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재심>이 다룬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

영화 <재심>이 다룬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 박 변호사는 공권력의 안일함으로 억울한 일을 당한 피해자들을 만나 전국 곳곳을 누비고 있다. 박상규 기자는 박 변호사의 현실적 어려움을 듣고, 이를 기사로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다.ⓒ 권우성


시쳇말로 스포츠 경기에서 종종 해설자가 던지는 말이 있다. 게임 중 좀처럼 반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 하는 '승부는 이미 결정됐다'. 동시에 우린 이를 뒤집는 말 또한 알고 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타칭 '파산변호사', 자칭 '국선 재벌' 박준영 변호사는 법조계의 뒤집기 선수였다. 여기에 잘 다니던 언론사를 스스로 박차고 나와 백수를 선언한 박상규 기자가 합세했다. 이들로 인해 대법원의 판결까지 이미 끝나 좀처럼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 수 없을 것 같았던 사건들이 재심을 눈앞에 두고 있다. 수원 노숙 소녀 살인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 그리고 완도 무기수 김신혜 사건까지다. 모두 십수 년의 억울함을 품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수 년 동안 치열하게 전국을 뛴 결과다. 끝날 때까지 이들은 끝내지 않았다.

언급한 사건 중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이 영화화됐다. <재심>이라는 제목으로 2월 1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태윤 감독이 직접 각본까지 쓴 영화는 박준영 변호사를 중심으로 누명을 쓴 한 청년이 재심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배우 정우와 강하늘이 각각 변호사 이준영과 살인범 누명으로 10년 이상을 교도소에서 복역하게 된 현우 역을 맡았다. 개봉에 앞서 <오마이스타>는 진실을 파헤치고 세상에 알린 두 주역을 미리 만났다.

"영화화 결정이 사건 해결에 큰 도움"

"재심(再審): 확정된 판결에 대하여 사실인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경우에 당사자 및 기타 청구권자의 청구에 의하여 그 판결의 당부를 다시 심리하는 비상수단적인 구제방법." - <두산대백과> 중에서

말 그대로다. 삼심제를 택하고 있는 국내 법제도상 대법원 확정판결은 사건에 대한 최종 결론과 마찬가지다. 재심은 그 제도 안에서도 억울함이 있는 피해자를 구하기 위한 일종의 마지막 수단인 셈.

누군가에겐 법전 구석에 처박아 둔 아무 효용 없는 단어겠지만, 박준영 변호사와 억울하게 옥살이한 피해자에겐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또한, 이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며 국민적 후원을 끌어낸 박상규 기자는 재심 프로젝트의 큰 동력이었다. 두 사람 이야기는 저서 <지연된 정의>에 자세히 나왔으니 참고하자.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한 이들의 스토리 펀딩은 역대 최고 후원금인 5억 6000여만 원을 모으며 국민적 관심을 증명했고, 현재 관련 프로젝트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 수년간 뛴 결실이 하나둘 나오고 있다. 재심 확정판결은 물론이고 영화화 역시 그렇다. 약 4년 전 영화화 논의가 처음 나왔다고 들었는데 그에 대한 두 분의 생각이 궁금하다.
박준영:
"영화가 처음에 만들어질 당시 상황은 SBS에서 익산 사건의 공론화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재심이 되고 무죄판결이 날 걸 전제로 한 게 아니었고, 법적으로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기 쉽지 않겠지만, 세상이 좀 알아줬으면 하는 차원이었다. 본래 시나리오엔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다. 이게 참 운명이라고 영화의 투자가 지지부진했다던데 박 기자랑 스토리 펀딩을 하면서 공론화가 됐고, 사건에 대한 결과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이야기가 된 걸로 알고 있다. 처음엔 변호사가 여자였다고 들었다. 감독님이 처음엔 그래서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주인공이 아니라고. 난 뭐 상관없었는데."

 영화 <재심>이 다룬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박준영 변호사.

재심 사건들을 맡기 전 그는 각종 사건의 국선 변호인을 맡으며 근근히 생활을 이어갔다. 비싼 사건이 아닌 몇 십만원의 수임료를 받는 국선 변호인의 생활을 초라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국선재벌'이라 칭할 수 있는 이유다.ⓒ 권우성


박상규:
"나도 영화를 준비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익산 사건이 일단 21세기 한국에서 벌어진 것 자체가 놀라웠고, 충분히 영화적 요소도 있다고 생각한다. 또 박 변호사의 삶을 다루는 것도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라고 본다. 독특한 캐릭터다. 한국 사회에서 보기 힘든 변호사지(웃음). 법정에서 법리를 따지며 무죄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 직접 가서 기자처럼 취재하고 증거를 수집한다. 피해자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증인도 찾아 나서고…. 충분히 영화로 나올 소재다."

- 근데 두 분은 영화를 좀 보시나?
박준영: "극장에 잘 안 간다. 그냥 집에서, 그 뭐지? IPTV 이런 거로 가끔 보지. 극장은 거의 1년에 한 번 가려나?"

박상규: "나도 잘 안 본다. 아무래도 기자라 스토리 기법을 참고해야 해서 영상을 자주 봐야 하는데 드라마도 안 보게 되더라. 책은 좋아하는데."

박준영: "(박 기자는) 모든 걸 귀찮아한다. 아, 축구를 좋아하지? 그리고 분위기와 달리 이 사람이 책 읽는 걸 좋아한다는데 신기해 죽겠다(웃음)."

영화 <재심>의 구체적인 시작은 이렇다. 해당 사건을 취재했던 SBS 이대욱 기자가 지인을 통해 김태윤 감독에게 제안했고, 피해자 최아무개씨의 동의를 함께 구했다. 사건을 맡았던 박준영 변호사는 "적극적으로 당시 사건 기록을 넘기고, 설명하는 역할"을 했다. 여러 이유로 투자가 지지부진하던 차에 주연 배우가 확정되면서 제작이 급물살을 탔다. 공교롭게도 영화 시작 무렵 사건의 재심이 확정됐고, 촬영이 끝날 즈음 최아무개씨의 무죄가 확정됐다.

- 이렇게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가 좀 있다. <변호인> <또 하나의 약속>에 이어 <재심>이 이제 가장 최신의 실화 바탕 영화가 됐는데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박준영: "박 기자와 스토리펀딩을 하는 등 재심을 위해 나름 노력했다. 검찰에선 계속 최군이 범인이라 주장했지. 재심 반대 의견서도 쓰고. 재심한다 해도 검찰이란 조직이 하던 주장을 하루아침에 정반대로 하는 건 쉽지 않다. 근데 이 사건은 대법원의 재심 결정 이후 검찰 입장이 확 바뀌었다. 난 그 이유가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태원 살인사건> 선례가 있잖나. 영화 때문에 패터슨을 잡을 수 있었다. <재심>의 흥행은 알 수 없지만, 영화화된다는 사실이 검찰을 많이 자극한 것으로 본다. 실화의 영화화가 여러 긍정 효과가 있겠지만, 해결이 쉽지 않은 사건에 큰 힘이 됐다."

지난했던 영화화 과정

 영화 <재심> 포스터

영화 <재심> 포스터. 정우가 변호사 역을, 강하늘이 누명을 쓴 피해자 역을 맡았다.ⓒ 오퍼스픽쳐스 , CGV 아트하우스


- 사실 영화 기획까지만 쉽다. 김태윤 감독은 백혈병에 걸린 삼성 반도체 직원을 소재로 한 <또 하나의 약속>도 어렵게 찍었다. <재심> 역시 3년 이상 걸리는 걸 보면서 내심 불안하지 않았나.
박준영: "투자 자체가 쉽지 않았으니까. 영화가 지지부진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일전에 수원 노숙 소녀 사건을 영화화한다고 자료 받아간 분이 있었는데 잘 안 되는 과정을 봤다. 영화화가 보통 일이 아님을 안다. 기대하면 실망이 크기에 솔직히 별 기대를 안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진척되더라. 난 오로지 사건 기록을 설명하는 역할만 했다. 따로 배우를 만난 적도 없고."

- 강하늘씨가 이 사건에 관심이 많았다. 출연 제안에 가장 먼저 흔쾌히 수락했다고 들었다. 근데 변호사 역의 정우씨도 그렇고 배우들을 전혀 안 만났다니.
박준영: "내가 개입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영화 촬영 전까지) 내가 한 건 법정 분위기나 옷차림, 내가 겪은 에피소드를 제작진에 얘기해주는 것뿐이다. 감독님이 실제로 법정에 와서 취재도 했고 다 봤으니까. 배우들 만나고픈 마음은 굴뚝같았지. 얼굴도 궁금하고 촬영을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했으니. 마지막 촬영 날 인사는 해야 할 것 같다고 불러줘서 다녀오긴 했다."

 영화 <재심>이 다룬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박상규 기자.

영화 <재심>이 다룬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박상규 기자.ⓒ 권우성


- 박상규 기자 입장에선 좀 서운할 수도 있다. 영화는 변호사 이야기 중심인데.

박상규: "이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건 SBS 이대욱 기자다. 익산, 삼례, 김신혜 등 우리가 진행한 사건은 다들 15년이 넘은 거라 모든 언론사가 다뤘고, 난 발하나 걸친 거다. 하나의 사건이 해결되는 데 정말 많은 사람의 굉장한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이대욱 기자 역시 혼자 이룬 건 아니지. 지역 기자, 지상파 방송사 등 여러 노력의 과정이 쌓인 결과다."

- 반 농담으로 질문한다. 영화 주인공인 정우씨와 강하늘의 캐스팅은 적절하다고 생각하나.
박상규: "흥행성 면에서 좋겠지만 강하늘씨가 좀 착해 보인다! 현실성이 떨어진다고나 할까(웃음). 누명을 쓴 사람들은 비주얼이 안 된다. 딱 봤을 때 범죄자형이다. 그러니 누명도 쓰고 그러지."

박준영: "오해의 소지 없게 박 기자의 말을 잘 써 달라. 강하늘씨가 연극배우 출신이라 잘한다고 들었다(웃음)."

진실의 힘

누군가 억울하다는 건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것이고, 그걸 파헤치기 위해선 거짓으로 묻는 것 이상의 힘이 들게 마련이다. 앞서 언급한 사건들의 피해자를 위해 박 변호사는 길게는 6년 넘게 전국을 오갔다. 이를 알리기 위해 박상규 기자도 2년을 함께 매달렸다. 특히 익산 사건을 다룰 땐 진범이 구속되기 직전까지 두 사람은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에 잠자리 곁에 몽둥이를 두고 잠을 자는 결코 웃지 못할 시간도 겪어야 했다.

이들의 저서 <지연된 정의>엔 익산 사건 해결의 또 다른 주역인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반장이 등장한다. 그가 남긴 말이 큰 울림을 준다. 황 반장은 진범을 잡았다가 검찰과 상부의 압박으로 끝내 풀어줘야 했고, 좌천까지 당했다가 은퇴 이후 겨우 명예회복을 한 장본인이다. 명예회복 직후 황 전 반장은 이 '박 콤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는 싸움을 했는데 결국 진실이 이겼네요."

- 황 전 반장 말처럼 진실의 힘을 증명했고 하는 중이다. 다들 끝난 싸움이라 했는데 끝까지 싸움을 걸었다는 게 핵심 같다. 이 익산 약촌오거리 사건의 핵심은 뭐라 생각하나.
박준영: "누가 뭐래도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것. 그 과정은 여러 사람의 협력과 연대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영화 대본에도 나오지만 이미 형이 확정된 사람을 변호한다는 건 의심과의 싸움이다. 사람들이 다들 묻는다. 살인범이 아니라는 걸 어찌 보장하냐고. 그 의심을 극복하고 믿고 함께 진실을 찾아가는 것에 의미가 있다."

박상규: "이 사건은 조직적으로 엘리트가 가난한 이에게 누명을 씌운 거다. 진범 추정 인물이 잡혔을 때 모든 게 제 자리로 갈 수 있었는데 검찰이 묻어버렸다. 영화 개봉과 함께 아마 거기에 개입한 두 검사가 수면 위에 오를 거다. 둘 다 현직이고, 고위직에 있거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찰만 증인으로 나오고 검사들은 나오지 않는다. 말단만 계속 책임을 지고 있는데 당시 (사건을 잘못 판단한) 재판부도 그렇고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 결과적으로 잘 됐지만 애초에 대상과 객관적 거리를 둬야 하는 기자와 대상을 적극적으로 변호해야 하는 변호사의 조합이 쉽진 않았을 텐데.
박상규: "회사를 나온 뒤 기자들의 취재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기자가 기사 쓰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진실이거든. 근데 한국에선 공정성을 더 강조한다. 살인 누명 쓴 사람이 있고, 진실을 조작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둘의 주장을 함께 다루면 공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누명 쓴 사람이 피해 보는 것이거든. 기자는 양쪽의 주장이 충돌한다고 보도할 게 아니라 누가 거짓말하는지 보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린 애초부터 살인범을 적시하고 갔다. 취재해보니 살인범이 따로 있었으니까. 물론 나도 신이 아니기에 완벽하게 모르지만 책임지면 되는 거잖나. 사과하고 정정보도 하거나, 아예 물러나거나. 기자가 관찰자여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안 한다."

박준영: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턴가 학벌과 경력으로 사람을 판단하잖나.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했어도 사람들이 절 능력 있는 변호사로 안 본다. 잘할 수 있다고 해도 사건을 맡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손대지 않는 영역에 도전한 거고, 도전했다면 물러설 수 없는 거고,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게 아니라 정의감에? 혹은 피해자들이 불쌍해서 시작했다면 지금에 올 수 있었을까. 공익과 개인적 목적의 결합이었지. 난 박 기자와의 결합이 시너지가 될 거로 생각했다."


 영화 <재심>이 다룬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박상규 기자와 박준영 변호사.

.ⓒ 권우성


- 여러 재심 사건을 다루며 정말 이뤄질 거라 기대했나. 또 진행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궁금하다.
박상규: "검찰이 계속 최씨를 범인이라 주장했다. 법적으로 재심이 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크게 기대 안 했지만 어쨌든 최선을 다한 거지. 변호사님은 기대하셨나?"

박준영: "기대했지. 피해자가 살길이라 생각했으니까. 박 기자야 회사를 나오며 여러 아이템을 품고 있었지만 난 어찌 됐든 이 사건이 내 운명일 뿐만 아니라 내 가족의 삶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기대했다. 이 사건의 진범을 공개할 때 가장 두려웠다. 지금은 진범이 구속돼 있으니 괜찮더라. 범인이 개명까지 했다. 김준영으로. 내 이름이 박준영이고 영화 <재심> 속 이름은 이준영이다. 그러고 보니 김이박이 다 들어가 있네?"

박상규: "우연의 일치겠지. 어쨌든 이 사건은 두 검사가 큰 잘못을 했다. 그리고 그의 부모와 외삼촌이다. (진범이 최초 잡히고 풀렸을 때 은폐한 건) 결국 반성의 기회를 뺏은 거잖나. 그때 잘못 시인하고 그랬으면 지금쯤 만기로 출옥했을 거다. 올해 서른아홉일 텐데 인생을 충분히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나이다. 나 역시 진범이 구속된 이후 잠이 잘 오더라."

박준영: "아니, 그렇게 생겼으면서 뭘 무서워하고 그러나?"

박상규: "에잇! (웃음) 책 쓴 이후 든 생각인데 삼례나 익산 사건은 진범을 잡았잖나. 개인적으론 김신혜 사건이 대박이다. 다시 보니 허위자백의 백미더라. 영화화하려면 이걸 해야 해. 취재하면서도 '김신혜가 과연 무죄일까' 계속 의심했다. 이젠 완전히 범인이 아니라고 생각을 굳혔다!"

박준영: "역사적 사건이다. 사건 자체의 의미도 있지만 사람 심리에 대해 연구하게 만든다. 사실 확정에 대한 확률게임이거든. 판사가 판결문을 쓸 때 '충분히 인정된다', '믿는다' 등의 강한 신뢰의 표현을 썼는데 결론을 내야 하는 입장이더라도 믿는다는 표현 앞에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판이 나올 수 있는 인간의 재판이다. 신이 아닌 이상 그런 표현은 함부로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 <재심>이 다룬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

두 사람의 조합은 역대 포털사이트 스토리펀딩 최고 후원금과 최다 후원자 기록을 갈아치웠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집요하게 취재하고 발로 뛴 결과물이다. 진실을 위해 몸을 던진 이들의 활약은 충분히 박수받고 격려받아 마땅하다.ⓒ 권우성


이야기를 끊지 못할 정도로 대화는 무르익었다. 두 사람은 지면에 차마 다 실을 수 없을 사건에 대한 여러 소회를 털어놨다. 인터뷰 후 이어진 술자리에서도, 헤어진 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서도 이들이 끊임없이 진실을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안에서 사건 피해자들은 함께 울고 웃었다. 진짜로 억울하게 우는 사람이 없는 때가 올까. 법과 제도, 상식 앞에 과오가 있는 이들이 진심으로 반성하는 때가 올까. "운명을 믿는다"던 박준영 변호사의 말을 말미에 덧붙인다.

"박 기자와 저 모두 절박하고 불안하고 두렵고 쓸쓸할 때 만났습니다. 그래서 절실한 선택을 했고, 여기까지 온 거죠. 우리의 조합으로 의미 있는 일도 벌어졌고요. (중략) 우리가 만났다는 게 중요하죠. 서로 목격자가 있다는 거. 혼자 했다면 누가 이 사건을 얘기해주겠어요. 어떤 일이든 혼자 하는 게 아니구나. 그래서 선한 연대의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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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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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의 삶의 본질이 그대로 담겨 나온 게 음악 작품들인데, 그 안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해석자로 저 자신을 바라보게 됐어요. 신부나 목사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부름을 받아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사명이 제게 생겼어요. 16살 때 출가해서 비구니의 삶을 살려고 했어요.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컸고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싶었거든요. 외부적인 모든 게 군더더기라고 여겨져서 그런 것을 벗어던지고 영혼의 에센스를 탐구하고 싶었어요. 스님이 되면 옷을 갈아입을 필요도 없고 오직 명상과 기도만 할 수 있으니까요. 어머니도 '그게 네가 행복한 길이면 하라'고 적극 찬성하셨는데 스님이 거절하셨어요. 그래서 출가 대신 피아노를 택했고 피아노를 핑계로 자유의 삶을 찾아 프랑스로 갔어요. 그런데 피아노가 제게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버렸죠."힘든 외국생활에서 음악이 자신의 언어가 되어줬을 때, 하모니 하나하나가 세포를 뚫고 지나가는 것 같은 신기한 체험을 했다. 같은 곡도 너무 다르게 들렸다. 한국에선 라흐마니노프 곡을 들었을 때 모터소리처럼 웅웅거리게 들렸는데 프랑스에 가선 장님이 눈을 뜬 것처럼 한음한음이 와닿았다. 갑자기 정신이 확 깨는 게 느껴졌다. 그는 프랑스에서 깨달았다. 음악을 통해서도 충분히 본질을 탐구할 수 있는데 자신이 수단(종교)에만 집착하고 있었단 사실을.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면 그것이 곧 본질의 탐구가 된다는 생각을 한 이후로 음악에 더욱 몰두했다. 클래식 음악은 영혼을 끌어올린다 "예술은 영혼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겐 그 수단이 음악이에요. 피아노는 도구고요. 예술은 빗자루질을 하면서도 할 수 있다고 봐요. 빗자루질을 할 때 아름다움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한다면 그 행위는 예술 행위가 되는 거예요. 굳이 절이나 성당에 가서 기도를 하지 않아도 내 마음에 어떤 사명감을 갖고 있는지가 중요한 거죠. 저는 사람의 머리 위에 보이지 않는 별이 항상 따라다닌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면 보이지 않은 힘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고요. 절대 혼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임현정은 음악을 '사운드의 과학'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사운드를 가장 조화롭게 배치하면 하모니가 탄생하는데 그런 관점으로 봤을 때 클래식 음악은 그 레벨을 가장 최고로 끌어올린 음악"이라고 말했다."클래식 음악을 들을 때 우리의 영혼, 본질, 에센스는 승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 몸도 과학적으로 봤을 때 세포로 이루어진 거잖아요. 바흐 음악이 갖는 그 아름다운 진동이 우리 인간 마음의 진동과 만났을 때, 우리 무의식 세계는 발전하고 승화해요. 우리도 모르게 무의식 상태에서 중요한 무언가가 승화하고 우리 영혼을 끌어올려줘요."그는 본질, 영혼, 에센스란 단어를 반복해 사용했다. "작곡가가 자신의 삶 속에서 느낀 모든 감정의 엑기스를 짜낸 게 음악인데, 연주자인 저는 그 음악 안으로 들어가서 작곡가의 에센스와 저만의 에센스가 만나게끔 노력해요." 음악을 '해석'하는 과정을 설명할 때도 그는 이렇듯 영적인 차원으로 접근했다. 침묵이 소리치는 순간 임현정은 지난 2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출간한 출판사인 프랑스의 '알방 미셸(Albin Michel)'에서 음악과 영성에 관한 에세이집 <침묵의 소리>(Le Son du Silence)를 출간했다. 원래 책을 쓸 계획이 없었는데 프랑스의 한 크리스천 라디오 방송에서 나눈 인터뷰를 '알방 미셸' 출판사 편집장이 듣고 그에게 출간을 제의했다. 그의 책은 음악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침묵을 이야기한다. 음악을 말하기 위해 침묵을 말하는 것이다."침묵은 음악의 시작점이자 끝점이라 생각해요. 피아노 앞에서 내가 맨 처음에 내는 첫 소리는 바로 전에 내 안에 있는 침묵의 질에 따라 굉장히 많이 바뀌어요. 내면의 침묵의 소리를 들어야 해요. 그 침묵이 고귀하고 아름다워야 그 다음에 나오는 사운드도 아름다워요. 그래서 침묵이 첫 음입니다. 연주가 끝나고 나서도 침묵이 있죠. 그때의 침묵 거의 뭐... 소리지름이에요. 2시간의 음악에 담겨있는 메시지나 에센스가 얼마나 강렬했나, 그것이 무엇이었냐에 따라서 연주가 끝나고 나서의 침묵이 달라지죠. 그런 측면에서 성공적인 연주를 했을 때, 피아노 소리가 끝나고 마치 침묵이 소리지르고 있는 것처럼 강렬하게 다가와요."그는 "침묵이 없으면 음악도 없다"며 둘은 손바닥의 앞뒤처럼 언제나 함께 가는 것이라 비유했다. 무언가를 그리려면 백지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침묵은 음악을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배경이라고 덧붙였다. '공연을 본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을 밝혔다."공연을 본다는 건 굉장한 일 같아요. 3000명이 같은 자리 같은 장소에 앉아서 침묵하고 있죠. 그리고 다 같이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어요.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만약 100명이 모여서 단체로 기도하거나 합동 명상을 한다면 그곳에도 장난 아닌 에너지가 나오는 거고, 그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죠. 그런데 공연장은 더 많은 사람들이 침묵하며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으니, 2시간 공연에 2000명의 관객이라면 4000시간이 모인 거예요. 그 4000시간을 최대한 아름답게 만드는 게 제 의무입니다." 음악을 감상하는 '꿀팁' 임현정은 관객이 무언가를 느끼거나 못 느끼는 건 연주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베토벤의 '템페스트'를 연주하며 폭풍을 표현했는데 청중이 폭풍을 못 느꼈다면 100% 연주가의 잘못"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말 고귀한 청중은 오히려 음악에 문외한인 청중"이라며 "만일 '템페스트'가 폭풍을 표현한 곡이란 걸 모르고 온 청중이 '이 곡은 마치 폭풍같아요!'라고 말한다면 그 연주야 말로 완벽한 성공"이라고 했다. 다르게 말하면, 그것은 음악을 감상하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고정관념을 버리고 가장 순수하게 그 음악을 받아들이는 게 제일 좋은 감상법 같아요. 언어와 똑같아요. 어떤 사람과 대화할 때 선입관을 갖고 단정을 짓고나서 이야기하면 그 사람 이야기가 귀에 안 들어오잖아요. 음악도 머리에 너무 많은 생각이 있으면 안 들어와요." 그러면서 그는 두 곡을 추천했다. "만약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을 들어보라"며 "죽고 싶은 생각이 나도 그 음악이 저를 이해하는 것 같아서 살고 싶은 마음으로 바뀐다"며 자신의 경험을 덧붙였다. 또 다른 곡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의 4악장을 추천했다. "이 음악을 들으면 어떤 분이라도 테이블 위에서 댄스를 추고 싶을 것"이라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베토벤은 20대의 숙제였다... '미션 클리어' 그 어렵다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가 그의 첫 앨범이다. 지난 2012년 임현정은 한국인 최초로 인터내셔널 버전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EMI Classics)을 녹음했다. 2002년 피아니스트 임동혁 이후 10년 만에 EMI가 선택한 한국인 아티스트였다. 그는 이 앨범으로 빌보드 클래식 차트와 아이튠즈 클래식 차트 1위에 오르며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가 일으킨 반향은 권위에 갇힌 클래식계를 향한 반항 같기도 했다. 이후 한 연주회에서 앙코르로 연주한 '왕벌의 비행'은 54만이 넘는 유튜브 조회수 올리며 세계에 그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20살 때 저 자신에게 10년의 시간을 주기로 결심했어요. 20대 때 머리가 빠르게 돌아갈 때 내가 생각하는 기본의 음악, 예를 들면 바흐나 베토벤의 곡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마치 피아니스트로서 당연히 해야할 '숙제' 같은 거라 여겼고, 10년이란 시간은 대작곡가의 래퍼토리를 하나하나 익혀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어요. 출세의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콩쿠르를 선택하게 되면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게 될 것 같아서 하지 않았어요."그는 "더하기 빼기 같은 기본을 알아야 더 나은 단계로 가서 창의력이 나온다"며 바흐나 베토벤을 '기본의 의무'로 표현했다. 그러면서 또다른 예를 들며, 성질 못된 아내를 둔 소크라테스가 "말을 잘 타려면 성난 말을 타야한다"고 했듯이 치고 싶은 것만 치면 나를 단련할 수가 없을 것 같아 '성난 말' 같은 베토벤 소나타 전곡에 도전했다고 덧붙였다. 모든 이는 자신만의 에센스를 지닌다 그는 '모든 이들은 동등하다'는 게 자신의 기본 생각이라고 밝혔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에센스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만으로 모든 사람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더불어 클래식 음악도 사회적인 한계 없이 누구나 누리는 음악이어야 한다고 했다.'베토벤 전문가'답게 임현정은 베토벤의 전기를 읽으며 감동 받았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음악가가 광대나 하인처럼 취급받던 시대에 베토벤은 처음으로 독립적인 음악가로 인정받은 사람이다. 음악을 신성한 것으로 생각한 베토벤에게 어느날 왕자가 명령했다. "내 게스트를 위해 네가 음악 한 번 연주해보라"고. 이 말에 베토벤은 완전히 '뚜껑이 열려서' 방으로 뛰쳐 들어갔다. 음악을 가벼운 것으로 보고 천대하는 왕자에게 분노를 느낀 베토벤은 의자로 들고 그를 죽이려고 했다. 다행히 누가 온 몸으로 막아서 '살인자 베토벤'은 면했다고. 베토벤은 후에 자신의 격한 행동을 사과했는데 이렇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왕자님, 왕자는 예전에도 많았고 왕자님 후에도 몇천 명이 더 탄생할 것입니다. 당신은 탄생할 때부터 왕자였지만 저는 제 노력으로 베토벤이 됐습니다. 베토벤은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읽고 크게 감명받은 임현정은 "나를 둘러싼 외부의 조건은 불리하게 돌아가지만, 내 노력으로 열심히 한다면 나도 베토벤처럼 유일한 무언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노력으로 원하는 그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한복 입고 외국 학생들에게 클래식과 한국 알려 임현정은 2015년 공연 이후 2년 만에 한국에서 공연을 연다. 오는 2월 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슈만, 브람스, 라벨, 프랑크의 곡을 연주한다. 이들의 곡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그는 설레는 표정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슈만이나 브람스 곡은 젊은 영혼과 성숙한 영혼, 모든 것이 다 들어간 곡입니다. 한 인간의 인간적인 면이 다 들어가있어요. 반면 라벨의 '거울'은 자연 그 자체의 사운드라고 봐요. 라벨을 칠 때는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내가 새가 되고 불이 되고 파도가 되고, 자연과 하나되는 것을 경험해요." 이번 래퍼토리는 그가 아껴둔 것이다. 20대의 숙제이자 의무였던 베토벤을 끝내면 내가 좋아하는 곡을 하리라 벼르고 있었는데 그걸 실천하는 연주회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곡들만 뽑아서 프로그램을 짰는데 그는 이것을 즐거운 '오락 프로그램'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신나는 마음으로 공연일을 기다리고 있다.끝으로 '클래식 대중화'는 그가 실현 중인 꿈이다. 그는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면 엘리베이터나 레스토랑에서 들려오는 음악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런 인식을 없애고 클래식을 대중화하고 싶다"고 했다. 현재 외국에서 그는 학교를 찾아가 클래식을 접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친근한 어법으로 음악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들에게 한국 지도도 보여주고 연주를 들려준다. 그는 평소 음악회 무대에선 작곡가만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검은 드레스만 입어왔지만, 학생들을 만나러 갈땐 생활한복을 입는다.(이날 인터뷰에도 한복을 입고 왔다) 지금 그는 베토벤처럼 유일무이한 '임현정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이렇게 볼썽사나운 기자라니... 내공이 대단하십니다

[오마이픽업] <더 킹>의 비리 기자, 17년 차 배우 김민재가 꿈꾸는 진짜 자유

영화 <더 킹>에서 정우성, 배성우 등이 맡은 검사들이 권력의 춤사위를 추며 각종 비위를 저지르는 장면은 충분히 공분을 살 만하다. 여기에 빌붙는 수많은 사람들. 정치인, 재력가 등이 있는데 그 중 언론인의 모습이 유독 얄밉게 들어온다. 권언유착, 즉 진실을 전해야 할 언론이 권력과 손잡았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각종 더러운 일들을 영화가 포착했다.배우 김민재가 맡은 <주안일보>의 백 기자가 바로 그 부정한 언론인의 표상이다. 검사들이 제공하는 각종 향응에 기대고, 이들이 적당히 흘리는 정보를 확대, 과장, 왜곡한다. 심지어 진실을 전하려는 다른 언론인들에 맞서 사실을 호도하기까지 한다. 추악한 언론인의 모습을 17년 차 내공의 배우가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그 어떤 왜곡과 과장이 없이.작품 위해 뛰는 수용성 배우 많이 익숙한 얼굴이다. 영화광이라면 김민재의 특별한 표정을 기억할 수도 있을 것이다. 50편 가까이 되는 필모그래피에서 그는 대부분 형사였으며, 때론 기자나 국정원 직원이었거나, 깡패이기도 했다. <부당거래>에서 "경찰대 출신들이 다 해 쳐드세요!"라고 일갈하는 정의감 넘치는 형사였던 그는 <무뢰한>에선 밑바닥 인생의 한 여성을 따라다니며 지독하게 괴롭히는 사내로 관객의 눈도장을 받았다. 영화에서 입체적으로 등장하든 기능적으로 쓰이든 그는 자신의 몸을 기꺼이 구부렸고, 작품에 맞췄다. 매년 평균 세 편씩 십 수 년 간 꾸준히 출연할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더 킹>을 보자. 이번엔 철저히 기능적으로 쓰였다. 물론 "주변의 기자 분들을 만나거나 자료를 찾기도 했"지만 "이야기가 핵심이니 감독(한재림)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부합하려고 했다"고 그가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한국 언론 환경에 대해 전혀 생각 없이 역할에 임했다고 오해하지는 말자. "뉴스는 자주, 특히 요즘 들어 더 자주 본다"며 "권력과 힘에 대해 소신을 밝히기에 한국은 좋은 환경이 아니지만 희망이 보인다. 이러는 저도 부끄러운 쪽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나름의 자기 성찰과 현실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음을 먼저 전한다."<특종: 량첸 살인기> 때도 기자 역이었는데 한재림 감독님이 제작한 작품이잖나. 그때부터 절 보셨던 거 같다. 현장에서 감독이 제안하는 아이디어를 즉각 수용하는 편이다. 선택은 감독의 몫이니까, 작품의 목표가 있으면 최대한 부합하려 하는 거지. <더 킹>에서도 언론인의 모습 자체보단 주인공에게 이 인물이 어떤 역할을 하는 지에 중점을 뒀다. 방해꾼인지, 협력자인지.사실 <더 킹>을 두고 감독님과 이야기할 땐 제가 아이디어를 낸 부분도 있었다. 근데 촬영을 빨리 들어가야 했기에 시간이 부족했지. 편집된 부분이 좀 있긴 하다. 백 기자가 좌천돼서 연예부로 활동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굳이 전체 영화에선 넣을 필요는 없었던 거 같다. 아쉽진 않다. 영화의 이야기가 잘 전달되는 게 중요하니까. 감독님이 갖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집요함인데 작품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모습은 후배 입장에선 배움이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재림 감독님과 충분한 시간을 갖고 문제를 집요하게 파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웃음)."김민재는 <더 킹>을 두고 "힘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로 정의했다. "정치에 국한한 게 아닌 가족이든 조직이든 힘이란 게 대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며 "눈에 보이는 폭력이든 보이지 않는 폭력이든 사회와 개인을 파괴하는 부류가 있는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진짜를 찾는 과정 대구 지역 극단에서 이희준과 함께 활동하다 서울로 올라왔다. 2000년부터 각종 연극 무대를 경험했고, 8수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출과에 입학했다. 동기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그는 학과 생활 보단 연기를 더욱 파고 또 팠다. 틈틈이 시나리오도 써왔다. 이 모든 게 "내가 왜 연기하고 있지?"라는 자문에서 출발했다. 그렇다. 남이 묻기 전에 그는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다. 왜 지금까지 연기하고 있는지 말이다."배우를 할 수밖에 없는 가정환경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배와 폭력에 대한 물음이 있었다. 내가 유별났다고 해야 할까. 시스템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자유와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이 강했다. 세상에 아름다움이라는 게 있을까? 진짜 자유가 있을까? 나름 정의를 내린 건데 내 몸이 뭔가 표현하고 의미를 만들어 내는 걸 좋아하더라. 스무 살을 지나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내 육체가 연기를 좋아한다는 걸 느꼈다. 그게 내 동력이다. 힘들지만 멈추지 않게 하는 것들이다. 그맘때 서울에 올라왔다. 연기를 잘하고 싶어서 서울 시내 유명 연극영화과는 다 돌아다니며 도강도 했고, 잘한다는 사람들 공연은 찾아보고 또 직접 만나서 친해지려 했다. 여러 사람을 많이 불편하게 했던 것 같다. 돈이 없으니 뭔가 부탁을 해야 하잖나. 사람들에게 상처도 많이 받고, 그렇게 20대 전부를 보냈다."타인이 보기엔 좀 유별나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적어도 김민재는 당시 연기 하나는 기막히게 한다는 평을 들으며 무대를 종횡무진 했다.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우연이었다. "<오아시스>를 보고 이창동 감독님이 궁금했고, 경험하고 싶었다"는 이유로 그는 무작정 <밀양> 오디션 장을 찾았다. "나만을 위해 살던 때였다. 진실과 진짜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근데 그 영화에서 주인공을 불편하게 하는 가정, 그 여자를 거리로 내모는 환경을 보면서 내가 그런 부족한 가족의 모습 같더라. 처음엔 그저 연기 잘하는 선배가 나온대서 본 건데 사실 그것도 내 욕심이지 않나. 날 다르게 생각하게 한 작품이었다. 그런 작품을 만든 감독님이 너무 궁금했다. 인터뷰에서 주전자를 들고 현장을 다녀도 좋다고 말했다. 사실 오디션엔 떨어졌었다. 20대가 할 역할도 없었는데 운이 좋게 한 달 뒤 연락이 와서 감사한 마음에 내려갔지. 그 뒤로 감독님이 몇 번을 더 불러주셨다. 인터뷰를 좋게 봐주신 거 같다."소외된 인물에 대한 애정 그때 인연 이후 <밀양> <부당거래> <시> <특수본> <베테랑> <뷰티 인사이드> 등의 작품에 출연하게 됐다. 비슷한 역할을 수 없이 하면서도 그의 이미지 소모가 다른 배우들 보다 적은 이유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솔직하며 작품의 의도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기 때문 아닐까. 8편의 영화에서 형사로 나온 그다. <부당거래> 때 형사와 <연가시> 때 형사가 또 다르다. 분량이 적어서일까. 그렇다고 인상에 남지 않는 것도 아니다. 앞서 언급한 한 마디의 대사("경찰대 출신들이 다 해 쳐드세요!")가 관객들 사이에서 지금까지 회자된다는 건 그만큼 강렬했다는 의미기도 하다. "관객은 결국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제시한 상황과 메시지를 깨닫는다. 내 역할은 그걸 잘 경험하시게끔 하는 거다. 종종 작품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배우들이 있다. 저 역시 그런 욕망이 있지만 나름 검열하는 게 있다. 하나의 배에서 함께 타고 갈 수 있게 하자는 거다. 같은 형사지만 영화 제목도, 서로의 욕망도 다르니까 그걸 표현해야지. 근데 이미지가 소비되는 것 같을 때 지치긴 하다. 뭔가 재탕하는 느낌이 들면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작품을 마치고 그는 최근 막노동 일을 잠시 했다. 텃밭에 농사도 지었다. "노동에 대해 좋은 마음을 생각할 수 있을까 해서 젊었을 때 했던 막노동을 해봤는데 내가 너무 안일했다"며 그가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하길 잘했다는 생각은 안 들고, 다만 가끔씩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가 던진 말은 "삶에 대해 뭔가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그가 일상에서 하는 모든 행위가 좋은 연기와 관련됐다고 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진실함을 찾는 행위임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김민재는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애써 마음을 포장하지도 않지만 또 허투루 능력 밖의 것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포털 사이트에 치면 나오는 숱한 동명이인의 유명인들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외형은 참 평범하다. 다만 그의 길은 특별했다.인터뷰 말미 그가 내놓은 궁극적인 연기 목표는 다음과 같았다."소외된 인물을 연기하고 싶다. 시스템이나 여러 부분에서 소외된 사람들. 그거 있잖나. 존재하는데 존재하고 있지 않은 삶. 뭔가 철학적인 얘기가 현실적으로 그런 분들이 계신다. 이를 테면 탈영병? 뭔가 조직 내에서 불합리에 맞서 질문하고 싸우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싶다. 특정, 특별한 연기를 하고픈 게 아니라, 그런 이면을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다. 좋은 연기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배우들이 모이는 건 뭔가 알기 위해서 아닐까. 먹고 살기 위한 행동이 나쁜 건 아니지만 (거기에 빠지면) 시야가 좁아지기 쉽다. 시야를 바꿔서 알아가려 노력해야지.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서로 알려고 노력하면 힘든 사람들은 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작가든, 감독이든, 배우든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작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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