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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진실 알리려다... 유죄 받은 어느 영화인의 약속

[비하인드] 이용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다이빙벨>,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

17.07.26 16:36최종업데이트17.07.2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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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록은 영화인들에게 의무와도 같은 것이었다. 영화 <다이빙벨>의 한 장면ⓒ 시네마달


2014년 5월 1일 저녁 전주 한옥마을의 한 주점.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식이 끝난 직후 영화인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세월호 참사 여파로 개막 리셉션이 취소되면서 당시 전주영화제 측이 영화인들을 위해 뒤풀이 장소로 준비해 놓은 곳이었다.

영화계 인사들로 가득했던 자리에서 세월호 참사는 당연히 주요 화제 중 하나였다. 보름 전 발생한 참사는 영화인들에게도 상당한 충격이었다. 삼삼오오 모인 이들은 무능한 정권에 분노했다. 참사 현장인 팽목항에 다수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가서 현장을 지키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일부 영화감독들과 제작자는 참사를 고발하고 박근혜 정권의 무능함을 알리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야 한다고 말했고 영화인들은 공감했다.

이들 중에는 다음날 팽목항으로 가서 영화 제작을 알아보려 한다며 구체적 이야기를 하는 제작자도 있었다. 엣나인필름 정상진 대표였다. 5월 2일 아침 일찍 팽목항으로 향하기 위해 전주의 숙소를 나서던 그는 이용관 당시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마주쳤다. 이 위원장이 "아침 일찍 어디 가냐?고 묻자 정 대표는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인데, 영화인들이 할 수 있는 게 세월호를 기록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어 팽목항으로 가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 제작 의지와 함께 국내 영화제를 통해 공개됐으면 하는 의사를 내비쳤다.

이야기를 들은 이용관 위원장은 화답했다. "꼭 만들어라. 완성되면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하겠다"고 약속한다. 세월호 참사와 이후 수습과정에서 나타난 박근혜 정권의 무능한 행태에 대해 이 위원장 역시 분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영화로 고발하겠다는 영화인들의 의지에 영화제를 통한 상영은 그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었다. <다이빙벨>의 출발이었다.

세월호 다큐에 의기투합한 정지영·이용관·정상진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이용관 지지' 스티커를 붙이고 입장하고 있는 정지영 감독(왼쪽)ⓒ 부산국제영화제


정상진 대표는 이날 팽목항에서 이상호 기자를 만나 영화 제작을 협의한다. 부산영화제 상영을 목표로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천안함 프로젝트>와 <남영동 1985> 등 문제작들을 배급한 그는 당시 이 사안에 대해 즉각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제작자였다.

드러나지 않게 움직인 사람도 있었다. 정지영 감독이었다. 정 감독은 정 대표에게 팽목항에 가서 이상호 기자를 만나라고 연결시켰다. 팽목항으로 가는 여정에는 정 감독의 아들인 아우라픽쳐스 정상민 대표가 동행했다. 정 감독은 <다이빙벨>의 총괄 기획과 제작, 그리고 편집까지 담당하는 등 실질적인 제작자 역할을 했다.  

영화제 출품작 마감에 맞춰 편집본이 제출됐다. 하지만 완성도 문제가 지적되면서 상영이 어렵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일반적으로 2년 이상의 제작기간이 소요되는 다큐멘터리와 다르게 <다이빙벨>은 촬영에서 완성까지 5개월 밖에 안 걸릴 정도로 상당히 급하게 만들어졌다. 어떻게든 부산영화제를 통해 해외에 참사의 진실을 알리겠다는 의지가 앞섰기 때문이었다.

이용관 집행위원장도 편집본을 확인하고는 우려를 전했다. "이 상태로는 힘들겠다." 그는 더 다듬어서 상영을 하자며 보완을 위한 몇 가지 조언을 해 준다. 이 위원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어떻게 만들어졌나 궁금해서 미리 봤던 건데,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여 지적을 해 준 것 이었다"며 "이후에 다시 손을 봐서 많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부산영화제에서 <다이빙벨>을 상영한 것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이처럼 제작단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제작을 독려하고 영화제 상영을 위한 조언도 아낌없이 했을 만큼 <다이빙벨>에 의기투합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실제 제작자가 누구냐?

2016년 부산영화제 개막 리셉션에서 최승호 감독과 함께 김동호 이사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다이빙벨> 제작자 엣나인필름 정상진 대표(오른쪽)ⓒ 부산영화제


2014년 부산영화제 상영작에 <다이빙벨>이 포함된 것이 알려지면서 정권은 발칵 뒤집혔다. 당시 문화부 관계자가 기자에게 물어왔다. "<다이빙벨>이 실제 제작자가 누구냐?" 공식적인 자료에는 '아시아프레스'와 '씨네포트'라고 나와 있었으나 문체부 관계자는 "아닌 것 같다. 도대체 누가 만든 거냐"며 "위쪽에서 엄청 시끄럽게 이야기해서 힘들다"고 말했다. 당시 문체부 관계자는 "혹시 정상진 대표가 나선 것 아니냐"면서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개봉 이후 정상진 대표가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시네마달이 배급을 맡았지만 엣나인필름의 정 대표가 제작자로서 지원 역할을 맡아 전국 각지에서 진행된 관객과의 만남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시네마달과 엣나인필름은 이후 정부기관의 통신정보 조회와 세무조사 등을 받게 된다. 논란이 커지고 있던 상황에서 당사자들은 이 문제가 적극 알려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당시 통신조회가 논란이었는데, 일부 관계자는 "내역을 확인해보니 한두 건도 아니고 너무 많아서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서울 정도"라고 말했다.  

<다이빙벨>은 이용관 위원장에게 엄청난 시련을 안겼다. 2014년 부산영화제에서 상영한다는 이 위원장에게 가해진 압박은 예전 영화제를 치르면서 가해진 압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는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남긴 비망록을 통해 공개된 바 있다. 청와대에서 정권차원의 대응방안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중시했던 이 위원장은 그런 압박에 개의치 않겠다는 의지가 굳건했다. 더욱이 자신이 제작을 고려하는 단계에서 상영을 약속했고, 작품 내용에 조언까지 하는 등 애정을 쏟은 작품이었다. 정지영 감독이 나설 만큼 당시 상황에서는 매우 의미가 큰 작품이기도 했다. 설령 당장 영화제가 문을 닫는다고 할지라도 상영을 양보하거나 물러설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세월호 진실 알리려 한 결과는 정치적 기소

지난 21일 2심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은 뒤 대법원에 상고 의사를 밝히고 있는 이용관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성하훈


영화제가 끝나고도 논란과 압박은 잦아들지 않았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성급하게 영화를 출품해 이용관 위원장을 어렵게 만들었다"며 제작진을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정치적 압박이 거세지던 상황에서 이 위원장이 영화 제작을 독려했다는 사실을 공개할 수는 없었다. 상영만으로도 엄청난 압박이 가해지던 상황에서 자칫 구체적 사실이 알려졌다가는 이 위원장에 대한 정권 차원의 보복이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일부 영화인들은 수습책으로 담당 프로그래머를 1~2년 정도 내보냈다가 조용해지면 다시 불러오자는 방안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위원장은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영화 제작 및 상영 과정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한 것에 대한 책임감이었다. 이를 프로그래머에게 떠넘길 수는 없었다.

결과는 감사원의 표적감사를 통한 부산시의 고발과 이어지는 검찰 기소였다, 집행위원장에서도 강제로 쫓겨났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조용히 물러나면 고발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용관 위원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했다. 그러자 서 시장은 "그렇다면 법대로 하자"고 했다.

검찰은 개인 비리가 전혀 나오지 않자 사소한 회계 처리를 문제 삼았다. 먼지털이식 수사에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불똥이 튀었다. 그리고 지난한 재판 끝에 1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지난 21일 2심에서는 벌금형으로 낮아졌다. 판결 내용 중에는 공통적으로 개인비리가 없다는 부분이 명시돼 있다.

영화계는 정치적 기소에 대해 법원이 이를 감안하지 않은 판결을 내렸다며 유감을 나타냈다. 이 위원장은 2심 선고 직후 대법원에 상고를 결정했다. 세월호가 인양되고 기간제 교사들은 순직자로 인정되고 있지만, <다이빙벨>로 세월호의 진실을 알리려던 노력은 유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영한 전 수석과 김혜선 문체부 과장

김영한 비망록 중 다이빙벨과 부산영화제, 이용관 집행위원장이 나오는 부분ⓒ 언론노조


이 전 위원장은 벌금형이 나온 것에 대해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고마운 분들이 있다며 두 사람을 언급했다.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한 김영한 전 민정수석과 김혜선 전 문체부 과장이었다.

그는 "김영한 수석이 수첩을 남겨 놓지 않았으면 내막이 묻혔을 것인데, 덕분에 정치적 탄압의 실체가 드러났다"며 개인적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김혜선 과장에 대해서는 "논란이 커지면서 당시 하루에 서울과 세종시에서 두 번이나 만난 적이 있고, 둘이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정치적 탄압에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나름 풀어보기 위해 맘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인 일로 휴직한다고 했는데, 아프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며, "끝내 일어나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부고도 뒤늦게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혜선 과장은 당시 영상콘텐츠산업과장으로 영화제 업무를 담당했다. 문체부의 유능한 공무원으로 꼽혔으나 지병으로 인한 휴직 중 2015년 9월 타계했다. 김 과장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 상영 후 2건의 경위서를 제출해야만 했다. 문책성 사유서였다. 이후 서면경고 징계를 받은 후 지병이 악화됐다. 문체부는 서면주의를 내리려 했지만 청와대가 한 단계 높은 징계를 지시했음이 특검 수사에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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