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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극장 피서, 3편의 영화를 봤는데...

다양한 영화 보는 것으로 막바지 더위 피해보는 건 어떨지

22.09.01 14:04최종업데이트22.09.0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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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가 녹아내리고, 달궈진 낮의 열기가 식지 않아 밤새 잠을 이루기 힘들었던 열대야의 성하(盛夏)가 서서히 끝나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덥고 습하다. 재론의 여지없이 아직은 여름의 끝자락.

하나 둘씩 순서대로 폐장하는 해수욕장을 찾기는 그렇고, 멀리 있는 계곡으로 가기도 어려운 처지라면 에어컨 시원한 극장에서 2시간 남짓 더위를 피해보는 게 어떨까?

다행히 현재 영화관엔 여름 성수기 관객을 겨냥해 개봉된 작품들이 적지 않다. 한국 영화가 주류를 이루지만, 주목할 만한 외화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

적절한 주제의식과 어느 정도 재미를 갖춘 것이라면 영화를 통해 맛보는 '대리 만족'의 기쁨은 지불하는 입장료에 비해 크다. 막바지 여름을 이기는 피서법으로 나쁘지 않을 듯하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이지만 영화관에서라면 조선과 일본이 나라의 운명을 걸고 전투를 벌였던 400년 전 한산도 바다를 볼 수 있고, 불의한 독재자를 처단하고 싶었던 40년 전 사내들과 만날 수 있으며,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온갖 욕망이 비등하는 오늘날 미국 할리우드 인근 목장에서 달리는 말에 올라타는 게 가능하다.

최근 앞서거니 뒤서거니 비슷한 시기에 개봉돼 관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영화 3편을 관람했다. 간략하게 이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독자들의 선택에 작은 도움을 주고자 한다.  

또 다시 소환된 이순신... <한산: 용의 출현>
 

이순신을 영화 속으로 다시 한 번 소환한 <한산: 용의 출현>.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나 드라마, 연극이나 소설로 만들어질 만한 매력을 갖춘 역사적 사건은 우리나라에도 여럿이다. 하지만, '임진왜란' 정도의 드라마틱한 요소를 간직한 건 드물다.

대륙으로의 진출을 열망하던 섬나라 일본이 교두보로 지목한 조선을 침탈하고, 백성을 지켜야 할 왕과 벼슬아치들은 일본 군대를 피해 도망치고, 나라로부터 받은 혜택이 거의 없었던 이들이 의병으로 일어나 왜군에 대항하고, 이런 과정을 거치며 국난(國難)에서 민족을 구하는 영웅이 탄생하고…

임진왜란의 전개는 그 자체로 영화적이다. 그랬기에 이미 수십 수백 차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져 관객들과 만났다. 부정할 수도 없고, 선택을 망설일 것도 없다. 임진왜란이 낳은 '최고의 스타'는 이순신이다.

국가의 존망에는 관심 없고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던 탐관오리와 싸워보지도 않고 겁을 집어먹은 채 식솔들을 이끌고 왜군을 피해 달아나던 상당수 조선 관료들 사이에서 이순신은 돌올했다.

지금의 해군 작전사령관 격인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을 맡아 반쯤은 파손된 12척의 보잘것없는 함선으로 일본 해군 전투선 133척에 맞서 싸운 그의 기개와 전략은 400년이 지난 지금도 칭송받고 있다.

이 전투를 영상으로 옮긴 것이 자그마치 1700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명량>이다. 연출자는 김한민.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가진 힘이 21세기에도 통한다는 것을 깨달은 김한민은 이를 한 번 더 우려낸다.

<한산: 용의 출현>은 명량해전이 있기 5년 전 한산도에서 벌어진 조선 수군과 일본 해군 사이의 전투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다. 이 역시 흥행 가도를 달려 벌써 관람객이 700만 명을 넘어섰다.

역사에 손톱 만한 관심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 전투의 승자가 누구이고, 패자가 누구인지 안다. 그러니, 구구절절 <한산: 용의 출현>의 줄거리를 읊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일진일퇴의 16세기 전투 장면은 제법 실감나고, 박해일을 포함한 주연과 조연들의 연기력도 크게 흠잡을 게 없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한산: 용의 출현>에서 임진왜란을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과 이순신에 관한 기존의 인식을 전복시키는 놀라움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하기야, 그러기엔 우리들 머릿속에 새겨진 '이순신이란 존재'의 힘이 너무 강하다.
 
두 사내, 학살자에게 총을 겨누다... <헌트>
 

이정재가 연출한 영화 <헌트>. ⓒ 영화 홈페이지

 
키 크고 잘생긴, 그러나 연기력은 거론할 게 없던 20대 초반 배우에서 시작해 현재는 지천명(知天命)에 이른 이정재와 정우성.

결코 짧지 않은 30년의 시간은 두 사람을 '그저 잘생긴 영화배우'에서 타자의 삶을 자신의 몸 안에 효과적으로 담아낼 줄 아는 능숙한 연기자로 만들었다. 이제는 이정재와 정우성의 연기를 "형편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드문 걸 보면 이는 비단 기자만의 생각은 아닌 듯하다.

둘은 나란히 영화 연출에도 도전을 했는데,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받은 평가도 박하진 않은 것 같다. 얼마 전 개봉된 <헌트(Hunt)>의 연출자는 이정재. 주연도 맡았으니 1인 2역이다.

제목으로 정한 '사냥'이란 단어가 의미심장하다. 누가 누구를 사냥하고 싶은 것일까? 사냥의 대상으로 지목된 짐승 혹은 인간은 누구일까? 마지막엔 진짜 사냥꾼이 밝혀질까?

<헌트>의 시대적 배경은 1980년대 초반.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의 18년 장기집권을 부하였던 군인이 끝냈고, 또 다른 정치지향형 군인들이 등장해 이른바 '군사독재'를 이어가던 이 시기 역시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져 우리에게 익숙하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내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 이 나라를 독단과 교의가 지배하던 중세 유럽의 어둠 속으로 뒷걸음질 치게 했던 그 두 기관에도 의인(義人)은 있었던 모양이다. 영화 <헌트>에 따르자면 그렇다는 이야기.

영화는 군사독재 시절 최고의 권력기관 내에서 벌어지는 막후 암투와 50대 이상의 관객들에겐 아직도 기억 속에 또렷이 남은 역사적 사건들을 적절히 버무려 흥미로운 2시간 5분을 선물한다.

이정재와 정우성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근사한 슈트를 차려 입고 뛰어다니며 폼나게 총질을 한다. 이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둘의 팬들은 열광할 게 분명한 일.

몇몇 부분에선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의 냄새도 난다. 비유하자면 애써 공부한 티가 이곳저곳에서 난다는 것. 연기자로선 베테랑이지만 감독으로서는 신출내기인 이정재의 연출력이 제법이다.

그러나, <헌트>의 배경이 되는 1980년대를 몸으로 겪으며 살았고, 한국 현대사에 관심을 가지고 제대로 공부한 이들이라면 영화가 밍밍하고 싱거울 수도 있다. 이를 감안하고 보시길.
 
우리를 삼키는 괴물의 이름은 욕망... <놉>
 

조던 필 감독의 신작 <놉>의 포스터. ⓒ 영화 홈페이지

 
매주 극장에 걸리는 천편일률적이고, 그저 그런 상업영화에 물린 사람들이라면 조던 필(Jordan Peele)이라는 이름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조던 필은 전작 <겟 아웃>과 <어스>를 통해 그가 태어나 활동하고 있는 미국만이 아닌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감독이다. 한국에도 적지 않은 추종자를 거느린.

그의 영화는 치밀한 복선 깔기와 예상을 뛰어넘는 의외의 결말, 능수능란한 배경 음악 사용과 오래 기억될 은유와 상징을 두루 보여주고 있어 '영화 보기의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평론가와 관객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연출가 조던 필. 여전히 백인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할리우드에서 흑인이 감독하고, 흑인이 주연을 맡는 드문 영화가 그의 작품들이다.

조던 필은 초지일관 흑인이 연관된 정치·사회적 문제에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도 꽤 유명하다. 다만, 그걸 대놓고 드러내지 않고, 보일 듯 말 듯 영화 속에 녹여내고 있으니 세련되기까지 했다.

그의 신작 <놉(Nope)>은 스토리가 아주 간명해 그걸 언급하면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이들에게 욕을 얻어먹을 게 분명하다. 스포일러 유포는 기자의 몫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 정도는 말해도 되지 않을까? 영화엔 각기 다른 이유에 의해 무언가의 커다란 입 속으로 삼켜지는 인간들이 수없이 등장한다.

인간은 왜 위기에 처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욕망을 포기하지 못할까? 어째서 그렇게 태어났을까? <놉>엔 이 질문에 대한 조던 필의 답이 담겼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경북매일>에 게재된 것을 일부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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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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