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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 눈물 짜게 만드는, '엑시트' 조정석의 암벽 등반

[리뷰] 올라가야만 살 수 있는 청년들의 분투기, 영화 <엑시트>

19.08.01 17:53최종업데이트19.08.0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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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엑시트>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취업난이 해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한 기쁨도 잠시, 이들 앞에는 더욱 더 높은 취업의 벽이 놓여 있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그저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그 한 발을 내딛기 위해 한쪽으로는 성적을 위해 도서관에 앉아 애쓰고 한쪽에서는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사회적으로 젊은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청년들에게 취업의 문을 뚫기란 가파른 암벽을 오르는 일과도 같다. 수없이 암벽에서 떨어지고 또 다시 그곳을 오르기 위해 애쓴다.

어쩌면 취업은 그 암벽에서 수없이 떨어진 이후에나 성취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처음에는 부모님으로부터의 지원이나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축적해 둔 비상금으로 다시 올라가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몇 번의 실패를 한다면, 그것조차 여의치 않게 된다. 그 상황에서는 그저 까마득한 암벽 앞에서 성공을 위해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다. 암벽 아래에는 앞이 안 보이는 안개뿐이다.

취업 준비생을 주인공으로 하는 재난 영화 <엑시트>
 

영화 <엑시트>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엑시트>는 취업 준비생 용남(조정석)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졸업 후 5년 동안 계속 취업 준비생인 그를 향한 주변의 시선은 달갑지 않다. 누나는 "왜 쓸데없이 산악 동아리같은 걸 했냐"고 구박하고 동네 어린이들에겐 이상한 아저씨로 보인다. 가족들에게도 찬밥신세다. 그렇게 소외된 그가 받는 소식은 면접 불합격 문자뿐이다.

어머니의 칠순잔치에 간 용남은 그곳에서 일하는 동아리 후배 의주(임윤아)를 만난다. 영화 초반 주변 가족들은 용남에게 괜찮다고 이야기하며 다독인다. 어쩌면 그에게 '괜찮다'거나 '잘될 거'라는 말은 아무 위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수없이 벼랑에서 떨어진 그는 주변에서 이야기하는 긍정적인 말들과 조언들에 힘을 얻기 어렵다. 그래서 용남은 애써 그 말을 무시하면서 자신이 알아서 할 거라는 말을 덧붙인다.

하지만 주변은 여전히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 측은한 시선은 취업 준비생 용남을 더욱 위축시키고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잊게 만든다. 자신의 아랫 세대에게 무시당하고, 자신의 윗 세대인 부모에게도 무시당하는 그는 영화 초반 꽤 한심해 보이기까지 한다.

컨벤션 홀 부점장으로 일하고 있는 의주도 상황은 좋지만은 않다. 취업을 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지만, 업무는 만만치 않고 직장 내 남자 점장은 지위를 이용해 사적인 관계를 강요한다. 취업이 어려운 시기에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찾는 일은 요원하다. 그저 그 상황을 모면하고 자신의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려 애쓴다.

용남과 의주, 두 사람이 본인의 자리에서 괴로워하고 있을 그때, 칠순 잔치가 벌어지는 건물 주변에서 유독가스 테러가 발생한다.

유독 물질을 피해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설정
 

영화 <엑시트>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내내 땅바닥 위로 안개 같은 가스가 깔린다. 몇 분 만에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유독가스는 점점 공기를 타고 높은 곳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그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건, 용남과 의주다. 시작은 용남이 하지만 그 후 모든 세대를 신경 쓰며 최선을 다해 그들의 삶을 구하는 건 두 사람 모두다.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그 암벽을 오른다. 용남과 의주는 모두 암벽 등반 동아리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가지 장비를 이용해 건물 벽을 오르기 시작한다. 용남이 건물의 벽에서 더 오르기 위해 자신의 몸에 연결된 로프를 끊어버리고 혼잣말을 하는 순간이 있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발 이번 한 번만 도와주세요. 제발. 한 번만."

현재 절박하게 암벽을 올라야 하는 취업 준비생들처럼 용남은 그렇게 기도하며 위로 손을 뻗는다. 그 과정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긴장감은 더욱 배가 된다.

영화는 다양한 상황을 변주시키며, 용남과 의주가 건물이나 장애물에 오르는 모습을 꼼꼼히 보여준다. 그 모습이 어떤 경우에는 긴장감을 크게 불어넣고, 어떤 상황에서는 그들의 악다구니에 뭉클해지기도 한다. 그들은 계속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올라선다. 그건 그들의 적극적인 의지라기보다는 유독 물질이 점점 위로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 어려운 과정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을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능력을 기꺼이 보여주면서 주변을 챙기기까지 한다.

주인공 용남과 의주와 겹쳐지는 현실 청년들의 모습
 

영화 <엑시트>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어쩌면 용남과 의주로 대표되는 영화 속 청년들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일지 모른다. 이미 사회적인 분위기는 어렵다. 청년들은 취업을 위해 애쓰지만 한 번 바닥으로 떨어지면 다시 올라갈 희망을 갖기 어렵다. 일부는 살아남지만 대다수는 그저 주저앉고 만다. 그래서 청년들은 죽을 힘을 다해 그 어려운 암벽을 오른다. 친구나 후배들의 손을 잡고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앞으로 뛰기 시작한다.

결국 주변에서 해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위로는 그들을 응원하는 것이다. 그들이 달려갈 때, 그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하고 지켜봐 준다. 그리고 작은 도움이 필요하면 기꺼이 그들에게 손을 내민다. 주변의 손길이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다.

영화 <엑시트>는 재난 영화 장르를 한국적으로 변주한다. 이전에 보지 못한 안개와 같이 보이는 유독 물질을 활용해 천천히 주인공들을 압박해 나가고, 점점 다가오는 안개를 피해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할 이유를 만들어낸다. 일종의 방 탈출 게임 같아 보이는 영화는 아주 영리하게 극적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특히 곳곳에 한국식 유머를 섞어 넣어 영화가 너무 심각해지지 않게 만들고 독극 물질 안개의 이동이나 폭발을 이용해 상황을 변주시키며 영화 속 위기를 고조한다.

영화의 구성이나 전개가 다소 투박해 보이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여름휴가 시즌에 가족들과 볼만한 영화로 추천할 만하다. 주연인 조정석과 윤아는 상황에 딱 맞는 연기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이 영화 중간중간 나오는 유머도 꽤 타율이 높은 편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캐릭터가 없다. 악당이 등장하지 않지만, 상황적으로 긴장감을 유지시키고 주인공 남녀에게 동일한 역할을 부여한다. 재난을 탈출하는 능력이나 활약에 있어 두 주인공의 비중엔 거의 차이가 없다. 또한 결말에서도 울음을 유발하는 장면 없이 관객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관객들을 불편하게 할 구석이 거의 없는 여름용 재난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엑시트 재난영화 코미디 조정석 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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