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연극 <두 개의 방> 공연 사진 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두 개의 방>이 지난 13일 커튼을 닫았다. 연극 <두 개의 방>은 극작가 리 블레싱의 작품으로 1988년 미국 무대에서 처음 관객을 맞았다. 이번 2016 라이선스 버전이 국내 초연이다. 이 정치적인 연극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프게 다가온다. 전수지·이승주·배해선·이태구 등.

▲ 납치된 마이클 마이클은 죄가 없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미국인이라는 점 뿐이다. 그건 미국의 죄이지 그의 죄가 아니다. 국가의 잘못으로 인해 재난에 처한 그, 하지만 국가는 국가로서 응당 져야 할 책임을 방기한다. ⓒ (주)노네임씨어터컴퍼니


미국인 마이클은 레바논에서 납치됐다. 미국의 외교 정책은 중동의 많은 사람에게 반감을 샀다. 이제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세계 최강대국 소속 국민이라는 '지위'로 작동하지 않는다. 주변의 증오가 오롯이 꽂히는 위험한 정체성이 된다. 마이클은 테러리스트의 인질이 되어 손발이 묶이고 눈이 감긴 채 갇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 레이니를 향해 끊임없이 속삭인다. 마치 바로 옆에 아내가 있는 것처럼.

레이니는 마이클의 납치 소식에 미쳐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국무부에서 자신의 담당관으로 파견된 엘렌은 매번 똑같은 소리만 할 뿐이다.

엘렌 "우리 정부는 남편을 부인 품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모든 윤리적인 수단을 동원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정부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침묵하고 있으라고 레이니에게 강요한다. 그러던 시점, 기자 워커가 레이니에게 접근하여 이야기한다. 남편을 구하고 싶으면 말해야 한다고, 정부를 괴롭혀야 한다고. 심적으로 갈등하며 괴로워하는 레이니는 마이클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원래 마이클이 쓰던 방의 가구를 모두 치우고,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마이클과 대화를 한다. 마치 바로 옆에 남편이 있는 것처럼.

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하여 지난 13일에 막을 내린 연극 <두 개의 방>은, 마이클이 갇혀 있는 방과 마이클이 떠난 방을 이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정치적인 다분히 정치적인 연극

연극 <두 개의 방> 공연 사진 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두 개의 방>이 지난 13일 커튼을 닫았다. 연극 <두 개의 방>은 극작가 리 블레싱의 작품으로 1988년 미국 무대에서 처음 관객을 맞았다. 이번 2016 라이선스 버전이 국내 초연이다. 이 정치적인 연극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프게 다가온다. 전수지·이승주·배해선·이태구 등.

▲ 마이클을 추억하는 레이니 레이니는 마이클이 사용했던 방의 한가운데 카페트만을 남겨둔다. 그리고 이 텅 빈 방의 카페트를 쓰다듬으며 마이클의 온기를 추억한다. 그렇게 두 개의 방이 이어진다. 전수지 배우의 표현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 (주)노네임씨어터컴퍼니


"모든 연극은 정치적이다."

연극 <두 개의 방>의 극작가 리 블레싱은 연극을 이렇게 정의했다. <두 개의 방>은 다분히 정치적인 작품이다.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정부의 거짓말을 폭로하며 국가의 의무를 되새긴다. 개인사적 비극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며, 권력이 그리는 큰 그림 안의 퍼즐 조각 혹은 작은 톱니바퀴 하나 정도로 치부되는 국민 개인의 아픔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물론 <두 개의 방>은 그다지 대중적인 작품이 아니다. 자유소극장이라는 무대가 넓은 공간이 아님에도 공간감이 주는 무게가 관객을 짓누른다. 그만큼 극단적으로 단출한 무대 장치 그리고 소품들이 배우 개개인의 연기로 많은 것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난제를 남긴다. 역사적 배경이나 자연 과학적 지식의 파편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 불친절하게 흩어진다. 웃음기 없는 서사는 묵직한 메시지와 함께 관객의 앉은 자리를 다분히 불편하게 만든다. 극 자체가 정적인데 동선도 별다를 게 없는 데다가 암전은 너무 많다. 그 탓에 극은 무채색이라 할 만큼 톤이 단조로워진다. 조금 더 많은 이가 소화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다.

그런데 왜일까. 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인사를 하는 시간에 내 손은 빨개지도록 열정적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전작 <히스토리 보이즈>와 <글로리아>에서 잘 보여줬듯이, 노네임씨어터컴퍼니는 자기만의 색깔(그리고 취향)을 확실하게 지닌 집단이다. 노네임이 선택한 대본은 대개 무수한 대사 속에 여러 지식들이 산탄총처럼 발사된다. 그 탄환의 궤적을 굳이 관객이 모두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피다 보면, 그 총알 하나하나가 모두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세상을 향해 도발적인 화살을 날리는 작품은, 궤적을 그물망 삼아 위태로우면서도 슬픈 '아우라'를 완성한다. 이번 <두 개의 방> 초연 역시, 노네임다운 선택이었다고 평할 만하다.

연극 <두 개의 방> 공연 사진 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두 개의 방>이 지난 13일 커튼을 닫았다. 연극 <두 개의 방>은 극작가 리 블레싱의 작품으로 1988년 미국 무대에서 처음 관객을 맞았다. 이번 2016 라이선스 버전이 국내 초연이다. 이 정치적인 연극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프게 다가온다. 전수지·이승주·배해선·이태구 등.

▲ 부부의 대화 서로의 꿈, 서로의 망상. 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담담한 듯 하지만 그 안에 약간의 습기를 머금고 있는 이야기. 두 배우의 호흡이, 두 캐릭터의 유대감을 잘 드러낸다. ⓒ (주)노네임씨어터컴퍼니


속도감은 천양지차이지만, 여러모로 영화 <베리드>를 연상케 하는 대본이다. 중동, 테러리스트, 인질, 정부의 거짓말, 비극적 파멸까지…. 영화 <베리드>가 관객 성향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뉘듯이, 취향이 맞지 않는 관객이라면, 120분이라는 시간 동안 객석을 지키는 게 꽤나 고역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까다로운 작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이라면 나오는 길에 프로그램 북과 대본집을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민낯의 연기력으로 승부를 봄에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배우들의 열연이 우선 돋보인다. 텍스트는 언뜻 동어 반복적이고 상투적인 듯하지만 곱씹을수록 깊고 씁쓸한 중독성을 띈다.

특히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텍스트가 2016년 대한민국의 콘텍스트에서 더 큰 빛을 발하는, 시공간의 확장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잘 쓰인 정치적인 연극은 그 소재가 '유통기간'이라는 것에 묶여 있지 않다. 1988년에 쓰인 작품이 지속적으로 공연되고, 아직도 관객들이 우리와 관련이 있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세계적으로 만성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 연극 <두 개의 방> 프로그램 북, 작가 리블레싱 인터뷰 발췌 부문 중에서

시공간을 관통하는 강한 기시감

연극 <두 개의 방> 공연 사진 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두 개의 방>이 지난 13일 커튼을 닫았다. 연극 <두 개의 방>은 극작가 리 블레싱의 작품으로 1988년 미국 무대에서 처음 관객을 맞았다. 이번 2016 라이선스 버전이 국내 초연이다. 이 정치적인 연극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프게 다가온다. 전수지·이승주·배해선·이태구 등.

▲ 정부의 거짓말 국무부 소속 엘렌은 1주일에 한 번씩 레이니를 찾아온다. 하지만 상황은 언제나 똑같다. 정부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 헛된 희망만을 남겨주는 엘렌. 그 희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다른 순위의 일을 해나갈 시간을 벌기 위해, 정부는 레이니를 희망 속에 가두고 침묵하게 한다. ⓒ (주)노네임씨어터컴퍼니


엘렌 "정부는 모든 통로를 통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어요."

본래라면 진실이어야 할 이 선언.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한다. 국민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국가가 보호해주리라 믿고, 자신의 권리 중 일부를 양도한다. 국가는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으며, 국민은 국가가 행사하는 정당한 권력을 존중한다. 그것이 이 '계약'의 기본이다. 그런데 그 계약을 국가가 파기했다. 국민을 구하는 것을 포기했다.

엘렌 "미국 시민들은 우리가 무모한 행동을 할 때, 미국 정부가 항상 우리를 구해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각자 개인 차원에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할 때가 있다는 걸 말입니다.

이 기시감은 무엇인가. 한 배가 바다에서 가라앉고 있을 때, 수백의 목숨이 수장되고 있을 때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진도 체육관에 내려온 권력자는 "200여 명의 잠수부"가 투입되는 등 "많은 인력과 장비가 총동원"됐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하는 말을 국가기간통신사는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 적어 보도했다. 정부가 재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리라 우리 국민은 믿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을. 이에 대해 정작 국가가 하는 말의 수준은 천박했다.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가 그랬고, "빨리 그쪽에서 벗어나라고 소리 질러도 애들이 어려서 철이 없어서 그런지 위험하다는 걸 못 느꼈는지"가 그랬다. 국가의 탓이 아니라, 철이 없는 아이들의 탓이라는 듯이.

연극 <두 개의 방> 공연 사진 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두 개의 방>이 지난 13일 커튼을 닫았다. 연극 <두 개의 방>은 극작가 리 블레싱의 작품으로 1988년 미국 무대에서 처음 관객을 맞았다. 이번 2016 라이선스 버전이 국내 초연이다. 이 정치적인 연극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프게 다가온다. 전수지·이승주·배해선·이태구 등.

▲ 엘렌과 워커 사이에서 레이니는 끊임없이 갈등한다. 정부를 대변하는 엘렌은 당연히 반동적 인물이지만, 언론인 워커가 그렇다고 주동적 인물은 아니다. 선역도 악역도 아닌 워커는 레이니에 대한 연민, 진실에 대한 열망, 언론으로서의 사명과 함께 이 고통 자체가 주는 매력에 빠져든다. 그가 레이니에게 제안하는 바는 일견 타당하고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순수하게 옳기만 한 일도 아니다. 배해선이 소화하는 엘렌은 훌륭했다. 다만, 이 복잡한 워커 역을 소화하기에 이태구 배우는 살짝 아쉬웠다. <히스토리 보이즈>에서의 열연이 생각나기에 더더욱. ⓒ (주)노네임씨어터컴퍼니


워커 "정부의 중동 정책. 그것 때문에 남편이 인질로 잡혀 있는 겁니다. 딴 게 아니라."
엘렌 "말도 안 돼."
워커 "우선순위 면에서 본다면, 마이클은 석유 보다 아래고, 미국-소련 관계 보다 아래고…."
엘렌 "이 사람은 뭘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네요."
워커 "미국-이스라엘 관계, 미국-시리아 관계보다 아래고…."
엘렌 "레이니…."
워커 "미국-이란 관계…."

구난 상황에서 국가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국민의 생명은 대체 몇 번째였을까. 한시가 급박한 구조 상황에서도 VIP에게 보고할 '숫자' 파악을 더 중요시했던 걸 보면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부의 속성은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수많은 생명을 잃었음에도 국가의 실패를 전면적으로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국가는 항상 최선을 다했고,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다.

엘렌 "상부의 계획이 잘못되었다거나, 상관이 전략적으로 실수를 해서가 아니라, 운이 나빴을 뿐이었다."
워커 "그걸 믿어요?"
엘렌 "그럼요."

우리가 진실에 대해 묻는 이유

사실, 우리가 들어야 했어야 할 말은 따로 있다. 국가가 해야 할 말 역시 따로 있다. 실패를 인정하고, 진실을 알리고, 용서를 구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 레이니가 엘렌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사실 따로 있었지만, 엘렌은 워커에게 '비공식적'으로 실패를 자인할 뿐이다. 레이니는 그 말을 문밖에서야 들을 수 있었다.

엘렌 "우리 계산이 틀렸어요. 우리는 마이클의 목숨이 국제 관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가치는 없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모든 인질들의 위험 수준을 높인 거죠. 그게 우리의 선택이었어요."

연극 <두 개의 방> 공연 사진 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두 개의 방>이 지난 13일 커튼을 닫았다. 연극 <두 개의 방>은 극작가 리 블레싱의 작품으로 1988년 미국 무대에서 처음 관객을 맞았다. 이번 2016 라이선스 버전이 국내 초연이다. 이 정치적인 연극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프게 다가온다. 전수지·이승주·배해선·이태구 등.

▲ 두 사람의 웃음 그들은 행복했다. 평범한 부부였다. 누구는 책을 읽고, 누구는 새를 찾아 습지로 향하고….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이 평화와 사랑은 깨져버렸다.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대통령의 편지, 성대한 행사가 다 무슨 소용인가. 지옥의 불꽃은 책임지지 않는 권력을 위해 타오르고 있을지 모른다. ⓒ (주)노네임씨어터컴퍼니


사과하지 않는 나라, 책임지지 않는 나라, 국민을 지키지 않는 나라, 국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나라. 우리는 그런 국가와 정부를 목도하고 있다. 그 사이에 마이클이 끼어 있었다. 마이클처럼 국가에 의해 포기된, 내버려진 인물은 무수히 많다. 당장 우리 머릿속을 스쳐가는 그들의 명단이 있으니.

워커 "역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요? 역사가 일어나는 건, 아주 가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어떤 말 한마디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을 때예요. 그 사람들이 들을 준비가 된 그 말을 당신이 가지고 있다면, 그건 엄청난 힘이죠."

우리는 지금 역사의 한 가운데 있다. 백만의 시민이 광장에 모인 것처럼, 거리를 밝히는 촛불이 들불마냥 번져나가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권력자를 향해 던질 날카로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고, 그 말에 책임질 사람이 해야 할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워커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한 번도 진실을 말한 적이 없어요. 부인도 그건 잘 아실 텐데."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사라진 7시간에 대해 묻고 있다.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단 한 번도 진실을 말한 적이 없다. 보고를 받았고, 청와대에 있었고, 응당 당연한 조치를 취했다는 말을 엘렌처럼 반복할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은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달라"고 말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여전히 사라진 진실에 대해 묻고 있다. 침묵을 깨고 결국 나서서 목소리를 낸 레이니처럼.

아직 이 나라에는 수많은 마이클이 눈을 가린 채, 손발이 묶인 채 갇혀 있다.

연극 <두 개의 방> 포스터 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두 개의 방>이 지난 13일 커튼을 닫았다. 연극 <두 개의 방>은 극작가 리 블레싱의 작품으로 1988년 미국 무대에서 처음 관객을 맞았다. 이번 2016 라이선스 버전이 국내 초연이다. 이 정치적인 연극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프게 다가온다. 전수지·이승주·배해선·이태구 등.

▲ 연극 <두 개의 방> 포스터 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두 개의 방>이 지난 13일 커튼을 닫았다. 연극 <두 개의 방>은 극작가 리 블레싱의 작품으로 1988년 미국 무대에서 처음 관객을 맞았다. 이번 2016 라이선스 버전이 국내 초연이다. 이 정치적인 연극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프게 다가온다. 전수지·이승주·배해선·이태구 등. ⓒ (주)노네임씨어터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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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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