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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아들 잃은 남자가 전쟁에 뛰어든 까닭

[리뷰] 영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비판적 지식인 아버지의 '결자해지'

21.12.31 09:46최종업데이트21.12.31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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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개봉한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는 <킹스맨: 골든 서클>에 이어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에 이르기까지 시리즈를 거듭하며 세계관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정장을 차려입고 신발, 만년필, 자동차 등 생활용품을 첨단 무기로 변신시켜 적들과 싸운다는 점에서 '킹스맨'은 전통의 '007'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사투리를 쓰는 변두리 청년을 독립 첩보 기관 '킹스맨 랜슬롯'으로 거듭나게 하는 서사로 매튜 본 감독은 기존의 '007' 서사를 비틀어 새로운 히어로를 탄생시킨다. 무엇보다 유명하게 회자되었던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en)'이라는 대사를 통해, 기성의 인식, 기성의 구조, 기성의 세계에 질문을 던지며 '007' B급 무비 버전을 탄생시킨다.  

영국의 전통적인 양복점 안에 숨겨진 독립 첩보기관, 그리고 아서왕의 전설에서 따온 등장 인물들, 특히 마법사 멀린과 가장 뛰어난 기사 랜슬롯 등은 <킹스맨> 시리즈를 구성하는 특징적 요소다. 지난 22일 개봉한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프리퀄로 그 유래를 살펴들어간다. 

반전과 반성의 세계관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스틸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변두리 청년을 '007'처럼 폼나는 첩보원으로 거듭나게 만들었던 <킹스맨>이 프리퀄의 세계관으로 선택한 건 반전(反戰)이다. 무력을 사용한 첩보원의 유래가 반전이라니, 게다가 에그시가 '랜슬롯'이 되는 계기는 영국 왕실의 혈통을 이어받은 옥스포드 백작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다.

그의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높은 사회적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 그 이상이다. 영화의 첫 장면은 적십자의 일원으로 영국군의 진영을 방문하는 올랜드 백작 부부로 시작된다. 물품을 싣고 도착한 부부는 포로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를 목격한다. 부부는 이에 항의하지만, 어떤 조처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총격이 시작되었고 올랜드 백작의 아내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는다. 이 세상에 더는 전쟁이 없게 해달라는 유언과 함께.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아버지가 아들 콘래드에게 들려준 신념이다. 그가 태어난 '대영 제국'은 광활한 영토와 영향력을 확보했지만, 무자비한 침략과 식민지배의 결과라는 것. 귀족 가문의 영예 역시 지배 세력의 일원으로서 사람들을 수탈하고 다른 나라를 약탈하는 데 앞장 선 죄의 왕관이라고 올랜드 백작은 단언한다. 이러한 신념을 지닌 백작이 아내마저 희생 당한 상황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전쟁을 없애달라"던 아내의 유언이 무색하게 유럽은 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광기와 욕망이 만든 전쟁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스틸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는 전쟁을 배후에서 부추기는 빌런(악당)과 그의 하수인들로 가정하고 독일, 러시아의 상황을 묘사한다. 그리고 독일, 러시아 국왕과 영국 국왕의 관계를 어린 시절 함께 싸우며 자란 형제로 설명한다. 한데 어울리던 사촌들은 어린 시절 다른 형제들을 괴롭히며 자기 힘을 과시했고 국왕이 된 지금도 다르지 않다. 빌런의 하수인이 옆에서 부추기자 그는 거침없이 전쟁에 나선다. 

자신의 상실감 때문에 전 세계를 전쟁에 휘말리도록 만들겠다는 빌런부터 어린 시절 열등감과 욕망으로 똘똘 뭉친 러시아, 독일의 국왕 캐릭터는 올랜드의 신념과 대비된다. 역사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저서 <광기와 우연의 역사>에서 "인류 역사의 많은 장면들을 만든 건 안타깝게도 반추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이라고 말했다. 첫 번째 시리즈부터 무능한 전 세계 지도자들의 목을 날리는 '피의 카니발'을 벌이던 매튜 본 감독의 비판적 세계관은 여전하다.

아직 킹스맨은 등장하지 않았다. 100만 명에 이르는 젊은이들을 제물로 바친 1차 대전에는 올랜드 백작의 아들 콘래드도 포함된다. 전쟁에 반대한 올랜드 백작은 당연히 아들의 참전을 반대하지만 명예를 중시하는 가문의 아들답게 콘래드는 국가에의 헌신을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국왕의 배려에 따라 후방으로 배치된 콘래드는 편법을 써서 전쟁터에 남는다. 위기에 빠진 아버지를 구할 만큼 무술에 뛰어난 청년이지만 그의 용맹과 용기도 전쟁터에서는 무력하다. 결국 그는 전사자의 일원이 되고 만다. 

아버지의 유지를 아들이 이어가는 건 익숙한 클리셰다. 하지만 <킹스맨>은 이를 비튼다. 스무살 아들을 전장에 내보낼 정도의 중후한 올랜드 백작은 아내도, 아들도 잃게 만든 전쟁과 이를 조장하는 악의 무리를 소탕하려 나선다. 아서왕의 전설을 아들과 흥미롭게 이야기 나누던 올랜드 백작은 이제 스스로 칼을 든다. 세상을 악의 소용돌이에 빠지도록 방관한 '아버지'의 결자해지이다. 

<킹스맨>은 007과 차별되는 세계관과 구성도 구성이지만 특유의 액션 신으로 시선을 잡아끈다. 앞서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술집 문을 잠그고 ''Manners, Maketh, Men"이라고 말하며 건달들을 예술적으로 해치운 해리(콜린 퍼스 분) 장면이나, 리치몬드 발렌타인(사무엘 L 잭슨 분)이 무능력한 전 세계의 지도자들 목을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배경으로 축제처럼 날리는 장면 등은 <킹스맨>을 세련된 스파이물로 자리매김하도록 만들었다.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역시 그런 전통을 이어간다. 러시아 황제를 쥐고 흔든 라스푸친(리스 이판 분)의 전통 춤사위를 살린 액션 신이나 고소공포증을 자아내는 대치 장면은 여전히 <킹스맨>답다. 일상적이었기에 안가가 되었던 양복점은 킹스맨의 탄생처로 절묘하다.

"이성에 의해 인도되는 사람은 자유롭게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한에 있어서 공동의 생활과 공동의 이익을 고려한다"고 스피노자는 말한다. 안다는 건 곧 실천하는 것이다. '비판적 지식인' 올랜드 백작의 실천은 그래서 '킹스맨'이라는 새로운 전통을 탄생시킨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 https://brunch.co.kr/@5252-jh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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