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핵발전소) 사고 재앙을 다룬 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과 자문을 맡은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원전(핵발전소) 사고 재앙을 다룬 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과 자문을 맡은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가 뭉쳤다. 영화가 흥행과 별개로 제작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원전 사고에 대한 실제 대비 시스템의 수준을 진단하고자 기획한 만남이다. ⓒ 권우성


진짜 인연이라는 게 있다면 이 두 사람의 만남을 두고 말하는 게 맞을 듯싶다. 지난 7일 개봉해 관객들의 호응을 받는 영화 <판도라>의 박정우 감독과 김익중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다. 두 사람 모두 '핵'에 미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절대 발생해선 안 되겠지만, 두 사람은 한국이 맞이할 수도 있는 재난 중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고로 염두에 둔다. 그래서 한 명은 지난 4년간 영화로 말하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또 다른 한 명은 수천 건의 강연을 돌며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려 했다.

애초에 서로가 긴밀하게 알고 있었다. 김익중 교수는 <판도라>의 자문위원으로 도움을 줬고, 동시에 박정우 감독의 취지를 누구보다 지지하고 응원했다. 모태펀드 투자 철회, 한국수력원자력 등 관계 당국의 비협조 등을 겪은 박정우 감독 역시 국회 야당 추천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해 온 김익중 교수의 존재가 절실했다. <오마이스타>는 영화 흥행 즈음하여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했다.

맺힌 한을 풀다

 '반핵' 메시지를 품은 영화 <판도라>의 스틸 이미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이 작품은 지난 7일 개봉 이후 꾸준하게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반핵' 메시지를 품은 영화 <판도라>.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이 작품은 지난 7일 개봉 이후 꾸준하게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 NEW


- 두 분의 첫 만남부터 얘기해보자. 박정우 감독은 <연가시>와 <판도라>로 국내 최초로 재난영화를 연속으로 내놓은 감독이 됐다. 전작은 그렇다 쳐도 원전을 소재로 하는 게 만만치 않을 것은 직감했을 것 같다. 또 김익중 교수 역시 탈핵 운동가로 활동하며 그 한계를 느끼던 와중에 박 감독을 만났다고 들었다.
박정우(아래 박) "4년 전 처음 자료조사 할 때 탈핵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그 무렵에 교수님이 쓴 <한국 탈핵>을 보고 제작부에 얘기해서 교수님을 꼭 만나게 해 달라 했다. 그래서 만났는데 당시 교수님이 안전위원회 위원이셨다. 내 입장에선 엄청 힘 있는 분이었지(웃음). 원전에 대한 정보를 얻고, 영화 시나리오도 보내드리면서 자문을 받았다. 교수님은 '이게 상업영화로 나오는 게 가능한지 물으셨고, 가능하다면 진짜 고마운 일이다'라고 하셨다."

김익중(아래 김) "맞다. 좀 의심했다. 이런 영화를 한국에서 감히? 이 시점에?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어쨌든 박 감독이 하시면 도와드린다고 했다. 못 하면 할 수 없는 거고. 감독님에게 '예산이 얼마나 듭니까?' 물었는데 200억 투자를 받았다고 하더라. 100억 원을 받았고, 정부 펀드에서 100억이 더 나온다고…."

"(놀라며) 제가 그랬나? 정부 펀드 100억은 제가 좀 뻥을…. (웃음) 펀드는 50억 예상했는데 그게 철회될 줄 몰랐지. 하여튼 당시엔 150억 정도 생각했었고, 돈을 많이 들일수록 투자 쪽에선 부담스러우니 100억과 120억 사이에서 결정하자는 생각이었다. 교수님 뵀을 때가 시나리오가 나온 상황이었고, 투자가 어느 정도 된 상황이었다. 이거면 일단 절반은 된 거니까 영화화가 가시권에 들어왔을 때 교수님을 뵌 거지. 어휴, 이 영화 하느라고 투자사를 세 번이나 옮겼다. 뭐 소재 때문에 쫓겨난 건 아니고 다른 영화처럼 겪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러다 NEW(현 투자배급사)에 정착했지."

"사실 이런 영화가 나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다큐멘터리 말고 상업 영화로. 그래서 연극과 교수인 친구 통해서 블록버스터 영화 만드는 감독님들과 접촉하려고 꽤 노력했는데 실패했다. 박정우 감독을 만나기 5개월 전부터 유명 상업영화 감독들을 만나려 했지. 근데 만나도 내가 설득하긴 힘들었을 것 같다. 반드시 상업 블록버스터 영화여야 했다. 천만 명을 동원할 수 있는. 그게 내 꿈이었다. 왜냐면 원전 사고는 한 번 나면 감당이 안 되는 규모다. 한국에서 사고 날 확률이 제로가 아니잖나. 미국, 러시아, 일본 등 대표적인 원자력 선진국도 사고가 났다. 우리나라도 보장 못 한다. 땅이 좁아서 훨씬 충격이 클 것이다.

사고 나기 전에 원전을 싹 닫지 않으면 언제가 됐든 일이 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려면 정책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럼 여론이 바뀌어야 하고, 나처럼 책 내고 강연을 하러 다녀서는 도저히 되지 않더라. 적어도 천만 명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론이 바뀌면 정치인들 자세도 바뀔 거니까. 결국, 상업영화뿐이더라. 전문 다큐 말고 핵사고를 직접 다루는 상업영화. 그 고민을 하던 차에 감독님이 딱 그 시나리오를 들고 오셨지. 얘길 들어보니 딱 원하던 영화였다. 정말 신이 도왔다고 생각했다."

 '반핵' 메시지를 품은 영화 <판도라>의 스틸 이미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이 작품은 지난 7일 개봉 이후 꾸준하게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영화 <판도라> 중 한 장면. 한국수력원자력의 촬영불가 방침으로 발전소 내부는 모두 강원도 춘천 지역 등에 세트를 지어 촬영해야 했다. ⓒ NEW


- <연가시> 때 그렇게 힘들다 해놓고 왜 또 재난에 그것도 원전에 꽂혔는가. 또 김익중 교수께선 어떻게 조언했는지.
"인연인가, 팔자라고 해야 하나. <연가시> 하면서 재난에 대한 참고자료를 모으잖나. 그러면서 본 거였다. 한국에서 재난영화를 나 말고 누군가 한다면 남은 소재는 블랙아웃 아니면 원전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 찰나에 후쿠시마 사고가 난 거다. 우리도 노후 원전이 있으니 대책을 세우고 여러 논의가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며 조용히 지나가려 하더라.

<연가시>가 혹시라도 잘 되면 힘들게 찍으며 배운 노하우를 제대로 된 예산에서 마음껏 발휘할 재난영화를 하겠다고 되뇌고 있었다. 한이 맺혀서. 그러다가 <연가시>가 어느 정도 됐고, 아무래도 민감한 소재라 투자사를 살짝 떠봤지. 다음엔 이런 소재가 있는데~ 해서 '에이!' 이런 반응이면 안 하려고 했다. 근데 다들 '오! 좋아!' 이러더라. 원전 소재의 파급력이 상업적으로 계산되니 나오는 반응이었다. 깊이 파면 위험하지 않나 이런 생각보단 일단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어? 세상이 내 생각보단 희망적이네?'라는 생각이 들었지(웃음)."

"난 사실 시나리오만 보고도 이미 만족이었다. 징징 울면서 봤다(웃음). 더군다나 나는 영화화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 아니었나. 영화로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 눈물 날 정도였는데 <판도라>는 대놓고 울리잖나. 시나리오 보고 울었고, 영화를 보면서도 울었다. 그래픽이 굉장히 좋았던 것 같다. 사진 한 장 보내면 그걸 딱 구현해내더라. 스토리 자체는 내가 손대면 안 되는 거고, 숫자들과 전문용어들에 대해 조언했다."

"다행스럽고 감사한 게 탈핵 운동하시는 분들은 상업영화 형식을 거부할 수도 있잖나. 사실을 드라마에 얹어서 가니까. 근데 교수님은 흔쾌히 이해하셨다. 또 영화적 내용에 개입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교수님은 안 그러셨다. 뭐 이 영화가 나오는 걸 달가워하지 않은 분들은 뭐가 사실과 다른지 현미경을 들이대겠지. 그래서 수치 하나 단어 하나 등을 면밀히 교수님께 확인받았다. 그 외에 법률적으로 문제 될 것들, 지명 사용이나 회사명 사용(한국수력원자력이 영화에서 대한수력원자력으로 표기되는 등) 같은 것도 자문받았다."

 원전(핵발전소) 사고 재앙을 다룬 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

<연가시> 이후 연이어 재난 영화를 선보인 것에 박정우 감독은 "정신차리지 않으면 속편을 만들겠다"며 호기를 보였다. 상대적으로 적은 예산으로 극적 긴장감을 전하며 어느새 그는 재난영화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었다. ⓒ 권우성


보이지 않는 공포

그렇게 해서 등장한 영화는 21일 현재 기준으로 340만 명이 관람했다. 12월 초 비수기를 감안하면 폭발적 반응이다. 재난영화 장르와 가족애를 강조한 작품 자체에 대해 여러 평가 나오고 있다. 만든 이 입장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를 어떻게 전달하는지가 가장 과제였을 터. 이에 관해 물었다.

- 사실 현실에선 원전 사고를 겪은 국가는 여전히 암울한데 영화는 나름 희망적이다.
"체르노빌도 여전히 30년이 지났지만, 복구 중이다. 아니, 복구가 아닌 버티고 있는 거지. 후쿠시마도 그렇고. <판도라>도 현실대로라면 절망적이고 비참하게 끝나야 한다. 그렇게 끝내도 되지만 그래도 이런 사고가 나기 전에 우리에겐 막을 기회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또 마지막을 절망으로 끝내는 건 우리 정서상 감독으로서는 몹쓸 짓이라 생각했고. 과학적으로 따지면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으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몇십 년 뒤에도 복구를 위해 수만 명이 거기 매달려야 하지. 뭐 부산까진 모든 게 다 망가져 있을 거고. 어휴, 이렇게 만들었는데 정신 못 차리고 세상이 그대로라면 속편 또 만들어버릴 거다! (웃음)"

 '반핵' 메시지를 품은 영화 <판도라>의 스틸 이미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이 작품은 지난 7일 개봉 이후 꾸준하게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영화 <판도라>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는 '지진'이었다. ⓒ NEW


- 영화에서 원전사고의 직접적 원인으로 지진이 등장한다. 이점에 있어서 교수님 생각은 어땠는지. 또 감독으로서는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공포를 묘사하는 게 참 힘들었을 거 같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유일한 불만 지점이었다(웃음). 왜 하필 지진일까. 그간 발생한 원전 사고 사례를 보면 미국 스리마일 건은 사람들의 실수, 즉 인재였고, 체르노빌은 과학자들의 실수, 후쿠시마는 지진과 쓰나미 등 자연재해였다. 핵사고의 원인은 엄청 많다. 그중에 딱 세 가지만 나왔을 뿐이다. 이 세 개 중 하나가 반복될 확률은 아주 낮다고 생각했다. 다음 사고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원인일 거라 봤지. 근데 하필 지진이었을까. 생각해보니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 리얼리티가 더 좋아질 거 같더라. 요즘 보면 사람의 상상력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도 들고.

"최근 발생한 경주 지진이 아니었으면 <판도라>를 보고 절반 이상은 '설마, 진짜 이럴까?' 생각했을 거다. 교수님도 책에 쓰셨듯 새로운 원인이 등장할 확률이 높을 것 같긴 하다. 깊이 들어가면 부식된 파이프 하나가 터져서 사고 날 수도 있다. 여러 자료를 보다가 우리나라가 지진에서 안전하지 않고 원전이 활성단층 위에 지어졌다는 보고서가 있는데 그걸 묵살한 채 지었다는 걸 알게 됐다. 몇백 년 주기로 큰 지진이 있었다는 문헌도 있더라. 개연성이 있는 거지.

교수님은 더 잘 아시겠지만, 원전 구조 파악과 촬영 협조를 얻기 위해 필리핀 원전에 가봤다. 우리나라 원전과 같은 구조인 시설이다. 사실 원자력발전소 하면 최첨단 과학의 집약체로 보잖나. 갔더니 보일러실 같더라. 엄청 많은 파이프와 배선으로 뒤엉킨 건물이랄까. 이게 진도 7을 버틴다? 솔직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만약 그 이상의 지진이 오면 어떻게 되나 생각했다. 현실적으로 합리적인 상상이라 생각하고 지진을 넣었다. 원인보단 사고 이후를 생각하고 만든 영화라 그땐 크게 의심치 않았는데 실제로 지진이 딱 나버리니까 당황했었지."

 원전(핵발전소) 사고 재앙을 다룬 영화 <판도라> 박정우 감독과 자문을 맡은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전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영화를 통해 이미 만난 인연이지만 개봉 직후까지 여타 할 교류가 없었던 박정우 감독과 김익중 교수는 서로에 대해서고 궁금한 게 많아 보였다. 김익중 교수는 한수원이 실제로 어떻게 비협조적이었고 압력을 넣었는지를 알고 싶어했다. 박정우 감독 대답에 "역시"를 연발하며 응답하는 모습. ⓒ 권우성


영화 <판도라>의 주요 설정에 대한 두 번째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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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우리 국민은 마음을 다쳤다" 정진영의 이유 있는 <판도라> 출연

[inter:view] 현실로 다가온 <판도라>... 달라진 시대에 대처하는 국민들

국가적 위기는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해결된다. 역사적으로도, 현실에서도, 영화에서도. 평범한 소시민들은 위기의 상황에서 그렇게 영웅이 된다. 배우 정진영이 <판도라>에서 연기한 박평섭 소장도 그런 인물이었다.13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정진영을 만났다. 그는 <판도라>의 대본을 가장 먼저 받아 본 사람 중 하나였다. 반(反)원전 주의자였던 그에게 찾아온 반원전 영화. 그는 책(시나리오)을 읽는 내내 "아니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영화가, 이 정도 스케일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싶었다고. 그는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무조건 한다"는 마음으로 곧장 출연을 결정했다.합리적 의심 그는 "(폐연료봉) 보관비용을 생각하면 원전의 최대 장점인 경제성도 무색해진다.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는데, 제대로 된 대비책도 없다. 게다가 원전 부품 납품 비리 뉴스도 있지 않았나. 유지관리가 잘 되고 있는가, 과연 안전하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의심은 합리적 의심"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영화 <판도라>는 상업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따라간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관련 정보와 메시지는 잘 만들어진 원전 다큐멘터리에 비견해도 될 정도였다. 정진영은 "감독이 원전에 대한 교과서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면서 "관객분들이 영화를 통해 원전 문제에 경각심을 갖게 되셨으면 하고 바랐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라며 만족스러워했다.현실이 돼 버린 허구사실 원전은 우리에게 그리 낯선 문제가 아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벌어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았음에도, 대다수 우리 국민들은 이를 '남의 일'로 여겨왔다.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에 있다는 믿음과,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 않아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영화 개봉 즈음 터진 경주 지진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아니었더라면, 관객들이 <판도라>를 통해 느끼는 공포는 훨씬 덜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판도라>에 호재라고 보기도 했다.원전의 위험성을 부각하기 위해 설정한 극 중 대한민국의 모습이, 4년 사이 현실이 되어버린 탓이다. 그는 관객들이 <판도라>를 통해 느끼는 공포의 이유를 "우리 국민이 여러 정치적 사태를 목격하면서 학습하신 것 같다"고 분석했다. <판도라>가 놓인 묘한 지점JTBC의 최순실 태블릿 PC 보도로 확산된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며 정진영은 "만약 JTBC가 아니었더라면, 저 태블릿 PC가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모르고 그냥 살았어야 했던 건가,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던 건가 생각했다"며 "오히려 그게 더 무섭고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현 시국으로 넘어갔다. 그 역시, 최근 수능을 마친 아들과 함께 5차 6차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다. "주위 시민들에게 들키지 않았느냐"고 묻자, "티 안 나게 조용히, 조심해서 다녀온다"며 웃었다. "불이익이 걱정돼서가 아니라, 대단한 일도 아닌데 주목받는 게 싫어서"다.1980년대 대학가 주도의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세대인 그에게, 이번 촛불 시위는 어떻게 보였을까? 몇 초 뜸을 들인 그는 "놀랍고 감동적이었다"며 말을 이었다. 배우도 국민의 한 사람그는 자신 말고도 많은 배우들이 광화문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모르지만, 배우들끼리는 '나 갔다', '너 갔냐' 하면서 알음알음 알고 있다고. 그는 "배우라고 특별한 사람인 건 아니지 않으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민과 같은 마음으로 나간 것일 뿐 대단한 일이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하지만 전면에 나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김제동과 이승환에 대해서는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하기도 쉽지 않은데, 그들처럼 지속해서 일관되게 행동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면서. 그는 "연예인이라서가 아니라, 일반인이라 해도 그 정도면 시민운동가 수준"이라며 "존경스럽다"고 말했다.이야기가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레 촛불 집회 참여나, 시국에 대한 생각을 밝혔지만, 그는 내내 "칭찬받을 건 우리 국민이고 김제동, 이승환 같은 사람들이지"라며 한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촛불 좀 들었다고) "주목받을 필요도, 그래서도 안 된다"는 이유다. "유명인들도 뜻을 함께하고 있다는 데에 힘을 얻는 분들도 있다"고 말하자 "필요할 땐 나서서 목소리를 내겠다"면서 필요한 곳에, 필요한 힘을 보태겠다는 뜻을 밝혔다.젊은 세대에 미안하다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주축 세대였던 그에게, 오늘날 촛불 집회의 중심인 젊은이들에게 한마디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제가 알던 시대의 생각으로 지금을 봐서는 안 될 것 같다"며 조심스러워했다. 말을 고르던 그는 '미안함'을 이야기했다.

"원전사고 나면 부산은 끝, 피난 불가" 전문가의 암울한 진단

[판도라를 열다⑥] <판도라> 박정우 감독과 원전전문가 김익중 교수의 대담②

영화 <판도라>에서 묘사하는 장면들은 분명 상상의 결과물이다. 동시에 우리는 여러 이상 징후에도 중지시키지 않고 가동 중인 노후 원전을 보유하고 있고, 더 나아가 현재 가동 중인 24기에 이어 추가로 10개 이상의 원자력발전소를 더 지을 예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판도라> 속 재난 상황은 완전한 가공의 이야기가 아닌 아직 오지 않은 우리의 미래일 수도 있다.첫 번째 기사에선 영화의 제작 배경에 대한 박정우 감독과 김익중 교수의 대화가 이어졌다. 이 지면에선 더욱 구체적으로 영화 속 설정을 하나하나 짚어 현실과 비교해 전한다. 수많은 사고 원인들 <판도라>에서는 한빛 발전소 폭발 직후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주인공 재혁(김남길 분)은 동료 직원들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너진 발전소 안에서 사투를 벌인다. 방사선 피폭 등을 실감 나게 시각화하기엔 한계가 있기에 박정우 감독은 먼지 구름, 흩날리는 분진, 각종 사운드 효과를 이용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처참한 사고를 겪었지만, 관객 입장에선 우리나라 곳곳에 우뚝 세워진 원전을 보고 이렇게 물을 만하다. '정말 안전한가? 그리고 정부 및 관계 당국을 믿어도 되나?' 박정우 감독과 김익중 교수의 답은 이렇다. "<판도라>에 나오는 발진과 코피 등은 급성 피폭으로 인한 증상이다. 즉 한꺼번에 많은 방사능에 피폭됐을 때 나타나는 유명한 증상들이다. 과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핵폭탄 사건 때 근방에 살던 사람들, 또 후쿠시마 사고를 겪은 일부 주민들이 보인 증상으로 그밖에 더 많은 사람은 유전병에 걸리고, 60년 정도에 걸쳐 천천히 피폭 증상이 나타난다. 안전기준치라는 자체가 어폐인 게 그 양에 비례해 암 발생 확률이 증가한다. 방사능이 아예 없어야 하는 거지. 보통 1Sv(시버트)만 피폭돼도 사람이 죽는다." "자료조사 하며 알게 된 건데 안전수치 그런 건 말장난인 거지. 운영상 편의 때문에 정해진 수치다. 일본도 후쿠시마 사고 직전 안전수치가 사고 이후 두 배로 올랐다. 뭔가 더 배상해야 하고 활동에 제약이 있을 거 같으니 관계 당국끼리 결의해서 안전수치를 올려버린 거다. 그냥 대응하기 용이하게 기준을 잡아둔 거지 그 이하로 피폭된다고 안전하다는 뜻이 아니다. "나야 근본적으로 반대 입장이니 동의할 순 없지만, 실제 박 소장같이 책임감 있게 일하시는 분은 종종 계신다. 원자력이 큰 혜택을 주니까 안전하게 관리하면 된다며 진지하게 말하는 분도 계신다. 훌륭한 자세지만 난 묻고 싶다. 100%로 통제가 가능하냐고. 정말 100%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직접 묻고 싶은데 무례한 질문이라 그러질 못했다.""영화 속 인물은 나름 세대와 신분을 대변하도록 배치했다. <판도라>를 통해 내일 당장 원전을 멈추라고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이런 위험이 있으니 장기적인 계획에 따라 세우는 걸 논의하자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각 캐릭터가 원전에 대응하는 자세가 각각 다르지. 재혁의 엄마인 석여사(김영애 분)는 맹목적 신뢰를 보이고, 재혁 같은 젊은 세대는 그 동네를 빨리 뜨고 싶어 하고, 재혁의 친구들은 어느 곳에도 낄 수 없는 하청업체 직원 신분이니 그냥 일하며 살아간다. 박 소장은 중립이다. 그래도 아직 중간자적 입장인데 사고를 겪은 후인 영화 마지막에선 석여사도 박 소장도 같은 생각을 했을 거다."재난 시나리오 대비 자체가 부족 이야기는 좀 더 깊어졌다. 박정우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노후 원전이 몇 번의 작은 사고 이후에도 재가동 되는 현실에 혀를 내둘렀다. 야당 추천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으로 의결권을 행사한 김익중 교수는 사사건건 당국의 안일함을 지적하며 재가동과 추가 원전 건설을 반대했지만 밀리고 말았다. 두 사람은 "이 영화를 통해서라도 시민들이 좀 그 위험을 인지하셨으면 좋겠다"는 공통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지진으로 인한 사고는 생각 안 했는데 제가 경주에 살지 않나. 최근 몸으로 겪고 나니 떠오르는 게 지진밖에 없더라. 지진 이후 조사를 해보니 그에 대한 대비가 정말 안 돼 있다는 걸 알았다. 지진 말고도 오래된 시설에 균열이 나며 조금씩 위험해지는 시나리오도 있다. 다만 영화처럼 대처할 시간 없이 팍 사고가 터지는 시나리오가 바로 아까 언급한 증기발생기 파단 사고다. (열쇠고리를 보여주며) 이게 바로 거길 흐르는 쇠관이다. 300도가 넘는 물이 흐르고 100기압이 걸려 있다. 이 얇은 파이프 안에 말이다. 이게 깨지면 엄청난 방사능이 담긴 1차수가 밖으로 나오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대처할 시간이 거의 없지.지진 대비에 미약하다는 팩트 몇 가지만 이야기해보겠다. 우리나라 전체 원전 중 신고리 3, 4기가 진도 7, 나머지는 진도 6.5의 내진설계가 돼 있다. 해외에서도 참 이상하게 보는 게 지어진 부지가 다 다른데도 내진설계는 하나같이 6.5라는 점이다. 우리 법에 원전 부지에 대해 지진 안전성을 측정할 때 두 가지를 고려해 최대지진을 계산하도록 돼 있다. 하나는 반경 350km 내에서 발생한 역사적 지진을 고려하고, 다른 하난 반경 40km 이내에 있는 단층을 조사해 고려하게 한다. 이 둘을 종합해 여유분을 둬서 최종 설계를 해야 하는데 국내 원전은 두 번째 조사를 안 했다. 그러니 부지가 서로 다른 네 곳이라도 1번 항목만 반영했기에 내진이 똑같은 거지. 우리나라 원전은 다 불법인 거다." "영화 마지막에 자막이 올라가잖나. 일종의 경고성 글인데 관객분 중에 정말 사실이냐 묻는 분도 많다. 그조차 모르시는 분들이 더 많다는 거지. 자막을 더 길게 넣을 수도 없는 일이고 궁금하신 분은 김 교수님의 <한국 탈핵>이라는 책을 보시라(웃음)." "유사시 위원회 위원장을 주축으로 청와대와 총리, 국민안전처, 행자부, 보건복지부 등과 협력해서 회의를 주재하게 돼 있다. 문제는 안전위원장은 차관급인데 장관을 모아서 회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시작 자체가 문제지. 후쿠시마 사고 이후 대비 매뉴얼을 정비하긴 했다. 근데 이게 제대로 작동할지 의심 가는 부분이 매우 많다. 다 이야기하자면 길고, 간단히 말하자면 정말 원전사고가 난다면 딱 <판도라>처럼 될 거다.""시나리오 쓸 때 신경 쓴 게 사고 때 나와서 엉뚱한 소리 하는 장관이나 대통령을 희화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들만 똑똑하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면죄부를 줄 거 같아서였다.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아무리 명석하고 신출귀몰한 사람들이 모여도 원전사고는 불가항력으로 못 막는다는 거였다. 댓글 보면 무능한 정부 어쩌고 나오는데 정확히 말하면 무능한 게 아니라 무능해져 버린 거지. 청와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보짓을 하진 않지 않나. 잘못된 짓을 할 뿐이지. 시스템이 미비하다는 것도 문제지만 돼 있어도 사고 대처는 안 될 거라고 본다.""근데 시스템도 큰 문제긴 하다. 법 자체가 웃기게 돼 있다. 진도 6.5 이상 지진은 안 난다고 법으로 가정하고 있다. 전문용어로 설계기준 초과사고 하는데 그건 아예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다. 원전 폭발은 없을 거라고 가정했기에 그에 대한 대비책도 없다. 이제 조금씩 가정하도록 법이 바뀌는 중인데 이게 또 소급적용이 안 된다. 이미 건설된 원전엔 적용이 안 된다는 뜻이지. 휴…. 말하자면 진짜 길다." "기획하면서 우리나라 전도를 펼쳐두고 도로를 표시해봤다. 사고 나면 어디로 피난 가야 하나 보는데 못 간다! 고리 주민들은 진짜 그 국도 하나 타고 나와야 한다. 실제로 그거 하나고 그걸 보고 영화에 넣은 거다." "대피 매뉴얼도 있긴 하다. 하지만 감독님 말처럼 도로 구조 자체가 그래서 의미가 없다. 기껏해야 5km 안 주민만 대피시키는 매뉴얼인데 3km 이내만 해도 몇만 명이 살고 있다. 재밌는 건 박정희 정권 이후 성장한 토건세력과 핵 산업 세력이 절반 이상 겹친다는 사실이다. 원전 짓는 회사가 현대건설, 삼성건설 등인데 대표적인 토건세력 아닌가. 원전 하루 돌리면 8억 원 정도를 번다고 한다. 반대로 멈추면 하루에 그만큼 손해가 나는 거니까 기를 쓰고 돌리려고 하는 거다."원전 이야기에 약속한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영화 이야기에서 어느덧 제도 문제까지 깊이 들어갔는데 결국 두 사람이 원하는 바는 간명했다. "관심을 갖자는 것, 그리고 가능한 빠른 탈핵이 왕도라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비극이 판타지로만 남게 하려면 "진지하게 생각하고 관심을 모아야 한다"는 이들의 말이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느냐 그대로 두느냐는 사실 우리 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도라를 열다①] 현 정부의 또다른 아킬레스건, 이 영화가 폭로한다
[판도라를 열다②] 소름끼치는 상상력... "내가 대통령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것"
[판도라를 열다③] 박근혜 대통령과 판박이... 끔찍해서 끝까지 보기 힘들다
[판도라를 열다④]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원전사고 지역에서 벌어진 일들
[inter:view] 김남길 "정치 까는 영화? 죽는다고 생각하고 최선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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