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핵발전소) 사고 재앙을 다룬 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과 자문을 맡은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원전(핵발전소) 사고 재앙을 다룬 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과 자문을 맡은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가 뭉쳤다. 영화가 흥행과 별개로 제작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원전 사고에 대한 실제 대비 시스템의 수준을 진단하고자 기획한 만남이다. ⓒ 권우성


* 앞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영화 <판도라>에서 묘사하는 장면들은 분명 상상의 결과물이다. 동시에 우리는 여러 이상 징후에도 중지시키지 않고 가동 중인 노후 원전을 보유하고 있고, 더 나아가 현재 가동 중인 24기에 이어 추가로 10개 이상의 원자력발전소를 더 지을 예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판도라> 속 재난 상황은 완전한 가공의 이야기가 아닌 아직 오지 않은 우리의 미래일 수도 있다.

첫 번째 기사에선 영화의 제작 배경에 대한 박정우 감독과 김익중 교수의 대화가 이어졌다. 이 지면에선 더욱 구체적으로 영화 속 설정을 하나하나 짚어 현실과 비교해 전한다.

수많은 사고 원인들

 '반핵' 메시지를 품은 영화 <판도라>의 스틸 이미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이 작품은 지난 7일 개봉 이후 꾸준하게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난 관객은 질문할 수밖에 없다. 과연 우리는 안전한지. ⓒ NEW


<판도라>에서는 한빛 발전소 폭발 직후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주인공 재혁(김남길 분)은 동료 직원들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너진 발전소 안에서 사투를 벌인다. 방사선 피폭 등을 실감 나게 시각화하기엔 한계가 있기에 박정우 감독은 먼지 구름, 흩날리는 분진, 각종 사운드 효과를 이용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처참한 사고를 겪었지만, 관객 입장에선 우리나라 곳곳에 우뚝 세워진 원전을 보고 이렇게 물을 만하다. '정말 안전한가? 그리고 정부 및 관계 당국을 믿어도 되나?' 박정우 감독과 김익중 교수의 답은 이렇다.

"지금까지 드러난 원전 문제도 (관계 당국이) 두루뭉술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방사능 자체가 보이지 않고 혹시나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그걸 입증하기 어려워서다. 우리로선 그나마 후쿠시마 비극을 떠올리며 생각해볼 수 있지. 국민이 그나마 전보다 원전에 대해 알고 있고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게 영화화하는 입장에선 좀 도움이 됐다. 사고가 터져 사람들이 피폭당하는 것도 큰 비극이지만 우리나라 구조상 피난 대책 등이 전혀 없어 보인다는 게 더 문제였다." (박정우 감독)

"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 측은 늘 발전소의 전력상실만 막으면 걱정 없다고 하는데 후쿠시마 원전도 쓰나미가 넘어와 비상 발전기가 물에 잠기는 바람에 결국 전력상실이 일어나서 터진 거다. 한수원은 전력상실을 가장 무서워하는 것 같다. 그것도 물론 조심해야 하는 사고 원인이지만 그것 말고도 여러 가지가 원전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파이프 누수로 인한 냉각재 상실, 증기발생기 파단(절단) 등 말이다." (김익중 교수)

 영화 <판도라>에서 원전(핵발전소) 관련 자문을 맡은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김익중 교수는 영화 제작 내내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탈핵을 주장하고 있는 그는 영화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원전의 위험성을 알고 공부하길 바라고 있었다. ⓒ 권우성


- 영화에선 피폭당한 이들이 발진 증상을 보인다. 실제 상황에서도 이렇게 갈 가능성이 큰가. 또 방사능 안전 기준치가 무의미함을 꾸준히 주장해 오셨다. 그에 관해서도 설명 부탁드린다.
김익중(아래 김) "<판도라>에 나오는 발진과 코피 등은 급성 피폭으로 인한 증상이다. 즉 한꺼번에 많은 방사능에 피폭됐을 때 나타나는 유명한 증상들이다. 과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핵폭탄 사건 때 근방에 살던 사람들, 또 후쿠시마 사고를 겪은 일부 주민들이 보인 증상으로 그밖에 더 많은 사람은 유전병에 걸리고, 60년 정도에 걸쳐 천천히 피폭 증상이 나타난다. 안전기준치라는 자체가 어폐인 게 그 양에 비례해 암 발생 확률이 증가한다. 방사능이 아예 없어야 하는 거지. 보통 1Sv(시버트)만 피폭돼도 사람이 죽는다."

박정우(아래 박) "자료조사 하며 알게 된 건데 안전수치 그런 건 말장난인 거지. 운영상 편의 때문에 정해진 수치다. 일본도 후쿠시마 사고 직전 안전수치가 사고 이후 두 배로 올랐다. 뭔가 더 배상해야 하고 활동에 제약이 있을 거 같으니 관계 당국끼리 결의해서 안전수치를 올려버린 거다. 그냥 대응하기 용이하게 기준을 잡아둔 거지 그 이하로 피폭된다고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들이 현혹되는 게 원전을 잘 몰라서 그렇다. 해운대 사는 사람도 발전소가 어디에 몇 개 있는지를 모르더라. 진짜 이 말은 하고 싶었는데 같은 핵분열을 가지고 군사무기로 쓰면 핵무기가 되고 발전소에서 쓰면 원자력발전이란다. 말장난이다. 핵과 원자력은 어감의 차이가 크지. 북한의 핵무기 개발 들먹이며 핵이라고 하면 인류가 멸망할 것 같고, 금방 전쟁이라도 날 것 같다고 난리를 치는데 원자력 발전소 하나 짓는다고 하면 그렇게 잠잠하다. 핵연료를 때려 넣고 통제 못 할 수도 있는 걸 우리가 짓고 있는 건데 아무 일도 없을 것처럼 넘어간다. 오래전부터 운용자들이 만든 프레임에 걸려 있는 거다. 제일 먼저 우리가 해야 할 건 원자력발전이 아니라 핵발전소라고 아예 못 박아놓는 거로 생각한다."


 '반핵' 메시지를 품은 영화 <판도라>의 스틸 이미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이 작품은 지난 7일 개봉 이후 꾸준하게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영화 속 박평섭 소장(정진영 분)은 등장하는 캐릭터 중 가장 책임감 있고 합리적 인물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원전의 위험성을 애써 직시하진 않는다. 박정우 감독은 "더 많은 관객들의 입장을 담고 싶었다"며 "박 소장 캐릭터는 영화의 중심축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 NEW


- 그런데 영화를 보면 대놓고 원전에 반대하는 캐릭터는 나오지 않는다. 사건을 수습하는 박평섭(정진영 분) 소장마저 잘만 관리하면 안전하다는 주의 아닌가.
"나야 근본적으로 반대 입장이니 동의할 순 없지만, 실제 박 소장같이 책임감 있게 일하시는 분은 종종 계신다. 원자력이 큰 혜택을 주니까 안전하게 관리하면 된다며 진지하게 말하는 분도 계신다. 훌륭한 자세지만 난 묻고 싶다. 100%로 통제가 가능하냐고. 정말 100%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직접 묻고 싶은데 무례한 질문이라 그러질 못했다."

"영화 속 인물은 나름 세대와 신분을 대변하도록 배치했다. <판도라>를 통해 내일 당장 원전을 멈추라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이런 위험이 있으니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세우는 걸 논의하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각 캐릭터가 원전에 대응하는 자세가 각각 다르지. 재혁의 엄마인 석여사(김영애 분)는 맹목적 신뢰를 보이고, 재혁 같은 젊은 세대는 그 동네를 빨리 뜨고 싶어 하고, 재혁의 친구들은 어느 곳에도 낄 수 없는 하청업체 직원 신분이니 그냥 일하며 살아간다. 박 소장은 중립이다. 그래도 아직 중간자적 입장인데 사고를 겪은 후인 영화 마지막에선 석여사도 박 소장도 같은 생각을 했을 거다."


재난 시나리오 대비 자체가 부족

 '반핵' 메시지를 품은 영화 <판도라>의 스틸 이미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이 작품은 지난 7일 개봉 이후 꾸준하게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맹목적인 믿음을 보였던 인물도 있고, 의심하는 인물도 있다. 그리고 갑작스레 발생한 사고는, 이들의 일상을 모두 파괴한다. ⓒ NEW


이야기는 좀 더 깊어졌다. 박정우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노후 원전이 몇 번의 작은 사고 이후에도 재가동 되는 현실에 혀를 내둘렀다. 야당 추천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으로 의결권을 행사한 김익중 교수는 사사건건 당국의 안일함을 지적하며 재가동과 추가 원전 건설을 반대했지만 밀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이 영화를 통해서라도 시민들이 좀 그 위험을 인지하셨으면 좋겠다"는 공통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 사고 발생 시나리오 중 영화에서처럼 지진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사고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지.
"솔직히 지진으로 인한 사고는 생각 안 했는데 제가 경주에 살지 않나. 최근 몸으로 겪고 나니 떠오르는 게 지진밖에 없더라. 지진 이후 조사를 해보니 그에 대한 대비가 정말 안 돼 있다는 걸 알았다. 지진 말고도 오래된 시설에 균열이 나며 조금씩 위험해지는 시나리오도 있다. 다만 영화처럼 대처할 시간 없이 팍 사고가 터지는 시나리오가 바로 아까 언급한 증기발생기 파단 사고다. (열쇠고리를 보여주며) 이게 바로 거길 흐르는 쇠관이다. 300도가 넘는 물이 흐르고 100기압이 걸려 있다. 이 얇은 파이프 안에 말이다. 이게 깨지면 엄청난 방사능이 담긴 1차수가 밖으로 나오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대처할 시간이 거의 없지.

지진 대비에 미약하다는 팩트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겠다. 우리나라 전체 원전 중 신고리 3, 4기가 진도 7, 나머지는 진도 6.5의 내진설계가 돼 있다. 해외에서도 참 이상하게 보는 게 지어진 부지가 다 다른데도 내진설계는 하나같이 6.5라는 점이다. 우리 법에 원전 부지에 대해 지진 안전성을 측정할 때 두 가지를 고려해 최대지진을 계산하도록 돼 있다. 하나는 반경 350km 내에서 발생한 역사적 지진을 고려하고, 다른 하난 반경 40km 이내에 있는 단층을 조사해 고려하게 한다. 이 둘을 종합해 여유분을 둬서 최종 설계를 해야 하는데 국내 원전은 두 번째 조사를 안 했다. 그러니 부지가 서로 다른 네 곳이라도 1번 항목만 반영했기에 내진이 똑같은 거지. 우리나라 원전은 다 불법인 거다."

"영화 마지막에 자막이 올라가잖나. 일종의 경고성 글인데 관객분 중에 정말 사실이냐 묻는 분도 많다. 그조차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다는 거지. 자막을 더 길게 넣을 수도 없는 일이고 궁금하신 분은 김 교수님의 <한국 탈핵>이라는 책을 보시라(웃음)."

 김익중 교수는 인터뷰 중 자신의 열쇠고리에 달린 링모양의 물건을 꺼내보였다. 바로 원자로 내 증기발생장치를 채우고 있는 쇠관 일부를 절단한 것이었다.

김익중 교수는 인터뷰 중 자신의 열쇠고리에 달린 링모양의 물건을 꺼내보였다. 바로 원자로 내 증기발생장치를 채우고 있는 쇠관 일부를 절단한 것이었다. ⓒ 이선필


- 원자력안전위원회 활동을 하셨으니 현장에서 보고 느낀 점이 궁금하다. 사고 발생 시 우리나라 콘트롤타워는 제대로 작동할 것으로 보시는지.
"유사시 위원회 위원장을 주축으로 청와대와 총리, 국민안전처, 행자부, 보건복지부 등과 협력해서 회의를 주재하게 돼 있다. 문제는 안전위원장은 차관급인데 장관을 모아서 회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작 자체가 문제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대비 매뉴얼을 정비하긴 했다. 근데 이게 제대로 작동할지 의심 가는 부분이 매우 많다. 다 이야기하자면 길고, 간단히 말하자면 정말 원전사고가 난다면 딱 <판도라>처럼 될 거다."

"시나리오 쓸 때 신경 쓴 게 사고 때 나와서 엉뚱한 소리 하는 장관이나 대통령을 희화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만 똑똑하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면죄부를 줄 거 같아서였다.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무리 명석하고 신출귀몰한 사람들이 모여도 원전사고는 불가항력으로 못 막는다는 거였다. 댓글 보면 무능한 정부 어쩌고 나오는데 정확히 말하면 무능한 게 아니라 무능해져 버린 거지. 청와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보짓을 하진 않지 않나. 잘못된 짓을 할 뿐이지. 시스템이 미비하다는 것도 문제지만 돼 있어도 사고 대처는 안 될 거라고 본다."

"근데 시스템도 큰 문제긴 하다. 법 자체가 웃기게 돼 있다. 진도 6.5 이상 지진은 안 난다고 법으로 가정하고 있다. 전문용어로 설계기준 초과사고 하는데 그건 아예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원전 폭발은 없을 거라고 가정했기에 그에 대한 대비책도 없다. 이제 조금씩 가정하도록 법이 바뀌는 중인데 이게 또 소급적용이 안 된다. 이미 건설된 원전엔 적용이 안 된다는 뜻이지. 휴…. 말하자면 진짜 길다."

- 위험지대를 빠져나오는 영화 속 묘사도 그럼 사실인가.
"기획하면서 우리나라 전도를 펼쳐두고 도로를 표시해봤다. 사고 나면 어디로 피난 가야 하나 보는데 못 간다! 고리 주민들은 진짜 그 국도 하나 타고 나와야 한다. 실제로 그거 하나고 그걸 보고 영화에 넣은 거다."


"대피 매뉴얼도 있긴 하다. 하지만 감독님 말처럼 도로 구조 자체가 그래서 의미가 없다. 기껏해야 5km 안 주민만 대피시키는 매뉴얼인데 3km 이내만 해도 몇만 명이 살고 있다.

 원전(핵발전소) 사고 재앙을 다룬 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

실제 재난 발생을 상상하며 우리나라 전도를 펼쳐보았다던 박정우 감독은 "정말로 도망갈 곳이 없더라"며 혀를 찼다. ⓒ 권우성


-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게 매우 견고하게 서로가 결집해 있는 '핵피아'(원전+마피아의 합성어) 때문은 아닌지. 교수님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문제다.
"농담처럼 원자력공학과 출신은 마피아라고들 부른다. 핵피아라는 건 원전을 통해 큰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라 정의할 수 있다. 작게는 원전 사업자, 크게는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학계와 정치계, 언론계까지 포함한다. 그 수는 적을지언정 돈과 조직력이 엄청나고 큰 힘을 갖고 있다. 원자력진흥위원회가 국내에 생길 정도면 말 다했지. 대통령 직속 기구인데 법적으로 굉장한 혜택을 받도록 했다. 견고한 법적, 정치적, 행정적 구조를 만들어 낸 거지. 이들을 감시하고 관리해야 하는 원자력위원회 위원들도 다 로비의 영향을 받는다. 

재밌는 건 박정희 정권 이후 성장한 토건세력과 핵 산업 세력이 절반 이상 겹친다는 사실이다. 원전 짓는 회사가 현대건설, 삼성건설 등인데 대표적인 토건세력 아닌가. 원전 하루 돌리면 8억 원 정도를 번다고 한다. 반대로 멈추면 하루에 그만큼 손해가 나는 거니까 기를 쓰고 돌리려고 하는 거다."

"우리도 처음에 영화화한다고 했을 때 한수원 쪽에서 그렇게 만나려 했다. 실제 만나기도 했고,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원래 그들이 그렇다. 처음엔 부드럽게 접근해서 정보를 알아낸다. 밥을 자꾸 먹자고 하고 술 먹자고 한다. 3년의 계획을 세우고 장기적으로 접근하는 거다(웃음)."

원전 이야기에 약속한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영화 이야기에서 어느덧 제도 문제까지 깊이 들어갔는데 결국 두 사람이 원하는 바는 간명했다. "관심을 갖자는 것, 그리고 가능한 빠른 탈핵이 왕도라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비극이 판타지로만 남게 하려면 "진지하게 생각하고 관심을 모아야 한다"는 이들의 말이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느냐 그대로 두느냐는 사실 우리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전(핵발전소) 사고 재앙을 다룬 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과 자문을 맡은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여러 난관을 뚫고 <판도라>를 개봉시킨 박정우 감독은 "스스로가 대견하다"고 주저없이 말했다. 국민적 관심을 원했던 김익중 교수는 "박 감독을 만난 건 정말 하늘의 기적"이라며 새삼 감격스러워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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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전문가도 울면서 본 <판도라> "이 영화 천만 명이 봐야 한다"

[판도라를 열다⑥] <판도라> 박정우 감독과 원전전문가 김익중 교수의 대담①

진짜 인연이라는 게 있다면 이 두 사람의 만남을 두고 말하는 게 맞을 듯싶다. 지난 7일 개봉해 관객들의 호응을 받는 영화 <판도라>의 박정우 감독과 김익중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다. 두 사람 모두 '핵'에 미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절대 발생해선 안 되겠지만, 두 사람은 한국이 맞이할 수도 있는 재난 중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고로 염두에 둔다. 그래서 한 명은 지난 4년간 영화로 말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또 다른 한 명은 수천 건의 강연을 돌며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려 했다.애초에 서로가 긴밀하게 알고 있었다. 김익중 교수는 <판도라>의 자문위원으로 도움을 줬고, 동시에 박정우 감독의 취지를 누구보다 지지하고 응원했다. 모태펀드 투자 철회, 한국수력원자력 등 관계 당국의 비협조 등을 겪은 박정우 감독 역시 국회 야당 추천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온 김익중 교수의 존재가 절실했다. <오마이스타>는 영화 흥행 즈음하여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맺힌 한을 풀다 "4년 전 처음 자료조사 할 때 탈핵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그 무렵에 교수님이 쓴 <한국 탈핵>을 보고 제작부에 얘기해서 교수님을 꼭 만나게 해 달라 했다. 그래서 만났는데 당시 교수님이 안전위원회 위원이셨다. 내 입장에선 엄청 힘 있는 분이었지(웃음). 원전에 대한 정보를 얻고, 영화 시나리오도 보내드리면서 자문을 받았다. 교수님은 '이게 상업영화로 나오는 게 가능한지 물으셨고, 가능하다면 진짜 고마운 일이다'라고 하셨다." "맞다. 좀 의심했다. 이런 영화를 한국에서 감히? 이 시점에?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어쨌든 박 감독이 하시면 도와드린다고 했다. 못 하면 할 수 없는 거고. 감독님에게 '예산이 얼마나 듭니까?' 물었는데 200억 투자를 받았다고 하더라. 100억 원을 받았고, 정부 펀드에서 100억이 더 나온다고…." "(놀라며) 제가 그랬나? 정부 펀드 100억은 제가 좀 뻥을…. (웃음) 펀드는 50억 예상했는데 그게 철회될 줄 몰랐지. 하여튼 당시엔 150억 정도 생각했었고, 돈을 많이 들일수록 투자 쪽에선 부담스러우니 100억과 120억 사이에서 결정하자는 생각이었다. 교수님 뵀을 때가 시나리오가 나온 상황이었고, 투자가 어느 정도 된 상황이었다. 이거면 일단 절반은 된 거니까 영화화가 가시권에 들어왔을 때 교수님을 뵌 거지. 어휴, 이 영화 하느라고 투자사를 세 번이나 옮겼다. 뭐 소재 때문에 쫓겨난 건 아니고 다른 영화처럼 겪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러다 NEW(현 투자배급사)에 정착했지." "인연인가, 팔자라고 해야 하나. <연가시> 하면서 재난에 대한 참고자료를 모으잖나. 그러면서 본 거였다. 한국에서 재난영화를 나 말고 누군가 한다면 남은 소재는 블랙아웃 아니면 원전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 찰나에 후쿠시마 사고가 난 거다. 우리도 노후 원전이 있으니 대책을 세우고 여러 논의가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며 조용히 지나가려 하더라.<연가시>가 혹시라도 잘 되면 힘들게 찍으며 배운 노하우를 제대로 된 예산에서 마음껏 발휘할 재난영화를 하겠다고 되뇌고 있었다. 한이 맺혀서. 그러다가 <연가시>가 어느 정도 됐고, 아무래도 민감한 소재라 투자사를 살짝 떠봤지. 다음엔 이런 소재가 있는데~ 해서 '에이!' 이런 반응이면 안 하려고 했다. 근데 다들 '오! 좋아!' 이러더라. 원전 소재의 파급력이 상업적으로 계산되니 나오는 반응이었다. 깊이 파면 위험하지 않나 이런 생각보단 일단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어? 세상이 내 생각보단 희망적이네?'라는 생각이 들었지(웃음)." "난 사실 시나리오만 보고도 이미 만족이었다. 징징 울면서 봤다(웃음). 더군다나 나는 영화화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 아니었나. 영화로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 눈물 날 정도였는데 <판도라>는 대놓고 울리잖나. 시나리오 보고 울었고, 영화를 보면서도 울었다. 그래픽이 굉장히 좋았던 것 같다. 사진 한 장 보내면 그걸 딱 구현해내더라. 스토리 자체는 내가 손대면 안 되는 거고, 숫자들과 전문용어들에 대해 조언했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게 탈핵 운동하시는 분들은 상업영화 형식을 거부할 수도 있잖나. 사실을 드라마에 얹어서 가니까. 근데 교수님은 흔쾌히 이해하셨다. 또 영화적 내용에 개입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교수님은 안 그러셨다. 뭐 이 영화가 나오는 걸 달가워하지 않은 분들은 뭐가 사실과 다른지 현미경을 들이대겠지. 그래서 수치 하나 단어 하나 등을 면밀히 교수님께 확인받았다. 그 외에 법률적으로 문제 될 것들, 지명 사용이나 회사명 사용(한국수력원자력이 영화에서 대한수력원자력으로 표기되는 등) 같은 것도 자문받았다." 보이지 않는 공포그렇게 해서 등장한 영화는 21일 현재 기준으로 340만 명이 관람했다. 12월 초 비수기를 감안하면 폭발적 반응이다. 재난영화 장르와 가족애를 강조한 작품 자체에 대해 여러 평가 나오고 있다. 만든 이 입장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를 어떻게 전달하는지가 가장 과제였을 터. 이에 관해 물었다. "체르노빌도 여전히 30년이 지났지만, 복구 중이다. 아니, 복구가 아닌 버티고 있는 거지. 후쿠시마도 그렇고. <판도라>도 현실대로라면 절망적이고 비참하게 끝나야 한다. 그렇게 끝내도 되지만 그래도 이런 사고가 나기 전에 우리에겐 막을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또 마지막을 절망으로 끝내는 건 우리 정서상 감독으로서는 몹쓸 짓이라 생각했고. 과학적으로 따지면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으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몇십 년 뒤에도 복구를 위해 수만 명이 거기 매달려야 하지. 뭐 부산까진 모든 게 다 망가져 있을 거고. 어휴, 이렇게 만들었는데 정신 못 차리고 세상이 그대로라면 속편 또 만들어버릴 거다! (웃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유일한 불만 지점이었다(웃음). 왜 하필 지진일까. 그간 발생한 원전 사고 사례를 보면 미국 스리마일 건은 사람들의 실수, 즉 인재였고, 체르노빌은 과학자들의 실수, 후쿠시마는 지진과 쓰나미 등 자연재해였다. 핵사고의 원인은 엄청 많다. 그중에 딱 세 가지만 나왔을 뿐이다. 이 세 개 중 하나가 반복될 확률은 아주 낮다고 생각했다. 다음 사고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원인일 거라 봤지. 근데 하필 지진이었을까. 생각해보니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 리얼리티가 더 좋아질 거 같더라. 요즘 보면 사람의 상상력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도 들고. "최근 발생한 경주 지진이 아니었으면 <판도라>를 보고 절반 이상은 '설마, 진짜 이럴까?' 생각했을 거다. 교수님도 책에 쓰셨듯 새로운 원인이 등장할 확률이 높을 것 같긴 하다. 깊이 들어가면 부식된 파이프 하나가 터져서 사고 날 수도 있다. 여러 자료를 보다가 우리나라가 지진에서 안전하지 않고 원전이 활성단층 위에 지어졌다는 보고서가 있는데 그걸 묵살한 채 지었다는 걸 알게 됐다. 몇백 년 주기로 큰 지진이 있었다는 문헌도 있더라. 개연성이 있는 거지. [판도라를 열다①] 현 정부의 또다른 아킬레스건, 이 영화가 폭로한다
[판도라를 열다②] 소름끼치는 상상력... "내가 대통령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
[판도라를 열다③] 박근혜 대통령과 판박이... 끔찍해서 끝까지 보기 힘들다
[판도라를 열다④]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원전사고 지역에서 벌어진 일들
[inter:view] 김남길 "정치 까는 영화? 죽는다고 생각하고 최선 다했다"[판도라를 열다⑤] 비서실장 사라지고, 대통령 대사 줄고... <판도라>를 둘러싼 의혹들

이원근, 김하늘·유인영 사로잡은 마성의 수다쟁이

[inter:view] 영화 <여교사>의 이 남자, 2017년이 기대된다

배우 이원근이 인터뷰를 준비 중인 기자들에게 건넨 첫 마디였다. 괜찮다는 말에도 "지금 한창 당 떨어질 시간이잖아요. 우리 뭐 먹으면서 해요~"라며 조각 케이크와 호떡을 바리바리 챙겨 왔다. 기자들에게 포크를 하나씩 나눠주며 라운드 인터뷰(여러 명의 기자가 한 명의 취재원을 인터뷰하는 것)가 처음인데 종일 카페에 갇혀있으니 답답하다며 앓는 소리를 했다.테이블 위에 단 것을 한 상 펼쳐놓고서야 대화, 아니 수다가 시작됐다. 종일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느라 지쳤을 법도 하건만, 그는 내내 밝고 유쾌한 톤으로 이야기를 쏟아냈다. 첫 영화, 첫 언론 시사, 첫 영화 인터뷰. 이원근에게는 <여교사>와 관련된 모든 일이 아직은 신기하고 즐겁기만 한 듯했다첫 영화라 더 특별했다 그는 <여교사>를 "흥행과 상관없이, 복덩이 같은 작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100살까지 살더라도, <여교사>를 인생의 가장 큰 변환점으로 꼽을 것"이라면서 "감독님께 몇 번이나 말했는데 자꾸 '거짓말하지 마라'고 한다. 의심하지 마시라 해도 만날 의심한다"며 밝게 웃었다. 김태용 감독과는 영화를 찍는 동안 형·동생처럼 친해졌다더니, 그의 디렉션이 얼마나 꼼꼼하고 치밀했는지, 이르듯 설명하는 말투에 김태용 감독을 향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다.<여교사>에서 이원근이 맡은 역할은 두 여교사 효주(김하늘 분)와 혜영(유인영 분)의 욕망을 자극하는 고등학생 재하다. 두 교사 사이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재하의 표정 하나, 눈빛 하나, 대사 하나, 모두 <여교사>의 긴장을 극대화하는 요소다.진짜 고등학생 연기하기 재하의 표정이나 대사는 영락없는 10대 남학생. 그래서 그의 의뭉스러움과 영악함이 더 날카롭게 드러난다. 재하의 아이 같은 말투를 위해 이원근의 목소리라도 잠겨있으면 풀릴 때까지 기다려주고, 후시 녹음까지 했지만 '발음이 너무 또박또박하면 인위적'이라는 이유로 뭉개진 현장음을 그대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감독과 이원근의 이런 세밀하고 디테일한 노력 덕분에, 재하의 '묘한 느낌'은 뭉게뭉게 피어난다.김 감독은 허리를 굽히고 있으면 '구부정한 무용수가 어디 있느냐'며 곧은 자세를 유지하도록 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대사하면 '재하는 건방진 아이는 아니'라고 알려주고, 우는 연기를 할 때는 비슷한 감정의 다큐멘터리까지 구해다 줬단다. 일대일 과외마냥 세심한 지도 덕분에 이원근도 배우로서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다.김하늘의 눈동자 김태용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한바탕 쏟아낸 그는, 이번엔 김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무 아름다워 모든 동작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였다"는 들뜬 말투에서, 좋아하는 스타를 만난 팬의 생생한 후기가 느껴져 절로 웃음이 터졌다.김하늘의 연기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 역시, 이원근에게는 큰 공부가 됐다. 특히 그가 감탄한 부분은 눈동자였다. 눈동자 떨림에서까지 감정이 느껴지는 그의 연기를 보며 "시선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법을 배웠다"고. 그런 깨달음은 <환절기>를 촬영할 때 큰 도움이 됐다.<여교사>가 넘어야할 산 <여교사>에게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영화 <여교사>는 거칠게 표현하자면, 고등학생 제자를 사이에 둔 두 여교사의 치정극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자존심이 짓밟힌 두 여자의 무력감과 분노가 촘촘히 담겨 있다. 치정극의 탈을 쓴 감정 스릴러인 셈이다.영화 안에 어떤 메시지가 담겨있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든, '10대 제자와 교사들의 삼각관계'라는 소재가 주는 거부감은 <여교사>에 분명 마이너스 요소다. 우리 관객들 중에는 이런 소재 자체에 보수적인 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굿 와이프>의 이준호 변호사, <여교사>의 재하, 최근 웃는 얼굴 뒤로 의뭉스러움을 감춘 역할을 연달아 연기한 탓일까? 처음에는 밝은 표정으로 먹을 것까지 주며 먼저 다가온 그였지만, 어쩐지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거리감은 채 10분이 가지 않았다. 질문할 틈도 없이 이야기를 술술 쏟아내던 그는 귀여운 수다쟁이였고, 진지한 표정으로 연기와 영화에 관해 이야기할 땐 다음 작품이 더 기대되는 유망주였다.분명 <여교사>는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영화다. 개인적으로 '불호'에 가까웠던 <여교사>의 결말은, 그와의 대화하는 동안 두 번 세 번 곱씹으며 '호'로 바뀌었다. <여교사>가 원래 그런 영화인 것인지, 이원근의 힘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처럼, 그 역시 보면 볼수록,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호감이 상승하는 배우 그리고 사람이었다.2017년 첫 개봉작인 <여교사>부터, <환절기> <그대 이름은 장미> <괴물들> 등 그가 지난 시간 차곡차곡 쌓아온 작품들이 잇따라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2017년은 배우 이원근의 연기를 차근차근 곱씹을 수 있는 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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