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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리나 졸리보다 한 수 위... 이런 여성 영웅 반갑다

[리뷰] 영화 <툼레이더>(2018) 섹시하지 않은 여성 액션, 충분하다

18.03.13 17:32최종업데이트18.03.1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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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툼레이더>의 포스터.ⓒ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기대하지 않고 찾아간 음식점 요리가 의외로 괜찮다. 단점도 있다만 어딘가 참신하고 성장가능성도 보여서, 나중에는 정말 근사한 맛집이 될 것 같다. 근데 손님이 별로 없이 가만두면 제대로 감을 잡기 전 영업을 중단해버릴 것 같다. 영화 <툼레이더> 얘기다.

나는 영화 <툼레이더>를 무척이나 재밌게 봤다. 그러나 댓글이나 평점을 보면 반응이 시들한 편이다. 제대로 꽃 피우기도 전에 문 닫을 음식점을 홍보하는 맛집 탐방객의 심정으로 이 영화에 대한 리뷰를 작성해본다. 물론 내가 이 영화 리뷰를 써서 몇 명이 더 본다고 대세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30년 전 인디아나 존스와 툼레이더

영화 <툼레이더>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어린 시절 본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는 비서구권을 비하하는 온갖 장면이 다 나왔다. 원숭이 뇌를 씹어먹고, 눈깔 수프와 벌레구이가 등장하며 이를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야만스레 묘사한다. 똑똑한 백인 남성 고고학자는 보물을 탈취하기 위한 힌트로 세계 각지의 전설과 신화를 제시하고, 여러 비백인들이 악당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오리엔탈리즘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디아나 존스>가 재밌었던 것은, 영화를 보면 마치 내가 미지의 나라를 모험하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막이나 정글의 유적지에서 이국적인 건축물과 악당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활극을 보았을 때의 여운이란 실로 대단했다. 솔직히 액션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볼거리 아닐까. 영화 < 300 >은 페르시아의 왕을 아프리카의 토인 추장처럼 그려놓고, 실제로는 피지배층에게 가혹하기 짝이 없었던 스파르타를 서구 민주주의의 요람마냥 묘사했다. 그러나 진중권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기꺼이 그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인디아나 존스> 같은 영화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나마 2000년대에는 <미이라> 시리즈가 있었다. 앞선 영화 <툼레이더>(2001)는 안젤리나 졸리가 게임 속 라라 크로프트와 매우 흡사하다는 호평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60이 훨씬 넘은 해리슨 포드가 분한 <인디아나 존스4>는 예전의 그 힘이 없었다.

이국적인 모험영화 대신,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 물이 그 자리를 채웠다. 물론 히어로물 영화도 재미있지만 그래도 어린 시절 <인디아나 존스>를 보며 느낀 재미를 다시 느껴보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시점에 <툼레이더>가 리부트 돼 개봉한 것을 무척이나 반갑게 생각하는 이유다. 특히 이 영화가 시대상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점을 매우 높게 평가한다.

여자 주인공 액션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다

영화 <툼레이더>의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남자 배우만큼 화끈한 액션을 구사하기 어려운 여자 배우들이 액션을 보여주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겉만 액션이고 실은 섹스 어필을 하는 것이다. 섹시한 여자 주인공은 실제 싸움에서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가슴이나 늘씬한 다리를 보여주며 남성들을 제압한다. 두번째는 <지 아이 제인>에서 데미 무어가 그랬던 것처럼, 여자 주인공이 짧은 머리를 하고 남자처럼 큰 근육을 키워 마치 남자 같은 액션을 보여주는 것이다.

첫 번째의 경우 액션이라기보다 남성 관객들을 타깃으로 한 성 상품화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두 번째는 건장한 남성이 하는 액션만큼 화끈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액션영화의 기준은 왜 남성이 되어야 할까?

<툼레이더>는 종전과 달리 여성 신체의 강점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남성 액션과는 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종합격투기 팬들의 수준까지 만족시키는 장면이 여럿 등장했다. 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성 상품화 논란이 일어날 만큼 육감적인 몸매를 보여주거나 억지스런 근육을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여성이 남성을 제압할 수 있는 무술인 주짓수나 레슬링의 기술을 사용했고 여성의 신체에 더 최적화된 무기를 활용해 액션을 이끌어낸다.

거친 섬이라는 환경에서 재빠른 판단으로 지형지물을 이용해 건장한 남성을 제압하는 장면은 실로 흥미진진하다. 아마 앞으로 여자 주인공의 액션물은 이 같은 형태를 띠지 않을까 싶다.

비백인계 남성의 비중 증대 및 역할 다변화

영화 <툼레이더>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이 영화에서 동양계 배우인 오언조가 분한 루 렌은 사실상 남자 주인공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동양인 남성이란 신비롭고 과묵한 무술가 또는 잔혹한 악당으로 주로 등장해 천편일률적으로 묘사된다. 이에 반해 오언조의 루 렌은 전통적으로 백인 남성이 맡던 역할을 담당한다. 첫 등장은 물론이고 영화 내내 건장하게 잘 그을린 그의 몸은 또렷한 이목구비와 함께 매우 섹시하게 묘사되며, 명석함이나 익살스러움 역시도 조연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것도 시대상의 변화가 아닐까 싶다.

루 렌은 주인공에 대한 애정 때문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돕는다는 점에서 영화 < 007 > 시리즈의 본드걸과 비슷한 포지션으로 보인다. 제임스 본드와 여러 명의 본드걸처럼, 전 세계의 무덤을 탐험하는 라라 크로프트가 여러 명의 섹시한 남성들을 만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후속작을 기대하며

이야기 자체도 상당히 짜임새있다. 얼핏 미스터리로 보이는 고대 여왕의 신화의 현실적인 실체를 제공하는 것, 각 장면의 퀴즈에서 관객들에게 그 퀴즈를 풀 시간을 충분히 부여하는 것도 매우 즐거웠다.

부유한 크로프트 집안의 영리한 여성 고고학자. 어떤 점에서 배트맨의 브루스 웨인도, 인디아나 존스도, 소화해낼 수 있는 실로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당초 그 시작은 게임이었지만 라라 크로프트라는 이 이름은 당당하고 지적인 여성을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으며 이미 남녀노소를 가지지 않고 수많은 팬을 확보한 상태다.

완전 수작이었다 보기는 어려웠고 진부한 구석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참신한 시도가 많았고 이런 영화가 잘 안 나오는 지금, 좀 더 이 영화 시리즈를 관람해 볼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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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투자자, 소설가, 아마추어 기자. "삶은 지식과 경험의 보고(寶庫)이자 향연이다. 그러므로 나 풍류판관 페트로니우스가 다음처럼 말하노라." - 사티리콘 中 blog.naver.com/admljy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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