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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도 이슈도 목마른 한국농구, 2022년엔 달라질까

[주장] 프로농구 구성원 전체가 발전 방안 고민해야

21.12.31 13:35최종업데이트21.12.3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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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념촬영하는 10개 구단 감독 9월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JW 메리어트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21-2022 KGC인삼공사 정관장 프로농구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10개 구단 감독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농구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는 벌써 10년도 넘게 지겹도록 반복되는 지적이다. 다시 말하면 같은 고민과 현실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뾰족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냉정히 말해 이제는 야구, 축구, 배구와 더불어 국내 4대 프로스포츠라고 불리기에도 민망할 만큼 그 인기와 위상이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농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알 만한 국제적인 대형 스타도, 대중의 시선을 끌거나 열광을 자아낼 만한 빅 이슈 거리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한국 농구의 무능함이 부른 자업자득이다.
 
몇 년째 전세계를 괴롭히고 있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국내 프로스포츠도 운영에 어려움을 겪은 가운데 프로농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2019-2020시즌 코로나19 여파로 사상 최초로 정규리그를 도중에 중단해야 했던 남녀 프로농구는 다행히 2020-2021시즌은 정상적인 완주에 성공했고 현재 2021-2022시즌을 소화 중이다.
 
대부분의 경기가 무관중으로 치러졌던 2020년과 달리 올해 중·후반부터는 그나마 방역 수칙 완화로 인해 부분적인 유관중으로 전환되어 관중동원에 다소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하지만 방역 규칙상 까다로운 조건들이 붙는 데다 최근 코로나 재확산으로 WKBL 올스타전, KBL 농구영신 이벤트 등이 잇달아 취소되는 등 흥행 회복에는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남녀 프로농구 모두 '이변의 우승팀' 탄생

남녀 프로농구는 올해 모두 이변의 우승팀이 탄생했다. 안양 KGC 인삼공사는 2020-21시즌 정규리그 3위에 그쳤으나 플레이오프에서는 '설교수' 제러드 설린저를 앞세워 부산 KT(현 수원), 울산 현대모비스, 그리고 정규리그 우승팀 전주 KCC까지 연파하고 10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플레이오프 무패 우승은 2005-2006시즌 서울 삼성, 2012-2013시즌 현대모비스에 이어 역대 3번째지만 6강 플레이오프부터 시작한 팀의 무패우승은 KGC가 최초였다. 또한 KGC는 2011-12시즌과 2016-17시즌에 이어 3번째 우승을 차지하며 프로농구 명문의 반열에 올랐다.
 
여자농구 WKBL에서는 용인 삼성생명이 '4위의 기적'을 이뤄냈다. 정규리그에서는 아산 우리은행이 역대 최다인 통산 13번째 우승을 차지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6개 구단 중 4위로 막차를 탔던 삼성생명이 1위 우리은행에 이어 대형센터 박지수를 앞세운 청주 KB스타즈마저 제압하고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남녀프로농구를 통틀어 정규리그 4위팀이 우승컵을 들어올린 것은 삼성생명이 역대 최초였다.
 
1990년대생 'MZ세대'의 약진은 한국농구의 세대교체를 주도하고 있다. 송교창(KCC)은 프로농구 역사상 고졸 출신으로는 최초로 2020-21시즌 정규리그 MVP에 등극했다. 송교창의 성공을 바탕으로 최근 차민석-이원석(이상 삼성, 프로농구 신인 1순위) 등으로 이어진 아마추어 유망주들의 얼리 엔트리(프로 조기 진출) 열풍은, 선수 수명과 전성기가 짧았던 성인농구의 지형도 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여기에 허웅(원주 DB)-허훈(수원 KT) 형제, 양홍석(KT) 등도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이며 프로농구의 간판스타로 떠올랐다. 여자농구 정규리그 MVP 박지수는 지난 2020-21시즌 정규리그 전 경기(30경기) 더블-더블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데 이어 올해도 KB의 단독 선두를 이끌며 한국농구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프로선수는 아니지만 이현중(데이비슨대)은 뛰어난 잠재력을 인정받으며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농구 1부리그에서 주전으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고, 대한민국 성인 국가대표팀에도 승선했다. 2미터의 장신슈터인 이현중은 하승진(은퇴)에 이어 한국인 선수로는 역대 2번째 NBA(미프로농구) 진출도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이현중과 함께 성인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여준석(고려대), 하윤기(수원 KT) 등도 한국농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유망주들로 꼽힌다.
 
하지만 한국농구의 국제 경쟁력은 올해도 아쉬움을 남겼다. 김상식 전 남자농구대표팀 감독은 국제농구연맹(FIBA) 아시아컵 예선전(window3)에 나설 대표팀 엔트리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프로구단들과 갈등을 빚었고 계약 만료 시기와도 겹치며 재계약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자진사퇴했다.
 
그 뒤를 이은 조상현 감독은 젊은 선수들로 진용을 꾸려 FIBA 아시아컵 예선에서 조 2위를 기록하며 본선행에 성공했지만, 이어진 올림픽 최종예선에서는 베네수엘라와 리투아니아에게 2연패를 당하며 본선진출에 실패했다. 한국 남자농구는 1996 애틀랜타 대회를 끝으로 무려 25년째 올림픽 본선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으며 최종예선에서만 무려 6연패를 당하며 프로 출범 이후로 올림픽과의 인연이 끊긴 상태였다.
 
A대표팀에 이어 '한국농구의 미래'로 꼽혔던 청소년 대표팀도 7월에 열린 국제농구연맹(FIBA) U-19 월드컵 2021에서 5연패 끝에 순위결정전에서 아시아팀인 일본을 꺾고 16개국 중 15위에 그쳤다. 객관적 전력차에다가 투명하지 못한 선수-감독선발을 둘러싼 잡음까지 겹치며 농구팬들의 싸늘한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 [올림픽] 협동 수비 8월 1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여자농구 조별리그 A조 3차전 한국과 세르비아의 경기. 한국 진안과 김단비가 리바운드볼을 노리고 있다. ⓒ 연합뉴스

 
그나마 여자농구는 2008 베이징대회 이후 13년 만의 올림픽 본선진출에 성공하며 최소한의 자존심을 세웠다. 전주원 감독이 이끌었던 여자대표팀은 비록 본선에서 3전 전패에 그쳤지만 최약체라는 예상을 깨고 스페인, 세르비아, 캐나다 등 세계의 강호들도 대등한 승부를 펼치며 한국식 농구의 저력을 증명했다.
 
여자농구의 전설인 전주원 감독은 여자농구 최초의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자, 한국스포츠 최초의 단체 구기종목 여성 감독이라는 의미있는 기록을 세웠다. 전주원에 이어 대표팀 지휘봉은 또다른 전설이자 여성 지도자인 정선민 감독이 물려받아 2021 FIBA 아시아컵에서 4위를 차지하며 내년 2월에 열리는 2022 호주 여자월드컵 최종예선 출전권을 획득했다. 특이하게도 남녀대표팀 사령탑 모두 프로 감독 경력은 없는 코치 출신으로 대표팀에서 첫 성인팀 감독 경력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도 기묘한 공통점이다.
 
스타 없고, 볼거리 없고

한국농구는 남녀 모두 이제 아시아권에서도 정상을 장담할 수 없게된 지 오래다. 기존의 라이벌인 중국과 일본, 중동팀들에 이어 오세아니아 대륙이 아시아에 편입되면서 호주와 뉴질랜드같은 강적들까지 추가되었다. 앞으로 아시아 정상은 물론이고 올림픽이나 월드컵 본선같은 큰 무대로 나아가는 길이 더욱 험난해질 전망이다.
 
장기적인 투자와 비전 없이는 아시아에서도 2류에 머물 수밖에 없다. 아시아의 라이벌인 일본 여자농구가 올림픽에서 비록 홈어드밴티지가 있었다고 해도 미국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는 것은, 수십년째 세계무대에서 전혀 통하지 않는 한국식 농구만을 고집해왔던 국내 농구계에도 많은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지난 여름 프로농구계는 연고지 이전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인천에서 24년 역사를 이어왔던 전자랜드가 농구단 운영을 포기하기로 결정하면서 선수단을 인수한 한국가스공사는 대구에 새 둥지를 틀었다. 수원과 대구도 훌륭한 대도시지만, 아시안게임 우승의 역사를 간직했던 인천과 부산을 포기한 것은 한국농구 인프라에 있어서 큰 손실이다. KBL은 10개 구단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있는 기형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 야구-축구와 달리 프로농구에 지역연고제 정책이 여전히 유명무실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기도 하다.
 
프로농구는 2021-22시즌이 진행중인 가운데 남자농구는 수원 KT와 서울 SK가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으며, 여자농구는 박지수를 앞세운 KB스타즈의 독주체제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짜릿한 명승부와 화려한 기록행진에도 불구하고 프로농구 자체는 큰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축구의 손흥민, 배구의 김연경, 야구의 류현진 등 다른 4대 스포츠들은 세계무대에서도 인정받는 화제성 있는 스타들을 보유하고 있다. 해당 종목에 관심이 없는 대중이라도 이런 슈퍼스타들의 이름과 활약상 정도는 모두가 안다. 또한 축구대표팀은 사상 최초의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여자배구대표팀은 도쿄올림픽에서 깜짝 4강신화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국제경쟁력으로 한국 스포츠의 명예를 높였다. 그에 비하여 한국농구에서 올 한 해 국민적으로 화제가 될 만한 스타나 감동을 줄 만한 이슈를 제시한 것이 과연 무엇이 있었던가.
 

5월 9일 경기도 안양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4차전 안양 KGC 인삼공사와 전주 KCC 이지스의 경기. KGC 설린저가 슛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국내 선수들의 비중이 늘었다고 하지만 남자프로농구는 여전히 외국인 선수들의 잔치다. 지난 시즌 안양 KGC의 플레이오프 무패 우승만 해도 정규시즌 말미에 합류한 제러드 설린저라는 특급 외국인 선수의 원맨쇼가 사실상 절대적이었다.
 
다른 종목과 비교해도 농구는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유난히 높으며 국내 선수를 키우는 것보다 외국인 선수 한 명을 잘뽑는 것이 시즌 성적을 좌우할 정도다. KBL은 출범 이래 귀화혼혈선수를 제외한 토종 득점왕을 아직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자연히 국내 정상급 선수들이라도 외국인 선수를 받쳐주는 조연에 머물 수밖에 없다. 반대로 여자농구는 외국인 선수제도를 아예 폐지하면서 대형센터 박지수를 1대 1로 상대할 수 있는 선수가 사실상 없다는 것이 전력불균형을 초래했다.
 
심지어 아직도 '한국농구'하면 대중들의 머릿속에 떠오를 만한 대표적인 인물들은 십중팔구 현역 선수가 아닌 은퇴한 구시대의 스타들이다. 서장훈, 허재, 현주엽 등은 현재 농구계 현장을 떠났거나 지도자로서는 실패했음에도, 의외로 예능 방송활동을 통하여 인지도를 높이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현재 남자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한 허웅과 허훈 형제가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도 온전히 본인들만의 스타성만이라기보다는, '농구대통령 허재의 아들'이라는 특수한 관계성에 빚진 면이 컸음을 부정할 수 없다.
 
방송에서도 <핸섬 타이거즈> <뭉쳐야쏜다>등 농구를 소재로 한 프로그램들이 몇차례 등장했으나 대부분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졌다. 특히 <뭉쏜>은 방송 말미에 승부조작으로 영구제명된 강동희까지 출연시켰다가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했다. 사실 미디어에 더 활발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농구를 알리고 사랑받아야 할 주체는 현역 선수들이다. 그만큼 한국농구라는 소재 자체가 아직도 낡은 '농구대잔치 시대의 향수'에만 의존하며 새로운 콘텐츠와 매력포인트를 발굴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드러낸 장면이다.
 
약 석 달 전, 남자 프로농구 2021-22시즌 개막을 앞두고 지난 9월 30일 열렸던 미디어데이는, 최근 한국농구의 초라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의미심장한 무대였다. 의례적으로 진행되던 행사에서 '농구에 대한 인기와 관심이 더 이상 예전같지 않은데, 앞으로 어떻게 회복해야할까'라는 다소 뼈아픈 질문이 나오자, 현장에 있던 10개 구단 감독들이 일제히 표정이 굳으며 눈치를 보는 모습이 백미였다.
 
당시 전창진 KCC 감독이나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 등 맏형급 지도자들이 총대를 메고 '선수들의 실력과 스타성 부족', 'KBL의 소통과 마케팅 부재', '프로구단들의 성적지상주의와 이기주의' 등을 거론하며 쓴소리를 늘어놓아 눈길을 끌었다. 이는 다시 말하면 프로농구 구성원들도 문제가 무엇인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의미였다.
 
당연히 농구인들은 경기력을 높이고 볼거리를 만들어야내야 할 의무가 있다. KBL과 구단들은 뉴미디어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마케팅 전략과 창의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당장의 성적이나 이익만 지키기보다는 프로농구 구성원 전체가 함께 발전하기위한 방안을 계속 고민하고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저 문제인식을 가지고만 있고, 정작 구체적인 방법론이나 행동으로 실천을 제시하는 이들이 아무도 없다는 게 지금 농구계의 진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욕먹고 비판받는 것보다도 더 무서운 것은 팬들의 무관심이다. 이렇다할 스타도 화젯거리도 없는 데다 코로나19 장기화라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흥행에 적신호가 켜진 한국농구는, 이제 점점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그들만의 마니아 스포츠로 전락해가고 있다. 다가오는 2022년의 한국농구에는 새로운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비전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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