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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만에 재개장, 비틀스 영감의 원천

[비틀스의 수업시대] 비틀스의 리시케시 체류 후일담

22.08.13 11:31최종업데이트22.08.1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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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리시는 우리에게 좋은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는 그분과 육체적으로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그분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조지 해리슨)  

1968년 4월 11일 존 레논과 신시아 레논, 조지 해리슨과 패티 보이드 등 남아있던 비틀스 일행은 리시케시 아슈람을 떠나 델리로 향했다. 2월 16일 리시케시에 도착한 지 정확히 8주 만이었다. 델리에 도착해 존 레논 부부는 첫 비행기를 타고 런던으로 돌아갔고, 조지 해리슨 부부는 라비 샹카르가 있는 남인도 마드라스(현 첸나이)로 가서 열흘 간 더 인도에 머물다가 4월 21일 귀국했다. 

8주간의 체류 소감

런던 도착 며칠 뒤 존 레논은 기자들에게 지난 8주간의 리시케시 체류 소감을 밝혔다. 

"명상 코스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배웠습니다. 의무로서가 아니라 도움이 되기 때문에 매일 명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명상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틀스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에 명상 지도자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인도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20곡 이상의 곡을 썼고, 이는 새로운 LP 음반을 만들기에 충분한 양입니다. 우리는 곧바로 녹음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리시케시 체류를 끝내고 런던으로 모두 복귀한 비틀스는 애플사를 설립해 새 사업을 시작하는 한편, 5월 초부터는 조지 해리슨의 에셔 자택에 모여 인도에서 만든 곡을 가지고 데모 녹음을 하는 등 비즈니스와 음악 활동을 재개했다. 이후 녹음을 시작한지 6개월 만인 1968년 11월, 그룹은 대망의 신보 <화이트 앨범>을 발표했다. 이 두 장짜리 LP에 실린 30곡 가운데 19곡이 리시케시에서 탄생한 작품이었다. 

비틀스 멤버들은 인도에 다녀온 뒤로도 명상을 이어나갔다.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는 그 뒤로 줄곧 명상과 채식을 실천해왔다.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존 레논도 명상이 창의적인 영감의 원천이라고 종종 말하곤 했다. 비록 마하리시와의 관계는 틀어졌지만, 비틀스의 리시케시 체류 영향 덕에 초월명상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서구 세계 곳곳에 요가명상 센터가 빠르게 보급되어 나갔다.

오랜 세월이 흐른 2007년, 폴 매카트니는 딸 스텔라 매카트니를 데리고 네덜란드에 머물던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를 방문해 화해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어 2009년 4월에는 링고 스타와 함께 초월명상 보급단체인 데이비드 린치 재단의 청소년 명상 캠페인 기금 마련 자선 콘서트에 출연, 1968년 리시케시 체류 당시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에게 영감을 받아 작곡한 '코즈미컬리 컨셔스(Cosmically Conscious)'를 열창했다. 폴 매카트니는 같은 해 12월 코펜하겐 기후변화 토론회에서 지구온난화를 줄이는 방법으로 '고기 없는 월요일' 운동을 제안하며 환경보호 활동가로 활약하기도 했다.
 

비틀스 맴버 링고 스타(왼쪽)와 폴 매카트니. ⓒ 연합뉴스

 

멤버 중에서는 조지 해리슨이 유일하게 인도 음악과 철학, 영성에 관한 관심을 끝까지 이어갔다. 시타르 스승 라비 샹카르와 평생 사제의 정을 쌓으면서 여러 인도 음악가들과 교류했다. 또한 영적 스승 A. C. 박띠베단따 스와미 쁘라부빠다가 이끄는 '크리슈나 의식', 즉 '하레 크리슈나 운동'의 일원이자 후원자가 되어 박띠 요가를 수행하고 크리슈나 신을 섬겼다. 1969년 그는 런던 라다 크리슈나 템플의 하레 크리슈나 신자들과 함께 '마하 만트라'로 알려진 <하레 크리슈나 만트라>를 녹음해 음반으로 발표하는 한편, 1970년에는 솔로 히트 싱글 <마이 스위트 로드>에 하레 크리슈나 만트라를 삽입하여 신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비틀스가 리시케시를 떠난 이후 그들에 관해 말을 삼가던 마하리시는 조지 해리슨의 공개 사과 이후 비틀스를 용서했느냐는 질문에 "나는 결코 천사들에게 화가 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는 오히려 그들을 감쌌다.

2008년 마하리시가 사망했을 때 폴 매카트니는 "그분에 관한 내 기억은 즐거운 기억뿐입니다. 그 분은 세상 사람들과 화합의 대의를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일했던 위인이었습니다"라고 헌정했다. 또 링고 스타는 "마하리시를 만난 것은 매우 축복받은 것 같습니다. 그분은 나에게 누구도 뺏을 수 없는 만트라를 주었고, 나는 여전히 그 만트라를 사용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오노 요코는 죽은 남편 존 레논을 대신해 "존이 여기 있었다면, 마하리시가 세계를 위해 한 일을 인식하고 인정하며 감사하는 첫 번째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라고 추모했다. 

리시케시에서 비틀스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다른 유명 인사들 대부분도 명상을 계속 실천하고 유지해나가며 건강한 삶을 살았다. 존 레논에게 핑거스타일 기타주법을 전수해줬던 도노반은 초월명상의 든든한 지지자로 남아 현재는 스코틀랜드에 대학을 설립해 초월명상을 가르치고 있다. 또 아슈람에 몰래 육포를 반입했던 마이크 러브는 1971년 명상 지도자가 되어 이후 50년 넘게 채식주의자로 살고 있다. 남들보다 1~2년 빠른 1966년 초월명상에 입문한 재즈 플루트 연주자 폴 혼 역시 공인받은 명상 지도자로 활약했다. 

한때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가 총애했던 미아 패로는 할리우드로 돌아가 배우로서 승승장구했으나, 교제하던 유명 영화감독 우디 앨런이 그녀가 입양한 한국계 순이와 불륜을 저질러 두 사람이 결혼까지 하는 모습을 씁쓸하게 지켜봐야 했다. 미아 패로의 여동생이자 <화이트 앨범> 명곡 '디어 프루던스'의 주인공인 프루던스 패로는 성공적인 명상 교사, 작가, 영화 제작자로 활약했다. 아슈람 근처 정글로 호랑이 사냥을 나섰다가 존 레논에게 '방갈로 빌'로 낙인찍힌 리처드 A. 쿡 3세, 즉 릭 쿡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의 사진기자로 40년 넘게 일했다. 

리시케시 아슈람에서 악역으로 활약한 알렉시스 마르다스는 그 뒤로도 계속 비틀스의 신임을 받아 애플 일렉트로닉스의 대표 자리까지 올랐으나, 애플 스튜디오 설계를 맡았다가 실력이 탄로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다. 곧이어 또다른 빌런, 앨런 클라인이 비틀스의 새 매니저로 들어와 애플 일렉트로닉스를 폐쇄하자, 알렉스 마르다스는 마침내 비틀스 곁에서 떨어져나갔다. 그는 이후 보안 컨설턴트가 되어 오랫동안 일했으며, 특히 자기를 사기꾼이라 비판하는 언론을 상대로 꾸준히 법정 다툼을 벌였다. 그리고 2017년 1월 폐렴에 걸려 74세의 나이로 아테네에서 사망했다.

'비틀스 아슈람'으로 재개장
 

비틀스 아슈람의 트레이드마크인 돔형 명상실. 이 돌로 된 명상실에 들어가 명상 포즈로 인증샷을 찍는 것이 팬들의 순례코스가 되었다. ⓒ 고영탁

 
비틀스가 머물렀던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의 아슈람은 1981년 마하리시가 그곳을 떠나면서 30년 이상 버려진 상태로 남아있었다. 비록 문은 오랫동안 굳게 닫혀있었지만, 그 사이 비틀스를 추앙하는 열성 팬들은 아슈람을 방문해서 담을 넘거나, 입구 옆 개구멍을 통해 몰래 들어가 곳곳을 순례했다. 팬들은 돔형 명상실에 들어가 명상 체험을 해보거나, 본관이었던 삿상홀(현 비틀스 대성당)에 앉아 시타르를 연주하거나, 방문기를 쓰거나, 갖가지 그래피티 낙서를 하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팬들 사이에서 순례지로 유명했던 아슈람을 지역 산림청이 인수해 2015년 '비틀스 아슈람'이라는 이름으로 재개장했다.

2018년 3월에는 비틀스 방문 50주년을 맞이해 리시케시에서 특별한 기념식이 열렸다. 제 29회 국제 요가 페스티벌과 맞물려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는 인도의 영적 지도자이자 리시케시에서 가장 큰 요가명상원인 파르마트 니케탄 아슈람의 책임자인 스와미 치다난드 사라스와띠가 94개국에서 온 요가 페스티벌 참가자들, 산림청 장관 등과 함께 파르마트 니케탄에서 비틀스 아슈람까지 행진을 벌였다. 이날 스와미 치다난드 사라스와띠는 비틀스에게 경의를 표했다. 

"비틀스가 인도에 왔을 때 그들의 모든 여정은 슬픔에서 은혜로 바뀌었습니다. 마하리시를 직접 만난 친견 후에 그들의 모든 삶은 은혜로 가득찼습니다. 비틀스는 그때 경험한 영감과 변화를 그들의 노래를 통해 공유했으며, 그 노래는 수백만 명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비록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해 발길은 뚝 끊겼지만, 이제 팬들은 먼저 다녀간 사람들처럼 위험하게 담을 넘거나 개구멍으로 몰래 들어갈 필요가 없다. 리시케시에 도착하면 잘 정비된 '비틀스 트레일'을 따라 편하고 안전하게 비틀스의 발자취를 더듬을 수 있다. 그룹이 갠지스강을 건넜던 락슈만 줄라 현수교 근처에는 '비틀스 카페'가 있다. 테라스에서 아름다운 갠지스강을 바라보며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전세계에서 온 순례객들과 소통할 수도 있다. 

그리고 연재를 마치며 리시케시에서의 비틀스 수업시대를 간접 경험해보고 싶은 독자 분들께 2018년에 발매된 '화이트 앨범' 50주년 기념 슈퍼 디럭스반 3번 CD에 수록된 에셔 데모 곡들을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서라도 들어보시길 권해드린다.

이 데모 곡 대부분은 온전히 리시케시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며, 따라서 비틀스가 리시케시에서 느끼고 경험했던 영감과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리시케시 체류 당시의 평화롭고 친환경적인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운드는 덤이다. 
덧붙이는 글 저서로는 <조지 해리슨: 리버풀에서 갠지스까지>(오픈하우스, 2011), <살림지식총서 255 비틀스>(살림출판사, 200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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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와 조지 해리슨을 좋아하는 비틀스 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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