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th오마이스타

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극 <비(BEA)> 공연 사진 지난 11일, 서울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개막한 연극 <비(BEA)>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믹 고든의 원작 대본에 김광보 연출이 참여한 라이선스 작품이다.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지만, 지난 8년간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침대에만 누워 있는 베아트리체. 신체는 꼼짝도 할 수 없지만, 그녀의 발랄한 정신은 언제나 활개치며 마음껏 수다를 떤다. 그랬던 그녀에게 새로운 간병인이 찾아오고, 베아트리체는 오랫동안 엄마에게 하고 싶었지만 직접 전달할 용기가 없었던 말을 꺼내려고 한다. 안락사에 관한 심도 있는 질문을 감성적으로 터치하며 관객에게 던지는 극. 전미도, 이창훈, 백지원 등. 오는 30일까지.

▲ 엄마와 딸지난 11월 11일, 서울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개막한 연극 <비(BEA)>눈 안락사에 관한 심도 있는 질문을 감성적으로 터치하며 관객에게 던지는 극이다.ⓒ (주)아이디어랩


대중문화의 매력 중 하나는, 어려운 문제에 대한 고민거리를 딱딱하지 않게 던져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덕분에 사형제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고, 소설 <도가니> 덕분에 아동 성폭행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었다. 무대도 다르지 않다. 연극 <프라이드>는 억압된 시대 분위기 속에서 성 소수자라는 정체성 탓에 괴로워하는 이들의 아픔을 풀어냈고,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가진 자들의 위선을 폭로한다.

지난 11월 11일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개막하여 11월 30일에 폐막한 연극 <BEA>도 위에 열거한 작품들과 궤를 같이했다. 논쟁적 화두를 던짐으로써 관객들에게 토론의 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우선 탁월하다. 그 메시지의 전달력을 유지하면서도 극의 완성도 역시 훌륭한 수준으로 유지한다.

원작자 믹 고든이 쓴 대본의 힘도 크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영민해지는 김광보 연출의 터치가 빛을 발휘한다. 경험의 차이를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그는, 기존의 자신이 보여주던 무대와는 다른 매력을 시도한다. 백지원, 전미도, 이창훈 배우의 연기는 더하고 뺄 것이 없다. 대학로에서 정식 공연으로 빨리 만나고 싶을 정도로. (주인공 '비'를 연기한 배우 전미도는 이 작품으로 2016 스테이지톡 오디언스 초이스 어워즈에서 연극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비, Bea, Be a, Bee

연극 <비(BEA)> 공연 사진 지난 11일, 서울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개막한 연극 <비(BEA)>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믹 고든의 원작 대본에 김광보 연출이 참여한 라이선스 작품이다.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지만, 지난 8년간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침대에만 누워 있는 베아트리체. 신체는 꼼짝도 할 수 없지만, 그녀의 발랄한 정신은 언제나 활개치며 마음껏 수다를 떤다. 그랬던 그녀에게 새로운 간병인이 찾아오고, 베아트리체는 오랫동안 엄마에게 하고 싶었지만 직접 전달할 용기가 없었던 말을 꺼내려고 한다. 안락사에 관한 심도 있는 질문을 감성적으로 터치하며 관객에게 던지는 극. 전미도, 이창훈, 백지원 등. 오는 30일까지.

▲ 침대 위를 뛰어다니는 비비는 기본적으로 밝은 성격의 사람이다. 그 밝은 성격이, 이 침대 안에 갇혀 있는 자신의 상황과 대비되며 독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주)아이디어랩


베아트리체는 자신의 본명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비'라고 불리는 걸 좋아한다. 이 밝고 화사한, 자유분방한 성격의 주인공은 혼자서 눕기엔 조금 넓은 듯한 침대를 방방 뛰어다닌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기에, 자신의 욕구를 발산할 곳이 없다. 변호사로 일하는 엄마 캐더린마저 집에 잘 없는 터라 비의 외로움은 더욱 커져만 간다.

그래서 비는 새로 온 간병인 레이가 퍽 마음에 든다. 레이는 섬세하고 다정하며 재미있는 사람이다. 북부 아일랜드 출신의 이 독특한 간병인이 캐더린은 석연찮지만, 비의 강한 고집 덕분에 결국 레이를 고용하기로 한다. 비는 캐더린에게 쉽게 밝힐 수 없는 비밀을 레이와 공유하며, 이 침대라는 감옥 속 일상을 살아간다.

프로그램 북이나 예매 페이지에 나와 있는 시놉시스를 살펴보지 않은 관객은, 비가 어떤 상황인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배우 한 명의 연기를 통해 드러나는 반전이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만큼 비의 정신세계와 실제 육체 상태의 간극이 크다. 이처럼 발랄한 주인공을 옭아매는 정체불명의 병은, 그를 침대에 누운 채 아무것도 할 수 없게끔 한다. 말하기조차 쉽지 않은 육신과 활달한 영혼의 차이는 그만큼의 낙차가 되어, 극도의 절망으로 돌아온다.

대소변도 못 가리고, 누군가 쑤어준 미음을 간신히 받아먹을 수밖에 없다. 8년 동안 그는 침대에 누워서 방 안의 모든 작은 디테일들을 헤아리며 기억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쳤을 때 침대에 있는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상태가 아주 좋은 날에는 귀고리도 만들 수 있지만, 그게 다다. 그조차도 다 끝낸 후에 남는 건 없다. 그 외에 모든 건 고통이다. 병이 주는 고통, 약이 주는 고통. 가장 끔찍한 건 이 고통을 견딘다고 해서, 호전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 병은 낫지 않는다. 지난 8년간 몸 상태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진 적이 없다. 이미 예정된 끝을 위해 왜 이토록 힘들게 버텨야 하는가. 비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연극 <비(BEA)> 공연 사진 지난 11일, 서울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개막한 연극 <비(BEA)>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믹 고든의 원작 대본에 김광보 연출이 참여한 라이선스 작품이다.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지만, 지난 8년간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침대에만 누워 있는 베아트리체. 신체는 꼼짝도 할 수 없지만, 그녀의 발랄한 정신은 언제나 활개치며 마음껏 수다를 떤다. 그랬던 그녀에게 새로운 간병인이 찾아오고, 베아트리체는 오랫동안 엄마에게 하고 싶었지만 직접 전달할 용기가 없었던 말을 꺼내려고 한다. 안락사에 관한 심도 있는 질문을 감성적으로 터치하며 관객에게 던지는 극. 전미도, 이창훈, 백지원 등. 오는 30일까지.

▲ 전하지 못했던 말레이를 통해 비는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 직접 쓸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직접 말할 수도 없으니까. 레이는 다 쓴 그 편지를 전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비가 캐더린에게 편지를 보여준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하는 사람도 받아들이는 사람도 아플 수밖에 없는 그 말을.ⓒ (주)아이디어랩


비를 유일하게 살도록 하는 이유는 하나이다. 엄마. 자신이 떠나고 나면 엄마가 너무 슬플까봐. 그 하나 때문에 어떻게든 아등바등 이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렸지만, 그마저도 늦어버렸다. 아빠도 떠났는데. 엄마와 아빠는 아직 서로를 잊지 못하는데. 그저 나 때문에, 자신의 삶을 포기한 엄마가 비는 너무 안쓰럽다. 그래서 결국 엄마에게 권한다. 이 의미 없는 고통에 종지부를 찍자고.

"나는 덫에 걸렸어요, 엄마. 이제, 해방되고 싶어요. 그리고 엄마도 해방됐으면 좋겠어요."

베아트리체의 이름은 왜 비(Bea)였을까. 비는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사람(Be a)이기를 바랐다. 예쁜 옷도 입고, 데이트도 하고, 학교도 다니며, 수다도 떠는 그 나잇대의 평범함. 대단한 특별함을 꿈꾼 것이 아니었음에도, 마치 <넥스트 투 노멀>처럼 그에게는 그 평범함이 너무 멀리 있는 무언가였다.

비는 또 꿀벌(Bee)과 발음이 똑같다. 붕붕 나는 꿀벌의 노래를 좋아했던 비. 캐더린이 '붕붕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비. 비는 레이를 처음 만난 날, 레이에게 물어봤다. 제피(Zephyr)라는 말이 무엇이냐고. 그런 말이 있는지 레이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비와 마지막으로 만나는 날, 레이는 그 질문에 답을 한다. 그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에서 따온 말이라고. 그렇게 이 좁은 침대에 갇혀 있던 작은 꿀벌은, 서풍을 타고 훨훨 날아간다.

제피로스는 세상 모든 식물의 꽃을 틔우는 여신 플로라의 남편이다. 제피로스의 도움으로, 이 꿀벌은 자기만의 꽃을 찾아간 것일까. 그곳에서 비는 행복할까. 미친 듯이 웃으며 온 방 안을 휘젓는 비의 뒤로, 남은 캐더린은 침대에 주저앉아 서럽게 오열한다. 캐더린의 어원은 여신 헤카테, 죽음을 관장한다.

연극 <비(BEA)> 공연 사진 지난 11일, 서울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개막한 연극 <비(BEA)>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믹 고든의 원작 대본에 김광보 연출이 참여한 라이선스 작품이다.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지만, 지난 8년간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침대에만 누워 있는 베아트리체. 신체는 꼼짝도 할 수 없지만, 그녀의 발랄한 정신은 언제나 활개치며 마음껏 수다를 떤다. 그랬던 그녀에게 새로운 간병인이 찾아오고, 베아트리체는 오랫동안 엄마에게 하고 싶었지만 직접 전달할 용기가 없었던 말을 꺼내려고 한다. 안락사에 관한 심도 있는 질문을 감성적으로 터치하며 관객에게 던지는 극. 전미도, 이창훈, 백지원 등. 오는 30일까지.

▲ 안녕, 붕붕이좁은 침대에 갇혀 있던 비는, 자신의 소원대로 죽음을 통해 해방된다. 서풍을 타고, 작은 꿀벌은 날아갔다. 하지만 남겨진 자의 슬픔은 어찌할 것인가.ⓒ (주)아이디어랩


누구도 남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쉽게 말한다. '살아 있으면 언젠가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든가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지'와 같은. 그러나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죽음보다 더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대꾸하면 뭐라 답할 텐가. 에밀리아 클락(루이자 역)과 샘 클래플린(윌 역) 주연의 영화 <미 비포 유>를 본 사람이라면 '안락사'에 대해 제3자가 쉽게 말할 수 없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윌이 유일하게 눈 뜨는 이유는 루이자 때문이지만, 이렇게 사는 게 괜찮을 수도 있지만, 그런데도 그것이 자기 인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을 너무도 사랑했던 그는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

"그래, 아마도 공감에는 한계가 있나 봐. 지리학적으로, 비행기가 어디 뭐, 인도나 파키스탄에서 추락했다고 해봐. 누가 신경이나 써? 정말로 신경 쓰지는 않는다고. 레이 말이 맞는 것 같아. 우린 모두 마음 장님이야."

연극 <비>는 공감에 대한 작품이다. 장애는 몸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마음에도 장애가 있다. 우리는 모두 사실, 상대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장애를 가진 '마음 장님'들이다. 이 마음 장님들은 서로를 자신의 기준에 끼워 맞추고, 상처 주고, 상처받는다. 캐더린은 죽음을 택하려는 비를 처음에 이해하지 못한다. 비의 상황을 체험도 해보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비와 캐더린의 가교 구실을 해주는 것이 바로 새로 온 간병인 레이이다. (이 극을 열고 닫는 노래가 마돈나의 'Ray of Light'인 점도 의미심장하다) 자신의 말투나 행동에 대해서 그리고 성 정체성에 대해 갖은 편견과 핍박에 시달렸을 그이기에, 그래서 더더욱 서로를 사랑함에도 온전히 자기 얘기를 하지 못하는 모녀를 연결해 줄 수 있었다. 마지막 비의 생일 파티, 세상에 다시는 없을 것처럼 즐거운 시간을 세 사람은 보낸다. 서로의 아픔에 대해 이해하게 된 이들은 결국 선택한다. 비가 원했던 그 선택지를.

연극 <비(BEA)> 공연 사진 지난 11일, 서울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개막한 연극 <비(BEA)>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믹 고든의 원작 대본에 김광보 연출이 참여한 라이선스 작품이다.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지만, 지난 8년간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침대에만 누워 있는 베아트리체. 신체는 꼼짝도 할 수 없지만, 그녀의 발랄한 정신은 언제나 활개치며 마음껏 수다를 떤다. 그랬던 그녀에게 새로운 간병인이 찾아오고, 베아트리체는 오랫동안 엄마에게 하고 싶었지만 직접 전달할 용기가 없었던 말을 꺼내려고 한다. 안락사에 관한 심도 있는 질문을 감성적으로 터치하며 관객에게 던지는 극. 전미도, 이창훈, 백지원 등. 오는 30일까지.

▲ 마지막 생일 파티캐더린과 비 그리고 레이의 마지막 파티. 다시는 없을 세 사람의 파티이기에, 그들은 누구보다 밝고 신나게 논다. 다가올 슬픔을 애써 모르는 척, 그 큰 우울을 덮고 남을 기쁨을 만들기 위해서. 그래도 어쨌든 이별만큼은, 웃으면서 하기 위해서.ⓒ (주)아이디어랩


연극 <비(BEA)> 공연 사진 지난 11일, 서울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개막한 연극 <비(BEA)>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믹 고든의 원작 대본에 김광보 연출이 참여한 라이선스 작품이다.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지만, 지난 8년간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침대에만 누워 있는 베아트리체. 신체는 꼼짝도 할 수 없지만, 그녀의 발랄한 정신은 언제나 활개치며 마음껏 수다를 떤다. 그랬던 그녀에게 새로운 간병인이 찾아오고, 베아트리체는 오랫동안 엄마에게 하고 싶었지만 직접 전달할 용기가 없었던 말을 꺼내려고 한다. 안락사에 관한 심도 있는 질문을 감성적으로 터치하며 관객에게 던지는 극. 전미도, 이창훈, 백지원 등. 오는 30일까지.

▲ 욕망 그리고 쾌락레이와 비의 관계는 특별하다. 그러니 레이가 비에게 해주는 행위도 특별한 것이다. 간병인으로서, 진심으로 비가 행복하기를 바라서. 비가 아직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존재였다면, 그래서 그 순간 행복할 수 있었다면 결말은 달라졌을까.ⓒ (주)아이디어랩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어주다가 열정에 휩싸였던 레이와 비. 만약 그때 비가 쾌락을 느꼈다면, 내 몸이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픔만이 아니라 기쁨도 있다는 걸 알았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이 삶을 살아갈 이유를 찾는데 레이라는 친구를 얻은 것만으로는 부족했을까. 비를 붙잡고 있는 캐더린이 이기적인 만큼, 캐더린을 놓고 떠나려는 비도 이기적인 건 아니었을까. 연극 <비>는 이런 물음표들에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

다만, 서로를 존중하는 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안락사에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다. 논쟁적 사회 문제에 대해 정답과 오답이, 옳고 그름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자신이 어느 편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편에 있는 이 그리고 정작 그 처지에 있는 당사자에 대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이 상식적인 진리를 <비>는 재확인시켜준다. 이들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건, 여러 가지 선택지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완벽하지 않기에, 누군가의 가슴에는 크나큰 구멍을 남길 수밖에 없는 선택지. '해방'된 두 모녀를 보며 눈물이 나는 건 그 때문이다.

안락사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불법이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극소수의 국가에서 그것도 상당히 제한적인 형태로 허용될 뿐이다. '웰빙'을 넘어서 '웰다잉'의 개념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면서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도 언젠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그때가 되었을 때, 죽음을 택한 사람에 대해서 혹은 남는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않는 법을 이 작품을 말해준다. 그때가 올 때까지, 우리가 이 작품을 되새겨야 할 이유이다.

연극 <비 BEA> 포스터 지난 11일, 서울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개막한 연극 <비(BEA)>의 드레스 리허설 사진. 믹 고든의 원작 대본에 김광보 연출이 참여한 라이선스 작품이다. 정확한 병명은 알 수 없지만, 지난 8년간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어 침대에만 누워 있는 베아트리체. 신체는 꼼짝도 할 수 없지만, 그녀의 발랄한 정신은 언제나 활개치며 마음껏 수다를 떤다. 그랬던 그녀에게 새로운 간병인이 찾아오고, 베아트리체는 오랫동안 엄마에게 하고 싶었지만 직접 전달할 용기가 없었던 말을 꺼내려고 한다. 안락사에 관한 심도 있는 질문을 감성적으로 터치하며 관객에게 던지는 극. 전미도, 이창훈, 백지원 등. 오는 30일까지.

▲ 연극 <비 BEA> 포스터연극 <비 BEA>는 믹 고든의 원작 대본에 김광보 연출이 참여한 라이선스 작품이다. 이 연출, 이 멤버 그대로 대학로에서 보다 오래 보고 싶다.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에 우리는 어떤 답을 해야 할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까.ⓒ (주)아이디어랩



40살에게 성폭행 당한 12살 소녀... 왜 가해자를 찾아갔나

[안 뻔한 티켓북] 가해자의 말은, 언제나 '그럴듯'하다... 연극 <블랙버드>

*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해자가 기억하는 과거와 피해자가 기억하는 과거는 다를 수밖에 없다. 가해자는 최대한 잘못을 축소하고,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최대한 확대하려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부정확해지고, 그 부정확해진 기억의 사이는 추정과 확신, 오해와 불신이 채운다.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두 사람의 기억 틈새는 커져만 간다.15년이 지났다. 15년이 지난 뒤, 피해자가 가해자를 찾아왔다. 가해자는, 어떻게든 살고 있다. 재판도 치렀고, 복역도 했다. 가해자는 애써 잊고 살아오려던 자신 앞에, 간신히 새로 부여잡은 삶 앞에 나타난 피해자를 향해 윽박지른다. 사라지라고, 너와 할 말은 없다고."난 내 인생을 살고 있어. 다 잃어버리고 난 후 다시 애써서 싸워 얻은 새로운 인생. 나한테 넌 귀신같은 거야."하지만 지난 15년간 멈춰 있던 피해자의 시간은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피해자는 가해자 앞에 진실을 요구한다."15년 동안, 난 모든 걸 잃었어. 난 한 번도 뭘 시작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으니까."묻혀버린 진실. 그 앞에서 두 사람이 각자의 기억을 토해내며 흐트러진 퍼즐 조각을 맞춰나가기 시작한다. 퍼즐이 완성되고 나면, 피해자의 시간은 다시 흘러갈 수 있을까. 지난 2016년 10월 13일 대학로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에서 개막하여 11월 20일에 폐막한 연극 <블랙버드>의 이야기이다.연극, 금기를 건드리다 연극 <블랙버드>는 성폭행 가해자 레이와 피해자 우나가 진행하는 2인 극이다. 극의 무대는 레이가 근무하는 공장의 컨테이너 안. 레이는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우나를 만나 당황하고, 그를 이 공간으로 이끈다. 15년 전, 당시 미성년자 그것도 12살밖에 되지 않았던 우나를 강제로 범했다는 이유로 레이는 재판을 받았다. 그는 유죄 판결을 받은 후 복역했고, 예정된 형량보다 일찍 사회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름도 바꾼 채, 전혀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시작했다. 과거의 일은 그저 "끔찍한 실수"로 치부해버리며.레이를 맡은 조재현의 연기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할 코멘트가 필요할까. 원캐스트로 극을 끌고 가야 함에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조재현이니까. 관록의 남배우보다는 무대 연기가 익숙하지 않았던 상대 여배우들에 관심이 갔다. 우나 역의 채수빈은 2년 전인 2014년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 출연한 게 다이며, 무대 주연은 처음이다. 더블 캐스팅된 옥자연 배우는 여러 작품 경험이 있으나, 이토록 비중 있는 역할에 나선 적은 없다.하지만 우려할 필요가 없었다. 아직 연극 무대에 최적화된 연기라고 보기는 어려우나, 채수빈은 자기만의 색깔을 분명하게 찾아가고 있다. 금세 부서질 것 같은 그래서 그 안에 더 날 서 있는 느낌이 강하다. 옥자연의 우나는 안정적이다. 더 단단하게 여물었다. 두 사람이 소화하는 우나가 달라서, 그 우나들과 호흡하는 레이도 조금씩 달라진다. 페어별로 보는 재미가 확실하다. 하지만 배우의 호연이나 극의 재미와 별개로, 90분의 시간 중 상당 부분, 관객은 가슴 한구석에 큰 불편함을 안고 있어야 한다. 서로의 기억을 짜 맞춰갈수록, 우나보다는 레이를 이해할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좁은 컨테이너로 제한된 공간은 팽팽한 긴장감을 주고, 무대만이 아니라 관객까지 답답하게 만든다. 무대는 그렇게 불편함이라는 씨앗이 잘 발아할 수 있는 토양이 된다.레이는 정말 반성하고 있고,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혹시나' 하는 물음표들이 머릿속을 떠돈다. 어쩌면 둘이 진짜 사랑했던 것일까? 둘의 관계를 사랑이라고 정의해도 괜찮을 걸까? 레이는 정말 소아성애자가 아니었나? 레이는 정말 우나를 배려했나. 그렇다면 이 두 인물의 감정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용인하며, 수용해야 하는가. 40살 남자와 12살 여자의 관계를? 2016년의 우리가?때때로 예술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금기를 건드린다. 예술만이 지니는 일종의 특권이다. 하지만 동시에, '소아성애'는 소재에 불과하다. 조재현은 프레스콜 당시 "이 작품이 단순히 소아성애자에 관한 얘기였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 중요한 건 이 소재를 통해 이 작품이 던지고자 했던 화두이다. 그 숨겨졌던 화두는 극의 후반부에 폭발하듯이 등장해 관객의 뒤통수를 강타한다.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이 엇갈릴 때 오해가 풀리고, 정서적으로 불안한 삶을 지냈던 우나는 이제 레이를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다. 15년 전 멈췄던 시계를 다시 움직이게 하려고, 우나는 그 15년 전을 다시 마주할 필요가 있었다. 마치 눈싸움을 하듯이 쓰레기를 던지며 노는 레이와 우나. 이 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는 생경하다. 바로 몇 분 전까지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거렸던 두 사람은, 이제 밝게 웃으며 장난친다. 두 사람의 입술이 포개지고, 서로를 탐하려던 그 순간, 갑작스러운 반전이 일어난다. 그렇게, 서로의 입맞춤으로는 도달할 수 없었던 진실이 제3자에 의해 밝혀진다. 그렇게 '뚝' 하고 팽팽했던 긴장의 끈은 끊어지고, 엉켰던 실타래는 한꺼번에 잘려나간다. 그 자리에 남는 건 경악 그리고 배신감. 두 사람의 대결에서 레이에게 점차 쏠리던 관객은, 그 한순간에 의해 우나의 감정에 빨려 들어간다. 전부 거짓말이었다. 이 사람의 지위도, 이 사람의 삶도, 이 사람의 존재 자체도. 마치 레이를 불렀으나 피터가 등장했던 것처럼. 그렇게 한 번 버려졌던 우나는, 또다시 레이에 의해 버려진다.미성년자를 향한 성범죄는 그 죄질이 매우 나쁘다. 연극 <블랙버드>는 그 성범죄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궁극적으로 소아성애 혹은 성범죄를 옹호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가해자와 피해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상의 수많은 폭력 사이에서, 우리는 때때로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손가락질하는 경우가 많다. 네가 짧은 옷을 입어서, 네가 먼저 유혹해서, 네가 여지를 줘서라고. 가해자가 호소하는 억울함이 설득력을 가질 때도 있다. 나는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고, 기억이 나지 않고, 순수한 마음에서 그런 것이라고.하나의 사건을 경험한 두 명의 인물.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당연히 기억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각자의 기억이 각자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진실이기에, 명확한 증거 없이 우리는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난감하다.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을 때, 우리는 그사이에 애매한 중립을 취하거나, 타협을 종용한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가해자에게 유리한 길로 귀결되는 걸 여러 번 목격했다. '합의'나 '화해' 그리고 '용서'라는 말은 분명 좋은 가치를 지닌 좋은 말이지만,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레이에게도 권리가 있다. 가해자에게도 물론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죗값을 치렀다면, 진실을 인정하고 참회한다면 그에게도 새로운 삶을 살아갈 기회를 줘야 한다. 처벌의 주목적은 공적 복수에 의한 법감정 해소가 아니라, 교화와 계도를 통한 재사회화에 있으니까. 하지만, 그 모든 것에 전제가 있다. 그는 정말로 '반성'했는가. 그는 우나를 찾아간 적이 없다. 그 자리에, 그 이름 그대로 살아서 고통받는 그에게 직접 용서를 구한 적이 없다. 수많은 책을 읽으며 자신이 전형적인 소아성애자와 '다른'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려 했을 뿐, 자신이 지은 죄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레이가 말한 모든 것이 진짜였다면, 정말로 그를 용서할 여지가 생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처절하고 현란한 자기변론 속에 진실의 함량은 극히 미미했다. 이 세상 수많은 가해자가 그랬듯이.재판정에서, 혹은 대한해협 건너에서, 아니면 여의도 청문회장에서, '피해자 코스프레'로 일관하며 자신의 가해를 부정하는 이들이 차고 넘치는 요즘이다. 가해자의 말은 언제나 그럴듯했다. 컨테이너 문을 열고 들어왔던 한 사람에 의해 레이의 거짓이 드러났듯이, 그들의 거짓 역시 결국 드러날 것이다.

낯선 당신이 끌렸다, 그러나 진실이 우리를 갈라 놓았다

[안 뻔한 티켓북] 사랑과 욕망 그리고 진실에 관한 이야기, "안녕, 낯선 연극" <클로저>

"안녕, 낯선 사람."우리는 '낯선' 무언가에 끌린다.익숙한 것은 진부하다.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반복적이고 지루하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를 찾는다. 낯선 상대(그것이 유무형의 무엇이든 간에)로부터 느껴지는 약간은 위험한, 그래서 더 끌리는 호기심. 앨리스에게 댄은, 댄에게 앨리스는 낯선 사람이었다. 신문에 '완곡하게' 부고 기사를 쓰는 댄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여자 앨리스. 차에 치인 앨리스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 자신을 데려다주는 댄에게 "안녕, 낯선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뒤섞이기 시작한다."그쪽이 죽으면 뭐라고 쓸 거예요? 완곡하게.""그는…. 방어적이었다.""나는요?""그녀는…. 누구라도 방심하게 만들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낯섦'에 끌리게 된다.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이 사이에 래리와 안나라는 다른 인물들이 끼어들면서 복잡한 감정의 실이 타래가 되어 꼬여버릴 줄. 지난 11월 13일 막을 내린 연극 <클로저>의 이야기이다. '낯섦'을 의도한 무대, 낯설지 않은 감정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작품이지만 연극 <클로저>는 극작가 패트릭 마버의 1997년 작품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 원조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2004년 영화 <클로저>는 패트릭 마버가 본인의 대본을 시나리오로 각색한 버전이다. 영화만을 기억하는 팬에게 연극 <클로저>는 전혀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영화에서는 인물 한 명 한 명의 감정 상태와 그 동기가 보다 명확하고 친절하게 설명됐다. 그래서 징검다리를 뛰어넘듯 시간을 뛰어넘어도 작품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상황이 급변하고 인물의 감정 관계가 뒤바뀌어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확보해둔다. 하지만 연극은 인물의 동기도 사건 간의 인과관계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 연극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시도하는 방식 자체가 낯설다. 하지만 그 감정은 어디서 본 듯 낯설지 않다. 왜일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숭고할지 모르지만, 그 감정이 표현되는 양상은 그다지 숭고하지 않다. 사랑의 민낯이 얼마나 추잡하고 지질할 수 있는지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매달리고 달래고 화내고 협박하는 그 모든 추한 행동들을 우리는 모두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정당화하니까. 이 작품 속의 인물들도 그렇다. 그와 잤는지 안 잤는지, 잤으면 얼마나 좋았는지, 나랑 자는 게 더 좋았는지 그 사람과 잔 게 더 좋았는지 굳이 캐물어서 확인하려고 한다. 사랑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사랑을 증명해달라고 소리친다. 한 번만 자달라고 매달리거나, 사랑이 있으면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다.이 작품의 묘한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형식적으로 낯섦을 의도했지만, 그 감정이 실제로 낯선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기고, 사랑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상처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전 애인에게 술을 마시고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버리지 못한 미련에 애써 매달려보기도 하고, 미처 기억에서 지우지 못한 SNS 주소를 기억해 들어가 보기도 하는 그런 행동들. 진실이라는 이름 아래에 상대의 사랑을 굳이 끊임없이 재확인하고자 서로의 상처를 쑤시는 발언들. 인물의 동기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도, 그 폭발하는 감정과 비슷한 부류의 것들을 우리는 품어본 적이 있다.낯섦으로 시작해 진실로 귀결되는 관계 "완전 사기죠. 남의 슬픔을 아름답게 찍어놨잖아요. 진실이 어떻든."안나의 사진전에 걸려 있는 앨리스의 사진. 앨리스는 슬픈 표정의 자기 사진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진실이 어떻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포장되느냐에 달려 있다.낯설기 때문에 시작된 관계 속에서, 이들은 서로에게 끊임없이 진실을 요구한다. 그렇게 서로의 낯섦에 끌려 연결되었던 이들은 진실에 의해 다시 끊어지고 부서진다. 관계에서 진실은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정작 이들이 탐닉하는 건 '진짜' 진실이 아니었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확인일 뿐이다. 그러니 상대가 말해야 하는 건, 진실이 아니라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 거짓된 진실이 관계를 부순다. 앨리스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묻는 래리에게 수차례 정직한 답을 하지만, 래리가 그 말을 믿지 않는 것처럼. "나, 너 사랑 안 해."앨리스의 이 선언은 댄 탓이다. 댄을 영원히 사랑할 수도 있었던 앨리스이지만, 댄의 집착이 결국 관계의 파탄을 불러온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진실이라는 이름 앞에 그가 요구했던 건 실은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라는 답에서 나오듯, 댄이 원했던 건 그저 댄이 추측했던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함으로서, 우승열패의 감정을 재확인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앨리스가 댄을 사랑했다는 진실이 부서진다."내가 선택한 거야. 그 사람 가방 안에서 샌드위치를 봤을 때, 그 순간에 내 모든 걸 이 식빵 테두리를 잘라내는 귀여운 사람한테 주겠다고."앨리스가 댄을 선택한 계기는 사실 이처럼 단순했다. 그런데 정작 댄이 샌드위치 식빵 테두리를 잘라낸 건, 본래 테두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날따라 식빵 겉이 탔을 뿐이다. 진실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그 사소한 진실을 인정하는 데서 우리의 관계는 지속 가능성을 지닌다. 낯섦으로 시작해 진실로 귀결되는 사랑의 관계가.나에게 낯선 사람이 된 당신 "그때 네 표정, 네 얼굴…. 정말 사랑스럽더라. 무슨 환영처럼. 널 처음 본 그때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어. 넌 완벽했어."끝난 지 한 달이 넘은 극이 갑자기 생각이 난 건 왜일까. 오랫동안 만나던 익숙한 사람. 나는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에게서 이전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던 '낯섦'을 마주한다. 그 낯섦에 끌려서, 그 사람을 향한 낯선 감정을 마주한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남자들은 여자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을 사랑하지. 우리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게 아니고."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졌다. 서로가 나누는 말도, 오가는 제스처도. 내가 사랑하는 건 감정인가, 그 사람 자체인가. 나조차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미세하게 내 몸이 떨리고 있음은 확실하다. 그래서 상대에게 나는 여전히 익숙한, 원래 알던 그 사람인지 궁금하다. 그 사람에게도 나의 어느 부분이 낯설게 느껴지고 있을까. 한 발자국 내디디기 두려워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나는 지질하게 가라앉는다."당신한테는 나도 낯선 사람인가요?"그래서 묻고 싶다. 나에게 낯선 사람이 된 당신에게, 나 역시 낯선 사람인지. 그러나 자기만족을 위한 진실을 집요하게 요구하다가 결국 영원히 이별하고 만 댄과 앨리스처럼, 이 질문 한마디에 결국 우리 사이가 돌이킬 수 없게 될까봐 두렵다. 그렇게 몇 번을 입술만 달싹거리다가 주저하고, 애꿎은 그의 머리만 쓰다듬고 헤어진 것이 몇 번. 우리의 관계는 이 낯섦을 통해 시작될 수 있을까.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오늘은, 그 사람에게 말할 수, 인사할 수 있을까."안녕, 낯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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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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