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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탓에 여자와 일 못하겠다는 남자들... 회사가 두렵다

[오늘날의 영화읽기] 영화 <더 포스트>를 통해 여성들의 연대를 생각하다

18.03.20 17:05최종업데이트18.03.2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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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진짜 기계과 갈 거야? 왜? 거기를 어떻게 가려고 그래? 너를 무시해서가 아니고, 네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 정말 잘 생각해봐. 진심이야."

같이 동호회 활동을 하던 선배가 갑자기 불러 세워서 조언을 던진다. 그때가 1991년 가을이라는 걸 생각하면 크게 이상하지도 않은 조언이지만, 당시 나의 전공 선택이 '뺄셈'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다른 선택이 없었다. 게다가, 여자라서 뭔가를 못한다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괜히 오기까지 더해져서 전공을 정했다. 그 후로 25년, 나는 여전히 '기계 전공자'들을 포함한 '공돌이들'의 세상에 속해 있으나, 이제서야 선배의 충고에 진지하게 동의하고 있다. 아직도 나는 이곳에서 사는 게 두렵다.

영화 <더 포스트>.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인인 캐서린 그레이엄으로 분한 메릴 스트립ⓒ CGV 아트하우스


<더 포스트>(2017)의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 분)은 매력적이고 우아한 데다가, 미국의 대통령 집안과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 온 '좋은 가문'의 주인이다. 2018년 나의 기준으로는 전혀 모자랄 것이 없는 그녀지만, 1971년의 캐서린은 그녀의 집밖에서 부딪히는 모든 것에 주눅이 들어 있다. 영화는 노골적으로 그녀의 영역과 남자들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그녀를 짓누르는 차별과 무시를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자유와 평등'의 나라 미합중국의 고작 40년 전 모습일 뿐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불과 반년 전, #MeToo가 처음 등장했던 곳이 할리우드라는 것이 의아했다. 그것도 <설국열차>(2013)의 해외 배급을 총괄하게 되면서 우리에게도 이름을 알렸던 '하비 와인스타인'이라는 거물을 향한 폭로라는 것이 더욱더 놀라웠다. 그리고, 그 캠페인이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는 할리우드라는 공간과 공명하며 증폭된 폭발력에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2018년의 대한민국에서 나비의 날개짓이 불러온 현실의 태풍을 확인하고 있다.

<더 포스트>에서 캐서린이 '펜타곤 페이퍼'를 기사화하기로 결심한 그날 밤의 떨리는 '목소리'이후로, 여성들이 차별에 대해 연대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까지 자그마치 47년이나 걸린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이 놀라울 지경인데, 어떤 면에서 세상은 참으로 느리게 전진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움직이는 줄도 잊어버릴 정도의 속도로 말이다. 

스필버그는 <더 포스트>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메릴 스트립을 계속 곤혹스러운 환경에 밀어넣는다. 주식 상장을 위해 주식 시장에 도착했을 때, 그녀를 응원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여성들의 연대는 감동적이었으나 그녀에게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곧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간 그 안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신사들'의 태도에 주눅이 들어 가벼운 미소만 띠고 있는 캐서린의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이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들ⓒ CGV 아트하우스


영화의 말미에도 마찬가지이다. '펜타곤 페이퍼'를 공개하게 되면서 곤경에 처한 닉슨 정부에 대항하기 위해 그녀는 <뉴욕 타임스>와 연대를 도모하고, 결국 판결에서 승리한다. 하지만, 스필버그의 카메라는 승리한 후 모든 미디어가 타임스의 남성 주인인 로젠탈을 향해 몰려드는 환호 너머, 여성들이 만들어 놓은 샛길로 조용히 빠져나가는 캐서린을 비춘다. 승리하였으나 쓸쓸한 여성의 모습, 결국 스필버그가 보여주는 70년대의 미국은 '불평등'의 세계였다.

어쩌면, 여성들은 서로 연대하고 있었으나 힘이 되어줄 수 없었고, 안타까움이 체념이 되어 포기하는 게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를 5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서야, 드디어 '힘'이 되어줄 자신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결국,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는 이제서야 조금씩 승리하는 모양이다. '여성'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모두를 위한 승리를 향해서 말이다.

부끄러운 고백을 해야 겠다. 지난 금요일이었다. 오랫동안 뜯어보지 않아 비닐에 쌓여있던 우편물을 열었더니, 후원하는 기관에서 보내온 '미투 캠페인' 동참 포스터가 보였다. 포스터는 연보라색에 큰 하얀색 손글씨로 '#WithYou"라고 쓰여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사무실 밖의 벽에, 그 벽을 3년째 지키고 있는 세월호 포스터 옆으로, 줄을 잘 맞춰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여기까지는 별고민이 없었다. 하지만, 그 뒤로 요즘의 '미투 캠페인'이 불러온 불편한 파장이 나를 계속 괴롭혔다. 여자들과 일할 수 있겠냐, 같이 회식을 하지 않는 게 낫겠다, 혹은, 사무실을 여자들끼리 쓰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인권재단 사람에서 보내온 #위드유 포스터ⓒ 인권재단 사람


남자들이 90퍼센트를 넘는 조직에서 눈치를 보지 않고 살고 있다고 믿었지만, 아니었다. 나는 내 행동을 스스로 검열하고 있었고, 5분도 지나지 않아 복도에 붙여놓았던 포스터를 방 안의 벽 빈 곳으로 옮겨 붙이고 있었다. 나는 그저 평등과 인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데, 무엇이 나를 두렵게 했을까? 답을 알고 있지만, 말을 꺼내기엔 부끄러울 뿐이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새로운 단어를 하나 알게 되었다. 여우 주연상을 수상한 프랜시스 맥도맨드는 우리에게 '특혜가 아닌 모두의 평등'을 얘기하며, '포용 특약 (Inclusion Rider)'이라는 용어를 던져놓고 단상을 내려갔다. 무슨 뜻인지 몰라, 한참 동안 인터넷에 물어봐야 했음은 물론이다.

<더 포스트>의 1971년이 2018년이 될 때까지, 세상은 참으로 더디게 변해왔다. 늦었지만, 여성의 권리를 얘기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평등'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동안 우리가 자연스럽게 인정했던 세상의 규칙을 바꿔나가는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무척이나 소란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바꿔 나갈 것이다. 이를 위해서, 나 자신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두려움'과 '자기검열'을 먼저 떨어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출발이라고 믿는다. 인간으로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것, 작고 힘없는 목소리들이 '같이' 연대하여 내딛는 한 걸음, 모든 것은 거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용기를 내자. 우선, 부끄러운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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