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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사정 볼 것 없다' 유명한 장면에 얽힌 의외의 비하인드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청룡영화제 작품상에 빛나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21.07.31 11:03최종업데이트21.07.3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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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의 중견 영화인 이명세 감독은 영화 감독으로서 갖춰야 할 모든 재능을 타고난 감독이라고 보긴 힘들다. 그가 만든 영화들을 살펴 보면 성공한 작품보다는 실패한 작품이 더 많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명세 감독은 언제나 스토리보다 감각적인 화면 연출을 중시하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했다. 1999년에 개봉한 이명세 감독의 6번째 작품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이명세 감독 특유의 연출 스타일이 관객들의 취향을 저격했던 작품이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서울 66만 관객과 함께 청룡영화제 3개 부문을 휩쓸며 작품성도 인정 받았다. ⓒ 시네마 서비스

 
충무로를 대표하는 스타일리스트 이명세 감독
 
세련된 감각 때문에 이명세 감독이 젊을 거라고 생각하는 관객도 많지만 사실 이명세 감독은 올해 한국 나이로 65세가 된 노장 감독이다. 서울예대 영화과 졸업 후 70년대 후반부터 연출부로 활동하던 이명세 감독은 배창호 감독 밑에서 조감독 및 각본가로 경험을 쌓다가 1988년 안성기, 황신혜 주연의 <개그맨>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개그맨>은 훗날 시대를 앞서간 '한국형 컬트영화'로 재조명됐다).
 
이명세 감독은 청춘스타 박중훈과 고 최진실을 캐스팅해 만든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서울에서만 17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감독으로 급부상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하지만 이명세 감독은 1993년 <첫사랑>을 시작으로 1995년 <남자는 괴로워>, 1996년 <지독한 사랑>이 연이어 흥행에 실패했다. 뛰어난 감각으로 만들어낸 화면은 멋지지만 이야기 구성이 상대적으로 허술하다는 혹평을 듣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부터였다.
 
하지만 이명세 감독은 단점을 보완하기 보다는 장점을 극대화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3년의 준비 끝에 1999년 형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신작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선보였다. 형사들의 거친 삶을 이명세 감독 특유의 감각으로 펼쳐낸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서울에서만 66만 관객을 동원하며 이명세 감독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1999년 청룡 영화제에서도 작품상과 촬영상(정광석), 남우조연상(장동건)을 휩쓸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통해 한국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로 우뚝 선 이명세 감독은 2005년 하지원, 강동원과 함께 신작 <형사: Duelist>를 선보였다. 하지만 100억이 넘는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형사: Duelist>는 전국 120만 관객을 모으는데 그치며 흥행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명세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과 백상예술대상의 감독상을 휩쓸며 또 한 번 연출력을 인정 받았다.
 
이명세 감독은 2007년 <형사: Duelist>에서 인연을 맺은 강동원을 다시 섭외해 멜로 영화 < M >을 연출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불친절한 영화였던 < M >은 전국 44만에 그치며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다. 이명세 감독은 < M >이후 무려 14년째 신작을 선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멋진 화면을 만들 수 있는 감독을 언급하면 이명세 감독은 여전히 첫 손에 꼽힌다.
 
형사는 무조건 쫓아가 잡아야 하는 직업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충무로의 명콤비 안성기(왼쪽)와 박중훈이 세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 시네마 서비스

 
<첫사랑>을 시작으로 <남자는 괴로워> <지독한 사랑>까지 3연속 흥행 실패로 의기소침해진 이명세 감독은 형사들의 이야기를 구상한 후 인천경찰서 강력반에 찾아가 막무가내로 협조요청을 받았다. 그렇게 1년 가까이 형사들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했고 이를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각본에 녹여 냈다. 이명세 감독이 만든 다른 영화들에 비해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스토리가 상대적으로 관객들에게 친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비지스의 명곡 <홀리데이>가 흐르는 가운데 등장하는 '40계단 살인장면'에서부터 이명세 감독은 주특기인 뛰어난 영상미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비가 내리는 계단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건물 밖을 나오는 마약상(송영창 분)과 그가 우산을 펴는 순간 단 한 순간의 칼부림(?)으로 그를 죽이는 장성민(안성기 분)은 영화의 비장한 느낌을 제대로 전달했다. 부산에 위치한 중앙동 40계단은 영화 개봉 후 관광명소로 더욱 유명해졌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역시 박중훈이 연기했던 영구 형사였다. <공공의 적>의 강철중(설경구 분), <베테랑>의 서도철(황정민 분)과 함께 합법적으로 사람을 때리기 위해 경찰이 된 듯한 영구 형사는 "판단은 판사가 하고, 변명은 변호사가 하고, 용서는 목사가 하고, 형사는 무조건 잡는 거야!" 라는 좌우명으로 우직하게 범인을 추격하는 저돌적인 캐릭터다. 험한 말을 쏟아내는 데 있어서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이명세 감독의 영상미는 주로 액션 장면에서 빛을 발하지만 의외의 포인트에서 CG가 사용되면서 관객들에게 소소한 웃음을 주기도 했다. 바로 영구형사와 김형사(장동건 분)가 잠복 도중 설렁탕을 상상하는 장면이다. 모르긴 해도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개봉할 당시 극장가 주변 설렁탕 집은 때 아닌 호황을 누렸을 것이다. 그만큼 이명세 감독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간단한 CG와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설렁탕을 먹음직스럽게 표현했다.
 
뭐니뭐니 해도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백미는 장성민과 영구형사의 마지막 진흙탕 격투 장면이다. 아마 정식 룰이 있는 격투기 경기였다면 영구는 장성민의 상대가 되지 못했겠지만 영구는 장성민에게 일방적으로 맞으면서도 끈질기게 일어나 크로스카운터를 적중시켰다(사실 여기서도 쓰러진 쪽은 영구였다). 하지만 장성민이 돌아선 길에는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었고 끝까지 버텨낸 영구는 병원에 있는 김형사에게 승전보를 전할 수 있었다.
 
비명 지르는 연기에 최적화된 최지우
  

최지우(오른쪽)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안성기가 연기한 장성민의 내연녀로 등장한다. ⓒ 시네마 서비스

 
사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남자 형사들이 남자 살인범을 잡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여성 캐릭터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 영화다. 하지만 4연속 흥행실패에 대한 부담이 있었던 이명세 감독은 극장을 방문할 남성 관객들에 대한 배려(?)로 장성민의 내연녀 김주연이라는 여성 캐릭터를 포함시켰다. 그리고 김주연 역에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최고의 여성스타 최지우를 캐스팅했다.
 
1996년 드라마 <첫사랑>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최지우는 영화 <올가미>와 <키스할까요>를 통해 주연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는 남자배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은 역할을 맡았다. 최지우는 영화에서 툭 하면 비명을 지르고 울음을 터트리는 캐릭터를 잘 연기해냈다.

<베테랑>에서 비열한 대기업 회장, <아저씨>에서 삼청교육대 부활을 꿈꾸는 사채업자, <놈놈놈>에서 나라 팔아 먹은 친일파를 연기한 송영창은 이경영 이전 악역 연기에 한 획을 그은 배우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는 초반부 40계단 살인사건의 피해자로 특별출연했다. 송영창은 <첫사랑>을 시작으로 <남자는 괴로워>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형사: Duelist> < M >까지 이명세 감독이 연출한 대부분의 영화에 출연했다.
 
형사반장 전문배우 기주봉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도 변함없이 형사반장을 연기하며 작지만 큰 아우라를 발산했다. 특히 구두를 신고 온 형사에게 "너 누가 구두 신고 다니라 그랬어? 구두 신은 놈은 형사로 취급 안해! 형사는 빨리 뛸 수 있는 준비를 해야 돼. 뛰다가 운동화 끈 왜 안 맸을까 후회해도 소용없어. 무조건 쫓아가서 잡는 게 형사다"라고 혼내는 장면에서는 진짜 형사반장 같은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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