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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떠나버린 집, 18세 소녀의 홀로서기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만인의 연인>

22.11.29 14:13최종업데이트22.11.29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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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만인의 연인> 포스터 이미지 ⓒ (주)시네마달

 
영화를 얼른 봐야 하는데 막상 재생 버튼 누르기 망설여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영화, <만인의 연인>의 줄거리 요약을 볼 때가 딱 그랬다.
 
일단 첫 번째 망설임의 시작을 들자면, 영화의 홍보문구에 "나쁘게 굴어도 좋으니 맨날 내 앞에 나타났으면 좋겠어"란 문장이 카피로 떡 하니 뜬다. 그 뒤를 이어 엄마가 집을 나가버린 뒤 홀로 남겨진 채 누군가의 애정을 절실히 갈구하는 표정의 주인공 유진이 등장한다. 긴 생머리에 어른과 아이 사이 묘한 이미지를 가진 얼굴. 보자마자 자꾸만 과거 한국영화에서 스테레오 타입처럼 남발되던 비련의 청순가련형 여성 주인공들이 겹쳐 보인다.
 
다행히 여러 편의 작업을 선보여온 여성감독의 연출작이긴 하지만 노파심 때문에 온전히 안도할 순 없었다. 심지어 홍보영상에 나오는 이성들과의 교제가 영화의 주요 전개라고 하니 벌써 주인공의 행보가 걱정되기 시작한다. 그런 오지랖 넘치는 걱정 속에 일단 영화를 보고 판단해야 되지 않겠냐고 스스로를 설득한 끝에 영화에 도전할 것을 결심한다.

18살 주인공의 위태로운 홀로서기 여정
 

영화 <만인의 연인> 스틸 ⓒ (주)시네마달

 
주인공 유진은 영화 시작부터 철저하게 방치되어 있다. 지방의 소도시 혹은 군 소재지 정도로 보이는 동네에서도 맹견(?)을 지나쳐야 도달할 수 있는 외딴집에 사는 유진은 18살 미성년인데도 수도도 가스도 엉망인 낡은 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엄마 영선은 유진과 함께 살지 않는다. 그녀는 남자친구 창호와 결혼을 이야기하며 동거 중이다. 유진은 스스로 살아보겠다며 여기저기 알바 자리를 찾지만 18살인 유진이 일자리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영선은 유진에겐 별 관심 없이 창호와의 행복한 미래에만 신경이 팔려 있고 딸과는 냉랭한 사이가 된 지 오래다. 영선이 유진을 찾는 건 오직 자신을 위해서다. 결혼을 생각할 만큼 푹 빠진 창호에게 딸과 화목한 관계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유진이 바라건 말건 일방적으로 딸을 방치해둔 집에 함께 와보지만 엉망진창인 집 상태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 그런 엄마에게 진절머리가 나버린 딸 유진은 엄마의 위선을 냉소하며 독설을 날리는 걸로 응수한다. 하지만 아직 어린 유진의 매몰찬 반응은 오히려 엄마의 부재를 견디기 힘겹다는 비명에 가까워보인다. 하지만 영선은 그런 유진을 보듬어주기엔 당장 어렵게 찾아낸 이상적 상대를 붙드는데 여념이 없다.
 
유진은 화장품가게, 노래방 전단지 배포 등에서 좌절을 맛본 후 운 좋게 피자가게에서 알바자리를 구한다. 일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그만두겠다는 유진을 가게 점장 진열은 너그러이 보듬어준다. 유진으로선 거의 처음 경험해본 어른의 호의다. 사방에 자기편 하나 없던 유진은 진열의 가게에서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다. 자기보다 달랑 한살 많지만 진열과 결혼까지 함께 계획 중인 선배 알바생 혜선, 동갑인 배달알바 현욱, 그리고 예전에 알바하다 타지로 유학 간 대학생 강우까지 유진에게 새로운 인연들이 피자가게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 연달아 생겨난다.
 
한숨 돌린 유진은 남들처럼 사랑받고 싶고 자기편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남자친구와 사랑에 빠져 자신을 버리고 나가 사는데, 나도 연애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호받고 싶은 욕구가 커져만 간다. 그런 18살 유진의 욕망은 근사해 보이는 강우오빠와 자신을 '여신'으로 보는 헌신적인 현욱 사이에서 위태로운 상황을 이어간다. 유진을 아끼고 돌봐주는 진열과 혜선이 도움과 충고를 주지만 맹목적 충동에 자신을 맡긴 18살 소녀에겐 아직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유진은 순수한 본심과는 달리 번번이 일이 꼬이면서 위기를 겪는다.
 
한편, 딸 유진을 방치하고 창호와의 사랑만을 쫓던 영선 역시 일이 순탄하게 풀리지 않는다. 번듯한 사회적 입지를 가진 창호는 영선과 애정관계는 진심이지만 기러기 부부인 아내와 아들과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상태다. 그리고 과연 온전히 이혼하게 될지도 불투명해 보인다. 창호를 끌어당기기 위해 무리수를 두게 된 영선과 창호의 갈등은 깊어만 간다. 어쩌면 모녀는 서로 같은 과라서 그렇게 자석의 같은 극이 서로 밀어내듯 거리가 생겨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과연 18살 유진은 인생의 큰 고비를 헤쳐 가며 무사히 성년이 될 수 있을까.
 
'성장통'을 다룬 여타 작품과 차별화되는 방법론
 

영화 <만인의 연인> 스틸 ⓒ (주)시네마달

 
위태로운 십대의 성장통을 다룬 한국독립영화는 사실 넘쳐난다. 아무래도 독립영화의 주요 창작집단인 20대, 30대들에게 자전적 경험과 함께 한국사회가 날이 갈수록 후속세대에겐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희망 없는 미래상을 보여주기 때문일 테다. 그런즉슨, 아주 익숙한 소재인 동시에 레드오션도 이만한 게 없을 지경인 셈이다.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비슷비슷해 뵈는 방황하는 십대 이야기 가운데 <만인의 연인>이 독자적인 입지를 찾으려면 특기할 만한 지점을 반드시 찾아야 마땅한 상황인 것이다. 과연 어떤 방법론으로 돌파가 가능한지 영화를 보면서 내내 궁금했다.
 
처음 언급한대로 이 영화는 한발만 엇나가면 식상하거나 소모적이기 짝이 없는 지경에 떨어지기 딱 좋은 얼개를 지녔다. 지뢰밭처럼 펼쳐진 함정과 암초투성이를 헤쳐 나가며 영화는 주인공 유진의 험난한 18살을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펼쳐야만 한다. 과연 식상하거나 전형적이지 않게 그 험로를 돌파할 수 있을까란 물음은 포스터 정면에 자리한 주인공 유진의 순진무구해 보이는 표정 때문에 더 증폭되기만 한다. 그렇게 괜히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가운데 펼쳐지는 이야기는 다행히 염려하던 바를 상당부분 분쇄하는 성취를 보여준다.
 
대개 이런 청춘 잔혹사의 주인공이 되는 유형의 캐릭터는 어지간히 박복하게 마련이다. 유진 역시 자기 본의와는 다르게 수차례 위기에 빠지곤 한다. 의지할 곳 없는데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10대 소녀 캐릭터라면 우리는 어느 순간 불온한 상상을 시작하곤 한다. 그리고 그 상상 속에서 대개 주인공은 수동태로만 고착된다. 운 좋게 불행을 피하더라도 누군가의 도움에 의해서이고, 곤욕을 치러도 결국 타자의 주도하에 피해자로서만 존재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1970, 1980년대 호스티스 영화까진 아니더라도 본의건 역부족이건 간에 적지 않은 독립영화에서도 그런 가련한 피해자 캐릭터는 명맥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런데 이 영화, <만인의 연인>에서 유진의 캐릭터는 상당히 독특하다. 18살이라는 주인공의 나이는 아직 온전히 자립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에 아무리 어른 행세를 해도 피할 수 없는 실수가 속출하는데다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면모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유진 역시 그런 순탄치 않은 굴곡을 코스 밟듯 하나씩 차례로 겪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와 주인공의 개성은 바로 그 순간부터 작동하기 시작한다.
 
영화의 국문제목과 영문제목은 마치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 유진은 두 남자 사이에서 방황하길 거듭한다. 하지만 유진은 '어른'인 엄마 영선이 맹목적으로 갈망하는 창호와의 사랑으로 도피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만의 결론으로 향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유진 자신도, 주변 사람들도 상처를 받고 피해를 입는다. (심지어 그중에는 회복 불가능한 것도 있다.) 그렇지만 가책을 느끼고 미안해할지언정 유진은 자신의 욕망에 더없이 충실하고 그것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유진은 비록 매 순간마다 좌충우돌 갈팡질팡하긴 하지만 놀라운 회복력을 보인다. 비록 시행착오를 거치며 스스로도 실수와 패착에 고통을 받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관계를 스스로 선택하고 이를 얻기 위해 자신을 던진다. 그 과정에서 흔히 '가련한 10대 소녀'가 빠지는 함정에 처할 위태로운 순간들을 자기를 지켜내며 돌파해나간다. 그리고 그런 방황과 일탈로 인한 결과에 직면해서도 처연히 울거나 숨어버리는 대신에 담담히 자신이 일으킨 나비효과에 대해 반문하며 성찰하는 태도를 견지한다. 두 남자 사이에서 흔들리지만 매 순간마다 관계를 결정하고 주도하는 건 유진의 몫이다. 그 과감하고 도발적인 눈빛이 위태로워 보일지언정 후반에 그녀가 결론에 도달하는 광경을 확인한다면 이 캐릭터의 독보적인 입지를 확신할 수 있게 될 테다.

신예와 베테랑 연기자들의 조화가 구현한 영화적 현실
 

영화 <만인의 연인> 스틸 ⓒ (주)시네마달


유진은 엄마인 영선보다 훨씬 이른 나이, 엄마가 자신을 낳기 전 단계에서 '어른'이 되는 관문을 통과한다. 영선이 여전히 남자에게 의지해 자신을 종속시키는 것으로 행복과 안락을 찾고자 하는 상태에 머무르는 데 비해 유진은 비록 아픈 성장통을 체험해야 했지만 순식간에 돌파해버린 셈이다. 질풍노도의 10대 시절이라지만 그저 청소년의 위태로운 일탈과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되겠지 식의 억지 봉합이 아니라 제대로 시련을 겪고 극복하며 얻어낸 성장이기에 더 값지다.
 
유진 역을 맡은 신예 황보운의 모델 같은 이미지는 복합적인 면모로 영화에서 활용된다. 우선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외모를 둘러싼 고정관념의 편견을 받아들이는 척 한다. 황보운 배우의 어려보이는 얼굴과 대비되는 성숙한 외모는 소녀의 성적 매력을 관음증적으로 바라보는 불건전한 시선을 도발한다. 하지만 전형적인 캐릭터 이미지는 이후 그녀가 보이는 행보를 통해 그런 통념을 뒤엎는 역습에 주요하게 활용된다. 청소년 주인공을 내세운 영화이지만 15세 관람가를 감수한 만큼 영화는 제법 수위가 세다. 하지만 유진은 가스라이팅의 유혹도, 성적 대상이 되는 것도 결국 거부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는 성장형 캐릭터다.
 
유진의 마치 자매 같은 엄마 역할인 영선 역에는 서영희 배우가 소녀와 어른의 면모를 겸비한 연기를 선보인다. 딸 유진의 성장통을 거쳐 성인이 되는 과정과 함께 영선의 시련 가득한 터널 통과도 병행해 이뤄지는데 둘의 결말 역시 흔히 상상하는 화해라는 이름의 봉합과는 꽤 다른 형태로 마무리된다. 영선과 현실 '어른'의 사랑이 갖는 한계를 보여주는 창호 역 전석호 배우 역시 배우의 다양한 이미지 중 한 단면을 적절히 활용해 밉지 않은 우유부단남 캐릭터를 소화해낸다.
 
유진에겐 어른이 되기 위한 관문 격으로 등장하는 두 남자, 강우오빠 역 김민철과 순정남이지만 파괴적 면모를 아울러 지닌 현욱 역 홍사빈, 두 배우의 대비되는 면모도 적절한 캐스팅이다. 여기에 유진에겐 한없이 고마운 은인이지만 어쩌면 그녀의 성장통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자격인 진열 역의 우지현, 혜선 역의 박정연 배우도 제한된 역할 속에서도 튼실하게 극을 받쳐주고 있다. 가장 선한 이들이 운명적으로 당하고야 마는 수난은 어쩌면 유진이라는 캐릭터가 갖는 특이점의 부수적 피해 혹은 대속처럼 느껴진다.
 
유진은 지금껏 불우한 10대 소녀 주인공이 보여주지 못했던 자기 욕망에 충실한 존재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나쁜 남자'에게 피해를 당하는 전형에서 벗어나는 대신, 자신의 일탈로 인해 누군가는 피해를 입었다는 걸 평생 어깨에 짊어져야만 비로소 어른이 될 수 있을 테다. 진열과 혜선의 존재는 그런 징표로 (다소 도구적으로) 각인되어야만 하는 존재들이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행동에 대한 주체성과 함께 시련과 상처를 안고서야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결말 아닐는지.
 
<작품정보>
만인의 연인 Nobody′s Lover
2021|한국|드라마
2022.12.01. 개봉|130분|15세 관람가
감독 한인미
주연 황보운(유진 역), 서영희(영선 역), 홍사빈(현욱 역), 김민철(강우 역)
출연 전석호(창호 역), 우지현(진열 역), 박정연(혜선 역), 이유지(샛별 역)
제작 (주)시네마달
공동제작 동산시네마
제작투자 KC벤처스(주)
배급 (주)시네마달
 
2021 26회 부산국제영화제
2021 47회 서울독립영화제
2022 10회 무주산골영화제
2022 10회 헬싱키시네아시아영화제
2022 37회 시네마호베국제영화제 CIMA심사위원언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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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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