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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단 댓글 하나, '존 덴버'는 죽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416] <존 덴버 죽이기>

22.11.23 13:32최종업데이트22.11.2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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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존 덴버 죽이기> 포스터 ⓒ (주)트리플픽쳐스

 
사회적 타살이란 말이 있다. 죽기는 제 손으로 죽었으되, 그 죽음 아래 깔린 여러 요소를 종합하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데 사회적 책임이 큰 죽음을 말한다.

수능시험을 전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과 왕따 문제로 괴로워하다 죽음을 선택한 이들, 소수자에게 주어지는 편견으로 죽음에 내몰린 경우가 모두 그렇다. 수많은 자살 가운데 사회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죽음은 그리 많지만은 않을지도 모른다.
 
여기 한 영화가 어느 사회적 타살에 주목한다. 필리핀 영화 <존 덴버 죽이기>가 바로 그 작품으로, 말 그대로 존 덴버(쟌센 막프사오 분)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따르는 게 이 영화의 기본적인 얼개라 하겠다. 흥미로운 건 영화 속 어느 누구도 직접적으로 덴버를 죽이려 하진 않는다는 점이다. 어느 누가 나서 총이나 칼, 독극물 따위로 그를 죽이는 대신 그가 스스로를 죽게 하도록 내모는 과정이 차근히 그려진다.
 

영화 <존 덴버 죽이기>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SNS로 퍼져나간 마녀사냥
 
이야기는 필리핀 어느 학교에서 시작한다. 빈 교실에 들어가 가방을 챙겨 나온 덴버가 다른 학생의 아이패드를 훔쳤다는 의혹을 사며 갈등이 폭발한다. 덴버는 결백을 주장하지만 아이패드를 잃어버린 친구는 그의 가방을 빼앗아 옥상으로 뛰어오른다. 가방을 열려는 이와 빼앗으려는 이의 싸움이 이어지고 덴버는 그를 두들겨 팬 뒤 가방을 빼앗아 돌아온다.
 
분위기는 한순간에 급변한다. 싸움을 카메라로 찍은 동급생 하나가 덴버가 아이패드를 훔치고 항의하는 아이를 때렸다고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것이다. 영상은 SNS를 타고 삽시간에 퍼져나간다. 의혹은 이내 현실이 되고 인터넷에선 마녀사냥이 시작된다. 사람들은 사실을 확인하려 들지 않고 평가하기에만 여념이 없다. 가난한 덴버가 평소에 다른 이를 때리고 여자아이의 도시락을 훔쳐 먹은 일이 있다는 사실이 그가 아이패드를 훔쳤음에 틀림없다는 근거가 된다. 덴버는 부인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일이 커지자 마침내 덴버의 어머니가 사실을 알게 된다. 하루 품을 팔아 하루 먹고사는 그녀지만 아들의 소식에 두 발을 벗고 달려든다. 남편을 군대에서 잃고 세 아이를 홀로 키우는 그녀에겐 오로지 자식만이 희망이다. 맏이인 덴버는 덴버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서로를 감싸 안으려 하지만 세상은 갖지 못한 자에게, 이미 의혹을 받는 자에게 너그럽지 못하다.
 

영화 <존 덴버 죽이기>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너희 중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져라
 
아이패드를 잃은 아이의 어머니와 그의 사주를 받은 경찰관, 덴버를 모함하는 동급생, 덴버를 의심하는 선생까지 주변엔 온통 못된 인간들뿐이다. 사건이 인터넷에서 유명세를 타며 모든 이들이 덴버를 알아보고 그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덴버는 용기를 잃고 숨어 지내려고도 하지만 이유 없는 괴롭힘은 그야말로 어디서나 찾아온다. 그를 돕는 건 그의 어머니 외엔 아무도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수많은 사건들이 떠오를 밖에 없다. 인터넷 빠르기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게 동아시아며, 그중에서도 한국이 아닌가. 일찌감치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호평받은 이 영화는 수많은 가짜 뉴스를 검증 없이 소비하고 날카롭고 무책임한 말로 일면식 없는 이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내온 이 나라 보통의 시민들에게 호통을 치듯 이야기를 풀어간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평가하지 말라"는 소년의 댓글엔 감당하지 못할 만큼 많은 조롱이 쏟아진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며 삼심제의 원리는 내던지고 모두가 종교재판관이 되어 가해자를 손가락질한다. 언론마저 이에 동조하고 조장하는 경우가 수두룩하니 무고한 목숨들만 세상을 저버리는 게 부지기수다.
 

영화 <존 덴버 죽이기> 스틸컷 ⓒ (주)트리플픽쳐스

 
한국에도 수많은 존 덴버들이 있음을
 
2017년 전라북도 부안군 중학교 수학교사가 성희롱을 당했다는 여중생들의 무고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이 비극 뒤엔 경찰의 무혐의 처분에 반하는 절차를 무리하게 진행한 교육청의 징계가 있었음이 확인돼 논란이 커졌다. 2020년에도 경기도 김포 한 맘카페에 의해 아동학대 가해자로 몰려 극단적 선택을 한 어린이집 보육교사 사건이 있었다. 2021년엔 경기도 화성 어린이집 원장이 비슷한 마녀사냥 결과로 세상을 떠났다.

재판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도 피의자에게 유죄 낙인을 찍는 사건이 한국사회에도 너무나 많았다. 그 과정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이들, 마침내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은 모두 영화 속 존 덴버와 다를 바 없다.

영화를 연출한 아덴 로즈 콘데즈는 어느 한 사건이 아닌 다양한 사건을 토대로 실화적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서 삽시간에 퍼져나가는 짜깁기되고 왜곡된 정보, 이를 무지성적으로 소비하는 대중, 그 사이에서 원칙을 지키지 않는 책임 있는 자들의 모습이 꼭 필리핀의 이야기라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과연 우리에겐 제2, 제3의 존 덴버가 없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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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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