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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괴한 남성과 외톨이 여성의 사랑, 거기서 얻은 깨달음

[오늘날의 영화읽기]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전하는 위로

18.03.01 11:39최종업데이트18.03.0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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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속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들키면 안 돼.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면 나를 떠날 거야.' 사랑을 지키려면 어떻게든 나의 본모습을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소 말할 때의 목소리부터 매일매일 같은 옷을 입고 출근하는 것, 먹기 싫어하는 음식이나 좋아하는 것까지 모두 숨겨야 한다고 말이다. 텔레비전이나 영화 속 배우들처럼 멋진 모습만 보여줘야 하고 그가 싫어하는 것들은 하지 않아야 하는 줄만 알았다. 나는 그들이 아니고 그들과 같아질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매번 억지를 부렸다.

이렇게 '숨겨야 하는 것'이 많은 사랑은 항상 위태로웠고, 솔직하게 나를 드러낼 수 없으니 답답했다. 더 이상은 숨길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너덜너덜해진 가면을 벗어낼 용기가 없는 나는, 결국 가면을 움켜쥔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들키고 나서야 서둘러 도망치곤 했다. 나 자신조차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없던 사랑의 모양, 해피엔딩일 수는 없었다.

"그는 내가 남들과 다르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아. 그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속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너무나 다른 둘이 만난다. 여자는 말을 하지 못하는 장애를 가졌고, 남자는 온몸이 비늘로 뒤덮인 채 아가미로 숨을 쉰다. 이름에도 '고아원(에스포지토)'이라는 뜻이 포함된 그녀를 위로하는 것은, 거장 기예모르 델 토로가 정성을 다해 꾸민 것 같은 '영화관 위 아늑한 집' 그녀의 공간뿐이다. 태어나면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그녀에게 옆집 화가 자일스와 항상 조금 늦는 그녀를 위해 타임카드를 들고 기다려주는 동료 젤다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이야기는 현실에서 크게 비껴나 있다. 그러나 진짜 기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나에게 이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은 현실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대책 없이 행복한 왕자와 공주의 사랑 이야기였다. 어른들을 위한 '개구리 왕자'이자 먼 나라에서 포획된 '슈렉'의 미국 수난기다. 어딘가 불편한 감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솔직하게 말해볼까? 왕자가 되기에 아가미 인간은 너무나 기괴했고 공주가 되기에 그녀는 장애가 있는 외톨이인 데다 금발의 8등신 미녀도 아니다. 둘의 사랑은 실패만 해온 내 사랑의 기준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설정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진심으로 사랑한다. 인간들에게 버림받은 가장 외로운 그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봄'으로써 사랑하게 되고 사랑은 '단어의 뜻 그대로' 그들을 구원한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영화는 제목부터 무척이나 흥미롭다. 원제인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는 명제 자체부터 오류처럼 보이니 말이다. 물은 액체이고, 물의 가장 중요한 성질은 특별한 '모양'이 없다는 것이다. 물은 담기는 그릇에 따라 자유롭게 그 형태를 달리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제목에는 '사랑의 모양'이라는 부제까지 붙어 있는 것을 보니 이는 분명 제작진들이 이를 강조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사랑은 어떤 모양일까? 아니, 사랑에 정해진 '모양'이 있을까? 나의 실패한 사랑, 망가져버린 관계들을 통해 내가 배워야 했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이 영화의 그들은 답을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아니 오직 그들만이 그 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의 모습에 다가설 수 있는 용기를 냈던, 꾸미거나 숨기지 않고도 진심을 나눌 수 있었던 그들 말이다.

영화 내내 기예모르 델 토로에게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온기'를 느꼈다. 하야오의 세상에서 느꼈던 것처럼 온전히 외롭다고 느끼는 어른들에게, 감독은 끝없이 "괜찮아, 지금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라고 위로를 전하는 것만 같았다. 성의 없이 마음대로 만들어 놓은 '다른 인간들'의 공간과는 색깔과 공기부터 달랐던 그녀의 집만으로도 환상적이었는데 '그녀의 세상'을 가득 채워 넣은 알렉산더 데스플라의 정성스러운 음악까지 더해지니, 감독의 편애가 닿아있는 대상이 누구인지는 명확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고아여도 '나는 너를 공주로 정했다'는 외침까지 들렸다면 과장일까?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속 한 장면.ⓒ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어른들을 위한 거장의 동화는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을 '행복'으로 이끈 것은 그녀, 엘라이자의 용기 덕분이라고 믿는다. 처음부터 그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말이었다. 엘라이자를 연기한 샐리 호킨스의 연기는 엄청나다. 그녀는 왕자를 기다리며 곱게 꽃단장을 한 채 잠만 자고 있지도, 멍청하게 계모의 술수에 넘어가 독사과를 먹고 죽어가지도 않은 채, 그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겁도 없이.

새벽의 영화관을 퉁퉁 부은 눈으로 나서면서, 그들에게 큰 박수를 보냈다. 사랑이 그들을 구원한 것도, 최근의 어떤 여전사보다 멋졌던 엘라이자의 용기에도 크나큰 응원을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아직도 내 손에 너덜너덜해진 채 매달려 있는 가면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좀 나눠달라고 빌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엘라이자, 제발!

영화가 끝이 나고 한참 동안 그들의 사랑을 수 없이 복기한 지금에서야, 제목의 의도를 짐작할 것도 같다. '물'에 정해진 모양이 없듯 사랑에도 정해진 모양은 없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모두의 사랑은 각각의 모양을 갖게 될 것이고, 그 모든 사랑을 정해진 '틀'에 가두려는 것이야말로 '사랑'에서 가장 멀리 있다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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