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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에서 이기고도 개표에서 질 수 있다고?

[미디어 톺아보기③] 다큐영화가 대신 나선 국내 탐사저널리즘

17.04.22 12:16최종업데이트17.04.22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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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가 아니라 개표가 결정한다."
"당신의 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두 표어에서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심상치 않다.'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부르는 선거, 그 선거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투표에 문제가 있음을 전해주려는 의도가 강하게 묻어난다. 이것을 역설적으로 풀이하면 '투표에서 이기고도 개표에서 질 수 있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20일 개봉 전부터 일찌감치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다큐멘터리 영화 <더 플랜>은 지난 제18대 대선의 개표 의혹을 의제로 설정해 시종 의문을 던진다. 언론에서 못다 전한 진실을 대신 전해주려는 백방의 노력이 가상하다.

<더 플랜>, 제18대 대선 개표논란 4년간 파헤쳐

영화 <더 플랜>ⓒ 엣나인필름


더구나 이 다큐영화 개봉 시점이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인물이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탄핵과 함께 '영어의 몸'이 된 시점인데다, 촛불민심으로 성사된 조기 대선기간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끈다. 또한 이 다큐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제작자로 참여했다는 점에서 시선을 모으고 있다.

그는 최진성 감독과 함께 지난 18대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개표 의혹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문제점을 파헤치기 위해 무려 4년여 동안의 시간을 자료수집과 이를 분석하는데 투자했다.

<더 플랜>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난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개표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전국 251개 지역 선관위의 1만4000여 장의 개표 상황표를 수집해 분석하여 얻어낸 내용(결론)을 주된 의제로 다뤘다.

<더 플랜>이 던진 의제의 핵심은 투표지 분류기에서 3.6%(112만여 표)나 되는 미분류표(미분류표란 무효표 뿐만 아니라 투표기 분류기가 정상표로 분류하지 못한 표)가 쏟아져 나왔다는 점과 미분류표 112만여 표 가운데 무효표는 불과 10%에 불과했다는 의문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다큐영화가 본격적으로 제작에 나서자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발생하고, 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이 연거푸 발생하면서 탐사저널리즘 효과를 배가시킬지에 관심이 쏠린다.

이명박근혜, 공영방송 탐사채널 잇단 폐지...대신 탐사다큐 '활발'

탐사저널리즘(investigative journalism: 언론인이 범죄, 정치 부패, 기업 비리 등 특정 주제를 직접 취재하여 발굴해내는 형태의 저널리즘)이라고 하면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떠올리기 쉽다. 1972년 6월, 미국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던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비밀 공작반이 백악관의 지시로 야당 사무실을 도청하려 한 '음모'가 끈질긴 두 기자(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의 취재와 언론사(워싱턴포스트)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다.

이로 인해 2년 뒤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임기 중에 물러나는 초유의 결과를 가져 온 '워터게이트 사건'은 탐사저널리즘의 대명사처럼 불려왔다. 이러한 탐사저널리즘은 수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리는데 많은 희생과 노력이 수반된다는 점에서 취재가 만만치 않다.

이 때문에 탐사보도의 결과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도 탐사보도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증가해 왔으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져 오는 과정에서 권력의 언론장악, 특히 방송장악 정책으로 탐사보도의 기능이 크게 위축됐다.

무엇보다 양대 공영방송인 KBS와 MBC의 권력 장악은 그동안 거대 권력과 자본에 맞서 우리사회에 큰 경종을 울려주었던 탐사프로그램을 무력화시켰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MBC>의 'PD수첩'과 '시사매거진 2580', <KBS>의 '추적 60분', '시사기획 쌈', '미디어 포커스' 등의 프로그램 폐지 또는 무력화(타 프로그램으로의 전환 등) 정책은 국내 탐사저널리즘의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은 대표적 사례다.

최근에 탐사저널리즘이 다큐멘터리와 합성한 다큐영화 형태로 자주 세간의 이목을 끄는 이유는 이러한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 의식 있는 언론인들이 직접 제작에 참여해 긴 시간과 노력, 비용을 들여 주류언론들이 수행하지 못하는 의제설정권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영화 <자백> 포스터ⓒ 시네마달


최승호 감독 <자백>,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숨겨진 진실 규명

무엇보다 탐사저널리즘 성격의 다큐영화는 오랜 시간 취재를 해야 하는데다 정신적·육체적 인내와 많은 비용이 수반된다. 기록을 중심으로 현실을 새로운 각도에서 추적하고 또 그것에 어울리는 새로운 의제를 설정해 사회에 던지는 데 그치지 않고 대안의 메시지도 함께 담아내야하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 10월 개봉한 <자백>도 그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뉴스타파>의 최승호 PD가 감독하고 출연하여 직접 사건을 파헤친, 탐사저널리즘 성격이 강한 다큐영화다.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2012년 탈북한 화교 출신)가 국정원에 의해 간첩으로 내몰린 사건을 주제로 다뤘다.

2015년 10월 대법원에서 유우성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그 유명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실체와 숨겨진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최 PD는 중국과 일본, 태국 등 현지를 오갔다. 무려 40개월간의 추적 끝에 스파이 조작 사건의 실체를 고발한 이 다큐영화는 '믿을 수 없겠지만, 이것은 모두 대한민국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실화'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보도할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원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필요한, 정말 중요한 뉴스를 보도하는 게 공영방송의 역할이다. 지금 공영방송은 언론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상태가 됐다. 공영방송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자백>을 굳이 영화로 만들 필요도 없었다."

최승호 감독이 <자백>에 담은 의제설정 의미에 대해 <피디저널>(2016.7.30)과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국내 주류언론이 다하지 못한 의제설정을 다큐영화가 오히려 주도하며 사회에, 국가에 큰 울림을 준 사례다.

영화 <다이빙벨> 포스터. tbs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시네마달


이상호 감독 <다이빙벨>, 세월호 진실 알리려 보름간 '고군분투'

이러한 사례는 또 있다. 2014년 4월 16일, 476명이 타고 있던 여객선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무참히 침몰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다이빙벨>이다. <자백>, <더 플랜>과 마찬가지로 언론인이 직접 감독한 이 다큐영화는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전 MBC 기자)가 감독한 탐사저널리즘이다.

세월호 구조과정의 문제점을 다룬 이 다큐영화는 이상호 기자와 알파잠수기술공사의 이종인 대표가 세월호가 침몰한 해역 부근에서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48분 이후 보름 동안 벌어졌던 다이빙벨 투입 논란을 중심에 놓고 진실을 파헤친다.

세월호 침몰과 함께 가라앉은 진실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 보름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추적해 기록한 이 다큐영화는 거대한 사건에서 하나의 이슈로 등장했던 다이빙벨을 통해 진실을 감추려는 자들과의 싸움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보여준다.

그러나 <다이빙벨>은 개봉 당시 대형 멀티플렉스극장의 상영 거부 사태로 독립영화관이나 소규모 극장 등에서만 상영됐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 상영을 막지 못한 문화체육관광부 실무자들을 징계하라고 청와대가 나서서 지시했다는 법정 증언도 최근 드러났다.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부장 황병헌) 심리로 열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등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송수근 문체부 제1차관이 이 같은 내용을 증언했다. 그러나 이 다큐영화는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했다.

촛불민심 반하는 비민주적 개표라면 과감한 개선과 개혁을

다시 <더 플랜>으로 되돌아 가보자. 이 다큐영화의 의제설정이 무얼 제시하려는지 깊게 들여다보면 다가올 제19대 조기 대선 이후 국내 선거에서 기존의 개표과정 시스템을 보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란 합리적 의심과 대안에 초점을 모으게 된다.

이 다큐영화가 던지는 의혹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지난 18대 대선 투표에서 분류기는 미분류표 판정에 문제가 있었고 유독 미분류 표에 당선자 표가 더 많았다는 점, 둘째, 개표도 시작 안 했는데 개표 수(또는 개표 결과)가 방송되거나, 개표 중에 방송되는 등 앞뒤가 맞지 않은 발표시점, 셋째, 투표 분류기 해킹 가능성 여부에 관한 해명이 명료하지 않다는 점 등이다.

물론 선관위는 이 다큐영화가 개봉하기 하루 전인 지난 19일 "대통령 선거 진행 중에 이런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선거질서를 어지럽히고 국론을 분열시켜 공명선거 분위기를 저해하는 행위에 대해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온 국민의 열망으로 이룬 촛불대선을 코앞에 두고 있는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

다행히 선관위는 "제18대 대선의 투표지와 개표상황표 모두 원본을 보관하고 있으므로 만약 의혹을 제기한 <더 플랜> 제작팀의 요구가 있다면 조작 여부 검증에 필요한 범위에서 제3의 기관을 통해 공개 검증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덧붙여 이 다큐영화가 던진 의제의 향배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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