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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죽음이 두려워서 영화를 찍었습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 402]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22.09.28 16:09최종업데이트22.09.2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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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포스터 ⓒ 넷플릭스

 
인간은 모두 한 번은 죽지마는, 좋은 인간이 죽는다는 건 언제나 두려운 일이다. 죽는 자는 떠날 뿐이지만 남겨진 이는 오롯이 그 공백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인간일수록, 멋진 인간일수록, 깊이 사랑한 인간일수록, 그 공백도 크게 마련이다. 사랑하는 이가 떠난 공백 앞에서 감히 어느 누가 제 강함을 뽐낼 수 있는가. 죽음은 그토록 강력하다.

그래서 여기 카메라를 든 인간이 있다. 죽음에도 예행연습이 필요하다며, 제 아버지의 죽음을 먼저 찍겠다는 특이한 인간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커스틴 존슨이 바로 그녀다.

그녀의 어머니는 몇 년 전 알츠하이머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하여 "우리는 그녀가 죽기 몇 년 전 그녀를 잃었다"고 씁쓸하게 말한다. 알츠하이머는 그렇게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잃어간다. 그 병을 함께 감당하는 동안 딸 커스틴과 아버지 딕 존슨 모두 깊은 상처를 입었을 테다.
 

▲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스틸컷 ⓒ 넷플릭스

 
흔들리는 아버지, 두려워하는 딸

딸은 여느 사랑받고 자란 자식들이 그렇듯 제 아버지의 죽음을 두려워한다. 어머니가 떠나고 아버지까지 떠난다면 제 곁에는 더는 저를 세상에 있게 한 어른이 없어지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애정을 퍼부어주는 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다. 커스틴은 그 사실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들의 삶에 결정적 변화가 닥친다. 딕의 인지능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딕이 일하는 병원에서, 딕의 친구들이 연락을 해오기 시작한다. 딕이 너무 많은 것들을 자주 잊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급기야 딕은 차를 몰고 나가 너무 빨리 달리다 바퀴가 펑크난 채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는 분명히 제 세상을 잃어가고 있다. 커스틴은 곧 닥쳐올 미래가 너무나 무섭다.

그녀가 내놓은 대책은 영화를 찍는 것이다. 그것도 제 아버지의 죽음을, 다양한 방법으로 재현한 영화를 찍어나가기로 한다. 주연은 아버지, 굴러떨어지고 넘어지는 액션이 필요한 장면은 대역배우를 쓰기로 한다. 일찌감치 넷플릭스와 계약을 맺은 그녀는 가정일을 제 업으로 삼아 열심히 영화를 찍어나간다.
 

▲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스틸컷 ⓒ 넷플릭스

 
딕 존슨의 수많은 죽음들

딕 존슨은 죽는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길을 걷다 떨어진 물건에 맞아서, 공사장 인부와 부닥쳐서, 그밖에 온갖 방법으로 죽어나간다. 급기야 장례식까지 치러진다. 장례식에선 생전 아버지 존슨을 알던 이들이 찾아와 그를 떠올린다. 친구는 가짜 장례식인 걸 잊고 눈물까지 펑펑 쏟는다. 대체 어떤 인간이기에 제 죽음에 그토록 눈물을 쏟게 하는가 궁금증이 든다.

커스틴에게 딕은 이상적인 아버지였다. 열린 마음으로 늘 다정했던 인간이었다. 덕분에 좋은 남편이었고 좋은 할아버지이기도 했다. 평생을 정신과 의사로 일하며 주변 이들에게 도움을 줬다. 신앙과 가정, 일터에서까지 어느 역할 하나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이쯤되면 좋은 삶이었다 해도 좋지 않을까, 그의 현재를 보면 그런 생각이 절로 든다.

영화 속에 비친 딕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제 죽음을 두고도 서슴없이 농담을 던지는 유쾌한 남자, 제 기분보단 주변의 감정에 신경 쓰는 세심한 어른이다. 아끼는 집을 팔고 딸이 사는 뉴욕 아파트로 들어가기로 했을 때도, 오랜 기간 아껴온 차를 팔게 되었을 때도 그는 딸의 눈치를 보며 그녀가 기뻐할 만한 반응을 한다. 우아하게, 멋지게 제 끝을 감당하며 딸에게 부담이 아닌 사랑을 안기려 한다. 이런 인간이기에 삶의 마지막까지 이토록 큰 애정을 받는 게 아닌가 싶다.
 

▲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 스틸컷 ⓒ 넷플릭스

 
다큐의 형식 너머로 나아가는 실험적 영화

다큐멘터리 감독이 찍었지만 정통 다큐멘터리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영화 안에 영화가 있고, 그 영화의 극적 장치가 우리가 보고 있는 실제 영화로까지 넘어온다. 극적 효과가 영화 전반을 가로질러 일종의 승부수 역할까지 하고 있다. 때문에 영화를 본 관객 중 상당수는 딕 존슨이 정말로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알 수 없을 만큼 혼란을 겪는다. 사실상 다큐멘터리적 기법을 차용한 실험적 극영화라고 봐도 될 정도다.

다큐멘터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으나, 영화는 진실의 힘보다도 극적 장치에 더 기대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때문에 이 영화를 통상의 다큐멘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작품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담긴 멋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걱정을 붙들어 매도 좋다. 다소 어수선한 시도일지라도 영화 속 딕 존슨이란 인간은 굳건히 살아 있으니 말이다.

사실적인 이야기를 보고 싶지만 기존의 다큐와 조금은 다른 영화였으면 좋겠다 싶은 사람이라면 지금 이 영화 <딕 존슨이 죽었습니다>가 괜찮은 선택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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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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