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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정재 최대 이변, '에미상' 말고 또 있다

연기 재미 맛본 '태양은 없다'·이미지 확립한 '관상'·월드 클래스 만든 '오징어 게임'

22.09.16 10:00최종업데이트22.09.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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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기생충>)과 심사위원대상(<올드보이>), 심사위원상(<박쥐>), 감독상(임권택, 박찬욱), 남우주연상(송강호), 아카데미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국제 장편 영화상(이상 <기생충>), 여우조연상(윤여정), 빌보드 싱글차트 1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이상 방탄소년단) 등. 21세기가 시작될 때만 해도 한국이 해낼 거라고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일들이 이제는 모두 현실이 됐다.

이제는 당당히 세계문화의 주류가 된 한국의 대중문화는 지난 13일(한국시각) 미지의 영역을 또 하나 정복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드라마계의 아카데미로 불리는 에미상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무려 6개 부문을 휩쓴 것이다. 특히 드라마 속에서 '참가번호 456번' 성기훈을 연기했던 이정재는 아시아 배우로는 최초로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30년 가까운 이정재의 커리어를 지켜 본 팬들에게 이번 수상이 더욱 남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정재가 데뷔 초부터 연기를 잘하던 소위 '천재형 배우'와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데뷔 초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던 이정재는 꾸준한 노력으로 점점 성장했고 그 결과 오늘날 세계에서 인정 받는 배우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과연 이정재의 연기 경력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작품들은 어떤 게 있었을까.

[태양은 없다] 스타에서 배우로
 

<태양은 없다>에 함께 출연했던 이정재(왼쪽)와 정우성은 23년 후 <헌트>를 통해 재회했다. ⓒ 우노필름

 
1993년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해 1995년 <모래시계>의 보디가드 백재희 역으로 '벼락스타'가 된 이정재는 인기의 단맛을 누릴 새도 없이 곧바로 군에 입대했다. 이정재는 전역 후 영화 <불새>와 <박대박>, 드라마 <백야3.98> 등에 출연했지만 여전히 <모래시계>의 이미지를 지우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이정재가 <모래시계>의 그늘을 떨쳐 버리고 배우로서 한 단계 도약한 작품이 바로 <태양은 없다>였다.

이정재는 동갑내기 정우성과 함께 출연한 첫 번째 영화 <태양은 없다>에서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흥신소 직원 홍기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특히 사채업자이자 동네깡패 병국(이범수 분)에게 빚을 지고 쫓겨 다니거나 잔뜩 겁에 질려 용서를 비는 장면을 보면 <모래시계>의 고독한 보디가드 백재희의 모습은 전혀 찾을 수 없다. 이정재가 <모래시계> 이후 4년 만에 드디어 백재희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운 것이다.

<태양은 없다>에서 열연을 펼친 이정재는 그 해 청룡영화상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박중훈과 <쉬리>의 최민식, <텔 미 썸딩>의 한석규, <유령>의 최민수 같은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27세의 젊은 나이에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는 23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는 역대 청룡영화상 최연소 남우주연상 기록이다. 그만큼 이정재의 수상은 그 해 청룡영화상 최대 이변이었다.

실제로 이정재는 데뷔 후 가장 재미있게 찍었던 영화로 <태양은 없다>를 꼽고 있다. 관객들 역시 어딘가 모르게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경직된 이정재가 아닌 진정으로 연기를 즐기는 이정재를 만나기 시작한 작품이 <태양은 없다>였다. <태양은 없다>가 이정재에게 여러 가지 이유로 매우 중요한 작품인 이유다.

[관상] 한국영화 최고의 등장신
 

이정재가 연기한 수양대군의 첫 등장은 <관상>은 물론 역대 한국영화 최고의 등장신으로 손색이 없는 장면이다. ⓒ (주)쇼박스

 
<우아한 세계>로 청룡영화상 작품상을 수상했던 한재림 감독은 지난 2013년 송강호와 김혜수, 이정재, 백윤식, 조정석, 이종석 등 다양한 세대의 스타 배우들을 대거 캐스팅해 신작 <관상>을 선보였다. 관객들은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 스타배우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관상>은 충분한 재미를 주는 영화가 될 거라며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도둑들>과 <신세계>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던 이정재는 영화 시작 55분이 지나도록 등장하지 않았다.

그렇게 관객들의 기대가 실망으로 변해 가던 영화 시작 57분 경, 웅장한 음악과 함께 이정재가 수양대군으로 완벽하게 빙의해 스크린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관객들은 갑작스러운 수양대군의 등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수양대군은 영화 런닝타임의 절반 정도를 출연하지 않았음에도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스크린을 장악했다. 특히 "이보시오, 관상가양반!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는 수양대군의 대사는 <관상>을 상징하는 '시그니처 대사'가 됐다.

한재림 감독은 한 영화를 이끌고 갈 수 있는 주인공급 스타 배우 여러 명을 동시에 캐스팅하고 이들에게 각자의 역할을 부여해 한 편의 좋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정재는 <관상>으로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오징어게임] 최고 선택의 선택
 

인생의 패배자였던 성기훈은 이정재의 호연이 더해지며 인간적으로 점점 성장하는 입체적인 캐릭터가 됐다. ⓒ 넷플릭스

 
이정재는 90년대까지 드라마와 영화를 병행하며 활동했지만 2009년 <트리플> 이후에는 드라마보다는 영화 활동에 전념했다. 따라서 2019년 2개의 시즌으로 나눠 방송된 <보좌관-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이정재의 드라마 복귀작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보좌관>은 이정재와 신민아라는 화려한 캐스팅에도 시청률 3~5%를 오가며 기대했던 만큼 좋은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닐슨코리아 기준).

그랬기에 이정재가 넷플릭스 9부작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고개를 갸우뚱한 이유다. 하지만 이정재는 기꺼이 초록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456번 참가자가 됐고 결과적으로 <오징어 게임> 출연은 이정재의 30년 가까운 배우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 됐다. 

<오징어 게임>은 총 16억5000만 시간의 누적 시청시간을 기록하면서 2위 <기묘한 이야기>의 4번째 시즌(13억5200만 시간)을 제치고 넷플릭스 역대 최고 시청시간을 기록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설탕 뽑기', '구슬치기' 같은 한국의 전통놀이들이 세계적으로 유행했고 오영수 배우는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그리고 이정재는 미국방송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에미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트로피를 들고 영어로 수상소감을 이어가던 이정재는 수상소감 말미에 한국어로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에서 보고 계실 국민여러분과 친구, 가족, 그리고 소중한 저의 팬들과 이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국내 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한국관객들이 사랑하는 배우 이정재가 '월드 클래스'로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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