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클로저' 집착과 탐욕 그리고 소통과 진실  9일 오후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클로저> 프레스콜에서 배우 김선호와 이지혜가 열연을 하고 있다.  <클로저>는 영국의 극작가 패트릭 마버의 대표작으로,아슬아슬하게 얽힌 네 남녀의 관계와 사랑으로 인한 집착과 탐욕, 소통과 진실의 중요성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9월 6일부터 11월 13일까지 공연.

▲ 집착과 탐욕 그리고 소통과 진실 <클로저>는 영국의 극작가 패트릭 마버의 대표작으로, 아슬아슬하게 얽힌 네 남녀의 관계와 사랑으로 인한 집착과 탐욕, 소통과 진실의 중요성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앨리스 역에 더블 캐스팅된 이지혜 배우는 앞으로를 기대할 만한 연기를 보여줬다. ⓒ 이정민


"안녕, 낯선 사람."

우리는 '낯선' 무언가에 끌린다.

익숙한 것은 진부하다.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반복적이고 지루하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를 찾는다. 낯선 상대(그것이 유무형의 무엇이든 간에)로부터 느껴지는 약간은 위험한, 그래서 더 끌리는 호기심.

앨리스에게 댄은, 댄에게 앨리스는 낯선 사람이었다. 신문에 '완곡하게' 부고 기사를 쓰는 댄 앞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여자 앨리스. 차에 치인 앨리스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 자신을 데려다주는 댄에게 "안녕, 낯선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뒤섞이기 시작한다.

"그쪽이 죽으면 뭐라고 쓸 거예요? 완곡하게."
"그는…. 방어적이었다."
"나는요?"
"그녀는…. 누구라도 방심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낯섦'에 끌리게 된다.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이 사이에 래리와 안나라는 다른 인물들이 끼어들면서 복잡한 감정의 실이 타래가 되어 꼬여버릴 줄. 지난 11월 13일 막을 내린 연극 <클로저>의 이야기이다.

'낯섦'을 의도한 무대, 낯설지 않은 감정

'클로저' 서현우-송유현, 실제같은 키스 9일 오후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클로저> 프레스콜에서 배우 서현우와 송유현이 열연을 하고 있다.  <클로저>는 영국의 극작가 패트릭 마버의 대표작으로,아슬아슬하게 얽힌 네 남녀의 관계와 사랑으로 인한 집착과 탐욕, 소통과 진실의 중요성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9월 6일부터 11월 13일까지 공연.

▲ 래리와 안나의 입맞춤 의도치 않게 '큐피드' 역할을 한 댄 덕분에 래리와 안나가 이어진다. 사랑과 욕망의 경계를 우리는 무 자르듯이 구분할 수 있을까. 이 두 사람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 이정민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작품이지만 연극 <클로저>는 극작가 패트릭 마버의 1997년 작품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 원조다.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2004년 영화 <클로저>는 패트릭 마버가 본인의 대본을 시나리오로 각색한 버전이다. 영화만을 기억하는 팬에게 연극 <클로저>는 전혀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영화에서는 인물 한 명 한 명의 감정 상태와 그 동기가 보다 명확하고 친절하게 설명됐다. 그래서 징검다리를 뛰어넘듯 시간을 뛰어넘어도 작품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상황이 급변하고 인물의 감정 관계가 뒤바뀌어도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확보해둔다. 하지만 연극은 인물의 동기도 사건 간의 인과관계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이 연극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시도하는 방식 자체가 낯설다. 하지만 그 감정은 어디서 본 듯 낯설지 않다. 왜일까.

'클로저' 배성우, 괴물같은 연기  9일 오후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클로저> 프레스콜에서 배우 배성우와 김소진이 열연을 하고 있다.  <클로저>는 영국의 극작가 패트릭 마버의 대표작으로,아슬아슬하게 얽힌 네 남녀의 관계와 사랑으로 인한 집착과 탐욕, 소통과 진실의 중요성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9월 6일부터 11월 13일까지 공연.

▲ 서로의 진실 진실을 요구하며 꺼내놓는 건 정말 진실일까. 그 진실은 진실 자체로 목적인 것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위한 수단인 것일까. ⓒ 이정민


사랑이라는 감정은 숭고할지 모르지만, 그 감정이 표현되는 양상은 그다지 숭고하지 않다. 사랑의 민낯이 얼마나 추잡하고 지질할 수 있는지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매달리고 달래고 화내고 협박하는 그 모든 추한 행동들을 우리는 모두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정당화하니까.

이 작품 속의 인물들도 그렇다. 그와 잤는지 안 잤는지, 잤으면 얼마나 좋았는지, 나랑 자는 게 더 좋았는지 그 사람과 잔 게 더 좋았는지 굳이 캐물어서 확인하려고 한다. 사랑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사랑을 증명해달라고 소리친다. 한 번만 자달라고 매달리거나, 사랑이 있으면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모습이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다.

이 작품의 묘한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형식적으로 낯섦을 의도했지만, 그 감정이 실제로 낯선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 때문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기고, 사랑 때문에 누군가로부터 상처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전 애인에게 술을 마시고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버리지 못한 미련에 애써 매달려보기도 하고, 미처 기억에서 지우지 못한 SNS 주소를 기억해 들어가 보기도 하는 그런 행동들. 진실이라는 이름 아래에 상대의 사랑을 굳이 끊임없이 재확인하고자 서로의 상처를 쑤시는 발언들. 인물의 동기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도, 그 폭발하는 감정과 비슷한 부류의 것들을 우리는 품어본 적이 있다.

낯섦으로 시작해 진실로 귀결되는 관계

'클로저' 박소담, 연기를 넘어선 리얼함  9일 오후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클로저> 프레스콜에서 배우 박소담이 열연을 하고 있다.
 <클로저>는 영국의 극작가 패트릭 마버의 대표작으로,아슬아슬하게 얽힌 네 남녀의 관계와 사랑으로 인한 집착과 탐욕, 소통과 진실의 중요성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9월 6일부터 11월 13일까지 공연.

▲ 안나의 사진전 앨리스는 안나와 댄의 관계를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사진 촬영하는 날 앨리스가 흘린 눈물은 그런 감정의 눈물이었다. 그러나 이 눈물이, 진실과 다르게 포장되어 전시된다. 우리가 관계에서 원하는 건 진실이 아니라, 진실로 포장하여 전시하기 좋은 정도의 무언가가 아닐까. ⓒ 이정민


"완전 사기죠. 남의 슬픔을 아름답게 찍어놨잖아요. 진실이 어떻든."

안나의 사진전에 걸려 있는 앨리스의 사진. 앨리스는 슬픈 표정의 자기 사진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진실이 어떻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것이 진실인 것처럼 포장되느냐에 달려 있다.

낯설기 때문에 시작된 관계 속에서, 이들은 서로에게 끊임없이 진실을 요구한다. 그렇게 서로의 낯섦에 끌려 연결되었던 이들은 진실에 의해 다시 끊어지고 부서진다. 관계에서 진실은 물론 중요하다. 그런데 정작 이들이 탐닉하는 건 '진짜' 진실이 아니었다.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확인일 뿐이다. 그러니 상대가 말해야 하는 건, 진실이 아니라 내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그 거짓된 진실이 관계를 부순다. 앨리스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묻는 래리에게 수차례 정직한 답을 하지만, 래리가 그 말을 믿지 않는 것처럼.

'클로저' 박소담, 연기를 넘어선 리얼함   9일 오후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클로저> 프레스콜에서 배우 박소담이 열연을 하고 있다.  <클로저>는 영국의 극작가 패트릭 마버의 대표작으로,아슬아슬하게 얽힌 네 남녀의 관계와 사랑으로 인한 집착과 탐욕, 소통과 진실의 중요성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9월 6일부터 11월 13일까지 공연.

▲ 앨리스의 사랑 언제나 떠나는 건 앨리스였다. 사랑하지만 먼저 떠나야만 하는 관계가 힘들었던 앨리스. 그는 처음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떠나는 길을 택한다. 그 이별이 영원한 것일 줄은 아무도 몰랐으리라. ⓒ 이정민


"나, 너 사랑 안 해."

앨리스의 이 선언은 댄 탓이다. 댄을 영원히 사랑할 수도 있었던 앨리스이지만, 댄의 집착이 결국 관계의 파탄을 불러온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진실이라는 이름 앞에 그가 요구했던 건 실은 진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라는 답에서 나오듯, 댄이 원했던 건 그저 댄이 추측했던 사실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함으로서, 우승열패의 감정을 재확인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앨리스가 댄을 사랑했다는 진실이 부서진다.

"내가 선택한 거야. 그 사람 가방 안에서 샌드위치를 봤을 때, 그 순간에 내 모든 걸 이 식빵 테두리를 잘라내는 귀여운 사람한테 주겠다고."

앨리스가 댄을 선택한 계기는 사실 이처럼 단순했다. 그런데 정작 댄이 샌드위치 식빵 테두리를 잘라낸 건, 본래 테두리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날따라 식빵 겉이 탔을 뿐이다. 진실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그 사소한 진실을 인정하는 데서 우리의 관계는 지속 가능성을 지닌다. 낯섦으로 시작해 진실로 귀결되는 사랑의 관계가.

나에게 낯선 사람이 된 당신

'클로저' 박소담, 연기를 넘어선 리얼함  9일 오후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열린 연극 <클로저> 프레스콜에서 배우 박소담이 열연을 하고 있다.
 <클로저>는 영국의 극작가 패트릭 마버의 대표작으로,아슬아슬하게 얽힌 네 남녀의 관계와 사랑으로 인한 집착과 탐욕, 소통과 진실의 중요성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9월 6일부터 11월 13일까지 공연.

▲ 소담앨리스의 호연 브라운관에서는 제 빛을 발하지 못하는 박소담이지만, 무대 연기에서는 자기가 확실히 지배하고 제어하는 공간이 있는 배우이다. 자기만의 연기 '톤'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앞으로도 무대에서 자주 보고 싶다. ⓒ 이정민


"그때 네 표정, 네 얼굴…. 정말 사랑스럽더라. 무슨 환영처럼. 널 처음 본 그때가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었어. 넌 완벽했어."

끝난 지 한 달이 넘은 극이 갑자기 생각이 난 건 왜일까. 오랫동안 만나던 익숙한 사람. 나는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에게서 이전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던 '낯섦'을 마주한다. 그 낯섦에 끌려서, 그 사람을 향한 낯선 감정을 마주한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남자들은 여자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을 사랑하지. 우리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게 아니고."

이전과는 분명히 달라졌다. 서로가 나누는 말도, 오가는 제스처도. 내가 사랑하는 건 감정인가, 그 사람 자체인가. 나조차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미세하게 내 몸이 떨리고 있음은 확실하다. 그래서 상대에게 나는 여전히 익숙한, 원래 알던 그 사람인지 궁금하다. 그 사람에게도 나의 어느 부분이 낯설게 느껴지고 있을까. 한 발자국 내디디기 두려워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나는 지질하게 가라앉는다.

"당신한테는 나도 낯선 사람인가요?"

그래서 묻고 싶다. 나에게 낯선 사람이 된 당신에게, 나 역시 낯선 사람인지. 그러나 자기만족을 위한 진실을 집요하게 요구하다가 결국 영원히 이별하고 만 댄과 앨리스처럼, 이 질문 한마디에 결국 우리 사이가 돌이킬 수 없게 될까봐 두렵다. 그렇게 몇 번을 입술만 달싹거리다가 주저하고, 애꿎은 그의 머리만 쓰다듬고 헤어진 것이 몇 번. 우리의 관계는 이 낯섦을 통해 시작될 수 있을까.

그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 오늘은, 그 사람에게 말할 수, 인사할 수 있을까.

"안녕, 낯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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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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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뻔한 티켓북] 연극 <페리클레스>의 감동이 반감되는 이유에 대하여

금빛 모래가 가득 쌓인 곳, 모래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보낸 이 늙은 남자는 입도 열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다. 어떤 상처가 그를 할퀴고 갔기에, 이토록 노인을 완고하게 만들었는지 짐작할 수 없다.그리고 이 상처받은 인간 앞에, 한 젊은 여인이 등장한다. 순수한 자신의 영혼을 담아 노래하는 이 여자, 그 노래만으로 듣는 이를 감화하고 정화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이 맑은 사람 역시 큰 사연을 품은 듯 눈매가 처연하다. 슬픈 음색의 노래는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이 남자와 여자가 만났다.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남자와 그 문을 두드리는 여자. 두 사람이 주고받는 감정은 이들을 진실 앞으로 데려 간다. 모래의 파도가 출렁인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른다. 그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서 다시 만났다. 50톤의 모래만큼이나 압도적인 감동이 휘몰아친다. 아니 감동이 휘몰아쳐야 했다. 원래대로라면 말이다. 감동적이어야 할 결정적인 순간, 왜인지 모르게 울컥하고 솟구치는 무언가가 '턱'하고 걸려 더 이상 상승하지 않는다. 연극 <페리클레스>의 이야기이다.잘 만들었지만, 참 별로인 작품 <페리클레스>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은 2016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는 많은 공연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11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개막하여 지난 4일 막을 내린 <페리클레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셰익스피어가 노년에 쓴 <페리클레스>를 양정웅 연출이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해 재구성했다. 이번 연극 <페리클레스>는 지난 2015년에 같은 장소에서 올라왔던 바로 그 버전의 작품이다.<페리클레스>의 서사 구조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타이어 왕국의 혈기왕성했던 젊은 '페리클레스'는 안티오크의 왕이 내건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수수께끼의 답을 맞히면 공주와 결혼할 수 있지만, 틀리면 목숨을 잃게 되는 상황. 그러나 안티오크가 제시한 수수께끼의 답이 안티오크 왕가의 비밀인 '근친상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는, 그 답을 말하는 순간 죽음을 자초한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된다. 페리클레스는 답을 말할 수도, 말하지 않을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 결국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탈출을 감행한다. 이후 본국에 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떠돌던 그는 위기에 빠진 펜타폴리스 왕국을 방문하게 되고, 왕국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크게 조력한다. 그리고 그곳의 공주 타이사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된다. 축복과 행복 속에 귀국하려던 페리클레스를, 운명은 내버려두지 않았다. 폭풍우가 배를 덮친 가운데 타이사 공주는 딸을 출산하다가 배 위에서 숨을 거둔다. 울면서 타이사의 관을 물결 위로 떠나보내고, 바다에서 태어난 딸 '마리나'와도 함께할 수 없는 상황. 고난의 운명은 페리클레스만이 아니라 마리나도 휩쓸기 시작한다.대문호의 유명한 고전을 지금의 무대에 올릴 때, 창작자들의 고민은 필수적이다. 본래 작품이 지닌 위대한 오리지널리티의 재현에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과감한 개입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할 것인가. 세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올해 국내에 올라왔던 수많은 작품들이 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 예컨대 신시컴퍼니의 <햄릿>은 전자로서 원작의 힘을 강렬하게 표현했고, 김광보 연출과 김은성 작가의 협업이 빛을 발했던 <함익>은 <햄릿>을 우리가 왜 2016년에도 무대에서 봐야 하는지 그 의미를 매우 설득적으로 드러냈다.양 연출의 <페리클레스>는 그 중간쯤 있는 작품이다. 기본적인 뼈대는 본래의 원작을 따르면서도, 관객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그리고 뻑뻑한 극 중간에 숨구멍을 틔우기 위해 현대적 요소들을 많이 집어넣는다. 예컨대 프로레슬링이 등장하는 부분이 그렇고, <슈퍼스타K>에 대한 패러디도 그렇다. 탄산수를 마시는 배우들이 이질적이고, 사륜 오토바이가 무대 위를 가로지르는 것 역시 쉽게 보기 힘든 과정이다.연극 <페리클레스>는 몇 가지 패착을 보이는데, 가장 큰 착오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적 각색이 의미를 상실했다. 현대적 요소만 집어넣는다고 현대적인 극이 완성되는 게 아니다. 왜 이 상황에서 패러디가 등장하고, 왜 이 지점에서 현대적 요소가 삽입되어야 하는지 설명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이야기되지 않는다.시의성 있는 포인트 중 가장 허무하게 흩어지는 건 시국에 대한 비판이다. "내가 이러려고...", "온 우주의 기운", "소통" 등을 거론하며 관객을 순간 웃기기는 하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해당 문장이 극의 맥락과 현 시국을 연결하며 비판의 힘을 발휘해야 하는데 그저 순간에 소비되기만 바쁘다. 심지어 이게 남발되면서 나중에는 극의 집중을 해치는 지경에 이른다. 여성 혐오나 다름없었던 극 중 창녀 묘사는 올해 본 극 중 불쾌한 장면 톱에 꼽을 정도였으니, 긴 말 하지 않겠다. 최악이었다.극의 일부분은 현대적인데, 극 전반적인 줄기는 여전히 고전에 머물러 있다. 현대적 사상이나 의미는 제대로 구현되지 못한 채, 재해석의 관점에서도 어설프다. 맥락이 거세된 작품은 고전의 감동도, 현대의 메시지도 전하지 못한 채 갈팡질팡하다가 주저앉는다. 양 연출은 현재 비슷한 실수를 최근 상연되고 있는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반복하고 있다. 배우의 힘이 큰데, 정작 그 배우 때문에... 물론, 그렇다고 연극 <페리클레스>를 아주 못 만든 극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50톤의 모래가 깔린 무대는 그 자체로 경이적이다. 2016년 현재, 우리 연극 무대의 미장센이 어디까지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확인하려면 <페리클레스>를 보면 된다.배우 한 명 한 명의 열연은 이 극 최대의 장점이었다. 개막 공연에서 젊은 페리클레스로 분해 기가 막힌 연기를 보여줬던 남윤호 배우. 그는 사고로 인해 아바타 연기를 주고받아야 했던 이후 회차에서도, 김도완 배우와 박수받을 만한 합을 보여줬다. 마리나 역의 전성민 배우는 유인촌이라는 대배우와 호흡하면서도, 상대에게 눌리지 않고 끝까지 자기 연기를 이어 나간다.무엇보다 배우 유인촌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연극 <페리클레스>의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이 배우 한 명에게서 나온다. 시인 가우어와 늙은 페리클레스를 연기하며, 그는 배우 하나가 어떻게 극장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 노회한 배우는 자칫 고루하게 비칠 수 있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굳건하게 고집하면서도, 뛰어난 완급 조절로 여유 있게 극을 리드한다. 친아들 남윤호 배우와 주고받는 연기도 좋다. 특히 마리나 역의 전성민 배우와 만나는 후반부부터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다.그러나 왜일까. 연기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 배우, 연극 무대에서만큼은 블랙홀처럼 모든 걸 빨아들이며 관객을 집중시키는 이 배우가 말하는 '희망'이 하나도 와 닿지 않는 건. 연극 <페리클레스>의 메시지는, 아무리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언젠가 맞이하고야 말 새 시대의 희망에 있다. 그런데 기사 처음에 언급했던 것처럼, 그 희망의 메시지가 공중분해되고 만다. 감동이 올라오려다가 멈춘다. 바로 이 배우, 유인촌 때문에."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관련된 사람들이 석고대죄해야 하며 책임져야 할 것을 책임지고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블랙리스트가 생기는 과정에서 충분히 견제될 수 있었음에도 하나도 안 걸러지고 진행됐다는 점에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 든다.최근 여러 가지 일로 나라가 어지러운데, 특히 정부 전 부처 가운데 문체부가 가장 피폐해졌다. 문체부를 위해 열심히 일했던 공무원들이 받은 자존심에 대한 상처는 보상이 되지 않을 것이며, 그로 인해서 생긴 국민들의 마음에 생긴 상처는 뭐라고 이야기하기 힘들 만큼 크다."지난 11월 9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진행됐던 연극 <페리클레스>의 프레스콜 현장에서 배우 유인촌이 현 시국에 대해 한 말이다. 원칙적으로 틀린 말은 없다. 언뜻 보면 '소신' 발언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봐도 '숟가락 얹기' 정도에 불과한 발언이다.연기의 아우라 그리고 삶의 이력 잘 알려졌다시피 배우 유인촌은 대표적인 친이명박 인사로 분류된다. 올해 <햄릿>이 상연되었던 국립극장 입구에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의 화환이 자리하고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지속되고 있다."찍지 마 XX"로 대표되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서 그가 쌓아온 이력은 화려하다 못해 눈부시다. 단순히 욕설의 문제가 아니다. 참여정부부터 문화·예술 관련 자리에 앉아 있던 이들을 향해 알아서 물러나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한 것도 그이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부당한 정치적 탄압을 가했던 것도 그의 작품이나 다름없다. 당시에 1인 시위하던 학부모에게 했던 "세뇌" 운운은 그의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문화인으로서의 수준이 얼마나 천박했는지 드러냈다. 이명박 정부의 문화부 장관으로서 검열과 탄압에 앞장서 부역했던 그가 블랙리스트를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떳떳하게 말해도 되는 걸까.물론, 법적 혹은 도덕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배우를 영구히 무대에서 퇴출하자고 말하는 게 아니다. 실제로 범죄 경력이 있거나 팬들의 지탄을 받았던 이 중에도 여전히 무대에 오르는 배우는 여럿 있다. 그러나 그들이 무대에 오르는 걸 강제로 막을 수 없듯이, 평생 따라다닐 비난 역시 그들은 감수해야만 한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참회하는 배우를, 어떤 관객은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 아무렇지 않게 그의 연기에 감동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동시에 어떤 관객에게는 그의 연기를 1초도 마주하고 싶지 않을 수 있다.옳고 그름은 없다.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인으로의 삶을 접고 다시 무대로 돌아온 배우 유인촌을 무조건 손가락질 할 수는 없다. 그가 대체불가능한 존재감의 배우라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니까.그러나 한 사람의 배우가 만들어내는 자기만의 아우라는, 그저 연기력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게 아니다. 연기는 극 중 인물이라는 가면을 쓰고 진행되지만, 가면 밖으로 발현되는 건 그 배우 안의 영혼이다.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 촘촘하게 누적되어서 오늘의 그를 만든다. 그가 매순간 선택하며 걸어왔던 길이, 결국 지금의 연기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 그가 말하는 '새 시대의 희망' 따위 저잣거리의 장삼이사가 말하는 것보다도 못한 무게감을 가질 수밖에. 그는 욕설이나 실언에 대해서는 사과했을지언정, 그가 장관으로서 해왔던 일에 대해 단 한 번도 사죄한 적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최소한 대중 앞에 고개를 숙여야 '판단'과 '선택'의 근거라도 생기는 것인데."거친 파도가 온다해도 잡을 밧줄이 있고, 헤어진다 해도 다시 만날 희망이 있는 것. 그것이 산다는 것 아닌가?"배우 유인촌의 <햄릿>을 기억한다. 놀라웠다. 마지막 커튼콜 때, 그의 등 뒤에서 쏟아지던 조명은 인위적인 빛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서 나오는 빛으로 느껴질 만큼 훌륭했다. 하지만 <페리클레스>는 아니었다. 그가 이처럼 혼탁한 시대에 희망의 'ㅎ'을 꺼내는 순간 주마등처럼 그의 이력들이, 그의 과거가 스쳐 지나간다. 반성조차 하지 않는 그가 '희망'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해방되고 싶어요"... 엄마는 아픈 딸에게 죽음의 주사를 놓았다

[안 뻔한 티켓북] 서풍을 타고 날아간 작은 꿀벌의 이야기, 연극 < BEA >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중문화의 매력 중 하나는, 어려운 문제에 대한 고민거리를 딱딱하지 않게 던져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덕분에 사형제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고, 소설 <도가니> 덕분에 아동 성폭행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었다. 무대도 다르지 않다. 연극 <프라이드>는 억압된 시대 분위기 속에서 성 소수자라는 정체성 탓에 괴로워하는 이들의 아픔을 풀어냈고, 뮤지컬 <스위니토드>는 가진 자들의 위선을 폭로한다.지난 11월 11일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개막하여 11월 30일에 폐막한 연극 <BEA>도 위에 열거한 작품들과 궤를 같이했다. 논쟁적 화두를 던짐으로써 관객들에게 토론의 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우선 탁월하다. 그 메시지의 전달력을 유지하면서도 극의 완성도 역시 훌륭한 수준으로 유지한다.원작자 믹 고든이 쓴 대본의 힘도 크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영민해지는 김광보 연출의 터치가 빛을 발휘한다. 경험의 차이를 결코 무시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그는, 기존의 자신이 보여주던 무대와는 다른 매력을 시도한다. 백지원, 전미도, 이창훈 배우의 연기는 더하고 뺄 것이 없다. 대학로에서 정식 공연으로 빨리 만나고 싶을 정도로. (주인공 '비'를 연기한 배우 전미도는 이 작품으로 2016 스테이지톡 오디언스 초이스 어워즈에서 연극 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비, Bea, Be a, Bee 베아트리체는 자신의 본명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비'라고 불리는 걸 좋아한다. 이 밝고 화사한, 자유분방한 성격의 주인공은 혼자서 눕기엔 조금 넓은 듯한 침대를 방방 뛰어다닌다. 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병 때문에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기에, 자신의 욕구를 발산할 곳이 없다. 변호사로 일하는 엄마 캐더린마저 집에 잘 없는 터라 비의 외로움은 더욱 커져만 간다.그래서 비는 새로 온 간병인 레이가 퍽 마음에 든다. 레이는 섬세하고 다정하며 재미있는 사람이다. 북부 아일랜드 출신의 이 독특한 간병인이 캐더린은 석연찮지만, 비의 강한 고집 덕분에 결국 레이를 고용하기로 한다. 비는 캐더린에게 쉽게 밝힐 수 없는 비밀을 레이와 공유하며, 이 침대라는 감옥 속 일상을 살아간다.프로그램 북이나 예매 페이지에 나와 있는 시놉시스를 살펴보지 않은 관객은, 비가 어떤 상황인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배우 한 명의 연기를 통해 드러나는 반전이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만큼 비의 정신세계와 실제 육체 상태의 간극이 크다. 이처럼 발랄한 주인공을 옭아매는 정체불명의 병은, 그를 침대에 누운 채 아무것도 할 수 없게끔 한다. 말하기조차 쉽지 않은 육신과 활달한 영혼의 차이는 그만큼의 낙차가 되어, 극도의 절망으로 돌아온다.대소변도 못 가리고, 누군가 쑤어준 미음을 간신히 받아먹을 수밖에 없다. 8년 동안 그는 침대에 누워서 방 안의 모든 작은 디테일들을 헤아리며 기억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뻗쳤을 때 침대에 있는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상태가 아주 좋은 날에는 귀고리도 만들 수 있지만, 그게 다다. 그조차도 다 끝낸 후에 남는 건 없다. 그 외에 모든 건 고통이다. 병이 주는 고통, 약이 주는 고통. 가장 끔찍한 건 이 고통을 견딘다고 해서, 호전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이 병은 낫지 않는다. 지난 8년간 몸 상태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진 적이 없다. 이미 예정된 끝을 위해 왜 이토록 힘들게 버텨야 하는가. 비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비를 유일하게 살도록 하는 이유는 하나이다. 엄마. 자신이 떠나고 나면 엄마가 너무 슬플까봐. 그 하나 때문에 어떻게든 아등바등 이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렸지만, 그마저도 늦어버렸다. 아빠도 떠났는데. 엄마와 아빠는 아직 서로를 잊지 못하는데. 그저 나 때문에, 자신의 삶을 포기한 엄마가 비는 너무 안쓰럽다. 그래서 결국 엄마에게 권한다. 이 의미 없는 고통에 종지부를 찍자고."나는 덫에 걸렸어요, 엄마. 이제, 해방되고 싶어요. 그리고 엄마도 해방됐으면 좋겠어요."베아트리체의 이름은 왜 비(Bea)였을까. 비는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사람(Be a)이기를 바랐다. 예쁜 옷도 입고, 데이트도 하고, 학교도 다니며, 수다도 떠는 그 나잇대의 평범함. 대단한 특별함을 꿈꾼 것이 아니었음에도, 마치 <넥스트 투 노멀>처럼 그에게는 그 평범함이 너무 멀리 있는 무언가였다.비는 또 꿀벌(Bee)과 발음이 똑같다. 붕붕 나는 꿀벌의 노래를 좋아했던 비. 캐더린이 '붕붕이'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비. 비는 레이를 처음 만난 날, 레이에게 물어봤다. 제피(Zephyr)라는 말이 무엇이냐고. 그런 말이 있는지 레이는 알지 못한다. 그리고 비와 마지막으로 만나는 날, 레이는 그 질문에 답을 한다. 그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에서 따온 말이라고. 그렇게 이 좁은 침대에 갇혀 있던 작은 꿀벌은, 서풍을 타고 훨훨 날아간다.제피로스는 세상 모든 식물의 꽃을 틔우는 여신 플로라의 남편이다. 제피로스의 도움으로, 이 꿀벌은 자기만의 꽃을 찾아간 것일까. 그곳에서 비는 행복할까. 미친 듯이 웃으며 온 방 안을 휘젓는 비의 뒤로, 남은 캐더린은 침대에 주저앉아 서럽게 오열한다. 캐더린의 어원은 여신 헤카테, 죽음을 관장한다. 누구도 남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다우리는 쉽게 말한다. '살아 있으면 언젠가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든가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지'와 같은. 그러나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죽음보다 더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대꾸하면 뭐라 답할 텐가. 에밀리아 클락(루이자 역)과 샘 클래플린(윌 역) 주연의 영화 <미 비포 유>를 본 사람이라면 '안락사'에 대해 제3자가 쉽게 말할 수 없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윌이 유일하게 눈 뜨는 이유는 루이자 때문이지만, 이렇게 사는 게 괜찮을 수도 있지만, 그런데도 그것이 자기 인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을 너무도 사랑했던 그는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그래, 아마도 공감에는 한계가 있나 봐. 지리학적으로, 비행기가 어디 뭐, 인도나 파키스탄에서 추락했다고 해봐. 누가 신경이나 써? 정말로 신경 쓰지는 않는다고. 레이 말이 맞는 것 같아. 우린 모두 마음 장님이야."연극 <비>는 공감에 대한 작품이다. 장애는 몸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마음에도 장애가 있다. 우리는 모두 사실, 상대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 장애를 가진 '마음 장님'들이다. 이 마음 장님들은 서로를 자신의 기준에 끼워 맞추고, 상처 주고, 상처받는다. 캐더린은 죽음을 택하려는 비를 처음에 이해하지 못한다. 비의 상황을 체험도 해보지만,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비와 캐더린의 가교 구실을 해주는 것이 바로 새로 온 간병인 레이이다. (이 극을 열고 닫는 노래가 마돈나의 'Ray of Light'인 점도 의미심장하다) 자신의 말투나 행동에 대해서 그리고 성 정체성에 대해 갖은 편견과 핍박에 시달렸을 그이기에, 그래서 더더욱 서로를 사랑함에도 온전히 자기 얘기를 하지 못하는 모녀를 연결해 줄 수 있었다. 마지막 비의 생일 파티, 세상에 다시는 없을 것처럼 즐거운 시간을 세 사람은 보낸다. 서로의 아픔에 대해 이해하게 된 이들은 결국 선택한다. 비가 원했던 그 선택지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어주다가 열정에 휩싸였던 레이와 비. 만약 그때 비가 쾌락을 느꼈다면, 내 몸이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픔만이 아니라 기쁨도 있다는 걸 알았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이 삶을 살아갈 이유를 찾는데 레이라는 친구를 얻은 것만으로는 부족했을까. 비를 붙잡고 있는 캐더린이 이기적인 만큼, 캐더린을 놓고 떠나려는 비도 이기적인 건 아니었을까. 연극 <비>는 이런 물음표들에 명쾌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다만, 서로를 존중하는 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안락사에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있다. 논쟁적 사회 문제에 대해 정답과 오답이, 옳고 그름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자신이 어느 편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편에 있는 이 그리고 정작 그 처지에 있는 당사자에 대해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이 상식적인 진리를 <비>는 재확인시켜준다. 이들이 최종적으로 선택한 건, 여러 가지 선택지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완벽하지 않기에, 누군가의 가슴에는 크나큰 구멍을 남길 수밖에 없는 선택지. '해방'된 두 모녀를 보며 눈물이 나는 건 그 때문이다.안락사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불법이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극소수의 국가에서 그것도 상당히 제한적인 형태로 허용될 뿐이다. '웰빙'을 넘어서 '웰다잉'의 개념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면서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도 언젠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그때가 되었을 때, 죽음을 택한 사람에 대해서 혹은 남는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않는 법을 이 작품을 말해준다. 그때가 올 때까지, 우리가 이 작품을 되새겨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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