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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 가득 브라질 유니폼... 이제야 비밀이 풀렸다

[월드컵 여행객의 카타르2022] 브라질과의 16강전, 뭉클했던 순간들

22.12.07 13:35최종업데이트22.12.0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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졌다. 16강 진출의 환희가 바로 엊그제였는데, 그 기분은 어디로 갔는지 다들 뒷모습만으로도 울고 있음을 알아챈다. 우리의 환희를 쓰고 싶었는데 표현할 언어가 없었고, 지금의 절망을 표현하기에는 갑자기 끝나버린 월드컵의 여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팀은 졌고 나는 목소리를 잃었는데, 축제의 땅에서 월드컵을 즐기느라 체력도 정신력도 바닥인 지금, 나는 여행을 정리하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해야 한다. 이런 일이 한꺼번에 휘몰아치니 경기 다음날 아침의 숙소 공기마저 무겁다. 

2002년의 기억, 월드컵 원정응원을 시작하다
 

▲ 16강전이 열리는 경기장입니다 974개의 컨테이너로 만들어졌다는 '스타디움 974'입니다. 밤이 되니 잘 만들어진 레고처럼 반짝이는 화려함이 압권이네요. 경기장 쪽으로 아바야를 챙겨입으신 현지인이 걸어가시길래 사진을 찍었어요.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그들이 지켜가는 예의를 존중하는 것은, 기본이 아닐까요? 가끔 마주치는 축구팬들의 자유분방함에 깜짝, 놀라기에 또 잔소리 하나 얹어봅니다. ⓒ 이창희


생각해 보면 2002년 월드컵은 축구팬으로서 굉장한 축복이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까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던 월드컵 16강 진출을 한 것으로도 꿈만 같았는데, 내친김에 4강을 기적처럼 달려나갔다. 한국 팀의 모든 경기에서 그들의 골대 뒤에 서 있었고, 2002년의 기억으로 월드컵 원정 응원에 나서기 시작했다.

초보 축구여행자로서의 2006년 독일은 축구보다 첫 유럽의 경험이 주는 짜릿함이 강렬했고, 2014년의 브라질은 무기력한 경기력이 부끄러웠으며, 2018년의 러시아에는 독일전의 승리가 있었지만 무언가 아쉬웠다(안타깝게도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은 두려움과 소심함으로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2022년 카타르에 있다.

카타르에서의 경험들은 대부분 처음이다. 첫 겨울 월드컵이고, 코로나 이후의 첫 번째 월드컵이며, 개최국의 크기가 크기 않아서 한 도시에 베이스캠프를 정해놓고 관람하는 첫 대회이다. 여러 가지 걱정이 있었고, 처음이라는 생경함이 주는 두려움도 존재했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잘 즐기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수들의 경기력이 너무도 자랑스럽다. 어쩔 수 없이,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경기력은 그대로 축구팬들의 자부심이 된다. 그래서, 이번의 월드컵 여행은 너무도 만족스러웠다. 비록, 16강에서 맞붙은 브라질에 허무하게 무너지기는 했지만, 대한민국의 대표팀은 무기력하지 않았고 당당했다. 덩달아, 나의 여행도 당당할 수 있었다.

월드컵 여행을 하다보면 수많은 세계의 축구팬을 만난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도 눈에 띄는 그룹이 있으니, 바로 중남미의 축구팬들이다. 언제나 최강인 브라질을 선두로, 수많은 멕시코의 가족들이 보인다. 아르헨티나의 팬들은 월드컵의 현장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브라질의 팬들이 잘 보이지 않네' 하는 생각을 가질 때쯤, 기적처럼 우리가 브라질과 16강을 치르게 됐고, 그 경기장에서 모든 의문이 풀렸다.
 

▲ 경기장을 가득 채운 브라질 팬들 16강전이 열리는 스타디움 974의 모습입니다.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깃발이 펼쳐진 뒷쪽으로 온통 브라질의 노랑이 가득해요! 우리도 더 많은 팬들과 함께해야만 이길 수 있지 않을까요? ⓒ 이창희


"브라질 팬들은 예선전(관람)은 포기하고 본선만 즐기기도 하나 봐!"

경기장 입장 전부터 스타디움 974의 광장 주변으로 온통 브라질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만 보여 설마 했는데, 경기장에 입장하는 순간 전 관중석이 브라질의 노랑으로 가득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우리의 응원석인 골대 뒤쪽에도 브라질 관중으로 채워졌으니, 할 말을 잃었다. 우리 일행의 자리는 'TST4'로 16강까지 한국 팀을 쫓아가기로 한 표였으니 주변에 한국 분들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골대 뒤의 대부분의 구역에는 이미 브라질 팬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길거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본선 일정에 맞춰서 제대로 즐기러 온 모양이다. 우리처럼 본선 진출이 한없이 어려운 나라라면 예선에 맞춰서 여행을 준비하겠지만, 브라질의 팬들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이긴 한다. 그들의 여유가 부러웠고, 축제를 마음껏 즐기는 그들의 태도에 한없이 질투가 났다. 우리는 매 경기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선수들과 함께 녹초가 되어 끝내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목 터져라 응원했지만... 
 

▲ 브라질 축구영웅 펠레의 회복을 기원하며, 펠레가 많이 아프다고 하네요. 며칠 전 기사에서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야 하는데, 월드컵을 보겠다며 고집을 부리고 있다고도 하고요. 펠레의 회복을 기원하는 걸개가 관중석에서 올라가는 중입니다. ⓒ 이창희

 
경기는 처참했다. 그럼에도 브라질과 제대로 맞붙어 우리를 좀 더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기에도 힘에 부쳤고, 있는 그대로 16강 경기를 즐기자니 허망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어떻게 이겼는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아마, 그때는 우리의 홈 경기였고, 4만 명이상의 팬들이 모였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 언제나 신나는 브라질 팬들입니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 즐기는 팬들 중의 하나입니다. 이번에도, 그들의 흥에 우리가 주눅들었던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도, 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축구를 즐기고 축구장에 더 많이 모였으면 좋겠습니다. ⓒ 이창희

 

▲ 길에서 마주친 아르헨티나 3대 걸어가는데 지하철역 방향으로 반가운 메시들이 걸어가는 거예요. 잘 보니, 아르헨티나 3대의 축구여행객이었습니다. 너무 반가웠고, 저도 마침 메시를 입었기에 쫓아가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팬도 둘째가라면 서운한 축구팬들이죠! ⓒ 이창희

 
그래도, 이번의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수많은 우리 팀의 팬들을 만날 수 있었다. 포르투갈과의 예선 최종전이 더욱 감동적이었던 건 경기장을 많이 채운 대한민국 팬들 덕분이었다. 붉은 악마의 함성에 동조하는 관중석의 외침은, 그라운드까지 그대로 전해졌다.

월드컵 원정 응원 20년 만에, 우리도 이만큼은 함께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생각에 뭉클했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처럼 전체 관중석의 90퍼센트 이상을 채우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30퍼센트 이상은 채울 수 있으면 좋겠다.
 

▲ 러시아에서 마주친 멕시코 팬들 러시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2차전 상대가 멕시코였어요. 그 때 몰려든 수 많은 멕시코 팬들에 주눅들어, 도시 안에서 계속 전전긍긍 했던 기억이 있네요. 아마, 세계 3대 축구팬이라면, 이들도 빼놓을 수 없겠죠? ⓒ 이창희

 
내일로 이번 월드컵 여행의 일정은 끝이 난다. 본격적인 준비는 1년 전 티켓을 예매하면서 시작됐지만, 러시아 월드컵 이후로 4년을 차곡차곡 준비한 여정이었다.

게다가, 나로서는 원정 첫 본선 진출이라는 환희까지 느꼈으니 앞으로도 오랫동안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다. 카타르 어디에서나 마주치던 전 세계 축구팬들의 서로에 대한 응원과 개최국 카타르의 따뜻한 환대까지 더해지니, 이정도면 코로나 이후 첫 해외여행은 무척이나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추신) 다음에는 월드컵 여행에 대한 결산으로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고, 어떻게 지냈는지 정리해 볼게요. 모두가 각자의 방법으로 월드컵을 즐기겠지만, 조금 더 많은 월드컵 여행자가 생기면 좋겠다는 기대 한 스푼, 얹어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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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월드컵 16강 경기 후 브라질 대한민국 축구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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