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질문 하나. 오롯이 한 가수의 무대를 방송에서 1시간 동안 본 적 있는지? 질문 둘. 콘서트에 가까운 1시간 30분의 공연을 무료로 관람한 적 있는지? 두 질문에 그런 경험이 있노라고 답할 순 있겠지만 그런 적이 "많다"고 답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TV를 틀면 음악 프로그램이 넘쳐나지만 음악을 '소재'로 삼은 예능 프로그램이 대다수다. 음악이 주인공이 되는 방송 무대도 있지만 이조차 한 가수가 1~3곡을 부르고 들어가면 다음 가수가 등장한다. 음악팬 입장에선 감질 날 노릇이다. 콘서트는 또 어떤가. 한 가수의 무대를 깊이 음미할 순 있지만 티켓 값이 어지간해야 말이지, 영화표 열 장과 맞바꾸는 출혈을 감내해야 한다.

오직 음악을 위한 시공간, <스페이스 공감>의 13년

이혜진 PD EBS <스페이스 공감> 이혜진 PD

EBS <스페이스 공감>을 연출하고 있는 이혜진 PDⓒ EBS


"오직, 음악."

EBS <스페이스 공감>(아래 <공감>)이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다. 사막의 목마른 이들에게 오직 음악만을 들려주는 오아시스가 <공감>이다. 한 가수의 무대를 1시간의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고, 직접 공연장을 찾으면 앙코르까지 1시간 30분의 라이브 무대를 즐길 수 있다. 콘서트를 무료로 보는 셈이다.

게다가 관례행사처럼 공연이 끝나면 뮤지션의 사인회가 열린다. 공연은 1시간 30분인데 사인회가 2시간인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곳. 오로지 음악만으로 공감을 이루는 스페이스. 2004년 4월 3일 첫 방송 이래 13년째 장수중인 <스페이스 공감>의 이혜진 피디를 지난 20일 오후 서울 도곡동 EBS 본사 옆 카페에서 만났다. 이혜진 피디는 2011년부터 <공감>을 이끌어오고 있다. 그를 포함해 총 3명의 피디와 5명의 작가가 꾸려가는 <공감>은 탄생 이후 세 번 가량 변화를 맞았다.

"가장 처음 <공감>이 생겨났을 때 내세운 가치는 '대중문화의 고급화, 고급문화의 대중화'였어요. 이때는 음악 공연뿐 아니라 미술 작품 전시도 함께 했고요. 음악은 재즈나 클래식, 퓨전국악 같은 장르를 주로 다뤘어요. 다음은 '그곳에 가면 진짜 음악이 있다'란 캐치프레이즈로 운영됐어요. 여기서 '진짜 음악'이란 라이브 공연에 방점이 찍혀있는데 이때부터 인디 밴드들의 음악도 많이 소개했습니다.

3년 전부터는 '오직, 음악'이란 캐치프레이즈로 바뀌었어요. 음악에 집중하면서도, 음악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포맷이나 장르를 다양화 하겠다는 의지이기도 합니다. 이때부턴 대중성 있는 뮤지션을 라인업에 포함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뮤지션 섭외의 비밀

스페이스 공감 EBS <스페이스 공감>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한 김창완 밴드.ⓒ EBS


스페이스 공감 EBS <스페이스 공감>

김준수는 <스페이스 공감>에서 관객과 가까이 호흡하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EBS


<공감>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매일 공연이 열린다. 아티스트 섭외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고 물었더니, 이 피디는 할 말이 무척 많은 듯 "정말 어렵고,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라인업 섭외는 한 달 단위로 이뤄지는데, 그 회의가 피 터지는 싸움이란다. 피디 3명, 작가 5명, 평론가 3명 총 11명이 매주 모여서 회의를 하는데, 한 주 동안 나온 모든 신보를 다 들어본 후 회의한다. 그런데 11명 모두 원하는 팀이 다르다보니 선정이 쉽지 않다. 평론가들은 음악성을 1순위로 놓는다면 피디는 시청률이나 모객수도 염두에 둬야한다.

하지만 '오직, 음악'이라는 기획 의도는 모두가 같다. 출연자 섭외가 끝나면 매일 공연에 돌입하는데 조명감독, 음향감독도 외부 인력이 아닌 EBS 내부에서 모두 소화한다. 뮤지션에 따라서 악기나 세트 배치가 다르다 보니 이 또한 보통 일이 아니다.

"<공감>은 무조건 뮤지션 위주라서 선곡도 뮤지션이 원하는 곡을 그대로 하게 하고 악기 배치며 이런 것들도 그들의 의견에 맞춰요. 무대가 워낙 작고, 좌석도 적어서 뮤지션이 음악적으로 불가능한 요구를 할 땐 힘들죠. 가령 '코러스 3명 할게요' 그러면 해드리고 싶지만 3명 설 곳이 없어요. 빅밴드면 다닥다닥 붙어서 하고요." 

무대도 작지만 3열~5열이 가로로 길게 늘어진 객석은 소극장 형태의 협소한 공간이다. 덕분에 자연스레 이뤄지는 아티스트와 관객의 '밀착 소통'은 <공감>만의 특장점이자 정체성이다. 신중현, 송창식, 김창완, 이은미, 주현미, 이승환, 김윤아, 제이슨 므라즈, 뱀파이어 위켄드, 클로드 볼링 등 국내외 최정상 아티스트가 이 작은 무대에 기꺼이 서고 있다. 그 비결은 <공감>만이 갖는 '오직 음악'의 힘과 관객과의 소통이 주효했다. 작년 <공감>을 찾은 시아준수는 "소극장 콘서트를 꿈꾼다고 말해왔는데 그 꿈이 이뤄졌다"며 "관객과 공감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기쁘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출연자를 물었다. 이 피디는 "녹화하다가 운 적이 있다"며 재즈 1세대 박성연의 무대를 꼽았다. "마지막 앙코르 곡을 부를 때 클로즈업을 잡았는데 표정과 목소리에서 오랫동안 한 길을 걸어 온 사람의 분위기가 확 풍겼어요. 무언지 모를 감동이 와서 작가와 울면서 녹화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공감>은 록, 팝, 재즈, 클래식, 월드뮤직, 국악 등 장르에 관계없이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음악인이라면 적극적으로 섭외한다.

"<공감>에 인디밴드만 나온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많은데 다양한 뮤지션들이 나오거든요. 저희는 방송도 방송이지만, 공연 영상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있단 생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국 음악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을 섭외해서 꾸준히 아카이브를 축적하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앞으로 초대하고 싶은 뮤지션을 묻는 질문엔 빅뱅의 태양이나 샤이니의 종현처럼 뮤지션으로서의 아이덴티티가 강한 아이돌을 꼽았다. 아이돌 출연 사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공감>의 장점을 살려 아이돌의 숨겨진 '뮤지션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다. 또 뮤지컬 배우 홍광호씨를 초대하고 싶다며 조심스레 '팬심'을 드러낸 이 피디는 뮤지컬 넘버를 무대에 올려 <공감>의 울타리를 확대해보고 싶다고 했다.

국카스텐 & 장기하와 얼굴들, '헬로 루키'가 발굴한 가수들

스페이스 공감 EBS <스페이스 공감>

2009년 '헬로 루키' 축하무대를 꾸민 국카스텐.ⓒ EBS


<공감>은 신인 발굴 프로젝트 '헬로 루키'를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처음 시작한 2007년에만 해도 유튜브를 보고 재능 있는 뮤지션을 발굴해 신인이어도 방송 기회를 주는 작은 이벤트였다. 하지만 들어오는 협찬을 받기 시작하고 점점 커지면서 오디션 형태로 다음해에 발전하게 됐다. 2008년에 무명의 밴드 국카스텐과 장기하와 얼굴들이 각각 대상과 인기상에 선정되면서 세상에 나오게 됐다. <공감>팀이 한국 가요계에 '큰 일'을 한 셈이다. 당시 가난한 밴드였던 국카스텐은 가내수공업으로 앨범을 만들 때였는데, '헬로 루키'에서 받은 상금 덕에 음반을 내고 음악 활동을 계속 해나갈 수 있게 됐다며 감격의 소감을 밝혔다.

'헬로 루키'를 둘러싸고 제작진 내부에선 고민이 많다. 보통은 이런 특집물의 경우 작가와 피디진을 따로 구성하기 마련인데 '헬로 루키'는 <공감> 피디와 작가들이 직접 도맡고 있다. 예산과 공이 많이 들어가는 작업인 것. 하지만 매달 2팀을 선정해서 후에 1년치 결선 무대를 갖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내부 인력만큼 적합한 사람들은 없다. 선정된 뮤지션을 1년 동안 꾸준히 지켜봐야지 결선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 또한 뽑힌 루키들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 '헬로 루키' 이후에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타 방송에서 많이 생겨 이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다.

그렇다고 '헬로 루키'가 없어질까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만약 없어진다 해도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제작진처럼 보였다. 지난 2014년, 매일 공연을 주 2일로 축소할 위기에 놓인 적이 있는데 이때 피디들이 반대하고 나섰던 사례가 그 근거다. 이들이 축소를 반대한 건 뮤지션에게 부여되는 무대 기회가 줄어든다는 이유에서였다. 뮤지션들도 한 목소리로 반대하고 나섰다. '공감을 지켜주세요'란 타이틀로 음악인들이 홍대 일대에서 자발적 무료 공연을 펼친 것. "<스페이스 공감>은 대한민국 음악이 지켜야 할 마지막 보루"라며 서명운동도 벌어졌다. 이 피디는 "뮤지션들이 이 프로그램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단 걸 확인하고 당시 큰 힘을 얻었다"고 회상했다.

세월호 희생자 위로한 특별기획 <노래가 필요할 때>

 EBS <스페이스 공감> 축소 반대를 위한 공연 포스터

EBS <스페이스 공감> 축소 반대를 위한 공연 포스터ⓒ EBS


앞으로 <공감>에서 새롭게 해보고 싶은 걸 묻자 이 피디는 망설임 없이 "공들인 기획공연을 더 많이 하고 싶다"고 답했다. "<공감>에서만 볼 수 있는 공연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2015년에 세월호 1주기 특집으로 <노래가 필요할 때>를 기획하여 '이달의 피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특집을 위해 공감홀을 벗어나 바다, 학교, 집 등을 옮겨 다니면서 공연했다. 관객은 없었다. 죽은 자들이 관객이었다. 이 기획의 계기는 이랬다. <공감>과 가장 오랫동안 함께해온 변고은 작가에게 이 피디가 "<공감>이 아니라, 새로운 음악 프로그램을 우리가 처음부터 만든다고 생각했을 때 무엇을 가장 해보고 싶냐"고 물었던 것. 그때 변 작가가 이 기획을 제안했다.

이 피디와 변 작가가 주축이 된 이 기획의 아이디어는 밴드 '이디오테잎'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세월호 사건 후 한동안 결방되다가 방송을 재개했을 때, 신나는 공연을 할 때면 제작진 모두 '이게 맞나' 싶은 마음이 컸다. 마침 이디오테잎이 공연 마지막에 세월호 추모 노래를 했고, 그 무대를 보며 '어떤 때는 말보다 음악이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제작진이 깊이 느꼈다. 이 경험이 계기가 되어 말 없이, 관객 없이 오직 노래 하나로 공연을 이어가는 <노래가 필요할 때> 기획을 마련하게 된 것. "노래가 가진 위로의 기능을 직접 경험한 제작진들이 엄청난 열의를 갖고 제작했다"며 이 피디는 당시를 상기했다.

음악신에 화두 던지고 이끄는 <공감>될 것

윤도현 밴드 EBS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 선 윤도현 밴드.

▲ 윤도현 밴드EBS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 선 윤도현 밴드.ⓒ EBS


<공감>의 장수 비결은 다양했다. 이 피디는 "오직 음악 자체를 보여주겠다는 의도를 존중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 비결이 아닐까" 하고 답했다. 인터뷰 첫 질문으로 <공감>의 기획의도를 물었을 때 "좋은 음악을 대신 찾아서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전달하는 것"이라고 답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제가 <공감>에 자부심을 갖는 것 중 하나는 '음악을 사랑하는 스태프들이 모여서 만드는 프로그램'이라는 겁니다. 매일 공연, 매주 2회 방송이라는 빡빡한 스케줄을 진행하다 보면 지치기 마련인데, 작가, 조연출, 무대 스태프들 모두 음악과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더 많은 음악을 소개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어요."

EBS는 2017년 중순쯤 일산 신사옥으로 이사한다. "회사 이전이 <공감>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고 말하는 그에게 "기대되시죠?" 하고 물었다. 대뜸 "걱정돼요"란 짧은 답이 돌아왔다. 오랫동안 해온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틀 밖의 큰 변화를 시도하기 힘든 점이 있지만, 환경이 바뀌면 못 했던 것을 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며 기대감도 내비쳤다. 새로운 도약을 앞두고 설렘 반, 걱정 반 상태였다.

이 피디는 올해 초 특별기획 <재즈의 비밀>편을 방송해 지난 3월 '제28회 한국PD대상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렉처 콘서트 형식으로, 재즈를 모르는 사람을 초대해 재즈를 함께 알아가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렇듯 새로운 기획을 만드는 걸 좋아하는 그에게 <공감>의 미래를 물었다.

"<공감>이 지금까지 장수했던 또 다른 비결은 음악신에 던지는 화두 같은 게 있어서였어요. 예를 들면 인디밴드에 관심을 둬야겠다 생각해서 인디밴드를 섭외했고, 신인 뮤지션을 지원하면 어떨까 해서 '헬로 루키'를 시작한 것 처럼요. 이제 새로운 어젠다를 설정할 시기가 온 것 같아요. 새 화두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공감>이 나아갈 미래을 좌우하는 열쇠 같아요."

이혜진 PD EBS <스페이스 공감> 이혜진 PD

이혜진 PD는 2009년 EBS에 입사했다.ⓒ EBS



'맨발의 디바' 이은미도 떨게 한 '어마무시한' 150명

[장수 프로그램 기획⑤-2] '밀착 소통'의 공간, EBS <스페이스 공감> 소극장

맨 뒷줄에 앉았다. 그럼에도 아티스트의 모든 게 보였다. 노래에 집중할 때 생기는 미간의 주름, 밴드와 신호를 주고받으며 '파이팅'하는 눈빛, 감정에 따라 변하는 미세한 손끝의 떨림까지. 과장하자면 모공까지 보일 정도였다. 가운데 구역은 3열, 양옆은 5열. 적은 수의 좌석이 무대를 둘러싸고 가로로 길게 늘어져 있는 <스페이스 공감>의 특별한 공연장. 덕분에 관객은 뮤지션을 코앞에서 볼 수 있었다. 기자가 앉은 맨 뒷줄은, 그러니까 고작 세 번째 줄이었다. 이렇게 가까이서 라이브를 듣기는 나 역시도 처음. 초밀착 공간이 주는 설렘 역시 처음이었다. 지난 15일 오후 강남구 EBS 본사 안의 <스페이스 공감>(아래 <공감>) 공연장을 찾았다. 2004년부터 이어져온 <공감>의 장수비결을 탐색하기 위해서. 이날은 '맨발의 디바' 이은미의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뮤지션도 관객도, 소개팅 하듯 떨리는 마음으로 공연 시작은 오후 7시 30분. 객석 입장을 기다리며 살펴본 가이드북에는 아티스트에 대한 소개와 이날 듣게 될 노래목록 등이 적혀있었다. 무엇보다 '노래하는 사람 이은미'라고 적힌 타이틀이 눈에 띄었다. 지난 20일 오후 EBS 근처 카페에서 만난 이혜진 PD는 "이은미씨의 공연명은 다른 수식어 없이 단지 '노래하는 사람'이라는 설명으로 충분할 것 같아 그렇게 정했다"고 했다. 이렇듯 매일 있는 무대를 위해서 가이드북 만들랴, 뮤지션 인터뷰 찍으랴, 뮤지션 소개 영상 만들랴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다.객석 입장이 끝나자 안내 문구가 흘러나왔다. "돌아서 나가는 나의 뒷모습을 보고 뮤지션이 절망하지 않도록 부디 끝까지 자리를 지켜달라"는 내용이었다. 재치 있는 멘트에 객석은 웃었다. 이 피디는 "너무 엄숙하지 않게, 젊은 분위기로 가려고 신경 쓴 안내"라고 설명했다. 또한 경직된 분위기를 풀기 위함이다. 아무래도 객석이 무대와 무척 가깝고 카메라가 관객을 찍다보니 이를 의식하고 굳어지는 것. 긴장한 뮤지션과 긴장한 관객. 양쪽을 편안한 분위기로 이끌기 위해 제작진은 특히 노력하고 있다.물론 뮤지션이 가까이 있어서 싫다는 게 아니다. 좋은데 떨리는 그런 기분. 이 때문에 객석이 얼어붙는 건데, 한 가지 재밌는 것은 무대에 서는 뮤지션도 똑같은 마음이란 사실이다. 이 피디는 "프로 가수들도 우리 무대에 서면 경직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은미씨는 1000회 넘게 공연을 해온 베테랑이지만, 다른 가수보다 리허설에 30분을 더 투자했고 음향에도 더 신경 썼다"고 비하인드를 들려줬다. 뮤지션 입장에선 소극장 공연을 앞두고 더 예민해진다는 의미다. 보통 리허설은 공연 시작 3시간 전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이 무대 참 어려워요. 사람들이 앞에서 가깝게 저를 보고 있으니까 큰 공연보다 훨씬 떨리네요. 이렇게 한 분 한 분 아이 콘택트를 할 수 있어서 참 좋기도 하고요."작은 무대지만, 아니 작은 무대라서 더 떨리고, 그래서 참 좋다고 이은미는 말했다. 지난 10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 모인 80만 국민 앞에서 노래했던 사람이 그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주최하는 7차 범국민행동 본무대를 꾸몄다. 어디 그 뿐이랴. 이은미는 전국을 돌며 평일과 주말 할 것 없이 공연을 펼치는 라이브 가수다. 그런데도 150명 남짓의 <공감> 관객 앞이 어느 무대보다 떨렸다고 하니, 다른 가수들은 오죽하랴.어디서도 없는 내밀한 소통이 이뤄지는 곳이 피디의 말에 따르면 많은 가수가 <스페이스 공감> 무대에 '울렁증'을 호소하면서도 출연하길 원하는데, 이유는 이렇다."우리 무대는 시간이 기니까 연습도 많이 해야 하고, 출연료도 많이 못 받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연하는 이유는 오직 자신의 음악을 들려줄 수 있어서인 것 같아요. 연예인이 아니라 뮤지션으로서 고스란히 그 사람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 많지 않으니까요. <공감>은 방송에 함께 담아내는 인터뷰도 오직 음악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거든요. 그 사람의 음악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그것에만 집중해요.그리고 라이브에 자신이 없는 뮤지션은 안 나오시는 것 같아요. 자신의 음악에 자부심 있는 가수들이 출연을 선호하고 반면 실력이 없는 뮤지션은 고스란히 티가 나는 게 우리 무대입니다. 코앞에서 관객이 라이브를 보고 있으니까요." 뮤지션의 부담이 커질수록 관객의 기쁨은 비례한다. 터놓고 말해, 유료 콘서트에 가도 이보다 가까이서 아티스트와 호흡하긴 어렵다. 그런데 <공감>은 무료 공연에, 앙코르 포함 보통 1시간 30분의 무대가 펼쳐지니 관객으로선 욕심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경쟁률이 높다. 150석이 매 공연마다 가득 차는데, 평균 경쟁률은 9대 1이라고 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오직 사연이 담긴 마음으로만 얻을 수 있는 티켓이기에 더욱 값지다.이 피디는 무대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도 들려줬다. 공연장은 원래 회사 강당으로 사용했던 곳인데, 지난 2004년에 <공감> 방송을 시작하며 콘서트홀로 바꿨다고 한다. "선배들 말로는 이 프로그램이 이렇게 오래 갈지 몰랐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알려지지 않은 출연자들이 나오고, 엠씨가 나와서 재미있게 이끄는 것도 아닌 데다가, 계속 노래만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모든 게 관객에겐 '땡큐'다. 특히 어쿠스틱과 재즈 공연을 할 때면 마이크 너머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객석에 들린다고 하니, 돈 주고 못할 귀한 경험이다.내년 EBS의 이사는 그래서 관객에게 좋은 소식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2017년에 EBS가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통합센터를 여는데 <스페이스 공감> 공연장은 약 2배로 늘어난 300석이 마련된다. 하긴, 300석도 소극장형 무대이긴 하다. 이 피디는 어떻게 사람들을 일산까지 오게 할지 그 고민을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건 없어 보였다. 공연을 본 관객들의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홈페이지를 통해 공연 후기 글이 올라오는데 "처음 보는 뮤지션이었지만 공연을 관람하고 너무 좋아서 CD를 샀다"는 글을 볼 때 제작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관객에게 <공감> 무대 확장은 분명 좋은 일처럼 보인다. 이은미, 관객과 함께 대화하고 함께 노래했다 이쯤에서 이날 관람한 공연 후기를 전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은미와 내가 개인적으로 친해진 것 같은 기분이랄까? 이날 이은미는 무대에서 이런저런 소소한 근황과 음악 이야기를 들려줬다. 객석에서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해도 다 들리는 탓(?)에 관객과 아티스트의 '대화'가 자연스럽게 가능했다."다른 (방송)공연 때는 잘 못 하는데 <스페이스 공감>은 1시간이 넘으니까 히트곡을 해도 될 것 같아요. 음... '이은미 그 노래 좋더라'란 말을 듣는 데 곡 내고 3년은 걸려요. 길면 5년? 제 곡들이 입소문으로 퍼지는 데 오래 걸리는 편인데 지금 들려드릴 '녹턴'도 그런 곡입니다."그는 노래 하나를 부를 때마다 이런 식으로 그 곡에 얽힌 사연들을 들려줬다. 이날 '녹턴'을 시작으로 이은미는 '어떤 그리움', '미아',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가슴이 뛴다', '주여 이제는 여기에', '바람기억', '애인 있어요' 등을 불렀다. '미아'를 소개하면서는 "우연히 이 곡을 듣고 부르고 싶어서, 작업하던 새 음반을 내년 봄으로 미뤄놓고 이 앨범을 냈다"고 설명했다. 이 앨범은 지난 10월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 <아모르파티>다. 그는 "니체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며 '아모르파티'를 말했다"고 설명하며 "이번 생은 노래가 내 운명이라 생각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친근한 대화를 계속 걸어왔다."제가 아는 엔지니어가 드디어 스튜디오를 차렸어요! 무려 천장 높이가 8m라서 공간이 만들어내는 자연스러운 울림을 담을 수 있었어요. 따로 녹음해 합치는 게 아니라 밴드와 같이 스튜디오에 들어가 동시녹음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꿈만 같았죠."앨범 <아모르파티> 수록곡인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소개하면서는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욕심도 털어놨다."최백호 선배님은 멋진 음악을 하시죠. 이런 멋진 음악을 하고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질투도 나요. 어떻게 편곡해도 최백호 선생님을 뛰어넘을 수 없어서 소주를 많이 마셨죠."이날 이은미는 혼신을 다해 노래했다. "공연은 비싸니까 티켓값이 아깝지 않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공연에 임한다"며 "언제까지 무대에 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노래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래하는 사람 이은미'라는 공연명이 잘 어울리는 무대였다. 방송으로는 오는 1월 5일 볼 수 있다.

"나라 망하는 게 느껴진다" 97년 외환위기 예견 편지들, 요즘은?

[장수프로④-2] 1975년부터 2016년까지 현대사를 관통한 <여성시대>의 힘

"'안녕하세요, 임국희예요' 비좁은 방송실 안에 온에어(방송중) 전등이 반짝 켜지자 디스크 자키 임국희씨의 정겨운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흐른다. MBC라디오가 매일 낮 11시 10분부터 50분간 방송하는 와이드 프로 <MBC 여성살롱> 시간이 막 시작된 것이다. '주부, 미혼 여성들을 위한 생활정보 프로예요' 지난 75년 4월 첫 방송때부터 이 프로를 맡은 임국희씨가 막간을 틈타 설명해준다. '방송시간의 80%가 청취자들께서 보내주신 편지내용을 소개하는 데 쓰이죠' 하루 평균 3백여 통의 편지가 전국에서, 때로는 아랍에 가있는 간호원에게서 날아든다. 이 편지들 중에서 같은 사연들을 고르고 다시 계절과 시사에 맞는 것들을 골라 하루에 6~7통씩 소개한다. 혼자서는 주체할 길이 없어 얼마 전에 가위로 편지봉투를 개봉하는 일만 하는 아가씨를 따로 뒀다. 그래도 쏟아져 들어오는 편지를 다 읽어내지 못해 집에까지 갖고 가 읽기 일쑤다." - <경향신문> "<여성살롱>엔 보람도 많아요"(1977년 4월 2일) 중에서지금의 <여성시대>는 1975년 4월 <여성살롱>으로 처음 시작했다. (1988년 <여성시대>로 이름만 바뀌었다) <여성살롱>으로 첫 문을 열었을 때부터 여성 청취자를 대상으로 사연을 받아 진행했다. <여성시대>는 또한 남녀가 함께 진행하는 당대 라디오 프로그램들과 비교했을 때 여성 진행자의 비중이 높은 몇 안 되는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이런 기조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진다. <여성시대>가 본 2016년 대한민국 MBC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는 1997년 한국 외환위기를 예측했다. 청취자들의 사연을 통해서다. 당시 <여성시대> 연출을 맡은 정찬형 피디는 사회평론 길(1998)을 통해 "연출을 맡은 것이 작년(1997) 9월이었는데 이미 그때 어음 때문에 박살나고 중소기업 부도나고 자영업자들 망하는 이야기가 엄청나게 올라왔다"며 "IMF가 닥치기 전인데 그때 이미 청취자들은 '나라 망하는 게 느껴진다'고 얘기했다"고 언급한다. 1993년부터 <여성시대> 구성작가로 일을 시작해 올해로 22년이 된 박금선 작가 역시 당시를 회고했다."공장이 문을 닫는다, 살기가 너무 어렵다…. 이미 외환위기 1년 전부터 그런 편지가 많이 와 '너무 이상하다' 싶었다. 그리고 (1997년 12월) 구제금융 얻어온다는 발표가 나니 확 다가오더라. 그 전에는 그저 '이상하다, 살기가 참 어려운가봐'라고 했지." 전국 각지에서 <여성시대>를 즐겨 듣는 청취자들의 사연이 속속 오면 이들은 한자리에서 사연을 모아 읽는다.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의 사연, 차마 누구에게도 입을 열지 못해 끝끝내 익명으로 도착한 이야기. 숨죽여 사연을 보내고 또 숨 죽여서 들을 수밖에 없는 사연들. 그리고 "징건하게 얹히고 답답한 게 켜켜이 쌓여 돌아버릴 것 같은"(양희은) 내밀한 일상들. 가장 개인적이고 내밀한 매체 중 하나인 편지는 미시사 연구에 중요한 소재로 쓰인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 만들어진 여성시대 속 편지들 역시 훗날의 역사가 되지 않을까. 사람들의 삶 속에 역사가 흐른다. "얼마 전 경주에 지진이 났지 않나. 그러면 지진이 난 지역에서 온 사연을 꼽는다. 아니면 통영이나 거제 지역의 조선소 노동자들의 이야기. 홍수가 난 이야기. 뉴스에서 듣는 소식과는 그 느낌이 다르다. 뉴스는 객관적이고 상대적으로 밖에서 보는 느낌이 강하다면 이건 그 안에서 일을 겪고 있는 당사자의 이야기다." (박정욱 피디) "시대의 흐름이 그대로 드러난다. IMF 이후에는 외국인 며느리 이야기도 많이 왔다. '우리 아들이 장가를 못 가서 만나보러 갔다'는 편지가 오면서 어느 순간 다문화가 왔고 매 맞는 여성들 이야기도 왔다. 그런 사연이 오면 피디들이 의식을 갖고 방송하더라. 사연이 과거와 비교해서 조금 줄었는데 폭력이 줄어든 건 아니겠지만 하소연을 할 수 있는 곳이 여기만이 아니라 다른 곳도 많이 생겼다는 뜻이 아닐까." (박금선 작가) 박금선 작가는 "<여성시대>가 시사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어떤 프로그램보다 시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그는 "뉴스를 보지 않는 사람들도 필요한 소식을 접할 수 있게 내용을 담는다"며 "단순히 아름다운 세상 이야기, 열심히 살자는 이야기만 쓰는 건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라디오 <여성시대>를 통해 본 2016년 대한민국의 풍경은 어떨까. 크고 작은 사연들을 통해 세대의 풍경을 본 <여성시대>의 박정욱 피디, 박금선 작가가 입을 열었다. 20대의 취업과 결혼"대표적으로는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담은 사연이 많이 온다. 그리고 자녀들 취업·결혼 문제. 3~4년 전부터 심각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이 오더라. 왜 자녀들이 결혼을 미룰 수밖에 없고 생각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지가 편지 속에 잘 드러난다. 또 젊은 친구들 편지에는 '부모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는 말로 끝나는 편지가 많더라.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어떤 식으로든 부모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으니 편지를 쓰는 것 같다. '저는 시험공부를 몇 년째 하고 있는 사람인데 부모님께서 뒷바라지를 해주신다, 너무 죄송하고 몇 년만 기다려주세요 꼭 효도할게요' 같은. 취업 문제가 저절로 심각하게 느껴진다." (박금선 작가) 전후세대의 감소 "개인적으로 한국 현대사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북한이 고향인 분들, 전쟁을 겪은 분들이 쓴 개인적인 기록은 간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복사를 해놓았다.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6월이면 한국 전쟁과 관련된 편지가 많이 왔다. 이제 그런 것들이 사라지고 이산가족 편지도 사라졌다. 그렇게 손편지를 써주시는 분들 대부분이 꼭 편지 끝에 북한 평양에 있는 자기 집 약도라며 손으로 그림을 그려 보낸다. '그 곳이 눈에 선하고 훗날 통일이 돼 평양에 가서 자기 집을 찾을 거라고' 쓰신다. 그런 분들 편지가 점점 없어진다. 이제 그 분들의 자녀들이 편지를 쓴다. '옛날에 저희 아버지가 그런 말씀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돌아가셨어요. 술 드시고 명절 때 우시면서 고향 이야기 하시고 종이에 자기 집을 그리면서 '여기가 '우리집'이고 이 집이 개울에 다리를 건너 몇 번째 집이고'. 아버지가 부르시던 노래가 생각난다는 편지 올해도 한 두 통 본 것 같다. 그 전에는 자녀들을 통해서가 아닌 그 분들이 직접 편지를 보내셨지만." (박금선 작가) 요양원으로 간 부모들"몇 년 전부터는 요양원이나 요양보호사에게도 온 편지가 눈에 띈다. 부모를 요양원으로 보내며 가족 간의 갈등이 많이 드러나고 그걸 보면서 '아 우리 세대가 정리를 해줘야겠구나' 싶더라. 그래서 요양원이나 요양 보호사에 대한 특집도 여러 번 했다. 이를 진행하며 '요양원이 버림 받은 사람들만 가는 건 아니다. 앞으로 기꺼이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이 든 부모를 요양원에 보내 죄송하다는 편지도 많이 온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강요받았던 '효(孝)'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바꿔가야 하고 그런 부담을 덜어줘야 다음 세대도 편하지 않을까. 부모님이 연로해서 치매가 생긴 것이 자녀가 죄송해야 할 일은 아니다. 그런 걸 보면 안타깝고 <여성시대>에서 물밑작업을 통해 조금씩 인식을 바꿔가야겠다는 합의도 한다. 그런데 그런 방송을 하면 항의 문자가 되게 많이 온다. 이런 '불효막심한 사람'이 어딨냐고. 그런 사람의 편지를 왜 방송하냐고. 그런 분들은 부모님이 편찮으시면 모든 걸 그만두고 집에서 봉양을 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우리는 과도기에 있는 것 같다." (박금선 작가) 친구 같은 엄마? "편지를 보면서 배운다. '나이 들면 이런 모습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 젊었을 때는 '이런 엄마였으면 좋겠다'는 모델들을 편지에서 많이 본다. '집착하지 않는 엄마'가 되겠다고도 많이 생각했다. 교육에 열의는 있지만 집착하지 않는 엄마. 친구 같아야 한다는 이유로 너무 밀착되지 않아야 한다고. 모든 부모는 자녀와 친구가 되고 싶겠지. 조금 더 간섭하고 싶을 때 '저건 저 아이가 스스로 정리해야 할 문제니까 나는 빠져야겠다'는 걸 깨달을 수 있는 엄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친구 같은 엄마들도 참 많다. 그러다 보니 너무 많은 것에 관여하고 욕심이 많아진다. 물론 보기 좋은데 가끔 부작용이 느껴지는 편지들이 있다. 그래서 20대 여성들을 보면서 안쓰러울 때가 많다. 예전에는 아들에게 많이들 기대했는데 이제는 딸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거다. 친구도 돼주고 나이가 들었을 때 아들에게 기대하지 않는 보호자 역할을 딸에게 기대하기도 하고. 이 시대 딸들이 옛날의 아들보다 훨씬 더 어깨가 무겁다는 생각을 한다. 취업을 해서 성공한 자녀가 되고 또 아들 딸 구별 없이 자식을 낳고. 결혼을 해서도 밀접한 관계를 갖길 바라고 아플 때는 용돈도 드리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딸이 되기를 원한다. 아들에게는 그렇게 많은 걸 기대하지 않는데 딸에게 많은 걸 기대하기에 '나이가 들수록 힘들겠구나' 싶다." (박금선 작가) 세대를 넘나든 영원한 숙제 '인간관계'"취준생이면 취준생끼리 공감을 한다. 애를 낳아서 키우는 사람들은 비슷한 사람들에게 공감하고. 20대 부부든 70대 부부든 가정에 불만이 있다면 서로 공감할 수 있다. 역시 집에 누가 아프다면 나이에 상관 없이 비슷한 걸 느낄 수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은 아마도 편의점에서 알바를 할 때 라디오를 틀어놨다가 설움 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그와 비슷한 사연이 나오니 자신의 사연을 보내더라.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취업준비를 하는 학생들에게서 사연이 주로 오고 직장 생활을 하는 2030대 사이에서는 많이 오지 않는다. '사람 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자' 싶었다. 젊은 사람이라도 해도 각자 다 정서가 다르다. 소위 금수저나 은수저, 흙수저가 다르고 남성과 여성이 다를 거고, 지역에 따라 다를 것이다.부모가 큰 병에 걸렸다는 사연이 오면 전혀 다른 연령층의 사람에게 '우리 가족도 그 병에 걸렸다'며 문자가 실시간으로 온다. 물론 똑같은 상황에 처해있지는 않더라도 마음이 더 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삶을 겪으며 결국은 공감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박정욱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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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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