자, 돌아온 말이 압권이다."사람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제가 기자님 오늘 뵙는 순간이, 마지막일 수도 있어요."아니 왜 그런 생각을 하느냐며 웃자,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은 늘 그렇게 생각하며 산다고 말했다. 그래서 모든 순간이 색다르고 재미있다고. 자신이 궁금해 찾아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주어 감사하다고. 그가 왜 그렇게 매 순간 치열하게 사는지, 조금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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