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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와 떨어져 태어난 아기 순록 아일로에게 일어난 일

[김성호의 씨네만세 314] 영화 <아일로>

21.03.22 10:36최종업데이트21.03.22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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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가 안 그러겠냐만, 코로나 19 확산은 영화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대규모 영화제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축소됐고, 극장 운영은 마비됐다. 영화가 흥행하지 못하니 투자가 끊겼고 제작 역시 지원되거나 아예 엎어졌다.

반면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 등 OTT 서비스는 활성화됐다. 혼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며 TV 대신 영화와 외국 드라마를 접하는 경우가 늘어난 영향이다. 이 같은 추세에 편승해 기대작이 극장 개봉 대신 OTT 업체에 동시 상영을 허용하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극장을 고집하던 영화 팬들조차 집에서 OTT 서비스를 즐기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행보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극장이 종말을 맞은 건 아니다. 극장엔 예년과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기존엔 정식 개봉이 어려웠던 작은 영화들이 스크린을 비집고 상영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코로나19 확산 속에 유의미한 성취를 거두는 사례는 거의 없지만 이 시국에만 볼 수 있는 낯선 풍경인 것 같아 관심이 간다.
 

영화 <아일로> 포스터 ⓒ 에스와이코마드

 
극장에서 만나는 흔치 않은 자연 다큐

최근 개봉한 <아일로>도 코로나19 국면에서 극장개봉 기회를 얻었다. 프랑스 자본으로 제작된 2018년작 자연 다큐멘터리 영화다. '아일로'라 이름붙인 북유럽 순록이 주인공으로, 그가 태어나 만 1살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담았다.

특이한 점은 통상의 다큐멘터리보다 극적 요소를 대폭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사실적으로 개체의 모습을 닮아내는 다큐멘터리와 달리 위기를 극복하는 아일로의 여정을 극영화처럼 묘사했다. 기승전결이 있는 구성과 편집, 적극적인 내레이션까지 활용해 특색 있는 극적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라플란드라는 땅이 있다. 핀란드 북부와 러시아 콜라반도를 잇는 유럽 최북단의 험지다. 춥고 척박하여 오랜 기간 황무지로 버려져 있었던 이 땅은, 그 덕에 자연이 제 모습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어느 겨울, 라플란드에서 어미 순록 한 마리가 새끼를 낳는다. 어미는 계절이 풀리기 전에 초지로 이동하려 서두르는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와 수컷 한 마리를 낳았다. 이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사람들은 태어난 아기 순록 이름을 아일로라 지었다. 아일로는 태어나자마자 위기를 맞는다.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온 어미가 아일로를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탓이다. 아일로를 그대로 놔두고 무리로 돌아갈 듯했던 어미는, 그러나 아일로 곁으로 돌아와 걸음을 재촉한다.
 

영화 <아일로> 스틸컷 ⓒ 에스와이코마드

 
라플란드 순록 아일로의 여정

이후 영화는 아일로와 그 어미가 무리를 뒤따르는 과정을 비춘다. 새끼 순록에겐 온 세상이 흥미롭고 동시에 위험하다. 라플란드엔 순록을 먹이로 삼는 늑대와 곰이 사는데, 겨우내 굶주린 이들이 어린 순록을 봐줄리 만무하다.

영화는 무리를 뒤따르는 아일로와 어미의 여정 사이사이로, 라플란드의 다른 동물들도 담아낸다. 눈보다도 새하얀 북극여우와 흰담비, 흰올빼미 등이 서로 쫓고 쫓기는 모습들은 스크린 너머 관객들을 매료시킬 만큼 생생하고 흥미롭다.

이밖에도 작은 곰인 울버린, 레밍, 토끼 따위가 등장해 라플란드 생태계의 다채로운 모습을 스크린 위에 그대로 드러낸다.

아일로와 그 어미가 무리와 합류한 뒤에도 이야기는 지속된다. 무리는 초지를 찾아 아직 꽁꽁 얼지 않은 강을 건너고, 늑대무리의 추격도 따돌리는데, 영화는 그 모든 과정을 제법 가까이에서 잡아낸다. 어떻게 찍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촬영은 아일로와 동물들의 자연스런 모습은 물론 핀란드의 대자연까지 사각의 프레임 안에 알차게 담아냈다.
 

영화 <아일로> 스틸컷 ⓒ 에스와이코마드

 
다큐멘터리의 극영화화, 시도는 좋았지만

다만 자연 다큐멘터리의 장르를 넘어 극화를 시도한 전개가 지나치게 느껴질 때도 없지 않아 아쉽다. 무리에 합류하고 다시 늑대나 울버린의 위협을 피해 도망치는 아일로의 이야기는 상당히 작위적으로 느껴지고, 촬영된 영상 역시도 극화된 구성을 따르기엔 부족한 부분이 역력하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이어가려다보니 내레이션에 기댈 밖에 뾰족한 방도가 없다. 그런데 내레이션이 영상에 비해 턱없이 허술하게 쓰여 관객의 흥미를 잡아두기에 역부족이다. 다큐멘터리적 사실에 극적 구성을 입히기 위해선 극영화 못지않은 치밀한 준비가 필수적이었을 텐데도 그때 그때 상황만 모면하는 내레이션으로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서사로 꿰어지지 못한다.

더욱이 내레이션을 읽은 고몽이란 유튜버의 대사 소화 능력이 턱없이 떨어져 성인 관객이 영화를 참고 보기가 다소 어려울 정도다. 씨네21 이용철 평론가가 이 영화에 남긴 '좋은 영화에 웬 약장수 더빙'이란 평은 이 영화의 단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아일로>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큰 영화다. 쉽게 만나기 어려운 라플란드의 풍경 속에 순록의 여정을 닮아낸 부분은 인상적이나, 통상의 TV 자연 다큐멘터리를 넘어선 매력을 갖췄다고 보기가 어렵다.
 

영화 <아일로> 스틸컷 ⓒ 에스와이코마드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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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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