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뮤지컬 <금강, 1894> 공연 사진 지난 1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개막한 뮤지컬 <금강, 1894>의 공연 사진. 뮤지컬 <금강, 1894>는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삼아 동학농민혁명 속 민중의 꿈과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오는 4일까지. 손호영·이건명·양준모·박지연·박호산 등.

▲ 핍박받는 백성들 지난 1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뮤지컬 <금강, 1894>가 개막했다. <금강, 1894>는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삼아 동학농민혁명 속 민중의 꿈과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특히 민초를 대변하는 앙상블 하나하나의 목소리에 주목하며 높은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줬다. 4일만 하고 보낼 수는 없는 작품이다. ⓒ (재)성남문화재단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우리가 본 건 먹구름 쇠창살.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빼앗긴 평화, 짓밟힌 목숨, 버러지 같은 우리네 인생. 조선은 피 빨아먹는 거머리. 차라리 죽는 게 나아." - 뮤지컬 <금강, 1894> 1막. No.03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중에서

거대한 거머리들이 백성에게 들러붙어 착취한 지 오래. 국운이 다해가는 조선, 자정 작용을 하던 국가 체계는 멈췄고 탐관오리의 배만 불러온다. 너른 들판 가득한 호남, 가장 넉넉한 이 동네는 그 넉넉함 때문에 가장 가혹하게 빼앗겼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횡포에 대항하여 일어난 이들이 있었지만, 잔혹하게 목이 잘려 저잣거리에 매달렸다. 부당함을 알지만 목숨이 아까워 주저하는 농민들.

"아이코~ 냄시. 아 고놈의 개똥밭 개똥 냄시. 우리 아부지도 고놈의 개똥밭에, 나도 그 개똥밭에, 우리 아들놈도 또 그 개똥밭에…. 아무리 이승이 좋아도, 나는 그런 개똥 냄시 나는 세상 싫소. 그랑게, 요런 개똥 같은 시상 살면서 '나는 목숨 붙어 있어 다행이구나'하지 말고, 개똥같은 양반놈들, 개똥밭 같은 조선을 우리 손으로 바꿔 봅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누가 그랬던가. 지옥보다도 심한 이 세상, 더는 이대로 참을 수 없던 이들이 전봉준의 한마디에 자연스레 뭉친다.

뮤지컬 <금강, 1894> 공연 사진 지난 1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개막한 뮤지컬 <금강, 1894>의 공연 사진. 뮤지컬 <금강, 1894>는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삼아 동학농민혁명 속 민중의 꿈과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오는 4일까지. 손호영·이건명·양준모·박지연·박호산 등.

▲ 농민 앞에 선 명학 양반으로서의 지위를 포기하고 평범한 이들의 싸움에 동참하는 명학. 주저하는 농민들 앞에서 이 조선을 끝내자고 외친다. ⓒ (재)성남문화재단


"이제 다 같이 다가올 하늘을 보자. 우리 손으로 되찾으리, 그 맑은 하늘을. 다시 우리의 하늘을 보리라. 검은 먹구름 걷어내리. 저 빛나는 태양, 꼭 보게 되리라. 우리들의 힘으로."  - 뮤지컬 <금강, 1894> 1막. No.03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중에서

1894년, 갑오년. 우리 역사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근대사를 뒤흔들었던, 가장 뜨거웠던 혁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뮤지컬 <금강, 1894>는 바로 이 갑오년의 민중사를 무대 위로 올린 작품이다.

2016년 창작극 중 손에 꼽을 만한 수작

뮤지컬 <금강, 1894> 공연 사진 지난 1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개막한 뮤지컬 <금강, 1894>의 공연 사진. 뮤지컬 <금강, 1894>는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삼아 동학농민혁명 속 민중의 꿈과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오는 4일까지. 손호영·이건명·양준모·박지연·박호산 등.

▲ 전주성 전투 기개가 드높았던 동학농민혁명. 백성의 원성을 총칼로 진압하려 했던 권력에 맞서, 이들은 분연히 일어난다. 그리고 승리한다. ⓒ (재)성남문화재단


지난 1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개막한 뮤지컬 <금강, 1894>가 오는 4일, 단 4일간의 6회 공연을 모두 마무리한다. 2017년 본 공연과 지방 투어도 계획되어 있다. 그러나 <금강, 1894>의 제작을 주도했던 성남문화재단의 대표 임기가 끝나고 연임에 실패하면서 이 계획이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 정도 질의 공연이 단 4일만 하고 묻혀서는 안 된다는 게, 공연을 본 관객 그리고 2일 네이버 생중계를 통해 안방에서 관람한 팬들 대부분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금강, 1894>는 올해 무대에 올라온 무수한 창작 초연 작품들 중에서도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수작이다. 무대 장치도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나고,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사명감에 짓눌려서 극 전체의 완성도를 해치지도 않는다.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키는 '오버추어'부터 이성준 음악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마음껏 발휘된다. 비장미를 품고 휘몰아치는 넘버들의 폭발력이 매우 크다.

이 작품의 음악적 완성도에 배우들이 화룡점정을 찍는다. <페스트>의 리유에 이어 한 번 더 평범한 이들의 싸움에 함께하는 손호영의 넘버 소화력은 대체로 안정적이다. 특히 무대밖에서 부르는 '그곳에서 울지마오'의 처연한 음색은 발군이다. (다만, 우금치 전투 이후 부르는 솔로 넘버 '벼락아 때려라!'는 약간 아쉽다.)

이명학 역에 더블 캐스팅된 이건명, 양준모 배우의 연기와 노래도 흠 잡을 데가 딱히 없다. 1일 개막 무대에 나섰던 이건명은 조금 더 부드럽게 극의 흐름을 끌고 가며, 인진아에 대한 짝사랑의 감정을 자연스레 드러낸다. 2일 무대에 올랐던 양준모 배우는 혁명의 분기점마다 보다 강한 임팩트를 관객에게 선사하며, 인진아를 지켜주려 하는 오라버니의 느낌이 강하다. 솔로든 듀엣이든 합창이든 박지연의 인진아는 주어진 역할 그 이상을 해낸다. 초토사 홍계훈 역의 왕시명 배우도 이 극의 반동인물로 굳건하게 제 자리를 지킨다.

최고는 전봉준 역할의 박호산 배우이다. 극 전체가 흔들리지 않도록 묵직하게 무게를 잡아주는 '닻'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며 관객의 심장을 조였다 풀었다 반복하는 데, 대사 한 마디로 극 전체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 배우의 무대 경험이 결코 '허투루' 쌓인 게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엄지 두 개가 모자라다.

뮤지컬 <금강, 1894> 공연 사진 지난 1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개막한 뮤지컬 <금강, 1894>의 공연 사진. 뮤지컬 <금강, 1894>는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삼아 동학농민혁명 속 민중의 꿈과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오는 4일까지. 손호영·이건명·양준모·박지연·박호산 등.

▲ 첫 만남 위기에 빠졌던 진아를 구해주는 하늬. 이후 진아 역시 하늬를 도와주고, 다시 하늬가 진아를 돕는다. 그런 우여곡절 속에, 처음 만났던 금강변에서 살아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던 이들. 그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 (재)성남문화재단


뮤지컬 <금강, 1894> 공연 사진 지난 1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개막한 뮤지컬 <금강, 1894>의 공연 사진. 뮤지컬 <금강, 1894>는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삼아 동학농민혁명 속 민중의 꿈과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오는 4일까지. 손호영·이건명·양준모·박지연·박호산 등.

▲ 진아와 명학 어렸을 때 함께 했던 추억이 있는 진아와 명학. 명학은 술래잡기 끝에 진아를 다시 찾았다고 믿었으나, 시대는 그들이 함께 새 세상을 맞이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 (재)성남문화재단


분명 <금강, 1894>의 서사가 아주 세련된 건 아니다. 주인공 신하늬와 인진아의 사랑 이야기가 전체 혁명 줄거리에 자연스레 녹아들지 못한 점, 여동생과 얽힌 신하늬 개인의 서사가 힘이 다소 떨어지는 점, 반쪽짜리 양반 출신 이명학이 혁명에 참여하게 된 동기와 초토사 홍계훈이 그토록 동학도를 폭도로 몰아가는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점 등은 눈에 걸린다. (뚱뚱한 여자를 웃음 소재로 삼는 장면도, 더 나은 방법으로 웃음을 만들 수 있지 않았나하는 개인적 아쉬움이 남는다. 여성의 주체성을 드러내려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는 극이기에 더더욱.)

그러나 이 작품의 힘은 전봉준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던 평범한 이들에게서 나온다. 주연 배우들의 노래도 하나하나 좋지만, 객석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강렬한 합창을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앙상블들이다. 앙상블 한 명 한 명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지닌 채 각자의 개성을 드러낸다. 민중사적 관점에서 당시를 바라보는 극이기에, 극의 콘셉트와 맞는 훌륭한 선택이었다. 앙상블 배우 한 명 한 명에게 기립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이 앙상블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한 몇몇 장면의 연출도 감동적이다.

1894년 금강, 2016년 광화문 광장

뮤지컬 <금강, 1894> 공연 사진 지난 1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개막한 뮤지컬 <금강, 1894>의 공연 사진. 뮤지컬 <금강, 1894>는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삼아 동학농민혁명 속 민중의 꿈과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오는 4일까지. 손호영·이건명·양준모·박지연·박호산 등.

▲ 궁녀 인진아 <금강, 1894> 속 혁명에는 성별과 세대, 계층을 넘어선 이들의 연대가 등장한다. 궁녀 인진아는 궁 안에 동학을 퍼트리다가 발각되고, 궁을 도망쳐 나와 싸움에 합류한다. 이명학은 비록 반쪽짜리지만 본래 양반 출신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다는 그 사상, 그 사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 분투한 현장에는 이들도 함께했다. ⓒ (재)성남문화재단


앞서 인진아 역의 배우 박지연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혁명'을 말하는 스물아홉 배우, "정치적 의도는 없습니다만..."). 하지만 정치적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어떤 작품이든 그 작품이 상연되는 시대적 맥락에서 온전히 떨어질 수는 없다. 올해 무대에 오른 창작 초연 뮤지컬 <페스트>와 <곤 투모로우> 역시 이 현실에서 더 큰 힘을 발휘했다. 극 중에는 정권을 직접 겨냥한 메타포도, 패러디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조명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관객은 2016년의 광장을 떠올리게 된다.

이 작품의 원작인 신동엽의 서사시 '금강'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 4월의 함성에서 감명을 받은 시인 신동엽은, 이 4월의 원류를 찾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1894년 금강을 주목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출간된 이후에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에 의해 탄압받는다. 그러니, 바로 그 독재자의 딸이 푸른 기와집에 앉아 있는 이 현실에서 작품이 더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아리랑> 등 한국판 <레미제라블>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은 이전에도 더러 있었으나, <금강, 1894>만큼 극적 재미와 사회적 의미를 아우른 극은 드물었다.


뮤지컬 <금강, 1894> 공연 사진 지난 1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개막한 뮤지컬 <금강, 1894>의 공연 사진. 뮤지컬 <금강, 1894>는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삼아 동학농민혁명 속 민중의 꿈과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오는 4일까지. 손호영·이건명·양준모·박지연·박호산 등.

▲ 우금치에서 명학의 마지막 작전도 아쉽게 실패하고, 우금치에는 수많은 평범한 이가 모여 들어 마지막 싸움을 준비한다. 역사적 사실대로, 결국 이들은 그 우금치 고개를 넘지 못하고 스러진다. ⓒ (재)성남문화재단


"우리의 금강, 예부터 이곳은 함께 썩는 곳. 싸우고 죽지만 대신 그 정신을 남기는 곳은 여기. 밀알 하나가 썩지 않으면 언제나 그대로이지만, 땅에 떨어져 썩으면 더 많은 밀알이 되듯이. 이제 우리 썩어서 이곳에 푸른 새싹을 틔우리라. 이제 모두 다함께 다가올 우리들의 하늘을 맞이하자." - 뮤지컬 <금강, 1894> 2막. No.19 '한 알의 밀알' 중에서

전주성 전투에서 승리한 후, 전주 화약을 통해 집강소가 설치되는 등 백성을 위한 새 세상이 도래하는 듯했다. 그러나 자기 백성들에게 총칼을 겨누던 정권은 외세를 끌어들였고, 일제는 조선 침략의 야욕을 드러냈다. 간신히 희망이 움튼 이 땅을 이대로 빼앗길 수 없기에 이들은 다시 죽창과 호미를 들고 모였다. 지는 것이 뻔한 싸움, 죽을 것이 뻔한 미래 앞에서 민초들은 다시 뭉쳤다.

압도적인 병력차이를 보이며 우금치에 모여든 동학군이지만, 기관총 등 신식 무기로 무장한 채 지리적 우위를 선점한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 앞에서 패하고 말았다. "살아서 탁배기 한 잔 허자!"던 다짐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뮤지컬 <금강, 1894> 공연 사진 지난 1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개막한 뮤지컬 <금강, 1894>의 공연 사진. 뮤지컬 <금강, 1894>는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삼아 동학농민혁명 속 민중의 꿈과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오는 4일까지. 손호영·이건명·양준모·박지연·박호산 등.

▲ 전봉준의 죽음 녹두밭의 녹두꽃은 결국 파랑새라는 외세에 의해 떨어지고 만다. 하지만 녹두꽃은 그냥 덧없이 진 것이 아니다. 비록 싸움에서는 졌지만, 이 꽃이 지면서 땅에 심은 씨앗들이 여전히 움틀 날을 기다리고 있다. 세상은 반드시 변한다. ⓒ (재)성남문화재단


"그렇다. 우리의 혁명은, 이번에는 실패인지 모른다. 허나, 백성들이 저리 살아서 보고 있는데 어찌 이 죽은 자들의 노고가 잊히겠는가. 세상은, 반드시 변할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전봉준은 담담하게 선언한다. 녹두꽃은 떨어졌다. 그러나 그 녹두는 썩어서 다른 싹을 틔우는 거름이 된다. 우금치 전투에서 살아남은 하늬는 1919년, 진아가 자신을 위해 손목에 채워줬던 방울 노리개를 짤랑 거리며 일본군의 심장에 총탄을 박아 넣는다. 1960년, 1980년, 1987년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위기 때마다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그 민중의 맥, 금강처럼 고고히 흐르던 녹두의 혼은 2016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갑오년에 시작된 혁명 모두 끝나, 함께한 그들 찾을 수가 없어. 하지만 바람 속에 그 마음 남아, 바위 틈 작은 물길 모여 들고, 천둥번개 치면서 비가 오면 금강은 또다시 흐르겠지. 겨울 속에서 봄이 싹이 트듯, 고통 속에서 작은 희망이 싹이 트리. 어둠 지나 새벽이 오면 작은 희망, 푸른 불꽃 되어 타오르리라. 그날엔 모두가 다함께 만나지리라.

이제 보았네, 세상 덮은 희망. 다시 일어서리. 흐르는 저 푸른 강물 끝없이 흐르리. 조선의 후손들아, 흐르는 역사의 주인이 되리라. 또 다시 만나 지리라." - 뮤지컬 <금강, 1894> 2막, No.22 '언젠간 또 다시 만나지리라' 중에서

뮤지컬 <금강, 1894> 공연 사진 지난 1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개막한 뮤지컬 <금강, 1894>의 공연 사진. 뮤지컬 <금강, 1894>는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삼아 동학농민혁명 속 민중의 꿈과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오는 4일까지. 손호영·이건명·양준모·박지연·박호산 등.

▲ 하늬 대신 죽는 명학 동학도들의 분전은 결국 전멸에 가까운 패배로 끝이 난다. 마지막 순간, 명학은 하늬 대신 총탄을 맞고 사망한다. "총알은 챙겼냐"며, "그 총알로 백성들을 지켜"라고 숨을 거두는 명학을 위해 하늬는 자기만의 싸움을 계속한다. ⓒ (재)성남문화재단


지난 1일, 뮤지컬 <금강, 1894>의 개막 리셉션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은 아래와 같이 인사말을 밝혔다.

"동학혁명은 우리 민중들이 치열하게 우리 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싸웠다가 아직 완성하지 못한 민중혁명 이야기이다. 그 이후 해방이 되고, 또 우리는 치열하게 싸웠지만, 지금까지도 기득권자는 얼굴을 바꿔 여전히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오늘 이 <금강, 1894>는 이번 주말 광화문에서 만나게 될 수없이 많은 국민들의 모습과 하나다. 우리는 완성하지 못한 우리의 건국혁명, 평등하고 자유롭고 국민이 주인인 공화국을 만들어내는 사명을 이행해야 한다.

아직 완성 못했지만 1894년에 시작된 혁명이 2016년 12월을 끝으로 완성되면 좋겠다. 진정 국민이 주인인 나라, 민중이 주인인 나라 공화국을 함께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오늘 공연 시작되면 좋겠다."

성공한 쿠데타도 쿠데타이다. 마찬가지로, 실패한 혁명 역시 혁명이다. 우리의 광장이 우금치가 될지 바스티유가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는 말하고 움직여야 하는 역사적 순간에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고려나 이해득실에 따라서 계산할 일이 아니다. 극 중 대사처럼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우리 땅, 우리 손으로 지키자는 것"이니까. 죽창과 호미 대신 우리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키보드를 두들기며 글을 마치고 있는 이 순간, 광화문에는 수백만의 촛불이 모여 있다. 저 광화문이, 지금 우리의, 2016년의 금강이다.

"새로운 하늘의 새로운 조선의 땅, 우리 힘으로. 백성 모두가 주인 되는 세상. 그날이 곧 오리라. 우리 힘으로 이뤄내리. 싸움이 모두 끝나면 돌아가리. 행복했던 기억 속으로. 이 싸움에서 이기면 오직 백성이 주인인 세상. 모두 함께 힘모아 싸우리라. 우리 힘으로 완성하리. 다가올 새로운 세상 모두 쟁취하리. 맑고 푸른 우리 하늘. 모두 다함께 맞이하리, 다가올 새 세상. 되찾으리 우리 조선. 이 싸움에서 승리, 쟁취하리라."- 뮤지컬 <금강, 1894> 1막. No.11 '승리의 환호' 중에서



뮤지컬 <금강, 1894> 공연 사진 지난 1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개막한 뮤지컬 <금강, 1894>의 공연 사진. 뮤지컬 <금강, 1894>는 신동엽 시인의 서사시 '금강'을 원작으로 삼아 동학농민혁명 속 민중의 꿈과 사랑에 대해 노래한다. 오는 4일까지. 손호영·이건명·양준모·박지연·박호산 등.

▲ 새롭게 맞이할 세상 백의민족으로 일컫는 우리 민족의 역사는 수난의 역사였다. 그러나 그 수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지켜온 것들이 있다. 우리의 선조들이 죽음을 불사하며 심은 씨앗, 이제 우리가 이 역사의 주인이 되어 후손에게 물려줄 때는 아닐까. ⓒ (재)성남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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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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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부는 단 한 번도, 진실을 말한 적이 없다

[안 뻔한 티켓북] 가장 정치적인 연극, 시공간을 뛰어넘다 <두 개의 방>

미국인 마이클은 레바논에서 납치됐다. 미국의 외교 정책은 중동의 많은 사람에게 반감을 샀다. 이제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세계 최강대국 소속 국민이라는 '지위'로 작동하지 않는다. 주변의 증오가 오롯이 꽂히는 위험한 정체성이 된다. 마이클은 테러리스트의 인질이 되어 손발이 묶이고 눈이 감긴 채 갇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 레이니를 향해 끊임없이 속삭인다. 마치 바로 옆에 아내가 있는 것처럼.레이니는 마이클의 납치 소식에 미쳐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국무부에서 자신의 담당관으로 파견된 엘렌은 매번 똑같은 소리만 할 뿐이다.엘렌 "우리 정부는 남편을 부인 품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모든 윤리적인 수단을 동원해 노력하고 있습니다."시간은 흐르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정부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침묵하고 있으라고 레이니에게 강요한다. 그러던 시점, 기자 워커가 레이니에게 접근하여 이야기한다. 남편을 구하고 싶으면 말해야 한다고, 정부를 괴롭혀야 한다고. 심적으로 갈등하며 괴로워하는 레이니는 마이클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원래 마이클이 쓰던 방의 가구를 모두 치우고,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마이클과 대화를 한다. 마치 바로 옆에 남편이 있는 것처럼.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하여 지난 13일에 막을 내린 연극 <두 개의 방>은, 마이클이 갇혀 있는 방과 마이클이 떠난 방을 이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정치적인 다분히 정치적인 연극 "모든 연극은 정치적이다."연극 <두 개의 방>의 극작가 리 블레싱은 연극을 이렇게 정의했다. <두 개의 방>은 다분히 정치적인 작품이다.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정부의 거짓말을 폭로하며 국가의 의무를 되새긴다. 개인사적 비극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며, 권력이 그리는 큰 그림 안의 퍼즐 조각 혹은 작은 톱니바퀴 하나 정도로 치부되는 국민 개인의 아픔을 정면으로 드러낸다.물론 <두 개의 방>은 그다지 대중적인 작품이 아니다. 자유소극장이라는 무대가 넓은 공간이 아님에도 공간감이 주는 무게가 관객을 짓누른다. 그만큼 극단적으로 단출한 무대 장치 그리고 소품들이 배우 개개인의 연기로 많은 것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난제를 남긴다. 역사적 배경이나 자연 과학적 지식의 파편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 불친절하게 흩어진다. 웃음기 없는 서사는 묵직한 메시지와 함께 관객의 앉은 자리를 다분히 불편하게 만든다. 극 자체가 정적인데 동선도 별다를 게 없는 데다가 암전은 너무 많다. 그 탓에 극은 무채색이라 할 만큼 톤이 단조로워진다. 조금 더 많은 이가 소화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다.그런데 왜일까. 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인사를 하는 시간에 내 손은 빨개지도록 열정적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전작 <히스토리 보이즈>와 <글로리아>에서 잘 보여줬듯이, 노네임씨어터컴퍼니는 자기만의 색깔(그리고 취향)을 확실하게 지닌 집단이다. 노네임이 선택한 대본은 대개 무수한 대사 속에 여러 지식들이 산탄총처럼 발사된다. 그 탄환의 궤적을 굳이 관객이 모두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피다 보면, 그 총알 하나하나가 모두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세상을 향해 도발적인 화살을 날리는 작품은, 궤적을 그물망 삼아 위태로우면서도 슬픈 '아우라'를 완성한다. 이번 <두 개의 방> 초연 역시, 노네임다운 선택이었다고 평할 만하다. 속도감은 천양지차이지만, 여러모로 영화 <베리드>를 연상케 하는 대본이다. 중동, 테러리스트, 인질, 정부의 거짓말, 비극적 파멸까지…. 영화 <베리드>가 관객 성향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뉘듯이, 취향이 맞지 않는 관객이라면, 120분이라는 시간 동안 객석을 지키는 게 꽤나 고역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까다로운 작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이라면 나오는 길에 프로그램 북과 대본집을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민낯의 연기력으로 승부를 봄에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배우들의 열연이 우선 돋보인다. 텍스트는 언뜻 동어 반복적이고 상투적인 듯하지만 곱씹을수록 깊고 씁쓸한 중독성을 띈다.특히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텍스트가 2016년 대한민국의 콘텍스트에서 더 큰 빛을 발하는, 시공간의 확장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잘 쓰인 정치적인 연극은 그 소재가 '유통기간'이라는 것에 묶여 있지 않다. 1988년에 쓰인 작품이 지속적으로 공연되고, 아직도 관객들이 우리와 관련이 있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세계적으로 만성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 연극 <두 개의 방> 프로그램 북, 작가 리블레싱 인터뷰 발췌 부문 중에서시공간을 관통하는 강한 기시감 엘렌 "정부는 모든 통로를 통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어요."본래라면 진실이어야 할 이 선언.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한다. 국민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국가가 보호해주리라 믿고, 자신의 권리 중 일부를 양도한다. 국가는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으며, 국민은 국가가 행사하는 정당한 권력을 존중한다. 그것이 이 '계약'의 기본이다. 그런데 그 계약을 국가가 파기했다. 국민을 구하는 것을 포기했다.엘렌 "미국 시민들은 우리가 무모한 행동을 할 때, 미국 정부가 항상 우리를 구해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각자 개인 차원에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할 때가 있다는 걸 말입니다.이 기시감은 무엇인가. 한 배가 바다에서 가라앉고 있을 때, 수백의 목숨이 수장되고 있을 때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진도 체육관에 내려온 권력자는 "200여 명의 잠수부"가 투입되는 등 "많은 인력과 장비가 총동원"됐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하는 말을 국가기간통신사는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 적어 보도했다. 정부가 재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리라 우리 국민은 믿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을. 이에 대해 정작 국가가 하는 말의 수준은 천박했다.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가 그랬고, "빨리 그쪽에서 벗어나라고 소리 질러도 애들이 어려서 철이 없어서 그런지 위험하다는 걸 못 느꼈는지"가 그랬다. 국가의 탓이 아니라, 철이 없는 아이들의 탓이라는 듯이. 워커 "정부의 중동 정책. 그것 때문에 남편이 인질로 잡혀 있는 겁니다. 딴 게 아니라."엘렌 "말도 안 돼."워커 "우선순위 면에서 본다면, 마이클은 석유 보다 아래고, 미국-소련 관계 보다 아래고…."엘렌 "이 사람은 뭘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네요."워커 "미국-이스라엘 관계, 미국-시리아 관계보다 아래고…."엘렌 "레이니…."워커 "미국-이란 관계…."구난 상황에서 국가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국민의 생명은 대체 몇 번째였을까. 한시가 급박한 구조 상황에서도 VIP에게 보고할 '숫자' 파악을 더 중요시했던 걸 보면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부의 속성은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수많은 생명을 잃었음에도 국가의 실패를 전면적으로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국가는 항상 최선을 다했고,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다.엘렌 "상부의 계획이 잘못되었다거나, 상관이 전략적으로 실수를 해서가 아니라, 운이 나빴을 뿐이었다."워커 "그걸 믿어요?"엘렌 "그럼요."우리가 진실에 대해 묻는 이유사실, 우리가 들어야 했어야 할 말은 따로 있다. 국가가 해야 할 말 역시 따로 있다. 실패를 인정하고, 진실을 알리고, 용서를 구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 레이니가 엘렌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사실 따로 있었지만, 엘렌은 워커에게 '비공식적'으로 실패를 자인할 뿐이다. 레이니는 그 말을 문밖에서야 들을 수 있었다.엘렌 "우리 계산이 틀렸어요. 우리는 마이클의 목숨이 국제 관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가치는 없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모든 인질들의 위험 수준을 높인 거죠. 그게 우리의 선택이었어요." 사과하지 않는 나라, 책임지지 않는 나라, 국민을 지키지 않는 나라, 국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나라. 우리는 그런 국가와 정부를 목도하고 있다. 그 사이에 마이클이 끼어 있었다. 마이클처럼 국가에 의해 포기된, 내버려진 인물은 무수히 많다. 당장 우리 머릿속을 스쳐가는 그들의 명단이 있으니.워커 "역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요? 역사가 일어나는 건, 아주 가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어떤 말 한마디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을 때예요. 그 사람들이 들을 준비가 된 그 말을 당신이 가지고 있다면, 그건 엄청난 힘이죠."우리는 지금 역사의 한 가운데 있다. 백만의 시민이 광장에 모인 것처럼, 거리를 밝히는 촛불이 들불마냥 번져나가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권력자를 향해 던질 날카로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고, 그 말에 책임질 사람이 해야 할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워커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한 번도 진실을 말한 적이 없어요. 부인도 그건 잘 아실 텐데."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사라진 7시간에 대해 묻고 있다.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단 한 번도 진실을 말한 적이 없다. 보고를 받았고, 청와대에 있었고, 응당 당연한 조치를 취했다는 말을 엘렌처럼 반복할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은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달라"고 말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여전히 사라진 진실에 대해 묻고 있다. 침묵을 깨고 결국 나서서 목소리를 낸 레이니처럼.아직 이 나라에는 수많은 마이클이 눈을 가린 채, 손발이 묶인 채 갇혀 있다.

'희망' 말하는 유인촌, MB정부 부역자 반성부터 해야

[안 뻔한 티켓북] 연극 <페리클레스>의 감동이 반감되는 이유에 대하여

금빛 모래가 가득 쌓인 곳, 모래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보낸 이 늙은 남자는 입도 열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다. 어떤 상처가 그를 할퀴고 갔기에, 이토록 노인을 완고하게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없다.그리고 이 상처받은 인간 앞에, 한 젊은 여인이 등장한다. 순수한 자신의 영혼을 담아 노래하는 이 여자, 그 노래만으로 듣는 이를 감화하고 정화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이 맑은 사람 역시 큰 사연을 품은 듯 눈매가 처연하다. 슬픈 음색의 노래는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이 남자와 여자가 만났다.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남자와 그 문을 두드리는 여자. 두 사람이 주고받는 감정은 이들을 진실 앞으로 데려 간다. 모래의 파도가 출렁인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른다. 그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서 다시 만났다. 50톤의 모래만큼이나 압도적인 감동이 휘몰아친다. 아니 감동이 휘몰아쳐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말이다. 감동적이어야 할 결정적인 순간, 왜인지 모르게 울컥하고 솟구치는 무언가가 '턱'하고 걸려 더 이상 상승하지 않는다. 연극 <페리클레스>의 이야기이다.잘 만들었지만, 참 별로인 작품 <페리클레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은 2016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는 많은 공연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11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하여 지난 4일 막을 내린 <페리클레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셰익스피어가 노년에 쓴 <페리클레스>를 양정웅 연출이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해 재구성했다. 이번 연극 <페리클레스>는 지난 2015년에 같은 장소에서 올라왔던 바로 그 버전의 작품이다.<페리클레스>의 서사 구조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타이어 왕국의 혈기왕성했던 젊은 '페리클레스'는 안티오크의 왕이 내건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수수께끼의 답을 맞히면 공주와 결혼할 수 있지만, 틀리면 목숨을 잃게 되는 상황. 그러나 안티오크가 제시한 수수께끼의 답이 안티오크 왕가의 비밀인 '근친상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그 답을 말하는 순간 죽음을 자초한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된다. 페리클레스는 답을 말할 수도, 말하지 않을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 결국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탈출을 감행한다. 이후 본국에 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떠돌던 그는 위기에 빠진 펜타폴리스 왕국을 방문하게 되고, 왕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조력한다. 그리고 그곳의 공주 타이사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된다. 축복과 행복 속에 귀국하려던 페리클레스를, 운명은 내버려두지 않았다. 폭풍우가 배를 덮친 가운데 타이사 공주는 딸을 출산하다가 배 위에서 숨을 거둔다. 울면서 타이사의 관을 물결 위로 떠나보내고, 바다에서 태어난 딸 '마리나'와도 함께할 수 없는 상황. 고난의 운명은 페리클레스만이 아니라 마리나도 휩쓸기 시작한다.대문호의 유명한 고전을 지금의 무대에 올릴 때, 창작자들의 고민은 필수적이다. 본래 작품이 지닌 위대한 오리지널리티의 재현에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과감한 개입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할 것인가. 세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올해 국내에 올라왔던 수많은 작품들이 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 예컨대 신시컴퍼니의 <햄릿>은 전자로서 원작의 힘을 강렬하게 표현했고, 김광보 연출과 김은성 작가의 협업이 빛을 발했던 <함익>은 <햄릿>을 우리가 왜 2016년에도 무대에서 봐야 하는지 그 의미를 매우 설득적으로 드러냈다.양 연출의 <페리클레스>는 그 중간쯤 있는 작품이다. 기본적인 뼈대는 본래의 원작을 따르면서도, 관객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그리고 뻑뻑한 극 중간에 숨구멍을 틔우기 위해 현대적 요소들을 많이 집어넣는다. 예컨대 프로레슬링이 등장하는 부분이 그렇고, <슈퍼스타K>에 대한 패러디도 그렇다. 탄산수를 마시는 배우들이 이질적이고, 사륜 오토바이가 무대 위를 가로지르는 것 역시 쉽게 보기 힘든 과정이다.연극 <페리클레스>는 몇 가지 패착을 보이는데, 가장 큰 착오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적 각색이 의미를 상실했다. 현대적 요소만 집어넣는다고 현대적인 극이 완성되는 게 아니다. 왜 이 상황에서 패러디가 등장하고, 왜 이 지점에서 현대적 요소가 삽입되어야 하는지 설명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이야기되지 않는다.시의성 있는 포인트 중 가장 허무하게 흩어지는 건 시국에 대한 비판이다. "내가 이러려고...", "온 우주의 기운", "소통" 등을 거론하며 관객을 순간 웃기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해당 문장이 극의 맥락과 현 시국을 연결하며 비판의 힘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저 순간에 소비되기만 바쁘다. 심지어 이게 남발되면서 나중에는 극의 집중을 해치는 지경에 이른다. 여성 혐오나 다름없었던 극 중 창녀 묘사는 올해 본 극 중 불쾌한 장면 톱에 꼽을 정도였으니, 긴 말 하지 않겠다. 최악이었다.극의 일부분은 현대적인데, 극 전반적인 줄기는 여전히 고전에 머물러 있다. 현대적 사상이나 의미는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채, 재해석의 관점에서도 어설프다. 맥락이 거세된 작품은 고전의 감동도, 현대의 메시지도 전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다가 주저앉는다. 양 연출은 현재 비슷한 실수를 최근 상연되고 있는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반복하고 있다. 배우의 힘이 큰데, 정작 그 배우 때문에... 물론, 그렇다고 연극 <페리클레스>를 아주 못 만든 극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50톤의 모래가 깔린 무대는 그 자체로 경이적이다. 2016년 현재, 우리 연극 무대의 미장센이 어디까지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면 <페리클레스>를 보면 된다.배우 한 명 한 명의 열연은 이 극 최대의 장점이었다. 개막 공연에서 젊은 페리클레스로 분해 기가 막힌 연기를 보여줬던 남윤호 배우. 그는 사고로 인해 아바타 연기를 주고받아야 했던 이후 회차에서도, 김도완 배우와 박수받을 만한 합을 보여줬다. 마리나 역의 전성민 배우는 유인촌이라는 대배우와 호흡하면서도, 상대에게 눌리지 않고 끝까지 자기 연기를 이어 나간다.무엇보다 배우 유인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연극 <페리클레스>의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이 배우 한 명에게서 나온다. 시인 가우어와 늙은 페리클레스를 연기하며, 그는 배우 하나가 어떻게 극장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 노회한 배우는 자칫 고루하게 비칠 수 있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굳건하게 고집하면서도, 뛰어난 완급 조절로 여유 있게 극을 리드한다. 친아들 남윤호 배우와 주고받는 연기도 좋다. 특히 마리나 역의 전성민 배우와 만나는 후반부부터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다.그러나 왜일까. 연기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배우, 연극 무대에서만큼은 블랙홀처럼 모든 걸 빨아들이며 관객을 집중시키는 이 배우가 말하는 '희망'이 하나도 와 닿지 않는 건. 연극 <페리클레스>의 메시지는, 아무리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언젠가 맞이하고야 말 새 시대의 희망에 있다. 그런데 기사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그 희망의 메시지가 공중분해되고 만다. 감동이 올라오려다가 멈춘다. 바로 이 배우, 유인촌 때문에."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관련된 사람들이 석고대죄해야 하며 책임져야 할 것을 책임지고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블랙리스트가 생기는 과정에서 충분히 견제될 수 있었음에도 하나도 안 걸러지고 진행됐다는 점에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 든다.최근 여러 가지 일로 나라가 어지러운데, 특히 정부 전 부처 가운데 문체부가 가장 피폐해졌다. 문체부를 위해 열심히 일했던 공무원들이 받은 자존심에 대한 상처는 보상이 되지 않을 것이며, 그로 인해서 생긴 국민들의 마음에 생긴 상처는 뭐라고 이야기하기 힘들 만큼 크다."지난 11월 9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던 연극 <페리클레스>의 프레스콜 현장에서 배우 유인촌이 현 시국에 대해 한 말이다. 원칙적으로 틀린 말은 없다. 언뜻 보면 '소신' 발언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봐도 '숟가락 얹기' 정도에 불과한 발언이다.연기의 아우라 그리고 삶의 이력 잘 알려졌다시피 배우 유인촌은 대표적인 친이명박 인사로 분류된다. 올해 <햄릿>이 상연되었던 국립극장 입구에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의 화환이 자리하고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지속되고 있다."찍지 마 XX"로 대표되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서 그가 쌓아온 이력은 화려하다 못해 눈부시다. 단순히 욕설의 문제가 아니다. 참여정부부터 문화·예술 관련 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을 향해 알아서 물러나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한 것도 그이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부당한 정치적 탄압을 가했던 것도 그의 작품이나 다름없다. 당시에 1인 시위하던 학부모에게 했던 "세뇌" 운운은 그의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문화인으로서의 수준이 얼마나 천박했는지 드러냈다. 이명박 정부의 문화부 장관으로서 검열과 탄압에 앞장서 부역했던 그가 블랙리스트를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떳떳하게 말해도 되는 걸까.물론, 법적 혹은 도덕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배우를 영구히 무대에서 퇴출하자고 말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범죄 경력이 있거나 팬들의 지탄을 받았던 이 중에도 여전히 무대에 오르는 배우는 여럿 있다. 그러나 그들이 무대에 오르는 걸 강제로 막을 수 없듯이, 평생 따라다닐 비난 역시 그들은 감수해야만 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하는 배우를, 어떤 관객은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 아무렇지 않게 그의 연기에 감동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동시에 어떤 관객에게는 그의 연기를 1초도 마주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옳고 그름은 없다.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으로의 삶을 접고 다시 무대로 돌아온 배우 유인촌을 무조건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그가 대체불가능한 존재감의 배우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니까.그러나 한 사람의 배우가 만들어내는 자기만의 아우라는, 그저 연기력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게 아니다. 연기는 극 중 인물이라는 가면을 쓰고 진행되지만, 가면 밖으로 발현되는 건 그 배우 안의 영혼이다.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촘촘하게 누적되어서 오늘의 그를 만든다. 그가 매순간 선택하며 걸어왔던 길이, 결국 지금의 연기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그가 말하는 '새 시대의 희망' 따위 저잣거리의 장삼이사가 말하는 것보다도 못한 무게감을 가질 수밖에. 그는 욕설이나 실언에 대해서는 사과했을지언정, 그가 장관으로서 해왔던 일에 대해 단 한 번도 사죄한 적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최소한 대중 앞에 고개를 숙여야 '판단'과 '선택'의 근거라도 생기는 것인데."거친 파도가 온다해도 잡을 밧줄이 있고, 헤어진다 해도 다시 만날 희망이 있는 것. 그것이 산다는 것 아닌가?"배우 유인촌의 <햄릿>을 기억한다. 놀라웠다. 마지막 커튼콜 때, 그의 등 뒤에서 쏟아지던 조명은 인위적인 빛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서 나오는 빛으로 느껴질 만큼 훌륭했다. 하지만 <페리클레스>는 아니었다. 그가 이처럼 혼탁한 시대에 희망의 'ㅎ'을 꺼내는 순간 주마등처럼 그의 이력들이, 그의 과거가 스쳐 지나간다. 반성조차 하지 않는 그가 '희망'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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