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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진상에도 쿨했던 콜센터 상담원, 이런 이유 있었다

[넘버링 무비 213]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21.06.08 15:27최종업데이트21.06.0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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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메인포스터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메인포스터 ⓒ (주)더쿱


01.
카드 회사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는 진아(공승연 분)는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쓴다. 최선을 다해 주변과 관계를 맺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직장의 책상 위에 놓인 칸막이와 자주 찾는 식당의 테이블 위에 놓인 칸막이는 그녀의 그런 노력에 힘을 싣는 도구들이다. 혼자 살고 있는 집도 그녀의 모습과 닮아 있다. 주로 생활하는 큰 방을 제외한 다른 공간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비워지고 관심이 닿지 않은 상태. 진아는 그렇게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에서조차 스스로 고립되기를 원하는 인물이다. 누구에게도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 그녀에게 돌아오는 관심이 있을 리 없고, 방 안의 텔레비전과 핸드폰 속 유튜브 영상만이 유일하게 말을 걸어오는 대상이다.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20대 후반의 직장인 진아의 모습을 통해 저마다 1인분의 외로움을 간직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주인공인 진아의 모습을 중심으로 이제 막 직장에 입사해 어쩔 수 없이 고립이 되어가는 수진(정다은 분)과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옆집 사람들, 또 이제 홀로 남게 된 그녀의 아버지 등의 모습을 통해 점차 분절되어 가는 현 시대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한다.

다양한 세대의 1인 가구의 삶을 등장시키며 사회적 이슈를 환기시키는 것이 이 작품의 표면적인 목적이라면, 이와 더불어 주목해봐야 하는 지점은 상호 교환에 있다. 극을 통해 제시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는다는 것. 또 반대로, 사회 기능적 역할의 부재로만 떠넘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자신과 유사하면서도 다른 이들의 여러 모습과 부딪히고 난 뒤에 바뀌어가는 진아의 모습은 이 시대의 모습을 문제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더불어 우리 삶의 모습이 바뀐다고 하여도 어느 지점에서는 누군가와 반드시 이어져 있으며, 보편적인 삶의 가치 속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 (주)더쿱


02.
진아는 회사에서 높은 실적을 쌓아 인정받는 직원이다. 자신의 카드 대금 내역이 잘못된 것 같다며 사용 내역을 일일이 말해달라는 고객의 요구도, 자신이 타임머신을 만들었다며 미래나 과거에 가서도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느냐고 물어오는 고객의 문의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대응한다. 충분히 당황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녀에게는 잠깐의 머뭇거림도 없다. 오히려 진아에게는 주변의 진짜 사람들과 접촉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렵고 힘들다. 현실 속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에 비하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대하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저는 콜 받는 게 더 편한 데요."

팀장이 새로 들어오는 신입의 교육을 부탁했을 때 탐탁치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팀장은 유능한 직원이 콜을 전담해서 받지 못하고 교육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자신과 회사에도 손해라고 하면서 진아에게 교육을 부탁해 온다. 단 5일만 옆에 앉혀놓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주면 된다고, 벌써 교육을 다 받고 투입되는 상황이니 크게 어려울 게 없을 거라고 말하는 팀장. 진아는 단 하루도 누구와 엮이고 싶지 않지만 이번에는 피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영화는 신입 직원의 교육을 시작으로 진아의 완벽히 고립된 생활에 균열을 일으키기 위한 장치들을 하나 둘 밀어 넣기 시작한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 그 집에 눌러 앉아 살게 된 아버지(박정학 분)가 그렇고, 시도 때도 없이 말을 걸어오는 옆집 남자가 또 그렇다. 두 귀에 이어폰을 깊숙이 눌러 넣고 있으면 완벽히 피할 수 있을 것 같던, 그렇게 잘 해왔다고 생각했던 생활에 잡음이 섞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던 상황이 시작된 것이다. 피할 수는 있겠지만 발생하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는 상황. 그리고 그 문제들은 그녀가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덩치를 키워간다.
 

▲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 (주)더쿱


03.
이제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한 수진이 그 첫 번째다. 어쩌면 첫 만남부터 진아는 수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니, 애초에 하고싶지 않았던 일을 떠맡은 셈이니 첫 만남을 운운할 필요도 없을지 모르겠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진은 첫 날부터 진아와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눈치다. 자신에게 일을 가르쳐 줄 선배 혹은 사수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건 본능에 가까운 행위일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존재. 원래의 성격도 그랬을 테지만, 가까워지고자 하는 마음이 더해진 수진은 행동은 조금씩 더 적극적이게 된다.

살갑게 굴고 싶어하는 수진과 그런 그녀의 접근이 불편하기만 한 진아의 대치는 한동안 이어진다. 같이 점심을 먹자고 따라오는 수진과 함께 식당에 가지만 혼자 주문을 먼저 하고 자리를 찾아 앉는가 하면, 목에 좋다며 수진이 선물한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 그 이상의 시간은 조금도 나누지 않겠다는 듯한 결연한 모습. 후배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느냐고 타박을 하는 팀장에게도 자신은 더 이상 못하겠다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낸다.

출근길과 퇴근길에 매일 마주치는 옆집 남자와의 대화도 곤욕스럽다. 그는 아침이고 밤이고 가리지 않고 집 앞 복도에 나와 담배를 피는데, 하필이면 아파트가 구축 복도식이어서 그의 집 앞을 지나지 않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 앞을 지나가려고만 하면 꼭 별 의미도 없는 말을 걸어오는 남자. 대충 대꾸를 해보지만 역시 불편하기만 하다. 옆집 사람을 골라서 세를 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긴 하지만, 그 누가 옆집에 살던 진아는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수진과의 관계와 마찬가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일 뿐, 깊게 관여하고 싶지 않다.

04.
그런 마음은 핏줄이라고 다르지 않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유산과 관련한 문제로 아버지(박정학 분)를 만나게 되는 자리에서도 진아는 자신이 꼭 해야하는 일만 처리한 뒤에 최대한 빨리 집을 나선다. 17년 전에 집을 나가서 이혼까지 한 아버지와 심리적으로 먼 거리를 유지한 까닭도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자신이 어머니의 모든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데도 상속 포기 각서까지 쓰며 아버지와의 거리를 두려는 이유에는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다.

진아는 사실 엄마가 살아 계실 적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나중에 아버지의 입을 통해 드러나게 되는 일이지만, 그녀는 꽤 오랫동안 엄마를 찾아가지 않았고 장례식장에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제 아버지의 집이 될, 엄마의 집이었던 공간의 홈캠 속 메모리 카드를 챙겨 집으로 향하는 것에도 그녀의 성향이 드러난다. 그건, 마음 속에 남겨진 의구심을 지우기 위한 최소한의 행위. 그 집에 혼자 남게 된 아버지에 대한 관심을 갖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엄마가 세상을 떠나던 날 밤의 모습에 대한 의심을 파헤치기 위한 행위인 셈이다. 적어도 처음에는 말이다.
 

▲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 (주)더쿱


05.
한 번 생각해 보고 싶은 지점은, 진아라는 사람이 과연 처음부터 그런 성향의 사람이었는가 하는 점이다. 영화도 이 지점에 대한 물음을 의식한 듯 진아와 수진을 가느다랗게 이어 놓는다. 수진의 교육을 맡겨놓고 후배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다며 핀잔을 주는 팀장에 대한 그녀의 말이다.

"저는 똑같이 하고 있는 건데요? 팀장님이 제 사수일 때랑 똑같이 하고 있다고요."

영화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지금의 진아도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딛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집에서 혼자 떨어져 나와 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두 팔이 옴짝달싹하기도 어려운 부스에 홀로 갇히기 시작하던 시점. 그 시점에서부터 그녀는 고객들의 불평을 맨몸으로 받아내고, 무관심한 사수의 반응에 적응하는 법을 또 홀로 배워갔을 것이다. 잘 때도 '뚜뚜' 하고 신호 연결음이 들린다는 말과 다시 걸려온 진상 고객의 콜에 이제 무덤덤하게 자신의 일을 이어가는 수진의 행동을 보면서 진아는 무엇을 떠올렸을까?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는 관객이 보기에도 지금 수진의 모습은 과거 진아의 모습과 많이 닮은 것 같다.

06.
어쩌면, 온전한 혼자의 삶을 선택하고자 한 것은 바깥의 사정에 의해 흔들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부모의 사정에서부터 직장에서 발생하는 직업적 고충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세워 보기도 전에 무너뜨리려고 눈을 부라리고 덤벼드는 것들에 맞설 힘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녀의 텅 빈 집안만 봐도 쉽게 알아 차릴 수 있다. 자신이 머무는 공간, 방 하나를 제외하고는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은 듯 휑하게 내버려진 집의 사정만 봐도 말이다. 그렇게 두터운 외투를 껴 입듯 만들어 놓은 자신만의 경계다.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그어놓은 경계이지만 사실 문제는 그 경계선 위에 존재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경계는 그 경계를 넘고자 하는 이들보다 경계를 만든 사람에게 더 많은 신경과 스트레스를 쓰게 하는 경향이 있다. 진아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자꾸 신경이 쓰이고, 그 경계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안쪽의 사정에 영향을 미친다. 다만 과거와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일련의 사건들을 지나며 진아가 자신의 경계를 넘는 것들이 항상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 가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옆집에 새로 이사 온 청년이나 아버지의 부름에 버선발로 달려오는 지역 교회 사람들처럼 타인의 일에 적극적으로 몸을 던지는 사람들도 만나게 된다.

적어도 진아라는 인물에 한정해서 보자면, 이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혼자 사는 사람'이 된 사람의 모습에서 시작해 '혼자 사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다시 진짜 '혼자 사는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혼자 사는 사람'으로 그치고 마는 이와 벌써 제대로 혼자 사는 법을 깨우친 사람, 이제 다시 혼자 사는 법을 배워가야 하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한 '혼자 사는 사람'들이 그려진다.
 

▲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스틸컷 ⓒ (주)더쿱


07.
마지막에서도 영화는 진아를 온전한 방법을 깨우친 사람으로 포장하려 들지 않는다. 이전보다 조금 번거롭고 귀찮기는 하지만 서로를 위해 조금의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조금 알려준 정도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혼자 사는 사람들' 중 한 사람 몫은 이제 충분히 해 낼 수 있게 된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은 그런 대우를 받지 못했지만 자신으로 인해 혼자의 삶에 지쳐가던 수진에게 미안한 마음을 건넬 수 있게 되었고, 가족의 안부를 궁금해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눈 하나 깜빡하지 않던 진아가 자신을 쳐다보는 수진에게 '그냥 똑같이 하면 돼요. 다 똑같다고요' 라고 무심하게 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모두 똑같지 않다. 목이 아픈 동료를 위해 목 스프레이를 챙기고, 세상을 떠난 누군가를 위해 제(祭)를 드릴 줄 알고, 또 오해와 미움의 시간을 지난 후에 자라난 화해와 사과의 마음을 전할 줄 아는 우리의 삶은 작은 폰부스 안의 일방적인 세상과는 조금도 닮아 있지 않다.

혼자 살아가는 이들로 가득한 시대, 우리는 영화 속 어떤 인물의 표상이 되어 지금 살아가고 있을까. 이리저리 흔들릴지언정, 귓가에서 '뚜뚜' 하는 소리 만큼은 떨쳐낼 수 있는 삶일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영화 혼자사는사람들 공승연 정다은 홍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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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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