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식, 씬스틸러 끝판왕 영화 <아수라>에서 검찰수사관 역의 배우 정만식이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아수라>에서 검찰수사관 도창학 역의 정만식을 만났다. 그간 다수의 작품에서 선악을 오고 가는 그가 이 역할을 어떻게 해석했을까. ⓒ 이정민


영화 <아수라> 속 도창학 수사관은 그 자체로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조폭 출신 박성배 시장(황정민 분)의 앞잡이인 한도경(정우성 분)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그를 이용하는 자신의 상사 김차인 검사(곽도원 분)에게도 까칠하다. 조직 명령에 순응만 하는 게 아닌 종종 '엉까는(엉기는)' 이 대담한 캐릭터는 이야기에서 또 다른 긴장의 축으로 작용했다.

배우 정만식의 말이다. "상사에게 엉까는 거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한도경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던 도창학의 모습이 스쳤다. 4일 오후 그가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옥에 걸어 들어왔다. "어유~ 잘 있었어요?"라는 인사조차 섬뜩하게 느껴진 건 단지 기분 탓일까.

"(웃음) 도창학은 정의의 편이지! 정의구현을 위해 쓰레기(한도경)를 이용하지만 일말의 양심이 있는 사람이다. 김차인 검사 또한 상부의 이권을 위해 움직이는 인물이라 창학이 엉까는 면도 있다. 왠지 그러고 싶었다. 시키는 일은 또 그럭저럭 하는데 창학 또한 조직의 삶을 사는 거니까.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평범해 보이지만 이 사회에서 뭔가 일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멋있어 보이지 않나. 이 불안한 세상에서. <아수라>는 극이니까 극단적으로 이야기를 제시하긴 했지."

불공평한 세상에서 사는 법

 영화 <아수라> 속 정만식의 모습.

영화 <아수라> 속 정만식의 모습. ⓒ 사나이픽쳐스


영화에 대해 단 한 마디를 꺼냈을 뿐인데 정만식은 술술 이 세상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생활형 배우다. 주변 사람들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캐릭터를 끌어온다는 의미다. 도창학은 가깝게는 그의 친형, 멀게는 고등학교 선후배 등 40대 초중반을 지나는 우리 주위 사람들의 모습이 집약된 결과물이었다. "보편타당성을 찾는 과정"이라 그가 설명했다.

"나도 이 땅에서 사는 40대 중반인데 내 자신이 정답은 아니지 않나. 여러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를 담고 싶었다. 그 정서를 거친 시멘트처럼 표현하느냐 차가운 강철처럼 표현하느냐의 차이지. 이번엔 불같은 캐릭터였다. 거지같은 이 현실을 불같이 용암같이 녹여버리고 싶다는 심정이었다.

대기업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도 안정된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도 불안에 떠는 이들이 주변에 있다. 특히 사촌형에게 종종 연락 오는데 그렇게 불안해한다. 일 그만 두고 내 매니저 하면 안 되냐고도 하고. 위에서 누르고 아래에서 올라오니 다들 그렇더라. 자영업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같이 즐겁게 놀면서도 순간순간 업무 볼 때 표정이 스칠 때가 있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는 자체가 멋있는 거지. 그걸 생각하며 도창학을 표현하려 했다."

박성배 시장의 끄나풀이기에 (한도경을) 경계하면서도 그가 검찰 쪽에 붙을 때 마냥 괴롭히진 않는다. 마치 사냥감을 잡아놓고 먹지는 않는 호랑이처럼 한도경을 노려만 보는 도창학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쁜 새끼지만 참 열심히 산다~"라는 감정으로 한도경을 바라봤단다. 굳이 비교하면 <부당거래> 때 그가 맡았던 공 수사관 같기도 하다. 살기 위해 조직에 붙어있는 전형적인 공무원 말이다. 정만식이 씨익 웃었다.

"공 수사관은 하루하루 그냥 욕먹지 않기 위해 사는 사람이고, 도창학은 뭐든 결정을 봐야 하기에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이라고 구분했다.

"불공평한 세상이지. 힘 있는 자들이 '바로 이게 잘 사는 거야!'라며 온갖 더러운 짓을 한다. 영화 속 누군가가 창학에게 부장검사 되고 싶지 않냐 유혹했다면? 솔깃하지!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거 같기도 하고. 근데 그렇게 살면 누군가는 힘들어진다. 지금 시대는 '그게 중요하냐? 네가 잘 사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미칠 노릇이지.

그래서 솔직히 아이를 안 낳고 싶다. 기사에 쓰든 마음대로 하시라. 이 시대에 어떻게 아이를 낳나. 무섭다. 아이에게 '너도 열심히 살면 돼!' 이런 말을 못하겠다. 그런 거지같은 어른으로 살기 싫다. 물론 자연스럽게 생기면 거부하진 말아야지(웃음). 여튼 이 세상이 참 아수라 같다. 진짜."

정만식이 사는 법

정만식, 씬스틸러 끝판왕 영화 <아수라>에서 검찰수사관 역의 배우 정만식이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일장연설을 할 정도로 정만식은 영화에 깊이 빠져있었고, 영화 자체가 현실의 거울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또한 장면 하나하나를 기억하며 반추할 정도로 <아수라>에 빠져 있었다.

사실 그 어느 것 하나 정만식이 허투루 지난 영화는 없다. 깡패든 어수룩한 범죄자든, 정만식은 평범함 속에서 특별한 자신만의 기운을 넣어온 배우다. 분량? 중요치 않다. 특히 <아수라>에서는 주어진 대사를 스스로 줄여 표정만으로 연기했다. 연출을 맡은 김성수 감독이 "내가 쓴 대사가 이상하냐?"고 반문할 정도로.

"감독님이 아침에 볼 때마다 '오~ 멋져 정우성 확 이겨버려!' 이러셨다. 에너지를 촉발시키는 거지. 그 말씀을 들으며 내 대사를 줄여서 던졌다. 감독님이 의아해 했는데 다른 캐릭터들도 말들을 다 하는데 나까지 할 말 다 하면 재미없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내 존재감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극의 흐름에 무게감을 주고 싶어서였다. 대사가 아닌 분위기로 두려움과 무서움을 보이고 싶었다.

대사에도 한계가 있고, 말을 한다는 자체가 꾸밈이거든. 말을 안 하더라도 스윽 지나가더라도 섬뜩한 형들이 있다. 왜 어릴 때 동네에서도 웃으며 '야, 그러지 마아~' 이러는데 진짜 하면 안 될 것처럼 보이는 형들 있잖나. 그런 모습이고 싶었다. 느낌만으로도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사람. 그래서 대사를 줄인 거지. 결론적으로 좋아해주셔서 다행이었다."

힘을 넣은 듯 뺀 듯한 연기에 현장에서 스태프들도 움찔했다. 정만식이 일화 하나를 전했다. 이번 영화로 처음 호흡한 정우성이 식사 자리에서 앞자리에 앉았다가 정만식 옆으로 옮겼다는 후문이다. "우성이 형이 '밤에 진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징글징글한 얼굴'이라 말했다"며 순간 멋쩍은 듯 그가 말했다.

정만식, 씬스틸러 끝판왕 영화 <아수라>에서 검찰수사관 역의 배우 정만식이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촬영 현장에서 다른 배우와 달리 그는 몸을 이완시키며 긴장의 끈을 놓으려 했다. 자연스러움 속에서 불끈 나오는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다. 김성수 감독조차 그의 눈빛에 "진짜 무섭다"고 엄지를 올릴 정도였다. ⓒ 이정민


"끼를 숨기지 말라"던 형과 누나의 권유로 스무 살 때 시작한 연기니까 어느새 23년째가 됐다. 엑터스21, 백수광부 등 여러 극단을 거치며 말 그대로 거리에서 노숙을 한 적도 있었고, 차비가 없어 집에서 세 시간 거리의 공연장을 걸어다는 적도 있었다. 2005년 무렵엔 장사도 하며 돈을 꽤 벌기도 했지만 이내 연기판으로 돌아왔다. "연기할 때가 가장 편해 보인다는 엄마의 말도 있었고, 내가 의미를 찾으며 할 수 있는 게 연기뿐이라는 걸 명확히 알았"기 때문이었다.

"무대에서 생존하고 싶고, 무대에 존재하고 싶었다. 그때 기운으로 지금까지 하는 거다. 사람이 몸으로 익힌 건 잘 안 까먹잖나. 연기 공부 제대로 한 거지. 대학도 안 나오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몸을 막 던진 것 치고는 운도 따랐고, 많이 얻었다. 감사하다. 솔직히 백수광부 극단에 들어간 것도 아는 형과 술 먹다가 따라가서 오디션을 본 건데 그 형은 떨어지고 내가 붙었다. 많은 게 운이었지.

연기할 때 주변사람들이 고마워하고 다행이라 말한다. 누군가를 울리고, 웃기는 것에서 희열이 느껴지더라. 장사로 돈을 하루에 몇 백 만원씩 벌어도 고독하고 외로웠는데 연기할 땐 그걸 느낄 새가 없다. 어떻게 어려운 시기를 버텼냐고 묻는 분이 많은데 대본 하나를 보는 거 자체가 재밌었다. 내가 이렇게 쓰이는구나 감사하지. 작품 하나에 감사한 마음이 한 4개월 정도 간다. 그렇게 하루, 몇 개월, 1년을 살다 보니 23년이 됐다."

영업하지 않는 배우

 영화 <아수라>에서 검찰수사관 역의 배우 정만식이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양한 표정을 갖고 있다. 특히 정만식의 눈은 그것을 위한 훌륭한 재료다. 눈빛 하나만으로 여러 감정의 단계를 표현할 줄 아는 배우다. ⓒ 이정민


4년 전 <오마이스타>와 인터뷰 했던 정만식은 "영업하는 배우가 되지 말자"고 자신의 생각을 설파한 적이 있다. 여전히 유효하다. "영업이 체질에 맞지 않다"며 "적당히 팔아야지"라고 외치던 이 말은 자신을 소모시키지 말자는 다짐이다. 어찌 보면 고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정만식은 "배우는 연기로 보여야 한다"는 주의를 철저히 품고 있었다.

"진짜는 연기에 보이기 마련이다. 가끔 후배들 중에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내 눈엔 부족해 보일 때가 있다. 물론 나도 부족하지. <아수라>를 찍었지만 내 인생 작품은 <대호>인데 만약 그게 잘 됐다면 지금의 내가 없을 지도 모른다. 아이러니인데 흥행이 잘 됐다면 아마 난 건방진 모습을 하지 않았을까. 작품의 운이 내 운명과 함께 잘 흐르는 거 같다.

내 아내에게도 감사하다. 날 잘 콘트롤 해주거든(웃음). 결혼 전엔 무작정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나보고 즐기며 일하라고 한다. 감사하지. <대호> 속 호랑이처럼 내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고 싶다. 그때 <대호>가 대진운이 없었다고들 하는데 자신 있으면 붙어야지! 타이밍을 보고 뭐 그러고 싶지 않다. 한번쯤은 용감하게 살아야 하지 않나. 어차피 늙으면 꺾이고 쓰러지는데."

여전히 그의 목표는 연구하고 탐구하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또 하나 덧붙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는 것. 정만식은 "다양한 캐릭터를 만나는 것도 좋고 혹시나 같은 배역을 만나더라도 새롭게 틀어보고 싶다"며 변치 않는 의욕을 드러냈다.

"좀 어렸을 땐 극장 혹은 극단을 꾸리고 싶었는데 너무 비싸! 힘들겠다. 그건! (웃음) 가장 마지막은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내 연기를 누군가 안다, 봤다. 이 사람 연기 진짜 좋았다는 말을 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최종 목표다."

 영화 <아수라>에서 검찰수사관 역의 배우 정만식이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진지함과 유쾌함을 넘나드는 그의 말주변은 여전했다. 혹시라도 우연히 길에서 그를 마추진다면 겁내지 말자. 사람 좋은 모습으로 다가가는 정만식일테니.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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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여성, 죽음, 백남기 농민... 피하기 싫었다"

[inter:view] <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감독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연민 강했다"

노인과 트랜스젠더, 그리고 장애인과 코피노 아이.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 등장하는 인물만 놓고 보면 흔히 말하는 '상업적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줄거리는 더 하다. 종로 일대에서 몸 파는 일로 생계를 꾸리며 서비스 '죽여주는 여자'로 소문난 일명 박카스 할머니 소영(윤여정)이 몇몇 노인들의 간절한 안락사 부탁을 들어주며 정말로 '죽여주는 여자'가 된다는 이야기다.우울하고 무거워 보이지만 배우 윤여정과 윤계상, 실제 트렌스젠더 배우 안아주 등이 나름 유쾌한 톤으로 연기한다. 이 바탕엔 이재용 감독이 있다. 그가 누구던가. <정사>와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로 성애에 대한 독특한 관점을 제시했고, <여배우들>을 통해 배우들 민낯을 코믹하게 까발린 인물이다. 또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로 자기고백 비슷하게 감독의 지질함을 그리기도 했다. 상업과 저예산을 아우르며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낸 이다. <죽여주는 여자>가 마냥 무겁고 우울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공간 감수성<죽여주는 여자>의 출발을 보자. 2007년 무렵 이재용 감독은 평소 눈여겨봤던 이태원 부근을 영화로 찍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도시 혹은 마을의 골목골목을 좋아했던 성향이 작용한 탓인가. 서울 후암동, 해방촌, 명륜동 등 골목 풍경에 매료돼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던 그는 "사라지기 전에 영화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야기를 구상한다. "출발은 실향민인 한 노인이 금강산으로 걸어가는 이야기였다. 이태원에서 복덕방을 하는 할아버지로 설정했다. 왜 이태원이었냐고? 특별한 곳으로 느껴졌다. 국내 유일한 국제도시에 이방인이 살고, 근처에 이슬람 모스크가 있는 게 재밌다. 또 산세를 따라 건축가들이 차마 생각할 수 없는 구조의 건물들이 많다. 호기심이 가는 동네였다. 내가 한남동 쪽에 사는데 스쿠터를 타고 촬영장을 갈 수도 있겠다 생각도 했고! 이건 농담이다. (웃음)공간은 내게 참 중요하다. <정사>(1998)가 청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지만 남자 주인공은 석재공장을 다닌다. 강북 정서와 청담을 대비시키고 싶었지. <스캔들>은 당연히 서울 안 한옥과 도쿄를, <여배우들>은 딱 스튜디오 촬영장을 고집했다. 이 영화에서 박카스 할머니가 나오니 종로는 필연적 공간이고, 이태원은 사라져가는 이국적 지역이면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도 서로 해할 거 같진 않은 동네로 봤다.그리고 장충단 인근과 남산 산책로가 중요하다. 평소 산책을 하는 곳인데 시각장애인도 운동할 수 있을 만큼 관리가 잘 돼 있다. 거기에 서서 도심을 보면 고요하다. 신기루 같은 건물만 보이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선 전쟁터 같겠지만 소영은 그 풍경을 신기루 보듯 바라본다. 남들은 산책하러 오는 곳이지만 소영은 먹잇감을 구하는 곳이다. 자세히 보면 배경마다 남산 타워의 모습이 걸쳐 있다. 의도한 것이다." 이미 전력이 있다. 1994년 그는 약 700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24시간 동안 서울 구석구석을 담은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10년 뒤 2004년, <한 도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전시가 열렸고, 해당 작품을 2시간 분량으로 편집해 서울 정도 600년 기념 타임캡슐에 넣기도 했다. 이 정도면 공간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웃음) 공간과 기록 같은 것에 관심이 많다. 대전 출신인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30분을 버스 타고 통학했다. 12년 동안 창밖을 본 건데 그게 기억난다. 재채기 하는 여자, 싸움하는 아저씨들. 내 눈이 카메라였다면 그대로 담을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때 막연하게 영화감독이 되고자 한 것 같다. 물론 영화를 많이 보고 좋아한 것도 있지만 촉매제가 된 거지."상상의 나래 그리고 현실20년 전 일을 들춰낸 건 이재용 감독 특유의 공간에 대한 애정을 바라보기 위함이었다. 사실 그리 단순하게 바라볼 일은 아니다. 당시 작업을 두고 이 감독은 "지금의 유튜브 같은 걸 꿈 꾼 거 같다" 고백했으니. 같은 시간,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다른 공간을 담는 식인데 퍼포먼스 성격이 강한 일종의 '콘셉추얼 아트'(Conceptual Art)다. 영화감독이라지만 보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다. 실제 종종 함께 모임을 갖는 사람들 중엔 뇌 과학자, 음악가, 소설가 및 요리사 등이 포함돼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며 여러 상상을 하는 모습 자체가 내가 영화 하는 동력"이라며 그는 "그런 면에서 영화에 미쳐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웃으며 자평했다. 마냥 상상 속에 빠져 있는 건 아니다. <죽여주는 여자>에 스치듯 지나가지만 분명 조계사에서 다부진 표정으로 투쟁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모습이 보이고, 평범한 농민 백남기 선생이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졌다는 뉴스 장면이 보인다. 언론 시사회 당시 이재용 감독은 "애써 피하지 않으려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만큼 현실감을 담으려 했다는 뜻이다. "영화를 찍는 시기에 그 사건들이 우연히 겹친 거다. 조계사에서 찍기로 했는데 마침 한상균씨가 계셨고, 오히려 그 모습을 피하는 게 더 어색하다고 판단했다. 영화는 가상이라지만 현재성을 담고 있기도 하고 기록의 의미도 있다고 본다. 과감하게 담았다. 훗날 이 영화로 2015년 대한민국의 한 단면을 기억하게 만들고 싶었다. 버려진 코피노, 트랜스젠더, 박카스 할머니 등과 함께 그런 사건이 있었다고." 죽음에 대해영화 속 소영, 그리고 그녀가 어렵사리 안락사시킨 세 명의 노인들은 이 땅에 존재하는 복지시스템의 빈틈을 상기시킨다. 이들이 죽어가는 모습엔 감독의 죽음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나이듦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거라지만 굳이 이런 걸 전면에 내세울 필요가 있었을까. 또 성소수자의 모습은 어떠한가. 때론 신기함의 대상이 되면서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금기시 된다. 구석으로 숨어들어 가 있던 소수자의 모습을 이재용 감독은 담담하게 꺼냈다."기왕이면 안 해 본 이야기를 해야지. 윤여정씨와 놀다 보니 이런 데에 생각이 많다(웃음). 부모님도 연로하셔서 자극이 되고. 일전에 가족여행을 갔는데 눈썹 펜이 세 개가 세트더라. 싸기에 덥석 샀더니 어머니가 '하나만 사도 죽을 때까지 쓸 것 같아'라고 하셨다. 그 하나조차 다 못 쓰고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잖나. 이처럼 내 삶과 주변에서 자극이 있어 늙음과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이재용 감독은 참 따뜻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다. 자신을 자극하던 화두를 품고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는 작품을 만들었으니. 이 말에 그가 살짝 웃었다. "냉소적인 면도 있고, 남들과 같은 공감력이 없기도 하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영화는 분신인 것 같다. 다른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영화를 나답게 만들 수밖에 없더라.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보면 집요하면서도 묵직하잖나. 그런 식으로 내가 영화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결국 내 영화가 아닐 것 같다. 극한을 제시하고 선동하기보단 각자 잔잔히 보면서 깨닫는 바를 남기게 하고 싶다. 우리 영화 대사 중에 '저 사람들도 다 사연이 있겠지'라고 있잖나. 대부분 사람들은 진실에는 관심 없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 겉가죽만 보고 함부로 지껄이기도 한다. 인생이 그런 거라고 구구절절 밝히지 않아도 다들 알잖나. 그 사람의 숨은 페이지를 상상케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그리고 죽음에 대한 설명이 남았다. 백세시대다. 이재용 감독은 "인류 최초로 오래 살면 어쩌지 고민을 하게 된 때"라며 안락사와 고독사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연명치료가 등장한 이 때 왜 이렇게 사는가 생각하고, 치매를 가장 두려워한다. 자아상실의 끔찍함, 세상에 홀로 남았을 때 고독감이 영화에 의도적으로 나열돼 있다. 나도 우울해지는데 이런 이야기를 내가 왜 하려 했을까. 중압감이 컸다. 그럼에도 할 수 있었던 건 내 문제이자, 우리의 문제이고 이미 늦었을 수도 있지만 이대로 흘러가다간 모두 지옥행 열차를 타게 된다고 생각했다. 요양병원에 가본 적이 있는지? 때가 되면 수면제를 맞고, 때가 되면 한 줄로 서서 약을 받는다. 집단 수용소 같더라. 거기에 가면 그렇게들 죽여 달라는 분들이 많더라. 하늘의 형벌이라 생각하기엔 자존감을 잃고 사는 건 너무 끔찍하다. 이 영화는 질문하는 영화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그런 논의를 함께 해봤으면 좋겠다. 안락사, 존엄사 문제다. 자존감을 지키며 존엄하게 죽는 걸 고민할 때가 된 거 같다."인터뷰 말미 이재용 감독은 '고독사'라는 단어의 정정 표기를 넌지시 제안했다. 일본 조어인데 그걸 언론이 그대로 갖다 쓰면서 벌어진 일이다. "꺼림칙하다. 사람의 연민을 자극하기 위해 쓰는 단어 같다"며 "독거사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역시 함께 고민해 볼 문제다.

'설경구 아내'이자 '김윤석의 동생', 나 누군지 몰라요?

[오마이픽업] 15년 내공, 배우 김수진이 말하는 최고 배우의 경지... '정직함'

이름만 놓고 보면 사실 참 평범하다. 그가 출연작에서 맡은 역할? 영화 <타워>(2012)에서 설경구의 아내, 영화 <화차>(2012)에서 조성하의 아내, 영화 <검은 사제들>(2015)에선 김윤석의 동생. 게다가 지난 9월 개봉한 <나홀로 휴가>에서도 박혁권의 아내였다. 누군가의 아내 혹은 가족으로 짧게 등장하던 배우 김수진을 지난 3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옥에서 만났다. 짧지만 굵다. 잘 알려진 얼굴이 아니라지만 벌써 연극 무대에서 15년 이상 내공을 쌓은 베테랑 아닌 베테랑이다. 지난해부터 대중 매체에 등장했을 뿐이지 대학로 거리를 걷다 보면 수 명 중 다수가 그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한 3년간 바짝 뛰어 보려고요"라며 그가 대수롭지 않은 듯 기자에게 웃어보였다.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영화 <아수라>에서 그의 모습을 봤을 것이다. 재개발에 반대하던 목소리 걸걸한 시의원이 바로 김수진이었다. 배우 김수진은 누구?정식 데뷔, 그러니까 오디션을 통과해 돈을 받으며 연기하기 시작한 건 2001년부터다. 극단 한양레퍼토리 출신으로 김민기 연출의 연극 <의형제>가 데뷔작이다. 김윤석, 조승우, 배성우 등이 거쳐 간 바로 그 작품이다. "작년에 운이 좋아서 올해까지 치면 10작품 정도 한 거 같다. 좋은 인연을 많이 만났고, 드라마와 영화를 하면서 배운 게 많다. 연극만 팔 때는 부끄럽지만 이쪽 일을 크게 염두에 두진 못했다. 평생 연극만 고집할 거 같았는데 허리를 다쳐 2년 동안 공백이 생겼었다. 연기는 계속 하고 싶고, 스크린이든 TV든 같이 호흡하고픈 욕망이 커지더라. 20대가 연기의 기본을 다지는 시기였다면, 30대는 돈이 안 되는 여러 것들에 도전하던 시기였고, 40대가 되어서야 어떤 작품이나 캐릭터를 만날 때 접근법이 조금 보이더라. 이제야 작업하고 싶은 감독님과 함께 맞춰 보고픈 배우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아직 멀었지(웃음).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면서 깊이도 가져가야 하니까. 일단 지금 과정은 괜찮다.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고 다 소화할 수 있는 건 아니기에 때를 기다리고 있다. 내 잠재력이 터질 작품을."작품 준비 과정 <아수라>에서 단 2회 차 촬영이지만 김수진은 허투루 준비하지 않았다. "조폭출신 박성배 시장(황정민 분)에 반대하며 재개발을 막는 모습이 어찌 보면 선한 쪽 같지만 그 역시 자기 이권을 위해 아귀다툼 하는 거였다"고 김수진은 해석했다. 시나리오만 팔 수 있었지만 그는 유튜브 등을 통해 재개발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 양상을 공부했다. 최근까지 몇몇 국회의원의 행태를 보며 현실감 또한 담보했다. "잔인한 거 마초적인 걸 싫어하는데 <아수라>는 좋았다. 폭력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지 않았다. 여러 면에서 방점을 찍을 수 있는 영화 같다. 일단 자본의 입김으로 요즘 영화들이 감독의 원하는 바를 이루기 어려운 환경인데 <아수라>는 끝까지 감독의 생각을 밀고 갔다. 또 메시지 면에서 검‧경‧정치인들이 양심을 버리고 돈만 쫓을 때 벌어지는 일들을 역설적으로 한 방 보여줬다. 관객 입장에선 감정이입할 대상이 마땅치 않으니 배신당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신념이나 반성을 잊게 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수라일 수 있다는 걸 제시하고 있다. 영화에 참여한 후 그런 점이 난 좋았다."짧게 참여한 영화에 강한 애정을 보였다. 그만큼 한 작품 한 작품이 그에겐 소중하기 때문일 터. 수차례 오디션을 보며 겪었던 그만의 복잡다단한 감정과 나름의 깨달음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직 특정 역할을 따내기 위한 오디션 경험은 없고 불특정 캐릭터 중 하나가 주어지면 소화하는 식이었지만 김수진은 매번 자기만의 무기를 들고 오디션 장을 찾는다. 연륜의 힘일까. 한번 눈도장을 찍으면 줄줄이 다른 작품 오디션 기회가 주어진다. "나름 독백을 준비해 가거나 내 장점을 보일 수 있는 특정 상황을 가져가 보기도 한다"며 그가 영업 비밀도 살짝 공개했다.양질 전환 법칙 그런 그에게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40대 여배우의 현실에 대해 물었다. 무거울 수 있는 질문인데 김수진은 짐짓 "여자 배우 입장을 대변할 처지는 아니"라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새로운 여성 캐릭터가 요구되는 때인 것 같다"는 답을 내놓았다. 일리 있다. 40대 50대 남자배우들은 '명품배우'라며 추앙받고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상대적으로 그 또래 여성배우들이 할 수 있는 작품은 적다."여성 관객들이 늘고 있으니 남자가 나오는 걸 많이 볼 거라 생각하기 쉬운데 여성의 워너비(wanna be)는 여성이라는 면에서 보면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20, 30, 40대 여성들이 좋아할 것이다. 여성 관객이 많아진다는 건 감정 이입할 대상을 다양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거기에 맞춰 변모하는 거 같다. <시그널>의 김혜수 선배도 그렇잖나. 굳이 연애감을 내세우지 않고 주도적인 여성을 그려도 통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한 거 같다. 오히려 그게 남성 관객에게도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나도 누구의 아내 역을 많이 했지만 조금씩 넓혀나가고 있는 거 같다. 오디션을 보러 들어가면 그래서 떳떳하고 기분이 좋다. 물론 떨어지면 마음이 쓰지(웃음). 그럴 땐 동료나 선배의 조언이 많은 도움이 되더라."이 대목에서 김수진은 "양이 질을 능가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양질전환의 법칙'이다. 충분히 양을 쌓으면 질이 확 달라진다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다. 각종 영화와 드라마의 조연과 단역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다. "<시그널>에 출연했을 때 (세상의 불의에) 마음의 화가 잔뜩 있었는데 다행히 연기로 담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기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광장으로 뛰쳐나갈 것 같은 에너지가 그에게 있었다. 양심과 반성의 힘그 에너지를 구체적으로 파보자. 이는 김수진이 15년 간 여러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연기를 포기하지 않은 원동력이기도 하다. "때가 있는 것 같다"고 담백하게 말하는 그에게 재차 물었다. 그 동력이 무엇인지. "어릴 때부터 어디 가면 혹시 연출가냐, 작가냐, 아니면 기자냐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기자나 법조인이 꿈이기도 했다. 내가 정의 구현에 좀 관심이 많다(웃음). 자기주장 하는 걸 어색해하지 않아서 그런가. 5남매 중 맏이인데 아버지가 그렇게 키웠다. 그래서 건방지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배우라는 직업은 선택받는 입장이라 그래서 답답할 때가 많았다. 사실 고등학생 때 선배들 꾐에 연극반에 들어간 게 계기였는데 할수록 재밌더라. 고민도 많았지. 대학 졸업할 때까지도 고민했다. 20대엔 그저 10년만 버텨보자는 마음이었는데 그만큼 버텼더니 다른 할 수 있는 게 없더라(웃음). 성격상 감정이입을 잘하는 편이고 다른 사람의 삶을 기웃거려도 이상하지 않은 직업이 배우 같다. 연기자는 자기 자신이 곧 재료지 않나. 좋은 재료가 되도록 갈고 닦아야 좋은 연기가 나오는 것 같다. 사회적 지위가 없기에 자신과도 싸워야 하고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타인의 이야기도 잘 들어야 하고. 그래서 배우는 쉽게 늙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쉽게 비교될 수 있는 만큼 자존감은 잘 들고 다녀야지! (웃음) 주변에 좋은 사람을 많이 두는 게 중요하다." 배우론 만 가지고도 밤을 샐 기세였다. 김수진은 차기작인 <침묵>에서 재판장으로 분한다. 역시 짧은 분량이지만 이를 위해 최근 네 차례 법원을 방문해 참관했다. 이 경험을 전하며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어쩌면 평생 그가 연기하는 이유일 수도 있는 말이었다. "변호사인 친구랑 법원을 다녔는데 매우 어려 보이는 판사가 있었다. 우리 보다 어려 보였는데 친구 말로는 적어도 우리 보단 훨씬 나이가 많아야 판사를 할 수 있다더라. 아마 본인 양심에 귀 기울이며 속이지 않는 삶을 살아서가 아닐까. 나 역시 정직한 배우가 되고 싶다. 그러면 안 늙을 것 같다. 사소한 것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다양한 사람을 탐구하며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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