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1년 남은 지금, 현대 정치를 다루는 드라마를 만든다면 무엇을 써야 할까?"

답은 간단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 혹은 혐오가 사회 전반에 짙게 깔린 지금의 세태에서 정현민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에 관심을 갖고 희망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최근 종영한 KBS 2TV <어셈블리>는 그렇게 시작됐다.

<어셈블리>는 그의 전작인 <정도전>처럼 다양한 정치관이 날카롭게 부딪히며 내는 파열음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대신 고등학교 교과서로 정치를 공부하며 이리저리 분투하는 초짜 정치인 진상필(정재영 분)을 통해 원론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24일 만난 정현민 작가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그럼에도 추구해야 할 것은 사람"이라며 "사람이 사람답게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드라마를 쓰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2시간 넘게 진행됐다. 그만큼 할 말이 많았던 것이리라. 그와의 대화를 모두 세 꼭지의 기사와 3분짜리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정리했다. 좀더 생생하고 자세한 목소리를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35분짜리 영상도 준비했다.

[전체영상] <어셈블리> 정현민 작가를 만나다 (35분)

자, 지금부터 드라마에서 다 하지 못한 <어셈블리> 속으로 들어가보자.

 KBS 2TV 수목드라마 <어셈블리>의 정현민 작가가 2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KBS 2TV 수목드라마 <어셈블리>의 정현민 작가가 2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이정민


처음부터 미리 정해놓은 결말

 시청률은 4.9%, 울림은 그 이상 : 어셈블리가 남긴 말

ⓒ 고정미

- 진상필의 뒤를 이어 보좌관이었던 최인경(송윤아 분)이 국회의원이 되는 결말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움이 있었다. 진상필 같은 정치인이 좀 더 국민을 위해 일하는 모습이 그려졌다면 어땠을까.
"처음부터 드라마의 끝은 명확히 생각하고 있었다. '배달수 법(열심히 살았지만 실패한 사람들을 국가가 지원하자는 취지의 법안으로, 진상필의 해고노동자 동지였던 배달수로부터 착안한 것이다-기자 주) 통과를 위해 진상필이 의원직을 던진다'는 것이었다. 의원직을 사퇴한 사람이 그 다음 선거에 나오는 건 좀 아니다 싶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고.

진상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내려놓고 가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떠날 때 멋있게 떠나는 사람이 진짜 멋있는 거잖나. 이 드라마를 통해 '무엇이 훌륭한 자질을 가진 국회의원들을 변하게 하는가'를 생각해보고 싶었는데, 그건 공천 때문에 혹은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더라. 자신의 신념이나 초심을 부정하면서까지 자신의 정치생명을 연장할 것이냐... 이건 아마도 정치인들의 계속된 숙제일 거다.

예를 들어 백도현(장현성 분)이나 조웅규(김진호 분)는 대학 시절 '이스크라'(러시아어로 '불꽃'이라는 뜻으로, 사회주의 혁명가 레닌이 참여한 기관지 이름이기도 하다-기자 주)라는 사회과학서클의 멤버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초심을 가진 사람들이 권력의 중심에서 좀 더 큰 야심을 갖게 되거나 낙선의 고통을 맛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정치공학에 젖어들어갔다. 이런 사람들이 과연 국민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의 정치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고 싶었다.

사실 진상필은 원론만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그 이상을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통해 가장 원론적인 형태의 정치와 현실적인 정치의 대립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의도했던 대로 다 내려놓고 떠날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늘 사표를 책상 안에 넣어놓고 일하는 사람들은 할 말을 다 할 수 있지 않나(웃음). 너무 이상적일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 이런 이유로 정해놓은 결말이었다."

등장인물이 상징하는 집단

 시청률은 4.9%, 울림은 그 이상 : 어셈블리가 남긴 말

ⓒ 고정미

- 시청자 사이에서 극중 인물의 실제 모델이 누구인지가 궁금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최근 한 언론에서 <어셈블리>의 실제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다루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혹시 롤 모델이 있었던 건 아닌가.
"정말 없었다. 캐릭터를 만들면서 '어떤 인물의 이런 걸 따와야지' 생각했다면 좀 더 그럴듯하게 했을 거다(웃음). 거대 여당이 있고 제1야당이 있고 미니 야당이 있는 구도는 현실을 차용한 게 맞지만, 그 안의 인물들에 특별한 롤모델은 없다. 지난 3~4년간 국회와는 완전 무관한 삶을 살았으니 계파의 분포 같은 것도 지금은 잘 모르고.

처음 캐릭터를 구상하며 했던 건 박춘섭(박영규 분)은 산업화시대를 거친 원조 보수, 백도현은 운동권 출신의 개혁 보수라는 등 정치적 이념이나 스탠스를 정하는 것이었다. 또 극중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를 정해뒀다. 어떻게 보면 특정 집단을, 그러니까 백도현은 세속화 권력화된 386 세대를, 박춘섭은 산업화 시대의 논리를 구현하는 집단을, 홍찬미(김서형 분)는 비례대표 의원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있겠다.

물론 도매금으로 모든 비례대표 의원들이 홍찬미 같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례대표들은 다음 총선에서 또 비례대표가 될 수 없으니, 정치를 계속하기 위해선 지역구를 뚫어야만 한다. 그래서 이들이 처한 심리 상태가 매해 다르다. 그런 것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 실화를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특히 부패한 인물이 국무총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진상필이 단독으로 25시간 동안 무제한 토론을 하는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장면을 두고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필리버스터라는 걸 <어셈블리>를 기획하면서 알았다(웃음). 실화를 반영했다기보다는, 이 소재를 통해 시청자가 정치에 느끼는 답답함을 토로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정치 드라마에서 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소재가 몇 개 없기도 했고."

작가가 만들어내고 싶었던 공감대

 KBS 2TV 수목드라마 <어셈블리>의 정현민 작가가 2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현민 작가는 <어셈블리> 기획의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기획의도에도 '이것은 도전이다, 하지만 정치가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지만 가장 유력한 수단이라고는 생각한다, 정치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썼다. 이 공감대만큼은 만들어내고 싶었다." ⓒ 이정민


- 그렇다면 새로 이야기를 만들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인가.
"예전에 한 시상식에서 작가상을 받으면서 '대세에 영합하지 않고 할 이야기는 하는 작가가 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이었다. 국회의원이 법을 만드는 이 이야기가 지금 이 시기에 필요한 이야기라 생각했다. <정도전>을 쓴 작가니 스릴러 성격을 기대하는 분들도 있었을 거다. 권력 암투 또한 당연히 정치의 속성 중 하나니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에 천착하는 드라마는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떤 드라마를 쓸까' 생각하니 결국 국회 안의 사람들의 이야기더라. 정치에 대한 관심이 적은 지금, 시청자가 '정치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모습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했다. 그래서 김규환(옥택연 분)이 등장했고, 정치가 왜 필요한지를 최인경을 통해 이야기한 것이다. 이와 함께 국회의원이 하는 주요한 업무도 다 그려보고 싶었다. 뇌물수수혐의를 받은 진상필이 무고함을 증명하는 과정도 조사, 도청 같은 수사가 아니라 감사요구안을 의결하는 국회적 장치를 통해 풀려고 했고. 나름 국회에 천착하려고 했다.

물론 정치와 휴머니즘의 결합이 쉽지는 않았다. <어셈블리>가 <정도전>의 현대판을 기대했던 분들에겐 다소 뜨악할 수 있었고, 현실정치에 대단히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에겐 오글거릴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도전하는 마음이었다. 기획의도에도 '이것은 도전이다, 하지만 정치가 세상을 바꾸는 유일한 수단은 아니지만 가장 유력한 수단이라고는 생각한다, 정치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썼다. 이 공감대만큼은 만들어내고 싶었다."

"내 생각들은 대부분 최인경의 입을 통해 나갔다"

 시청률은 4.9%, 울림은 그 이상 : 어셈블리가 남긴 말

ⓒ 고정미

- 여기까지 들어보면 최인경은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것 같다.
"<어셈블리>는 하루 종일 종편을 보고 신문을 챙겨보는 분들을 위해 쓴 것이 아니다. 그런 분들에겐 오글거릴 수 있겠다고 작심하고 시작했다. 가급적 젊은 분들이 봐줬으면 했다. 분명 지금의 젊은 세대는 현실에 굉장히 치이고 있다.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과정에서 정치니 공동체니 하는 과거의 거대 담론을 외면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 분들의 눈높이에 맞는,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인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김규환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멘토가 될 수 있는 최인경을 넣었고. 내 경험이 투사되어 있는 인물이라고 한다면 최인경일 거다. 내 생각들은 대부분 최인경의 입을 통해 나갔다. '아무리 정치를 혐오하고 부정해도 정치는 언제나 네 인생 전부를 지배하고 있어'라는 말, 정말 맞는 이야기다.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규칙을 만드는 게 정치가 아닌가. 그 규칙을 짜는 데 누가 헤게모니를 잡느냐의 문제는 있지만."

- 드라마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진상필의 감동적인 연설로 문제가 해결되는 등 감정적인 과잉이 많다는 지적도 있었다.
"동의한다. 드라마 안에서도 '감성 정치다'라며 진상필을 비판하는 캐릭터가 있었고, 시청자도 그렇게 느낄 만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진상필의 입장에선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장르적인 구조도 있지 않나 싶다.

그리고 감정 과잉에 훈장질이라 해도, 대체로 내가 확신하는 것들을 연설화 하려 했다. 이념적이라기보단 원론적인 것들이다. '나는 지역이기주의가 아닌 국민을 위한 진짜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 '우리 정치공학 말고 진짜 정치하자'는 말, 이상적이지만 이게 원론적인 것 아닌가. 그런 부분은 작가의 이념과 무관하게 한 번쯤 모두 공유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마지막 회에 나왔던 '국민이 국민의 의무를 다했을 땐 국민이 권리고 국가가 의무다'라는 말도 평소 갖고 있는 지론이다. 헌법10조인 국가의 의무와 국민의 행복추구권에 관한 이야기인데, 기계적으로만 보면 포퓰리즘이 될 수 있어서 '국민이 국민의 의무를 다했을 때'라는 단서를 붙인 거다. 이 말에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 인터뷰 ②번으로 이어집니다.)

[인터뷰②] "1등이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선생님 아니라 꼴찌"
[인터뷰③] "정재영, 매번 행간 살펴 애드리브 만들어내더라"
[전체영상] <어셈블리> 정현민 작가를 만나다 (35분)
[카드뉴스] 명품 드라마 <어셈블리>가 남긴 명언들

 KBS 2TV 수목드라마 <어셈블리>의 정현민 작가가 24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어셈블리>는 하루 종일 종편을 보고 신문을 챙겨보는 분들을 위해 쓴 것이 아니다. 그런 분들에겐 오글거릴 수 있겠다고 작심하고 시작했다. 가급적 젊은 분들이 봐줬으면 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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