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요한, '거기 있어줄래요!'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 젊은 수현 역의 배우 변요한이 12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무표정해 보이지만 그 안엔 다양한 캐릭터들이 살아있다. 이번엔 멜로 감성 충만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다. ⓒ 이정민


30년 시차를 두고 두 남자가 조우한다. 한쪽이 상대를 향해 "난 미래의 너야"라고 말하며 옛 연인의 행방을 찾는다.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한 줄 설명이다.

분명 이건 판타지다. 그런데 이 배우는 아니라고 말한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변요한의 항변(?)이다. "이 작품에 임하면서 한 번도 판타지라 생각하지 않았다"며 "그저 두 남자의 만남에만 집중하려 했다"고 설명을 보탰다.

진짜 소중한 것

변요한, '거기 있어줄래요!'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 젊은 수현 역의 배우 변요한이 12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변요한은 이 영화가 판타지가 아니라고 했다. 타임슬립이라는 설정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 이정민


그의 말이 일리 있는 게, 시간을 오간다는 설정을 제외하면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메시지는 매우 보편적이다. 1980년대를 사는 수현(변요한 분)과 현재를 사는 수현(김윤석 분) 모두 사랑이라는 감정에 충실하며 애틋함을 지녔다. 나아가 친구와 하나밖에 없는 딸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설파한다. 이 영화가 판타지 장르라면 외려 이 부분 때문이지 않을까. 변요한은 이를 받아 소중함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영화의 원작 소설 작가인) 기욤 뮈소 작가님이 이미 메시지를 담아 놓은 거 같아요. 소중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라는 것이죠. 영화엔 부성애도 나오고 연인과 사랑도 나오는데 작고 작은 순간에 대한 감사함? 그런 걸 추구하신 게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 모두 소중함에 대해서 알지만 그걸 잊고 살 때가 많잖아요. 그걸 되새기고 상기하는 게 어려운 일이죠. 작가님도 그걸 알고 쓰신 듯합니다. '소중함이란 건 크고 작음이 없는데 우리는 그걸 인지하고 사는가?'. 그런 점에서 타임슬립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죠."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한 장면.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의 한 장면. 현재의 수현과 과거의 수현이 만나며 이야기가 흘러간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는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홍지영과의 첫 만남을 뚜렷이 기억했다. 캐스팅을 위한 미팅 자리에서 두 사람은 말없이 40분간 식사만 했다. 애써 서로를 설득하거나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기욤 뮈소의 책 읽어봤죠? 이런 이야기예요"라는 몇 마디로 변요한은 마음을 굳혔다. "이상한 믿음이 있었다"며 변요한이 취재진에게 웃어 보였다.

"많은 말없이도 자신감 있고 진지한 사람들이 있다"며 그가 출연의 변을 나름 독특하게 전했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영화 <소셜포비아>의 홍석재 감독도 그랬고, 독립 단편 영화를 통해 만나온 여러 감독이 그랬다. '정중동' 그 에너지에 변요한이 감응해 온 셈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상업영화 몇 편에 출연하면서도 흥행에 대한 생각은 그에겐 부수적이다. "영화에 그걸 함께 만드는 사람들의 진심이 담겨 있는가가 중요했다"며 변요한은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 참여하면서도 영화 속 메시지가 잘 전달되는 게 우선이었다"고 말했다.

과거 속 변요한

같은 맥락에서 변요한은 상업영화 첫 주연임에도 그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데뷔작 <토요근무>(2011)를 비롯해 여러 단편 영화 작업 때 생각이 많이 난다"며 "연기에 대한 고민으로 많이 혼란스러웠던 그 당시에 찍은 영화들을 요즘 돌려보고 있다"고 전했다.

"서툴고 투박한 모습이 지금에 오니 더 순수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헷갈리는 지점이 있어요. 그때 연기가 더 울림이 있는 거 같고, 뭔가를 알고 여우 같이 하는 거보단 모르고 곰같이 연기할 때가 좋았더라고요. 그땐 왜 저리 힘도 없고 맥도 없었나 생각하면서도 세련되지 않은 모습이 전 좋아 보여요. 연기는 선택의 싸움인데 진짜 어렵더라고요. 오류는 늘 있죠. 어떨 땐 다른 현장에서 촬영 중인데 전 작품에서 실수한 게 떠오르기도 해요(웃음)."

변요한, '거기 있어줄래요!'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 젊은 수현 역의 배우 변요한이 12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30년 전의 나와 만난다는 설정에 젊은 수현 역의 배우 변요한이 카페 거울 앞에서 손질하고 있다. ⓒ 이정민


스물여섯, 일반적 잣대라면 다소 늦은 연예계 데뷔다. 그런데도 변요한은 "한 번도 늦었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여전히 난 뜨겁다"며 "내 소망은 지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것"이라 분명히 밝혔다.

"독립영화를 함께 한 친구들, 무대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그런 얘길 해요. 마지막에 남고 싶다고. 사실 저 같은 배우들이 많거든요. 반짝 나왔다가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는 배우들요. 아마 지쳤을 수도 있고, 그만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마지막까지 서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그래서 전 늦게 데뷔한 선배님이나 여전히 무대에서 공연하는 분들을 만나면 물어봐요. 지치지 않은 지, 재밌는지 말이죠. 말로는 다들 '에이 그냥 하는 거지' 이러시는데 그냥 하는 건 아닌 듯해요. 연기로 증명해주시잖아요. 그 뜨거움을 잘 간직하고 싶어요."

좀 더 파보자. 데뷔 이후 독립영화를 한창 찍던 당시 약 1년간 연기를 쉴 때가 있었다. <목격자의 밤>(2012) 직전을 언급하며 변요한은 "영화제에 출품하던 때가 있었는데 내가 연기하는 모습에서 욕심이 느껴졌다. 그게 상처였다"고 고백했다.

"영화제에 제가 출연한 영화가 상영되는데 꼴 보기 싫더라고요. 제 입장에선 마음이 너무 뜨거워서 욕심을 부린 건데 그게 화면에 다 보였어요. 내가 뭣 때문에 연기하지? 그걸 잃은 거 같아서 마음을 일단 잡고 가자고 생각했죠. 나를 위해 연기하는 건지, 관객을 위해 연기하는 건지. '쉬어야겠다' 결심하고 어느 정도 지나서 <목격자의 밤>을 한 겁니다. 내려놓고 산다는 게 어렵지만, 욕심을 내려놨을 때 느낌이 되게 신기하더라고요."

미래의 변요한

내성적이었고 낯을 가렸으며 말을 더듬었던 어린 변요한이 지금 영화계에 우뚝 서 있다. 상승세를 잠시 즐길 만도 하지만 "내 뿌리는 독립영화"라며 "성장하는 과정이 다 소중하다"고 말한다. 성격을 고치기 위해 잠시 맛봤던 연기가 그의 전부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연기에 몸을 던지겠다던 아들의 뜻을 아버지는 강하게 반대했고, 돌고 돌아 스무 살이 훌쩍 넘어서야 관객과 만난 그다.

그의 존재로 한국영화계가 희망적이라 말한다면 너무 거창할까. 변요한, 류준열, 이동휘 등 또래 동료들이 각자 장점을 살리며 부각 중이다. 영화계 세대교체가 이들을 통해 이뤄질 거라 평하는 이들도 있다. 진지하던 변요한의 표정이 한층 더 진지해졌다.

변요한, '거기 있어줄래요!'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 젊은 수현 역의 배우 변요한이 12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 변요한은 현재 한국 영화계의 '세대교체'를 주도하고 있는 배우 중 한 명이 아닐까. 이 질문에 진지하던 그의 얼굴이 더 진지해졌다. ⓒ 이정민


"음, 우린 차세대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의 선택에 달린 거고, 그게 우리 운명입니다. 우리가 롱런하면 진짜 우리끼리 얘긴데, 멋있는 거 하지 말고 힘들고 재밌는 걸 하자고 해요. 평이 좋지 않더라도, 흥행에 실패해도 우리가 버티고 공부하면서 쌓아간다면 나중엔 어떤 메시지를 줄 깜냥은 되지 않을까요. 근데 또 선배들은 그만큼 앞서 나가시고, 우린 그 길을 흉내 내는 거잖아요. 대단하신 거죠. 너무 이상에만 사로잡혀 있지 않으려고요.

만약 진짜 3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제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요한이 연기를 못하게 하라고 말할 거 같아요. 그러면 왠지 시키실 거 같아요. 자존심이 강하셔서(웃음). 오랫동안 아버지가 연기하는 걸 반대해왔는데 그때 많이 외로웠어요. 일부러 외로움 느끼려고 별짓을 하기도 했죠(웃음). 아마 아버지가 그냥 쭉 연기를 허락해줬으면 지금 그저 그런 배우가 됐겠죠?"

변요한, '거기 있어줄래요!'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 젊은 수현 역의 배우 변요한이 12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우로서 순탄한 길을 걷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가 더더욱 '그저 그런' 배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정민



변요한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김윤석 채서진 기욤 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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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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