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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짜리 영화의 중압감, 결이 다른 감동

영화관 '재개봉' 열풍, 과도기 시대 또 다른 발로가 아닐까

21.03.22 16:21최종업데이트21.03.2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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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에서 문을 닫은 영화관은 총 81개였다고 한다. 재작년(2019년) 대비 두 배 가까운 수치다. 지난 2월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20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한해 국내 극장 매출액은 전년(2019년) 대비 73.3% 감소했다.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19 펜데믹은 영화관에 짙은 불확실성을 드리우게 했다. 영화관에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불특정 다수의 인원이 모이는 것에 대한 관객들의 불안감도 있고, 다수의 관객을 영화관으로 이끌 수 있는 텐트폴 영화(tentpoll movie, 투자, 배급사에서 개봉하는 작품 중 가장 흥행 가능성이 높은 작품)가 개봉하지 못 한다는 것 역시 큰 변인이다. 실제로 <007 노 타임 투 다이>, 마블의 <블랙 위도우> 등이 개봉을 1년 이상 미뤘다.
 
사람들이 대면을 피하고자 하는 시대에 OTT 서비스는 영화관이 갖고 있던 지분을 상당 부분 가져 갔다. 국내에서는 이례적인 우주 SF <승리호>가 영화관 개봉 대신 넷플릭스 공개를 선택했다. 박보감과 공유가 주연을 맡은 블록버스터 <서복> 역시 오는 4월 영화관과 OTT 서비스에서 동시 공개된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지난 해까지만 해도 OTT 서비스에서만 공개되었던 영화는 입후보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최소 7일 간 상업영화관에서 개봉한 작품에만 출품 자격을 부여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아이리시맨>, <결혼 이야기>, <두 교황> 등의 넷플릭스 영화 모두 소규모로 오프라인 영화관에서 동시 개봉되었다.
 
그러나 코로나 19 펜데믹 이후, 미국에서는 영화관 문을 여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 되었다. 영화관 간판에 걸릴 수 있는 작품 자체가 몇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작년 4월 28일, 아카데미 측은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한하여 영화관에서 개봉하지 않았던 작품들의 입후보를 허용했다. 그 결과 데이비드 핀처의 <맹크>, 애런 소킨의 <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등 넷플릭스에서 독점 공개되었던 영화들이 주요 부문에 노미네이트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영화관을 찾는 이유
 

지난 3월 18일 재개봉한 <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 >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우리는 영화관에서 먹는 팝콘의 맛을 잊어버린 지 꽤 되었지만, 영화관의 문이 닫혀 있는 것만은 아니다. 신작들이 사라진 자리를 채운 것은 재개봉 영화였다. 샘 멘데스의 <1917>을 비롯해, <라라랜드>, <비긴 어게인>등 비교적 최근에 한국 관객들에게 사랑받았던 영화들이 지난해 재개봉했다.

왕가위 감독의 명작 <중경삼림>, <화양연화> 역시 리마스터링되어 관객들을 찾았다. 리마스터링 작품의 경우, 영상과 음악을 더욱 깔끔하게 다듬어, 창작자가 구현하고자 했던 형태를 관람할 수 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김초희 감독의 <찬실이는 복도 많지> 등 독립 영화 역시 지난 하반기에 재개봉했다(일부의 경우를 제외하면, 재개봉 영화가 상업적 안정성이 보장된 작품에 집중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개봉 20주년을 맞은 판타지의 걸작 '반지의 제왕' 3부작이 영화관에서 2주에 걸쳐 재개봉 중이다. 1편 <반지 원정대>가 3월 11일부터 일주일 동안 상영되었고, 2편 <두개의 탑>과 3편 <왕의 귀환>이 3월 18일부터 일주일에 걸쳐 상영 중이다.

나는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을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관람했다. 4시간에 육박하는 상영 시간이 주는 중압감은 크지만, 후회는 없었다. 프로도와 샘이 겪는 고행에 미간을 찌푸리고, 사우론과의 전투를 앞둔 아라곤의 일장 연설에 마음 속으로 박수를 쳤다. 이미 OTT 서비스를 통해 <반지의 제왕>를 여러 차례 만났지만, 이것은 결이 다른 몰입의 영화적 체험이었다.

지난 달에는 픽사의 <소울>을 세 차례 관람했다. 북미에서는 극장 개봉이 취소되었고, OTT 서비스인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공개되었다. 코로나 19 상황이 '상대적으로' 나은 우리나라에서는 영화관 개봉이 이루어졌고, 약 20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영화관에서 이 작품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즈가 만든 앰비언트 음악이 이어폰 대신 영화관의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면서, 감정의 진폭을 크게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관객으로 하여금 '살아 있다'는 느낌마저 선사할 수 있는 현장성의 온도였다. 
 
2019년,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는 넷플릭스의 전폭적인 지원과 함께 영화 <아이리시 맨>을 만들었지만, 관객들에게 가급적 극장에서 이 작품을 볼 것을 권했다. 어찌 보면 그의 말이 모순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영화관에서 보는 '시네마'의 가치를 믿지만, 넷플릭스는 관객들이 영화관을 찾지 않도록 만드는 데에 가장 크게 기여한 플랫폼 아닌가? 그러나 모순은 나 스스로에게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영화관에서 개봉한 작품만 입후보할 수 있다'는 아카데미의 기준이 구태의연하다고 느끼며, 넷플릭스에서 볼만한 영화를 찾는다.

영화적 체험이 고정된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마다 '이런 게 바로 영화다'라고 생각한다. '스트리밍 문화가 시네마의 가치를 퇴색시키고 있다'라고 우려하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영화 관람의 형태는 앞으로 더욱 다양해질 것을 알면서도, 영화관에 대한 낭만을 놓지 못한다. 지금의 재개봉 열풍은 과도기의 시대에 영화관이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결코 잃고 싶지 않은 낭만의 발로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OTT 넷플릭스 재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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