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미남, 훈남, 뇌섹남…. 여심을 자극하는 남자의 매력 포인트는 늘 변한다. 그리고 지금은 바야흐로 '아재파탈'의 시대. 아저씨와 파탈(Fatal, 치명적인)의 합성어인 '아재파탈'은 40대가 넘었으되 여전히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어른 남자'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그리고 '아재파탈' 열풍의 중심에는 배우 조진웅(40)이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조진웅은 '아재파탈'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아니 왜 아재래~"라고 웃으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잠시 후 "결혼도 했고, 아재는 맞지"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인기에) 연연하지는 않지만, 의식은 한다"고 말했다.

"보는 눈이 있다는 건 내가 책임져야 할 영역이 있다는 거잖아요. 거기서 오는 무게감이 있죠. 그 무게감이라는 게 마냥 짓누르는 건 아니에요.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기도 해요. 힘들 때도 '오빠, 저 왔어요' 이런 말 들으면 잘 해야겠다 생각하죠."

소처럼 일한다

 사냥 조진웅

'아재파탈' 열풍의 중심에는 배우 조진웅이 있다. 그는 최근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연연하지는 않지만 의식은 한다"고 말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조진웅이 배우로서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은 <뿌리 깊은 나무>다. 세종(송중기 분)을 지키는 믿음직스럽고 용맹한 무사 무휼. 이후 '소'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충무로의 다작 배우가 됐다. 그는 그저 "다작이 팔자인 것 같다"며 웃었지만, <범죄와의 전쟁> <끝까지 간다> <암살> <시그널> <아가씨> 등 차근히 쌓아 올린 필모그래피 면면은 어느 하나 겹치거나 닮은 구석이 없다.

 영화 <사냥>의 조진웅.

조진웅은 영화 <사냥>에서 데뷔 후 첫 1인 2역에 도전했다. 조진웅 본인에게도 기대가 컸던 도전이었지만, 그만큼 아쉬움도 컸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단순히 출연 작품 리스트만을 늘려온 것이 아니라, 작품마다 새로운 퀘스트에 도전하듯 연기 영역을 확장시켜왔기 때문. 그런 그가 이번 영화 <사냥>에서 도전한 퀘스트는 데뷔 후 처음으로 시도하는 1인 2역이다.

조진웅이 맡은 동근·명근 쌍둥이 형제는 경찰이다. 돈을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나쁜 경찰'이라는 점에서 언뜻 <끝까지 간다> 박창민이 떠오르기도 하겠지만, 조진웅은 동근·명근을 악역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악역이라기보다 기성(안성기 분)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인 거죠. 제가 생각한 동근의 당위성은 스트레스예요. 스트레스가 너무 일상이 돼 툭 나오는 말조차 신경질적인. 동근이는 이 산을 그냥 내려가면 다시 지긋지긋한 빚에 시달려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기성이 동근의 계획을 망치려는 거죠. 잡힐 듯 잡히지도 않고."

하지만 영화는 그가 설정한 동근의 당위성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관객으로 하여금 동근과 엽사 일행이 금에 눈이 멀었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도 뭘 저렇게까지…. 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는 지점. 조진웅이 아쉬웠던 점도 같았다.

"명근이의 역할이 더 아쉽기도 해요. 명근이가 어떤 역할을 더 해줬다면, 동근이의 광기의 이유를 더 명확하게 짚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저도 영화를 보고 느낀 거예요."

체력적 한계, 안성기 때문에 티도 못내

 사냥 조진웅

조진웅은 상남자 같은 겉모습과 달리, 알고보면 여린 남자다. 영화 <아가씨>에서 아내(문소리 분)과 어린 히데코(조은형 분)의 얼굴을 쥐고 흔드는 장면도 '너무 폭력적이라' 망설였던 그. 이번 <사냥>에서는 안성기를 밟고 때려야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산을 배경으로 한 <사냥>의 추격신은 배우들의 고생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그는 제대로 힘든 내색도 할 수 없었다. <레버넌트> 휴 글랜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못잖은 생고생 연기를 선보인 대선배 안성기 때문이다.

"후반부에 안성기 선배님이랑 계곡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12월에 찍었어요. 9월 말, 10월 초에라도 미리 찍었으면 좋은데 이 장면을 왜 마지막에 몬 건지 제작진한테 일부러 의도한 거 아니냐고 하기도 했어요. 정말 몸이 안 움직이는 것 같고 죽을 것 같았어요. 중간에 쉬었다가 다시 촬영해야겠다 하고 보면 안성기 선배님은 이미 물에 들어가 계시더라고요. (웃음)"

그는 그런 안성기의 모습은 "의지, 의식" 같은 것이었다면서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데도 늘 괜찮다고 하시더라"고 감탄했다.

"백발 가발도 분장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그래도 늘 전혀 흐트러짐도 없이 계셨죠. 내가 선배님 연배까지 연기한다면 저럴 수 있을까? 못할 것 같은데. 선배님이 하시니 후배들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고 하는 거죠. '선배님 괜찮습니다', '안 춥습니다.'"

영화 <아가씨>에는 코우즈키(조진웅 분)가 장갑 낀 손으로 아내(문소리 분)와 어린 히데코(조은형 분)의 얼굴을 쥐고 흔드는 장면이 나온다. 코우즈키의 폭력성과 가학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박찬욱 감독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조진웅이 너무 폭력적이라 해당 장면 촬영을 망설였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조진웅은 손만 얹었고, 문소리와 조은형이 스스로 얼굴을 흔드는 방식으로 촬영했다고. 거친 겉모습과 달리 알고 보면 섬세하고 여린 남자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도 하늘 같은 선배 안성기를 발로 밟아야 했다.

"안성기 선배님을 발로 밟는 장면은 대역이에요. 선배님 쓰러지시면 나는 땅을 밟는 거지. 그리고 발로 진짜 밟아야 하는 장면에선 '나 못하겠다' 그러고 무술팀을 부르죠. 솔직히 그런 장면은 나보다 무술팀이 나아요. 임팩트 있게 딱! 끊어서 힘 조절 해야 하는데, 나는 잘 못하잖아요. 괜히 내가 워커 신고 하다 삐끗하면 엄청 아프기만 하고. 그분들은 다치지 않게 전문적으로 잘 하시니까. 물론 얼굴이 같이 나오는 장면은 어쩔 수 없으니 내가 했어요. 근데 아, 맞는 연기가 낫지 때리는 건 진짜 너무 힘들어."

이재한, 그리고 김은갑

 사냥 조진웅

무뚝뚝하고 멋없어 보이는 겉모습, 하지만 섬세하고 부드러운 내면. 조진웅은 <시그널> 이재한과 많이 닮아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이재한과 나는 많이 다른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그런 면에서 그는 <시그널>의 이재한과 많이 닮았다. 큰 덩치에 무뚝뚝하고 멋없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 누구보다 배려심도 많고 따뜻한 마음을 지닌 남자 이재한. 조진웅은 이재한을 만나 그야말로 '포텐'을 터트렸다. 하지만 정작 그는 최근 <사냥> 언론시사회에서 "사실 이재한은 재미없었다"고 말했다. 이재한 때문에 울고 웃었던 많은 팬들이 그 대답에 서운해했다더라고 전하자 "할 수 없지 뭐, 서운해하거나 말거나 어쩌겠어"라고 대꾸했다. 하지만 그의 '재미없다'는 말에는 다른 뜻이 담겨 있었다.

"이재한은 정의롭잖아요. 이런 캐릭터는 사실 단편적이고 재밌진 않죠. 저와 많이 다른 사람이고. 솔직히 조진웅이라는 사람은 불의를 보면 돌아가는 사람인데. 하하하. 하지만 이 친구가 가진 룰을 지키려고 노력을 많이 하죠. 그러니 당연히 지치기도 하고.

사실 <시그널> 대본 읽으면서 너무 괴로웠어요. 이건 시청률이 목적이나 목표가 돼서는 안 되는 작품이니까. 이 작품이 가진 진심이 얼마나 전달될 수 있을까 늘 고민했어요. 피해자가 있으니까. 아무도 그들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잖아요. 그 무게를 내가 져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겪을 필요 없는, 겪고 싶지 않은, 하지만 경각심을 가져야 할 부분에 대한 감정을 계속 떠올리고 연기해야 하니까. 이래서 배우들이 단명하는 거예요.

그래도 이재한의 '20년 뒤에도 그럽니까'라는 대사 때문에 하게 됐어요. 이 말은 시청자들에게,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었거든요. 재미있게 접근할 수 있던 작품도, 캐릭터도 아니었어요."

그리고 그는 요즘 <안투라지 코리아>에서 엔터테인먼트 대표 김은갑을 연기하고 있다. 그는 "재미있다"는 표현을 여러 번 쓰며 김은갑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지금도 빨리 <안투라지> 가고 싶어요. 캐릭터가 갓 잡아 올린 고등어 같아. 고등어 성질 더러워서 파닥거리다가 지풀에 지가 죽어 버리잖아요. 그런 느낌? 이런 역할 만난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최명길 선배님도 나오시는데, 조선의 국모가 욕을 해. 하하하. 진짜 웃겨요."

배우, 여전히 흥미롭다

 사냥 조진웅

조진웅은 '언제 연기 그만 두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자신의 대답은 "매일, 매순간"이라고 말했다. 배우라는 직업은 여전히 흥미롭고 재미있는 작업이지만, 늘 두려움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최근 공개된 <안투라지>의 특급 카메오 리스트에는 하정우, 김태리 등 조진웅의 인맥으로 보이는 인물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작품에 대한 그의 애정을 표현하는 다른 방식인 셈이다.

"배우라는 직업이 상당히 흥미로워요. 늘 긴장되고 재미있고, 늘 다른 역할을 연기하니까 계속 재생산되고. 지금까지 소모된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어려움도 있지. 어쩔 땐 힘들고 잠도 안 오고 죽을 것 같거든요. 현장 가서 '레디 액션' 하면 나 혼자 싸움이잖아요. 그게 두려워서 언젠가는 한강 다리 지나가다 '여기서 뛰어내리면 안 찍어도 되나?' 이런 생각까지 한 적도 있어요. 멀쩡한 사람 죽이고 괴롭히는 연기도 해야 하고 사람들은 아로마 향 켜두고 힐링을 하는데, 배우는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재생산해야 하잖아요.

'언제 연기 그만두고 싶으세요?' 묻는다면 제 대답은 '매일, 매 순간'이에요. 하지만 세상 어느 직업군이 힘든 점이 없겠어요. 나는 하고 싶은 일 하니 복 받은 거고, 그러니 더 열심히 해야지. <사냥> 카피 중에 '그 산에 오르지 말아야 했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거 감당하기 버거우면 배우가 되지 말았어야지 뭐. 하하하."


조진웅 사냥 시그널 안투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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