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K 클래식의 실체... "너무 열심히 연습해 영감 잃기도"

[TV리뷰] KBS1TV <시사기획 창> 'K클래식은 없다' 편

22.11.30 15:39최종업데이트22.11.30 15:39
원고료로 응원
'갓기'라는 신조어가 있다. 신을 뜻하는 영어 단어 '갓(God)'과 아기를 합친 말인데, 처음에는 주로 나이가 어린 아이돌에게 붙이는 별명으로 쓰였다. 열넷, 열다섯 살, 아주 어린 나이에 데뷔한 아이돌이 뛰어난 기량과 매력을 보여줄 때 팬은 그들을 '갓기'라 부르곤 한다.

이 말은 연예계를 중심으로 쓰이다가 스포츠, 클래식 음악 등 예체능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추세다. 다른 분야와 달리 예술가과 운동선수는 10대에 최전성기를 달릴 수 있다.

11월 29일 방송된 시사기획 창 〈K클래식은 없다〉는 이렇게 어린 한국 학생들이 국제 콩쿠르를 휩쓰는 'K클래식' 잔칫집에 흥 깨는 질문을 던졌다. "순위를 향한 선망이 과연 클래식 음악 열풍을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인가? 더 빨리 콩쿠르에 입상하는 것이 음악의 목표일 수 있나?"의 문제다.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최연소 우승자' 피아니스트 임윤찬 ⓒ KBS

 
피아니스트 임윤찬, 첼리스트 최하영, 한재민,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이들은 세계 유수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뿐 아니라 '최연소'로 입상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또한 비슷한 교육과정을 밟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모두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 국내 최고 교수들에게 지도받았고, 그 과정에서 '금호영재'로 선발돼 무대 경험을 가졌다.

학생들 사이에선 이 과정을 경험하는 시기가 빠를수록 유리하고, 반대로 더디거나 낙오하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하루 8~10시간에 달하는 한국 학생들의 연습량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피터 콜 카인라드 국제콩쿠르세계연맹 의장은 "한국의 영재들은 그 어떠한 타협도 없이 최선을 다한다"고 평한다.

더 빨리, 더 많이 콩쿠르에 입상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일까?
 

독일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 콘라드 마리아 엥겔 교수 ⓒ KBS

 
<시사기획 창> 제작진은 독일의 명문 음악학교인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을 찾았다. 콘라드 마리아 엥겔 교수는 "학생들이 연습을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영감을 잃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관객들은 연습실에서 연주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연습만이 정도(正道)가 아니라 바깥세상에 나가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는 강수연씨는 "결국엔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게 음악가로서 중요하다"고 한다. 그는 "예술은 다양하기 때문에 예술가로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저변을 갖춘 국가를 한국과 병렬 비교해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K클래식의 실체는 무엇이고, 이 현상은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인가?"는 유럽에 물을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찾아야 했다.

빠르게 성공하지 않으면 빠르게 낙오되는 현실

한국의 음악 영재들은 차고 넘치지만, 설 수 있는 무대는 턱없이 부족하다. 일찍 신의 경지에 달하지 않으면, '갓기'가 되지 않으면, 무대 바깥으로 낙오되는 구조다. 이러한 환경에서 여유롭게 다양한 예술세계를 탐구한다는 건 사치스러운 말로 들린다.

빠르게 성공하는 사람만큼 빠르게 좌절하는 사람들은 더 많아진다. 그 좌절과 실패를 들여다 보아야 한다. '어린 나이에 실패를 겪은 음악인들이 어떻게 악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국 음악계에 남은 고민이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인터뷰에 답하고 있다. ⓒ KBS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관객은 한 명의 스타를 원하지만, 예술교육은 그 한 명이 아니라 나머지를 위한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며 "예술을 잘 이해하고, 건강하게 교육받은 재원들이 사회로 나가 그것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교육관을 밝혔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지난 11월 28일 열린 <베토벤, 윤이상, 바버>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돈이 아니라 음악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소외된 분들에게 음악이라는 우주를 열어드리고 싶다"는 꿈이 있다고 한다.

언론과 대중은 신동, 영재, '갓기' 등 최연소를 일컫는 타이틀에 주목한다. 그러나 음악에 있어 중요한 건, 연주자의 어린 나이에 대한 칭송보다 그 음악을 더 많은 이들에게 널리 퍼뜨릴 무대일 것이다.
시사기획창 K클래식 임윤찬 양인모 한재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여성의 일상에 빛나는 영감을 불어넣는 뉴스레터 'wew'를 만들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