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카메라가 사진관을 투박하게 비춘다. 이윽고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쑥스러운듯 혹은 익숙하게 사진관 안으로 들어온다. 오랜만에 사진을 찍으러 온 듯한 모습이다. 카메라는 그들을 비추고 관객들은 이내 그들이 입은 푸른색 작업복 위로 뚜렷이 쓰인 '최종범 열사 정신 계승'이라는 말을 보게 된다. 최종범, 2013년 10월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였던 그는 사측의 노조탄압에 "전태일처럼 하지는 못해도 선택했다, 부디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조합원들이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가 그때 어떤 마음으로 싸웠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울었는지, 어떤 마음으로 사람들을 땅에 묻었는지, 그걸 잊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김진숙)

한진중공업 노동자사(史)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그림자들의 섬>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은 "마음을 잃지 말라"는 조언을 한다. 1981년 한진중공업에 입사한 이래, 김진숙은 여러 동료를 잃었다.

일을 하다 아래로 떨어져 죽는 사람들. 현장에서는 도무지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거나 무서워할 겨를이 없다. 이들을 김진숙 지도위원은 "깨진다"고 표현했다. 김진숙은 "저게 나의 죽음일 수도 있는데 그런데 나도 일을 해보니 저게 내 죽음이라고 생각하면 일을 못하겠더라 무서워서"라며 "그냥 '아이고 또 하나 깨졌네' 이러고 마는 거지. 이게 남의 죽음이 돼버리는 거다 조선소 노동이 참 서럽다"고 했다.

2003년 김주익 한진중공업 민주노조 지회장은 크레인에 올라가 농성을 하던 129일이 되던 날, 땅을 밟지 못하고 목을 맸다. 곽재규 조합원은 이에 비관해 도크 위로 몸을 던졌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 위에 올라간 건 그로부터 8년 후인 2011년이었다. 크레인 위에서 생명을 걸고 309일을 고공농성을 하고 내려와도 변한 게 없는 상황, 옆에서 일하던 동료들이 죽어 나가도 더 이상 유의미한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나라에서 마음이라니.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의 출연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의 출연자인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 이정민


지난 12일 <그림자들의 섬> 언론시사가 끝나고 이어진 기자회견 자리에서 김진숙은 "사실 이 자리에 안 오고 싶었다"고 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민주노조를 노동자들은 '죽음으로 지켜낸다, 사수한다'고 말한다, 죽은 이들은 모두 그냥 옆에 있던 사람들 삶을 같이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이 그냥 '세상에서 없어진 것"이라며 "그런 기록들을 재생해서 본다는 게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김진숙을 비롯한 한진중공업 민주노조 노동자들은 이를 모두 자신들의 탓이라 했다. "우리들은 왜 이렇게 무능하고 무기력했을까." 김진숙은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이후 어떤 이는 우울증을 얻었고, 그는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현장에 남은 사람들은 "전부 자기 탓이라 생각했다."(김진숙)

"내가 크레인 밑에 남아 있었으면 혹은 내가 지켰으면 대오를 이탈하지 않았으면... 그 후에 재규형이 도크 바닥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는데, 그 죽음이 더 끔찍했던 건 모두 다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잃지 않는 법이요?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의 김정근 감독과 출연자인 윤국성씨,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박성호씨, 박희찬씨 등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12일 오후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의 김정근 감독과 출연자인 윤국성씨,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박성호씨, 박희찬씨 등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12일 오후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언론시사가 끝나고 김정근 감독과 <그림자들의 섬> 출연자이자 한진중공업 노동자 박성호·윤국성·박희찬씨와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동료들의 죽음을 겪고나서도 마음을 잃지 않는 법이란 게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들이 생각한 바를 털어놓았다.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의 출연자인 박성호 한진중공업 노동자.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의 출연자인 박성호 한진중공업 노동자. "투쟁을 하고 복직했을 때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 목숨 값으로 복직했다고." ⓒ 이정민


"마음을 잃지 않는다는 건 어려운 이야기다. 자기 뜻대로 생각한대로 가는 것이 좋은데 환경에 휘말리다보면 자기 자신을 잃게 된다. 일단 무엇이 됐든지 잘못했든 잘했든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자기 중심을 잃지 않으면 된다."

82년 한진중공업 기관실파트로 입사한 박성호씨의 관록이 느껴지는 대답에 이어 윤국성씨는 "정치 투쟁을 해내고, 싸워서 이겨내겠다는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을 털어놓았다.

그건 어쩌면 그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도 몰랐다. 그는 "노동조합활동을 하다가 다시 안 하고 있다"면서 "그정도로 마음이 지쳤다"고 했다. 이어 "몸이 안 따라주고 환경이 안 따라주고 그렇지만 오늘 영화를 보면서 새롭게 마음을 다졌고 더 열심히 활동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의 출연자인 윤국성 한진중공업 노동자.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의 출연자인 윤국성 한진중공업 노동자. 그는 자신이 조선소 노동자라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드러냈다. "원래 우리는 영화 속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배를 만들거든." ⓒ 이정민


출연진 중 가장 막내라 할 수 있는 박희찬씨(2001년 전장파트 입사)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나도 똑같이 정리해고의 순간이 오면 흔들릴 거고 선배님들이야 수많은 경험을 통해 왔으니 말할 자격이 있다, 하지만 나는 단계를 밟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누구에게 그런 방법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박희찬씨는 "나중에 시간이 흘러 살아남아 있을 때 또 만나뵙게 되면 그때 답변을 드리겠습니다"고 답했다.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의 출연자인 박희찬 한진중공업 노동자.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의 출연자인 박희찬 한진중공업 노동자. ⓒ 이정민


<그림자들의 섬> 인터뷰여야 했다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의 김정근 감독.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의 김정근 감독. ⓒ 이정민


영화 <그림자들의 섬>을 만든 김정근 감독은 지난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다룬 영화 <버스를 타라>의 감독이기도 하다. 재미있게도 김정근 감독은 스스로를 "공고를 그만둔 '사짜 공돌이'"라 부른다. 그는 "둔탁한 공돌이 생활이 싫어 학교를 때려치운 전형적인 철없는 케이스"라고 고백한다.

그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과 2010년부터 감정적인 유대를 끊임없이 쌓아왔다. "열심히 기록하고 공유해 사태 해결에 도움이 돼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2010년 한진중공업에서 다시 정리해고 발표가 있었고 그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정리해고 반대 집회에 나섰다.

그것이 물론 '영화를 위해서'는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지난 6년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담을 수 있는 기회가 돼주었다. 또 그 시간동안 노동자들과 쌓은 특별한 유대관계는 결과적으로 그에게 좋은 인터뷰를 담을 수 있게 해주었다. 영화 <그림자들의 섬>은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역사를 꼼꼼하게 다룬 다큐멘터리이기도 하지만 '인터뷰'라는 방식을 통해 그들의 '얼굴'과 '말'을 담아낸 영화이기도 하다.

김정근 감독은 "내가 너무 좋아하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처럼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이들이 굉장한 '투사'가 아니라 보통의 사람이고 평범한 노동자들임을 보여주는 게 (영화의) 중요한 가치였다"고 답한다.

김 감독은 "투쟁 현장의 노동자들이 아니라 마음이나 표정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러려면 인터뷰여야 했다"고 했다.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고 싶었다, 이들의 사건이 그저 단발적인 뉴스로만 기억되는데 이들이 사건 이후 어떤 것을 느꼈고 그것이 얼굴로 보이고 그런 부분들을 알아봐주셨으면 한다."

<그림자들의 섬>은 여러 차례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얼굴을 자세히 담는다. 실제 동료들의 죽음을 지나쳐 온 어딘가 지쳐보이고 슬퍼보이는 한편, 담담하게 말을 잇는다. 오로지 다큐멘터리에서만 건질 수 있는 장면이다. 어떤 배우보다 더 관록이 깊게 배인 얼굴로 그들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새벽이 밝아오는 조선소의 전경'으로 서서히 이어진다. 김정근 감독은 말한다. "일하는 현장에 대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간이 더 경이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부산 영도(映島) 영도를 직역하면 '그림자들의 섬'이다. <그림자들의 섬>은 오는 25일 개봉한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제보 및 문의사항은 쪽지로 남겨주세요.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영화 <터널> 만들면서 세월호·박근혜 생각 안했다면 거짓말"

[inter:view] 김성훈 감독 "인간에 대한 예의 말하고 싶었다"

"도롱뇽이라뇨, 뭔가 착각을 하고 계신 거 같은데 저 안에 사람이 있다고요!" 10일 개봉한 영화 <터널>에서 가장 울림을 주는 대사 중 하나다. 구조대장 대경(오달수 분)은 터널에 갇힌 한 사람을 구하느라 근방 다른 터널 공사가 지연되자 경제적 손해를 읊는 한 전문가를 일갈한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영화를 연출한 김성훈 감독 역시 꾸준히 말해왔다. "<터널>은 생명에 관한 영화"라고. 그는 "60억 명의 사람들 개개인이 다 하나의 우주인데 우린 그걸 종종 까먹고 살지 않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언론 시사 직후 여러 언론에서 <터널>과 세월호 사건의 연관성을 물었다. 당시 그는 그 관련성을 인정하지 않았고, 에둘러 다른 답변을 했다. 자동적이면서도 관습적인 연상 작용에 대한 거부감이었을까. 8일 김성훈 감독을 직접 만나 보다 자세한 얘기를 듣기로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영화는 평범한 가장이자 자동차 딜러인 정수(하정우 분)가 터널 붕괴로 그 안에 갇히면서 시작한다.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정수와 그를 구하려는 구조대원들을 교차시키며 은연중에 재난에 대처하는 국가 시스템의 민낯을 비춘다. 정수의 구조 여부와 관계없이 상황을 분석하는 국가의 방식에 분노할라 치면 적절한 유머로 비틀어 놓는다. 재난 영화의 탈을 썼지만 <터널>은 오히려 풍자 영화에 가까워 보인다. - 인물 간 분명한 대결 구도, 빠른 전개로 관객들을 휘감았던 <끝까지 간다>(2014) 이후 선보인 작품이다. 현실 시스템에 대한 고민과 일갈이 눈에 띈다. 2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제 상황이나 생각이 바뀐 거 같진 않고 <끝까지 간다> 이후 어떤 갈증이 있었다. 그걸 채우는 작업을 한 거다. 그때 못 담은 이야기를 해보자는 건데 한 인물의 고난 극복기이자 철저한 대결 구도였던 게 <끝까지 간다>였다면, <터널>은 뭔가 더 확장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위기에 빠진 한 사람의 이야기가 세상을 향한 이야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 '단 한 명이 위기에 빠지는 이야기가 과연 흥행할 수 있을까' 업계에선 이런 말도 나왔는데 영화를 보고 잠시 동조한 거 반성하게 됐다. 돌아보면 전작도 그렇고 유독 한 사람 이야기에 집중한다. 단 한 명의 이야기여야 했던 구체적 이유가 있나?"우선 거대한 재난은 개인적으로 맞이하고 싶지 않고, 뉴스에서도 보고 싶지 않잖나. 그 앞에 홀로 선 인물은 되게 두려울 것 같았다. 혼자 어두운 골목만 걸어도 무서운데 말이지. 물론 이야기적으로 한 사람이 등장하는 게 약할 수 있다. 하지만 더 큰 두려움을 담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게 터널 안의 이야기고, 터널 밖 이야기에선 그를 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저울질하잖나. 단 한 명이라면 분명하게 가치를 저울질 하는 모습이 나올 거고, 세상이 인간을 어떻게 대하는지 분명히 드러날 거라고 봤다. 물론 영화는 재밌어야 한다. 나중에 제 영화관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대규모 상업영화에선 중요한 지침이다. 계몽영화 등도 필요하지만 상업영화는 1차적으로 재미라는 토양 속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미는 없고, 메시지만 있다면? 굳이 영화로 만들 이유가 없지 않을까. 차라리 한 시간짜리 강연을 하는 게 낫지."의도와 회피 사이에서영화를 본 관객들의 생각 일부를 김 감독에게 전했다. 언론 시사회장에서 한 기자는 세월호가 연상된다고 했고, JTBC <뉴스룸> 손석희도 같은 취지의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명쾌한 즉답은 없었다. 김성훈 감독은 "세월호 사건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답한 바 있고, <뉴스룸>에 출연한 하정우 역시 그 같이 말하면서도 "생명의 소중함을 다룬 영화고 그런 점에서 세월호 사건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도 있다"고 답했다.당연하게 던진 질문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연상 작용 자체가 불편한 이유는 앞서 말한 대로 엄연히 존재했고, 현재진행형인 그 비극이 단순한 영화적 소재로 소비되고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영화가 이미 개봉한 이상 김성훈 감독은 이에 대해 할 말이 있었다. - 세월호 비극과의 연관성, 또 사건을 관장하고 통제하는 장관을 여성(김해숙 분)으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7월 초 영화 제작발표회 때 첫 질문이 그거였다. 예고편을 본 기자 분이 세월호 사건의 연관성을 물었는데 의도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언론 시사 이후 비슷한 질문엔 그 사건이 일어난 이 현실이 슬프다고만 답했던 걸로 기억한다. 영화가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황하게 설명하면 오해가 생길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시점에서 다시 물으신다면 굳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연관성을 의도했다면 (세월호 비극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을 오히려 피했을 거다. 영화에 투자한 쇼박스는 대기업이다. 완성본을 본 쇼박스 역시 피하려 하지 않았을까. 시나리오 검열도 했을 거다. 다행히도 검열은 없었다. 근데 영화를 만들면서 그 사건을 생각 안 했다면 그것도 거짓말이다. 2년 전 우린 엄청난 아픔을 겪었다. 그 아픔을 우리 모두가 갖고 있다. 영화 역시 현실을 기반으로 풍자했기에 어떤 유사성이 있는 거다. 다른 사건과 비교해도 유사하다. 성수대교 붕괴,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도 마찬가지다. 우린 그런 사건 영향 안에 있다. 오히려 없었던 일인 양 빼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이만희 감독님의 <생명>(1969)이라는 작품이 있는데 지금 개봉했다면 분명 사람들은 세월호 영화라고 할 거다. 영화는 무너진 광산에 갇힌 광부 이야기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터널>은 생명에 대한 이야기다. 비극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게 분명 있잖나. '네가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었어!'라고 하신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말하려 한 것이다."- 더 명확하게 묻고자 한다. 여성 장관을 보면 곧 박근혜 대통령이 떠오르기도 한다. 명쾌하게 사건에 대처하지 않는 모습을 그린 것도 그렇다. 책임자를 여성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을 텐데."의도가 분명 있지. 솔직하게 그 과정을 말하면 시나리오 상 장관의 남녀 구분은 없었다. 가부장적 사회니까 장관 캐릭터라 하면 다들 남자를 떠올리실 거고 저 역시 그랬다. 그런데 배역을 하나씩 정하는데 여자가 너무 없는 거다. 그래서 누군가가 구조대원 중 하나를 여성으로 하자고 제안했는데 그건 아닌 거 같고, 장관을 여자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는데 그건 좋아보였다. 동시에 우려했다. 누굴 은유하려는 건 아니지만 분명 최고 통수권자로 비유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때 했지. 오히려 아니라고 하는 게 거짓말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밀고 가는 게 영화에 득이라 생각했다. 김해숙 선생님만의 귀여움이 있다. 평생 그런 신념을 갖고 온 장관은 분명 밉상 캐릭터인데 김해숙 선생이 표현하니 귀여워 보이더라. 분명 누군가는 여성 장관으로 설정한 게 의도가 불순하다며 혼낼 수도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캐럭터의 귀염성을 포기할 순 없었다."- 결국 감독은 한 사람과 이 사회를 같은 링 위에 올려놓고 결투를 붙인 셈이다."선택의 문제를 두고 같이 고민하자는 거다. 한 사람을 택할지 아니면 다수를 택할지. 건강한 사회일수록 문제를 고민하는 시간이 길다. 숙고하고 토론도 한다. 반면 덜 건강한 사회일수록 고민하지 않고 빨리 결정하는 것 같다. 난 건강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 늦은 나이에 선 출발점김성훈 감독은 철저한 상업영화로 이 세상을 툭 건드리고 싶었던 걸로 보인다. <터널>의 구상 과정을 들어보면 어림짐작 할 수 있다. 처음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터널을 지나다가 환풍구가 떨어지는 장면을 생각했고, 그걸 그냥 소모시키기엔 아까우니 환풍구를 넘나드는 재난 영화로 발전시키게 된 것이다. 영화의 원작 소설인 소재원 작가의 <터널>을 이미 읽은 뒤였다. 김성훈 감독은 "소설을 보고 펑펑 울었는데 만약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그런 식으로 눈물이 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며 "사실 무서웠다, 초반엔 딜레마에 빠진 인물이라는 소재가 감당이 안 될 것 같았고, 연출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회심의 카드가 하정우였나. 하정우라는 사람과 특유의 유머가 겹쳐지니 영화의 분위기 자체가 한층 경쾌해졌다."잔인한 현실을 가감 없이 들이대는 소재원 작가의 시선이 뛰어나고 공감도 간다. 하지만 영화는 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관객이 보게끔 하려면 유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다. 환풍구 아이디어 같은 게 떠오르며 지금의 이야기를 구상한 거다."- 본래 터널 자체를 빌렸다가 촬영이 여의치 않아 직접 세트를 지었다고 들었다."그렇다. 예정됐던 터널 촬영이 취소되는 바람에 상당히 힘들었지만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새롭게 리모델링하면서 돈은 더 들었지만 그만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었다."- 하정우와 이름이 같다는 것(하정우의 본명이 김성훈이다 - 기자 주)도 재밌다. 그의 장점을 영화에 잘 살린 것 같다."물론 이름이 같아서 하정우씨가 출연을 결정한 건 아니지만 서로 간의 벽을 허무는 데 도움은 됐다. 이름이 같으니 언젠가는 같이 한 번은 작업하지 않을까 생각했다더라. 굉장히 유머가 있는 사람이다. 밤새 웃긴다. 천진하기도 하고. 현장에서 애드리브도 많은 편이었다. 매 장면 애드리브를 고민하더라. 집에서부터 준비했는지 순간 현장서 던진 건지 모르겠지만 계획된 것 이상의 날 것이 보일 때가 있더라. 날 것의 이미지는 그 어떤 정교한 디자인보다 아름답다. 물론 정교한 설정이 필요한 영화가 있지만 적어도 <터널>은 날 것이 필요했고, 하정우가 그걸 잘 발산했다." 서른이 넘어 시작한 영화 일이다. 마흔여섯에 두 번째 장편을 발표했다. 김성훈 감독은 "늦게 시작한 게 오히려 득이었다"며 "보다 힘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감히 세상을 향해 자연인으로 직언을 날리는 것에는 조심스러웠지만 영화 감독으로서 적어도 그는 비겁함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다음은 <터널>을 통해 말하려 한 생명에 대한 예의의 정체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내 입장에서 세계와 이 사회를 논하긴 그렇고 IS 테러, 전쟁 등을 두고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라고들 하잖나. 그렇다. 사람이니까 그런 일을 하면 안 되는 거고, 그런 대우를 받으면 안 되는 거다. 우린 모두 지구상의 가치 있는 생명체다. 하지만 그걸 말하기 위해 <터널>을 시작한 건 아니다. <터널>을 하기로 했기에 그걸 말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이게 바로 <끝까지 간다>에 담지 못했던 확장성이다."

제2의 전성기, '들이대' 김흥국 "내가 건들면 후배들이 환장한다"

[오마이스타 창간 5주년 인터뷰] 180도 바뀐 김흥국, 그에게 예능이란?

MBC의 한 라디오 프로에서 하차 당했던 4년 전과 지금의 김흥국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손 뒤집듯 사람 자체가 변했다는 게 아니다. 각종 예능 프로에서 죽은 분량도 살려낸다며 일약 단골손님으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흥궈신'의 30년 연예 경력을 관통하는 덕목이 바로 '들이대~' 정신 아닌가. 무명일 때도 잘 나갈 때도 그는 연신 "으아~ 들이대"를 주문처럼 외우곤 했다. 제2 전성기를 맞은 그를 <오마이스타>가 찾았다. 폭염주의보가 한창이던 8월 중순의 어느 날이었다. 부침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자기 길을 걸어온 그를 탐구해보기로 했다. '방잘못'(방송 잘 못하는) 김흥국의 진가아무래도 김흥국의 급부상은 지난해 11월 폐지된 MBC 예능 <세바퀴> 덕이 가장 클 것이다. 함께 출연자로 나온 조세호에게 "안재욱 결혼식에 왜 안 왔냐"고 일갈했고, 그걸 "모르는 사인데 어떻게 가요"라고 조세호가 받아치면서 화제가 됐다. 정확히 따지면 방송 직후가 아닌 수개월이 지나서였다. 업계 용어로 '역주행'이라고 한다. 김흥국은 "내가 걔 하나 먹고 살게 해준 거지!"라며 한껏 흥을 높였다. 인기가 많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최근까지 김흥국은 휴가다운 휴가를 다녀오지 못했다. 평소 술을 즐기는 그였지만 제대로 약속을 잡을 시간도 없다. 본업인 방송 활동 등과 함께 지난해부터 대한가수협회장으로서 전국 행사를 누비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화를 낼 정도로 만나지 못하고 있다"고 고충 아닌 고충도 털어놓았다. - 데뷔 30 여년 만에 맞은 제2전성기라는 말에 동의하시는지."하하! 아는 선배님이 전화를 주셨는데 '넌 어찌 그리 복이 많기에 전성기를 또 누리냐'고 하셨다. 전화를 받고 미안함과 감사함이 밀려왔다. 모르겠다. 늘 똑같이 해왔는데 사랑을 지금 받고 있다. 그 선배 왈 '솔직히 너처럼 방송 못하는 사람이 또 어디 있냐!'라는데 할 말이 없더라. 으아~. 그러면서도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는 게 네 장점'이라 말해주셨다. 진정한 선배지. 아무리 잘생기고 많이 배운 사람이라도 이렇게 사랑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겸손하고 잘 베풀고 그래야지."- 거의 쉴 틈이 없어 보인다. 인터뷰 중에도 방송 관련 전화가 오고.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는가."가족도 건강을 걱정하긴 한다. 근데 어떡해! 그래도 토요일에 축구는 꼭 한다(웃음). 스트레스 풀 게 그것뿐이니까. 예능 프로는 고정은 거의 없지만 자주 출연 요청이 온다. 생각해보시라. 유재석과 김구라 이들과 같이 들이대고 있다. 내가! 그리고 협회장으로서 무명가수들 무대도 많이 만들어줘야 하고, 할 게 많다. 얼마 전에 <가요무대>에서 섭외가 왔는데 정중히 거절했다. 내 자리에 후배 가수들 좀 넣어달라고 말했다. 난 나갈 곳이 많잖나. 협회장 임기 3년 동안 내 노래는 안 부르겠다고 다짐한 것도 있다. 다만 후배들이 요청하면 같이 참여는 해야지. 얼마 전에 바이브랑도 작업했다!" - 여러 예능을 살렸다는데 특히 조세호와의 호흡이 돋보인다. 후배들에게 왠지 연락이 많이 올 것 같다. "내가 지금 '예능 치트키(cheat key)'다 '흥궈신' 등등 이런 말을 듣고 있지만 예능은 가수 활동을 할 때도 쭉 해왔다. 그런데 조세호가 오래 활동했는데 못 떴다더라. 방송 전에 김구라가 '세호 좀 건드려 줘!' 해서 건드렸지! 애 하나 살린 거다. 그러니까 또 후배들이 줄을 선다. 조세호만 밀어주지 말라면서. 으하하! 김흥국을 섭외하면 죽는 프로도 살린다는 소문이 있다더라. 힘이 나지. 그래서 요즘 녹화 참여 시간을 늘렸다. 내 한계가 2시간이었는데 3시간이 됐다. 힘들면 녹화 중이라도 혼자 퇴근하고 그랬거든(웃음)." - 그러고 보니 오늘 인터뷰 자리에 조세호씨가 안 왔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어, 그러네! 이 자식이 뜨니까 안 와! (웃음)"- 이걸 받아주셔서 감사하다. 아울러 지금껏 출연한 프로그램 중 가장 애착이 가는 프로가 있다면?"조세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세바퀴>가 없어진 게 참 아쉽다. 우리가 뜬 게 폐지 후 몇 개월 만이잖나. 담당 PD에게 연락이 왔다. 진작 뜨지 없어진 다음에 떠서 아쉬워하더라. 난 대본을 안 보고 그냥 즉흥적으로 하거든. 그러니까 내가 건들면 애들이 환장하는 거지(웃음)."연예인 뒤에 숨는 방송사 여기서 부턴 다소 진지한 이야기. 예능 프로도 프로지만 가수로서 김흥국은 라디오 프로에 대한 애착이 컸다. 2011년 자신이 진행하던 MBC <두시만세>에서 돌연 하차 당하는데 6·2 지방선거 관련해 선거운동에 동참했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김흥국은 삭발도 불사하고 여의도 MBC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여러 반응이 있었다. 선거법과 방송윤리 상 그의 시위가 크게 지지를 받긴 어렵다는 의견, 김미화 하차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꼼수라는 의견 등.이에 대해서도 할 말은 있었다. 그는 "프로그램의 하락세를 두고 연예인들에게 책임지라는 꼴"이라며 그는 최근 벌어진 개그맨 최양락의 라디오 프로 하차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의견을 보탰다. - <두시만세> 하차 때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억울한 심경을 당시 토로했었다. 최근 또 최양락씨도 14년 동안 진행한 MBC <재미있는 라디오>에서 하차 당했다. "그때 참 힘들었다. 내가 정몽준(당시 한나라당 의원)과 친한 거 다 알고 있었으면서 갑자기 그만두라고 했지. 그럼 애초에 날 쓰지 말았어야지. 방송국을 상대로 누가 1인 시위를 할 수 있겠나.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웃음) 내가 했는데 처음엔 아무도 관심 없다가 기자 한 명이 왔어! 하나가 둘, 셋이 되고. 사실 그때 정치권에선 여론이 좋으니 시위를 좀 더 오래 해달라고 했다. 근데 힘들지. 그리고 창피하지 않나. 난 알릴만큼 알리고 그만 둔다고 했다. 개인이 어떻게 방송국 상대로 이겨. 선후배들이 차마 시위하는 곳엔 못 오고 문자로 나중에 후유증 없겠냐고 그러더라(웃음).최양락씨는 뭐 때문에 하차하나? 오래했는데. 이유가 뭔가! 풍자해서 그렇다고? '3김' 코너 그런 거? 말이 안 돼. 그냥 그것만 하지 말라고 하든가. (방송국이) 멋대로 이유를 대는 거다. 연예인을 완전 소모품으로 보는 거 아닌가. 라디오를 어떻게 DJ 없이 운영하나. 프로가 오래 됐으면 오래 됐다고 날리려 하고, 풍자한다고 날리고. 방송국 PD나 작가들이 못 만든다는 생각은 안 한다. 자신들도 돌아보고 잘 만들 생각을 해야지. 개편 때마다 정리하려 하면 떨려서 어디 방송을 하겠나? 차라리 6개월이든 뭐든 계약을 하라 이거야. 그래야 다른 프로에 갈 준비를 할 거 아닌가. 무슨 소모품도 아니고."- 다행히 5년 만에 라디오에 복귀하지 않았나. SBS에서 봉만대 감독과 함께 하고 있다. "감사할 따름이지. 이렇게 빨리 뜰 줄 몰랐다. 늙은 사람 잘 안 쓰는데 말이야. 그리고 아이돌 친구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해. 원래 내가 자식 핑계 대면서 찍자고 해야 할 판인데! 이런 일이 있나! (웃음)"- 부침을 겪으며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 것 같다. 또 이렇게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면."가식이 아닌 있는 그대로 하는 거지 뭐. 쉴 땐 쉬어야 한다. 요즘은 일 많이 하면 좋은 줄 아는데 내가 일을 배울 땐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라고 했었다. 방송국은 무조건 다 뽑아먹으려고 하니까 스스로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나도 어려운 시기가 몇 번 있었다.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자만하지 말라는 경고와 채찍질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 일을 겪으며 다시 태어날 수도 있는 거다. 잘못은 빨리 인정하고 사과해야 해! (웃음)"행복한 건 '호랑나비'라는 노래가 있다는 것. 이게 밝은 노래지만 사실 외롭고 쓸쓸한 가사다. 언젠가 때가 있으니 묵묵히 길을 걷자는 거다. 열 개, 백 개의 히트곡 보다 하나라도 오래 가져 갈 수 있는 게 좋다. 또 후배 가수들과 함께 공연하는 것도 좋다. <쇼미더머니>에 나오는 리듬파워 애들과 같이 노래도 불렀다. 내가 트로트 가수로 알려져 있는데 나름 레게도 보여줬고, 여러 장르를 보였다. 젊은이들이 공감을 한다(웃음)."인생과도 같은 축구, 그리고 새로운 임무김흥국 하면 축구를 빼놓을 수 없다. 1989년에 로마월드컵 응원단 단장을 맡으며 본격적인 축구인생을 시작한 걸로 알려져 있지만 그 전부터, 그러니까 '호랑나비'가 1988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 전부터 그는 축구에 빠져 있었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는 돈이 없어서 응원을 제대로 못했는데 '호랑나비'로 돈 벌어 당당하게 응원 갔다"며 "28년 간 응원단 하는 건 나밖에 없을 것"이라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보였다. - 이번 리우 올림픽 땐 KBS에서 축구 해설도 도왔다. 누가 보면 정말 선수 출신인 줄 알겠다."리우에 못 간 게 아쉽지만 그래도 마이K에서 중계를 했다. 8강에서 온두라스 역습 한 방에 패했다. 브라질과 붙을 수 있었는데 아쉽다! 역시 수비 보완이 필요해. 응원은 다들 열심히 했다. 응원 이건 이상 없다고 봐야해(웃음)." - 또 가수협회장으로서 할 일도 많지 않나. 올해가 창립 10주년인 걸로 안다. "남진 초대 회장에 이어 송대관, 태진아가 있었고, 내가 5대인데 아시다시피 회원 수가 많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 예능 프로에서도 홍보를 했다. 이젠 중학생들도 가수협회 연회비가 18만 원이라는 걸 안다(웃음). 가수들이 더 단합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다들 회사가 있지만 뭉치면 살 수 있다. 협회의 필요성이 있으니 45년 만에 생긴 거고, 힘을 보태주면 하나씩 이룰 수 있다. 9월 17일이 가수의 날이다. 10년 만에 행사를 할 거다. 서울 시청에서 무료로 야외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어이쿠! 이 소식을 여기에 먼저 알려주네(웃음). 개인적 희망은 협회의 가치도 올리고, 특히 무대가 없는 가수들에게 기회가 갔으면 좋겠다. 엊그제 삼천포 공연에도 다녀왔는데 찾아가는 콘서트도 하고, 중국과도 연대를 해서 서로 왕래하고 그러려고 한다. 우리나라에 훌륭하고 좋은 가수들 많다. 김흥국이 무명 가수 복지에 신경 쓰고 있으니 대형 가수 분들도 애정을 갖고 도와주시면 잘 되지 않겠나."- 그 말씀을 들으니 정치 이야기도 생각난다. 정치 쪽에도 생각이 있는 걸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으하하! 가수협회장 일을 잘하면 소문이 나겠지. 그러다 비례대표로 연락이 오면 고민해봐야지. 근데 아마 안 될 거다(웃음). 3년의 임기를 마치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지만 일단은 임기를 잘 마쳐야지. 정당이 뭐냐고? 안 가린다. 나 지금 무소속이다! 이러면 너무 색깔이 없어 보이나?(웃음)"- 본업인 가수 활동도 있잖나. '호랑나비', '59년 왕십리'를 능가하는 히트곡을 내고 싶진 않나."평생 가수다. 좋은 노래가 있으면 발표해야지. 당연!" 두 히트곡이 바로 김흥국 인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노래 분위기는 서로 다르지만 가사 자체가 김흥국이었다. 도대체 한사람도 즐겨 찾는 이 하나 없을 때도 그는 구름 위로 숨거나 하늘높이 날며 인생을 즐기고 있었다. 참, 또 하나의 좋은 소식. 연예계 활동을 하며 자녀들을 미국에 보낸 김흥국이 곧 집을 합칠 예정이다. 아내와 자녀가 모두 한국으로 들어온다는 소식을 전하며 그가 유난히 더 밝은 미소를 보였다.

  • inter:view 다른 기사

  • 옆으로 쓸어 넘길 수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