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빈, 찍으면 그냥 화보 영화 <공조>에서 북한 형사 림철령 역의 배우 현빈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공조>에서 현빈은 북한 형사 림철령 역을 맡았다. 대사 수가 극히 적다. <역린> 속 정조였던 그의 모습과 비교해서 보길 추천한다.ⓒ 이정민


배우로서 대중에게 크게 사랑받은 대표작이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빈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시크릿 가든> 등에서 대중적 인기를, <그들이 사는 세상> <아일랜드> 영화 <만추> 등을 통해 마니아적 깊이를 담보했다. 이처럼 고른 영역에서 자신을 오롯이 투신했고 인정받아온 스타가 또 있을까. 그런데 1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현빈은 "인생작은 아직 못 만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독 이번 만남에서 그는 기자에게 되묻는 일이 잦았다. 드라마와 달리 영화에서 큰 재미를 못 봤다는 세간의 평에 "흥행의 기준이 뭘까요?"라 물었고, 본의 아니게 박근혜 대통령의 '길라임' 가명 사건에 오르내리는 것엔 "제 삶은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런 사건에 언급된다고) 문제가 되나요?"라 짚었다. 단, 따지는 게 아닌 자신의 궁금증에서였다. 아무래도 전 영화 <역린> 이후 3년 만에 신작 <공조>로 만났기에 층위가 넓은 질문이 오고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침착했으며, 성실하게 답했다.

줄어든 대사, 깊어진 감정 표현

<공조>에서 현빈은 북한형사로 분했다. 위조지폐 동판을 탈취해 도주한 차기성(김주혁 분)을 잡기 위해 남한형사(유해진 분)와 공조 수사를 해야 하는 인물이다. 어딘지 모르게 허술하지만 인간미 넘치는 남한형사와 모든 면에서 뛰어나나 차기성에게 아내를 잃은 슬픔을 간직한 북한형사가 서로 마음의 문을 여는 과정이 영화의 핵심이다. 다분히 장르적 특징이 분명하면서 동시에 오락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영화 <공조>의 한 장면. 두 남자의 연기는 훌륭하다. 하지만 일관되지 못한 연출 탓에 이들의 연기가 제빛을 발하지 못한다.

영화 <공조>의 한 장면. 북한형사 철령(현빈)과 태식(유해진)은 서로에게 속마음을 숨긴 채 상대의 임무를 정확히 알아내고자 한다. 그러다 부지불식간 서로에게 인간적 유대를 느끼며 진심으로 대하기 시작한다.ⓒ CJ 엔터테인먼트


- 남북 대치를 소재로 한 여러 영화들이 있었던 만큼 <공조>는 준비 과정이 5년에 이를 정도로 신중하게 진행됐다. 시나리오도 도중에 많이 바뀐 걸로 안다. 그 과정을 좀 알고 있는지.
"제안 받을 당시엔 잘 몰랐다. 그저 소재가 마음에 들었고, 시나리오가 좋아서 함께 하게 됐다. 남북 최초의 공조수사를 소재로 했다는 점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부분으로 부딪히는 게 영화의 재미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간 했던 캐릭터와도 다른 면이 있었고."

- 전작 <역린>과는 또 다른 고뇌의 표정이 보여서 좋았다. 아무래도 대사가 극히 적어서 감정 표현이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맞다! 대사로 감정 표현하는 게 사실 큰데 철령은 말보단 행동으로 보이는 인물이다. 눈빛이나 행동, 단답형의 대답들이 내겐 중요했다. 72시간 동안 남한형사 진태랑 함께 임무수행을 하는데 인간적으로 유대를 느끼고 소통하는 걸 표현해내기 힘들었다. 현장에서 감독님과 많은 얘길 했고, 시나리오와 현장 분위기에 집중했다. 톤과 뉘앙스 등 평소에 우리가 놓치기 쉬운 사소한 것일지라도 철령을 보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 사실 보이는 이미지는 오히려 남한형사에 가깝다. 유해진씨가 북한형사 같고. 아무래도 이런 전복효과를 노리고 애초에 기획한 것 같은데 마음에 드는지.
"(웃음) 마음에 든다. (이 영화의 제작자인) 윤제균 감독님이 다르게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한 인터뷰를 어디서 봤다. 나 역시 그 부분이 좋았다. 팬들을 위해 택한 게 <시크릿 가든>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달랐지. 늘 충돌한다. 관객이 내게 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맞을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걸 택하는 게 맞는지 말이다. 늘 스스로 질문하는 부분이다. 이젠 다양한 작품을 해서 관객 분들 마음에 들든 아니든 선택하게 해드리자는 생각이다. 누가 원하고 원하지 않고는 중요치 않은 거 같다. (배우로서) 선택의 기회를 관객께 드리고 그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거지."

현빈의 분기점


- 그 변화 계기가 있나. 20대와 30대의 작품 선택이 달라졌다는 의미인지.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20대엔 뭔가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들이 사는 세상> <아일랜드> <만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등이 거기에 해당한다. 작품을 보고 여운이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군 제대 후 택한 <역린>도 그런 맥락이었던 거 같다. 지금은 또 재밌게 볼 수 있는 오락 영화가 보이나보다. <공조>와 지금 촬영 중인 <꾼>이란 영화도 그렇고."

- <그사세> 같은 작품이 두고두고 회자된다. 그런 작품을 할 생각이 있는지. 군 제대 후 대중의 기대만큼 결과가 좋지 않다는 평도 있다. 
"방금 전 인터뷰에서 똑같은 말을 들었다(웃음). 좋아하는 작품, 감독님, 작가님들이다. 개인적으론 <그사세>가 조금 더 늦게 나왔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노희경 선생님이 좀 빠르시다(웃음). 가장 현실적이었던 작품 같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절 군대를 기점으로 나누시더라. 20대에 군대 갔어도 그러셨을까. 아무래도 <시크릿 가든> 이슈가 있기도 했고, 남다른 곳으로 군대(해병대)를 가기도 해서 사람들의 기대치를 올렸나 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기나 흥행은) 제 능력밖인 거 같다. 책임회피가 아니라 신인이든 지금이든 아니 오히려 지금 더 작품을 열심히 준비하는 것 같다.

흥행의 기준이 뭐라 생각하시나? 손익분기점? <역린>도 손익분기점을 넘었다. 기준이 서로 다른 거지. 물론 관객 분들이 판단한 결과겠지만 <역린>에 대한 아쉬움이 있긴 하다. 그때 워낙 큰일(세월호 참사)이 발생하지 않았나. 극장 자체에 관객이 없을 시기였다. 그때 개봉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분들이 영화에 접근하셨을 거다. 나로선 카메라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 선택에 있어 길게 고민하는 편인가. <역린>은 개혁군주 정조를 다뤘다는 점에서 현빈씨와  연결지어 생각해봤다. 그런 지도자 상을 고민한 건 아닌지.
"선택까진 많이 고민한다. 안 해본 걸 찾고,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있으면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생각한다. 잘 할 수 없는데 달려드는 건 아니라고 본다. 신중하게 오래 고민하다가 일단 결정하면 빨리 몰입한다. <역린>은 한 중화권 호텔에서 책을 읽었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과 상황들이 재밌었다. 정조 자체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분 아닌가. 그에 대한 여러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임금 정조가 아닌 인간 이산을 보이고픈 마음이 컸다. 멋있는 분이다. 개혁군주로서도 그렇고, 그 분 주변에 있는 인물들도 그렇고."

길라임 논란 그리고 미래에 대해

현빈, 찍으면 그냥 화보 영화 <공조>에서 북한 형사 림철령 역의 배우 현빈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금껏 출연한 작품 자체가 그에겐 훌륭한 교재였으며 스승이었다.ⓒ 이정민


- 많이들 물어봤겠지만 배우 현빈에게 <시크릿 가든>은 어떤 의미인가. 아무래도 인생작이 아닐까. 20대에 그런 인기의 정점을 찍어서 지금 기분이 좀 남다를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작은 아직 없다. 계속 찾아가고 있다. <시크릿 가든>이 많은 분들께 사랑받았다. 하지만 그 작품이 있기까지 여러 마니아 층 드라마가 있었다. <그 사세> <만추> <나는 행복합니다>도 있고…. 인기는, 음. 오히려 더 여유로워졌다. 뭔가 내 인생에 (인기가) 불쑥 들어온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 이상으로 뭔가가 왔지.

인기는 언젠가 없어질 선물처럼 받아들인다. 이미 겪었기에 알고 있다. 언젠가 그건 없어진다. 작품에 대한 여운도 점점 빨리 없어지지 않나. '<역린>이 저조했고, <하이드 지킬, 나>도 저조했으니 <공조>가 현빈의 분수령 아니냐' 이런 말이 나오는데 전 아무렇지 않다. 성공하면 좋지만 어쨌든 난 다음 작품을 해나갈 것이다. 지금껏 배운 걸 바탕으로 또 다른 캐릭터를 만들어 갈 건데 인기야 뭐 어때? 하는 생각은 있다."

- 다른 매체처럼 따로 꺼내 쓰지 않겠다는 전제로 물어본다. 안 물을 순 없을 거 같다. <시크릿 가든> '길라임 사건'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현빈씨를 매우 애정하고 있는 거 같다. 그 애정의 깊이를 알고 있었는지.
"어유~! 그걸 제가 어떻게 아나(웃음). 그 이야기가 막 나왔을 당시 뉴스 보도는 못 봤다. 촬영장에 있었으니까. 관련해서 제게도 이런저런 문자들이 왔다. 그래서 나중에 뭔 일인가 찾아봤고, 하지원씨에게도 (안부) 문자를 보냈지. 제겐 하나의 해프닝이다."

- 2015년 현충일 행사 때도 부르지 않았나. 당시 추념식에서 시낭송을 했던 걸로 안다. 아무래도 작품이 아닌 정치인과 함께 언급되는 게 부담스러울 법하다.
"(웃음) 뭐, 그 분이 절 부른 건 모르겠고 보훈처에서 부른 거였다. 최근 보니 <시크릿 가든>을 다시 방송하더라. 못 본 분들이 다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오르내리는 것이 부담? 제가 느끼는 것과 대중 분들이 (뉴스를) 접했을 때의 온도차가 좀 있는 거 같다. 그 상황이 심각한 건가? 물론 시국은 심각하다. 제가 묻는 건 그렇게 엮여서 언급되는 상황에 제게 심각한 문제가 되냐는 거다. 그건 아닐 것이다. 저도 별 신경 안 쓴다. 크게 생각한 적도 없고. 그래서 해프닝이라고 표현한 거다. 전 변한 게 없으니까."

- 관심이 집중된 삶, 연예인으로 살면서 쌓이는 심리적 압박을 어떻게 해소할까 궁금하다.
"가급적 스트레스를 많이 안 받으려 하고 자극을 태연하게 넘기려 하는 것도 있다. 운동하면서 가장 많이 푼다. 자연스럽게 혹은 좀 노력해서 넘기는 거다. 지금까진 잘 흘러 넘어갔다. 다만 스스로 조이는 건 있다. <공조>라는 작품 자체도 매우 많은 분들과 함께 하지 않았나. 일단 그 분들을 1차적으로 실망시키지 않고 싶었다. 그래서 옥죄며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주변에선 좀 놓으라고 하는데 성격 상 잘 안 된다. 자기합리화일 수도 있는데 그분들께 미안하고 싶지 않아서다."

현빈, 찍으면 그냥 화보 영화 <공조>에서 북한 형사 림철령 역의 배우 현빈이 12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반듯함 속에 담긴 깊이. 현빈이 앞으로 보일 모습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새로움에 대한 몸부림의 결과일 것이다.ⓒ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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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짓밟히고 모멸감..." 배우 김하늘을 변하게 한 것들

[inter:view] 데뷔 21년 차 배우의 도전, <여교사> ... 낯설기에 새롭다

데뷔 21년. 올해 나이 마흔. 어쩐지 김하늘과는 어울리지 않는 숫자들이다. '멜로퀸'이라 불리던 그녀는 결혼과 40대 진입이라는, 배우 김하늘과 개인 김하늘 모두에게 중요한 변화를 앞두고 영화 <여교사>를 택했다.영화 <여교사>는 개봉 이후 평단과 대중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소재가 주는 1차 장벽과 파격적인 결말이 주는 당혹스러움에 혹평을 쏟아내고 있는 많은 대중과 그 안에 담긴 촘촘한 감정묘사와 대립구도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평론가들. 하지만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엇갈리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김하늘의 연기다. 영화 <여교사>에서 일생일대의 변신을 감행한 배우 김하늘을, <여교사> 개봉일인 지난 4일 만났다. 너무 낯선 스크린 속 김하늘 <여교사> 속 효주는 배우 김하늘이 21년 만에 처음 맡는 우울하고, 어둡고, 예쁘지 않은 역할이다. 처음 대본을 읽으며 효주가 당하는 모멸감과 열등감이 잔상처럼 오래도록 남아 "못할 것 같다"고 난색을 보였을 정도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대본을 닫고 나서도 오래도록 효주의 잔상이 남아있었단다."캐릭터 자체는 외면하고 싶은 캐릭터였죠. 효주가 처한 모든 상황 자체가, 만약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면 외면하고 싶은 느낌?. 감정적으로 너무 불편했어요."그럼에도 김하늘이 효주를 택한 이유는, 효주를 연기하며 효주를 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간 김하늘은 효주를 외면하고 싶었지만, 배우 김하늘에게 효주는 "탐나는 캐릭터"였다. 그렇게 <여교사>에 도전했다.영화 속 효주는 지금까지 배우 김하늘이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180도 다른 캐릭터다. 분명 너무나도 익숙한 김하늘이지만, 효주를 연기하는 김하늘은 낯설었다. 김하늘 스스로도 "내게 이런 얼굴이 있었나, 내게 이런 톤이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가장 사랑 받던 시기라 견딜 수 있었다" 늘 극 속에서 "사랑해" 고백만 받던 '멜로퀸' 김하늘은, <여교사>에서 "악마 같다", "설마 정말 사랑한 건 아니지?"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20년 가까이 사랑받은 역할들을 했더라고요. 사랑을 주고받는 역할만 하다가, 자존감이 짓밟히고 모멸감이 드는 대사를 들으니 연기인 걸 알면서도 느낌이 안 좋았죠."집중해서 효주를 연기하면 할수록, 효주의 비참함이 고스란히 김하늘에게 전달됐다. 힘든 캐릭터를 만났을 때, 많은 배우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여교사>를 연기하던 당시 김하늘은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던 시기였다. 김하늘은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며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연기할 때 컨디션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그래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죠. 만약 당시 컨디션이 나빴다거나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였다면, <여교사>를 선택하기도 힘들었을 거고, 연기하면서도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촬영이 끝나면 저는 사랑받고, 너무 행복한 사람이잖아요. 전 효주가 아니니까. 그래서 더 감정적으로 효주에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쉽지 않은 캐릭터 "나는 이해해" <여교사>는 어려운 영화다. 배우와 감독이 의도한 바를 관객에게 설득시키기 어려운 소재, 이야기, 결말. 그런 점에서 최근 김하늘이 출연했던 KBS 2TV <공항 가는 길> 속 수아도 비슷한 면이 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해받기 어려운 사랑이지만, 김하늘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연기했다고. 남이었다면 외면했을 인물들의 감정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 "내가 되어" 연기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저는 제가 연기하는 역할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감히 사랑해요. 제가 그렇게 연기하면, 보시는 분들도 제 감정과 비슷하게 따라와 주시더라고요. 물론 제가 느끼는 공감이 다는 아니죠. 하지만 겁내기보다, 제 선택에 대한 확신, 그에 따른 관객들의 반응을 믿는 것 같아요."김하늘이 곧 효주가 되다 보니, 감독이 설정한 효주와 김하늘의 효주가 달라지기도 했다. 김하늘은 "남자가 쓴 효주와 내가 본 효주의 결이 달랐다"고 표현했다. 김하늘의 효주는, 김태용 감독의 효주보다 더 안타까운, 짠하고 안쓰러운 느낌이었다. 김하늘이 시나리오를 읽으며 "효주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던 마음의 연장선이었다.데뷔 21년 차... 경력만큼이나 느는 건 어느덧 김하늘은 현장 최고참 연기자가 됐다. 함께 연기한 이원근, 유인영은 물론, 김태용 감독도 모두 김하늘보다 어렸다. 김하늘은 "내 연기하느라 바빠 선배로서 챙겨주지 못했다"고 미안해했지만, 앞선 인터뷰에서 이원근은 "첫 영화라 얼어있을 때 먼저 다가와 주셔서 감사했다"고 말한 바 있다. "너무 아름다우셔서 모든 동작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였다더라"는 이원근의 말을 전하자, 김하늘은 "그런 이야기는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며 빙긋 웃었다.데뷔 21년 차를 맞이한 김하늘에게, 처음 영화 현장을 경험하는 후배는 어떻게 보였을까? "평가라기보다, 내가 많이 선배니까 조금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신인일 때, 감독님들이 '다 잘하려고 하지 마라. 커갈 때는 몇 개만 잘해도 잘하는 거다'라고 하셨어요. 뒤돌아서서 못한 것만 생각하지 말고, 잘하는 거만 생각하라고요. 그럼 점점 잘하는 게 많아지고, 만족스러운 감정도 많아질 거라고. 저도 지금 데뷔작 <바이준> 보면 다 싫어요. (웃음) 근데 한 작품, 한 작품 지나다 보니 스스로 '괜찮은데?' 싶은 장면이 점점 드러나더라고요. 그런 것처럼, 원근이도 부족하다고 느껴지고 마음에 안 드는 신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분명 잘한 것도 있거든요. 그것만으로도 그 친구는 박수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유인영은 효주와 혜영의 미묘한 갈등 감정을 위해, 부러 김하늘과 어색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선배로서, 그런 후배의 행동이 서운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 않으냐고 묻자 "신인 시절, 선배들에게 잘 하려 해도 원치 않게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걸 경험했다. 그래서 선배가 되면 (후배들의 행동을) 오해하지 않으려고 늘 생각했다"는 답이 돌아왔다."제일 중요한 건, 개인적인 관계가 아니라 이 캐릭터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물론 후배로서 그러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할 때는 이야기하겠죠. 그게 아닌 이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인영씨도 선배 챙기려고 노력했던 부분이 있어요.<블라인드> <공항 가는 길> 모두 제가 제일 선배급이었어요. 사실 후배일 땐 편했어요. 어려우면 물어보고, 기대기도 하고…. 저는 두가지를 잘 못 하는 데다, 특히 이번 캐릭터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후배들에게 신경 쓰지 못했어요. 후배들이 나를 어렵지 않게 대했으면 좋겠는데, 최소한의 노력만 한 것 같아요. 그 이상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도 분명 있었을 텐데 미안하죠."결혼, 마흔, 데뷔 20년 결혼 후 김하늘의 작품을 설명할 땐 '결혼 후 첫 복귀작', '결혼 후 파격 변신'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김하늘은 "변한 건 없지만,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결혼으로 변한 것인지, 나이가 들며 변한 것인지 모르지만, 2016년을 기점으로 배우 김하늘의 필모는 달라지고 있다.여전히 로코를 좋아하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연기적 욕심이 많아졌다"는 그녀. 언제부터인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장르와 이미지에 도전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경력과 연륜이 쌓여 도전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려운 것이 또 도전이다."어릴 땐 실수해도 '어리니까'라는 핑계가 있잖아요. 어쩌면 더 소극적일 수도 있는 나이와 경력이죠. 하지만 (지금까지) 사랑을 많이 받았잖아요. 흥행도 물론 중요하지만, 연기적으로 저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공항 가는 길>도, <여교사>도, 용기가 필요했던 작품이지만, 제 용기에 박수 쳐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내 선택이 나쁘지 않았구나, 더 용기 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 더 펼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무기력하고 초라한 효주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에서 늘 화장기 없는 얼굴에 무채색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이러나저러나 여전히 아름다운 김하늘이지만, 더는 예뻐 보이는 데 연연하지 않는다. "어떤 장면은 너무 못생기게 나와 멜로였다면 감독님한테 항의했을 것"이라면서도, 이내 "근데 그 모습이 또 너무 효주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며 웃었다.데뷔 21년 차 배우 김하늘에게는 아직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 더 많다. 도전을 즐기기 시작한 김하늘이니만큼, <여교사> 속 효주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누군가는 흐르는 시간을 마냥 야속해 하겠지만,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은 김하늘 본인도 아직 다 모를, 새로운 김하늘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것이다. 앞으로 김하늘이 보여줄 낯선 얼굴, 낯선 표정, 낯선 연기는 또 어떤 모습일까?

"배우 그만둘 생각까지..."했던 사람, 그를 다시 붙잡은 건?

[inter:view]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앨빈, 배우 홍우진

토마스 위버의 친구 앨빈 켈비는 마을 책방을 지킨다. 이 순수하고 감수성 풍부한 남자는, 어렸을 적 학교 핼러윈 파티에서 자신의 분장을 유일하게 알아봐 주고 손을 내밀었던 토마스를 잊을 수 없다. 둘은 절친한 친구가 됐고,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이였다. 아니, 앨빈은 그렇다고 생각했다.앨빈은 토마스가 자신과의 추억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쓰는 게 전혀 싫지 않았다. 토마스에게는 기술이 있으니까. 토마스가 대학교에 붙고, 문학을 공부하고, 유명한 작가가 된 걸 앨빈은 자랑스러워 했다. 책방에서 토마스의 생일 선물로 <톰 소여의 모험>을 선물해줬을 때부터 앨빈은 토마스가 작가가 되기를 바랐으니까. 비록 토마스가 자신의 편지에 답장하지 않아도, 수상 소감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고향에 놀러 오지 않아도, 도시로 올라오라고 제안했다가 그걸 일방적으로 취소해도 화내지 않았다.하지만, 앨빈 아버지의 장례식 날은 너무 끔찍했다. 앨빈은 아버지의 송덕문을 자신의 베스트프렌드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토마스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토마스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쓰는 대신, 다른 시인의 시를 낭독하는 것으로 송덕문을 대신하려 했다. 그 시가 영미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시라고 하더라도, 그건 아버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토마스에게 부탁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앨빈은 토마스 대신, 직접 아버지의 이야기를 조문객에게 전한다. 그리고 헤어진다.그것이 토마스가 앨빈을 본 마지막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앨빈은 얼어붙은 강 위의 다리에서 떨어져 사망하고 만다. 지난 2016년 12월 6일 개막하여 오는 2월 5일까지 관객을 맞는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아래 <솜>)는 앨빈의 송덕문을 쓰기 위해 끙끙거리는 토마스의 머릿속으로 앨빈이 찾아와,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처럼 순수한 앨빈을 연기하는 세 배우 중 한 명이 바로 배우 홍우진이다. 지난 5일, 서울 백암아트홀 근처 카페에서 배우 홍우진이 연기로서 써나가고 싶은,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풀어 놓았다."나에게 정말 감사한 작품" 지난 2016년 9월 3일, 경기도 가평군 자라섬에서 열린 제1회 자라섬뮤지컬페스티벌의 소극장 무대를 기억한다. 당시 배우 홍우진은 "당분간 무대에 오르지 않을 것"이라며,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장르의 도전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정말로 연극 <사이레니아> 이후 무대에서 배우 홍우진을 볼 수가 없었다. 잠시간 무대에는 오르지 않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이번 시즌 <솜>의 앨빈으로 다시 한번 합류했다. 오디컴퍼니의 부름에 즉각 응답한 이유가 뭘까."제가 노래를 엄청 잘하는 뮤지컬 배우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지난번(2015~2016) <솜>에 캐스팅되고, 되게 연습 많이 했어요. 노래 레슨도 받고, 진짜 많이 노력했는데도 아쉬움이 크게 남더라고요. 그때 워낙 잘하려고 열심히 했던 게 있어서 작품에 애착이 많았는데, 애착만큼 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컸죠. 그러던 차에 이번에 다시 제안이 왔어요. 그때 노래를 잘하지 못했던 아쉬움을 이번에 좀 씻으려고 했던 게….아니 그런데 그런 것보다는, 이 작품 자체를 워낙 좋아해서요. (웃음) 사실 작품이 진짜 재밌잖아요? 하는 배우에게도 엄청 재미있는 작품이거든요. 거기에 저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당연히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솜>은 마니아를 양산할 만큼 따뜻하고 좋은 작품이다. 보기에 분명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관객의 입장이 아니라 배우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는 게 어떤 뜻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했다."<솜>이 정말 감사한 작품인 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우울증이 생겼었어요. 제가 성격이 엄청 밝거든요. 아버지 장례식장에 와 준 친구들한테도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냐, 왜 이렇게 우냐'고, '나 괜찮다'면서 밝게 다 챙기고 했었는데…. 어느 날 데이트를 하는데 오전 11시에 만나서 저 공연하러 가기 전까지 6시간을 여자친구한테 계속 화만 냈어요. 다행히 여자친구가 다 받아줬는데, 그러고 공연 하러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내가 왜 이러지?'하고 고민했어요. 제 감정이 주체가 안 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우울증이었죠.그게 2014년 10월이었으니까, 그 후로 1년 가까이 저도 너무 힘들었고, 제가 주변 사람들도 엄청 힘들게 했어요. 굉장히 공격적이었거든요. 그러던 와중에 2015년 말 <솜>에 처음 캐스팅되고 연습할 때, 돌아가신 아버지 송덕문 읽는 장면이 너무 힘들었어요. 자꾸 아버지 생각나서 많이 울고 그랬는데…. 사람이 또 반복을 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괜찮아졌어요. 외면하려고 했던 그 감정과 정면으로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게 생기더라고요. <솜>을 통해서 제가 회복됐어요. 이제는 진짜 괜찮아요. 송덕문 장면에서 아버지 생각해도 엄청 울음이 나지도 않고…. 그래서 솜이 저에게 더 고마운 작품이었죠."'힐링극'으로 꼽히는 작품, 겨울이 되면 꼭 생각나는 작품 중 하나인 <솜>. 관객에게 눈물과 치유를 선사했던 이 작품이, 하는 배우에게는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나 보다.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고, 아버지 때문에 울고, 그 아버지의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 작품 그리고 노래.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장면 역시…."지금도 'I Didn't see Alvin'을 부르는 그 장면을 제일 좋아해요. 개인적으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를 그 장면이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많이들 그러고 살잖아요. 하루하루 매일 밤 잠들기 전에 그런 생각을 하죠. '아 왜 그랬을까'하고요. 그 장면에서 토마스는 깨닫고, 앨빈은 아버지 송덕문을 낭독하고…. 또 그 장면 멜로디가 진짜 아름답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멜로디가 가슴에 크게 와 닿아서 후회와 안타까움을 만져줘요. 그 장면은 누가 해도, 어떤 톰이 하더라도 상관없이 참 마음에 크게 와 닿아요. 제가 느끼는 감정과 토마스가 느끼는 감정이 관객들에게 명확히 전달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해요."연기하는 홍우진, 노래하는 홍우진 배우 홍우진의 연기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은 편이다. <공동경비구역 JSA> 오경필 상등병이나 <로기수>의 로기진처럼 강하고 억척스러운 캐릭터도 발군이지만, <유럽블로그>의 석호나 <솜> 속 앨빈처럼 천진난만한 인물도 잘 연기한다. 특히나 홍우진의 앨빈은 다른 앨빈보다 조금 더 어리고, 순박한 느낌이 강하게 드러난다. 관객의 취향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홍우진의 앨빈을 최고의 앨빈으로 꼽는 이가 나오는 것도 홍우진만의 앨빈 소화법이 있기 때문이다. 연기하면서 특별히 만들어둔 게 있는 걸까."앨빈을 연기할 때 굳이 무엇을 만들지는 않았어요. 제가 머리가 좋지가 않아서…. (웃음) 억지로 뭘 만들려고 해봤자 잘 안 돼요. 대본 봤을 때 느껴지는, '이렇게 하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들을 연출과 절충점을 찾아서 만들어가죠. 이번엔 이렇게 가 봐야겠다 하고 노선을 의도적으로 생각하지도 못해요. 대신 연습해가면서 자연스럽게 제 안에서 나오는 것들이 있거든요. 새로운 걸 억지로 만들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끄집어내는 편이에요.최근에 하나 깨달은 게, 공연할 때 내가 보이든 보이지 않든 모든 장면에서 굉장히 최선을 다해서 연기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그만큼 쏟아내지 않아도 되는 일에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비하니까, 정작 쏟아낼 때 더 쏟아내지 못하는 거예요. 완급조절을 하면서 공연 끝까지 체력 안배를 제대로 잘해야 하는데, 그걸 초반 한두 달에 다 써 버리니 막 죽을 것 같거든요. 이미 체력은 다 소진했는데 남은 기간은 있고…. 그러니까 공연 후반부 가면 연기로 아쉬운 게 나오고…. 그런 부분에서 좀 미련했던 것 같아요. 하필 <솜>은 또 암전도 없고, 퇴장도 없어서…. (웃음) 이건 요령도 못 부려요. 전혀 안 돼요." 그런 홍우진도 '만능'은 아니다. 배우 홍우진의 베이스가 연극인 것도 있지만, 대체로 연기에 대한 호평에 비해 노래에 관해서는 아쉽다는 이야기가 많다. 본인 스스로 "노래를 잘 못 한다"고 밝힐 만큼. "저 진짜 옛날에는 노래 잘했거든요. 특히 대학교 때까지. 노래방 가면 절대 마이크 안 놓는 정도였는데, 제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몸을 너무 막 사용했거든요. 목도 그렇게 썼어요. 그러다가 제대하고 공연을 하는데, 노래가 안 되는 거예요. 예전에는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고, 내고 싶은 소리 내고 그게 마음대로 됐었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이게 왜 이러지? 그 벽이 엄청 높아졌어요. 조금 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제가 생각했었던, 제가 했었던, 제가 해냈던 기준에도 못 미치고, 제가 생각하고 있는 '잘한다'의 기준에는 진짜 한참 못 미치니까. 자신감이 몹시 떨어졌어요. 노래방도 안 가게 되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지 않게 되고, 그런 시간이 쌓이던 와중에 덜컥 뮤지컬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노래하는 게.사실 지금도 이 작품에서 제일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제 노래예요. 저만 노래를 잘했더라도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제 기준이 또 워낙 확고해서요. 제가 스스로 정해놓은 '잘한다'의 기준이 있으니까, 일단 이 기준에는 충족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금도 계속 노력해요. 보러 와주시는 관객들에게 죄송한 마음도 항상 가지고 있고…. 그런데 뭐, 일단 대표님이 뽑아주셨으니까. (웃음) 또 제가 노래 안에 싣고자 하는 감정을 알아봐 주시고 지금의 노래를 좋아해 주는 관객분들께는 너무 감사하죠."배우로서 현실을 살아간다는 것 연기에 대해서도, 노래에 대해서도 더 하고 싶은 게 많은 배우이지만, 홍우진은 정말로 배우를 그만둘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바로 '현실' 탓이었다."사실 작년에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가장이 되니까 '도저히 못 해 먹겠다!'고요. 예전에는 형이 생활비를 조금씩 지원해줬거든요. 그런데 형이 이직하면서 월급이 많이 깎였어요. '미안하다, 지원을 해주기가 어렵다'고 하니 '뭐, 어떻게든 해볼게'하고 얘기를 했는데 막상 생활이 너무 '빡센' 거예요. 적금을 다 깼어요. 모아놓은 돈도 거의 다 쓰고…. 저축하고 결혼 준비도 하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연기도 하면서 계속 산다? 답이 없더라고요.아무것도 안 쓰고 숨만 쉬어도 한 달에 최소 250만 원씩은 깨지는 거예요. 와, 미쳐버리겠다. 어떻게든 벌면서 버텼는데, 연극 <사이레니아> 끝난 후로 제가 가진 것도 진짜 딱, 끝났어요. '와, 큰일났다. 어떡하지? 그만둬야 하나. 진짜로 장사를 해야 하나'하고…. 연기를 전공하는 사람들의 최후의 보루인 연기학원 일까지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내가 서른일곱 먹어서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니 나는 왜 이렇게 살았는지 후회도 조금 됐고요. 다행히 영화도 들어오고, 여기저기서 일도 들어 와서 간신히 유지가 됐죠."놀랐다. 2005년 앙상블로 데뷔한 이후 꾸준하게 커리어를 쌓은 이 배우가, 고정 팬덤도 있고 눈에 띄는 필모그래피도 여럿 쌓은 그가 '생활'의 문제로 연기를 접을 생각을 했었다는 게. 홍우진 정도 되는 배우마저 이렇다면, 대체 다른 배우들 생활은 어느 정도라는 걸까."양극화가 정말 심해요. 그저께 극단 회식을 했거든요. 밖에 담배 피우려고 나왔는데, 대학로 정말 작은 소극장에서 하는 공연들 포스터가 쫙 붙어있었어요. 그걸 보다가 '아, 나도 이렇게 먹고살기 힘든데, 이분들은 대체 어떻게 먹고 살까'하는 생각이 들었죠. 나는 20대 때 어떻게 버티며 살아왔던가 생각해보고…. 다들 진짜 힘드실 거예요."그런데도, 그 고민을 접고 계속 배우의 길을 가기로 했다. 그토록 팍팍한 현실이 발목을 잡고 있음에도, 계속 배우를 하게끔 하는 추동력이 대체 뭘까."결국, 내 성격에 맞으면서, 그나마 돈을 벌더라도 행복할 수 있는 건 연기밖에 없더라고요. 연기 재밌어요. 물론 재미없을 때도 있지만…. (웃음) 내가 무대 위에서 얘기하고 있을 때 내 눈을 봐주면서 '이 사람은 내 얘기를 듣고 있구나'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그런 배우를 만나면, 그 배우의 연기력과는 상관없이 그 순간이 되게 행복해요. 이 보석 같은 사람들 덕분에 그날의 두 시간 공연이 즐겁게 마무리되어요. 배우들만 아는 즐거움이지만, 또 보는 관객들도 알거든요. 관객분 중 몇 분이라도 내가 느낀 그 즐거움을 알고 가시면 성공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오늘 성공이다!'라고 말하면서 사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요? 그 생각하니까, 아…! 결국 이거 해야겠더라고요. (웃음)"그래도 배우가, 작품이 행복하기에 보석 같은 사람과 함께 반짝이는 그 순간. <솜>이 그런 작품 중 하나냐고 물었더니, 당연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럼 조금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파트너인 토마스로 활약하는 네 명의 배우 중 누가 가장 홍우진의 눈을 바라봐 주는 보석 같은 사람인지."(고)영빈이 형이랑 할 때! 다른 관객분들도 감사하지만, 영빈이 형이랑 저랑 할 때 보러 오는 분들은 더 감사해요. 형이랑 하면 너무 행복하거든요. 내가 말할 때 저 사람 표정이, '아! 이 사람 내 말 듣고 있네!' 그게 있거든요. 아, 그게 말로 하기가 좀 그런데. 아무튼, 연기하면서 너무 행복해요. 제가 그때 무대에서 느끼는 행복함이 보는 분들한테도 행복함으로 전달되는 것 같아요. 사실 이러기가 다른 공연할 때는 되게 쉽지 않아요. 관객들께서 느끼는지 못 느끼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런데 이건 특히나 2인 극이니까, 감정을 나눌 사람이 무대 위에 한 사람밖에 없잖아요. 거기서 내가 느끼는 기쁨, 슬픔, 같은 감정들이 다른 곳에 분산되지 않고 관객분들에게 전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연기로는 영빈이 형이라면, 노래로는 (강)필석이 형. 필석이 형이랑 할 때는, 형이 노래를 리드해줘요. 절 되게 귀찮게 하거든요. (웃음) 목 풀거나 소리 내면, 형이 계속 가르쳐줘요. 작년에도 도움 엄청 많이 됐어요. 그걸 계속시켜요. 올해는 조금 덜 시키던데…. 이제 날 포기한 건가…. (웃음)어제 강필석 형이 '나비' 부르는 걸 들으면서…. 오! 필석이 형이 (팔을 펼치면서) '날아 올라가~! 워~!!!!!'하는데 뒤에 앉아 있는데도 그 노래에 담긴 모든 게 전달이 되는 거예요. 소름이 막 돋으면서 속으로 '와, 와...' 그랬어요. 혼자 '아니, 강필석이 이 정도인데 대체 홍광호는 어느 정도로 어떻게 하는 거야?'라는 생각을…. (웃음) 와, 진짜 지붕 뚫는 줄 알았어요. 나도 저렇게 부르고 싶다고 생각했죠. 부러워요. 제가 아는 사람 중에서 노래 제일 잘하는 사람인데도 아직 엄청 노래를 공부하면서 파요.필석이 형이 노래할 때 기분이 진짜 좋아요. 잘하는 사람과 함께하니까, 필석이 형이 잘하니까 그쪽으로 따라가려고 노력하게 되고요. 형과 엔딩 곡 부를 때나, 함께 노래할 때면 형이 눈으로 계속 말해줘요. '여기서는 작게', '지금부터 크게' 이런 식으로. 필석 형의 노래를 듣는 것도 너무 행복한데, 함께 노래할 때는 '되게 되게' 행복해요." 인터뷰하면서 배우가 이 작품을 참 많이 아끼고 있음을, 그리고 연기하는 본인도 굉장히 행복해하고 있음이 조금은 전해졌다. 관객을 웃게 하고, 눈물 흘리게 하고, 결국 따뜻한 온기 한 줌씩 지닌 채 백암아트홀을 나설 수 있게 하는 건 바로 이 연기하는 배우의 행복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조성윤(조강현)이 연습실에서 '아, 이렇게 매년 겨울마다 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좋을 것 같아요. 매년 반복하는 게 사실 독이 될 수도 있겠지만요. 자칫 안일해질 수 있거든요.저는 팬들한테 선물보다 편지를 많이 받는 편인데요. 작년에 감동적인 편지가 있었어요. 이 작품을 초연이 끝난 후에 알았고, 계속 영상으로만 접하다가 삼연 때 저를 봤는데 너무 좋아서 편지를 처음 쓴다고. 그 내용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그 편지를 사진으로 찍어놨었는데, 며칠 전에 사진첩 정리하다가 다시 발견해서 읽고는 '아,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공연을 보는 분들한테 혹시나 안일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 공연 중반 지났지만 마음을 다잡고, 나머지 공연 기간 더 열심히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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