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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죽었는데 국가는 해줄 게 없다고만 한다"

[이영광의 '온에어' 179] MBC < PD수첩 > 조윤미 PD

22.07.18 10:01최종업데이트22.07.1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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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한 가족에게 비보가 전해졌다. ROTC 출신으로 한 달 전 임관한 동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군의 설명은 축구 보다가 졸도해 사망했다는 것이었다. 가족은 사망의 진상을 알고 싶었지만 알지 못했다. 그러나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에 당시 같이 훈련 받던 동기가 진정해 37년 만에 진실을 알게 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12일 MBC < PD수첩 >에서는 '동생의 죽음 그리고... 46명의 목격자-故 최승균 소위 사망사건' 편이 방송되었다. ROTC로 1984년 임관한 최승균 소위가 어떻게 사망하게 되었는지 당시 동기들의 증언과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를 취재한 내용을 담았다. 취재 이야기가 궁금해 지난 13일 '동생의 죽음 그리고... 46명의 목격자-故 최승균 소위 사망사건' 편을 취재한 조윤미 PD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만났다. 다음은 조 PD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목에 줄 묶어 끌고 다니고, 잔반통에 넣어"
 

조윤미 MBC PD ⓒ 조윤미 제공

 
- 지난 12일 방송된 MBC < PD수첩 > '동생의 죽음 그리고... 46명의 목격자– 故 최승균 소위 사망사건' 편을 연출하셨잖아요. 방송 끝낸 소회가 어떠신가요?
"저희 프로그램이 시사 프로그램인데 (이게) 시의적인 아이템이라고 보기는 어렵잖아요. 그래서 걱정 많이 했는데, 그래도 방송 이후에 최승균 소위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릴 기회가 된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 1984년 육군전투병과학교에서 일어난 최승균 소위의 충격적인 사망사건에 대한 내용이잖아요. 어떻게 취재하게 되었어요?
"저희에게 최승균 소위의 누님께서 제보를 주셨습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받았던 결정문을 저희에게 보내주셨는데 차마 읽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 참혹한 상황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더구나 이 사건은 이 상황을 목격하고 트라우마 속에 살고 계신 분이 수십 명이 되셨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그렇게 많은 분께 상처가 됐다면 아직도 진행 중인 사건이구나 싶어서 취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왜 그 당시엔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지금도 군에서 일어난 사건·사고에 대해 진상을 밝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군사 정권 시절에 군에서 일어난 사망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건 더욱 어려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유가족의 경우 군에서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진실을 알기 힘들었고요, 동기들은 훈련 중에 자리를 이탈할 수 없기 때문에 훈련이 끝난후 유가족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유가족이 다시 재수사를 요청했지만, 군에서는 계속 '과로사'라는 말로만 일축했다고 하니 개인이 군을 상대로 이기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 그건 왜곡을 넘어 조작한 거 아닌가요?
"그렇죠. 과로사로 조작이 된 거죠. 군에서의 구타 가혹행위가 은폐되고 훈련이 너무 고돼서 사망하신 분으로 둔갑이 되었던 겁니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서 조사한 다른 사건들도 봤을 때 돌아가신 분은 말이 없으니까 상관의 죄를 뒤집어쓴다든가, 본인이 잘못해서 사망한 걸로 되든가 이렇게 돌아가신 분의 명예가 훼손되는 일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 최승균 소위 동기였던 이상봉씨 진정서로 진실규명을 하게 된 거잖아요. 이상봉씨는 어떻게 진정서를 보내게 됐다고 하나요?
"이상봉씨는 이름도 모르는 그 친구의 죽음이 평생 사무치게 가슴 아프셨나 봐요. 이 친구의 죽음이 사실은 억울한 죽음이었고 가해자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는 걸 세상에 밝히고 싶었는데 전역 후 시간이 지나고 나니 엄두가 안 나셨던 것 같아요.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가 2018년 9월에 출범했거든요. 그 뉴스를 보시고 진정서를 보내신 거죠. 그 당시에 건강이 안 좋았는데, 죽어서 친구 얼굴을 못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셨다고 합니다."

- 이상봉씨도 엄청 맞은 거 같던데.
"본인이 맞아봐서 아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주 어마어마한 얼차려와 사람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구타였다는 걸 자기가 맞아봐서 안다는 거죠. 죽음의 공포를 느낄 정도의 구타였다고 하니까요."

- 어쩌면 이상봉씨는 자기도 그렇게 될 수 있단 생각에 무서웠을 거 같아요.
"맞습니다. 그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이 친구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를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지는 거예요. 유격 첫날 낙오됐을 때는 최승균 소위와 같이 맞았는데, 최승균 소위가 나중에 돌을 들었던 사건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돌을 던진 것도 아니고 '그만 좀 때려라' 수준의 제스처 정도였는데 이후 최 소위에게 구타와 가혹 행위가 집중된 거죠."

- 교관들이 최승균 소위 목에 로프를 감아 끌고 다녔다고 나오던데.
"그게 가장 나쁜 짓 같아요. 얘기 들어보니까 최 소위의 목에 밧줄 감고 교관은 그 밧줄을 자기 허리에 찼답니다. 그래서 자기 가는 대로 끌려다니도록 하고 다녔다고 증언하시고요.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고 하세요."

- 모욕적이었을 거 같아요. 완전 개 취급한 거잖아요.
"그렇죠. 더군다나 ROTC잖아요. 장교분들은 선발된 집단으로서 자부심, 명예 같은 게 있으신 분들입니다. 근데 일반 사병들 앞에서 장교로서의 명예를 무너뜨리는 일일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완전히 뭉개버리는 행위를 했던 거죠. 인터뷰해주셨던 분 중에 한 분은 '아마 살아있어도 제정신으로 못 살 거라고, 보는 우리도 지금까지 너무 괴로운데 본인은 얼마나 그 트라우마가 오래갈 것이냐'라고 하시더라고요.

목줄을 매고 끌고 다니는 건 훈련하고 상관없는 거잖아요. 그건 도대체 누구 생각이었는지, 누가 사람을 그렇게 개처럼 끌고 다닐 생각을 한 건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짓은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유격대장이 시킨 거라면 상관의 위법한 지시에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고, 교관들이 한 짓이라면 자기들이 하는 일은 무슨 짓을 해도 위법하거나 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게끔 만든 그 끔찍한 권력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 MBC

 
- 잔반 있는 통에 집어넣었다면서요.
"근데 그건 최승균 소위 혼자 받았던 건 아니랍니다. 선착순 시키잖아요. 그래서 끝에서 몇 명, 선녀탕에 들어가라는 거죠. 최승균 소위는 부상당한 상태에서 집중적으로 구타를 당해서 다른 동기들을 앞질러 갈 수 없으니까 당연히 계속 뒤처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오물통 얼차려를 계속 받은 거죠. 음식물 쓰레기가 섞여 있는 오물통에서 얼차려를 받았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었는데 다른 분들도 받긴 받았다고 합니다."

- 부검보고서가 없다면서요?
"진상규명위원회의 송보원 조사관이 굉장히 여러 차례에 걸쳐 사망 관련 자료를 확보했는데 지금 남아있는 사진은 없어요. 사망 관련 다른 서류들은 있는데 그것만 없는 거죠. 다른 여러 자료로 봤을 때 부검은 진행된 게 확실한데 사진과 감정서가 없으니 너무 답답하죠."

- 당시 군의관은 PD님이 찾아갔을 땐 기억 안 난다고 했지만, 전화해서 얘기했잖아요. 왜 전화했을까요?
"'내 책임 아니었다, 상태가 좋아졌다. 상태가 아주 나쁘면 계속 의무실에 데리고 있었을 텐데 상태가 좋아져서 내보낸 거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근데 과연 그분 상태가 좋아졌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수많은 분이 최 소위가 누렁 코를 흘리고 있는데 닦지도 못하는 수준이었다고 이야기하셨고 이후 ROTC 선배가 그때 다른 일정이 있으셔서 잠깐 들르셨는데 '저 친구 왜 병원에 안 보내냐 빨리 응급 후송 보내라'라고 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고 하는데 군의관 혼자 상태가 괜찮았다고 계속 주장하니까요."

- 차라리 기억 안 난다로 끝났다면 40년 전 일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전화해서 그 사람이 문제였고 나는 아무 잘못 없다고 하는 게 더 화가 나는 것 같아요.
"맞아요. 이분은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책임을 안 느끼셨을까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보셨다면 하는 생각에 갔던 건데 현장에서든 전화 통화에서든 이분은 책임을 안 느끼신다는 걸 확인하게 된 거죠. 그 교관도 그러잖아요. 내 잘못 아니라고 돌아가신 분이 신체적으로 어떤 결함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식으로 얘기하잖아요. 근데 그렇지 않거든요. 그분은 건강하신 분이었으니까요."

두 번 우는 유족들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 MBC

 
- 통화한 분이 가혹행위 했을 거로 추정되는 교관인가요?
"그분입니다. ○○대 체육학과 출신 ROTC 19기 선배가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가장 가혹하게 했다는 게 동기들의 공통된 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대 체육학과 ROTC 19기 1984년도 동복 유격장에서 근무하셨던 분을 찾았던 거죠. 근데 그분을 찾았더니 그분이 당시에 ○○대 체육학과 ROTC 출신의 19기 교관은 나 한 명이었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당사자 확인하게 된 겁니다. 아마 그분이 그렇게 확인해 준 건 사람들이 나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술술 얘기하시지 않았나 싶어요."

- 아무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이 없네요.
"없어 보였어요. 그게 가장 분통 터지는 일이죠. 옆에서 봤던 사람들은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저건 훈련이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할 당시에 내가 하는 온갖 나쁜 짓을 이건 해도 돼, 이게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술술 얘기한 거 아닐까요."

- 이 사건에 대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은 거잖아요. 그럼 이대로 끝난 건가요?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그 당시 책임자들에게 형사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긴 합니다. 군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새롭게 어떤 사인이 바뀌거나 이번 사건처럼 억울하게 우리 애가 죽었구나라고 뒤늦게라도 진상을 알게 되신 분들이 있잖아요. 제일 답답한 부분이 그거예요. 공소시효가 지나서 가해자들에게 어떠한 책임도 물을 수 없다는 게 유가족분들도 그게 너무 답답하다는 거죠. 그러니까 국방부에 얘기하면 계속 그 얘기만 한대요 공소시효도 지났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냐, 그리고 다들 제대하셨는데 우리가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 그 말만 되풀이하는데 너무 화나더라고요."

-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닌가요?
"아무리 옛날 일이라도 군대에서 벌어진 일이고 그로 인한 피해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그거밖에 없는 것인가 싶더라고요. 2018년도부터 활동을 시작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서 새롭게 밝혀낸 사건들이 많아요. 그러니까 내 가족의 죽음의 원인을 새롭게 알게 됐다, 이런 사건들이 거의 500건 가까이 되거든요. 그 하나하나가 얼마나 사연이 많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 그분들이 결국은 우리 국방부나 국가로부터 어떠한 사과나 위로받지 못한 거예요. 이번 사건 같은 경우만 해도 국가가 잘못한 거고 국가가 잘못해서 은폐된 사건이잖아요. 원칙적으로는 국가 배상을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MBC < PD수첩 >의 한 장면. ⓒ MBC

 
- 배상은 둘째고 사과라도 하면 좋겠는데 사과도 안 하는 거잖아요?
"그게 가장 화나는 문제죠. 뭐 해줄 수 있는 게 없대요. 공소시효 끝났는데 우리가 뭘 합니까 이런 태도였으니까 유족 입장에서는 두 번 우는 거죠. 이렇게 억울하게 죽었고 두 번째, 이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새롭게 알았는데 국가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만 하니까요."

- 동기에게 인터뷰 제의했을 때 어땠어요?
"인터뷰 설득이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이거라도 해야 되지 않겠냐는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셨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이 억울한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고 책임자들이 이 방송을 통해서 당신들이 얼마나 나쁜 짓을 했는지, 우리는 당신들이 한 일을 알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 취재하며 느낀 점 있을까요?
"그 당시에 그 교관들의 행동은 광주 518 때도 그렇지만 어떤 조직의 이성이 마비되면 사람은 한없이 악해질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적절하게 통제해 주고 감시하고 조절해 주는 그런 시스템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했고요. 어쨌든 가장 크게 느낀 건 30년이 넘는 사건도 과거를 정리하고 짚을 거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그 고통은 평생 간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 방송은 옛날 사건이라도 되돌아볼 사건이 있다면 되돌아봐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좀 했습니다."

- 취재할 때 어려운 점이 뭐였어요?
"가해자들을 찾는 거요. 이름이 없어요. 이름을 당시 전투병과 학교에 물어봐도 기록이 없다면서 안 줬기 때문에 그건 정말 너무나 찾고 싶었어요."

- 아까 얘기 하셨지만 취재했는데 방송에 못 담은 게 있나요?
"사실 그 얘기를 좀 하고 싶었거든요. 이분들은 왜 지금 나와서 뒤늦게 얘기를 하냐 근데 그런 상황은 아니었고 당시에도 어떤 자발적인 얼차려를 하면서 집단행동을 하면서 최 소위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행위를 막고자 노력하셨던 분들이거든요. 그거에 대해서 저희가 방송에는 담지는 못했어요."
덧붙이는 글 '전북의 소리'에도 중복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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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너뷰'를 연재히고 있는 이영광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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