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 [편집자말]

연극 <두 개의 방> 공연 사진 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두 개의 방>이 지난 13일 커튼을 닫았다. 연극 <두 개의 방>은 극작가 리 블레싱의 작품으로 1988년 미국 무대에서 처음 관객을 맞았다. 이번 2016 라이선스 버전이 국내 초연이다. 이 정치적인 연극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프게 다가온다. 전수지·이승주·배해선·이태구 등.

▲ 납치된 마이클 마이클은 죄가 없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미국인이라는 점 뿐이다. 그건 미국의 죄이지 그의 죄가 아니다. 국가의 잘못으로 인해 재난에 처한 그, 하지만 국가는 국가로서 응당 져야 할 책임을 방기한다. ⓒ (주)노네임씨어터컴퍼니


미국인 마이클은 레바논에서 납치됐다. 미국의 외교 정책은 중동의 많은 사람에게 반감을 샀다. 이제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세계 최강대국 소속 국민이라는 '지위'로 작동하지 않는다. 주변의 증오가 오롯이 꽂히는 위험한 정체성이 된다. 마이클은 테러리스트의 인질이 되어 손발이 묶이고 눈이 감긴 채 갇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아내 레이니를 향해 끊임없이 속삭인다. 마치 바로 옆에 아내가 있는 것처럼.

레이니는 마이클의 납치 소식에 미쳐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국무부에서 자신의 담당관으로 파견된 엘렌은 매번 똑같은 소리만 할 뿐이다.

엘렌 "우리 정부는 남편을 부인 품으로 돌아오게 하려고 모든 윤리적인 수단을 동원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정부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침묵하고 있으라고 레이니에게 강요한다. 그러던 시점, 기자 워커가 레이니에게 접근하여 이야기한다. 남편을 구하고 싶으면 말해야 한다고, 정부를 괴롭혀야 한다고. 심적으로 갈등하며 괴로워하는 레이니는 마이클에게서 위안을 얻는다. 원래 마이클이 쓰던 방의 가구를 모두 치우고,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마이클과 대화를 한다. 마치 바로 옆에 남편이 있는 것처럼.

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개막하여 지난 13일에 막을 내린 연극 <두 개의 방>은, 마이클이 갇혀 있는 방과 마이클이 떠난 방을 이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정치적인 다분히 정치적인 연극

연극 <두 개의 방> 공연 사진 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두 개의 방>이 지난 13일 커튼을 닫았다. 연극 <두 개의 방>은 극작가 리 블레싱의 작품으로 1988년 미국 무대에서 처음 관객을 맞았다. 이번 2016 라이선스 버전이 국내 초연이다. 이 정치적인 연극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프게 다가온다. 전수지·이승주·배해선·이태구 등.

▲ 마이클을 추억하는 레이니 레이니는 마이클이 사용했던 방의 한가운데 카페트만을 남겨둔다. 그리고 이 텅 빈 방의 카페트를 쓰다듬으며 마이클의 온기를 추억한다. 그렇게 두 개의 방이 이어진다. 전수지 배우의 표현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 (주)노네임씨어터컴퍼니


"모든 연극은 정치적이다."

연극 <두 개의 방>의 극작가 리 블레싱은 연극을 이렇게 정의했다. <두 개의 방>은 다분히 정치적인 작품이다.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정부의 거짓말을 폭로하며 국가의 의무를 되새긴다. 개인사적 비극을 적나라하게 폭로하며, 권력이 그리는 큰 그림 안의 퍼즐 조각 혹은 작은 톱니바퀴 하나 정도로 치부되는 국민 개인의 아픔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물론 <두 개의 방>은 그다지 대중적인 작품이 아니다. 자유소극장이라는 무대가 넓은 공간이 아님에도 공간감이 주는 무게가 관객을 짓누른다. 그만큼 극단적으로 단출한 무대 장치 그리고 소품들이 배우 개개인의 연기로 많은 것을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 난제를 남긴다. 역사적 배경이나 자연 과학적 지식의 파편들은 별다른 설명 없이 불친절하게 흩어진다. 웃음기 없는 서사는 묵직한 메시지와 함께 관객의 앉은 자리를 다분히 불편하게 만든다. 극 자체가 정적인데 동선도 별다를 게 없는 데다가 암전은 너무 많다. 그 탓에 극은 무채색이라 할 만큼 톤이 단조로워진다. 조금 더 많은 이가 소화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두고두고 남는다.

그런데 왜일까. 극이 끝나고 배우들이 인사를 하는 시간에 내 손은 빨개지도록 열정적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전작 <히스토리 보이즈>와 <글로리아>에서 잘 보여줬듯이, 노네임씨어터컴퍼니는 자기만의 색깔(그리고 취향)을 확실하게 지닌 집단이다. 노네임이 선택한 대본은 대개 무수한 대사 속에 여러 지식들이 산탄총처럼 발사된다. 그 탄환의 궤적을 굳이 관객이 모두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피다 보면, 그 총알 하나하나가 모두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세상을 향해 도발적인 화살을 날리는 작품은, 궤적을 그물망 삼아 위태로우면서도 슬픈 '아우라'를 완성한다. 이번 <두 개의 방> 초연 역시, 노네임다운 선택이었다고 평할 만하다.

연극 <두 개의 방> 공연 사진 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두 개의 방>이 지난 13일 커튼을 닫았다. 연극 <두 개의 방>은 극작가 리 블레싱의 작품으로 1988년 미국 무대에서 처음 관객을 맞았다. 이번 2016 라이선스 버전이 국내 초연이다. 이 정치적인 연극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프게 다가온다. 전수지·이승주·배해선·이태구 등.

▲ 부부의 대화 서로의 꿈, 서로의 망상. 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다. 담담한 듯 하지만 그 안에 약간의 습기를 머금고 있는 이야기. 두 배우의 호흡이, 두 캐릭터의 유대감을 잘 드러낸다. ⓒ (주)노네임씨어터컴퍼니


속도감은 천양지차이지만, 여러모로 영화 <베리드>를 연상케 하는 대본이다. 중동, 테러리스트, 인질, 정부의 거짓말, 비극적 파멸까지…. 영화 <베리드>가 관객 성향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으로 나뉘듯이, 취향이 맞지 않는 관객이라면, 120분이라는 시간 동안 객석을 지키는 게 꽤나 고역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까다로운 작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관객이라면 나오는 길에 프로그램 북과 대본집을 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민낯의 연기력으로 승부를 봄에도 빠져들 수밖에 없는 배우들의 열연이 우선 돋보인다. 텍스트는 언뜻 동어 반복적이고 상투적인 듯하지만 곱씹을수록 깊고 씁쓸한 중독성을 띈다.

특히 198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텍스트가 2016년 대한민국의 콘텍스트에서 더 큰 빛을 발하는, 시공간의 확장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잘 쓰인 정치적인 연극은 그 소재가 '유통기간'이라는 것에 묶여 있지 않다. 1988년에 쓰인 작품이 지속적으로 공연되고, 아직도 관객들이 우리와 관련이 있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세계적으로 만성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 연극 <두 개의 방> 프로그램 북, 작가 리블레싱 인터뷰 발췌 부문 중에서

시공간을 관통하는 강한 기시감

연극 <두 개의 방> 공연 사진 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두 개의 방>이 지난 13일 커튼을 닫았다. 연극 <두 개의 방>은 극작가 리 블레싱의 작품으로 1988년 미국 무대에서 처음 관객을 맞았다. 이번 2016 라이선스 버전이 국내 초연이다. 이 정치적인 연극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프게 다가온다. 전수지·이승주·배해선·이태구 등.

▲ 정부의 거짓말 국무부 소속 엘렌은 1주일에 한 번씩 레이니를 찾아온다. 하지만 상황은 언제나 똑같다. 정부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 헛된 희망만을 남겨주는 엘렌. 그 희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다른 순위의 일을 해나갈 시간을 벌기 위해, 정부는 레이니를 희망 속에 가두고 침묵하게 한다. ⓒ (주)노네임씨어터컴퍼니


엘렌 "정부는 모든 통로를 통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어요."

본래라면 진실이어야 할 이 선언.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한다. 국민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국가가 보호해주리라 믿고, 자신의 권리 중 일부를 양도한다. 국가는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으며, 국민은 국가가 행사하는 정당한 권력을 존중한다. 그것이 이 '계약'의 기본이다. 그런데 그 계약을 국가가 파기했다. 국민을 구하는 것을 포기했다.

엘렌 "미국 시민들은 우리가 무모한 행동을 할 때, 미국 정부가 항상 우리를 구해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각자 개인 차원에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할 때가 있다는 걸 말입니다.

이 기시감은 무엇인가. 한 배가 바다에서 가라앉고 있을 때, 수백의 목숨이 수장되고 있을 때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진도 체육관에 내려온 권력자는 "200여 명의 잠수부"가 투입되는 등 "많은 인력과 장비가 총동원"됐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하는 말을 국가기간통신사는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 적어 보도했다. 정부가 재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리라 우리 국민은 믿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을. 이에 대해 정작 국가가 하는 말의 수준은 천박했다.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가 그랬고, "빨리 그쪽에서 벗어나라고 소리 질러도 애들이 어려서 철이 없어서 그런지 위험하다는 걸 못 느꼈는지"가 그랬다. 국가의 탓이 아니라, 철이 없는 아이들의 탓이라는 듯이.

연극 <두 개의 방> 공연 사진 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두 개의 방>이 지난 13일 커튼을 닫았다. 연극 <두 개의 방>은 극작가 리 블레싱의 작품으로 1988년 미국 무대에서 처음 관객을 맞았다. 이번 2016 라이선스 버전이 국내 초연이다. 이 정치적인 연극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프게 다가온다. 전수지·이승주·배해선·이태구 등.

▲ 엘렌과 워커 사이에서 레이니는 끊임없이 갈등한다. 정부를 대변하는 엘렌은 당연히 반동적 인물이지만, 언론인 워커가 그렇다고 주동적 인물은 아니다. 선역도 악역도 아닌 워커는 레이니에 대한 연민, 진실에 대한 열망, 언론으로서의 사명과 함께 이 고통 자체가 주는 매력에 빠져든다. 그가 레이니에게 제안하는 바는 일견 타당하고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순수하게 옳기만 한 일도 아니다. 배해선이 소화하는 엘렌은 훌륭했다. 다만, 이 복잡한 워커 역을 소화하기에 이태구 배우는 살짝 아쉬웠다. <히스토리 보이즈>에서의 열연이 생각나기에 더더욱. ⓒ (주)노네임씨어터컴퍼니


워커 "정부의 중동 정책. 그것 때문에 남편이 인질로 잡혀 있는 겁니다. 딴 게 아니라."
엘렌 "말도 안 돼."
워커 "우선순위 면에서 본다면, 마이클은 석유 보다 아래고, 미국-소련 관계 보다 아래고…."
엘렌 "이 사람은 뭘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네요."
워커 "미국-이스라엘 관계, 미국-시리아 관계보다 아래고…."
엘렌 "레이니…."
워커 "미국-이란 관계…."

구난 상황에서 국가의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국민의 생명은 대체 몇 번째였을까. 한시가 급박한 구조 상황에서도 VIP에게 보고할 '숫자' 파악을 더 중요시했던 걸 보면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부의 속성은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수많은 생명을 잃었음에도 국가의 실패를 전면적으로 인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국가는 항상 최선을 다했고,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다.

엘렌 "상부의 계획이 잘못되었다거나, 상관이 전략적으로 실수를 해서가 아니라, 운이 나빴을 뿐이었다."
워커 "그걸 믿어요?"
엘렌 "그럼요."

우리가 진실에 대해 묻는 이유

사실, 우리가 들어야 했어야 할 말은 따로 있다. 국가가 해야 할 말 역시 따로 있다. 실패를 인정하고, 진실을 알리고, 용서를 구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 레이니가 엘렌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사실 따로 있었지만, 엘렌은 워커에게 '비공식적'으로 실패를 자인할 뿐이다. 레이니는 그 말을 문밖에서야 들을 수 있었다.

엘렌 "우리 계산이 틀렸어요. 우리는 마이클의 목숨이 국제 관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의 가치는 없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모든 인질들의 위험 수준을 높인 거죠. 그게 우리의 선택이었어요."

연극 <두 개의 방> 공연 사진 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두 개의 방>이 지난 13일 커튼을 닫았다. 연극 <두 개의 방>은 극작가 리 블레싱의 작품으로 1988년 미국 무대에서 처음 관객을 맞았다. 이번 2016 라이선스 버전이 국내 초연이다. 이 정치적인 연극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프게 다가온다. 전수지·이승주·배해선·이태구 등.

▲ 두 사람의 웃음 그들은 행복했다. 평범한 부부였다. 누구는 책을 읽고, 누구는 새를 찾아 습지로 향하고….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들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이 평화와 사랑은 깨져버렸다.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대통령의 편지, 성대한 행사가 다 무슨 소용인가. 지옥의 불꽃은 책임지지 않는 권력을 위해 타오르고 있을지 모른다. ⓒ (주)노네임씨어터컴퍼니


사과하지 않는 나라, 책임지지 않는 나라, 국민을 지키지 않는 나라, 국민을 죽음으로 내모는 나라. 우리는 그런 국가와 정부를 목도하고 있다. 그 사이에 마이클이 끼어 있었다. 마이클처럼 국가에 의해 포기된, 내버려진 인물은 무수히 많다. 당장 우리 머릿속을 스쳐가는 그들의 명단이 있으니.

워커 "역사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요? 역사가 일어나는 건, 아주 가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어떤 말 한마디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을 때예요. 그 사람들이 들을 준비가 된 그 말을 당신이 가지고 있다면, 그건 엄청난 힘이죠."

우리는 지금 역사의 한 가운데 있다. 백만의 시민이 광장에 모인 것처럼, 거리를 밝히는 촛불이 들불마냥 번져나가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권력자를 향해 던질 날카로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고, 그 말에 책임질 사람이 해야 할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

워커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한 번도 진실을 말한 적이 없어요. 부인도 그건 잘 아실 텐데."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사라진 7시간에 대해 묻고 있다.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단 한 번도 진실을 말한 적이 없다. 보고를 받았고, 청와대에 있었고, 응당 당연한 조치를 취했다는 말을 엘렌처럼 반복할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은 "대통령이기 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달라"고 말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여전히 사라진 진실에 대해 묻고 있다. 침묵을 깨고 결국 나서서 목소리를 낸 레이니처럼.

아직 이 나라에는 수많은 마이클이 눈을 가린 채, 손발이 묶인 채 갇혀 있다.

연극 <두 개의 방> 포스터 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두 개의 방>이 지난 13일 커튼을 닫았다. 연극 <두 개의 방>은 극작가 리 블레싱의 작품으로 1988년 미국 무대에서 처음 관객을 맞았다. 이번 2016 라이선스 버전이 국내 초연이다. 이 정치적인 연극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프게 다가온다. 전수지·이승주·배해선·이태구 등.

▲ 연극 <두 개의 방> 포스터 지난 10월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막을 올린 연극 <두 개의 방>이 지난 13일 커튼을 닫았다. 연극 <두 개의 방>은 극작가 리 블레싱의 작품으로 1988년 미국 무대에서 처음 관객을 맞았다. 이번 2016 라이선스 버전이 국내 초연이다. 이 정치적인 연극은 3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정치적인 메시지가 아프게 다가온다. 전수지·이승주·배해선·이태구 등. ⓒ (주)노네임씨어터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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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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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이재원.""허한다.""우의정 홍영식.""허한~다.""전후영사 박영효.""허~한다.""좌우영사 서광범.""허한다! 내 너를 믿는다. 그러니, 내 마음이라도 가져가라." 주군께서 주신 마음을 가슴에 품고, 개각이 단행됐다. 우정총국의 불이 오른다. 혁명의 불꽃이 타오른다. 그러나 그 불은 구체제를 채 태우기도 전에 일본의 배신으로 허무하게 꺼져버리고 만다."하늘이 나를 버린단 말인가!"급진개화파의 수장 격이었던 김옥균은 그렇게 혁명에 실패한 후,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인천으로 피신하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아 일본으로 몸을 의탁한다. 한때 김옥균을 믿었던 고종은 큰 실망과 배신감, 여기에 주변의 압력까지 더해져 김옥균 암살령을 내린다. 고종의 명을 받은 '암살자' 홍종우. 평등한 나라 프랑스에서 행복한 날을 보내면서도, 자꾸만 조선을 그리워하던 그에게 고종의 서신이 도착한다. 그렇게 멈췄던 혁명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며, 뮤지컬 <곤 투모로우>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끊임없는 자기 혁신, 이지나의 또 다른 실험 뮤지컬 <곤 투모로우>는 9월 13일 개막하여 지난 6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그 커튼을 내린 창작 초연 작품이다. 김수로 프로젝트의 19번째 공연인 이 <곤 투모로우>의 연출은 국내 공연계에서 손꼽히는 인물인 이지나가 맡았다.이지나 '표' 작품은 균일하지 않다. 완성도의 편차가 있기에 결과물이 아쉬울 때도 분명 있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지나 연출의 최고 장점은, 자기만의 색깔을 내면서도 작품별로 균일하지 않다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물론 사진이나 프레임을 활용한 무대 연출을 자주 쓰기는 하지만, 그 쓰임새와 느낌이 작품별로 사뭇 다르다.)대신 그는 끊임없는 '실험'에 집중한다. '쇼 비즈니스'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식을 뮤지컬이라는 무대 위에서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2016년 그녀가 연출한 여러 작품 중에서 특별히 비슷한 작품이 없다. 연극 <지구를 지켜라>는 키치한 B급 감성으로 현실을 풍자하는 데 방점을 찍었고, 뮤지컬 <도리안 그레이>는 유미주의라는 예술 철학적 주제를 풀어내는 시도였다.<잃어버린 얼굴 1895>와 <곤 투모로우>가 동시대를 그린 작품이기는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명성황후의 사진과 관련된 미스터리 스릴러에 가깝다. 명성황후라는 역사적 실존 인물의 양면을 담으면서, 그에 대한 평가를 관객에게 맡긴다. 반면 <곤 투모로우>는 선명한 누아르다. 고종을 제외하면 인물에 대한 표현도 보다 명료하다. 꺾여 버린 조선 청년의 꿈들을 비극적으로 그리며 더욱 시대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괜히 제5회 예그린뮤지컬어워드(아래 예그린어워드) 6개 부문에 후보로 지명된 게 아니다. (정작 한 개도 못 탄 점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아쉽다. 대체 왜!) 물론, <곤 투모로우>도 찬찬히 뜯어보면 곳곳에 단점이 있다. 별다른 변주 없이 일관되게 직진하는 극의 톤은, 자칫 이 극을 단조롭고 지루하게 비칠 여지를 준다. 캐릭터별 비중의 설계도 아쉽다. 굳이 트리플 캐스팅까지 한 '와다' 역의 경우 극이 끝날 때까지 별 존재감을 내비치지 못하며, 그저 전달자로서 잠깐 기능할 뿐이다. 특히 시대의 혁명을 그린 작품에 별도의 이름을 갖고 활약하는 여성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은(엄 상궁이 호명되는 건 아주 잠깐에 불과하다) 의아한 일이다.그러나 <곤 투모로우>는 이런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작품이다. 예그린어워드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배우 강필석(관련 기사: '비운의 혁명가' 김옥균... 비참했던 최후와 남겨진 메시지)을 필두로, 배우별로 자기만의 인물을 만들어가며 색다른 매력을 선보였다. 덕분에 배우별 다양한 페어 조합을 통해 관객만의 재미 찾기에 일조했다. 배우의 열연은 묵직한 선율 그리고 호소력 짙은 가사와 맞물려 대체 불가한 <곤 투모로우>만의 아우라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도라지'는 아래로부터의 국민들이 시작하는 혁명을 상징하는 매개체이다. 국민이 움직여 주지 않으면 기우는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이지나 연출, 뮤지컬 <곤 투모로우> 프로그램 북 'Special Interview' 중에서무엇보다 시대적 맥락에서 울림을 만들어낸다는 측면에서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오태석의 원작 <도라지>를 바탕으로, <곤 투모로우>는 가버린 내일을 붙잡기 위해 분투하는 청년들의 꿈을 보여준다. 어두운 시대 탓에 끊임없는 좌절과 실패를 겪어야만 했던 그들. 산화를 각오하는 청춘들의 비장미가 남다르고, 2016년 오늘에도 적용 가능한 암울한 정치사회적 상황이 또 다른 울림을 자아낸다.갈 수 없는 나라, 가본 적이 없는 나라"무엇이 그 빛을 꺾었나. 무엇이 그 길을 막았나. 삼일 겨우 삼일만 허락된 꿈. 이리도 원하는데 갈 수 없는 나라. 빛나는 아침을 함께 할 그 날이 언젠가 오려나. 그 날이 오려나. 닫힌 문을 여는 두 손. 갈 수 없는 나라. 갈 수 없는 나라." - 뮤지컬 <곤 투모로우> 제1막 No.07 '갈 수 없는 나라' 중에서역사와 달리 <곤 투모로우> 속 청년 홍종우는 김옥균에게 희망을 품었다. 그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김옥균은 실패했다. 그리고 우리가 꿈꾸는 그 세상은 갈 수 없는 나라라며 한탄한다. 그렇게 좌절했던 홍종우를 일으켜 세운 게 바로 김옥균이었다. 김옥균을 죽이기 위해 만난 홍종우는 오히려 김옥균에게 감화되어 그를 따른다. 실상 인류는 단 한 번도 그 나라에 가본 적이 없다. 모두가 자유롭고,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행복한 나라. 그런 나라는 사상가가 쓴 책에 혹은 혁명가의 머릿속에만 존재했다. 비단 1884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홍종우가 그렇게 평등하다고 생각했던 프랑스는 르펜의 극우정당이 선전하고 각종 테러가 자행되는 땅이 되어 버렸다. 의회주의가 꽃폈던 영국에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투표권을 가진 건 1928년이었고, 그렇게 넓어진 투표권은 '브렉시트'라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토크빌이 깊이 매료되어 그 장단점을 상세히 파헤쳤던 미국의 민주주의는 9일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의 당선을 막지 못했다. 김옥균의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듯이."끝이 아닌 시작, 또 새벽은 열리고 다시 시작될 꿈이여. 빛이 보인다, 내 두 눈에. 가슴이 뛴다, 내 심장에. 또 다른 시간, 죽어 얻는 삶 빛을 향하여. 다시 얻는 삶 빛을 향하여." - 뮤지컬 <곤 투모로우> 제2막 No.19 '죽어 얻는 삶' 중에서김옥균은 말한다. 나면 어떻고, 너면 어떠냐고.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온다면, 그 내일이 가까워지는 데 조금이라도 일조할 수 있다면 지금 죽어도 상관없다고 말이다. 그리고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홍종우가 대신 이어주기를 바란다. 자신의 시체라도 딛고 이 역사의 수레바퀴가 앞으로 굴러갈 수 있기를 바란다."빛 사라져도 난 마지막 꿈을 꾼다. 빼앗긴 이 땅에. 두 발을 딛고서. 내 몸이 사라져 대지 위에 지고, 내 몸이 피 흘려 저 산 아래 져도. 난 도라지 꽃 뿌리 되어 꽃 피우리. 삼천리 강산에 새 하얀 꽃. 그 하얀 꽃이 온 세상을 뒤덮을 때, 날 데려가라 그 곳으로." - 뮤지컬 <곤 투모로우> 제2막 No.24 '돌아올 수 없는 길' 중에서새 날을 꿈꾸던 혁명의 의지. 그 빛나던 의지는 홍종우에게까지 전해지고, 함께 뜻을 모은 동지들에게도 전달된다. 외세에 빌붙어 나라를 좀 먹는 이들을 처단한다. 하지만 아무리 김옥균의 의지를 잇기 위해 허우적거려도, 이미 멸망의 늪에 빠져버린 국가를 구할 수는 없었다. 이미 정부를 장악한 이완 총리는 고종의 손발을 묶고, 헤이그 특사 파견과 아울러 작전을 수행하던 동지들의 목숨도 끝나고 만다."세상 끝에 몰린 절망, 의미 없이 끝난 죽음, 부질없이 끝난 몸부림. 마지막 한 서린 통곡. 대답 없이 끝난 절규. 부질없이 흘린 피눈물. 온 세상 뒤덮인 통곡. 세상 끝난 날. 이 하늘 닫혀 끝난 날. 어디로 가야 하나. 무너져가는 세상 이제 어디로 가나." - 뮤지컬 <곤 투모로우> 제2막 No.26 '어디로 가야 하나' 중에서이완 총리를 제거하기 위해 홍종우는 목숨까지 버렸지만, 결국 그 탄환은 이완의 심장에 닿지 못했다. 그렇게 홍종우의 눈 안에서 반짝이던 빛도 그의 목숨과 함께 점멸한다.우리 비록, 또 실패할지라도... 이완으로 상징되는 거악은 지금도 현재 권력으로 실존한다. 우리는 제2, 제3의 이완이 청와대에서, 국회 의사당에서, 재벌 총수의 비밀 사택에서 숨 쉬고 있음을 알고 있다. 아스팔트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촛불은 물대포에 의해 꺼지고, 투표로 모인 우리의 뜻은 한순간에 사표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니 어쩌면 우리는, 또 실패할지 모른다. 오는 12일에 광화문 광장으로 집결할 의지도, 저 거악을 우리 손으로 끌어내리고야 말겠다는 외침도,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내 살을 찢고 내 피를 삼켜 다시 살아라 이곳에. 하얀 빛 구름 하얀 옷 사람들 함께 난 죽어서도 비 되어 다 뿌려지리. 흩어져 버려진 내 몸 이곳에 오게 하리. 조각난 내 뼈와 살 다시 날 살게 하리. 푸르런 하늘 푸르런 물결 속에서 난 내 뼈와 살, 내 뼈와 내 핏물 흘리리라. 흘려서 비 되어 살아나리. 그곳에서 난 다시, 다시." - 뮤지컬 <곤 투모로우> 제2막 No.27 '저 바다에 날' 중에서그런데 이상하다. 홍종우의 죽음을 전달받은 김옥균의 혼은, 좌절이나 절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극을 닫는 노래는 '내일은 없다 리프라이즈(Reprise)' 같은 곡이 아니다. 언젠가 다시 피어나리라고, 살아나리라고 다짐하는 극의 마지막 노래는 오히려 희망과 환희로 차 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국권이 침탈되고 민족의 운명이 외세에 넘어간다. 수많은 사람이 고통에 신음한다. 하지만 36년의 세월 동안 지치지 않고 싸워 온 이들이 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광복을 맞이한다.역사는 무수한 실패의 반복 속에 작은 성공이 켜켜이 쌓이며 진보한다. 근현대사의 질곡에서, 부정선거는 혁명으로, 겨울공화국은 봄으로, 군부의 잔재는 민주정부의 탄생으로 맞부딪혀 싸웠다. 우리가 경계를 늦추는 사이에 시계는 때때로 거꾸로 흐르지만, 그만큼 다시 앞으로 전진할 기회는 반드시 오고야 만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해야 할 건 좌절이나 절망, 냉소와 포기가 아니다. 비록 실패할 가능성이 있어도 정변을 일으키고, 내 목숨 버리더라도 저 잘못된 거악을 향해 뜨거운 총구를 겨누는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이 이 땅에 도라지를 심는 일이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어도 그 도라지들의 흰 꽃이 만개할 날은 오고야 만다.우리가 박근혜 대통령을 실제로 하야하게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다음 문제다.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옥균이 태웠던 그 빛나는 의지가 홍종우에게, 독립열사에게, 민주투사에게 이어진 것처럼 지금 우리에게 와 있으니까.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도라지를 심는 일일 것이다. 아니, 우리가 도라지가 되는 것이다. 거리로 나서는 우리 하나하나가 곧 피어나고야 말 도라지가 될 테니.밤이 어둡다. 날이 춥다. 하지만 새벽은, 오고야 만다. 빼앗긴 들판에 봄은 반드시 온다. 김옥균을, 홍종우를, 더는 외롭게 두지 말자.

이재명 시장이 극찬한 뮤지컬, 이대로 보내기는 아쉽다

[안 뻔한 티켓북] 동학혁명 그린 한국판 <레미제라블>, 뮤지컬 <금강, 1894>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우리가 본 건 먹구름 쇠창살.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빼앗긴 평화, 짓밟힌 목숨, 버러지 같은 우리네 인생. 조선은 피 빨아먹는 거머리. 차라리 죽는 게 나아." - 뮤지컬 <금강, 1894> 1막. No.03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중에서 거대한 거머리들이 백성에게 들러붙어 착취한 지 오래. 국운이 다해가는 조선, 자정 작용을 하던 국가 체계는 멈췄고 탐관오리의 배만 불러온다. 너른 들판 가득한 호남, 가장 넉넉한 이 동네는 그 넉넉함 때문에 가장 가혹하게 빼앗겼다. 고부군수 조병갑의 횡포에 대항하여 일어난 이들이 있었지만, 잔혹하게 목이 잘려 저잣거리에 매달렸다. 부당함을 알지만 목숨이 아까워 주저하는 농민들."아이코~ 냄시. 아 고놈의 개똥밭 개똥 냄시. 우리 아부지도 고놈의 개똥밭에, 나도 그 개똥밭에, 우리 아들놈도 또 그 개똥밭에…. 아무리 이승이 좋아도, 나는 그런 개똥 냄시 나는 세상 싫소. 그랑게, 요런 개똥 같은 시상 살면서 '나는 목숨 붙어 있어 다행이구나'하지 말고, 개똥같은 양반놈들, 개똥밭 같은 조선을 우리 손으로 바꿔 봅시다."'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누가 그랬던가. 지옥보다도 심한 이 세상, 더는 이대로 참을 수 없던 이들이 전봉준의 한마디에 자연스레 뭉친다. "이제 다 같이 다가올 하늘을 보자. 우리 손으로 되찾으리, 그 맑은 하늘을. 다시 우리의 하늘을 보리라. 검은 먹구름 걷어내리. 저 빛나는 태양, 꼭 보게 되리라. 우리들의 힘으로." - 뮤지컬 <금강, 1894> 1막. No.03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중에서1894년, 갑오년. 우리 역사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근대사를 뒤흔들었던, 가장 뜨거웠던 혁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뮤지컬 <금강, 1894>는 바로 이 갑오년의 민중사를 무대 위로 올린 작품이다.2016년 창작극 중 손에 꼽을 만한 수작 지난 1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개막한 뮤지컬 <금강, 1894>가 오는 4일, 단 4일간의 6회 공연을 모두 마무리한다. 2017년 본 공연과 지방 투어도 계획되어 있다. 그러나 <금강, 1894>의 제작을 주도했던 성남문화재단의 대표 임기가 끝나고 연임에 실패하면서 이 계획이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 정도 질의 공연이 단 4일만 하고 묻혀서는 안 된다는 게, 공연을 본 관객 그리고 2일 네이버 생중계를 통해 안방에서 관람한 팬들 대부분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금강, 1894>는 올해 무대에 올라온 무수한 창작 초연 작품들 중에서도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수작이다. 무대 장치도 공을 많이 들인 티가 나고,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사명감에 짓눌려서 극 전체의 완성도를 해치지도 않는다.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키는 '오버추어'부터 이성준 음악감독 특유의 스타일이 마음껏 발휘된다. 비장미를 품고 휘몰아치는 넘버들의 폭발력이 매우 크다.이 작품의 음악적 완성도에 배우들이 화룡점정을 찍는다. <페스트>의 리유에 이어 한 번 더 평범한 이들의 싸움에 함께하는 손호영의 넘버 소화력은 대체로 안정적이다. 특히 무대밖에서 부르는 '그곳에서 울지마오'의 처연한 음색은 발군이다. (다만, 우금치 전투 이후 부르는 솔로 넘버 '벼락아 때려라!'는 약간 아쉽다.)이명학 역에 더블 캐스팅된 이건명, 양준모 배우의 연기와 노래도 흠 잡을 데가 딱히 없다. 1일 개막 무대에 나섰던 이건명은 조금 더 부드럽게 극의 흐름을 끌고 가며, 인진아에 대한 짝사랑의 감정을 자연스레 드러낸다. 2일 무대에 올랐던 양준모 배우는 혁명의 분기점마다 보다 강한 임팩트를 관객에게 선사하며, 인진아를 지켜주려 하는 오라버니의 느낌이 강하다. 솔로든 듀엣이든 합창이든 박지연의 인진아는 주어진 역할 그 이상을 해낸다. 초토사 홍계훈 역의 왕시명 배우도 이 극의 반동인물로 굳건하게 제 자리를 지킨다.최고는 전봉준 역할의 박호산 배우이다. 극 전체가 흔들리지 않도록 묵직하게 무게를 잡아주는 '닻'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며 관객의 심장을 조였다 풀었다 반복하는 데, 대사 한 마디로 극 전체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모습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 배우의 무대 경험이 결코 '허투루' 쌓인 게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엄지 두 개가 모자라다. 분명 <금강, 1894>의 서사가 아주 세련된 건 아니다. 주인공 신하늬와 인진아의 사랑 이야기가 전체 혁명 줄거리에 자연스레 녹아들지 못한 점, 여동생과 얽힌 신하늬 개인의 서사가 힘이 다소 떨어지는 점, 반쪽짜리 양반 출신 이명학이 혁명에 참여하게 된 동기와 초토사 홍계훈이 그토록 동학도를 폭도로 몰아가는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점 등은 눈에 걸린다. (뚱뚱한 여자를 웃음 소재로 삼는 장면도, 더 나은 방법으로 웃음을 만들 수 있지 않았나하는 개인적 아쉬움이 남는다. 여성의 주체성을 드러내려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는 극이기에 더더욱.)그러나 이 작품의 힘은 전봉준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했던 평범한 이들에게서 나온다. 주연 배우들의 노래도 하나하나 좋지만, 객석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강렬한 합창을 만드는 것은 바로 이 앙상블들이다. 앙상블 한 명 한 명이 자기만의 이야기를 지닌 채 각자의 개성을 드러낸다. 민중사적 관점에서 당시를 바라보는 극이기에, 극의 콘셉트와 맞는 훌륭한 선택이었다. 앙상블 배우 한 명 한 명에게 기립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이 앙상블들이 돋보일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한 몇몇 장면의 연출도 감동적이다.1894년 금강, 2016년 광화문 광장 앞서 인진아 역의 배우 박지연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혁명'을 말하는 스물아홉 배우, "정치적 의도는 없습니다만..."). 하지만 정치적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어떤 작품이든 그 작품이 상연되는 시대적 맥락에서 온전히 떨어질 수는 없다. 올해 무대에 오른 창작 초연 뮤지컬 <페스트>와 <곤 투모로우> 역시 이 현실에서 더 큰 힘을 발휘했다. 극 중에는 정권을 직접 겨냥한 메타포도, 패러디도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1894년 동학농민혁명을 조명하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관객은 2016년의 광장을 떠올리게 된다.이 작품의 원작인 신동엽의 서사시 '금강'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 4월의 함성에서 감명을 받은 시인 신동엽은, 이 4월의 원류를 찾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가 1894년 금강을 주목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출간된 이후에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에 의해 탄압받는다. 그러니, 바로 그 독재자의 딸이 푸른 기와집에 앉아 있는 이 현실에서 작품이 더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아리랑> 등 한국판 <레미제라블>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은 이전에도 더러 있었으나, <금강, 1894>만큼 극적 재미와 사회적 의미를 아우른 극은 드물었다. "우리의 금강, 예부터 이곳은 함께 썩는 곳. 싸우고 죽지만 대신 그 정신을 남기는 곳은 여기. 밀알 하나가 썩지 않으면 언제나 그대로이지만, 땅에 떨어져 썩으면 더 많은 밀알이 되듯이. 이제 우리 썩어서 이곳에 푸른 새싹을 틔우리라. 이제 모두 다함께 다가올 우리들의 하늘을 맞이하자." - 뮤지컬 <금강, 1894> 2막. No.19 '한 알의 밀알' 중에서 전주성 전투에서 승리한 후, 전주 화약을 통해 집강소가 설치되는 등 백성을 위한 새 세상이 도래하는 듯했다. 그러나 자기 백성들에게 총칼을 겨누던 정권은 외세를 끌어들였고, 일제는 조선 침략의 야욕을 드러냈다. 간신히 희망이 움튼 이 땅을 이대로 빼앗길 수 없기에 이들은 다시 죽창과 호미를 들고 모였다. 지는 것이 뻔한 싸움, 죽을 것이 뻔한 미래 앞에서 민초들은 다시 뭉쳤다.압도적인 병력차이를 보이며 우금치에 모여든 동학군이지만, 기관총 등 신식 무기로 무장한 채 지리적 우위를 선점한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 앞에서 패하고 말았다. "살아서 탁배기 한 잔 허자!"던 다짐은 결국 지켜지지 못했다. "그렇다. 우리의 혁명은, 이번에는 실패인지 모른다. 허나, 백성들이 저리 살아서 보고 있는데 어찌 이 죽은 자들의 노고가 잊히겠는가. 세상은, 반드시 변할 것이다."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전봉준은 담담하게 선언한다. 녹두꽃은 떨어졌다. 그러나 그 녹두는 썩어서 다른 싹을 틔우는 거름이 된다. 우금치 전투에서 살아남은 하늬는 1919년, 진아가 자신을 위해 손목에 채워줬던 방울 노리개를 짤랑 거리며 일본군의 심장에 총탄을 박아 넣는다. 1960년, 1980년, 1987년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위기 때마다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그 민중의 맥, 금강처럼 고고히 흐르던 녹두의 혼은 2016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갑오년에 시작된 혁명 모두 끝나, 함께한 그들 찾을 수가 없어. 하지만 바람 속에 그 마음 남아, 바위 틈 작은 물길 모여 들고, 천둥번개 치면서 비가 오면 금강은 또다시 흐르겠지. 겨울 속에서 봄이 싹이 트듯, 고통 속에서 작은 희망이 싹이 트리. 어둠 지나 새벽이 오면 작은 희망, 푸른 불꽃 되어 타오르리라. 그날엔 모두가 다함께 만나지리라.이제 보았네, 세상 덮은 희망. 다시 일어서리. 흐르는 저 푸른 강물 끝없이 흐르리. 조선의 후손들아, 흐르는 역사의 주인이 되리라. 또 다시 만나 지리라." - 뮤지컬 <금강, 1894> 2막, No.22 '언젠간 또 다시 만나지리라' 중에서 지난 1일, 뮤지컬 <금강, 1894>의 개막 리셉션에서 이재명 성남시장은 아래와 같이 인사말을 밝혔다."동학혁명은 우리 민중들이 치열하게 우리 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싸웠다가 아직 완성하지 못한 민중혁명 이야기이다. 그 이후 해방이 되고, 또 우리는 치열하게 싸웠지만, 지금까지도 기득권자는 얼굴을 바꿔 여전히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오늘 이 <금강, 1894>는 이번 주말 광화문에서 만나게 될 수없이 많은 국민들의 모습과 하나다. 우리는 완성하지 못한 우리의 건국혁명, 평등하고 자유롭고 국민이 주인인 공화국을 만들어내는 사명을 이행해야 한다.아직 완성 못했지만 1894년에 시작된 혁명이 2016년 12월을 끝으로 완성되면 좋겠다. 진정 국민이 주인인 나라, 민중이 주인인 나라 공화국을 함께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오늘 공연 시작되면 좋겠다."성공한 쿠데타도 쿠데타이다. 마찬가지로, 실패한 혁명 역시 혁명이다. 우리의 광장이 우금치가 될지 바스티유가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는 말하고 움직여야 하는 역사적 순간에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 고려나 이해득실에 따라서 계산할 일이 아니다. 극 중 대사처럼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우리 땅, 우리 손으로 지키자는 것"이니까. 죽창과 호미 대신 우리는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키보드를 두들기며 글을 마치고 있는 이 순간, 광화문에는 수백만의 촛불이 모여 있다. 저 광화문이, 지금 우리의, 2016년의 금강이다."새로운 하늘의 새로운 조선의 땅, 우리 힘으로. 백성 모두가 주인 되는 세상. 그날이 곧 오리라. 우리 힘으로 이뤄내리. 싸움이 모두 끝나면 돌아가리. 행복했던 기억 속으로. 이 싸움에서 이기면 오직 백성이 주인인 세상. 모두 함께 힘모아 싸우리라. 우리 힘으로 완성하리. 다가올 새로운 세상 모두 쟁취하리. 맑고 푸른 우리 하늘. 모두 다함께 맞이하리, 다가올 새 세상. 되찾으리 우리 조선. 이 싸움에서 승리, 쟁취하리라."- 뮤지컬 <금강, 1894> 1막. No.11 '승리의 환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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